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한 낮에 하는 EBS 일요시네마로 하이랜더 를 봤다. 

영화설명에 설정이 모두 다 있는데, 영화를 볼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봤다. 아니지, 아마도 읽었을 것이다. 젊은 날에, 저예산으로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젊은 날에 읽고도 잊은 어떤 이야기를 다 늙어서 이제 아이들도 시끄럽지 않은 일요일 낮에 본 거다. 모르고 보는 사람처럼 재미나게 봤다. 

토요일 낮에는 극장에서 나우 유 씨미 3를 보고 실망해서 그런가, 재미나게 보고 다 늦게 설정에 대해 생각하면서 웃고 있다. 

영화 속 불멸자는 늙지 않는다. 주인공 코너 맥클라우드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라미레즈는 확실히 코너보다는 늙어보이기 때문에, 언제부터 늙지 않게 될까, 가 나의 웃음 포인트다. 아마도, 불멸자는 한 번 죽어야 각성하는가 본 데, 그 시점이 참. 싶은 거다. 

최후에 1인이 상을 받는다는 이유로 서로를 찾아 목을 뎅겅뎅겅 잘라대는 불멸자 설정에 그럼 어느 시점에 불멸자가 불멸자로 각성해서 늙지 않게 되는 시점인가, 까지. 늙어서 죽는 남자가 불멸자면 노인도 생기겠네, 금방 목이 잘리려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와글와글 상은 못 받겠네. 

결국 최후의 1인이 되어 상으로 죽음을 받아든 주인공. 

참으로 기이하게 평화로운 이야기다. 

이걸 시리즈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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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게 하는 건 뭘까. 

나는 짐이라고 생각한다, 호수야.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죽고 나면 짐일 수 밖에 없는 물건들을 모으고, 식물을 키우고, 동물을 키우고, 돌멩이에도 이름을 붙이고 곁을 내어주는 인간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그렇지, 나의 이 몸조차 짐이야. 궁극의 짐, 최초의 짐은 바로 내 자신의 몸이지. 뭐 묘사가 그렇다는 거지. 네가 무언가를 짐이라고 한다면, 결국 그렇다고.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도 했다더라.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영혼이 제약없이 풀려나는 게 바로 죽음이라고 했대. 

뭐, 영혼이 있던지 말던지. 그게 정말 자유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살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몸뚱이조차 짐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산다는 거라고 생각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몸,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 내 뜻 대로 되지 않는 그 모든 것이 살아간다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는 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너의 슬픔을 알 것 같으면서도, 나는, 네가 엄마인 염분홍 여사에게 너무 잔인하다는 마음이 되었어. 

엄마의 집에 있는 짐들을 하나씩 챙겨서 너의 집으로 옮기는 마음은 그래 네가 좀 더 허랑방탕한 아들이었다면 기특하고, 고마운 처사일 수도 있는데, 너는 그런 아들이었던 적이 없잖아. 엄마에게 그 간절함을 내 보인 적 없었던 아들이라서, 엄마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 거야.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그 사랑은 엄마를 살게 하는데, 너는 그 사랑을 짐이라고 부르고,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엄마를 밀어내지. 미지 앞에서 울던 그 마음을 엄마 앞에서는 한 번도 보인 적 없으니, 엄마는 늘 네가 어렵고, 늘 너를 그리워하잖아. 

살아간다는 건, 짐을 지고 걷는 일이야. 내 자신을 겨우 짊어질 수 있을 때, 그 다음 짐들이 필요하지. 아니, 내 자신을 짊어지기 위해서도 다른 짐들이 필요해. 나만으로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서 있을 수가 없거든. 오히려 다른 어쩌면 짐이면서도 사랑인 것들이 나를 세우고 살게 하는 거거든. 

호수야, 사람은 누구나 다 약하고 어리석단다. 약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서 네가 짐이라고 부르는 그 사랑이 필요해. 너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너에게 짐인 누군가도 너를 떠받치고 있는 거야. 

