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를 품은 인디오의 나라, 페루

 
인디오, 아마존, 마추피추, 나스카 라인 등 어릴 적 책에서 읽은 7대 불가사의가 있는 곳, 페루. 가톨릭과 스페인 문화, 그리고 독특한 인디오 문화와 울창한 자연 환경, 화려한 고대 잉카문명을 진주처럼 품고 있는 남미의 페루 여행을 떠나보자.

- 인디오 시장 -

에콰도르에서 페루로 넘어가는 양옆으로 높이 솟은 6,000m 고지의 안데스 산맥을 지나면 카라즈(Caraz)로 가는 사막이 나타난다. 모래바람과 풀 한 포기 없는 큰 사구가 연이어 있는 허허로운 벌판이다. 떠도는 유랑민족처럼 사막 한가운데 10~15명의 인디오들이 가족 단위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



몇 시간째 사막을 달리며 만나는 페루의 자연은 변화무쌍하기만 하다. 한동안 사막이 보이는가 하면 사막 바로 옆에 큰 언덕을 이룬 모래가 바로 바다로 떨어지고, 홈볼트 해류로 인해 바제스타(Ballestas) 섬에는 바다사자와 펭귄이 살고 있다. 또 바제스타 섬에서 2시간 떨어진 이카(Ica)에는 완전한 오아시스가 펼쳐져 있고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산들이 오아시스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은 지겹지 않다.



새벽에 도착한 페루의 작은 마을 카라즈는 완전한 시골 마을이다. 큰 시장이 선다고 꼭 가보라고 해서 콜렉티보(Collectivo)라는 작은 봉고차를 타고 인디오들로 북적거리는 시골 장터로 향했다. 시장에 가보니 전통 의상을 입은 인디오들이 장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색색의 옷 때문에 장터가 물감으로 칠한 도화지 같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인디오들이 전통 옷을 팔고 있다. 아시아에도 아프리카에도, 남루하긴 하지만 모두 서구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는데 왜 이들은 아직 전통 의상을 고수하고 있을까? 전반적으로 화려한 색깔의 옷들. 망토와 넓게 퍼진 레이스와 층층으로 무릎을 덮는 화려한 플레어 스커트, 색색의 스타킹, 퍼프 소매가 달린 뻣뻣한 레이스로 된 블라우스, 유럽풍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높고 창이 좁은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가르마를 정확히 중심으로 나누어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인디오들, 얼굴은 둥글고, 피부색은 약간 까무잡잡하다.

- 와라즈의 루코 호수 -

6,000m 고지의 산들이 첩첩이 겹쳐 있는 안데스 산맥 속에 있는 라구나 루코(laguna luco, 루코 호수)에 가는 버스는 없다. 차를 빌리거나 히치하이킹이 유일한 방법이다. 가는 길에는 고산지대에 사는 인디오들과 그들이 기르는 라마, 양, 개, 닭 등 우리네 시골과 비슷한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푸르고 깨끗한 하늘 위에 하얀 구름이 동동 떠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물감으로도 색을 내기 힘든 묘한 하늘색에 눈이 시릴 정도다.



한참을 가다 보니 고산증세에 머리가 멍해진다. 해발 3,800m가 넘는 곳이다. 코카잎을 씹으며 조금 더 걸어가니 산맥과 산맥 사이에 파랗게 펼쳐진 라구나 루코가 보인다.

양옆으로 나란히 있는 절벽의 민둥산, 그 멀리 6,768m의 와스카란 산이 펼쳐져 있고, 온 세상이 다 들여다보이는 파란 물, 그림같이 맑은 무릉도원이다. 한참 넋을 잃고 있다가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는데 융가이(Yungay)에서 만난 소풍 온 아이들이 호수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인디오 아주머니가 파는 삶은 감자와 땅콩을 점심으로 먹는 이들은 70년대 우리처럼 가난하지만 따스한 모습이다. 시골에 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아이들에게는 외국인이 낯설다. 한 명 한 명 사진을 찍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서툴지만 조금씩 써먹는다.

