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입니다. 무명의 신인 작가에게 이렇게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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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금요일에 제 첫 책이 나왔습니다. 데뷔작입니다. 제목은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입니다인문·사회 분야에서 상당한 내공의 책을 펴낸 <여문책>에서 나왔습니다.

 

이 책은 제 겁 없는 사랑을 다루는 일종의 인문 에세이입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권력과 혁명, 이념과 사상, 그리고 역사의 진보를 사랑합니다. 제 사랑이 좀 특이하죠?

 


겁 없는 젊을 때 아니면 절대 쓸 수 없겠다 싶어 만사를 제쳐두고 제 공부, 경험, 생각을 352페이지에 눌러 담았습니다. 가급적 흡입력 있게, 생동감 있게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소감은 일단 얼떨떨합니다. 행복하구요, 또 두렵기도 합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오래된 음악 취향을 들킨 것처럼요! 가급적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길 소심하게 바라면서 말이지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3월에 입대할 예정입니다. 스무 살에 세운 목표가 서른이 되기 전에 내 이름으로 된 논문과 책을 각각 하나씩 선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제 이십 대의 존재증명이자, 군 복무 중일 19개월 동안 저의 부재를 대신해줄 책입니다. 그래서 절대 부끄럽지 않게 썼습니다. 그것 하나 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어떤 책인지 궁금하실 것 같아 책의 목차저자소개문을 함께 담습니다책은 특히 초반에 기세를 잘 타야 한다고 합니다저에게 기를 불어 넣어 주세요주변에 입소문 널리 내주시고구매공유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은 언제든 환영입니다잘 깎은 문장으로 찾아가겠습니다잘 익은 생각을 선보이겠습니다.






    


구매링크는 아래에 있습니다.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6771314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86019317?scode=032&OzSrank=1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87700357&orderClick=LET&Kc=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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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20-01-10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축하합니다 역쉬!

프리즘메이커 2020-01-10 18:16   좋아요 1 | URL
재밌게 읽어주세요!!

2020-01-10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20-01-10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프리즘메이커 2020-01-10 20:40   좋아요 0 | URL
북프리쿠키님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0-01-10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즘 메이커님 축하합니다^^:)

프리즘메이커 2020-01-10 23:55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포스트잇 2020-01-10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기분좋게 솔직하고 순수한 영업(?)을 오랫만에 보네요 ^^
사서 볼게요. 축하합니다. 청년.. 부러워요.

프리즘메이커 2020-01-10 23:56   좋아요 0 | URL
포스트잇님 감사합니다! 원래 사회초년생은 발로 뛰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패기를 높게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20-01-11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놀러와서 글을 읽을 때마다 평범한 알라디너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말 축하드립니다!!

프리즘메이커 2020-01-11 13:56   좋아요 0 | URL
칭찬해주시니 부끄럽네요 ㅎㅎ 책은 정말 꾹꾹 눌러담아서 알차게 썼습니다!! 제 책과 즐거운 시간 보낸다면 저자로서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입니다!!

waterguy 2020-01-11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프리즘메이커 2020-01-11 13:57   좋아요 0 | URL
waterguy님 관심 가져주시고 축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stella.K 2020-01-11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똑 떨어지는 글이네요. 부럽습니다.
전 이렇게 쓸 생각도 못 했는데 오히려 부끄럽네요.ㅠ
이제 시작입니다.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프리즘님께서 책을 내셨다는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 기쁨도 온전히 프리즘님 것이구요.
그 마음으로 계속 좋은 책 써 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수고하셨구요, 축하합니다.^^

아, 근데 이벤트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보통 첫 책은 이벤트를 해야 다음 책도 잘 된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던데...ㅋㅋㅋㅋㅋㅋ

프리즘메이커 2020-01-13 03:10   좋아요 0 | URL
stella.K님이 알아주셨으니 된 것입니다!! 출간기념회를 열까는 싶은데 제가 부산이 거점이라 이게 장소 선정이 골치가 아프네요 ㅎㅎ 정말 감사합니다!!

Comandante 2020-01-16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지척입니다^^ 응원합니다~~!!

프리즘메이커 2020-01-16 20:48   좋아요 0 | URL
응원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스물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제 이십 대도 얼마 안남았네요. 그래도 다시 십 대나 이십 대 초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만큼 살아냈으면 됐다 싶어서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주변에서 많이들 도와준 덕입니다. 이것을 어찌 다 갚을까요.


