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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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없는 한강변에서 자유롭게 바람을 쐤던 작은 일상조차 큰 행복이었다는 김지은 씨 경험담에

그녀의 책과 함께 공원을 걷고 싶었다.

 

 

 

제임스 설터의 에세이집 중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원제 'don't save anything'의 반어성을 살린 국내 번역 제목)이 있다. 김지은 『김지은입니다』는 그보다 더 절박하다. 쓰지 않으면 철저히 왜곡된 채 기한도 제재도 없이 떠돌 것이기에 어떻게든 남겨야 했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이 책에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사회는 민주주의든 자유주의든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신변의 위험을 느껴 살아남기 위해 본명과 얼굴을 공개해야 했던 김지은은 민주주의, 진보주의, 인간의 존엄을 정치로 실현하겠다는 자들이 모인 곳이 가장 권위적이며 이기적이고 폐쇄된 착취의 온상이었다고 고발한다. 여성이었기에 더 무시당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은 성폭력이 전면에 나와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폭력적인 사회', '권력', '위력', '갑질'을 행사하는 자들이 개인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위계 사회'의 문제점을 깊게 생각게 한다. 위력을 향위하는 자는 성폭력이 최상위 폭력임을 알기에 그것을 행사하고 그 힘을 만끽한다. 거기 인간은 없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폭력'에 대한 전면적 거부이자 평화 메시지로 수렴된다. 그녀가 고발을 결심한 것이 단지 자신의 피해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을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는 점도 그것을 시사한다. 안희정의 핵심 참모였던 문 선배가 자신의 인간관계와 안락한 미래보다 '정의'를 위해 김지은을 돕기로 한 결정적 첫 도움도 그러한 의미다. 그녀의 삶은 정말이지 노예의 삶이었다. 누구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모든 사안에 객관성과 신중을 요구하는 내 모습이 2차 가해가 되지 않는지 자주 고민한다. 이해나 공감조차 희박하지만 이해나 공감이라는 것이 일회성 구세군 모금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계이고, 정확한 사실 관계가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변을 내놓다 보면 실수는 돌이킬 수 없어서다. 사행성 언론, 찌라시와 가짜 뉴스, 악플이 이런 폭력을 무수히 낳고 있는 걸 매일 보니까.

최종 유죄 선고 후 나는 이 책을 마주했다.

아프고 불편한 것을 더더 마주하고 이겨내야 하는 세상이기에

나를 포함한 세상의 많은 김지은 씨,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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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짜리 단기 행정 인턴에서 시작해 기간제 근로자, 연구직을 거쳐 계약직 공무원이 되었다. 계약 연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일밖에 모른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6년을 버텼고 학교도 어렵게 졸업했다. 나는 금융채무자이자, 병환 있는 가족을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이자, 성과로 평가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안희정 측 변호인이 나를 가리켜 말한 ‘고학력 엘리트 여성’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일 뿐이었다. 내 또래의 많은 이가 나와 비슷하게, 제각기 노력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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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 인계받은 내용은 지사가 구두를 편히 신을 수 있도록 어떤 위치에 어느 정도의 각도로 놓아야 하는지였다. 지사가 공관에서 나가서 들어오기까지의 모든 것이 다 수행 업무라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이 지사의 구두였다. 구두를 신고 나서는 순간부터 지사의 일정이 시작된다. 수행비서는 그 전에 모닝콜로 깨워드리고, 일정 준비, 가방 들고 나오기, 문 열어드리기로 업무를 시작해 지사가 일정을 마친 뒤 공관에 짐 넣어드리기, 문 닫아드리기까지 해야 일단 지사와의 동행 수행 업무가 끝난다. 그리고 다시 내일의 업무를 위해 다음 일정 자료를 숙지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재차 확인하고 동선을 모두 파악하여 필요한 연락이나 조치를 취한다. 수행비서는 지사보다 2시간 일찍 일정을 시작해 1시간 늦게 끝마치는 패턴이었다.

그리고 아주 세세한 사항들까지 교육받았다.

