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론대회,를 웃기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반대인데, 찬성 표를 받아들고, 찬성입장을 발언해야 한다면, 그게 의미있는 토론이냐,고 생각했다. 거짓을 연기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2회의 더 로직을 보면서, 그게 생각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회차에서 참가자는 찬성과 반대,를 자신의 의사로 고르지 않았다. 백명의 참가자는 열명씩 조를 짜고, 리더를 뽑았다. 주제는 '외국인 밀집지역을 치안특별구역으로 지정하는 건'이었다. 찬성깃발 다섯 개, 반대 깃발 다섯 개를 각 조별로 골라서 해당 입장으로 1대 1 조장 논쟁을 했다. 그건 차별이라서 찬성하기 어려운데요,라고 인터뷰하던 사람들이, 깃발을 놓쳐서 찬성 입장에서 의견을 단련해야 했다. 다섯명의 고등학생이 토론을 보고, 자신이 더 설득당한 입장으로 스케치북을 들었다. 그건 차별이라 반대,야 라면서 번개같이 달려들어 깃발을 선점한 조는 쉽게 반대논리를 상상해내지 못했다. 

차별이고 차별이 아닌 것,이 그렇게 분명해지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안특별구역,이 어떻게 운영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우리는 파출소가 가깝고, 인구수 대비 치안인력이 더 많은 지역을 살기 좋고 안전하다고 느끼니까, 만약 치안 특별구역이 그런 곳이라면 좋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안특별구역이 낙인효과를 일으키고, 집값을 떨어뜨릴 거라는 반대논리가 수긍이 되지 않았다. 내가 찬성하고 있었던 걸까. 

어떤 상황에서 살더라도, 그 상황이나 세상을 차별이나 억압으로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않는 것은 살아가는 사람에 달린 게 아닌가 싶다. 

가끔, 행정편의주의적인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그래서 편리해지는 부분도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말이나 의미에 깊게 매몰되서 현실의 장점을 못 본다면 것도 참 곤란해지지 않는가 싶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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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 시작한 방송이다. 늦게 시작했는데, 끝까지 봤다. 

토론을 게임으로 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말하고 싶어하는 걸 듣고 있는 게 좋았다. 논리는 부족할 지 몰라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게 좋았다. 

싸움구경을 좋아해서 그런가,

참가번호가 적힌 흰 티셔츠를 입은 백명의 사람들이 처음 가진 토론의 주제는 '주 4.5일제'였다. 찬성과 반대가 50대 50으로 갈리고, 토론을 한다. 구한말 공원에 벌어졌다던 만민공동회?와는 단상이 두 개라는 게 다를까, 찬성과 반대가 번갈아 이야기하고 나는 화면 밖에서 듣는다. 

나의 입장은 반대,인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는 말할 자신이 없다. 나의 입장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아. 찬성의 입장은 내가 모르지 않는 것들이라-우리는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는 겁니다- 시큰둥한데, 반대의 입장은 다종다양해서 재밌기는 하지만, 멋지게는 들리지 않는 것도 같았다. 반대가 레드카드를 두 개나 받아서 결국 게임으로서의 토론은 반대가 졌다. 

나의 반대는 어쩌면 반대파의 '그럼 교육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와 조금 통하는데, 찬성파에 등장한 현직 선생님이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로 반박당했다. 그렇지,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서, 학원이 생겼지. 우리는 세상과 경쟁하고 있는 거니까. 

주 5.5일제였던 게 주 5일제로 바뀔 때 나는 사람들이 좀 더 느긋해지고 행복해질 줄 알았지. 그런데, 상황은 어땠냐면, 관광 여행업이 붐업되고, 사람들은 서로를 비교하면서 삶에 더 많은 돈을 원했다. 주 5일제는 시간을 돈으로 사는 문제라 물가는 올랐고, 박탈감이나 편중은 더 심해졌다. 주 5일제,를 적용받는 정규직 일자리는 공무원과 공기업과 대기업, 학교 정도가 남고 점점 프리랜서가 대세,가 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 스스로를 경영하는 프리랜서,들. 

나는 주4.5일제를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말처럼도 듣는 것 같다. 

국가가 정해주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주장에는 누구나 주 4.5일은 일할 수 있게 하자,여야 하는는 거잖아?싶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은 누구도 주 4.5일 이상은 일하지 말아라,가 아닌가도 싶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일이란 무엇인가, 부터 정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주 4.5일 일하는 걸로 생활이 될 것인가? 도 질문해야 하는 게 아닌가. 

주4.5일제는 돈을 받고 하는 노동의 고용과 피고용관계를 정의하는 말이고, 이게 가능한가,는 역시 모르겠다. 사람들은 주40시간 노동을 10시간씩 나흘 일하는 식으로 선택하려고 한다. 주30시간이라니 여섯시간씩 5일을 일하는 방식보다 9시간씩 사흘 일하고, 나머지 세시간을 하는 방식으로 일 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지 원하는 게 뭔지 나도 나를 모르는데, 그걸 제도로 정의할 때 어떻게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재밌었다. 나는 게임이 끝난 다음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겠고, 더 말하게 하고 싶었다. 게임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거니까. 폭력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마이크를 빼앗은 게 센스인가, 싶었지. 더 말하고 더 듣고 다시 찬 반을 나눠도 좋았겠다고, 그게 설득이 아닌가,고도 생각했다. 

