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커튼 한국추리문학선 16
김주동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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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일은 그냥 사고야."

"아니."

"나영아. 지금 넌 너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거야."

"그따위 분석은 그만둬. 항상 이런 식이지. 딴 사람 마음을 전부 다 안다는 식으로."

"누구 잘못도 아니란 얘기야."

p.9

그 어떤 위로도 아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슬픔의 관 안으로 아내는 스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게도 자신의 슬픔에 동참해주기를 바랐다. 자신의 관에 못을 박아달라고. 이런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고, 아내는 이런 나를 오해했다.

pp.33~34

"인간은 다른 인간에 대해 다 안다는 식으로 지껄이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

"무슨 소리야?"

"네 아내에 대해 얼마나 알지?"

"적어도 당신보단 더 많이 알지."

"그런가?"

p.95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었죠. 자기 자신을 믿게 하곤 상대의 비밀을 털어놓게 하는 인간. 그러면 그 사람은 박천정에게 약점이 잡히는 거고, 그 약점을 이용해서 그 사람을 자기 영향력 아래에 둔 거죠. 그걸 또 즐기는 인간이었어요. 미래파 안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내 교묘히 접근해서 이용하는 그런 작자였죠."

pp.185~186

김주동, <붉은 커튼> 中

+) 정말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었다. 문장이 간결체 위주라 읽기 쉽고, 스토리 자체가 흥미로워서 흡입력이 꽤 좋은 소설이었다. 책을 손에 쥐자마자 단숨에 끝까지 읽게 만든 추리소설, 스릴러소설이었다.

대개 추리소설은 마무리까지 끌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읽을수록 다음 장의 내용에 호기심이 생기기에 매력적이다. 이 사람과 다른 사람은 어떤 관계 일지, 이 집단에서 진짜 하는 일은 무엇일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등등 궁금해진다.

아들 지호를 잃은 '나'는 아내와의 불화가 심하고 어느 날 그 아내도 사라진다. 기자인 주인공은 그 아내를 찾아서 추적에 나서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취재하고자 집착했던 사이비 집단 미래파와의 연루 가능성을 판단한다.

재미있는 건 소설이 결말을 향해 갈수록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점이 연상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라 파격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특히 소설의 결말에 가까울수록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의 파격적 결말로 마무리된다.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는 아가사 크리스티 등의 작가가 쓴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었다. 그렇기에 추리소설이 몰입감과 재미를 가지려면 상상한 것 이상의 반전과 치밀한 구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분명 쉽게 읽히기 때문에 서사성이 약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은근히 치밀한 서사적 플롯을 담고 있어서 반가웠다. 그래서 추리소설, 스릴러소설 다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주인공에 몰입하여 주인공이 뭔가를 찾아낼 때마다 주변을 살펴야 하는데 하며 같이 긴장했고, 주인공이 누군가를 만나서 그 말을 따를 때마다 조심해야 하는데 하며 같이 걱정한 소설이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의 결말을 보며 이게 추리소설의 매력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오랜만에 단숨에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소설을 보았고, 다시 추리소설에 푹 빠져서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한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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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 인터뷰로 묻고 글쓰기로 답하다
유희재 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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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부당함이나 차별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사실 더 큰 문제가 있어요. 난민을 위험하고 피해를 주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이 사람들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노동력으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며 물건 검수하듯 취급한다는 거예요. 인격을 가진 '사람'에 대한 고려가 없는 거죠. 그 누구도 그럴 자격이 없어요. 다름과 차이를 떠나, 각자의 존재는 '어디서든'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니까요.

pp.27~28 [난민 인권 활동가 유유리], 인터뷰어 - 유희재

그때 앱만 잘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소수자의 문제를 알아봐 주고 중요하다고 생각해 주고,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하구나.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pp.53~54 [두브레인 신사업 기획 운영 총괄 송미영] , 인터뷰어 정지연

투우장에서 소가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들어가 충분히 휴식 취하는 공간을 케렌시아라고 한대요. 저는 혼자 보내는 시공간의 힘을 믿어요. 나만의 안식처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책, 산책, 운동이 될 수도 있어요. 모든 사람이 시공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각자의 케렌시아가 있으면 좋겠어요.

p.79 [아티스트 마음터치 우주], 인터뷰어 정지연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럽거든요. 다만 지금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려는 순간에 있다면 결심을 한 것만으로도 칭찬해 주세요.