“Where are you from? What's your name?”

똑같은 질문을 아마 20번은 더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워 피하는 것보다 용기 있게 다가와 말하는 모습이 훨씬 좋아 보인다.

- 페루의 수도 리마 -

남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리마다. 리마의 페루의 수도로 치안이 아주 안 좋아서 그동안 여행객으로부터 들은 강도사건만 해도 몇 건이 된다. 최근 구시가지의 치안이 나빠지자 여행객들은 이제 고급 아파트가 늘어서 있고 레포츠 시설이 잘 된 신시가지 미에로 폴리스로 옮기는 추세다.



오후에 시내를 다녀보니 사람도 많고 시설도 잘 되어 있는 걸로 봐서 전혀 위험할 것 같지 않다. 도대체 어디서 강도가 난무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느낌이 든다. 어라, 될 수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재빨리 걸어 중국 식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서 오세요.”

점심 먹을 시간은 아니지만 배가 고프고 따라오는 이상한 사람도 보낼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여기 위험해요,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대낮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여럿이 달려들어 몸을 번쩍 들어 배낭을 뺏고, 시계며 심지어 신발까지 싹 가져간다고 했다. 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항상 조심하고 절대 반항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리마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도로에서는 강도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유명한 리마의 ‘버스 납치 사건’ 도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다. 강도들이 버스째 납치해 사람들의 돈과 물건을 몽땅 털어갔다고 한다. 특히 외국인은 돈이 많으니 샅샅이 뒤져 가는데, 아예 외국인이 많이 탄 버스를 노려 대담하게도 길 한복판에서 강도짓을 한다고 한다.

나같이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게도 가져갈 것이 있나? 여행책자와 카메라, 돈, 여권…. 생각보다 부자다. 가난한 인디오들에 비하니 배낭 여행자인 나조차도 부자가 된다. 순간 가난한 강도를 만나 뺏긴들 어떠리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나스카 라인 -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나스카에 도착했다. 어릴 적 책에서 본 들판에 그려진 수수께끼 같은 그림들.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일컬어지는 나스카 평원. 리마에서 오는 고속도로 중간에 내려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싼 호텔을 추천받았다. 짐을 풀자마자 샤워할 틈도 없이 나스카 라인 투어를 하라고 현지인들이 방문을 두드린다. 여행객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투어비로 먹고 사는 이들이니 뭐라 말할 수도 없다.

오는 길에 만난 외국인 여행자들은 벌써 투어를 계약해버렸다. 나스카 라인 투어가 50달러인데 그런 큰 돈을 주고 투어를 따라나서기가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Muy calro, discuento, por pavor.”(너무 비싸요. 깎아주세요)

“No problema.”(문제없죠)

40달러에 흥정. 그것도 솔직히 비싸 나중에 좀더 생각해본다고 했다. 몇 안 되는 여행사를 다니면서 좀더 싼 투어를 찾아보고 저녁 늦게야 들어오니 여행사를 결정했냐고 호텔 데스크의 아저씨가 물어온다. 흥정 끝에 절대 비밀이라며 호텔에 아침식사까지 모두 합쳐 25달러에 합의.



1939년 마추피추보다 28년 늦게 발견된 나스카 라인. 잉카 이전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나스카 문명의 그림들은 신기하지만 하다. 누가 그렸을까? 외계인설과 황도를 따라 드렸다는 설이 있지만 사막에 있지도 않은 꼬리 긴 원숭이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는 우주복을 입은 사람, 삼각도형들…. 바제타 섬 칸데브라의 촛대 문양의 선을 이으면 나스카까지 일직선으로 만난단다.