여러 날 하는 토론의 대주제는 이민,이다. 크게 관심있는 주제는 아닌데, 재밌을 거 같다. 너무 늦게 해서 아쉽지만 목요일이니 다음에도 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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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한 낮에 하는 EBS 일요시네마로 하이랜더 를 봤다. 

영화설명에 설정이 모두 다 있는데, 영화를 볼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봤다. 아니지, 아마도 읽었을 것이다. 젊은 날에, 저예산으로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젊은 날에 읽고도 잊은 어떤 이야기를 다 늙어서 이제 아이들도 시끄럽지 않은 일요일 낮에 본 거다. 모르고 보는 사람처럼 재미나게 봤다. 

토요일 낮에는 극장에서 나우 유 씨미 3를 보고 실망해서 그런가, 재미나게 보고 다 늦게 설정에 대해 생각하면서 웃고 있다. 

영화 속 불멸자는 늙지 않는다. 주인공 코너 맥클라우드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라미레즈는 확실히 코너보다는 늙어보이기 때문에, 언제부터 늙지 않게 될까, 가 나의 웃음 포인트다. 아마도, 불멸자는 한 번 죽어야 각성하는가 본 데, 그 시점이 참. 싶은 거다. 

최후에 1인이 상을 받는다는 이유로 서로를 찾아 목을 뎅겅뎅겅 잘라대는 불멸자 설정에 그럼 어느 시점에 불멸자가 불멸자로 각성해서 늙지 않게 되는 시점인가, 까지. 늙어서 죽는 남자가 불멸자면 노인도 생기겠네, 금방 목이 잘리려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와글와글 상은 못 받겠네. 

결국 최후의 1인이 되어 상으로 죽음을 받아든 주인공. 

참으로 기이하게 평화로운 이야기다. 

이걸 시리즈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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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게 하는 건 뭘까. 

나는 짐이라고 생각한다, 호수야.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죽고 나면 짐일 수 밖에 없는 물건들을 모으고, 식물을 키우고, 동물을 키우고, 돌멩이에도 이름을 붙이고 곁을 내어주는 인간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그렇지, 나의 이 몸조차 짐이야. 궁극의 짐, 최초의 짐은 바로 내 자신의 몸이지. 뭐 묘사가 그렇다는 거지. 네가 무언가를 짐이라고 한다면, 결국 그렇다고.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도 했다더라.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영혼이 제약없이 풀려나는 게 바로 죽음이라고 했대. 

뭐, 영혼이 있던지 말던지. 그게 정말 자유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살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몸뚱이조차 짐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산다는 거라고 생각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몸,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 내 뜻 대로 되지 않는 그 모든 것이 살아간다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는 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너의 슬픔을 알 것 같으면서도, 나는, 네가 엄마인 염분홍 여사에게 너무 잔인하다는 마음이 되었어. 

엄마의 집에 있는 짐들을 하나씩 챙겨서 너의 집으로 옮기는 마음은 그래 네가 좀 더 허랑방탕한 아들이었다면 기특하고, 고마운 처사일 수도 있는데, 너는 그런 아들이었던 적이 없잖아. 엄마에게 그 간절함을 내 보인 적 없었던 아들이라서, 엄마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 거야.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그 사랑은 엄마를 살게 하는데, 너는 그 사랑을 짐이라고 부르고,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엄마를 밀어내지. 미지 앞에서 울던 그 마음을 엄마 앞에서는 한 번도 보인 적 없으니, 엄마는 늘 네가 어렵고, 늘 너를 그리워하잖아. 

살아간다는 건, 짐을 지고 걷는 일이야. 내 자신을 겨우 짊어질 수 있을 때, 그 다음 짐들이 필요하지. 아니, 내 자신을 짊어지기 위해서도 다른 짐들이 필요해. 나만으로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서 있을 수가 없거든. 오히려 다른 어쩌면 짐이면서도 사랑인 것들이 나를 세우고 살게 하는 거거든. 

호수야, 사람은 누구나 다 약하고 어리석단다. 약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서 네가 짐이라고 부르는 그 사랑이 필요해. 너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너에게 짐인 누군가도 너를 떠받치고 있는 거야. 

네가 무얼 짐,이라고 부르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그 짐,이란 게 어떤 건지도 생각해 봐. 그게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계속 살아간다니. 아무 짐도 없는 삶이란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짐이 무거울 수록 더 삶에 용맹해지기도 해. 살다보면 깨닫게 되기도 하고 말이지. 엄마에게 짐을 빼앗지 말아, 호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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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색깔표시 다르게 할 수 없나. 퍼센테이지만큼 색깔을 섞어서 보여주던지. 한 표만 많아도 이기는 이 싸움에서,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의 가치가 동일한 선거라는 공간에서 저런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색칠하는 방법뿐인가? 

결국 보라색으로 살게 될 텐데, 더 파란 보라색과 더 붉은 보라색들로 칠하면 미울까. 

요즘 AI는 그런 것도 그려주겠지만, 이렇게 말로만. ㅋ 

그러고, 도대체 출구조사가 이렇게까지 다르다는 건, 뭘까. 

참으로 사람 속은 모를 일이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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