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질 땜에 바지런

좀 늦은 분갈이였다. 모자란 화분을 사기 위해 퇴근길에 마트를 들렀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 50미터쯤 걸었을 때 작고 얇은 봉투였던 바질 씨앗 챙기는 걸 깜빡한 게 떠올라 서둘러 갔는데 없....🙉🙊🙉💦 고객센터 가서 분실물로 씨앗 들어온 거 없는지 물어보는데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고, cctv 확인을 기다리면서 셀프 계산대였으니 못 챙긴 내 책임이지, 휴... 씨앗은 왜 사고 싶어 가지고. 그냥 가자 싶었다. 내 뒤에 온 다른 고객 짐에 딸려간 것만 확인하면 깔끔하게 포기할 텐데 그게 또 확인이 안 된다고 하고. 그런데 씨앗을 계산 없이 다시 주겠다는 통보를!

오늘도 감사한 하루🙏

바질이 싹 틔우고 먹을 만하게 키우려면 40~50일은 키워야 되는데 잘 키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헛똑똑이, 채소 잘 키울 수 있겠나.

바질 때문에 바지런 떨며 돌아다녀 오늘 밤은 숙면을 취하겠다. 꿈속에서는 그렇게 사라지지 마ㅜㅜ

사라진 바질 씨앗들은 정말 어디로 간 걸까. 너희들, 잘 살아야 돼🌱

김영사에는 가끔 뜬금없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이 또 내게 있고-,,-)a

『채소 가꾸기』(잘 먹고 잘 사는 법 시리즈 23)

초보자용 채소엔 바질이 없었다-,.-) 췟

꽃 핀 후 10일 만에 딸 수 있는 오이를 키웠어야 했나...

이 책의 저자 서명훈 님은 고려대에서 '상추'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고... 웃으면 (안 돼) 앎의 세계는 무궁무진.

 

 

 

바질 심은 지 1주일 🌱

싹 난다~ 씐난다. 시시때때로 가서 본다. 싹이 나면서부터는 더.

아이 때보다 더 신기하다. 귀여운 녀석들. 아이 키우는 분들은 더 그렇겠지.

식물에 빠져 식물 책을 더 사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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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잡아먹을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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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나의 이성이 밉더라😑

그러므로 끊임없이 괴리와 모순을 논박하는 철학 하기는 정말 피곤한 일이다.

 

 

 

 

 

● 2020년 6월 내가 산 책(종이책)

이 달은 종이책과 e book 중 뭘 더 많이 사나 배틀 중이다.

 

 

📚 존 맥피 『네 번째 원고』(글항아리)

- 여기저기 보여서 넘 궁금한 책이었다. 사은품으로 준 네 번째 원고 글쓰기 노트는 무지 노트, 1200원,

고급스러운 양장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이럴 땐 독서가 더 즐겁게 시작된다.

 

 

📚 이소영 『식물의 책』(책 읽는 수요일)

- 스티커를 붙이는 self 커버인데 어떻게 붙여야 잘 붙였다고 소문이... 내가 그릴까도 하다가.

가지고 있는 여러 식물 책의 야생화 그림이랑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거 같다.

야생화 그림 예쁘네요😊 때가 잘 탈 거 같아 살짝 걱정도 되고.

 

사은품인 식물의 책 봄 에디션 손수건_귤(2,500원)

- 토끼풀 디자인이 내 취향이지만 귤 손수건이 모든 면이 달라 접으면 더 예쁠 거 같아서 이걸로 선택했다. 예상대로 무척 예쁘다😊💯 식물의 책 굿즈는 다 갖고 싶네요. 참 예쁘게 잘 만드신 듯.

 

 

 

 

 

 

 

 

📚 니콜 크라우스 『어두운 숲』

- '위태로운 결혼생활 속에서 소설 집필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년의 작가가 삶과 죽음, 자아와 정체성을 탐구'하는 소재(한트케 단골 소재)가 눈에 띄어 페터 한트케 『어느 작가의 오후』(열린책들)와 비교해볼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표지도 비슷ㅎ 그래서 『사랑의 역사』 이후 5년 만에 낸 『위대한 집』부터 읽지 않고 필립 로스가 격찬한 이 책부터 읽어보기로. 역시 좋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의 이혼과 그 여파는 『위대한 집』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두운 숲』 집필 중 이혼.

니콜 크라우스를 안 읽어봤다면 민음사에서 나와 오래 절판이었던 『사랑의 역사』는 꼭 읽어봐야 한다👍

 

 

 

 

 

 

 

 

 

 

 

 

 

가위눌림에 10분도 못 자고 일어나 오늘도 제대로 자긴 글렀다고 생각하고 나머지를 읽기 시작했다.

오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제가 바람이라는 건지 빗방울이 툭툭 페이지를 건드렸다.

왜가리는 정녕 뒷산에서 살기로 작정했는지 이젠 하늘에서 자주 보인다. 새라고 하기엔 너무 커서 볼 때마다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어두운 숲이 있고 그 세계에서 태양과 비를 기다린다. 우리가 추구하는 현실이야말로 그에 대한 은유이자 헌신이다.

카프카라...

200페이지부터는 카프카 때문에 전력 질주로 읽게 된다. 카프카 이야기는 강력한 스포라 리뷰 쓰는 분들은 조심해야 할.

이 책을 다 읽었을 땐 비가 쏟아졌다.

『사랑의 역사』만큼 좋았다. 유대인 문화와 그것을 둘러싼 역사, 종교성, 갈등을 다루는 시대의식도 있어 노벨문학상 대열에 곧 진입하실 역량.

 

 

 

 

 

 

 

 

2주 된 바질은 1cm 정도 자랐다.

 

 

📚 에세이

금정연 『담배와 영화』

정지돈 『영화와 시』

- 일상 잡문보다 이런 주제가 있는 산문이 더 좋다. 한국 에세이는 당분간 안 사야지 하다가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서 끝말잇기로 진행하는 '말들의 흐름' 시리즈는 재밌을 거 같아서 맛보기로 두 권 구매. 재밌다. 5권 유진목 시인 『산책과 연애』, 10권 이제니 시인 『새벽과 음악』도 기대된다.

양장본인데 탄력성이 있어서 오래 두면 휠까 봐 걱정되지만 가벼워 휴대성이 좋다. 두 권 들고 나와도 전혀 무겁지 않다. 두 권을 번갈아 읽는 재미도 쏠쏠^^

 

 

 

 

 

 

● 2020년 6월 내가 산 책(e book)

 

 

 

e book이냐 종이책이냐? 소모적인 논쟁이다. 둘 다 보면 된다. 독서엔 왕도가 없다. 목표(책) 정하고 어떻게든 읽으려는 노력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읽겠지 하기보다 e book까지 활용해 지금, 전투적으로 읽어보자.

 

📚

슬라보예 지젝 『용기의 정치학』(다산북스)

- 지젝😉

알랭 드 보통 『불안』(은행나무출판사)

- 갑자기 읽고 싶어진 보통. 보통은 보통 그러했다. 생각보다는 평이했다.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 왕이 되려 한 남자 외 2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단편선 )

- 없는 건 읽기 편한 e book으로 채우는 중.

 

김상욱 & 유지원 『뉴턴의 아틀리에』(민음사)

- 궁금해서 급 구매.

B.W. 힉맨 『평면의 역사』(소소의 책)

-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완독 못하고 반납하고 참고할 거리가 꽤 있어서 e book으로 사버렸다.

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김영사)

- 『타인의 해석』 읽고 역주행. 알라딘에서 김영사 90일 대여 이벤트 하길래 저렴하게 구매.

 

 

 

 

 

 

 

 

 

 

 

🎁 그 외 이 달의 굿즈들

🎀 본투리드 폰지 3단 우산 빨강 머리 앤 (4,500원)

- 빨강 머리 앤인데 빨강이 아니고 녹색ㅎ? 안이 밝은 녹색이어서 화사하다.

저번에 산 양면 우산 살이 자꾸 망가져서 속상했는데 이번엔 양면이 아니라 더 오래가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 본투리드티셔츠 Vol.4 어린왕자 카키(xs, 5,000원)

 

🎀 알라딘 양말 - 본투리드 긴목 양말 Vol.2(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000원)

 

🎀 색색의 지식 교양 미니 노트_ 레인보우(2,900원)

 

🎀 문학동네 시인선 사면 주는 사은품인 미니엘홀더는 실망스러웠다. 시집이 들어가다 마니 참 어정쩡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내 실망 값은 300원...

 

🎀 알라딘 에코백 - 피너츠 깅엄체크 백(베이지, 3,800원)

- 이 에코백은 들었을 때 훨씬 예쁘다. 여름엔 린넨 옷이 많으니 베이지 체크무늬로 선택.

알라딘 원두로 알라딘 리유저블 컵(기형도 -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해먹으며ㅎㅎ

머리에서 발끝까지 알라딘 굿즈로 살림살이-,.-)

aladdin, 신발도 만들지 그래요ㅎㅎ💦

실내화는 만드셨으니 휴대용 플랫슈즈나 캔버스화... 정 안 되면 플립 플랍? 여름용으로 딱이지요.

 

 

 



 

 

 

 

● 안의 책

 

세 권을 한꺼번에 보면 어느새 아침이 된다.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끈이론』

- 언제 읽나 하다가 e book이 나와서 드디어 완독했다. 아름다운 종이책으로 함께 못한 건 아쉽지만 e book이면 어디서 건 아무 때나 볼 수 있다는 장점도♡ 내 사랑 월리스😍  노승영 번역가 고생 많으셨어요ㅎㅎ

 

"마침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바다출판사, 2018)을 재미있게 읽고 있었고 매슈 크로퍼드의 《당신의 머리 밖 세상》(문학동네, 2019)과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동아시아, 2019)을 작업하면서 그 속에 인용된 월리스의 글을 번역해본 적이 있었기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거절했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읽으면서 나는 김명남 번역가에게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한국어로만 읽어도 저자의 배배 꼬인 문장과 제멋대로 신조어와 적응하기 힘든 악취미를 실감할 수 있었으니까. 난해한 원문을 이렇게 깔끔한 문장으로 번역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월리스 번역이야말로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니까.

이 책의 문장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 골라보자.

*

안티토이를 향해 후려친 공이 좌에서 우로 급격히 휘어지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방금 친 공을 뒤쫓아 달려가려고 했지만 내가 친 공을 뒤쫓아 달려가려고 했을 리는 없었던 광경이 기억나는 듯도 하지만, 허벅지가 묵직하고 부드럽게 밀어 올려지고 공이 반대로 휘어 내게 다가오고 내가 공을 지나쳤다가 수평의 네트 위로 공중의 공을 때리고 땅을 한 번도 디디지 않은 채 12미터 위로 만화처럼 치솟아 허공에 검불과 오물이 널려 있는데 안티토이와 나는 둘 다 맹세컨대 15미터를 날았거나 빙글빙글 날려 한 코트 너머 동쪽 끝 펜스에 하도 세게 부딪혀서 펜스를 반쯤 쓰러뜨려 45도로 기울이고, 안티토이는 망막이 떨어져 나가 여름내 카림 압둘 자바풍의 근사한 고글을 써야 했고, 펜스는 냄비에 맞은 남자의 얼굴 자국이 냄비에 찍히는 만화에서처럼 몸뚱이 모양으로 두 군데가 파여 포수 마스크 두 개가 되고, 우리는 둘 다 얼굴과 몸통과 다리 앞쪽에 펜스 자국이 사각형으로 깊게 파이고 여동생은 우리가 와플처럼 보인다고 말했으나 우리 둘 다 중상을 입지는 않았고 누구의 집도 파손되지 않았다.

한 문단이 아니라 한 ‘문장’이다. 저런 문장이 한둘이 아니다. 위에서 보듯 월리스의 전략은 여러분 두뇌의 처리 용량을 초과하는 문장을 써서 과부하를 일으킴으로써 비판적 독해에 필요한 연산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배배 꼬인 문장을 해독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한 여러분의 두뇌는 달콤한 것을 갈구하기에 (곁에 마카롱과 흑당밀크티가 없다면) 월리스의 달짝지근한 다음 문장을 게걸스럽게 흡입한다. 월리스의 불순한 의도를 뻔히 아는 나로서는 한국 독자들에게 정신 바짝 차리라고 경고하고 싶지만, 그의 문장을 번역하다 보면 나도 그만 몽롱해져 번역자의 본분을 잊고 만다. (그의 기나긴 영어 문장을 기나긴 한국어 문장으로 번역하면서 사디스트적 쾌감을 느꼈다는 말까지는 차마 못 하겠지만.) 세상에 정의라는 게 있다면, 번역자가 힘들었던 만큼 독자도 힘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 김상욱, 유지원 『뉴턴의 아틀리에』

- 2020 민음북클럽 온라인 패밀리데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전자책으로 사 버렸다. 김상욱 부분은 유명 작품의 해석이라 좀 심심하고 유지원 저자는 새롭다. 이미지가 많고 이 책의 폰트 미학을 음미하려면 종이책이 더 낫지만 빨리 읽으려면 어쩔 수 없던 선택😅 반 정도 읽었다.

 

 

 

📖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 톰 포드 《녹터널 애니멀스》영화 못 봤는데, 최근 본 소설 중 가장 흡입력 있다. 이런 몰입감은 최근 조이스 캐롤 오츠 『카시지』(2019, 문학동네)에서 느꼈는데 그보다 더 빨려 들 듯 읽었다. 기분 처질 땐 역시 스릴러 소설! 결국 밤새우고ᅮᅮ...

 

"그녀는 원고를 내려놓았다. 이제 와서 독서를 중단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지만 그만 읽고 자야 할 시간이다. 독서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다르니 인생에 불쑥 끼어든 이혼처럼 독서도 또다시 고통스럽게 중단됐다. 수잔같이 할 일이 많은 사람은 밤새 책을 읽을 수 없다. 그리고 결말을 보기 전에 독서를 멈춰야 한다면 여기서 멈추는 편이 낫다."

 

 

 

 

📖 버트런드 러셀 『러셀 서양철학사』(2019, 을유문화사)

- 러셀의 이 책이 e book으로도 나와 완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읽어도 20% 정도 읽는다. 러셀의 명쾌한 분석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이 책을 읽고 철학의 계보를 따라 읽어 나간다면 자기만의 비판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철학자들의 장단점을 꼼꼼히 짚는 이 책이 더 돋보이는 건 철학사 책 중 가장 현대적인 문체라는 점이다. (이 학문에 흥미를 느낀다는 전제 하에서) 고루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분량과의 싸움이 관건.

 

 

 📖  유홍준 『喪家에 모인 구두들』(2004, 실천문학) : 절판.