1월 10일에는 제 첫 책이 나옵니다. 내일 최종심만 어떻게 잘 넘긴다면 2월에는 아마도 정치학 석사라는 학위가 하나 생기겠지요. 그리고 3월 중에 육군 정훈병으로 미뤄둔 입대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 한다고 계획했던 것들을 얼추 끝내갑니다. 이제 남은 제 이십 대 2년은 미뤄둔 숙제를 하러 갈 차례입니다. 제 얼마 안남은 이십 대의 자유를 담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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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1-03 0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즘메이커님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16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초딩 2020-01-03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축하드립니다!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17   좋아요 0 | URL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비연 2020-01-03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17   좋아요 0 | URL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blanca 2020-01-03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알차게 보낸 한 해로군요!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18   좋아요 0 | URL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학위도 받고, 책도 내고 결실을 낸 한 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1-03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2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좋은 덕담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출간이 전환점에 서 있는 제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음 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수연 2020-01-03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출간 축하드립니다! :)

프리즘메이커 2020-01-04 00:21   좋아요 0 | URL
수연님 감사합니다!! 올 한 해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쓰고 있는 책의 원고가 교정작업에 들어갔다. <여문책>에서 내 첫 책이 나올 예정이다. 20대 청년의 눈으로 세상과 고전을 읽는 일종의 인문 에세이다.
 
책을 내면서 많이 배운다. 책 한 권에 글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책 한 권 나오는데 여러사람의 상당한 노동이 들어간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 책을 읽기만 할 때는 전혀 몰랐었다.
 

편집 과정에서 지적해주신 내용이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나의 잘못된 글쓰기 습관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논문을 쓰다보니 번역투가 옮아 간 것들이나, 불분명한 표현들을 잘 잡아주셨다.
 

스무 살의 목표는 딱 두 가지였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내 이름으로 된 논문 한 편과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 대학원 휴학을 하면서 원고를 써 작년 여름에 출간계약을 했고, 이제 고지가 눈 앞에 있다.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정말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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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부대문학상 단편 소설 부문 출품작입니다. 아쉽게 최종심에서 낙선하였습니다. 

생애 처음 쓴 소설인데, 좋은 심사평을 받은 거로 만족합니다. 부족한 글을 올려봅니다.





01.



원호와 민수는 대학 전공수업 조별과제를 통해 우연히 만났다. 원호는 철학과에서 전과를 했고, 민수는 옆 학교 출신 편입생이었다. 소속을 바꾸는데 이십 대의 전반부를 쏟아부었던 이 전과생과 편입생은 늦깎이면서 동갑내기였다. 텃새가 강한 과로 옮겨온 터라, 서로를 알아보고 짝을 짓는 데는 그다지 큰 노력이 들지 않았다. 대학이 좋은 점은 불편한 사람과 강제로 짝지어주는 담임 선생님이 불필요하다는 데 있었고, 이들은 그 사실에 안도했다. 굴러온 돌에게 대인관계의 자유란 그저 소극적으로 행사하는 게 가급적 좋다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더 먹은 나이가 본능으로 알려준 터였다.

 


원호와 민수는 어차피 학과의 성골(聖骨)은 되지 못했다. 그들의 자의식은 철저한 6두품이었다. , 자신들에게 주어진 위치란 학과를 겉돌다 스쳐 가는 외곽일 뿐이라 믿었다. 그러나 혼혈의 세계에도 위계는 있었다. 원호와 민수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바깥 세계의 주축이 되었다. 비슷한 처지의 학생 몇몇이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원칙에 따라 연장자인 그들 사이에 부록으로 딸려 들어왔다.

 


굴러온 돌 무리에도 나름의 관습법이 생겨났다. 일단은 낯선 이들과의 조별과제가 주는 독강의 공포감이 수업 시간표를 같게 만들었다. 수업의 여집합은 공강이었으므로 허기가 돌 때마다 옆 사람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명시적으로 밥 약속을 잡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떼밥은 일종의 암묵적 관행이자, 혼밥의 초라함과 밥 약속 잡는 데 낭비될 시간으로부터 자존심을 지켜줄 '식사 동맹' 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맹의 역할은 확대되었다. 그들은 예비군 훈련도 같이, 시험공부도 함께했다. 함께(com) (pan)을 먹던 시간이 벽돌이 되었고, 그 벽돌에 잔정이 달라붙더니 마침내 우정이라는 교량이 착공되었다.