경비행기의 울렁거림은 바이킹과는 비교도 안 된다.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롤로코스터 백 개쯤을 합쳐놓은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남미 조종사는 장난기가 발동해 일부러 비행기를 아래위로 흔든다. 같이 타고 있던 영국 친구 메리는 남자친구 품아 안겨 창밖을 볼 생각도 안 한다.

“메리, 눈 떠. 창밖에 저 그림들 좀 봐.”

“몰라. 나스카고 뭐고 난 지금 살아서 땅에 내려가기만 기도할 뿐이야.”

곡예하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니 벌새, 거미, 도마뱀 등 여러 가지 무늬가 그려져 있다. 외계인이 그린 것일까? 진실은 정녕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스카 라인은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해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이다.

- 쿠스코? 쿠스코! -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32시간 동안 먼지 풀풀 나는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쿠스코(Cuzco)에 도착했다. 중간 중간 화장실 때문에 무척이나 고생했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고생한 기억은 싹 달아나고 드디어 쿠스코에 왔다는 기쁨만 앞선다.



내리자마자 조금만 걸어도 금방 숨이 차오른다. 시장을 둘러보니 잎사귀 같은 것을 많이 팔고 있는 데 바로 코카잎이다. 한 다발 사서 질근질근 씹고 다니니 과연 효과가 있는지 고산증세가 많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별 다를 것이 없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생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고산지대라 밥이 잘 되지 않아 한참을 물을 붓고 불을 조절한 다음 겨우 해냈다. 그런데 고생한 보람도 없이 쌀이 설익고 죽밥이 되어버렸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압력이 높아 밥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몰라 멋진 저녁식사가 수포로 돌아갔다.



저녁에 시장을 돌아다니다 현지인들이 북적대고 있는 허름한 술집을 발견했다. 어디든 현지인들이 북적대는 식당이며 술집에 제일 값싸고 맛있는 곳이다. 막걸리처럼 보이는 분홍색과 노란색의 전통 술을 팔고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맛있다고 적극 권해줘서 한 모금 맛보았다. 평소 술을 좋아해 세계를 여행하며 그 나라의 술은 다 마셔보는데 이런 막걸리 같은 맛은 처음이다. 옥수수로 빚은 ‘차차’ 라는 술은 페루의 대표적인 술이라고 한다. 무너져가는 술집에 현지인들이 몰려들어 술 마시는 나를 보고 킥킥 웃는다.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한 잔 더 주세요.”

그러자 자기들끼리 또 킥킥거린다. 웃음이 헤픈볼이 빨간 사람들. 이들이 권하는대로 사양 않고 꿀꺽꿀꺽 마셨더니 모두들 박수치고 좋아라 웃어댄다. 3잔을 마셨더니 3,600m 고지대에서 마신 술이라서인지 평소보다 더 일찍 취했다.

- 숨겨진 공중도시 마추피추 -

드디어 잃어버린 고대 잉카 도시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울란바이람보(Ollantayllambo)로 갔는데 길에 돌이 깔려 있고 길 밑으로 하천이 흐르는 잉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여행객이라고는 한 명도 없이 이틀 동안 편안히 인디오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마추피추로 가려면 여기서부터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기차 삯이 너무 비쌌다. 외국인과 현지인의 요금이 하늘과 땅 차이다.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드디어 도착한 맞추피추. 잉카 문명이 가장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는 신비의 이 도시는 현대인의 모험욕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다.

어릴 적 방송에서 본 황금의 나라, 미라에 황금을 발라 보존하고, 신비의 새 콘도르를 타고 다니던 그 이야기가 실제 존재한다니 정말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마추피추로 한 발짝 다가갈 때마다 어디선가 콘도르가 나타날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니 관광지답게 학생증을 제시하라고 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득 차 있던 환상이 사라졌다. 남미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곳인 마추피추는 ‘Lost of the Incas' 라 불린다. 이곳은 미국 역사학자인 히람 빙험이 1911년에 발견했다.