이성복 시인의 서정성과 비교된다. 긍정적인 뜻에서. 유홍준 시인의 데뷔 시집인데 이 시집은 꼭 다시 나와야 하는 시집이다. 단어를 어렵게 배치하지 않아도 문장의 울림이 크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님 아님)

 

 

 

 

 

 

 

 

● 바깥의 책

 

 

📚 휴대폰 보며 걷기 vs 책 보며 걷기

우리는 혼자일 때 외로움과 불안만이 아니라 취향을 더 발산한다. 마주 오는 사람 3명 중 1명은 휴대폰을 보고 있다. 혼자라면 특히 그렇다. 눈치껏 전방을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마주 오는 사람의 배려가 있어야 가능하다. 가끔 피하지 않고 끝까지 그 앞을 향해 간다. 그때의 표정들은 하나같이 똑같다. 이토록 비슷하고 은근히 파괴적인 인간이 관계를... 늘 의문이다.

 

그들은 늘 휴대폰을 보고 있다. 나는 늘 책을 보고 있다.

(음료 제외) 먹으며 걷는 사람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취향이 모이는 자리인 문화는 항상 이상했다.

※ 걸으면서 책을 볼 땐 30미터 앞으로 사람이 얼마나 있나 확인하고 장애물이 없는 직선 보도에서만 봅니다. 횡단보도 대기할 때가 가장 적당.

 

 

 📖 아미르 D. 악젤 『수학이 사랑한 예술』(2008, 알마) : 품절

『수학 미스터리, 니콜라 부르바키』(2015, 알마)로 개정판이 나왔지만 이마저도 절판이다. 니콜라 부르바키라는 수학자가 20세기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는 이야기인데 이 책은 더 오래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 알마출판사 간판 스타인 올리버 색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책을 만나고 떠나보내는 과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이다. 우리는 삶을 종종 그리 말하면서도 악착같이 산다. 단지 생존 본능이라고 말하기엔 이 과정엔 많은 秘義, 悲意들이 있다.

📚 유종인 『아껴 먹는 슬픔』(2001, 문학과 지성사)

-"슬픔에 비 맞아 가는 것도 / 다 구경인 세상이듯이"(「아껴 먹는 슬픔」)

 

 

 

 

 

 

 

 

 


공원에서 독서하기 어려운 점은 한산한 시간대를 골라 돗자리 같은 필수품을 챙기지 않으면 벤치에 앉을 수밖에 없고 이곳 특유의 소음 문제를 감수해야 하는 거다. 간간이 등장하는 인물이 트로트 음악, DMB 스포츠 방송을 틀어대기 때문에 예상외로 조용한 독서가 쉽지 않다. 하이톤으로 불분명하게 떠드는 아이들의 괴성, 중년 여성 특유의 괄괄한 목소리는 왜 새소리처럼 좋아할 수 없을까. 데시벨은 비슷한 거 같은데 미스터리. 내가 어머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나긋한 목소리 톤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목소리도 내용은 독설적이더라도 영국 특유의 나긋함이 있다. 미국 예술가의 나긋함 대표는 앤디 워홀ㅎ?

 

 

"베이컨은 예비 드로잉이나 스케치 없이 회화 작업에 착수한다. 이는 우연과 운에 천착했던 그의 기질과 관련이 있다. 베이컨은 우연이 작동하는 중에 더 깊은 개성이 전달된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가장 유익한 우연은 그림을 어떤 식으로 계속 진행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극도로 절망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베이컨은 절망으로 인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보다 과감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절망이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베이컨은 도박을 좋아하지만, 삶이 러시안룰렛 게임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삶이란 가능하다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ㅡ 미술평론가 유경희

데이비드 실베스터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2015, 디자인하우스)

 

 



📚 책 보며 걷기 - 읽는 건 분위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으려나 또 공원을 갔다.

트랙에서 책 읽기는 안정적이지만 앞지르려는 운동가들의 액션과 숨소리가 신경을 거스른다. 그들 입장에서는 왜 여기서 책을 읽고 난리야! 싶을 거다. 여기서도 휴대폰 보는 산책자와 조우한다. 결국 주제를 알고 500미터도 못 읽고 이탈했다.

공원에서 가장 조용하고 좋아하는 장소인 연못에서 어제 만난(?) 왜가리를 또 봤다. 어제 귓전을 스쳐가 얼마나 놀랐던지. 왜가리는 여름철 텃새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공룡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섬뜩함이 있다.

너를 해칠 맘이 없다는 걸 전하는 건 더 이상 다가가지 않기. 모른 척 하기. 우리는 왜이리 이상하게 살아야 할까.

오늘은 '왜가리는 숲속에서 왜가리 놀이를 한다'는 이수명 시인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같은 상황. 나는 왜가리도 아닌데 숲을 떠나지 못하고.

김성모 화백의 명대사 "왱알앵알"을 읊고도 싶고.

덥군.



 

 

 




난 이 시집의 리뷰를 이렇게 시작한다.

더 이상 슬프지 않아도 될 슬픔은 무엇인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품는 슬픔은 그러므로 불멸이다. 꽃잎의 붉고 노란 경계가 그들의 세계를 확정하듯이 우리의 작은 입과 눈과 손은 저마다 기쁨의 경계였고 스스로 넘을 수 없는 슬픔의 결계였다.

 

 

 

 

 

 

 

 

 

 

 

 

 

 

모기에게 7방 물리고 공원에서 급 후퇴💦

공원에서의 독서는 늘 변수가 많고, 안팎으로 다가갈 것들은 너무나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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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13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_@;;; 존경스럽고도 경이로운@_@;;; 독서생활이십니다. 뱅글뱅글@_@;;;

정신차리고-_-

바질을 40~50일이나 키워야 하나요? 저는 백화점에서 에코 기프트로 받아서 한달키우고 잘라먹었어요ㅎㅎ 맛있는 바질비빔밥ㅎㅎ;;; 분갈이처럼 정성이 들어간 행위는 역시나 하지 않았어요ㅎㅎ;; 먹을 자격이 없었네요ㅜㅜ;;;

녹색우산이 예뻐서 부러워합니다. AgalmA님의 독서는 실로 어마어마^^ 따라할 엄두도 못 내고 존경만 합니당^^

AgalmA 2020-06-13 18:25   좋아요 0 | URL
모아놓으니 그리 보이는 거지 저도 하루하루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뿐인 걸요^^;

바질을 씨앗부터 키운 건 이번이 처음인데 키운지 2주나 되어도 꼬꼬마라 2주는 더 키워야 될 거 같은데요.
바질 비빔밥 2주 뒤면 되려나요. 이렇게 아껴 키우고 먹을 생각하면....먹고 사는 건 언제나 만감이 교차합니다.

우산이 이젠 거의 품절이던데 나름 선택을 잘했다 싶습니다.
존경은요; 그러지 마세요^^;;

겨울호랑이 2020-06-13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철학사 중에서는 재밌게 쓰여진 책이지만, 가열찬 독서를 하기에는 은근 어려웠는데, AglmA님께서는 진정으로 즐기고 계셔서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AgalmA님의 페이퍼의 분량이 점차 벽돌책 수준으로 두꺼워지고 있음을 절감하는 요즘읍니다.^^:)

AgalmA 2020-06-27 07:34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책을 가열차게 읽으시는 분으로 저는 겨울호랑이님을 빼놓을 수 없는데 무슨 말씀이시죠?ㅋ?);; 저야말로 꾀부리며 이 책 저 책 요지경을 만들고 있는 중생놀이중인뎁쇼; 매일 기록을 남기는 건 즐겁지만 이렇게 모으는 일은 생고생입죠...에효;

파이버 2020-06-13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질 새싹 너무 귀여워요 부디 무럭무럭 자라길 기원합니다 왜가리는 늘 멀리서만 봤는데 생긴것도 참 공룡같군요! 더워지는 날씨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AgalmA 2020-06-27 07:38   좋아요 1 | URL
우리 동네에서 이 계절을 나기로 했는지 이 왜가리를 종종 보는데 날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참 비현실적입니다. 먼 옛날 시조새 같은 게 지구의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건 더 상상이 안 될 정도로요.
바질이 쑥쑥 자라서 이제 열심히 잡아먹고 있는데;;; 미안해하며 맛있어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6월 마지막 주말 평안히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2020-08-20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20-08-23 22:31   좋아요 0 | URL
^^; 공원 가면 손부터 발끝까지 정신없이 공격을 받아서 끊임없이 움직여야되죠.
요즘은 덥고 비도 자주 와서 실내 독서가 최적이고요. 바람 좋고 볕 좋은 가을 도전해 보시죠^^/
 
인간 본성의 법칙 (블랙 에디션) - 전2권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지음, 이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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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는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될까. 최근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차승원 씨가 “친구 없으시죠?”란 물음에 “하나 있어. 유해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대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친구가 많고 적음은 문제되지 않는다.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분명 좋은 인생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깊은 관계는 불가능하다. 인맥 쌓기의 많은 관계보다 적더라도 진정한 친구가 간절하다. 그렇지 않은가. 성공의 관점에서 보면 답답한 소리인가. 로버트 그린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더 뛰어난 공감력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자기몰두와 자기도취에 빠져 세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기술과 인터넷 발달로 더 가속화되었다. 외부로의 관심은 자꾸 차단되고 스마트폰 속에서 수박 겉핥기로 사람들과 교류하니 자기 안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사람은 인연의 관계가 아니라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도구에 가까워졌다. 타인과의 사회적 교류가 줄어들다 보니 뇌에 부정적 영향이 생기고 사회성이라는 근육은 위축되며 자기몰두는 더 강화되었다. 그린은 너무 부정적인 해석만 제시한 것 같지만 인터넷으로만 소통하는 관계가 쉽게 끊어지고 쉽게 반목하는 걸 생각하면 전면 반박하기는 어렵다.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고 니 편 내 편 가르며 상대를 심판하는 상황을 세계 곳곳에서 보니 더욱 그렇다. 소통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 거 같다.

 

 

그린은 인간 본성을 논하는 이런 지식이 결코 유행 지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술적으로 발전했고 이전보다 지적 수준이 높아졌지만, 인간 본성의 잠재적 파괴력은 더 커졌다. 가짜뉴스나 소셜 네트워크상의 바이럴 효과(소문이 바이러스처럼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 각종 광고와 콘텐츠가 매일 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감정에 기울고 즉각적 쾌락과 오락거리를 찾으며 저항이 가장 작은 길을 택하는 ‘저차원적 자아’와 제어하고 생각하는 ‘고차원적 자아’ 사이에서 오늘 하루 우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웠나 생각할 때 자신 있어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린은 대표적인 예로 투기 광풍을 꼽는다. 1987년 및 1929년 시장 붕괴, 1840년 영국의 철도투자 열풍, 1720년대 영국 사우스시컴퍼니 투기 사건, 2008년 금융위기 때 사람들은 투기 광풍에 빠져 있었음을 시인하기보다 외부 요인만 탓하며 광기의 근원을 도외시했다. 인류 최고 천재라고 손꼽히는 뉴턴도 세계 3대 버블 파동(네덜란드 튤립 투기 파동, 영국 사우스시컴퍼니 투기 사건, 프랑스 미시시피 투기 사건)에 빠졌었다는 건 인간 본성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준다. 

 

 

그린이 제안하는 인간 본성의 1번째 법칙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정신적 편향, 심리적 방아쇠를 파악해 이성적 자아를 끌어내는 일이다. 인간 본성의 2번째 법칙은 자기도취의 네 가지 유형(통제광 자기도취자-스탈린, 과장된 자기도취자-1967년 수녀 잔 드 벨시엘, 자기 도취 커플-톨스토이와 소냐, 상대의 기분을 읽는 건강한 도취자-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헨리 세클턴)을 소개하며, 자기도취는 공감의 부족 때문이므로 공감력을 키워 사회성을 높일 것을 강조한다. 인간 본성의 3번째 법칙은 밀턴 에릭슨이 심리학자가 된 과정을 설명하며 전략적 관찰자로서 사람들의 비언어적 소통 형태를 파악할 것을 권한다. 

 

“인간이 나누는 모든 의사소통 중에 65퍼센트 이상이 비언어적 소통이지만 그중에 사람들이 인지하고 내면화하는 정보는 겨우 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추정된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기울이는 주의력은 대부분 사람들이 하는 ‘말’에 쏠려 있다. 실제로 말은 사람들의 진짜 생각이나 감정을 감추는 데 더 많이 사용되는데 말이다. 비언어적 신호는 상대가 말로써 강조하려는 내용과 메시지의 숨은 뜻, 그리고 의사소통의 뉘앙스를 알려준다. 그리고 상대가 적극적으로 숨기는 내용과 정말로 바라는 일을 알려준다. 비언어적 신호는 사람들의 기분과 정서를 아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이 정보를 놓친다는 것은 눈을 감고 활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대는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것 혹은 필요로 하는 것이 뭔지 계속 신호를 보내는데 그 신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일부러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

 

“적대감을 알아볼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 하나 있다. 상대가 나를 대할 때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보디랭귀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보면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게 다정하거나 따뜻한 태도를 보이다가 당신을 대할 때만 공손한 가면을 쓸 수도 있다. 또 대화를 하다 보면 참을 수 없거나 짜증난다는 듯한 눈빛이 잠깐 스칠 텐데 오직 당신이 말하고 있을 때만 그럴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술에 취했거나 잠이 올 때, 자포자기할 때, 화가 났을 때, 혹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자신의 진짜 감정, 특히 적대적인 감정을 더 많이 누출한다는 사실도 기억하라. 상대는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나중에 사과를 해오겠지만 실제로는 그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이다.

이런 신호를 찾아볼 때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테스트를 해보거나 덫을 놓는 것이다. 루이 14세는 이 방법의 달인이었다.”

ㅡ 「law 03. 역할놀이의 법칙 ? 가면 뒤에 숨은 실체를 꿰뚫는다」 

 

 

상대의 성격은 그의 과거에서 드러나는 패턴, 그가 내리는 의사결정, 문제 해결 방식, 권한을 이양하고 협업하는 모습 등 수많은 신호에서 드러나는데, 인간 본성의 4번째 법칙은 그런 행동 패턴을 통해 나와 상대의 본성을 발견하고 비극을 피하는 일이다. 미국의 비즈니스 사업가 하워드 휴즈, 닉슨 미 대통령의 성공과 몰락 사례는 많은 사람이 상대의 대외적 이미지나 명성에 쉽게 현혹되는 것을 보여준다. 긍정성으로 포장한 파괴적 유형의 사람들(지나친 완벽주의자, 그칠 줄 모르는 반항아, 모든 게 인신공격인 사람, 드라마 퀸, 떠벌이, 모든 걸 성(性)적으로 만드는 사람, 응석받이 왕자님/공주님, 아첨꾼, 구원자, 겉으로만 성인군자)을 피할 수 있어야 삶이 덜 고달프다.

욕망의 대상은 우리의 판타지로 투영된다. 인간 본성의 5번째 법칙은 사람들의 억압된 판타지를 자극해 내 주위를 약간의 미스터리로 만들어 내 약점을 극복하는 일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통념과 다른 것, 진보적인 것으로 연상시킨 샤넬, 존 F. 케네디는 이런 전략가였다.

