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얘기는 대학교재랍시고 만 칠천원씩이나 주고 사서 읽고 있는 책, 김준오란 양반이 쓴 시론 4판본으로부터 시작됐다. 난 이 책이 재미없진 않으나 가끔씩 상실되는 개념 덕에 심히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세가지가 있다...' 요러면 그 다음엔 첫째 어쩌구, 둘째 저쩌구, 셋째 지화자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감. 그런데 이건 뭐 첫째 어쩌구 하고 끝. 당최 두번째하고 세번째 개념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뭔 의미들이 그리 모호한지 죄다들 두리뭉실 안개를 잡는 건지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지."
"시 하니까 황삐이이 시인이 떠오르는구만."
"아, 그 양반? 내 아는 누님의 스승이었는데, 요즘은 뭐하고 지내나."
"어서 교수질하고 있다는 거 같은데. 그 사람이야 인세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지."
"그런데 왜?"
"뭐 개인적으로 다리 하나 건너서 걸쳐지는 사연이 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동넨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게 정확하게 들어맞는 동네라니깐."
"그게 뭐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말야. 그런데 딴나라도 이럴려나? 이 나란 정경유착이 너무 심하단 말이지."
"그래도 한삐이이 문학상 같은 건 괜찮지 않으려나."
"글쎄, 모를 일이지. 적어도 동삐이이 문학상보다야 낫겠지."
"이삐이이 문학상은 어떻고. 대체 거기 심사위원들은 몇십년째 해먹는 거야. 그런데도 당선만 되면 한 방에 주류가 되니깐."
"이삐이이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거지 뭐. 지삐이이 있잖아. 이번에는 미술원 들어간다길래 그 미술원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려고 했지. 그런데, 뭐 한 두번이 아니잖아. 그냥, 넘기기로 했어."
"무슨 얘긴데?"
"그렇고 그런, 뻔한 얘기."
"뻔한 거야 뭐 인간도 동물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 치고. 그게 권력과 이어지느냐 마느냐의 문제지."
"정치와 관련되지 않는 일이 어디에 있겠나. 우리가 마시고 있는 카프리의 디자인서부터 시작해서."
"하긴. 아~ 지지부진이야. 난 아주 질려버렸어. 예전에 내 아는 고스트라이터가 한 얘기 기억나냐?"
"들을 때 식상하다 느꼈을 정도로."
"뭐 그 녀석, 이 나랄 떠나려나 봐."
"그거 멋진데. 그런데 아직도 마비 상태야?"
"그렇지."
"업계의 너저분한 이야기는 업그레이드 됐고?"
"매일마다 업그레이드될 걸. 아무래도 현장에 있는 이인 걸."
"지지부진한 삶이야. 결혼이나 할까."
"결혼이라. 나쁘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