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가이 7 - 완결
시무라 타카코 지음 / 세주문화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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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의 원제는 섹시가이라고 하는 저 천박한 곡역이 주는 느낌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직역하자면 문지방의 주인이라고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문지방은 말그대로 방과 바깥의 중간에 걸쳐 있는 경계다. 과연 그 경계의 주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여기엔 여러 소년 소녀들이 나온다. 하나같이 막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그제껏 세상을 다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일이 닥치면 어쩔 줄을 몰라하는, 문제에 대한 쿨한 해결 수단이라고 하는 것이 기껏해야 의욕없는 포기의 결정으로나 드러나는 조숙하지만 사려 깊진 않은 소년 소녀들. 학업과 진학이라는 제도적 고통의 가장 가장자리에 머무르면서 꿈도 희망도, 그렇기 때문에 장차 짐작 가능한 즐거움도 가지지 않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말하자면 '타고난 패배자'들이고 작가는 그런 그들을 그려냄에 있어서 더없이 사실적인 태도를 취한다. 얼마나 사실적인 지경인지 이건 일상을 거의 그대로 종이 위에다 찍어낸 것 같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아이들은 사랑하고 갈등하고 미워하고 섹스하고 떠돌아다니고를 반복하지만 그 모든 일들은 금방 일상의 평범함, 지리함 속으로 순식간에 편입되어 버리는 일들이다. 방황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차를 타고 무작정 옆도시로 가서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라 내내 빙빙 돌다가 결국은 집으로 돌아온다던지 학교를 빼먹고 하루종일 동시상영관에서 시간을 보낸다던지 하는 게 전부인 이 아이들은 제목에서 문지방으로 상징되었던 것처럼 현재의 경계에서, 미래의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내내 갈팡질팡한다.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얼핏, 지루함을 동반하는) 사실성은 작가가 이 '타고난 패배자' 아이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그대로 노출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이 지리한 일상 속에서의 한심한 모험으로 가득한 에피소드들은 모노톤이 강조되는 작가의 스타일리쉬하면서 정감있는 작화와 어우러져 건조한 아이들의 일상성을 잡아내는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아하는 작품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안에서 보여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 때의 내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지리함,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는 막막함이 체질화에 가깝게 적응이 되버린 시기를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은 지금까지 봤던 성장 드라마와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대단히 현실적이다. 이 갈팡질팡 청소년기를 보낸 인물들은 모든 것이 지나간 다음에도 자신들이 놓쳤던 것을 찾을 생각을 못한다. 그것 또한 일상이기 때문에, 그 상실에 대한 무감함마저도 받아들였기 때문에, 여전히 문지방에 서 있는 아이들은 자라지 않는다. 그 어쩔 수 없는 건조함과 체념의 정서를 느껴야 한다는 건 제 목을 조르는 짓이다. 그러나 나에게 마조히즘적 경향이 있다는 것 또한, 증명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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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7-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것 같아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문지방에 서 있는 아이들이라...
 
말하는 꽃 기생
가와무라 미나토 지음, 유재순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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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 명맥이 거의 끊겨버린 기생이라고 하는, 그 자체로 조선 시대의 남성적, 유교적 특성이 뒤섞인 모순을 보여주던 계급은 후대의 식자들에겐 일종의 환상의 영역이자 이상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는 역할을 수행했다. 탁월한 미모를 갖추고 시, 서, 화를 두루 다루면서 선비들과 삶과 정치에 대해 논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 여성들은 과거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매춘을 업으로 하는 여성들이 그랬듯, 그 시대의 최전선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자들이었다. 식자들의 환상에 걸맞게 그녀들은 능력있고 뛰어났으며 그에 걸맞게 독립적이었다.(이것만큼은 식자들 마음에 들지 않았을 듯 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구전, 고전 문학에서 드러나는 기생들의 모습은 우습게도 한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정절녀(!)다.그러나 아마 실제로는 그 반대의 관계였으리라. )

저자는 전해오는 그런 조선 기생의 모습에 여느 식자들처럼 매혹되었고 그 근원과 현재를 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하여 탐색하기 시작한다. 문학을 통해 환상적인 아우라가 구축되고 수많은 구전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정작 기생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은 이 남성 기득권 사회가 가지는 오래된(그리고 여전히 지속되는) 이중적 태도의 결과물일 것이다. 저자는 그런 열악한 정보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해가며 때로는 외국의 사례와 비교하고 때로는 자기 발로 가서 문헌과 기록들을 확인하면서 전설에 역사와 구체적 형상을 붙이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순히 조선 시대, 기생이라고 불렸던 존재들에만 맞춰진 연구가 아니라 이 땅에서 자신의 몸을 매개로 살아남아야 했던 모든 여성들에 대한 현상학적 보고서다.