그 정도 용기를 냈다면 어떤 일을 하셔도 잘할 겁니다.

생각보다 세상에 전혀 다른 일은 없어요.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 앞으로 할 일에 꽤나 쓸 만한 자양분이 될 거거든요.

p.108 [용마루 임국희 대표], 인터뷰어 이주영

제가 지금 해야 하는 일, 필요한 일부터 뭐든지 하라고 하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게 다 언젠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되거든요. 내가 원하는 것을 잊지만 않고 있으면 어디서 어떤 식으로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인생은 예측 불허거든요.

p.132 [치유 글쓰기 강사 조민영], 인터뷰어 유희재

몸의 능동이 마음의 능동이라는 말이 있어요. 달리기라는 것이 한 발 디디고 나서 다음 발을 앞으로 내디뎌요.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몸에 실어야만 앞을 향해 달릴 수 있지요. 그런 행동이 반복되다 보니 마음의 자세 또한 적극적으로 바뀌었어요.

p.148 [작가 길화경], 인터뷰어 최여림

모든 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 함께 일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모든 때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임을 기억하자!

p.212 [시니어 모델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한 조병희], 인터뷰어 김소라

생각만 하면, 모든 게 문제로 보이지만

실행하게 되면, 반드시 답이 있다.

p.226

유희재, 정지연, 이주영, 최여림, 김소라,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中

+) 이 책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자기만의 길을 씩씩하게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섯 명의 인터뷰어들이 인생의 전환점 혹은 반전인 지점을 지나고 있는 아홉 명의 인터뷰이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처음에는 인터뷰할 인물을 어떻게 선정한 것일까 궁금했는데, 다 읽고 보니 공통점이 확실하게 보였다.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길에서 방향을 바꿔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낸 사람들이었다.

그 전환점 혹은 터닝 포인트가 어떤 계기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멋지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만의 길을 열심히, 즐겁게, 의미 있게, 활기차게 걷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안정적인 직업을 떠나 새로운 일을 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 막막한 불안과 걱정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인물들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막막한 길에 한 걸음을 뗀 사람들이다.

각자 하는 일이 달라도 이들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 자신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사람, 스스로의 가치를 키우는 사람들이었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어진 삶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것만큼 현재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의 일이 자양분이 되어 좀 더 흥미롭고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이 물음에 충분히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잘하고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용기도 대단한 거라고, 무엇이든 시도해 보라고, 경험은 다 디딤돌이 될 거라고 답해준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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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이라고 아마추어는 아닙니다
이헌주 지음 / 모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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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무명'이라는 말이 싫었다. 배우로서 무명과 유명이 실력 차이라는 인식을 부정했다. 무명이라고 대충대충 설렁설렁 어설픈 아마추어가 아니다.

나는 가끔 이름을 가진 배역을 얻기도 했고, 또 가끔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선생님 역할을 연기했다. 지금도 이름 없는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배우들이 많다. 그렇다고 그들의 역할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한낱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럴진대, 우리 삶에서는 누군가 내 이름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삶은 귀하고 유의미하다.

pp.6~7

내가 생각보다 말에 약한 사람이라는 걸 안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지나가는 작은 말 한마디에도 움츠러들곤 했다. 나에 대한 확신보다 남의 말에 휘둘린 시기였다.

질투나 시기에 가득 찬 말이 아니어도, 막연히 동경으로 치켜세우는 말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치켜세움에 어찌할 바 몰랐다. 나는 그때 적절한 거리 두기를 배웠다.

파리에서는 동양에서 온 이방인, 돌아와서 나는 또다시 이방인이었다.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들이 나를 상대로 화살을 쏜 건 아니다. 어쩌면, 내 감정은 나를 인정해 달라는 욕구가 깔려 있었던 듯 싶다.