 

“젊음이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대상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이상화시키고 더 없이 푸르게 생각한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뇌가 가진 특징 세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유도(誘導)’라는 것이다. 긍정적인 무엇은 그와 대조되는 부정적 이미지를 머릿속에 만들어낸다. 이것을 가장 뚜렷이 알 수 있는 것은 시각을 통해서다. 빨강이나 검정 같은 색상을 보고 나면 주변에 그와 반대되는 녹색이나 흰색 같은 것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빨간색 물체를 보고 있으면 그 주위로 녹색 후광이 생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은 ‘대조’라는 것을 이용해 작동한다. 우리가 어떤 것의 개념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그와 반대되는 게 뭔지 알기 때문이다. 뇌는 이렇게 대조되는 것들을 끊임없이 들추어내고 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무언가를 보거나 상상하면 머릿속으로는 어쩔 수 없이 정반대되는 것을 보거나 상상하게 된다는 뜻이다. 만약 내가 사는 문화권에서 특정한 생각이나 욕망이 금지되어 있다면, 터부시된다는 사실 자체가 즉시 그 금지된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안 돼’라고 할 때마다 ‘돼’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빅토리아 시대에 포르노를 금지하자 사상 처음으로 포르노 ‘산업’이라는 게 생겼다. 마음속에서 이렇게 반대되는 것들이 계속 교차하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갖지 못한 바로 그것을 자꾸 생각하고 욕망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진화론적으로 보았을 때 무언가에 안주하는 것은 인간처럼 의식이 있는 동물에게는 위험한 특성이 된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 조상들이 현재 상태에 쉽게 만족하는 성향이었다면, 겉으로는 안전해 보여도 어디서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위험 요소들에 충분히 예민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으로 경각심을 갖고 위험을 의식한 덕분이지만, 그 때문에 어떤 환경에 가더라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부정적 요소를 생각하고 상상해보게 됐다. 우리는 더 이상 목숨을 위협하는 포식자나 자연 재해가 득실대는 사바나나 숲속에 살고 있지 않지만, 우리의 뇌는 아직도 그런 환경에 맞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게 종종 의식적으로 표현되면 불평이나 불만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제인 것과 상상의 소산은 뇌에서는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경험된다. 이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미 증명된 바 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뇌 속을 살펴보면 사람이 무언가를 상상할 때는 그것을 실제로 체험할 때와 놀랄 만큼 비슷한 전기적, 화학적 활동이 일어난다. 때로 현실은 아주 혹독하고 수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매일매일 우리는 조금씩 늙고 약해진다. 성공하려면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상 속에서 우리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 온갖 가능성을 즐길 수가 있다. 상상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그리고 상상은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만큼의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무언가 지금보다 나은 것을 상상하고, 그렇게 상상을 할 때면 현실에서 놓여난 해방감에 약간의 기쁨을 느끼는 존재가 됐다.”

ㅡ 「law 05. 선망의 법칙 -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욕망의 대상이 되라」  

 

인간 본성의 6번째 법칙은 사건을 뒤흔드는 더 큰 흐름을 주시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18세기 초 영국회사 사우스시컴퍼니 투기 사건이 자세히 소개되는데, “지금 보고 듣는 것, 이를테면 최신 뉴스, 트렌드, 주위 사람들의 의견과 행동, 아주 극적으로 보이는 온갖 것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당신의 본성 중 동물적인 부분이다.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손쉬운 돈벌이를 약속하는 반짝거리는 미끼에 당신이 걸려드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불충분한 정보로 즉흥적으로 대처하거나 생각 없는 반응 수준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 근시안적 사고를 보여주는 신호를 인식해야 극복도 가능하다.

 

인간 본성의 7번째 법칙은 상대를 긍정해서 저항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연구한다. 미국의 정치인 린든 베인즈 존슨의 스토리가 보여주듯이 “영향력과 권력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을 상대에게 넘겨줘라. 상대가 이야기하게 만들어라. 이 쇼에서 상대방이 스타가 되도록 하라. 상대의 의견과 가치관은 내가 따라 할 가치가 있으며, 그가 지지하는 대의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말하라. 요즘 세상에 이런 관심은 워낙에 드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관심에 굶주려 있다. 이렇게 상대를 긍정해 주면 그는 방어막을 내리고 뭐가 되었든 당신이 암시하고 싶은 그 아이디어에 마음을 열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박근혜 씨를 둘러쌌던 세력들이 취한 게 이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인간 본성의 8번째 법칙은 자신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태도가 내 지각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안톤 체호프는 불우했던 가정사 속에서도 세상을 다르게 보고 태도를 바꿈으로써 발전했지만 우울과 자기혐오라는 감정까지 극복하지는 못했다. 이 자유는 타인과 나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 또는 반응하려는 정신의 준비” 과정을 우리가 의식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 “우리는 그저 뇌의 이런 발화와 예민함이 일으킨 ‘효과’를 경험할 뿐이다. 이 효과들이 합쳐져서 우울함이나 적대감, 불안함, 열정, 모험심 등으로 부르는 전체적인 기분이나 정서적 배경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아주 다양한 기분을 경험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는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적대감이나 원망 같은 하나의 감정 혹은 여러 감정의 조합의 지배를 받는다. 이게 바로 우리의 태도다.” “태도는 우리의 지각에 색칠을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태도는 우리의 건강,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우리의 성공까지 결정한다. 태도는 자기실현적 특성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내 태도를 즉각 관찰하기 쉽지 않은데, “당사자가 자리를 떴을 때 당신이 그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보면 된다. 당신은 그의 부정적 성향과 형편없는 의견에 곧장 주목하는가 아니면 상대의 결점도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잘 용서하는가? 태도의 확실한 신호를 볼 수 있는 것은 역경이나 저항을 만났을 때다. 당신 쪽에서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당신은 금방 잊거나 잘 둘러대는가? 뭐든 나쁜 일이 생기면 당신은 본능적으로 남 탓을 하는가? 모든 종류의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예기치 못한 일이나 이례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 늘 하던 대로 하는 경향이 있는가? 당신의 아이디어나 가정에 대해 누가 이의를 제기하면 발끈하는가? 남들이 당신에게 반응하는 모습, 특히 비언어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에서도 태도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 당신과 있으면 사람들이 초조해하거나 방어적이 되는가? 당신은 어머니나 아버지 역할을 해줄 사람을 잘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는가? 당신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각각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나면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적대, 초조, 회피, 우울, 원망이라는 대표적 부정적 태도 유형은 누구라도 꺼리기 마련이다. 

 

인간 본성의 9번째 법칙은 내 안의 어둠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똑똑하고 정치적 재능이 있었지만 본인 성격의 어두운 면을 가늠하지 못할 때 닉슨 대통령 같은 비극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내면의 그림자 특징이 눈에 띄는 유형이 있는데, ‘남다른 자신감, 유난히 착하고 상냥함(수동적인 공격성을 가진 매력남과 매력녀), 대단한 도덕적 청렴성(광신도), 성인군자 같은 아우라, 터프 가이, 어마어마한 지성(완고한 이성주의자), 트렌드세터이자 허영꾼, 극단적 사업가’ 같은 강한 특징들은 ‘정반대의 특징 위에 놓여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켜 그 밑에 놓인 것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인간 본성의 10번째 법칙은 상대의 시기심을 건드리지 않는 현명함이다. 이 장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셜리가 친구인 줄 알았던 제인의 시기심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았던 사례가 소개된다. 시기심이 가장 흔하게 발동되고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인데, 역설적이게도 시기심을 느끼는 사람은 처음부터 친구가 되려는 경우가 많다. 시기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독이 되므로 시기하는 자는 시기 대상 가까이에서 친절한 가면을 쓰지만 머릿속에서는 상대를 부정적 대상으로 설정한다. 이런 사고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에 대한 우호감이 적대감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상대에 대한 나쁜 행동을 합리화한다. 우정이 깨지는 배신의 원인은 대부분 시기심이다.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시기심을 겪는다. 재산, 지능, 매력, 재능 등 나보다 우월한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인데, 약간의 조롱이나 퉁명스러운 발언 같은 ‘수동적 시기심’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시기심을 드러내는 미세 표정(특히 첫인상에서 가장 노골적), 독설 같은 칭찬, 험담(시기심을 숨기기 위해 흔히 동원되는 위장술), 칭찬하면서도 약점을 건드리는 밀고 당기기 등 ‘능동적 시기심’의 신호는 파악해두는 게 좋다. 남보다 시기심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모두까기 인형, 자기도취형 게으름뱅이, 지위 집착, 권력자의 껌딱지, 높은 지위에서 초조해하는 상사 등이 이런 유형이다. 지위가 바뀌었을 때 시기심이 가장 발동하게 되는데, 자조적인 농담을 늘어놓고 남들이 성공을 잘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게 최선이다. 연예인과 유명인들은 피할 방도가 없다는 게 난관이다. 세월호 가족의 단식 투쟁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는 이들까지 나올 정도로 ‘샤덴프로이데(남의 불행을 보고 느끼는 기쁨)’가 넘쳐나고 있는데, ‘미트프로이데(함께 기뻐하기, 니체)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 본성의 11번째 법칙은 자신이나 타인에게서 과대망상의 신호가 없는지 살피고 자신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일이다. ‘훌륭하다는 감정은 오직 일, 업적, 사회에 대한 기여와 관련해서만 느끼자.’ 파라마운트픽처스, 디즈니를 이끌었던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은 성공의 주된 원동력이 본인이라고 생각한 망상으로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과대망상은 자기중심적 리더들만 있는 게 아니다. ‘남보다 뛰어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내가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고 싶은 우리의 깊은 욕구’에서 연유하는 인간 본성의 내재적 특성이다.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하인즈 코헛에 따르면 과대망상은 아주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어머니와 완전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분리된 나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나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고 우리는 나를 먹여주는 어머니의 가슴이 실제 나의 일부라고 믿는다. 우리는 전능했다. 그저 배고픔 같은 어떤 욕구를 느끼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어머니가 와서 그 욕구를 충족시켜줬다, 마치 나에게 어머니를 조종할 수 있는 어떤 마법 같은 힘이 있는 듯이 말이다. 그러다가 서서히 인생의 두 번째 단계를 지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현실과 마주한다. 어머니는 나와 분리된 존재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전능한 게 아니라 나약하고 작고 의존적인 존재였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깨달음이었고 이후 많은 행동의 근원이 됐다. 우리는 내 주장을 펴고, 내가 그렇게 무력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내가 갖지 못한 힘을 공상하려는 깊은 욕구가 생겼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종종 벽을 통과하거나 하늘을 날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상상한다. 아이들이 슈퍼 히어로 이야기에 끌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몸집이 작지는 않지만 내가 하찮은 존재라는 인식이 더 강해진다. 내가 친척들, 학교, 이 도시뿐만 아니라 70억이라는 사람으로 가득한 지구에 속한 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의 생(生)은 비교적 짧다. 내가 가진 기술인나 지적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너무나 많은 것들, 특히 내 커리어든가 글로벌 트렌드 같은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죽을 것이고 금세 잊힐 테고 영원 속에 묻힐 거하는 사실은 꽤나 견디기 힘든 진실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내가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고 싶다. 날 때부터 조그만 존재라는 사실에 항의하고, 자아인식을 확장하고 싶다. 서너 살 때 무의식적으로 경험한 것들이 평생 나를 괴롭힌다. 우리는 어느 순간 나의 작음을 인식했다가 다음 순간 또 그것을 부정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우월성을 상상할 방법을 찾게 된다.

자신이 비교적 작은 존재임을 깨달아야 하는 이 두 번째 단계를 유아기에 겪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나중에 더 깊은 형태의 과대망상에 취약해진다. 응석받이로 자라 버릇없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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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인간은 이런 과대망상적 욕구를 종교에 쏟을 수 있었다. 고대에는 부모에게 오랜 세월을 의존한 후에만 내가 작다는 인식에 이르는 게 아니었다. 서슬 퍼런 자연의 힘과 비교했을 때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느낄 때도 그런 인식이 생겼다. 신이나 정령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힘이 얼마나 작은지를 깨닫게 하는 자연의 광포한 힘을 대표했다. 그 힘을 숭배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나 자신보다 훨씬 큰 무언가와 연결됨으로써 내가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어쨌거나 내 부족이나 도시의 운명은 신이나 하느님이 돌봐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라는 개인의 영혼도 돌봐주었고, 이것은 우리가 중요한 존재라는 신호였다. 우리는 단순히 죽어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수백 년 후 비슷한 식으로 우리는 이 에너지를 우리가 숭배하는 리더들에게 쏟아부었다. 대단한 대의를 대표하거나 미래의 유토피아를 홍보하는 사람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프랑스 혁명, 마오쩌둥과 공산주의 같은 것들에 쏟아부었다.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는 종교나 훌륭한 대의가 그런 구속력을 상실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것을 믿기 힘들어졌고, 더 큰 힘과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과대망상적 에너지를 충족시키기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더 크고 중요한 존재처럼 느끼고 싶은 욕구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이 욕구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졌다. 다른 분출구가 없다 보니 사람들은 이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한다. 그들은 스스로 훌륭하고 우월한 사람처럼 느끼고 자아인식을 확장할 방법을 찾아낸다. 이런 사실을 자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들이 이상화하고 숭배하기로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 때문에 우리 중에는 과대망상적 경향을 가진 개인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 외에도 과대망상이 증가하는 데 기여한 요인들이 있다. 첫째, 어릴 때 응석받이로 관심을 독차지했던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 둘째, 상대가 아무리 높은 수준의 훈련과 경험을 가졌고 스스로 그것들을 갖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어떤 종류의 권위나 전문성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 왜 저들의 의견이 내 생각보다 더 타당해야 해?’ …… 셋째, 기술 덕분에 인생의 모든 게 온라인에서 긁어모으는 정보처럼 빠르고 간단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과대망상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린 것은 소셜 미디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나의 존재를 확장할 수 있는 거의 무제한적인 힘을 갖게 됐다. 내가 수천 명, 수백만 명의 관심과 예찬을 받고 있다는 착각이 생겼다. 과거의 왕이나 여왕이 누리던, 혹은 심지어 신들이 누리던 그런 명성을 가지고 언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어 그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해 균형 잡힌 감각이나 현실적인 태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ㅡ 「law 11. 과대망상의 법칙 ? 나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평가한다」  

 

과대망상을 높은 수준의 만족감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 욕구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키우기보다 간단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나 단일 프로젝트로 에너지를 집중한다.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현실 속 피드백과 비판을 통해 더 높은 단계를 모색한다. 우리의 능력치보다 살짝 높은 도전을 찾아내는 성취할 때 훌륭해지고 싶은 욕구는 만족된다. 그다음은 더 좋아질 테고.