 


새 학기의 첫 달은 오로지 적응에만 심력을 쏟았다. 숨만 쉬어도 남들보다 두 배의 눈치가 쓰였으므로, 시시각각 졸음이 쏟아졌다. 고작 겨우 몇 살 더 많았을 뿐인데, 노쇠해진 신체가 자신을 탓해달라 가쁘게 울어댔고, 그때마다 원호와 민수는 젊음의 3대 명약이라는 카페인과 니코틴, 알코올을 찾았다. 담배는 일과의 경계를 쪼개주며 낯선 이들과 소소한 일회용 친목을 가져다주었다. 카페인은 내일의 힘을 저리(低利)로 대출해줘 육신의 피로는 무디게, 정신의 집중력은 맑게끔 융통해주었다.

 


무엇보다 공원 개천 돌다리에 앉아 마시는 술이 최고였다. 카페인으로 깨운 정신은 알콜로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육림은 없었으나 단돈 3천 원에 편의점은 캔맥주를 알선해주었고, 맥주는 대충 깔린 신문지 두어 장 위에서 용량껏 기막힌 접대를 선사했다. 알콜이 적당히 분위기를 돋우면, 감정의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쉽게 신세 한탄이나 앞으로의 포부 따위를 우스갯소리를 섞어 말할 수 있었다. 과연 술의 장점은 역시 대화의 중간 과정을 생략해주는데 있었다. 내면을 조금씩 들출 때마다 원호와 민수는 자신들의 초라한 경력처럼 짧은 우정에도 죽마(竹馬)가 달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우린 다 잘 될거야"

 


가벼운 술자리가 파하고 각자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원호는 항상 나지막이 주문처럼 긍정의 복음을 외우곤 했다. 민수는 그 말이 자신에겐 너무나도 낯뜨거워 그냥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지만, 내심 그것이 꽤 긍정적인 기분을 불어넣는 것 같아 이따금 속 발음으로 조심조심 그 말을 따라했다. '그래, 잘 될거야.' 그러면서도 괜시리 혹 누가 엿듣는 것은 아닌지 주위를 재빨리 살피며 걸음을 재촉했다.

 

 


02.

 

 

원호는 학과 생활에 쉽게 적응했다. 잘생긴 외모에 외향적인 성품을 가진 덕에, 원호는 타인의 호감을 쉽게 얻는 방법을 깨우쳤다. 넉넉한 집안이 부족함 없이 자신을 뒷받침하는 터라, 그에게선 이십 대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나는 특유의 조바심 대신 마음의 여유가 풍겨나왔다. 원호는 "입보다 지갑을 열라"는 너스레 섞인, 영남지방 유서 깊은 가문의 부계에서 유전된 생활신조를 곧장 실천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자신 사이의 어색함은 오직 밥이 허물어준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솜씨와 붙임성이 일품이었던 원호의 밥은 곧장 상대방의 '보은 커피'를 이끌어냈다. 아니 원호는 상대방을 아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고 말하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상대방이 커피건 술이건 매달리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를 쉽게 좋아했고 어렵게 싫어했다. 그래서 원호에겐 언젠가 뭐든 크게 한 건 할 것 같다는 평판이 뒤따랐다. 원호를 보면 자신감이라는 감정조차도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반면에 민수는 나쁜 의미로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무난했고 나쁘게 말하자면 존재감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민수는 어떤 위치를 자처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를 가든 무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는 잘 쳐줘야 누군가의 분신이나 그림자였다. 민수는 수더분했고 내성적이었으며, 쉽게 당황해서 종종 말을 더듬었다. 특히 자신감과는 영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민수를 떠올리는데 꽤나 어려움을 겪었다. 흔한 이름에 차림새나 맵시도 특출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민수의 존재가 부각되기 위해서는 한참의 뜸이 필요했다. 그러나 '원호 친구'라 단서를 달아주는 순간 곧바로 회로에 번갯불이 들어와 민수의 존재가 호명(呼名)됐다. 원호는 항성처럼 독자적으로 존재의 빛을 내뿜었으나, 민수는 위성처럼 관계 속에서만 겨우 존재할 수 있었다. 민수는 당차지 못한 자신이 영 맘에 들지 않았으나, 막상 집중된 관심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삶에 안도했다. 민수는 항상 자신이 이율배반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때때로 돋보이고 싶었지만, 돋보여 얻는 후광에 몸서리 치는, 오지도 않을 상상의 영광으로도 스스로 떳떳지 못해 그늘을 찾아 몸을 숨기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민수였다. 민수는 군중의 일부였으나, 군중의 시선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학과에 완벽히 녹아든 원호는 귀가 밝고 발도 넓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는 귀담아들을 만한 정보를 그냥 들려주곤 했다. 그는 이제 호의를 무료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정보에 대한 답례라곤 고작 "고마워. 나중에 커피나 한잔하자!" 한마디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원호의 웃는 표정과 기분을 샀다. 원호는 연기가 늘어 대충 고마워도 진심인 것 마냥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민수에게 남과 단둘이 이야기한다는 행위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중대사에 해당했다. 민수는 의전과 예식에 과하게 마음을 붓는 사람이었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먼저 과하게 잘해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상대방과 해야 할 말을 미리 고르고 연습해야 했으며, "나중에 커피나 한잔하자"라는 말을 듣거든 그것이 빈말일지라도 꼬박 반나절은 달력을 보며 고민했다. 어디서 만나 어느 메뉴를 시켜 어느 자리에 앉아서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할지 로봇마냥 입력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타인과의 텅 빈 약속을 홀로 자신과 조율하곤 했다.