소수의 사람 때문에 움츠러드는 것은 어리석었다. 나는 그들의 편견에 편견을 갖고 있었다. 이 또한 나의 오만임을 인정했다.

pp.112~117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건 용기와 같다. 종종 '노'를 외치며 주변 사람들과 얼굴을 붉혀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문제일 뿐 그 결과로 나의 의견이 존중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p.129

배우에게 기다림이란 숙명이다. 긴 기다림의 여백을 무엇으로 채워갈지는 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멈춤 대신 뚜벅뚜벅 걷기를 선택했다.

내 불평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면 나도 계속 신세한탄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는 어떤 기회도 얻을 수 없다. 삶의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뭐라도 좋다! 방법은 늘 있다.

뚜벅이 프로필 투어는 배우들에게 일상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배우들의 일과 중 하나이고, 나머지는 기다림 혹은 촬영이다.

정답도 해결법도 없다. 그저 오늘도 뚜벅뚜벅 걸을 뿐이다.

pp.148~149

경력이 많다고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라도, 마음이 느슨해지는 그 순간 누구나 아마추어로 전락한다. 또 경력이 적어도 준비와 태도가 프로라면 그 사람은 이미 프로다. 실력은 좀 부족할 수 있지만 '유비무환'의 자세를 지닌 사람의 실력은 그 누구보다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pp.201~202

나의 선택에 후회 없이 달려들고 결과는 맡겨야 한다. 내 손을 떠난 결과는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준비한 시간은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고스란히 나의 근력이 된다. 나의 자산, 나의 힘이 된다. 실패해도 된다. 실패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p.226

글쓰기를 시작한 후 바뀐 일이 있다면, 일단 새로운 세계든 뭐든 나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그어 놓은, 할 수 없다는 선을 넘는 순간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변명일 뿐이었다. 일단 하겠다고 마음 먹으니 틈을 내게 되고, 어떻게든 할 수 있게 되었다.

p.252

이헌주, <무명이라고 아마추어는 아닙니다> 中

+) 이 책의 저자는 배우다. 이름이 익숙한 배우는 아니지만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배우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유명과 무명, 프로와 아마추어의 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그 단어들의 정의 자체를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그 단어를 붙여 쓰는 대부분의 표현에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반성할 필요는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 이름을 알기 힘든 것. 그건 그 단어의 정의일 뿐인데, 우리는 배우라는 말 앞에 유명, 무명이라고 붙이면서 그들에게 선을 긋거나 틀을 만든다.

저자의 말처럼 무명 배우라고 해서 아마추어는 아닌데 사회는 은근히 그들을 아마추어 취급을 한다. 그렇다면 또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그것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자세와 연기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설명한다. 경력이 많다고 프로가 아니라, 항상 열심히 준비하고 연기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프로인 것이다.

파리에서 연기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배우 생활을 이어가는 저자는 파리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저자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그 뒤에 깔린 배경이었는데, 그런 편견에 아파하던 저자는 정공법으로 그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이 책을 읽으면 수많은 배우들이 작품에 캐스팅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는지,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어떤 생각으로 지내며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연기를 할 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배우로서 자신이 겪어온 시행착오의 과정까지 솔직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와, 부모의 외동딸로 저자의 마음과 일상생활을 담고 있다. 그 모든 역할을 배우로서의 삶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하고, 그 가정 내 역할들에서 몰랐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뚜벅뚜벅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택과 결정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실패해도 괜찮으니 후회 없이 달려들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라는 응원해 주는 책 같다.

또 자기 한계를 정하지 말고 스스로 정한 선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든 핑계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 틀을 깨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저자의 용기와 응원에 깊이 공감한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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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를 좋아합니다 - 거침없이 떠난 자연 여행
이은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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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아본 사진 속 웃고 있는 그분들의 모습은,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만 같았다. 특별한 여행지에서 진정한 자유와 여유로움을 즐기는 모습이 본인이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그것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분들의 삶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늘 지독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이 몸 하나 없어질듯 바쁜 일상을 살면서 열심히 살아남는 것이 가치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p.19

하지만 이번 뇌진탕 사고(?)를 계기로, 이 삶과 이 세상에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사건 사고보다 그렇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순간순간이 예기치 못하게 들이닥쳤을 때, 여유롭고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처해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빨리 털어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은 것이라는 것도. 마지막으로 서서히 체력의 한계치가 오는 내 몸을 좀 사려가며 살아야 하는 것도!

