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나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었을 썩 유쾌하지 않은 유머 하나.
어느 교회 옆에 퇴폐 술집이 하나 있었다. 목사와 성도들은 그 술집이 없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얼마 뒤 그 술집이 실제로 망했다. 술집 주인은 교회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자기 가게가 망했다며 교회측에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교회는 기도 때문에 망했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며 손해배상을 해 줄 수 없다고 맞섰다. 교인들과 술집 주인 중 누가 더 기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강한 것일까.
국가보안법 개폐를 놓고 야당인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과 여당인 열린우리당 등 진보 진영 간에 논란이 한창이다. 보수 진영은 보안법을 폐지하고 여당이 마련한 내용으로 형법을 보완할 경우 국가 안보에 구멍이 숭숭 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진보 진영은 보안법을 폐지하더라도 형법을 조금만 손질하면 국가 안보사범들을 다스리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반박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여당 안대로 법 체계를 바꾸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주체사상을 유포하거나,북한 공작원과 접선하거나,그를 숨겨 주거나,그에게 군사 기밀을 넘겨 주거나,밀입북해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남한 사람이 허가 없이 북한의 정치 행사에 참석하거나,특정 지역이 국가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하거나,공산당을 창당하거나,서울 한복판에서 인공기를 흔들어도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진보 진영은 국민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하려는 냉전적 사고요 정략이라고 반박한다. 현행 또는 보완될 형법과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계 법으로 위에 열거된 행위를 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쟁에 귀기울이다 보면,안보 불감증이요 인권 지상주의로 인식돼 온 진보 진영이 안보 지상주의로 바뀐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보수 진영은 여당이 추진하는 새 법 체계에서는 위의 행위를 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없으며,처벌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데 진보 진영은 처벌할 수 있으며 그래도 인권 침해가 아니라는 논리다. 기자의 상식으로는 인권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진보 진영이라면 그러한 법 규정으로 어떻게 사람을 처벌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하는 게 마땅한데,안보를 위해 그 규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 셈이어서 헷갈리는 것이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중 어느 쪽의 안보 의식이 더 투철한지가 말이다.
보수 진영이 그러한 법망은 너무 엉성해 국가 안보사범이 다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데 반해 진보 진영이 그 법망만으로도 보안사범을 다잡을 수 있다는 걸 보면 보수 쪽의 주장과는 달리 진보 쪽의 안보관이 더 뚜렷한 것 같다. 다시 말해 진보 진영은 법망이 다소 엉성해도 보수 진영이 걱정하는 유의 보안 사범들이 빠져나가는 걸 모두 철저히 막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진보 진영의 안보 의식이 투철한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나라를 조용하게 하고 보수 진영을 포함해 많은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정부·여당이 금도를 보이면 어떨까 싶다. 보안법을 폐지하고 형법을 보완하는 대신 보안법을 개정하거나,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체 입법안을 마련하는 식으로 말이다. 여당이 반박하는 대로 보수 진영이 빠져나갈 것으로 우려하는 보안사범들을 다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보완할 바엔 그 규정들을 묶어 별도의 법으로 두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보안법 폐지를 막는 데 당운을 걸겠다는 각오다. 그리고 보수 세력은 물론이고 중도적 입장인 기독교계의 주류까지 보안법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국정원,법무부,검찰,경찰이 한 목소리로 형법 개정만으로는 안보에 허점이 생긴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절대 다수가 보안법 폐지로 국가 안보가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여당이 보안법 폐지를 강행할 경우 나라가 시끄러울 것 같다. 더구나 지금은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 주도권이 적잖이 타격을 받았고,나라가 시끄럽다.
보수 진영의 중심에서 보안법 폐지를 저지하고 있는 한나라당도 최근의 정국 분위기를 틈타 여당을 몰아붙이려해선 안 된다. 열린우리당이 당론을 밝혔으므로 한나라당도 대안을 제시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가 서로의 공통점을 모색해야 한다.
백화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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