 


당연하게도 커피나 한잔하자던 그 언제는 민수에게 좀처럼 오지 않았다. 적어도 민수의 세계에서는 약속과 빈말은 동의어였다. 민수는 빈말과 진담을 잘 구분하지 못했고, 항상 의례적으로 던지는 인사치레용 빈 볼에 풀스윙을 날리곤 했다. 약속이라는 운동장에서 민수는 형편없이 낮은 타율의 후보 타자였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했던 민수는 그 관계 속에서 항상 빈곤했다.

 


인정이 고플 때마다 어떻게 주린 가슴을 달랠 수 있는 것인지, 민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따금 차라리 그것이 자격증이나 면허 같아서, 학원에 성실히 나가 열심히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길 바란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수다를 떨면서 다른 사람들의 소식에 대해 떠들다가도, 민수가 다가갈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입을 닫곤 했다. 원호에겐 접근의 자유가 있는 공간이 민수에게는 기밀 딱지가 붙은 비밀의 방이 되곤 했다.

 


그런 민수에게 항상 원호는 너무나 흔쾌히 곁을 내어주곤 했다. 원호는 대개 학과 내 소식이나 교수의 성향과 스타일 따위의 '고급 정보'를 제공했고, 민수는 학사일정이나 유머 사이트 베스트 게시물 따위의 성실성만 있다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식을 나열했다. 원호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었지만, 굳이 민수에게만큼은 꼭 "고마워 잘 알아둘게"라고 답했다. 내심 쉽게 주눅이 드는 민수의 기를 살려준다는 선의도 있었으나, 대개는 '널 챙기는 것은 나'라는 위선의 발로에서 비롯된 겉치레였다. 형식적 주권의 평등이라는 가녀린 위장막이 챙기는 쪽과 챙김받는 쪽의 비대칭 권력관계를 연약하게 가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학내 가십거리조차 쉽게 얻지 못했던 민수는 원호에게 그런 '고급정보'를 전해 들을 때마다 민수는 괜히 멋쩍고 황송해져서 "내가 커피라도 살게"를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매번 원호가 물가에서 사금을 주어오면, 민수 자신은 길가에서 폐지를 줍는 것만 같았다. 비교가 열등감과 손을 잡았고, '등가교환'이라는 개념으로 민수의 내면에서 열등감의 곰팡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민수는 심적인 후달림을 해소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원호에게 건네는 커피 따위의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벌충하려 했다. 원호에게 줄 이유 없는 선물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려 할 때마다, 민수는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 이런 것인가 하고 자각하곤 했다.

 


민수가 마련한 식사자리에서 원호는 마치 혁명 집단의 수뇌가 된 듯 일장연설을 하곤 했다. 그는 한국의 정치현황부터 시작해서, 구직 시장의 트렌드, 학과 내의 치정 관계에 이르기까지 인간 세상의 대소사를 가감 없이 말했다. 그것은 철저히 밀담이었으나, 민수에겐 전율을 일으키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이따금 민수는 원호의 말이 미심쩍기도 했다. 그러나 분위기를 해칠 발언의 진위 여부 따위는 그렇게 중요치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배당된 특별한 느낌, 영혼의 동업자가 되었다는 느낌, 그것에 민수는 마음을 사로잡혔다. 원호와 함께 있노라면 그는 작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소심한 우물 안 세계의 위대한 위인전. 마르크스에게 엥겔스가, 카스트로에게 체 게바라가 있다면, 원호에게는 민수가 있었다. 후대는 그렇게 전하리라.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34로 시작하는 새내기들은 우리를 학과의 '전설'로 기억하리라. 원호는 위대했고, 민수는 훌륭히 그를 보좌했노라. 민수는 그 헛된 상상의 기쁨에 사로잡혀 시종일관 원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원호가 민수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이유는 그저 민수가 자신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못한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원호에게 민수란 국가기밀을 빼돌려도 절대 발설하지 않을 만큼 나약한 상대였다. 오히려 민수라면 기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 밤잠을 설칠 그런 종류의 인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장난 수신기를 가지고 있던 민수는 그 신호를 원호가 최측근에게 베풀 수 있는 '최혜국 대우'라 느꼈다. 모두가 좋아하는 원호의 속내를 아는 유일한 내부자가 된듯한 별 것 아닌 특별함. 내심 학창시절 수학여행 관광버스 맨 뒷자리를 점령한 잘나가는 친구들의 일원이 된듯한 특별함. 그들에게 담배를 조공하고 화장실의 한편에서 어깨를 피고 다니던 끄나풀의 권력. 그것이 유치하다고 여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늘 잘 나가는 울타리를 선망했던 초라한 자신.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빛나는 것만 같은 원호의 존재. 원호가 가끔식 던져주는 공치사(空致辭). 민수의 경우를 보면, 착각이란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하는 것이었다.