이 책이 단순히 흥미거리로 흐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가지는 대상에 대한 특별한 애정 덕이리라. 일본인이라는 태생적 측면이 그의 연구가 가질지도 모르는 오판의 여부를 의심케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저자는 타자이기에 객관적일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저술에 임했다고 보여진다. 도리어 문학 속에서 가장 환상화되었던 기생들을 바라볼 때조차 그의 시선은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계승이 가장 낮은 계급 형태의 유곽으로 체현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그는 안타까워한다. 저자의 시선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일에 대해 매혹된 남성의 시선이 그렇듯, 판단에 있어서 모호한 모양을 드러내지만 적어도 그 매혹만큼은 진심이란 것을 면밀한 글쓰기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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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매춘부들 책세상총서 24
니키 로버츠 지음, 김지혜 옮김 / 책세상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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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듣고 배워서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전복의 서술을 읽는 것은 즐겁지만 동시에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즐겁다고 하는 것은 지식의 쾌락에 비춘 것이며 당혹스럽다는 것은 그 사실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진실을 부숴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두가지 사항을 완벽하게 충복시키고 있다.

이제는 그리 흔치 않은 의견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매춘이라는 행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회학자나 문화학자들의 영역뿐만 아니라 가장 직접적이라 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들의 논쟁 가운데에서도 복잡한 화두였다. 저자는 페미니즘 진영의 일련의 그러한 보수 경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론을 펴고, 매춘이라는 행위에 익숙하거나 혹은 익숙하지 않아도 남성 중심적 사회적 편견 속에 함몰되어있는 이들에 대한 조롱이자 통렬한 고발의 증거로 이 책을 서술해나간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설명에 걸맞게 매춘이란 행위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간은 근 3000년 너머를 거슬러 올라간다. 모계 사회였던 인류의 시작에서 우리가 이제는 매춘부나 창녀라고 부르는 이들의 원형이 얼마나 신성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보여주던 저자는 소위 '문명'의 시작인 남성적 지배 질서의 출현과 확립이 이루어지면서 시작된 여성들의 전락의 역사를 그리기 시작한다. 저자의 시각에서 여성이 매춘의 길로 들어가게 된 이유는 모계사회 적에 가능했던 성행위의 자연스러움과 신성함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온전한 자아로 존재하기 위해 경제적 수단으로 전도된 결과이다. 그것은 이후 3000여 년간을 지속될 핍박과 차별의 역사에 맞서기 위한 여성의 선택이었고 그 증거로 저자는 '고매한' 남성들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태도로 매춘 여성들을 착취하면서 탄압했고 여성들은 그 과정에서 자율성을 갖고 자신의 존립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 남성들의 지배 질서에 도전하려 했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욕구에 의한 자아분열을 겪는 남성들과 삶에 대한 노련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시대를 살아갔던 여성들에 대한 풍부한 증거들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거칠게 몰아치던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이 책이 가지는 강점은 그제까지 기존의 주류 페미니즘 진영에서 써왔던 부정의 방법론이 아닌 긍정의 방법론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저자는 여성성을 찬양하고 있으며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자각했을 때, 그 자체로 남성들에게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저자의 말마따나 '편견'일 수도 있고 전투적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성 권력에 의해 역이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성에 대한 대안의 부재와 매춘이라는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이 공격적 태도만을 취하던 이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태도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남성적 사고관에 편입되어 세계를 바라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형 대립항적인 사고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의 허언에 비해서 이 책이 주는 여성적 삶에 대한 설득력과 자신감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25년 동안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에 절어 살아온 남자가 바라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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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샐러드 5 - 완결
니노미야 히카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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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하지만 자발적인 형태의 여성적 욕망과 수용자 입장에서의 남성적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던 니노미야 히카루가 만든 이 장편은 작가의 전작들에 비추어 볼 때 놀라울 정도로 금욕적이다. 그것은 전작들이 그 호흡의 굵기가 대체적으로 짧았던 것들인만큼 그 안에서 작가가 보여줘야 했던 욕망의 제전이 집중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넉넉해진 이 작품이 그런 강박감을 가질 필요야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작품의 성격에 영향을 준 것 또한 사실이겠지만, 여기 와선 섹스라는 행위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여겨질만 한 시퀀스까지 보일 정도로 성격에 있어서 전작들과 궤를 달리 한다. '백치 여인'에서 보여줬던 여성적 욕망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일종의 환타지와도 같은 상황을 지독하게 현실적인 여성적 감수성으로 풀어나가는 냉정함을 보여준다. 그 결과,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동거라는, 당연하게도 쓰리썸을 비롯한 성적 상상을 동반한 쾌감을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이 (사람에 따라선 무척이나)환상적이었을 수도 있을 관계를 지탱해나가는 것은 끝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는 아슬아슬함이다.