안에 들어서니 작은 바위 집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고, 그 사이 수로가 있다. 집들이 아주 작지만 목욕탕 시설도 있다. 당시로선 아주 놀라운 시설이라고 한다.

맞추피추는 베일에 싸인 고대 도시다. 발굴 당시 발견된 미라들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사실도 이 도시를 연구하던 사람들의 머리를 갸웃하게 했던 부분이다. 당시 태양신을 섬기던 여사제들이 아니었을까 추정되는 이들은 잉카문명의 전설적 도시 맞추피추와 운명을 같이하며 스페인 침략자들을 피해 죽음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험난한 2,000m 고산 속에서 세워진 요새 같은 도시, 마추피추. 왜 잉카 사람들은 이런 곳에 도시를 건설했고 또 이런 위대한 문명이 단 몇 명의 스페인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수백 년간 잊혀진 도시가 되었을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요, 신비로울 뿐이다.

한때 쿠스코의 전성기 때는 수천 명에 달하는 처녀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잉카인들은 성처녀들을 태양신의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다고 하니 마피추의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여행자의 피를 자극한다.

수백 년간 잊혀져왔던 신비의 공중 도시, 마추피추는 그 영광의 흔적이다. 마추피추의 유적들은 신비로운 성처녀들의 전설과 함께 흥미를 더했다. 밑에서 보면 밀림과 구름에 휩싸여 그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마추피추. 깎아지른 절벽 끝에 새워진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고대 도시의 몰락을 보며 느낀 감동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 물 위에 뜬 섬, 우로스 -

드디어 쿠스코에서 푸노(Puno)에 도착했다. TV에도 방영된 적이 있는 떠 있는 섬 우로스(Uros). 쿠스코에서 푸노까지 오는 동안 풍경이 아름답다고 소문나서 일부러 고산 기차를 탔건만 별 재미가 없었다. 기차가 정차하는 동안 먹거리를 팔러 뛰어오는 정겨운 인디오 아주머니나 과자를 쥐고 기차에 오르는 까만 눈의 꼬마 같은 정겨운 풍경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여행객은 따로 기차를 타므로 안전하지만 페루인의 실제 삶을 체험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토토라는 갈대로 뒤덮인 ‘떠 있는 섬’ 우로스는 자연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로도 유명하다. 볼리비아와 페루에 걸친 3,800m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우로스 섬은 꽤 특이한 관광지다. 스페인군에 쫓겨온 우르족이 갈대로 섬을 만들어 숨어 지낸 곳이다.

우로스 섬은 전체 길이가 500m도 안 되는 작은 섬이지만 교회와 학교, 가게, 전망대 등 필요한 건 다 있다. 썩고 썩어 이제는 5~15m까지 발이 쑤욱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글/강영숙(여행 전문가)>

- 페루는 이런 나라 -

우리나라에서 곧장 가는 비행기표는 2백만원 정도지만 볼거리가 많고 하루 생활비가 15달러밖에 안 드는 여행지다(숙박 3~5달러, 음식 3~8달러, 교통 2달러). 페루는 90일 무비자국이며, 예전과는 달리 국경 관리인들도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수도 리마에서만 조심한다면 치안도 그다지 문제가 없다.

안데스 산맥을 10시간 이상 지나다녀야 하는 페루의 교통은 아주 좋은 편이다. 북쪽 지방에서는 주로 버스를 이용하고 남쪽 지방은 기차를 이용한다. 하지만 관광객용과 현지인용의 기차가 구별되어 있어 기차여행은 별 재미가 없다. 자주 출발하고 운행 시간이 정확한 편이다. 요금은 대략 정해진 있지만 버스회사간 경쟁이 심해 흥정이 가능하다.