 

 

03.


민수가 그런 특별한 우정 따위가 사실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깨닫게 된 순간은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뀌고 나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것에 시간을 쏟는 나이가 지나버려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철없는 때가 있듯이, 그때의 민수는 원호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살아오면서 그에게 그만한 친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민수는 원호 옆에만 있노라면 세상만사가 다 간결해졌다. 불안한 마음도 쉽게 안심이 되었고, 원호가 쏟아내는 말의 청산유수에 자신이 고무보트로 급류타기를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민수는 원호에게 쉽게 위로받았고, 원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엇다. 원호의 얼굴에는 항상 미래가 그려져 있었고, 민수는 그 그림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기보다 선망했다. 자신은 감히 품을 수 없는 욕망이었으므로. 원호가 주로 말하는 쪽이었다면, 민수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사용하는 쪽이 있다면, 감탄사로 인지하는 쪽이 있었다. 그것은 항상 대화의 얼굴을 한 강의였다.

 


언젠가부터 민수는 자신이 자연스레 원호를 대장으로 여기고 있음을 발견했다. 원호와 민수의 친구 관계는 어느새 주종관계로 변하고 있었다. 평등한 우정과 불균등한 자존감 사이의 동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원호와 민수는 평소처럼 일과를 마치고 감자칩 한 봉지를 뜯어 맥주 한 캔을 곁들이고 있었다. 시원한 목 넘김과 함께 찾아오는 은은한 알딸딸함을 틈타 원호는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 앞으로 너 뭐 해먹고 살 거냐?"

 

민수가 쭈뼛거리며 답했다.

".. 글쎄..그게..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네.. 내가 잘하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에이 세상 뭐 별거 있다고. 그러지 말고 너 시험치자 나랑같이"

"무슨 시험?"

 

"로스쿨 어때? 남자로 태어났으면 크게 한 번 놀아봐야 할 거 아냐 짜샤. 번듯한 양복 입고 남들 존경받으면서 돈도 잘 벌고. 이 정도 대학까지 나왔으면 그런 꿈 꿀 자격 있지."

 


원호는 민수에게 사실 지난달부터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누구에게도, 심지어 여자친구와 부모님에게조차도 말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원호는 민수에게 자신이 준비하는 시험을 권했다. 그것은 단순한 권유에 불과했지만, 감히 거절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일었다. 원호를 실망시킬까봐, 혹여나 나약한 모습을 들켜 못난 취급을 당할까 조바심이 일었다. 한 인격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수는 고민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아니 그 순간은 기가 막히게 파고든 원호가 생각할 타이밍을 빼앗아 버렸다고 보는 쪽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원호는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힌 데.. 너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라고 민수를 능숙하게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인생역전의 시나리오를 쓴 한국 개천의 용들의 일대기를 무협지처럼 읊기 시작했다. 마치 원호는 벌써 이름난 대형 로펌에 취직한 중견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마디 보탰다. "우리. 먼저 붙는 사람이 꼭 도와주기다? 잘되는 사람이 꼭 도와주자. 다 잘될 거야." 원호는 '우리'라는 말에 습관적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원호 특유의 강조법을 표현하는 몸짓이었다.

 

 

04.

 


'감히 나 따위가 로스쿨이라니... 학점도 그렇고 토익도 별론데...'