p.31

대략 기억나는 답변을 종합해 보면 그 무엇보다도 정말 자신을 위한,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누가 어떤 이야기를 건네도 자신의 신념에 따른 결정을 하고, 자신의 기호에 따라 선택을 하는 그분들을 보며 나는 참 내 인생에 여러 가지 핑계가 많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라 무섭다는 핑계, 안 해봐서 못 한다는 핑계, 모르는 것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핑계, 어쩌면 유난스럽게도 실패를 두려워했던 내 소극적인 자아가 만들어 낸 방호벽 뒤에서, 그저 나는 잔잔한 인생을 바라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버린 것은 너무나도 큰 잘못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지나갔다.

pp.35~36

현실과 모험 사이, 어떠한 선택이 자신에게 더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미래를 가져다줄 것인지 짧게라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양쪽 가치관의 크기에 따라서 자신이 더 원하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본인이 어느 쪽을 더욱 갈망하고 원하는지 스스로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둘 중 어떠한 선택을 하든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상황과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지고 가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을 내일도 가지고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이 필요로 하는 조건의 '나'로 살아가기보다, 내가 필요로 하는 '나' 자신이 되어 살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pp.142~146

자연으로 향하는 여행을 하고부터는 조금 더 내 몸의 변화와 생각을 먼저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고나서 부정적이고 걱정스러운 상황을 연쇄 작용처럼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진정으로 그날의 냄새와 분위기에 조금 더 집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제야 생각을 비우는 방법을 몸소 느끼게 된 것이다.

생각하는 것을 쉬어보면 내가 당장에 처해 있는 많은 상황과 문제에 대한 나의 태도가 더 여유로워지고, 느긋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p.163

하지만 미처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더 오르면 된다.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하지 못함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아닌, 인생의 여러 오지선다 중에 그저 하나를 택한 것이고, 설령 그 선택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것 역시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나의 인생이라 이야기하며 스스로 북돋아 줄 것이다.

p.193

이은지, <미지의 세계를 좋아합니다> 中

+) 이 책의 저자는 20대 중반에 몽골 오지로 캠핑 여행을 떠난다. 현지 몽골인 가이드도 섭외하고, 온라인 카페에서 함께 몽골 캠핑을 떠날 사람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진과 여행에 관한 약간의 개인적인 정보만 주고받은 후 실제로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처음 만난다.

저자가 좋아하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사실 거기서부터 출발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 6명이 청음 만나자마자 몽골이라는 낯선 나라에 함께 여행을 가다니. 그것도 일주일이나. 그러한 도전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첫걸음이지 않을까 싶다.

이 여행을 계기로 저자는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가 된 셈이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걷고 있는 인생의 여정을 보며 느끼는 점도 배울 점도 많지 않았을까 싶다.

몽골 여행에서 뇌진탕 사건을 겪으며 저자는 세상에서 본인이 조절할 수 있는 사건보다 그렇지 않은 사건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그 순간의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된다. 인생의 변수란 늘 예기지 않게 오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변수 앞에서는 초연할 것.

이 여행을 계기로 저자는 좀 더 많은 미지의 세계를 다녀온다. 이 책은 바로 그 미지의 여행 에세이를 모아 엮은 것이다.

해외여행을 가든, 해외로 이민을 가든,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참 든든할 것 같다. 저자가 네팔로 여행을 떠나서 안나푸르나 트레킹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친구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고마울지 상상이 된다.

초반부를 읽으면서 나는 저자의 짐이 너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국내여행을 떠날 때도 대중교통으로 이용해야 한다면 짐은 최소화할수록 좋다. 짐은 말 그대로 짐이다. 점점 무거워지는. 그렇기에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순간에는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생긴다. 조금 불편해도 그 나름대로의 지혜를 배운다.

하지만 이건 기우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옷 세벌로 여행 준비를 마쳤다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가볍게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구나 싶어서. 그리고 다리가 아파서 연골 주사를 맞아가면서 강행군을 계속한 저자의 의지를 응원했다.

책의 후반부에는 미국 7000km를 자전거로 횡단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두려웠을 법도 한데 저자는 충분히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수많은 자연 앞에 큰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

이 책의 매력은 여행기에서 끝이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담고 있어서이다. 보통 여행을 떠난 그 순간만 기억하지만, 저자는 거기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마음가짐의 과정을 차분하게 풀어낸다.