“멍 때리지 마라, 절대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격식 있는 자리인지 미리 확인해라, 지위에 맞지 않는 자리를 싫어하신다, 행사 시 앉는 자리에 착석하는 끝까지 봐야 한다, 보안이 필요한 식사는 수행비서 개인 카드로 결제해라, 사우나, 미용, 마사지 등 지사의 개인 일과 비용도 수행비서 개인 사비로 써라, 지사 가족들의 비용도 수행비서가 부담한다, 현금을 넉넉히 가지고 다녀라, 한도 500만 원짜리 카드를 만들어라, 지사의 식성을 파악해라, 아주 세세한 음식 기호를 외워서 맞춰드려야 한다, 얼굴이나 이름을 못 외우니 수행비서가 보조 기억 장치로 있다가 옆에서 알려드려야 한다, 각종 신고서도 수행비서가 써서 챙겨드려라, 경제 용어도 외워라, 못 알아들으면 안 된다, KTX를 탈 때 수행비서 앞에 있는 받침대는 지사의 커피와 가방을 놓을 수 있게 펼쳐놓아라, 아메리카노에 각설탕은 1개, 시럽일 때는 2번 펌핑해야 한다, 빵을 사 오라 하면 크루아상이나 따뜻한 플레인 베이글을 사라, 크림치즈와 나이프를 같이 준비해드려라, 가끔 단 것을 찾으시면 그럴 땐 옛날 꽈배기를 사라, 우유는 예전에는 커피우유만 드셨으나 요즘에는 흰 우유를 주로 드신다, 꼭 빨대 챙겨라, 자주 부르고 자주 심부름을 시키신다, 병장을 웃기는 이등병의 마음을 가져라, 공식 일정 이후 시간, 기업, 친구, 여자 이야기는 주변에 함구하라, 특히 여자 관련해서는 인수인계서 메모에서도 삭제해라, 단어 언급조차 하지 말고 어디에 쓰지도 마라, 보고 듣고 알아도 비밀을 유지하고 반드시 함구하라, 중요하니 재차 강조한다 (…)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인수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사님 기분’이다, 여기에 별표 두 개를 그려라, 인수인계 사항들은 모두 지사님 기분을 맞춰드리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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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판사는 피고인 안희정에게는 묻지 않았다.

‘왜 김지은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여러 차례 농락했는가?’

‘왜 직접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는가?’

‘왜 세 번이나 입장을 번복하였는가. 일관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왜 검찰 출두 직후 휴대폰을 파기했는가?’

왜 법원은 가해자 안희정에게는 묻지 않았을까?

‘위력은 존재하나 위력이 아니다. 거절은 했지만 유죄는 아니다.’

‘합의하지 않은 관계이나 강간은 아니다.’

‘원치 않은 성관계는 있었으나 성폭력은 아니다.’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재판부가 내게 했던 것처럼 안희정에게도 16시간을 질문했다면 1심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1심 내내 안희정에게 무언가를 묻지도 확인하지도 않은 재판부는 그의 말이 더 일관되고 진실하다고 판단했다. 최초 나의 언론 고발 직후 안희정은 합의되지 않은 관계였음을 인정했고,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했으며, 미안하다고도 했다. 범죄에 사용한 휴대폰은 파기했다.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했고, 증거를 스스로 없앴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을 심문하지 않았다.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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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음해하고 공격했던 사람들이 바로 전자의 그 시선을 이용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주요 행위주체들의 담론분석 결과,) 가해자 측은 성범죄 사건을 ‘합의에 의한 관계’ ‘불륜 관계’로 정의하면서 ‘법적 문제’에서 ‘도덕적 문제’로 전환시키고, ‘꽃뱀’ 담론을 끌어와 생존자를 가정 파탄을 초래한 ‘가해자’로, 안희정과 그의 주변 사람을 ‘피해자’로 이미지화했다.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페미니즘 담론을 재해석하여 성폭력의 책임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전략을 취하며 성폭력 문제를 ‘개인화’했다”.

어느 한 가해자만의 특수한 방어 전략은 아니다. 가해자의 가족, 특히 아내들은 적극적으로 2차 가해에 동참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오직 가족과 관련해서 의리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여성의 명예와 평판은 여전히 정상가족을 잘 유지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 결과, 친족 성폭력의 피해자에게 친엄마가 나서서 침묵을 종용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피고인을 대통령 만들겠다고 여러 해를 바쳐왔던 사람들뿐 아니라 피고인의 가족들에게도 나는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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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에게서, 교수에게서, 선배에게서 힘의 작동 원리에 따라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함께 적용되는 것이 위력이다. 위력의 무서운 점은 위협적인 말을 듣지 않아도, 스스로 몸이 굽혀진다는 것이다. 위력은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다. 타인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형적·무형적인 힘이다. 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한 경우는 물론,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이용하여 의사를 제압할 경우도 포함된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힘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때로는 직급으로 인해, 때로는 성별로 인해, 때로는 나이로 인해, 때로는 조직이나 재물로 인해……. 그렇게 각자의 일상에 위력은 늘 존재하고 있다. 그 위력에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참는 일은 많다. 그럼에도 개인은 그 안에서 자신의 업무나 학업을 쉼 없이 이어나간다. 위력이 존재한다고 해서 학교나 직장을 바로 그만두지는 않는다. 그것이 위력의 실상이자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

"24시간 업무 중인 수행비서에게 상사의 지위는 24시간 그대로 유지된다. 그것을 고의적으로 성범죄에 이용한 가해자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이 중요한 판단을 기피하였다.

