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4월30일 해질 무렵,미국인의 눈과 귀는 뉴욕 맨하탄 34번가로 집중되었다. 이 때는 한 건물의 준공식이 거행되는 순간이었다. 곧 6400개의 창에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세계 최고 빌딩의 탄생을 알렸다. 지상높이 381m,수용인원 1만 8000명 규모의 102층짜리 건물에는 67개의 엘리베이터가 있고 화장실은 무려 2500개에 달했다.
지금도 초고층빌딩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1972년 맨하탄 남쪽에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110층,417m)이 들어설 때까지 41년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그 후 1974년 시카고에 110층의 시어스 타워(443m)가 건설되면서 최고층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24년간 깨어지지 않던 시어스 타워의 세계 최고 타이틀은 1998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 페트로나스 타워(88층,452m)가 건설되면서 아시아로 넘어왔다. 현재 세계 최고의 마천루는 올해 준공된 대만의 타이페이101 빌딩. 지상 높이 508m에 층수로는 101층에 달한다.
그러나 타이페이101의 타이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609m 높이로 다시 건설될 계획이며 중국 상하이와 홍콩에도 타이페이101보다 높은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최근 삼성건설이 공사를 수주한 아랍에미리트의 버즈두바이 빌딩은 이보다 훨씬 높은 700m 이상(160층 이상)으로 건설된다고 발표했다.
◇초고층 빌딩 높이 어디까지?=그럼 현재 인류의 기술로 가능한 최고 빌딩의 높이는 어디까지일까. 200층까지 가능하다고 보는 이도 있고,1마일(약 1600m)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도시공학자도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난 1956년 높이 1600m에 528층짜리 일리노이 타워를 설계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엄청난 공사비를 감당할 경제적 수지타산의 문제이지 기술상의 높이 한계는 없다고도 한다.
10여년 전 일본에서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심볼의 의미로 ‘에어로폴리스 2001’과 ‘스카이시티 1000’을 설계한 적이 있다. 도시에서 10㎞ 떨어진 인공섬에 계획된 에어로폴리스는 500층에 높이가 2001m다. 거기에는 약 30만명의 인구가 살게 되는데 주거시설은 물론 사무실 병원 학교 쇼핑 및 레크레이션 시설 등이 모두 들어서는 것으로 구상됐다.
스카이시티 역시 196층,1000m 높이의 초고층 빌딩으로서 수직으로 쌓아올린 입체도시에 가깝다. 지상층 지름 400m,최상층 지름 160m,총 면적 800㏊(약 242만평) 규모에 거주자 3만5000명,취업자 10만명이 생활할 수 있다. 둘 다 교통 통신 에너지 등의 시설이 복합적으로 들어선 하나의 인공도시형 빌딩이다.
◇초고층 빌딩은 바람과의 싸움=이같은 초고층 빌딩은 건축 기술의 발달과 함께 철강·유리·고강도 콘크리트 등 첨단 자재의 출현 덕분에 가능하다. 하지만 초고층 건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람과의 싸움’이다. 땅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의 세기가 매우 커질뿐더러 비록 약한 바람이라도 건물의 진동수에 맞추어 계속 분다면 공진현상에 의해 건물을 무너뜨릴 만한 엄청난 진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때문에 초고층 건물은 지진이나 바람의 흔들림을 서서히 흡수하는 탄력적인 구조를 갖게 된다. 강풍이 불 때 뻣뻣한 고목은 뿌리째 뽑혀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는 끝까지 견디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탄력적인 구조만 갖출 경우 빌딩이 내내 흔들리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러한 진동을 줄이기 위해 초고층 빌딩에는 과학 원리를 이용한 여러 가지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첫 번째는 공기역학을 고려하여 건물의 외형을 설계하는 방법이다. 사각형으로 시작된 빌딩의 외형이 위로 올라가면서 산 정상처럼 옆 부분이 비스듬히 깎여 있거나 마름모 등의 형상으로 비틀어진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또 건물의 상부에 큰 구멍을 내는 방법도 사용된다. 중국 상하이에 세워지고 있는 세계금융센터(492m)는 상층부에 지름이 51m나 되는 거대한 구멍이 나 있다. 바람이 불면 구멍으로 빠져나가 건물에 영향을 덜 미치게 된다.
두 번째는 진동제어장치를 설치하는 방법이다. 타이페이 101 빌딩의 88층과 92층 사이에는 지름 6m,무게 660t에 달하는 커다란 강철공이 매달려 있다. 동조질량감쇄기라 불리는 이 장치는 건물이 바람에 흔들릴 때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덜 흔들리게 한다. 주위에 8개의 유압 범퍼가 설치돼 진동을 흡수하는 이 강철공은 타이페이 101의 최대 진동치를 3분의1 이상 줄여준다.
고층 건물일수록 고유주기가 길어져 바람과의 공진현상에 의해 진동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 삼성건설 기술연구소 안상경 박사에 의하면 “이런 진동은 특정주기에만 크게 발생하므로 건물의 진동주기를 변화시키면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이 경우 동조질량감쇄기 같은 진동제어장치는 초고층 건물의 진동주기를 변화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몇 년 후 세계 최고의 빌딩이 될 버즈두바이 빌딩에도 이런 동조질량감쇄기가 사용될 계획이다. 중동의 거센 모래바람을 잠재울 강철공의 규모는 얼마나 될지 흥미롭다.
이성규(사이언스타임즈 객원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