 

인간 본성의 12번째 법칙은 나에게 맞는 성 역할 찾기이다. 우리는 누구나 남성적 속성과 여성적 속성을 갖고 있다. 사회에서 일관된 정체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그런 속성들을 억누르고 우리에게 기대되는 역할에 맞추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는데, 우리 성격을 구성하는 귀중한 축을 상실하고 사고와 행동 방식이 경직된다. 내 안의 다양한 측면을 끄집어낼 때 창의력이 방출되고 사고가 유연해진다. 젠더 투영의 여러 유형은 책 속에서 확인해 보시라.

 

정교한 본능에 의존해 행동하는 다른 생물과 달리 타고난 본성상 인간은 방향성을 갈망한다. 인간 본성의 13번째 법칙은 지루함, 불안, 초조, 스트레스, 우울 같은 기분, 남들의 의견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표류하지 말고, 인생의 소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침 삼아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이나 전태일 열사 같은 사람들이 그런 예이다. “내부의 가이드 시스템을 따라갈 경우 목표를 상실한 우리를 괴롭히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중화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긍정적 감정으로 바뀐다. …… 목적의식이 있으면 우리는 덜 ‘불안’하다. 내 잠재력의 일부 또는 전부를 실현하면서 전체적으로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크든 작든 내가 이뤄놓은 다양한 것들을 뒤돌아볼 수 있다. …… 내면의 회복력이 생겨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고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이런 자각이 인생의 닻이 되어준다. 이렇게 가이드 시스템이 생기고 나면 ‘초조함’과 ‘스트레스’를 생산적인 감정으로 바꿀 수 있다. …… 목적의식이 있으면 ‘우울함’에 덜 빠진다.” ‘쾌락, 돈과 지위, 관심, 권력, 그저 가담하는 대의, 사이비 종교 같은 과도한 신념, 세상에 대한 냉소주의는 ’가짜 목적‘이다. “더 우월하고 덜 우월한 소명이란 없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욕구와 성향에 맞는 소명을 찾아서 힘을 내어 개선하고 경험으로부터 꾸준히 배우는 것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위대한 것 앞에서 늘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만약 사람들에게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위대한 것을 모두 빼앗아버린다면, 그들은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절망 속에 죽을 것이다. 인간에게 헤아릴 수 없는 것, 무한한 것은 그가 살고 있는 작은 행성만큼이나 꼭 필요하다.”

ㅡ 표도로 도스토옙스키

 

 

우리는 자신의 성격 속에 녹아 있는 사회적 인격을 잘 모른다. 소속감 속에 빠져들고 싶어 하고 그 속에서 연기하며 쉽게 감정에 전염되고 과잉 확신에 빠지는 등 집단 속에서 활동할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우리가 속한 첫 번째 집단 ‘인류’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 본성의 14번째 법칙은 집단의 영향력에 저항하는 것이다. 집단 내에서 우리의 자동적인 반응이나 남들을 흉내 내려는 성향은 우리 본성의 가장 원시적인 뿌리이다. 우리는 우리가 문명화되고 교양 있으며 자유의지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집단행동은 이런 신화를 산산조각 낸다. 마오쩌둥이 선동한 ‘문화대혁명’은 인간 본성을 바꾸려고 한 시도였다. 이 실험은 인간 본성을 뿌리 뽑을 수 없고 인간 본성을 바꾸려고 하면 다른 모양, 다른 형태로 다시 출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마오쩌둥이 바랐던 새로운 혁명 사회는 그를 숭배하는 가장 억압적이고 미신적인 중국의 봉건 체제를 더 닮아 버렸다. 외부인에 대한 불신이나 그들을 악마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와 차별 행동 등은 선조들 시대에는 전염병의 위험이나 공격적인 부족 경쟁에서 비롯됐지만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집단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리더를 둘러싼 모사꾼, 말썽꾼, 게이트 키퍼, 배후의 조종자, 궁정 광대, 공감의 여왕, 총신과 동네북 유형들이 가득한 집단이 아니라 협업하며 의사 결정을 내리는 ‘집단지성’이다. 

 

인간 본성의 15번째 법칙은 따르고 싶은 리더십 기르기이다.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적개심과 반항심을 가지듯이 인간은 늘 양면적인 감정을 느낀다. 권력자에 대해서도 두려워하면서도 얕보는 이중적 감정이 작동한다. 권위나 리더를 업신여기는 풍토는 우리 문화 전반에 퍼져 있는데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 주었다.

 

“이렇게 양면성을 느끼는 데는 강력한 하나의 감정만 느끼는 게 겁이 나는 탓도 있다. 강력한 하나의 감정만 느끼는 것은 일시적으로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내 의지가 부정될 것만 같아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반대되는 혹은 상충하는 감정으로 균형을 잡는다. 또 일부는 우리의 기분이 계속 바뀌고 중첩되는 탓도 있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우리는 내 감정의 양면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복잡한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단순한 설명에 의존하는 편을 선호한다. 주위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감정을 최대한 소화하기 쉽게, 단순하게 해석하려고 한다. 실제로 밑바닥에서 흐르고 있는 감정의 양면성이 작용하는 순간을 포착해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아주 정직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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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최근의 성공이나 실패에 따라 금세 리더에 대한 평가가 뒤바뀐다는 것, 순식간에 지지와 존경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은 뉴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변덕이 현대에 와서 생긴 현상이라고 믿고 싶을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극히 민주적인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 조상들은 현대인들보다는 훨씬 더 순종적이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참 옛날로 돌아가 토착 문화나 초기 문명을 살펴보더라도 한때는 존경받는 족장이고 왕이었던 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은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노쇠한 신호가 보여서, 전투에서 져서, 갑자기 가뭄이 들어서(신이 더 이상 그에게 은총을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혹은 집단을 희생시키고 그의 핏줄만 편애했다는 것이 죽임을 당하는 이유였다. 이런 처형식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리더에 대한 적개심을 마음껏 방출하는 축제의 순간이었다. 이에 대한 수많은 예를 제임스 프레이저(James Frazer)가 쓴 《황금가지》 에서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조상들은 한 개인이 권좌에 오래 머무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했을 것이다. 참신하고 새로운 리더가 더 조종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그들의 복종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경계심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더 이상 우리가 족장의 목을 베지는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선거를 통해 혹은 미디어를 통해 상징적으로 그들을 처형한다. 권력자의 의례적 추락을 목격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비가 오지 않는다고 권력자를 탓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경제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그들을 탓할 것이다. 경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들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비가 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신의 은총이나 행운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감정의 이중성이나 불신이라는 측면만 살펴본다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리더 중에는 이런 변덕에 맞서 보호막을 쳐둘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종의 공고한 존경과 지지를 얻어내서 오랜 기간 동안 위대한 일을 성취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나 고대 인도의 아소카 황제, 고대 그리스의 페리클레스(1장 참조),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엘리자베스 1세가 바로 그런 리더들이다. 좀 더 현대로 와본다면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워런 버핏, 앙겔라 메르켈,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권력은 본래의 의미에 맞게 ‘권위’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권위(authority)’라는 단어는 ‘늘리다, 증강시키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auctoritas’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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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이 시대의 비생산적 편견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권위라는 개념을 오해하고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사람들은 권위와 리더 일반을 혼동한다. 세상의 너무나 많은 리더들이 본인의 권력을 지키고 자신의 잇속만 채우는 데 급급해 보이기 때문에 권위라는 개념 자체에 의심을 품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우리는 아주 민주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대체 왜 우리가 권위 있는 자를 따르며 열등한 역할을 자처해야 하는 거야?’ 우리는 그렇게 자문할 수도 있다. ‘권력자들은 맡은 일만 하면 돼. 권위란 왕이나 여왕 시대의 유물이야. 우리는 거기서 한참이나 더 진보했어.’

이렇게 권위나 리더를 업신여기는 풍토는 우리 문화 전반에 퍼져 있다. 우리는 예술에서 더 이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비평가고 개인이 기준이다. 그 누구의 취향이나 판단도 우월한 것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육아가 권위의 표본으로 여겨졌으나 더 이상 부모는 자녀에게 특정한 가치관이나 문화를 심어주는 권위자로 보여지길 바라지 않는다. 부모는 자신이 약간의 지식과 경험을 더 가진 자녀와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역할은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고 아이들을 계속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나이만 더 많이 먹은 친구인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평등을 추구하는 관계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학습은 재미난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리더들은 마치 자신이 관리자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뒤에 서서 집단이 옳은 결정을 내리게 도와주고, 모든 것을 합의에 따라 실행하는 사람 말이다. 혹은 요즘 들어 이용 가능하게 된 대량의 정보를 흡수해 숫자를 해석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이자 진정한 권위자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나 아이디어는 모두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예술에 권위가 없다면 반항할 대상도, 전복시킬 운동도, 동화되거나 거절할 깊은 생각도 없다. 점점 더 빠르게 점멸하고 사라지는 무정형의 트렌드가 있을 뿐이다. 권위자로서의 부모가 없다면 부모의 생각을 거부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춘기의 반항이라는 중요한 단계를 경험할 수 없다. 방향을 상실한 채 어른이 되고 그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를 탐색할 것이다. 나보다 우월하고 존경할 가치가 있는 선생님이나 대가가 없다면 그들의 경험이나 지혜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나중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더 나은 생각으로 그들을 넘어서려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다.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 트렌드를 예견하고 우리에게 장기적 해결책을 안내해줄 리더가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는다. 그리고 그 상태가 일상이 되어버리면 늘 안내자로서 어떤 권위를 필요로 해온 우리 인간은 가짜 권위에 쉽게 빠져버린다.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급증하는 그런 가짜 권위 말이다.”

ㅡ 「law 15. 변덕의 법칙 ? 권위란 따르고 싶은 모습을 연출하는 기술이다」

 

 

 

 

‘리더인 척, 방향성이 있는 척, 착각을 만들어내지만 실제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비전은 없는 독재자’, ‘그들이 가진 아니디어나 행동은 모두 본인의 자존심을 만족시키고 본인이 통제한다는 느낌을 높여주는 것들뿐’, ‘대중이 듣고 싶은 것을 영리하게 흉내 냄으로써 본인이 집단을 잘 보살피고 집단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는 착각을 만들어내는 리더’라는 말에 트럼프가 생각났다. 

 

인간 본성의 16번째 법칙은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간파하는 일이다. 대기업가로 성장한 존 D. 록펠러는 상대에게서 그것을 잘 간파했고 그 힘을 행사하는 데에서는 더욱 노련했다. 인간의 공격성은 단순히 남을 해치거나 남의 것을 빼앗고 싶은 충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근원적 불안으로부터 유래했다.

 

“만성적 공격자의 경우에는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중요한 자질들이 있다. 첫째, 공격자는 무력감이나 초조함을 잘 견디지 못한다. 우리에게 좌절감이나 불안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 종종 감정의 방아쇠가 되어 그들에게는 훨씬 더 강력한 반응이나 분노를 유발할 수 있다. 만성적 공격성이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훨씬 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남자들이 여자보다 의존성이나 무력감이라는 감정을 잘 감당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자 유아를 통해 목격했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직장 혹은 다른 곳에서 본인의 지위를 더 불안해한다. 남자들은 또한 끊임없이 본인의 주장을 내세우고 타인에게 끼치는 자신의 영향력을 가늠하려고 한다. 이들의 자존감은 권력이나 통제, 자기평가에 대한 존중의 감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종종 남자에게 공격적 반응을 자극하는 것이 더 쉽다. 어찌 되었든 공격자는 우리보다 더 민감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상대가 그런 유형임을 알게 되면 그들의 자존감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들을 비판해서 무심코 그들의 분노 반응을 자극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한다.

또 하나 공격적인 행동의 흔한 측면은 쉽게 중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골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본인의 욕망을 드러내고 본인의 조종을 통해 사람들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공격자는 아드레날린이 한껏 분비되는데 이게 중독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자극과 흥분을 느낀다. 그에 비해 사회적으로 더 쉽게 용인되는 방식으로 지루함을 달래는 것은 뜨뜻미지근하게 보일지 모른다. 쉽게 돈을 버는 데서 오는 스릴은 분명 미심쩍은 투자를 하는 월스트리트 브로커나 무언가를 훔치는 범죄자처럼 대단히 중독적이다. 언뜻 보면 이는 자기파괴적으로 보일 수 있다. 각각의 공격적 폭발로 인해 더 많은 적과 의도치 않은 결과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격자는 감히 도전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점점 더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데 능한 경우가 많다.”

ㅡ 「law 16. 공격성의 법칙 ? 상냥한 얼굴 뒤의 적개심을 감지한다」 

 

 

수동적 공격자들은 본인이 교묘하게 어떤 식으로든 당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욕구가 있다. 이런 공격자들에 대하는 전략은 교묘히 그들의 행동을 반사해서 보여주거나 그들이 동요할 상황을 만들어 고민에 빠지게 만들어야 한다. 동정심을 유발하는 공격자, 의존적인 공격자와는 거리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고, 독한 말을 뱉어놓고 “농담도 못하냐?”라는 말을 하며 의심을 심는 공격자에게는 그들의 발언이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자신이 잘못해놓고 내게 책임 전가하는 공격자, 독재적 공격자와는 관계를 끊어야 한다.

 

인간 본성의 17번째 법칙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루이 16세와 조르주 자크 당통은 같은 시기에 최고의 지위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루이 16세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왕실의 권위만 내세웠다가 비극을 맞았다면, 당통은 본인이 시작한 공포정치가 실수였고 멈출 때라는 것을 알았지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라이벌들에게 제거된다. “지식인들은 종종 제일 마지막에 가서야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보곤 한다. 이론과 관습적 틀에 너무나 깊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당신은 전체적 분위기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과거와 어떻게 멀어지고 있는지 감지해야 한다. 시대정신을 느끼고 나면 배후에 있는 것이 뭔지 분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만족하지 못하는가 사람들이 정말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왜 이 새로운 형식을 향해 몰려드는가?” 

 

인간 본성의 18번째 법칙은 죽음을 깊이 인식함으로써 삶의 모든 측면을 더 강렬히 경험하는 일이다. 메리 플래너리 오코너는 작가로 떠오를 즈음 관절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전신 홍반성 루프스 진단을 받았다. 사랑하던 아버지도 같은 병으로 마흔다섯 나이로 요절했던 터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죽음에 대한 고민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고 자신의 에너지를 작품에 집중하려 했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바랄 수 없으니 그녀가 얻는 모든 것이 무언가 의미를 가질 것이었다. 불평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질 필요가 없었다.” 죽어가며 심각한 육체적 고통 속에 있는 그녀는 친구들과 방문객, 서신을 주고받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람들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 죽음으로 대표되는 궁극의 현실을 철저히 이해한 그녀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더 깊어졌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자각을 요리조리 피하며 내 앞에 시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회피하는 태도는 우리가 다른 불쾌한 현실이나 역경을 대처할 때도 하나의 패턴을 만들어놓았다. 우리는 쉽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균형감각을 잃고 우리의 운명에 대해 남 탓을 한다. 분노하며 나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거나 각종 오락으로 눈을 돌려 그 통증을 빨리 무디게 만들 방법을 찾는다. 이런 회피는 곧 습관으로 만들어져 전반적 불안과 공허함을 가져온다. 이것이 평생의 패턴이 되기 전에 우리는 실질적이고 지속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몽롱한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우리도 움찔하지 않고 내 죽음을 마주 볼 수 있어야 한다. 금방 사라질 죽음에 대한 추상적 명상 같은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죽음이 대표하는 불확실성에 제대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른 역경이나 이별처럼 죽음 역시 바로 다음 말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자각하는 것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내가 우월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다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계기로 더 깊은 공감을 느끼고 유대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죽음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다.”