등장인물인 미노리, 이츠카, 요코의 세사람은 마치 한 인물을 분열시켜서 만들어낸 캐릭터들 같다.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를 부러워하면서도 질투 또한 느끼면서 그렇게 되지 못 할 것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그들 모두가 같이 있을 수 있는 특이한 공동체를 지속시켜 나가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그 위태로운 관계가 빚어내는 긴장감을 방황하는 미노리의 시선으로 꾸준하게, 마지막까지 끌고 나간다. 상대적으로 서로에게 이질적인 인물군이 정당화되는 것은 그들의 성격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성공한 작가의 힘이다. 순정지에서 연재하는 섹스와 강도 높은 노출의 함량이 다분한 작품군을 가진 작가가 빚어내는 이 독특한 관계 또한, 작가의 작품들에서 상대적으로 빈약한 차이만을 가진 채 등장하는 우유부단하고 갈등 많은 남자 화자의 눈을 빌린 여성 욕망의 설득력 있는 표현이다. 결코 도식화 된 캐릭터들이 아닌 이츠카와 요코의 두 인물은 성격상의 분명한 상이함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피동적-능동적 여성 캐릭터의 양 극단에 각각 위치해 있음에도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미노리를 통해 사랑과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여성-사랑-집착을 구조적으로 설명하려 하는 복잡한 작업이라기 보다는 작가 스스로가 내재하고 있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살아나서 얘기해주는 일종의 잠언과도 같다.

그런 작가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결말은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을 판단을 한 걸음, 뒤로 미룬 상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이 보여주는 관계는 단지 조금 변형되어 있는 상태일 뿐, 쌍둥이들과도 같은 세 사람은 그들 모두가 만난 시점에서 그리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내내 방황하다가 마지막에 와서 스스로의 욕구를 요코와 일치시킨 미노리가 보다 '남성적 시선'으로(그는 작품 내에서 간간이 보여지고 설명되어지듯, '너무' 따뜻한 남자다.)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발전된다면, 혹은 그의 욕구가 조금 헝클어지게 된다면, 마지막에 이르러 또다시 출발선에 선 세 남녀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모양으로 전개될 것인가. 이 이야기의 끝은 그들의 후일담을 보고 싶은 욕구를 은근하지만 분명하게 자극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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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제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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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 이치코의 초기 단편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외피가 소프트 야오이라는 치장을 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오이물 특유의 과도한 감정 남발이나 탐미적인 색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작가는 작품의 기본적인 영역, 플룻의 직조에 더 신경을 쓰면서 인물들의 개인사와 얽히는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것은 대표작이라 할만 한 [백귀야행]에 와서 가히 점입가경이라 할 정도의 플룻 상의 복잡함과 관계에 대한 성숙한 통찰로 드러난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군에서 드러나는 공통된 안타까움의 근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그것은 그녀가 정서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자신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소프트 야오이물들의 게이들이나 [백귀야행]에서의 귀신들, 그리고 귀신을 보는 이들 모두, 자신들에게만 통용되는 질서와 세계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사는 세계와는 조금은, 혹은 한참 유리된 세계 속에서 서로 간의 관계로, 혹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 할 '보통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상처 받고 치유 받기를 반복한다.

이 작품, [어른의 문제]는 메인스트림에 올라와서도 꾸준하게 병행 작업을 하고 있는 소프트 야오이 장르에 대한 작가의 친숙한 애정의 산물이다. [백귀야행]에서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여유있는 개그씬들을 통해 센스 있는 유머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작가는 얽힐대로 얽힌 가족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을 한바탕 소동으로 가득한 유쾌한 소품으로 만들었다.

언뜻 보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싶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어긋난 형태로 이어져 있는 이 특이한 관계의 연속들이 일그러져 보인다거나 억지로 꾸며낸 것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대단히 활기 차고 즐겁게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더없이 따뜻하다는 점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이든 원혼이든, 소외된 그들이 내재하고 있는 비극을 세심한 안타까움으로 치환할 줄 아는 작가의 정감 있는 시선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복잡하게 꼬이는 플룻은 여전하지만 그 복잡함은 잘 만든 그녀의 단편들이 그렇듯, 어지럼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미덕일 것이다.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각자의 해피엔딩을 갖게 되는 이 콩가루 가족 이야기는 애정과 관용, 그리고 가족애가 가진 힘에 대한 달콤한 신뢰가 만들어내는 즐거운 승리를 매력적으로 변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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