 

민수는 자신의 합격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민수의 직관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헛수고가 될 것이라는 이성의 경고가 뭉게뭉게 마음속을 뿌옇게 어지럽혔다. 그러나 "다 잘될 거야"라는 원호의 말은 연막 속의 한 줄기 섬광 같았다. 민수는 어둠 속에서 빛줄기를 잡고자 했다. 그것이 구원의 동아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먹구름 위에서 원호가 밧줄을 내리고 있었다. 원호는 기적의 구세주였다. 민수는 원호의 응원과 원호의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욱하는 마음이 일었고 한 번 해보겠다 그답지 않은 자신감으로 말했다. "할게 시험."

 

 

사실 꽤 오래전부터 민수는 원호가 내심 자신을 깔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전에 누군가 원호에게 민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자 원호는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이렇게 답했다.

 


"민수? 착하지..”

 


문자 그대로만 보면 크게 나무랄 게 없었다. 그러나 착하다라는 말에는 사전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가 있다는 것을 민수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착한 것과 가격이 착한 것은 엄연히 뉘앙스가 달랐고, 민수는 자신이 후자의 착함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싸게 쓰다 버리기에 알맞다는 뜻이 아니던가? 원호의 인물평에 민수의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극도로 열이 오른 순간이 지나면, 어느새 원호를 이해하려 들고 있었다. 오히려 다시 쓸모있는 인간으로 인정받고자 동기가 잔뜩 부여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래서 때로는 원호가 자신보다 잘나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곤 했다. 자신이 원호 옆에 있어서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도 할 수 있어." 민수는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어느새 해야 한다로 얼굴을 갈았다. 민수가 요구받은 역할은 사실 원호의 '페이스 메이커'였다. 원호는 합격을 목적으로 공부했으나, 민수는 원호에게 인정받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 공부가 오래갈 리가.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여기서도 배역이 있었다. 원호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머리의 일을 맡고, 민수가 행동으로 완성하는 손발의 일을 맡았다. 원호가 스터디를 구하자 결정을 내리면, 민수는 스터디원을 구하고 스터디 장소를 예약하며, 프린트물을 뽑아오는 잡일을 맡는 식이었다. 시험 트렌드를 캐치하는 쪽도, 인터넷 강사를 추천하고 교재를 고르는 안목도 다 원호의 역할이었다. 고급정보는 원호에게만 찾아오니까. 그것은 공정한 역할 분담이라고 믿었다.

 


원호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민수를 꼬득였던 터라 자잘한 부탁을 많이 요구했다. 동생에게도 시킬 수 없는 잔심부름이었으나 부탁의 이름으로 하니 꽤나 그럴듯해 보였다. "이왕 준비하는 거 내것도 같이해줘." 원호는 이 말을 꼭 덧붙였다. "항상 고맙다" 원호가 '부탁하는' 잡일로 귀찮고 피곤할 때마다, 민수는 그것이 당연한 등가교환이라 믿으며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이따금 음료 진동벨이 오르면 "내가 받아올게!" 하고 후다닥 뛰쳐나가는 원호가 고맙고 듬직하기도 했다. 사실 그 둘의 관계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스터디 장과 스터디 원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대감과 머슴이었다. 속된 말로 조건없는 조건만남이라 표하면 적절할지 모르겠다.

 

 

 

05.

 


원호는 민수보다 빨리 배웠다. 사실 시험의 합격에 빨리 배우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정확히 배워 정확히 푸는 것이 중요하다. 어찌 됐건 뭐든 반복해서 숙달하는 루틴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빨리 배운다는 것은 소심한 사람에게는 기가 죽게 만드는, 심리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묘한 마력을 제공했다. 항상 가르치는 쪽이 원호였고, 나머지 수업을 듣는 쪽은 민수였다. 민수의 호승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던 터라 시험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매번 앞서가는 원호의 뒤꽁무니를 보는 일이 싫어졌다. 본래 약자가 자의식(自意識)을 갖는 순간부터 권력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했던가.

 


민수는 이제 사소하게 저항하는 법을 배웠다. 민수의 무기는 우울감과 무력증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을 달래러 오는 원호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수가 풀죽은 표정으로 그만두겠다고 말할 때 마다, 원호는 민수를 달랬다. "너 할 수 있어. 네가 네 잠재력을 몰라서 그래. 나랑 같이하면 돼. 계속하자.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면 아깝잖아. 야 그러지 말고 이따 맥주나 한잔하자." 알콜은 인간의 신체적 면역뿐만 아니라 심리적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효능이 있었다. 원호의 달램에 민수는 또다시 약해져 마음이 동했다. 민수는 특히나 '긍정의 복음'에 취약했다. 미래, 가능성, 정의(justice) 따위의 말에 쉽게 무장해제 되었다.