ㅡ 「law 18. 죽음 부정의 법칙 ? 인간의 운명인 죽음을 생각한다」

 

 

1665년 런던에 페스트가 돌아 거의 10만 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는데, 당시 다섯 살이었던 대니얼 디포는 60여 년이 지난 후 많은 조사와 삼촌의 일기,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역병의 해 일지 Journal of Plague Year』을 썼다. 전 세계 사망자 38만 명이 넘어가고 있는 코로나19 영향인지 2020년 4월 『페스트, 1665년 런던을 휩쓸다』 (부글북스)란 제목으로 국내 번역되었다. 전염병은 많은 혼란과 적개심이 나타나는 때이기도 하지만 동료 시민과 더 높은 수준의 공감을 나누며 우리 사이의 반목을 제거하고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계기도 만들어줬다. 

         

“인간이 위대해지기 위한 나의 처방전은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에 대한 사랑)다. 있는 그대로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미래에도, 과거에도, 영원히. 필연적인 일을 단지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ㅡ 니체 

 

코로나19라는 죽음의 문지방을 넘으며 우리는 어떻게 바뀔까. 불안과 망상과 중독은 좀 줄어들까. 사람들은 서로를 좀 더 사랑하게 될까. 인생이 나한테 가하는 고통과 남들이 나를 위해 해주지 않는 일들을 불평하고,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면서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더 멀리 도망가는 반복을 재차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서.

 

 

 

에필로그)

로버트 그린의 3부작 『권력의 법칙』, 『유혹의 기술』, 『전쟁의 기술』을 다 읽고, 『인간 본성의 법칙』은 두 번 읽었다. 매번 엄청난 분량에 힘들었는데, 저자의 저술 특징인 역사적 인물의 사례를 통한 스토리텔링으로 가독은 수월했다. 다른 책에서도 공통으로 느꼈던 점인데, 이 책에서도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기대를 사람들 눈앞에서 흔들어라” 같이 자기 계발 특유의 선동적인 표현이 좀 거슬렸다. 잘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세상이 더 나아지고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걸 바라는 저자의 맘이 이번 책에서 잘 느껴져서 큰 우려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유혹의 기술』을 요점 정리해 나온 『인간관계의 법칙』(2020.2, 웅진지식하우스)처럼 내용을 좀 더 압축해서 전달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린 선생님이 길게 쓰려는 법칙을 고수하시는 게 아니라면. 인물 사례를 소설처럼 상술하시는데 그 부분이라도 줄여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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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 몸에 밴 상처에서 벗어나는 치유의 심리학
다미 샤르프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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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로 활동한 다미 샤르프의 첫 책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의 원제는 ‘오래된 상처도 치유될 수 있다 Auch alte Wunden konnen heilen’이다. 흔히 트라우마를 쇼크 트라우마, 즉 한 번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생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저자는 그런 경우를 ‘발달 트라우마’라고 명명한다. 만성적으로 존재감을 무시당하거나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도 트라우마로 남는다. 어린 시절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험은 극단적인 사건이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무지, 선입견, 능력 부족 때문에 벌어진다. 어떤 사건의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우리가 위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야 한다.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를 가장 먼저 지배하는 것은 본능이고 이 때문에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생존 메커니즘으로부터 나오는 반사 행동은 투쟁, 도피 반응, 제압당할 때의 경직 반응 등이다. 

                            

[쇼크 트라우마가 유발하는 행동]

* 교감 신경계의 과잉 활성을 암시하는 증상들

●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무엇인가를 하거나 움직인다. “나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 신경과민

● 집중력 저하

● 분노 발작

● 불면증

● 긴장

● 다른 사람을 잘 신뢰하지 못함

● 의심

● 많은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림

● 일중독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

●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환각 상태’를 갈망

● 초점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낌

● 진정시키는 약물 자가 처방

 

* 부교감 신경계의 과잉 활성을 암시하는 증상들

● 우울증

● 무의미하다는 느낌

●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

● 멍한 상태(예를 들어, 텔레비전 시청 중이나 컴퓨터 앞에서 또는 책을 읽을 때)

● 무기력과 에너지 부족

● 혼자이고 단절된 느낌

● 삶이 유리벽으로 차단된 느낌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롤러코스터 효과 때문에 삶의 기쁨과 편안함을 느끼는 단계가 거의 없어 삶이 더욱 힘들다. 쇼크 트라우마의 이면에 발달 트라우마가 감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쇼크 트라우마나 발달 트라우마는 감정 기복이 심하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다. 불면증과 불안, 불안과 공황,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분노 발작,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하기에) 변덕, 쉽게 놀라기, 과잉 행동, (긴장 이완과 다른) 흥분 저하, 탈진, 우울 등이다. 과잉 흥분 상태와 과잉 이완 상태를 오락가락하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저녁에 집에만 돌아가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들은 낮에는 무기력하고 멍한 상태지만 밤에는 내적 동요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자가 처방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인위적인 진정제(음식, 술, 컴퓨터, 텔레비전, 흡연 등등)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이렇게 신경계가 자가 조절 능력을 상실한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사람은 엄청난 피로감을 느낀다. …… 스트레스를 받으면 간은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아 해독 작용을 한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간은 언젠가 완전히 지쳐버리게 된다. 너무 자주 아드레날린을 만들어내야 하는 부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신장도 과도하게 일을 하면 만성적으로 싸워야 하는 상태가 되어 더 많은 아드레날린을 통해서만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받게 된다. 이런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만성 피로 또는 번아웃 증후군에 이른다.” 고통의 핵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자기 조절’이다. 심리 치료를 통해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한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자기를 조절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뇌의 오래된 부위와 자율 신경계의 조정을 받지만 내분비계의 조정을 받기도 한다. 이때 자율 신경계는 각성 상태와 이완 상태에서 우리의 흥분을 조정하고 조율한다. ‘자율’이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자율 신경계는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로 나뉘는데, 교감 신경계는 흥분을, 부교감 신경계는 이완과 안정을 담당한다. 즉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는 서로 제어하고 활동과 휴식 주기를 조정하는 역할로 둘 다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의 반응에 무디거나 바람직한 기분 전환법을 모른다. 일상생활 중에도 기분 전환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표면적인 생동감이 그 사람의 자아 상이나 열정적인 성격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진정한 변화는 쉽지 않다.

 

신체 심리치료 한계에서는 사람에게 다섯 가지 인생 과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인생과제 1. 나는 안전한가?

인생과제 2. 나는 내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가?

인생과제 3. 나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는가?

인생과제 4. 나에게는 ‘자기효능감’이 있는가?

인생과제 5. 나는 사랑과 성에 관대한가?

 

학습 과제, 자기 조절, 애착 관계는 생각에만 반영되지 않고 몸과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우리의 성격과 태도를 만든다. 우리 몸이 곧 나다. “우리의 이성과 감정은 몸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몸을 느끼지 못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공허해질 뿐”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심리 치료에서는 인식보다 몸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생과제 1 나는 안전한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몸을 통해 감정을 느껴야 자기 자신에게 편안해져서 남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데 이들은 몸으로 뭔가를 잘 느끼지 못한다. 항상 모든 상황에서 어떤 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몸을 통해 생생하게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신경 심리학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뇌의 변연계가 손상을 입어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차를 마시고 싶은지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도 결정하기 힘들어한다고 한다. 사람이라는 것이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리려면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내부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니 벌어지는 일이다.

유명 신경 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우리가 좋고 싫은 것을 구분하는 것을 ‘체감각 표지’ 또는 ‘보디 마커body marker’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우리가 몸의 어떤 감각을 통해 원하는 것이 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바탕에는 몸의 감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만약 내 가슴이 펴지거나 목이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 몸의 감각은 내면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이 감정을 바탕으로 선택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데 몸의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매우 중요한 정보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원천」

“예전에 신체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베개나 매트리스에 주먹질을 하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것 때문에 종종 해리 증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이 갖고 있는 격분의 감정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한 것이어서 컨트롤할 수가 없다. 육체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결과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신체 증상은 얕은 호흡인데 이를 ‘절약 호흡’이라 부른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저장하기 힘들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뺏긴다.

이들의 대부분은 죄책감과 수치심이 강하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수치심을 유발한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긴 과정을 거친다.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를 배신하고 계속해서 부모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살았던 자신을 깨닫는 것은 심리치료의 아주 중요한 발걸음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굴욕감을 주거나 무시하고 때리거나 심지어는 성적 학대를 가해도 사랑을 갈구한다. 명백하게 가해 행위를 한 부모여도 충성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특징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

이런 오래된 상처에 맞서기 힘든 이유는 기억이 구조화되기 힘들다는 점도 있다. 머릿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끔찍한 기억과 현재 나의 감정이 어떤 연결 고리로 이어져 있는지, 그것을 구조화하는 데만 한참이 걸리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할까? 나는 사람들이 이 용서라는 또 다른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타인(부모도 타인이다)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용서’가 최선의 수단이 아니다. ‘용서’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완전히 다 극복하는 경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한다. 가해자를 용서할지 말지는 제삼자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에 의해서 용서를 강요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이 경우가 더 위험하다. 분노 표출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내면에 잠재돼 있는 상처는 분노를 유발하고 이 감정은 어디론가는 향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인생과제 2 나는 내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가?]

「태어나서 충분히 관심받지 못한 사람들」

“태어나서 처음 2년 동안은 아이의 욕구와 정황성情況性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아이는 서서히 욕구와 감정의 차이를 구분하기 시작하고 구체적인 말로 감정을 표현한다.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를 인지하고 이에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는 ‘예’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배우고 이 단어의 의미를 구분한다. 이 단계에서 만약 계속 결핍을 경험하면 이후 뚜렷하게 특별한 패턴이 만들어진다.”

ㅡ《2장 인생의 다섯 가지 과제》

 

 

어린 시절에 관심이 결핍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결핍감을 느낀다. 관심이 결핍된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욕구를 잘 표현하지 못하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정적이며 체념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어 어떻게 해도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욕구를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계속 갈구하는 사람과 자기의 욕구를 아이 때부터 이미 포기해버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다시는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부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립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상반된 두 가지 태도는 완전히 다른 생활 방식으로 이어진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익숙했던 상황으로 다시 만들어버리는데, 거절을 당했을 때 빨리 체념하거나 뭔가를 미리 포기해버린다. 공허함과 무력감이 만들어내는 결핍감과 고립감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꺼려 하게 돼 더 악순환이다. 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여기서 자기가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인식과 행동에는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인 메커니즘이 있다. 과거 경험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과 해석하는 것에는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시간적으로 먼저 떠오른 개념이 이후에 제시되는 자극의 지각과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즉 가치 판단이 들어간다.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우리는 지각을 통해 상황을 해석한다. 또한 갈등이 생겼을 때는 자신을 반응하는 사람이라 설정하지, 행동하는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를 갈등 유발자로 인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고 여길 뿐이다. 이런 맹점 때문에 멀리 있는 것보다 바로 옆에 있는 자극을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프라이밍 효과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던 좋았던 일은 망각하고 계속해서 같은 경험, 부정적인 경험을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어른이 된 이후 매를 맞거나, 거부당하거나, 불친절한 대접을 받지 ‘않는’ 경험을 천 번도 넘게 했다.” 좋은 경험들을 되돌아보는 것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회피, 설탕, 담배, 쇼핑, 게임, 섹스, 일, 스포츠 등 모든 것에 대한) 중독은 대부분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모호한 갈망을 만났을 때 나타난다. ‘자기 조절의 결핍’은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인데, 감성적인 내성이 떨어져 자기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없게 되는 증상이다. 호불호의 욕구를 잘 느끼지 못하고 명확히 표현할 수 없게 되니, 슬픔과 기쁨도 제대로 표출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갖고 있는 것에 행복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배우는 것이다.”

 

‘거울 반응’이란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와 나의 태도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는 행위다. 아이가 잘못된 거울 반응으로 자란다면 잘못된 자아상을 갖게 된다. 뭔가를 성취할 때만 칭찬받는다면, ‘존재’ 자체가 아니라 ‘행위’에만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니 행동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이런 가면적 행위들을 현실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방임’으로 만들어지는 거울 반응도 있는데, 양육자가 아이가 그린 그림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피드백을 받은 아이는 자신의 행위뿐 아니라 존재가 무가치하다고 느낀다(아, 이거 내 얘기다ㅜㅜ). 이렇게 잘못된 거울 반응을 받은 사람들은 너무 일찍 어른이 된다. 이들의 핵심적인 문제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냈다가 굴욕을 당할까 봐 두려워해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잘못된 거울 반응이 내면에 고착화돼 있어 타인을 잘 믿지 않으며 깊은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그런 관계가 생긴다 해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쉽게 상처를 주고 만다. 이들이 지닌 상처의 뿌리는 매우 깊어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기 혁신을 이룬다 해도 무력감과 허탈의 기본 정서에서 잘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이 숙지해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연습하기, 나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지 않기, 힘들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이다.

 

네 번째 인생과제 ‘자기 효능감’은 한 살 반에서 네 살 사이에 주어진다. 자기효능감을 배우는 시기는 아기가 모든 일에 ‘네’라고 답하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되는 시기와 겹친다.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는 시기로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자기감정을 갖게 된다. “자기 효능감은 주변을 자신의 힘으로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감정이자 능력이며 행복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자기 효능감의 반대는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이다. 이 개념은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이 만들어낸 것인데 그가 개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 실험은 유명하다.” 자기효능감이 없이 성장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시련이나 사건에 맞서서 싸워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효능감’이 생겨날 시기에 양육자가 “지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마” 같은 말과 좋지 못한 행동을 반복한다면 아이는 양육자의 눈치를 보며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죄책감을 기본 정서로 가지게 된다. 수치심은 생후 14개월 정도부터 느끼기 시작하고 죄책감은 사춘기와 청소년기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죄책감을 부추기는 “양육방식이 반복되면 “내가 나를 부인해야만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심리 구조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그 이면에 어마어마한 분노와 반항심이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웃으면서 ‘네’라고 해놓고서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이다. 이들의 장점은 인내심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미치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도 이들은 묵묵히 잘 견뎌낸다. 그 반면에 단점은 자기 안에 자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기를 속인다.” 이들이 숙지해야 할 것은 ‘타인을 배려하느라 정작 자신을 놓치지 말 것, 마음속으로 항상 평가하는 습관 내려놓기’ 이다.