나는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다. 일도 하지 못하고 수입도 없다. 생계를 늘 걱정한다. 고소 이후 일 년이 넘게 재판에만 임했다. 노동자로서 성실히 살아왔던 내 인생 전체가 한 노동자의 삶으로서 인정받기 이전에 피해자다움과 배치되는 행동으로 평가받았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기를 바라며 대학원에 간 것은 ‘범죄를 거절했어야 마땅한 판단력 있는 고학력 여성’이라는 가해자의 논리에 사용되었다. 이전 일을 그만두고 선거 캠프에 들어간 것은 팬심에 의한 것이 되었고, 근무 시간 제한 없이 일에 매진했던 것은 피고인을 좋아해서였다고 매도되었다.

만약 당시 정상적인 노동자로서의 삶을 보장해달라고 더 강하게 요구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일을 외면하고 현실에서 도망치면 피해자다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장이 절실했던 내가 당장 관두고 다른 일을 찾았다면 피해자다운가? 이미 안희정 사단으로 꼬리표가 붙은 내가 오도가도 못 한다는 건 함께 일했던 이들이 가장 잘 알았다. “본인이 관뒀대.” “일도 잘 못해.” 평판조회 한두 번이면 끝이다.

‘안희정 무죄’라는 판결문을 받아 든 날도 있었다. 끝내는 ‘안희정 유죄’라는 정당한 판결문을 손에 쥐었지만 여전히 내 삶은 쏟아지는 2차 가해 속에, 기울어지고 삐딱한 시선 속에, 일하지 못하는 처참한 비(非)노동자의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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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8-19 2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기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합니다. 여전히 가해자를 비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보고싶어요. 김지은씨가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ㅠㅠ

AgalmA 2020-08-23 22:4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람들이 권력, 돈, 인맥을 기를 쓰고 쌓으려는 거겠죠. 뭘 하든 방어막이 되어 주니까. 인터넷 발달로 여론 조성도 쉽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효과도 있어서 피해자가 법적 싸움만 하는 게 아니라 더 어려운 싸움이죠. 정부 일하던 실력을 발휘해 성폭력 재활 시스템에서 좋은 역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레코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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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동밀을 쓰는데요. 예가체프가 알이 작고 단단해서 갈 때 좀 뻑뻑하긴 한데 이 원두는 팔이 얼얼할 정도로 갈기 어렵더군요^^; 생두가 왔나 놀라서 다시 확인ㅎㅎ;; 전동밀이 아닌 분은 여름이라 빨리 소진될테니 분쇄해서 받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향과 맛은 으뜸이었습니다. 또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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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8-19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그리웠어요!

AgalmA 2020-08-19 19:07   좋아요 1 | URL
반가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 사고 살펴보고 하느라고 바빠서^^;;
알라딘에 나름 정이 있어서 잊지 않고 오는데, 이웃 분들 글 살펴보는 건 게을러서 송구하네요;;

moonnight 2020-08-19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제가 예전에 제일 좋아했던 커피가 예가체프였어요^^ 요즘은 평생 마실 커피를 다 마신 건지 커피를 못 마시는 증상이ㅠㅠ; 하여간에 커피 포장도 예쁘군요♡

AgalmA 2020-08-23 22:37   좋아요 0 | URL
코스타리카를 제일 좋아했는데 이 맛을 잘 내는 곳이 없어서 예가체프를 주로 이용하게 됐어요. 예가체프가 어딜 가든 맛과 향의 평균적 맛을 내주니까요. 커피를 너무 자주 먹어서 저도 좀 걱정이 되는데,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신다니 moonnight님 몹시 섭섭하시겠습니다. 매달 알라딘이 신상을 내줘서 매달 나름 재미도 있어요ㅎㅎ
 

 

 

 

 

 

하루키 독서 여진은 아직 남아 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리뷰를 쓴 뒤에도 숙제가 남은 기분이었다. 신화와 영웅의 여정을 더 탐사해보고자 조지프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1949, 민음사)을 읽고 있다. 이윤기 선생의 번역 논란이 좀 있어 도서관 대출로 살펴 봤다. 좀 예스러움이 있으나 아직 초반이라 번역이 아주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최근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박중서 번역으로 조지프 캠벨 『영웅의 여정』(원제 The Hero's Journey: Joseph Campbell on His Life and Work, 2003년)이 나왔다. 살펴보니 캠벨의 생과 연구를 담은 여정이었다. 