 


안마방이나 경마장에 가는 일탈이나 탈선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친구로서 공부를 열심히 같이해서 좋은 직장 얻어보자는 게 그렇게 나쁜 말인가. 불만이 수그러든 민수는 그럴 때마다 매번 자신의 '주권(主權)'을 원호에게 내어놓았다. 원호는 부드럽게 주권을 움켜쥐었고, 그때마다 민수는 불만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원호의 반복되는 타이름에 길이 든 민수는 시험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자의식의 방향은 자발적 복종을 향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험이 한 달도 채 남지 않게 다가오자, 강자의 자의식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름날의 무더위에 원호 또한 지쳐갔다. 장점이라고 할 수 있던 마음의 여유가 점점 줄어갔다. 시험은 능력과 노력이 행운을 만나야 가능한 것이지, 호기(浩氣)로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큰소리를 당당하게 쳤던 원호의 목소리는 점차 데시벨이 줄어갔고, 사소한 일에도 쉽사리 평정심을 잃곤 했다. 그때부터였다. 원호가 민수에게 손가락질하며 훈계하는 날들이 시작된 것은 말이다. 민수의 풀죽은 얼굴은 기능이 바뀌었다. 그것은 시간을 뺏는 저항의 무기라기 보다는 화풀이의 표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원호가 민수의 공부 자세를 꾸짖는 빈도가 늘어났다. 평등한 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태도를 나무랄 수 있었던가?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욕설을 비롯해 험한 말도 섞여 날아왔다. . 친할수록 욕설은 필수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원호는 민수가 게으르고 나태하다 했다. 자신의 늦잠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였으나, 민수의 낮잠은 의지박약의 증거라고 말했다. 원호의 지각은 불가항력이었으나, 민수의 지각은 벌금형에 처해야할 중죄였다. 민수가 조금이라도 무능함을 드러내면 원호는 남들앞에서 은근히, 조금씩, 그러다 아주 두드러지게 그것을 부각했다. 왜 맨날 같은 유형을 반복해서 틀리냐고 물었고, 공부하기 싫으면 때려치우라고 말했다. 깊은 한숨을 쉴 때마다 민수의 자존감이 풍화(風化)되었다. 너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거냐고. 나는 분명 그때 이렇게하라고 미리 일러줬는데 왜 말을 들어먹지 않느냐고. 친하게 지내줬다고 이젠 내가 같잖게 보이냐고. 너 표정을 보면 공부가 하기 싫다고 말이다. 니가 나 아니었으면 이 정도 까지 했을 것 같으냐. 나중에 뭐해먹고 살려고 그러냐. 피아니시모는 포르티시모로, 서서히 시작해 연달아 압박해 목을 죄곤 했다. 다 쏘아붙인 후에는 항상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나니까 너한테 그런 말 하는 거지. 너 아니었으면 그냥 모른 척하고 자기 공부에 집중할 사람이야 내가. 내가 뭐 자선 사업하냐? 다 너 잘 돼라고 하는 거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러나 실상 원호는 민수를 흠집 내어 자신의 불안함을 달랬던 것이었다. 원호는 자신의 무능을 숨기기 위해, 자식을 패며 권위를 확인하는 못난 가장처럼 굴었다. 잠이 많아지고 생활패턴이 흔들릴 때마다, 집중력이 떨어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마다, 결과가 불안해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시험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전화를 걸어 민수를 나무랐다. 전화를 빨리 받으면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빨리 받는다고, 늦게 받으면 늦게 받는다고 트집을 잡아 몰아세웠다. 원호는 속을 풀기 위해 자기와 같은 실수를 더 빈번하게 저지르는 민수를 책망했다.

 


그럴 때마다 민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수긍하고 납득하는 것 외에 별도리가 없다고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오래된 항복의 표시였다. 수긍과 납득 외에 딱히 뭐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말다툼하여 이길 자신도 없었고,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이 하자 많은 인간이고, 매번 실수하는 인간이기에,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겠거니 생각했다. 민수는 잘못의 출처를 정확히 확인하며 따지고 들기보다는, 빠른 납득으로 자신을 파먹었다. 파먹을수록 자신의 허기는 커져만 갔다. 늘 자신의 실수를 따끔하게 '보듬어 주는' 원호가 감히 자기가 더 불안해 그러는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유는 간명했다. 자신이 못났고 원호는 잘났으므로, 그것은 뒤바뀔 수 없는 성질의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명 따위에 거역하는 것은 힘만 들고 별 소득도 없는 일뿐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민수는 원호의 자신감이 흔들릴 때마다 깔봄 당하는 충실한 바닥의 기준점이 되어 주었다. '그래도 쟤보단 내가 낫지. 어휴 저 한심한 것' 사실 잘나 보이는 원호도 민수의 자존감을 훔쳐서 살고 있었다. 민수는 원호에게 의존했지만, 원호는 민수에게 기생했다. 주먹으로 하는 사랑이 있다면, 욕설로 표현하는 우정도 있으리라.