네가 무얼 짐,이라고 부르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그 짐,이란 게 어떤 건지도 생각해 봐. 그게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계속 살아간다니. 아무 짐도 없는 삶이란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짐이 무거울 수록 더 삶에 용맹해지기도 해. 살다보면 깨닫게 되기도 하고 말이지. 엄마에게 짐을 빼앗지 말아, 호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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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색깔표시 다르게 할 수 없나. 퍼센테이지만큼 색깔을 섞어서 보여주던지. 한 표만 많아도 이기는 이 싸움에서,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의 가치가 동일한 선거라는 공간에서 저런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색칠하는 방법뿐인가? 

결국 보라색으로 살게 될 텐데, 더 파란 보라색과 더 붉은 보라색들로 칠하면 미울까. 

요즘 AI는 그런 것도 그려주겠지만, 이렇게 말로만. ㅋ 

그러고, 도대체 출구조사가 이렇게까지 다르다는 건, 뭘까. 

참으로 사람 속은 모를 일이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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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혼숙려캠프를 거실에서 아이들이랑 봤다. 

티비속에서 탁구만 치는 남편 때문에 괴로운 부인이 나왔다. 

어린 시절 하반신마비인 아버지에 추행을 당하고, 그런 아버지와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에 대한 기억을 가진 부인은 울면서 아이에게는 자신과 같은 기억을 주고 싶지 않다면서 

"아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어, 저렇게 생각하면 아이 키우기 힘든데."

"그럼 아니야? 애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지 않나?"

"아니지, 태어나고 싶었으니까 태어난 거지."

"에? 아기가? 막 새치기하고 태어나고 싶어서 나오는 거라고?"

"그렇지. 태어나고 싶었으니까 태어났지. 다 자라지도 못하고 죽는 아기들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 뱃속에서도 죽고." 

"막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거라고?"

"기억을 못해? 그럼 그런 거지. 뭐. 그래도 태어나기 싫었으면 안 나왔을껄."

"아, 엄마는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키우는 구나." 


나는,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아이들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고, 살고 싶어서 살고 있다고.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 없이, 부모의 의지만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책임감은 너무 거대해져서 나는 그 책임감에 짖눌리고 말 것이다. 물론 아이를 먹이고 입히지만, 입이 짧은 아이가 먹고 싶지 않아 하면 먹기 싫은가 보다,하고 내버려 두고, 추운 날 얇은 옷을 입고 싶어하면, 그렇게 입게 하고 내가 옷을 하나 더 챙긴다. 이제는 많이 자라서 챙기지도 않는구나. 

말 안 듣는 딸을 앞에 두고, 그저 '그래,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못 하는 거지.'라고 물러서던 엄마를 기억하는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래, 저 싫으면 못 하는 거지.'

나와 내 아이는 같은 존재가 아니고, 내가 받지 못한 걸 준다고 해서, 내 아이에게 결핍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른 존재가 가지는 다른 존재의 슬픔이 있는 채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내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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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enasia.hankyung.com/article/2024123063294?cm=news_headline


드라마를 안 보고 기사를 쓰나. 드라마를 봐도 이입은 하지 않은 걸까. 

도둑,이라, 도둑이라. 


나는 재미나게 보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돈을 깔고, 쓸 수도 없는 돈을 깔고, 그저 아무도 믿지 못할 선심으로 치매 의심이나 받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모두 다 알아버렸는데, 그래도 비밀을 지키려고 서로 말도 못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나는 구경한다. 다림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 돈을 굳이 가져왔을까. 알고도 말 못하는 심정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 

드라마의 무엇이 절도, 은폐 방법을 알려준다는 걸까. 

100억이 파묻힌 걸 알아도 쓸 수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데 말이지. 

억,이라는 단위가 흔해졌지만, 실상 그 출처를 알지 못하는 돈은 쓰지를 못 한다고 드라마는 내내 알려준다. 그 돈을 헐어 눈을 뜬 다림이도 울고, 경찰인 우림이도 울고, 그 돈을 어떻게든 갚아보려고 애쓰는 강주도 있는데, 왜 이들이 도덕심이 없다는 걸까.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걸까. 사람은 얼마나 다른 걸까. 

내가 8억이면 눈을 뜰 수 있는 아픈 손녀가 있는 할머니인데, 돈가방 파묻는 걸 봤으면 안 파올 거야? 이미 그 돈이 깨끗한 돈이 아니라, 도둑맞은 돈 주인도 경찰에게 신고하지 못한 건데, 왜 이렇게까지 잘못이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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