 

다섯 번째 인생 과제는 만 세 살과 여섯 살 사이 남근기에 시작된다. 이 시기에 아니는 부모에게 선을 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이 감성적 존재이자 성적인 존재하는 것을 피력한다. 여러 가지 역할을 시도하고 자신의 감정을 훨씬 세분화해서 인지하고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성적 감각을 거부당하거나 성적인 부분을 강요받게 된다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많은 여성들이(때로는 남성들도) 성적 폭력을 당했음에도 “사실은 아무 일도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혹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이들은 왜 이런 어른으로 자랐을까? 아이들에게 성적 가해를 한 사람들 대부분은 잘못이 아이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에 이런 경험을 한 채 어른이 되면 많은 경우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어려워하는데, 이들은 스스로 감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성적 폭력을 당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 심각하게 신체적인 가해 행위를 하는 것이 성적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대부분 혼자 있는 경우에 당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아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아이는 솔직하게 말했을 때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양육자에게 심리적 단절감을 느끼고 고립된다. 이해받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이것이 ‘2차 트라우마’이다. (중략) 성추행은 30초도 채 걸리지 않지만 당한 사람은 평생 동안 그 기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끔찍하고 부당한 일일뿐 아니라 당사자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 전체가 비싼 개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페미니즘을 싸잡아서 욕하는 사람들은 성추행, 성폭행이 사람을 평생 얼마나 끔찍하게 괴롭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이건 정말 공감의 영역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안타깝다. 친밀함과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고 성적 욕구에도 무감각 내기 거부감을 가지게 된 이들은 사랑과 성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거절당할까 봐 불안한 마음이 강한데 이것은 관계의 주도권이 자기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경험을 못해 성취를 하고 효능을 발휘해야만 스스로를 가치 있다고 느낀다. 이들이 숙지해야 할 것은 ‘효용 가치가 없어도,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신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으며 성과 사랑이 동반된 관계라는 것을 알아가야 한다.’

 

저자는 치유를 ‘통합’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벌어진 이야기는 바꾸거나 지워버릴 수 없다. “트라우마 치유라는 개념은 내가 더는 과거에 내 모습으로 규정되지 않고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트라우마 경험을 성공적으로 통합했을 경우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고 부른다.” 예술가나 창의적인 사람 중에는 자신이 겪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예술이나 취미로 승화시킨 사람이 많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고 했지만 저자는 ‘행동이냐 존재냐’가 변화의 핵심 키워드라고 본다. 자기 조절력의 결핍은 내면의 불안으로 자주 나타난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큰 변화도 대개 며칠 동안만 유지되고 또다시 예전 패턴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매일 조금씩 지속적으로 발걸음을 떼어나갈 때 가장 잘 변할 수 있다. “특히나 트라우마는 뇌에서 특별한 자리, 뇌간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기억은 반사 작용을 일으키고 이성을 배제해버린다. 트라우마 경험은 두려움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강렬한 학습 효과를 발휘한다. 뇌는 이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보니 그 상황을 반복하게 되고 이는 좌절과 고통스러운 기억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 건 뇌의 구조 때문이다]

「뇌의 구조와 트라우마」

“삼부 뇌 가설은 미국의 뇌 과학자인 폴 매클레인Paul McLean이 만들었으며 트라우마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가설에 의하면 우리 뇌는 각각의 부분이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서로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달한다. 이것은 우리 뇌의 각 부위가 다른 부위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반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인데 우리의 삶과 어린 시절의 상처, 트라우마의 결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해부학상 뇌는 뇌간, 중뇌, 소뇌, 변연계, 신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구조는 수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뇌간은 약 5억 살로 가장 오래됐고 신피질과 대뇌피질이 10만 살로 가장 어린 부위다. 대뇌는 우반구와 좌반구로 나뉘고 두꺼운 신경 섬유 다발인 뇌들보로 연결되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신적인 건강과 우리의 성격에 중요한 모든 과정은 눈 바로 뒤에 있는 아래 전두엽에서 관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신경 심리학자인 대니얼 시걸Daniel Siegel4 박사는 주먹을 쥐면서 엄지를 손으로 감싸면 뇌의 모양을 가장 간단하게 상상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했다(엄밀히 말하면 양손 주먹을 엄지가 맞대게 해야 좌반구와 우반구를 잘 볼 수 있다). 손바닥 안쪽을 자신을 향해 돌리면 뇌의 앞부분 앞부분을 볼 수 있다. 손목과 손바닥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모든 본능과 신체 반응을 조정하는 뇌간을 보여준다. 손가락은 대뇌피질인 셈이다. 손톱과 손가락 첫 번째 마디는 전두엽 피질이 되는 것이다. 그 밑에 있는 엄지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를 나타낸다.

전두엽 피질에 대해서는 15년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는데 오늘날에는 성격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두엽이 잘 발달할수록 방해 요인들에서 자유롭다. 좌반구와 우반구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좌뇌와 우뇌가 얼마나 다른 기능을 하는지는 뇌 연구가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 박사의 영상에서 잘 볼 수 있다. 테일러 박사는 좌뇌 부위에 뇌졸중 증상을 겪은 적이 있다.”


조기 경보 시스템, 뇌간」

“뇌간은 모든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심장 박동과 호흡을 조절하고 수면과 깨는 것을 담당한다. 그 밖에 투쟁, 도피, 경직과 같은 우리의 생존 반사를 담당한다. 뉴로셉션이라는 위험을 감지하는 부분을 이용해서 뇌간은 변연계와 함께 주변을 감지하고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외부 자극을 스캔해서 위험이 감지되면 생존 반응을 일으킨다. 트라우마와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이해하려면 뇌간의 작동 방식을 알아야 한다. 뉴로셉션이란 뇌가 우리의 무의식 안에서 계속 우리 주위를 스캔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낯선 집에서 잠을 잘 때 이상한 소리에 갑자기 깰 때가 있는데, 이는 뉴로셉션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활동하면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신호다.

실제적인 위험이든 상상 속 위험이든 뇌간은 작동이 가능하다.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생존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미하지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암시가 있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생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특히 다중 미주 신경계의 일부인 등쪽 미주 신경이 조정하는 사태 반사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반응이다.”


감정의 본부, 변연계」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는 뇌간을 마치 옷단(라틴어로 림부스)처럼 감싸고 있는데 약 2억 년 전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넘어갈 때 발달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런 진화적인 단계를 통해 유대감, 감정, 기억이 생겨났다. 시상하부도 변연계에 속하는데 시상하부는 호르몬 조절을 담당한다. 호르몬 시스템은 자율신경계와 함께 우리의 동기를 조정할 뿐만 아니라 유대감, 욕망 등을 담당하며 몸과 뇌를 연결해준다. 변연계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편도체와 해마다. 편도체는 불안과 감정 조절에 매우 중요하다. 편도체는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밀접하게 작동한다. 만약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이 시스템에 부담을 줘서 장애를 불러일으키고 고통을 느끼게 된다.”

 

통합센터, 신피질」

“신피질은 가장 최근에 진화한 부위로 약 10만 년 전에 생겨났다. 이곳에서 인지, 집중, 논리, 계획과 같은 모든 복잡한 일을 관장한다. 이 뇌 부위는 출생 때 가장 덜 발달되어 있는데 이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신피질을 살펴보면 주름이 가장 눈에 띈다. 이런 주름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뉴런 신경 회로를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름 덕에 면적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주먹 쥔 손 모양으로 뇌의 모양을 짐작했던 것을 다시 떠올려보면 신피질의 뒷부분(손등 쪽)은 세상을 인지하고 앞부분(손가락 부분)은 추상적인 부분을 담당한다고 대략 말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생활을 하는 포유동물의 경우 안와 전두 피질(이마와 안구 뒤쪽)이 더 강하게 발달했다고 한다. 전두 피질에는 동작성 계획에 관여하는 전운동 피질도 있다. 흥미롭게도 공감의 중요한 구성 성분으로 통하는 이른바 거울 뉴런도 여기서 발견되었다.

우리 뇌에서 가장 많이 발달한 부분은 이마 바로 뒤에 있다(주먹 쥔 손으로 보면 엄지손톱 아래에 있는 첫 번째 손가락 마디다). 여기서 심리적인 건강을 위해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능들이 대부분 통합된다. 이 부분들이 오래된 뇌 부위이고 서로 아주 가까이 자리 잡고 있으며 뇌, 몸, 감정, 이성을 통합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부분은 우리가 상상 속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거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다. 이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도덕적인 사고를 하고 우리의 생각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전전두엽의 기능, 작업 기억력」

“신피질의 측면을 배외측 전전두엽이라고 하는데 이 부위는 정보를 임시로 저장하는 기능인 ‘작업 기억력’을 담당한다. 가령 우리가 글을 읽을 때 문장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업 기억력이 필요하다. 문장의 끝쯤에서 문장의 시작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 기억력은 자기 조절과 순간 집중력에 달려 있다. 자기 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면 기억력은 떨어진다. 전전두엽 부분은 뇌의 깊은 부위에서 전하는 정보를 평가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동기와 행동을 예측해서 그 사람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게 해준다. 이것이 바로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다.

이런 기능은 우리 자신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관찰하고 사회생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비언어적인 힌트를 알아채는 기능이다. 심리, 인간관계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이 기능을 발달시키고 높은 수준의 통합을 이뤄내는 데 큰 영향을 준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뇌 부위가 잘 발달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느끼고 그와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마음을 잘 느낄 수 있다.”

 

뇌에게 생각할 시간 주기」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처할 때 뇌는 크게 두 가지 결정 과정을 거치는데 첫 번째는 신피질에서 정보를 인지하고 해석하는 ‘더 높은’ 의사 결정 과정이고 두 번째는 뇌간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더 낮은’ 의사 결정 과정이다. 후자의 경우 짧고 빠르기 때문에 인간의 생존에 몹시 중요하다. 뇌간과 변연계의 조정을 받는 이 과정은 몸이 위험을 느꼈을 때 재빠르게 지휘권을 행사한다. 그렇게 되면 ‘더 높은’ 의사 결정을 하는 뇌 부위를 덮어버린다. 이런 상태에서는 새로운 행동 방식을 몸에 익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체로 이완된 상태에서만 새로운 행동 패턴을 익힐 수 있다.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사실상 학습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기억에 반응한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위 절차적 기억이다. 여기에 우리가 아주 일찍이 무의식적으로 배운 모든 행동 방식이 저장되어 있다. 우리는 머릿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기억으로 현재의 사건에 반응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현재가 아니라 기억에 반응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밥을 먹거나 길을 걷거나 일을 할 때에도 우리는 절차적 기억에 따른다. 하지만 이 안에는 어린 시절에 배운 행동 패턴들이 다 녹아들어 있다. 행동 패턴은 우리가 말을 배우기 전에 경험한 것들 혹은 어렸을 때 겪은 인상적인 경험 등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어린 시절의 상호작용은 우리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 기준을 정해준다.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행동 패턴으로 살아간다. 문제는 이런 패턴 중 잘못된 것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는 현실에 대응하는 내면의 적절한 반응이라고 여길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눈썹을 치켜들면서 나에게 강하게 모욕감을 주었다고 치자. 그러면 친한 사람이 눈썹을 치켜들면서 재미있는 농담을 던져도 나는 화들짝 놀라서 거부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남들이 그런 나에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여도 나는 부당한 현실에 정당하게 대응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몸을 제대로 관찰하기]

몸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명제가 약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세계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 뭔가 이성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이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지적인 인지 능력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식은 긴 변화의 첫 번째 발걸음일 뿐이다. 머리로 뭔가를 이해했다고 해서 행동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 그 자체이다. 몸을 통해 느끼고 파악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모든 형태의 트라우마는 항상 자기 자신과 몸을 분리하며, 다른 사람들과도 분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력 있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또 주변 사람들과도 분리되면서 도움받는 것을 힘들게 만들고 만다.

그러므로 몸을 버리고 사고할 수는 없다. 몸으로 감정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결속감을 느껴보자. 혀로 음식의 맛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의 피부에 접촉하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일. 인간관계에서 주고받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꼭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몸을 통해 잘 관찰하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각도 변하게 된다. 자신만 소외되어 있다는 감정도 줄어들고 불편했던 마음도 훨씬 잦아들 수 있다.”

ㅡ 《3장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다》

 

우리가 계획했던 일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마음과 달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는 건 오래된 뇌 부위들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뇌가 나다’ 같은 환원론으로 섣불리 단정하진 말자. 자극과 반응 사이에 시간을 주면서 변화해나갈 수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생존 반응이 과활성화 되면 위기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도 오작동하는 일이 발생한다. 뇌 속 ‘오래된 고속도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하루에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약 15분이라고 한다. 이 순간을 아침 일찍 현명하게 사용하면 나머지 하루도 순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한 하향식 통제보다는 자기 조절력이 잘 작동해 거의 힘을 쓸 필요가 없는 상향식 통제를 해야 한다. 이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친숙하게 느끼고 편안해져야 하고, 감정 조절과 관계 맺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몸을 고통의 그릇으로 여기기 때문에 몸으로부터 자신을 해리시킨다. 몸을 하찮게 여기면 인생의 질은 현격히 낮아진다. 과거의 그림자들이 뛰쳐나와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마음의 지하실을 미리미리 청소해 새로운 감정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몸을 대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친구나 연인을 대하듯 자기 자신을 대해 몸과 잘 교류해야 한다.

 

‘회복 탄력성’은 어떤 재료에 압박을 가했을 때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부하 용량을 나타내는 것인데, 심리학적 개념으로는 ‘사람의 심리적 저항력’을 설명하는데 쓰인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트라우마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회복 탄력성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전두엽이 강화되어야 하고 쓰지 않았거나 기능이 저하된 뇌 영역들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특히 불안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연결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감정을 신속하게 알아차리면서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 이 논리는 수백 년 전부터 명상법으로 사용하던 것인데 심리치료 과정의 일부분이다. 이때 자신이 감정이나 느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자기 계발서, 유발 하라리를 포함한 많은 명사들은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쯤 되면 기초 교육 과정에 ‘명상’ 수업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학교 다닐 때 그와 비슷하게 고요하게 집중하던 서예 시간이 무척 도움됐다고 문득문득 생각한다.

 

집단을 이루는 모든 생물은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서 공동체에 위험을 알리며 진화했다. “기본 감정의 대부분이 불편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인 것도 이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생존에 필수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생존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이런 삶이 가치가 있는지 어떤지는 다른 문제지만 애초에 그 감정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갖고 있는 원래 취지는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이것은 인종, 계급, 언어, 지역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가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감정을 읽을 수 있고 이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감정은 우리의 기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용보다 감정만 기억하거나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평가할 때 감정에 좌우되는 일은 기본이다. 만약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뭐냐고 물으면 자신에게 가장 강한 감정을 남긴 사건을 이야기할 것이다. 아마도 어떤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경험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강의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에 와닿은 내용은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많은 내용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절대 중립적인 정보로 저장되지 않고 그 사건이 심어준 감정의 색깔로 저장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중립적이기 힘든 이유이다.”