 

 

06.

 

 

원호와 민수는 사이좋게 세 번 떨어졌다. 원호는 간발의 차로 아쉽게, 민수는 보란 듯이 낙방했다. 로스쿨에 떨어졌어도 민수에게는 마음의 동요나 조금의 슬픔도 없었다. 원호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원호가 하지 못한 걸 자신이 해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원호는 이제 민수의 천장이었다. 동시에 민수는 원호의 바닥이기도 했다. 그들이 종목을 바꿨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꿨어야 하는 것은 친구였는데 말이다. 이 둘은 결코 같이 놀면 안 되는 사이임이 명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하지 않고 착취만 해서는 누구도 진보하지 못한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이자 관계의 법칙이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아무도 탈출하지 못하고,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떤 것도 잘되지 못했다. 잘된 사람이 없었으므로 도와줄 의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들의 우정 계약은 효력이 없어서 우정의 계급은 어제처럼 유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포장해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청춘을 땡처리하게 만들었던, 소박하지만 거대한 하나의 사기극이었다.

 


사실 원호는 민수보다 크게 나을 게 없는 인간이었다. 자신의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민수를 깔아뭉갰던 원호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원호가 철없던 시절에 잠깐 반짝했으나,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라기보다는 장거리 마라톤이었다. 관뚜껑에 못질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 승부를 모르는 세상에서 시작이 빠르다고 지나치게 주눅이 들었음을 지내다 보니 민수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민수는 원호가 자신과 똑같은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원호가 별거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 들통날 수록, 그에게 의지했던 지난날 자신의 인생과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초라해졌기 때문이다.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민수는 원호와 잠시 해외여행을 떠났다. 원호는 활기차게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며 입을 놀렸고, 민수는 "볕이 잘 들도록 쥐구멍을 파두겠다"며 우스갯소리를 덧붙였다. 나이에 넉살이 붙었지만, 이들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귀국하자마자 민수는 자발적으로 새로운 스터디 결성을 위해 모교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원호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민수는 이제 나름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베테랑 스터디원이 되어있었다. 스터디 만들기로 급여를 준다면, 성과급을 잔뜩 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19학번이 가득한 학교에 발을 들이니, 09학번인 자신의 존재가 다소 어색하고 낡게 걸려있는 것만 같았다. 지독하게 느껴지는 생기에 짓눌려 종종걸음으로 교정을 걷는 민수는 오늘따라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약속시간보다 항상 20분씩 일찍 준비해야 떳떳했던 민수는 오늘도 일찍 약속장소인 중앙 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근처를 서성이던 민수는 시험 준비하느라 한동안 연락이 끊긴 친한 후배를 우연히 마주쳤다. 후배가 민수에게 예의상 인사를 건네며 웃는 낯으로 물었다. "요새 뭐하고 지내세요?" 민수는 우물거리며 답했다.

 


"나 원호 준비하는 거.. 그거 같이 준비해.."

"? 원호 형? 원호 형이 뭐 준비해요?"

"..공무원"

 

"언제 커피나 한잔 하자


민수는 어색하게 후배를 흘려보냈다.



이제 민수도 아무렇게나 빈볼을 던질 줄 알게 되었다. 기약 없는 약속을 잡을 만큼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돌아서는 발걸음마다 웬지 모를 찝찝함이 묻어나왔다. “뭐하고 지내세요?” 근황을 묻던 후배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로스쿨을 준비하면 로스쿨을, 공무원을 준비하면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노무사면 노무사를 준비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청년실업이 대세인 세상에서 뭐 자기가 특별나게 유일무이한 백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민수는 자신의 도전에 떳떳하지 못했다. 자신이 자기 의지로 이 시험을 준비하고있다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또다시 원호의 이름을 빌고 말았다.

 


"부르르르-" 갑자기 민수의 오른 주머니에 진동이 울렸다. 이 진동은 민수가 또다시 자신의 삶을, 자기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성찰할 타이밍을 도둑질하고 말았던 것이다.

 


휴대폰 상단 알림창에는 7급 공무원 시험 접수공고가 떴다.

 


2019년 현재, 민수는 원호와 함께 네 번째 시험에 도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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