인터넷은 1시간당 2.5달러로 10분이면 한글을 다운받을 수 있다. 외국인 숙소 근처 인터넷 카페나 외국인이 많은 호텔 등 숙소 로비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수도 : 리마(Lima)
언어 : 스페인어
날씨 : 동절기 5~11월, 하절기 12~4월. 해안지대는 온난다습. 산악지대는 우기(11~3월)와 건기(5~10월)로 구분. 밀림지대는 열대성 기후로 고온다습.
환율 : 1달러=3.5솔(Nuevo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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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저수지 철새지도 바뀌었다
기사입력 : 2005.02.14, 18:09

영남지역 최대 철새도래지인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의 철새서식지도가 바뀌고 있다. 저수지 수위와 주변 먹이 공급처 면적이 철새 대표종(種)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주남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등 환경단체들은 지난 1980년 이후 25년간 주남저수지에서 월동중인 대표철새가 가창오리에서 큰부리큰기러기,쇠기러기 순으로 바뀌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지난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주남저수지의 대표 철새는 단연 가창오리였다. 저수지 인근 3∼4㎞내 논에 벼의 낱알이 풍부해 1990년의 경우 최고 5만여 마리까지 월동했다. 그러나 1992년 이후 이곳 논이 유리온실과 비닐하우스,축사,공장 등으로 바뀌면서 그 수가 서서히 줄어들어 올 겨울에는 겨우 300∼400마리만이 이곳을 찾았다.

큰부리큰기러기는 1993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매년 5000여마리씩 이곳을 찾아와 저수지의 대표종이 됐다. 하지만 올해는 기껏 200∼300 여마리만 보일 뿐이다. 높아진 저수지 수위가 큰부리큰기러기를 떠나게 한 결정적인 이유다. 주로 30∼40㎝ 가량의 낮은 수심에 있는 수초뿌리를 먹이로 하는데 최근 2∼3년 사이 수심이 2뻍까지 깊어지자 먹이찾기가 쉬운 창녕 우포늪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쇠기러기는 10년전보다 2배 가량 늘어나 올해 3000여마리가 월동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벼의 낱알을 주로 먹지만 수만마리씩 군무를 이루는 가창오리떼와 달리 소규모로 월동하기 때문에 인근 소규모 논들이 먹이 공급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환경단체들은 분석했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저수지 수위와 먹이 공급처 감소는 물론 저수지 내에서의 불법 어로행위도 철새 개체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면서 “실제로 저수지를 찾는 겨울철새의 예년 평균 개체수는 6만여마리였지만 최근 5년 사이 1만여마리 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달 들어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 70여마리와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 3마리가 주남저수지에서 월동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생태사진작가 최종수씨는 “한 곳에서 흑두루미와 재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은 강원도 철원과 주남저수지 두 곳밖에 없다”고 말했다.

180만평 규모인 주남저수지는 10월중순부터 이듬해 3월말까지 20여종의 철새들이 날아들고 있으며, 하루 평균 탐조객수만 500∼5000명에 이른다.

창원=윤희각기자 hgy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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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니라는 도시,,,, 
 이름: realist(211.208.98.175)  조회: 578  리플수: 3  추천점수: 10  작성: 02/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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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00년전과 오늘
2005-02-04 10:01 | VIEW : 18,421
1. 서울 성벽에서 남대문을 바라본 풍경


왼쪽 사진은 1904년 조지 로스가 촬영한 사진으로 남산 초입의 성벽에서 남대문을 바라본 풍경이다. 사진의 하단을 보면 어떤 사람이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남대문까지 걸어가기가 귀찮아서 성벽을 넘고 있다. 중앙에서 윗 부분을 보면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은 미국 선교사인 호레이스 G.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지어 1904년 완공한 건물이라 한다. 이 때의 대부분의 집은 초가로 ㄷ자나 ㄴ자 모양이다.