자연을 만나고, 산을 만나고, 생각을 비우며 오로지 자연 속 그 순간에 집중하는 힘. 그렇게 저자는 자연과 함께 남은 생을 유랑하듯 살겠다고 말한다. 저자의 여행은 끝과 동시에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지의 세계를 떠난 용기와 그 순간의 감정,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때의 마음가짐 등을 솔직하게 쓴 여행 에세이집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수많은 핑계 앞에서 망설이는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가 된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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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다 - 삶의 모퉁이에는 볼록거울이 있다
김경순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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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풀들과의 씨름에 한나절이 휙 지나갔다. 이 풀들도 지금 이 순간 인생의 쓴맛을 보는 중이리라.

쓴맛은 꼭 필요하다. 삶이 달기만 하다면 보람이라는 뿌듯함도 용기라는 소중함도 알지 못한다. 검정고시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60대에서 80대시니 하나같이 공부가 정말 힘들고 어렵다고 하신다. 그동안 쓰지 않던 머리를 쓰려니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쓴맛은 입맛을 돌게 하고 우리의 장기를 튼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공부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삶의 심장을 튼튼하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p.16 [쓴맛]

코로나로 두려운 건 사람뿐이다. 자연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 왔다. 북적이고, 요란한 건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이러스를 만들고 불러온 것도 사람의 욕망과 욕심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고통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작고 힘없는 동물들을 원망한다. 바이러스를 옮길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작은 발소리에도 물오리들은 물살을 가르며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바쁘다. 어쩌면 물오리들은 이미 적당한 거리를 터득했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거리. 우리 사람만이 그 거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p.35 [변명]

꾸준함, 모든 시작은 작았다. 어쩌면 사소했을 그 이유가 나중에는 아주 대단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소한 일상이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거창한 계획도 행동도 아니다. 다만 꾸준히 이어지는 관심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마음뿐이었다. '리추얼', 일상을 대단하게 만들어 준 사소함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p.55 [사소해서 대단해졌다]

좋건 나쁘건 경험은 중요하다.

p.142 [겨울눈]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점점 혼자가 되고 가벼워지기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신에게 지워진 짐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리 서러워할 일도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다.

pp.162~163 [길을 가다 문득]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멀어지면 불안하고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부담스럽다. 이상적인 관계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일까.

이상하게도 사람의 관계는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싫었다가도 좋고, 좋다가도 어느 순간 싫어지게 된다. 그런데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

pp.164~166 [관계의 덫]

김경순, <그럴 줄 알았다> 中

+) 이 책은 짤막한 단상의 수필을 모아 엮은 것이다. 굳이 에세이집이라는 표현보다 수필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전반부의 글들을 읽으면서, 수필이란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달라진 사회 모습과 사람들의 일상, 학회 및 여행을 위해 해외로 나가서 겪었던 체험,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본인의 집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수필을 썼다.

대부분의 소재는 자연, 생명, 그리고 사람이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작은 것들부터 멀리 있는 것들까지 관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늘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이치를 하나씩 깨닫곤 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그들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저자의 마음과 안쓰럽게 여기는 연민의 시선이 녹아있다.

식물이나 동물 등의 자연, 즉 우리와 함께 사는 여러 생물들을 보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방식을 반성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욕심으로 만든 재앙을 자연이 대신 겪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성찰하는 글을 썼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참 공감했던 부분이, 자연은 늘 그대로였는데 우리 인간이 욕심과 욕망으로 요란을 떠느라 혼란한 상황이 왔다는 이야기이다. 자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금도 있다는 말이 와닿는다.

그간 읽었던 에세이 형식의 글들도 좋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전형적인 수필은 이런 형식으로 쓰는구나 하고 느끼며 배운 것 같아서 도움이 되었다. 전통적인 수필에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무장한 글들이 많은데, 이 책의 문장은 적정선을 찾아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담백하고 쉬운 언어와 조금은 낯선 우리말을 적당하게 버무린 저자의 문장들을 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자연과의 사이에서도, 사람 사이에서도,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걸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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