출근길 전동차 내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전동차 두 칸이 전소되고 한 칸이 반쯤 탔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번 지하철 화재가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당시처럼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이른 시간에 발생한데다 발생지점도 종착역에 가까워 승객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재 발생 및 진화=화재는 3일 오전 7시12분쯤 서울 온수동 지하철 7호선 가리봉역을 출발해 철산역으로 운행중이던 7017호 전동차 내에서 발생했다. 목격자 윤모(65·여)씨 등에 따르면 검은 점퍼와 바지를 입고 등산용 가방을 멘 50대 남자가 노란 비닐봉지와 신문지를 들고 화재가 발생한 7번째 전동차 칸으로 옮겨와 앉았다.
가리봉역에서 열차가 출발하자 이 남자는 10여명의 출근길 승객들이 졸고 있는 틈을 이용,준비해 온 신문지를 말아쥐고 신문지에 휘발성 물질을 묻힌 뒤 전동차 의자에 불을 붙였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에 불이 붙자 전동차에 타고 있던 10여명의 승객들이 놀라며 황급히 전동차 앞 칸으로 뛰어나갔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윤씨 역시 뒤늦게 앞칸으로 대피했다. 윤씨는 화재로 인해 뒷머리가 그을리고 오른쪽 손목에 경미한 화상을 입었다.

불이 붙은 전동차는 곧 다음역인 철산역에 도착했고 연기를 목격한 역 직원 3명이 내려와 일부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종합사령실에 보고했으나 기관사가 미처 화재사실을 감지하지 못해 승객들을 태운 채 운행을 계속했다.
다음 정착역인 광명사거리역에서 비로소 이 역 직원과 공익요원 등 3명이 남은 승객들을 대피시켰고 역구내에 비치된 소화기 2대를 이용,1차 진화작업을 벌였다. 이어 전동차가 온수역에 도착,소방차 74대가 출동해 1시간16분간 진화작업을 벌여 오전 8시54분에 불길을 잡았다.
◇대형 참사 어떻게 피했나=도시철도공사 박창규 홍보실장은 "아침에 서울 방면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온수방면은 가리봉역쯤 되면 사람들이 거의 다 내린다"며 "열차에 승객이 많지 않고 이른 시간이어서 큰 피해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연기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는 화재경보시스템 등을 통해 역 직원들이 화재발생을 조기에 감지,승객들을 대피시키고 1차 진화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대형참사를 피하는데 도움이 됐다.
◇경찰 수사=목격자들에 따르면 용의자는 등산용 가방을 메고 우유팩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담은 노란색 비닐봉투를 들고 전동차에 올라탔다. 광명경찰서 정진관 형사과장은 "역구내에 설치된 CCTV를 정밀분석하고 목격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며 "맞은편에 앉은 목격자 윤씨에게까지 불꽃이 튄 것으로 미뤄보아 용의자 역시 화재 당시 옷이 불에 그을리거나 화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찰은 약간 큰 키(173∼176㎝)에 보통체격으로 검은색 점퍼와 바지를 입고 전동차에 탔던 50대 남자를 뒤쫓고 있다. 또 윤씨를 포함해 전동차에 있던 목격자들을 상대로 용의자 인적사항을 파악하는 한편 화재가 발생한 전동차 의자부분 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인화물질 성분을 파악중이다.
◇문제점=철산역에서 역 직원들이 최초 화재를 감지하고 승객들을 대피시켰으나 정작 기관사는 광명사거리역에 도착한 다음에서야 뒤늦게 화재사실을 알았다. 기관사 금모(37)씨는 "광명사거리역에서 육안으로 연기를 확인한 뒤에서야 화재발생을 알고 안내방송을 하고 사령실에 보고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책임소재 규명을 위해 도시철도공사 종합사령실 직원들을 상대로 시간대별 대처상황을 조사중이다.
광명역에서 1차 진화작업을 했으나 최종 정착지인 온수역에 들어온 뒤 전동차 두 칸이 완전히 타고 한 칸이 반쯤 불에 탈 정도로 불길이 크게 번져 1차 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또 온수역에 도착할 때까지 6대의 전동차가 화재 전동차와 교차운행해 자칫 불이 옮겨붙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지적이다.
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광명사거리역에서 진화가 완전히 됐다고 판단해 운행을 재개했다"며 "대구지하철 사고 때와 달리 전동차가 달리고 있어 불이 옮겨 붙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돼 열차를 교차시켰다"고 말했다.
엄기영 노용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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