2004년 11월 28일, 촬영한 사진을 보면 서울 도심의 빌딩이 막혀 인왕산, 북한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보수한 성벽, 옛 성벽이 있던 자리는 콘크리트 옹벽으로 변했고, 로또 광고탑, 주차타워 이 시대의 주요 운송수단인 자동차가 보인다.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11살, 15살 아이들이다. 다만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만이 옛 흔적을 말해준다.


2. 남대문 풍경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진가 조지 로스는 근대화의 여명기인 1904년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조지 로스의 남대문 사진을 보면 2층 한옥 건물이 보이고 앞쪽으로 상점주인이 사는 기와집이 보인다.  아래쪽 그늘진 곳에는 행인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다. 당시에는 남대문을 통해 전차가 다녔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백립을 쓰고 있는데, 이는 순종비의 국상기간이라 그렇다.

2004년 11월 28일, 이곳의 기와집들은 모두 헐리고, 남산방향으로 이어진 성곽 대신 백범광장과 남산으로 오르는 넓은 도로가 들어섰다. 100년 전 사람들의 의상이 단순한데 비해 지금은 겨울의 초입임에도 짧은 미니스커트와 세련된 의상이 눈길을 끈다. 일상화된 핸드폰, 밤에 도 남대문을 밝혀주는 조명장치, 관광버스, 시내버스, 승용차의 모습, 하늘을 가리는 고층빌딩이 21세기 거대도시 서울을 말해주고 있다.


3. 동대문 풍경


1904년의 사진은 성벽 위에서 찍은 것인데, 뒤쪽 동대문운동장 방향으로 성벽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종로를 지나온 전차 선로가 동대문을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뒤쪽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전차에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것이라 고 한다. 동대문 오른쪽 뒤편으로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전차 회사의 부속 건물과 전차 운영을 위한 사무소로 보인다고 로스는 전하고 있다.

2004년 11월 28일, 동대문(흥인지문)은 보수공사중이였다. 아이들이 서 있는 곳은 가정집이라 성벽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깔끔하게 보수된 성벽은 낙산으로 이어지고, 북한산으로 이어진다. 1904년의 주요 운송수단이 지게, 말, 전차 등인데 비해 지금은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지하철, 버스, 승용차, 화물차로 대체되었다. 앞으로 100년 후에는 어떤 운송수단이 주를 이룰까 궁금하다.


4. 서울 탑골공원 풍경


1904년에 촬영한 조지 로스의 사진을 보면 원각사탑 뒤로 남산과 1898년에 세워진 명동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의 오른쪽을 보면 탑의 상층부 3층이 바닥에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1946년 2월 17일과 18일 양일간에 걸쳐 당시 한국에 진주해 와 있던 미군(美軍) 공병대에 의하여 기중기로 위로 올려져 원래의 형태를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2004년 11월 28일, 원각사탑은 박제동물처럼 유리관에 싸여있다. 거대 도시의 대기오염이 가져온 산성비, 비둘기의 배설물로 손상이 심해 1999년 통유리관으로 둘러씌웠다. 서울 도심의 빌딩숲에 가려 명동성당은 커녕, 남산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어 갑갑하다. 2004년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15세의 아이들이다.


5. 서울 탑골공원 대원각사비


이 대원각사비는 세조 재위(1471년)시에  원각사 창건 내력을 적은 비석이다. 원각사는 불교배척 정책을 폈던 연산군에 의해 원각사는 1504년에 폐사되었다.
비문의 앞면은 김수온(金守溫)·성임(成責), 뒷면의 추기는 서거정(徐居正)·정난종(鄭蘭宗)이 각각 짓고 썼다고 한다.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거북)는 땅(음)을 상징하고, 비신의 머리 즉 이수(용)는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2004년 11월 28일, 대원각사비는 전각안에 모셔져 있고, 귀부는 땅에서 60cm 정도 아래에 있다. 이는 탑골공원을 정비하면서 지면을 돋우었음을 말해준다. 탑골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그대로이나 그 뒤 기와집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건물로 대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깨비뉴스 독자 = 김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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