 

악인조차도 관계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지 못할 때 그 삶을 파괴된다. 사람이 어렵다면 동물, 식물, 책 어떤 대상이든 내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해보자. 기분 좋은 관계를 갖게 되면 그 사람의 세계는 변한다. 사회 문제로 터져 나오는 대부분의 뉴스들은 인간관계의 실패들을 보여준다. 정부의 노력이나 법의 심판을 촉구하기보다 우리 각자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감각적인 재미나 뉴스로 소비하고 비판할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세계와 삶을 바란다면 우리는 사람으로서의 자기와 사람으로서의 타인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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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루틴의 힘 -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계속하게 만드는 루틴의 힘 1
댄 애리얼리 외 지음, 정지호 옮김 / 부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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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고 있지만 내게는 일 년 중 뚜렷한 반성의 시기가 두 번 있다. 한 해의 반이 지나가는 시점인 6월과 한 해가 끝나는 12월. 6월이 오니 맘이 복잡하다. 제자리걸음 같은 내 일상을 점검하고자 이쯤에서 자기 계발서 한 권 정도 읽어도 좋겠지.

쟁쟁한 아웃라이어 20인(댄 애리얼리, 그레첸 루빈, 세스 고딘, 칼 뉴포트, 스콧 벨스키, 에린 루니 돌랜드, 토니 슈워츠, 토드 헨리, 애런 디그넌, 스티븐 프레스필드, 마크 맥기니스, 리오 바바우타, 크리스천 재럿, 스콧 맥도웰,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엘리자베스 그레이스 손더스, 로리 데센, 제임스 빅토르, 린다 스톤, 티퍼니 쉴레인)의 성공 습관과 루틴 철학을 살펴본다.

 


「좋아하는 일일수록 자주 실천하라 _그레첸 루빈」

- 루빈의 글 핵심 키워드는 "자주"

 블로그나 일기를 매일 쓰는 사람들에겐 루틴 습관이 잡혀 있다고 봐야겠지만 일의 질과 성취도가 과연 높은가가 관건이겠다.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 쉬우니 목표와 성취도를 더 면밀히 살펴야 한다. 


 *

"자주 하면, 시작이 수월해진다

항상 시작이 문제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도중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려면 처음에 겪었던 어려움을 또 겪어야 한다.

그러나 매일매일 하다 보면 그 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도중에 일에서 멀어질 새가 전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할 일도, 이미 해 놓은 일을 떠올리거나 본궤도로 다시 올라서기 위해 검토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기존 프로젝트가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중단한 시점으로부터 다시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자주 하면, 아이디어가 신선해진다.

당신의 마음이 일과 관련한 문제로 끊임없이 설렌다면 아이디어들 간의 새로운 연관성을 발견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일에 깊이 골몰해 있으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된 것 같은 짜릿한 느낌이 든다. 세상 전체가 전보다 재미있는 곳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소재를 미치도록 갈망하여 촉각을 곤두세울 때 비로소 아이디어가 흘러들어 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일에 계속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걸핏하면 슬럼프나 혼란에 빠지고, 딴 것에 신경을 쓰거나, 원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는 것이다.

 

자주 하면, 부담이 줄어든다

일주일 동안의 결과물이 겨우 한 페이지, 블로그 포스팅 한 건, 스케치 하나라면 당연히 ‘특출하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작업물의 질에 대해 조바심을 내게 된다. 아는 작가 중에 도무지 집필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막상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켜면 잘해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먼저 일하라 _마크 맥기니스」

- 맥기니스는 자기 능력과 성향에 맞는 맞춤식 루틴을 고민하고, 창의적 업무를 우선시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당신의 일상에도 '새로고침'이 필요하다 _토니 슈워츠」 , 2장에 나오는 「창의적인 스케줄에서 성과가 시작된다 _칼 뉴포트」도 비슷한 제안이다. 뉴포트는 집중 시간대를 확실히 지킬 것을 권고한다.

                      

*

 "업무 습관을 ‘창의적 업무 먼저, 대응적 업무는 나중에’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루 중 일정 분량의 시간을 전화와 이메일에 신경을 끈 채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른 창의적 업무에 할당하라."

"‘할 일 목록’의 증가에 주의하라: 하루의 ‘할 일 목록’에 제한을 두어라. 가로세로 7~8센티미터짜리 포스트잇이면 족하다. 할 일 목록을 이 정도 크기의 종이에 다 적지 못한다면, 하루 동안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낼 것인가? 목록에 계획을 계속 추가하다 보면 일은 결코 끝나지 않고, 일할 의욕은 곤두박질친다. 대부분의 일은 내일 해도 된다. 그러니 그냥 두어라.

 

약속을 기록해 둬라: 모든 약속(자신과의 약속이든 남과의 약속이든)을 잊어버릴 수 없는 곳에 습관적으로 기록하라. 이렇게 하면 어떤 요청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더 믿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모든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면 당면한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일상의 틀을 단단하게 짜라: 혼자 일하는 경우라 해도 하루 일과의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을 정하라. 창의적 업무, 회의, 소통, 관리 업무 등 작업 성격이 다르면 시간대도 다르게 할당하라. 이렇게 철저하게 시간 틀을 짜 두면 필요 이상으로 작업 시간이 길어져 다른 중요한 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중독에서 탈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삐삐 롱스타킹 큐브 메모지를 이러려고 샀다.

생각날 때마다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적기 위해.

떼서 다른 데 옮기기도 쉬우므로 다이어리나 노트와는 다른 쓰임이다.

 

 

「(Q&A) 지금, 여기, 내가 일하는 이유 _세스 고딘」

 - 고딘은 '실천의 힘'을 강조한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이게 제일 안 되는 게 현대인의 난관. 단기적으로는 열심히 하지만 장기적 실천에는 실패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경우는 자신의 부족함과 일의 완벽 추구를 변명 삼아 도피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아, 찔려.


*

"실천이 곧 전략이지요. 실천이란 습관적 방식으로 규칙적이고 확실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실천 습관을 들이는 중이라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실험용 흰색 가운을 입거나, 특별한 안경을 쓰거나, 특정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방법이 있죠. 이렇게 습관을 통해 자신의 기술을 전문화하는 겁니다."

"Q. 아이디어를 알리고 납득시키는 세일즈 능력을 후천적으로 개발한 사람 중 특별히 떠오르는 이가 있습니까?

 

이제까지 아이디어 세일즈 능력을 타고난 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 이 능력을 터득한 사람들은 모두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이 능력이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칭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여 본 적 없는 사람은 수없이 많이 봤습니다. 자기는 예술로 충분히 밥벌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모두가 어렵게 생각하는 아이디어 세일즈는 하지 않으려는 거죠."

 


「(Q&A) 산만함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_댄 애리얼리」

- 업무와 관련되지 않아 난 이메일을 잘 체크하지 않는데 이 문제가 꽤 크게 언급되어서 흥미로웠다. 애리얼리는 우리가 왜 이토록 유혹에 약한지를 면밀히 살핀다. 유혹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시간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일의 진전 상황을 가시화할 수 있는 장치(일기, 문서 등)를 눈에 보이도록 만든다.


*

Q. 이메일은 왜 그렇게 유혹적인 시스템인가요?

 

심리학자 B. F. 스키너B. F. Skinner는 ‘무작위 보강’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습니다. 쥐가 레버를 100번 누를 때마다 먹이를 준다고 칩시다. 쥐의 입장에서는 신나는 일이죠. 그러나 횟수를 1~100까지 무작위로 골라 선택하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가 나옵니다. 보상을 전혀 하지 않아도 쥐는 계속해서 레버를 더 많이 누르는 겁니다.

이메일과 SNS도 무작위 보강의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레버를 누르듯이 이메일을 확인해 보면 보통은 별 재미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은, 신나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죠. 무작위 간격으로 발생하는 그런 즐거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메일을 확인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이해해야 할 개념은 ‘선택 설계’인데요. 주변 환경이 우리가 내리는 최종 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가령 뷔페에서 줄을 서서 음식을 담을 경우 음식이 진열된 방식, 즉 신선한 과일과 샐러드가 손쉽게 집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는지, 아니면 좀 더 맛있는 음식 뒤의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등의 진열 방식에 따라 우리가 최종적으로 먹는 음식이 결정된다는 뜻이죠.

 

 

Q. 당신은 유혹을 물리치고 자제력을 발휘하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자제력에는 두 가지 요소, ‘자제력 문제’와 ‘자제력 해법’이 있습니다. 자제력 문제는 결국 “지금 당장이냐, 아니면 나중이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죠.

듀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랠프 키니Ralph L. Keeney의 연구에 따르면,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빚어지는 인간의 사망률을 추정해 보니 100년 전에는 그 수치가 전체 사망률의 10퍼센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그 비중이 40퍼센트를 조금 넘습니다. 왜 그럴까요? 새로운 기술이 발명된다는 건 우리 자신을 죽이는 방법 또한 새로 발명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고칼로리 음식과 비만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세요. 담배와 흡연도 마찬가지죠. 문자 메시지와 운전도 그렇고요. 이 모두가 자제력 문제를 야기하는 요소들입니다.

자제력 해법은 우리 스스로 더 나은 행동을 위해 시도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많은 돈을 지불하고 헬스클럽에 등록했는데 운동을 거른다면 죄책감이 들죠. 그래서 이 때문에 빠지지 않고 가게 됩니다. 밝혀진 바로는 이 죄책감이 효과는 있지만 지속 시간은 짧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죠. 100칼로리 짜리 작게 포장된 쿠키 팩을 사는 이유도, 단지 ‘용량이 적은 만큼 쿠키를 덜 먹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자아 고갈’이라는 현상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우리의 자아가 계속되는 유혹을 물리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혹을 물리칠 때마다 에너지가 필요하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남아 있는 에너지는 줄어듭니다. 즉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Q&A) 창작의 리듬을 유지하는 법 _스테판 사그마이스터」

- "창조란, 집중을 방해하는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포기하는 일에 불과하다"(E.B. White)라는 말처럼 창작은 자제력의 힘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몰입, 몰두'가 이에 해당한다. 지속적인 동기 부여에 대해 사그마이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

Q. 혼자 일할 때는 어떻게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합니까?

 

안식년을 가지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점은 ‘시간’이란 공들여 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 낸 시간은 무슨 일이 생겨도 다른 문제에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 금요일은 영화의 날로 정하자.’ 이런 마음을 먹자마자 일정표를 꺼내 모든 금요일에 ‘영화의 날’이라고 표시해 뒀죠. 덕분에 무슨 일이든 네 달 전에는 미리 일정을 짜게 됐고, 혹 누군가 금요일에 만나자고 하더라도 “금요일은 안 됩니다. 목요일에 뵙죠”라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계획 수립의 기본을 따른 거였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미리 일정표에 표시해 두는 것 말이죠.

어느 노벨상 수상자의 멋진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한 기업으로부터 시간 계획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유리병을 하나 들고 서서 “제가 시간 계획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내용을 직접 보여드리는 데 2분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했죠. 그러고는 굵직한 돌들을 가져와서 유리병 윗부분까지 채운 다음, 이번에는 조그마한 돌들을 또 유리병에 집어넣었고, 다시 모래를 부은 다음, 마지막으로 물까지 부어 넣었습니다. 마침내 유리병이 꽉 차게 됐죠.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꽤 분명합니다. 큰 돌부터 먼저 넣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더 작은 것들도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요. 

 

 


「스크린 무호흡증에서 탈출하라 _린다 스톤」

- 2008년 7개월의 연구 끝에 '이메일 무호흡증' 또는 '스크린 무호흡증' 현상을 명명하고 발표한 스톤은 '대상' 즉,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우리가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라고 한다. 테크놀로지에 매몰되지 않도록 의식적인 사용과 바른 생활 습관을 기르라고 권장한다. 


*

"스크린 무호흡증이란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 TV 등의 화면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일어나는 현상으로, 호흡이 일시적으로 정지하거나 얕게 호흡하는 것을 말한다.

스크린 무호흡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사무실과 집, 카페에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200명 이상의 사람을 관찰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호흡을 참고 있거나 매우 얕은 호흡을 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특히 이메일에 답변할 때 이 증상이 두드러졌다. 더구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자세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호흡에 더욱 악영향을 주었다.

나는 이런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마거릿 체스니 박사와 데이비드 앤더슨 박사, 그리고 미국국립보건원에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체스니 박사와 앤더슨 박사의 연구를 보면 일시적 호흡 정지 증상은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몸이 산성화되고, 신장은 나트륨을 재흡수하기 시작하며, 산소, 이산화탄소, 산화질소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리 작용에 혼선이 야기된다.

치과에서 마취제로 사용되는 아산화질소와 혼동하기 쉬운 산화질소는 우리 몸의 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피어스 라이트는 영국왕립학회와 영국과학저술가협회를 위해 준비한 브리핑 자료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인간의 면역 체계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 감염 및 종양과 싸우는 데 산화질소를 사용한다. 산화질소는 신경 세포 간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학습, 기억, 수면, 통증 자각에 관여하며, 우울증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산화질소는 비만의 요인이 되는 염증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일시적 호흡 정지 증상에 관해 문헌을 찾아보고 의사 및 연구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미주 신경과의 상관관계도 알 수 있었다. 미주 신경은 주요 뇌신경 중 하나로, 기본적으로 교감(“투쟁 혹은 도주 반응”) 및 부교감(“휴식 및 소화”) 신경계를 포함하는 자율 신경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깊고 규칙적인 호흡, 혹은 가로막 호흡은 교감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허기, 포만감, 이완 반응 등의 장기 기능을 관장하는 부교감 신경계가 보다 지배적인 역할을 하도록 도와준다. 반대로 얕은 호흡, 일시적 호흡 정지, 과호흡은 교감 신경계를 투쟁 또는 도주 상태가 되도록 자극한다. 이 상태에서는 심장 박동이 증가하고 포만감은 줄어들며, 우리 몸은 늘 해 왔던 대로 싸움 또는 도주 반응에 동반되는 신체 활동을 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 취하게 되는 신체 활동이 고작 앉은 채 이메일에 응답하는 것뿐이라면, 우리는 ‘멋지게 차려입고도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 몸은 투쟁 혹은 도주 상태일 때 충동적이고 강박적으로 반응한다. 또한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경향에 빠지기 쉽다. 이런 상태에서는 배고픔과 포만감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대상이 음식이든 정보든 마치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양 주변의 모든 자원에 손을 뻗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을 자꾸 꺼내어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포르투갈 생명건강과학 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이에 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해 준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다 익숙한 루틴에 의지하게 된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의사 결정 및 목표지향적 행동과 연관된 뇌 부위가 수축하고 습관 형성에 관련된 부위가 커지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스티븐 프레스필드는 프로의 길이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문턱을 넘을 때마다 더 많은 것을 내어줘야 한다면서, 당신이 정말 프로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 그렇다면 생활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다 읽으니 내용은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루틴도 비슷하다. 자기계발서가 성공 전략으로 제안하는 생활 습관을 종합하면 거의 이것이다.

1. 아침 일찍 집중할 일에 매진할 것.(올빼미과라고 해도 아침형 루틴으로 어떻게든 개조할 것). 오후가 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기 때문에 이게 제일 중요하다.

2. 명상, 창작 등 개인 시간을 계획에 따라 맞출 것.

3. '좀 더 지속적으로, 한층 더 수준 높게, 좀 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신체의 주기적 리듬을 따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 "우리 몸은 90분 주기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역량 한계점에 도달한다."

4. 이메일, 디지털 기기, 소셜 네트워크는 정한 시간에만 접속. 수시로 들여다보지 말 것. 주말에는 디지털 안식일을 가지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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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고고학 - 로마 시대부터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허위정보는 어떻게 여론을 흔들었나
최은창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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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디지털 굴뚝에서 매연과 소음이 무럭무럭 뿜어져 나오는 디지털 시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저자는 우리들이 부지불식간에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는 앨리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의 상황은 모험을 겪고 안락한 집으로 돌아오는 픽션의 세계가 아니라 아비규환의 현실이라는 게 문제다.

 

 

 

이 책은 “수많은 형태의 ‘거짓’이 어떤 이유에서 생산되고, 누가 어떻게 전달했고, 어떤 혼란과 피해를 주고, 어떤 방식의 규제가 제안”되었는지를 살핀 가짜뉴스 현상의 고고학적 탐색이다. 국내 학계는 가짜뉴스 개념을 “형식과 내용을 모두 기만하는 가짜 정보”로 좁게 보지만, 저자는 ‘악의적 유언비어’, ‘거짓 소문’, ‘정치 프로파간다’, ‘왜곡된 뉴스 보도’, ‘뉴스 정보의 파편’까지 포함시켰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는 그 목적에 따라서 크게 네 가지 유형이 있다. ①자극적 제목으로 노출시켜 클릭을 유도해서 광고 수익을 얻는 가짜뉴스, ②정치적 여론의 향방을 인위적으로 이끌기 위한 ‘온라인 프로파간다’ ③알고리듬, 봇넷botnet 등 허위정보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자동화 기술의 활용, ④광우병 보도, 기후변화, 백신 접종 거부, GMO 식품 등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는 ‘과학적 위험성’을 다룬 뉴스가 그렇다.

 

 

 

 

 

 

 

“거짓과 허위정보는 대중의 관심을 이끌고 분노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사실의 날조, 왜곡하는 전언傳言, 증오심 부풀리기,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선동의 요소였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정보 생태계의 오랜 주민이었고, 우리 자신이기도 했다. 인쇄술, 라디오, 무선 전신, 웹브라우저, 모바일 인터넷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미디어의 힘이 강력해지는 동안 허위정보도 그림자와 같이 진화를 거듭했다. 미디어의 역사는 허위정보 전파의 역사이기도 했다. 16세기 팸플릿의 시대부터 1930년대 라디오의 전성기, 1960년대 TV 뉴스 방송에서도 오보와 허위정보는 흘러나왔다. 완전한 사실만이 뉴스로 전달되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중략)… 소문이나 발언 가운데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가를 지배 권력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때 생겨나는 해악은 중세 가톨릭 종교재판소, 18세기 청나라의 저혼 사건, 반대자를 가혹하게 탄압한 나치의 비밀경찰, 중국의 국가인터넷판공실이 실시하는 강력한 단속이 보여준다. 교황권은 이단 척결을 내세워 마녀사냥을 가톨릭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나치의 프로파간다는 게르만 민족주의 자긍심을 고취시켰고, 미국의 적색 공포 프로파간다는 반공산주의가 곧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동가가 거짓으로 정치권력을 잡았을 때는 많은 희생양들이 뒤따랐다.

왕권제와 교황의 지배력이 사라지고 민주적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는 취약한 제도였다. 대중의 심리는 언변을 갖춘 선동가가 제공하는 표면적 명분을 갖춘 반복적 메시지에 쉽게 흔들릴 수 있었다. 허위정보의 생산자들이나 프로파간다의 선동원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 여론의 흐름이 쏠리면 소떼몰이가 가능했다. 선거의 승리가 모든 것을 잠재우고 권력을 부여하는 시스템에서는 유권자를 분노하게 만들든지, 속이든지, 선동하든지, 위협하든 승리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뉴스 정보는 입을 통해 전달되었다. 웅변술과 연설은 정보의 전달이나 공적인 토론이 아니라 대중의 ‘설득’에 사용되었다. 긍정성의 이웃으로 부정성도 따라다니듯 인쇄술은 라틴어 성경, 지식의 전파, 팸플릿을 통한 사회 비판뿐 아니라 마녀사냥의 방법과 지침을 담은 정보를 퍼트리는 데도 기여했다. 혹스(Hoax, ‘괴담 또는 속임수’)와 도시전설, 만우절 뉴스는 사회적 해악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언비어나 근거 없는 소문은 권력자나 집단 광기와 만나 1768년 저혼 사건,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학살 같은 폭력 행위를 낳기도 했다.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 옐로 저널리즘의 전성기였다. 페니 프레스 penny press 시대 신문사들은 괴담, 모험담, 엉터리 의료 지식, 괴물 이야기, 가짜 인터뷰 등 독자들이 원하는 흥밋거리를 신문에 실었지만 독자를 노골적으로 우롱하거나 정치 뉴스를 조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광고 수익을 얻기 위해 미확인 뉴스 정보를 뿌리거나 허위정보를 사실처럼 퍼뜨리는데 일조하는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는 옐로 저널리즘을 수익성 좋은 비즈니스로 만들었다.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추측성 뉴스의 역사도 반복되고 있다. 1898년 2월 쿠바 하바나항에 정박하고 있던 미국 전함 메인호가 스페인 군대의 공격 때문에 침몰했다는 보도 행태는 한국의 천안함 사건을 다룬 뉴스들과 비슷했다. 미국 해군은 메인호 침몰 원인을 1974년 재조사해 메인호가 탄약고에서 시작된 화재로 폭발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한국 천안함 사건은 어찌 될까.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은커녕 가짜뉴스로 곡해되고 있는 상황인데. 1912년 4월 타이타닉 호 사건에는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과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사고 당시 누군가 무선전신으로 송신한 가짜뉴스로 인해 영국과 미국의 언론은 일제히 타이타닉 호 승객이 전원 무사하다는 헤드라인을 앞다투어 올렸다. 이 가짜 무선은 신문 역사상 가장 많은 헤드라인에 실린 가짜뉴스로 기록되었다. 코로나19 음모설이 한창인 요즘, 1980년대에 “에이즈AIDS는 미국이 만들어낸 질병”이라는 가짜뉴스를 전 세계 언론에 뿌린 KGB의 공작은 냉전시대 허위정보전으로 눈길을 끈다. 2014년 에볼라 감염 때는 러시아계 방송 《RT America》가 에볼라와 에이즈가 서구 제약회사와 미국 국방부가 합작한 무기라는 의혹이 라이베리아에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2017년 프랑스와 독일 선거, 2016년 브렉시트 투표,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도 러시아가 끊임없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CIA가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미디어 홍보 캠페인(앵무새 작전)을 전개했듯 여론을 움직이려는 허위정보전은 ‘정치적 도덕성을 결여한 자’와 ‘진실을 지키려는 선한 자’의 대결로 보기 어렵다. 가짜뉴스가 가장 급증하는 때는 선거 시즌이다. 대선 경우 한국의 후보자는 안보관, 이념적 정체성, 5·18 정신 등을 검증받고, 미국에서는 출생, 이민자와 무슬림을 대하는 관점, 낙태 합법화, 총기 규제 등에 대해 정치 공세를 받는다. 이와 관련해 허위 정보, 가짜 뉴스,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뉴스들이 대거 유포된다. 한국은 뉴스 기사를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접하는 게 압도적이지만 미국은 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전달받는 비중이 높다. 미국과 한국은 뉴스 소비 상황이 다르지만 네트워크 프로파간다에 흔들리는 건 동일하다. 독립 미디어 복스Vox의 분석에 따르면, 온라인을 통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는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 캠페인의 결과를 뒤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가짜뉴스 웹사이트의 날조와 가짜 이야기는 극단적 정치적 관점을 가진 집단의 확증편향을 강화시키는 역할이다. 진정한 문제는 주류 미디어의 뉴스 편집 비중이다. 데이터 과학과 결합한 허위정보에 집중적으로 노출된다면 대중은 뉴스의 인물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가지거나 그를 불신하게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 원인은 무엇보다도 보수적인 미디어의 강력한 지지 덕분이었다. 1983년 미국 미디어 시장은 50개 미디어 기업이 지배했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폭스, 컴캐스트, 타임 워너, 월트 디즈니, CBS 코퍼레이션, 바이어콤 등 여섯 개 기업들이 90퍼센트를 통제하고 있다. 4개 지상파 방송사 CBS, Fox, ABC, NBC도 모두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 내 언론의 전체적 판세는 보수 언론이 진보 언론에 비해 세력 면에서 우세하다.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달받은 뉴스의 ‘내용’이 정확한가는 관건이 아니고 ‘누가’ 그 메시지를 전하느냐가 뉴스의 신뢰도를 결정하게 된다.” 한국은 2009년부터 신문·방송 교차 소유를 허용하면서 종편 방송 시대가 열렸다. 일부 언론사들은 공정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당파성을 드러내놓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과 추측성 논평과 보도를 계속해 가짜뉴스의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미디어 학자 제임스 케리는 ‘저널리즘’과 ‘민주주의’가 실제로는 ‘같은 이름’이라고 보았다.” 외신을 통해 팩트체킹까지 하는 지금 한국의 언론은 ‘공적인 삶’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 외신이라고 다 믿을 수 없다. 페루의 퀴노아 가격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빈곤 국가들의 식량 부족 악화를 연결한 잘못된 해외 뉴스도 있었고, 뉴스 전재 계약을 타고 부정확한 정보가 국문 뉴스로 보도되는 구조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이 암을 일으킨다는 뉴스가 그대로 전해지는 오보 해프닝도 자주 있다. 가짜뉴스가 주요한 대상으로 삼는 데이터는 “경제 성장률, 피해 규모, 사상자 수, 실업률, 범죄율, 물가 인상률”인데 한국의 언론들이 부정확을 넘어 데이터를 악의적으로 제시하는 걸 자주 본다.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전달할 기자도 부재하고, 책임 있는 기사가 아니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나 어뷰징 기사로 대중을 끌어들이기 바쁜 한국의 언론이 공신력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악의적 소문, 허위정보를 동원한 선동, 날조된 뉴스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공통점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적 요소 또는 불만을 강조하여 공포와 분노를 합리화하는 데 있다.

 

2. 경제적·정치적 인센티브가 존재하는 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의 생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 인쇄 시대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떠도는 비공식적인 뉴스 정보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가를 판정하여 공식화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자의 권한이었다. 지금은 이 권한의 범위와 책임이 광범위해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례로 반복되고 있다.

 

4. 언론과 비언론, 진실한 정보와 허위정보의 이분법으로 복잡한 가짜뉴스 현상을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5. 정보 과잉으로 인한 혼돈과 피로, 무질서 속에서 허위정보를 꿰뚫는 가시성 확보가 어렵다.

 

6. 올드 플랫폼(지상파 방송, 케이블 TV, 라디오, 신문)과 뉴 플랫폼(검색 엔진, 포털 사이트, 소셜 미디어) 모두 허위정보와 가짜뉴스의 증폭에 사용된다. 2019년 기준으로 미국 성인 가운데 69퍼센트는 페이스북으로, 한국은 10명 중 8명이 포털 사이트에서 디지털 뉴스를 본다. “진실한 뉴스 정보이든, 거짓 소문이든 가장 효과적인 증폭기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7. 허위정보는 생산적 토의를 위한 전제를 망가뜨리므로 소모적 논쟁만이 겉돌게 되고 불신만 더 악화된다.

 

8. 미국 연방대법원과 우리 헌법재판소는 그 규제 대상이 분명하고, 해악성이 구체적이어야만 표현의 자유 규제가 헌법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고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규제 대상’의 명확한 설정, ‘해악성·위험성’의 유형, 중립적 판단의 주체를 정하는 일이 요구된다.

 

9.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활동이 외주화·자동화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힘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2019년 영국 하원이 펴낸 ‘허위정보·가짜뉴스 보고서’는 페이스북을 법을 초월하며 행동하는 ‘디지털 갱스터’로 표현하며, ‘민주주의’, ‘데이터 프라이버시’,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극단적 콘텐츠를 찾아내 차단하는 것은 머신러닝으로는 한계가 있다. 플랫폼마다 운영하는 ‘정책’ 또는 ‘가이드’를 통해 자율규제가 이뤄지고 있지만, ‘가짜뉴스 또는 허위조작정보’ 는 위반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와 ‘유해·위험한 콘텐츠, 폭력적·노골적 콘텐츠, 폭력·범죄 조직, 증오 표현, 권리 침해, 사이버 폭력’ 사이에서 많은 허위정보들이 전파되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차단을 요청한 신고는 전 세계에서 2019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1,000만 건이 넘었다. 예일대학교 로스쿨에서 헌법을 가르쳤던 토머스 에머슨은 “진실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거짓을 억누르는 방법은 없다”라고 했지만, 그는 ‘의견의 허위’만 예상했지 악의적 ‘사실 조작’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사상의 자유시장이란 과소한 정보의 교환으로는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므로 과도할 정도로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면서 경쟁을 펼치고 서로를 무너뜨리도록 그 과정을 지켜보자는 것”으로 경제학에서 온 아이디어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사상의 자유시장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면 다양한 문제가 나오기 마련이다.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상 익명의 행위자들이 행하는 집단적 프로파간다가 민주주의를 취약하게 만들고, 미디어 산업의 소유권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 또는 뉴스 정보를 전달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거짓 발언의 가시성을 증폭시키는 상황에서 여러 국가의 자정 역할이 필요하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요구는 갈수록 많아지지만 그만큼 우리가 허위와 진실을 가려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뉴스들이 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

 

 

 

최은창 『가짜뉴스의 고고학』 체크 포인트 잡느라 포스트잇 플래그 한 통이 장렬히 전사했다.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 밑줄이 많아 포스트잇 플래그를 적게 쓰긴 했지만 『가짜뉴스의 고고학』 에 예상치 못하게 정말 많이 썼다. 주석 빼면 본문은 유발 하라리 책이 더 긴데! 예상대로 리뷰 정리하는데 300분 넘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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