정신분석학으로 신화에 접근하며 프로이트와 융을 많이 거론하는데, 캠벨은 인간 의식의 서사 구조에 주목했다는 게 강점 아닐까.

 

 

 

 

 

 

 

 

 

e book이 여러 플랫폼에 있어 까맣게 잊는 경우가 많다. 하루키 에세이집 중 다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다 10년 소장 이벤트가 사라지기 직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샀다는 걸 확인했다. 읽고 싶을 때 펼치려고 다운로드도 안한 상태였다;;;

내가 산 책, 판 책을 체크해 또 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는데, e book 소장 책도 정리가 필요하다. 에효.

다 읽고 나니 이 책을 보고나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리뷰를 썼다면 좋았을걸! 아쉬웠다. 하루키 작품에 '신화'가 어떤 의미인지 직접적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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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죽음이란 ‘종말’이라기보다는 ‘막다른 곳’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세계의 막다른 곳’의 풍경(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내적인 광경이며 또한 신화적인 광경입니다)을 조금이라도 생생하고 극명하게 묘사해내는 것이 내 작품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겠지요."

ㅡ 인터뷰 「폼 나게 나이 들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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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에서 신화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에 관해 당신의 의견을 좀더 자세히 들려주십시오.

신화라는 것은 말하자면 세계적으로 유효한 공통어입니다. 물론 나라와 문화에 따라 상세한 부분은 달라도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요소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지역 신화들 간에는 상호 대치가 가능한 부분이 많다는 뜻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이 잠재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이미지 같은 것이 확실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세상이 점점 더 세계화되고 있지만, 최신 과학 기술 못지않게 이러한 최고最古의 ‘공통어’도 앞으로 점점 더 정보의 데이터베이스로서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공통어’는 소설의 세계에서 역시 큰 가치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소설은 어떤 때는 메타폴리컬(비유적)하고, 어떤 때는 메타피지컬(형이상학적)합니다. 그런 점이 이곳처럼 물질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환경(무라카미 주 : 체코를 가리킴)에서 성장한 우리에게 더없이 신선합니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호시노 청년이 커널 샌더스와 토론을 합니다. 그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에 관해서. 거기는 혼(스피릿이나 하느님이나 부처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옴진리교 신자들과도 얘기를 나눴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종교나 영성(스피리추앨러티)에 어떤 입장을 취하십니까?

압도적이라고 할 만큼 자본주의적인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치와 형식과 물질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무형의 개인적 가치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것은 물론 당연한 욕구이며, 소설가는 그러한 ‘무형의 것’을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치환하여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치환’의 확실하고도 뛰어난 유효성이야말로 소설의 가치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작업을 몇 천 년에 걸쳐 세계 안에서 실행해왔습니다.

​ 종교 역시 대체로 비슷한 기능을 맡아오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성직자는 그들 나름의 이야기적 시스템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사람들의 정신이 자리할 곳을 그곳에 다져나갑니다. 다만 종교는 소설보다 훨씬 더 강력한 규범과 헌신을 사람들에게 요구합니다. 따라서 그 종교가 컬트적인 색채를 띨 때 거기에는 종종 위험한 흐름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부자연스러운 흐름이 조성되는 사태를 최대한 저지하는 것도 소설이 맡은 책무가 아닐까, 옴진리교 신자들과 만난 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람들의 영혼을 안전한 (적어도 위험하지 않은) 장소로 데려가 자연스럽게 연착륙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노르웨이의 숲》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해변의 카프카》가 체코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번역들이 당신 작품을 소개하는 데 요점을 짚었다고 판단합니까? 꼭 읽어줬으면 하는 특별한 작품이 있습니까?

그밖에 다른 장편소설 두 권 정도 더 읽어보시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쓰고자 하는 세계의 전체상을 좀더 확실하게 조망할 수 있을 겁니다. 내 이야기 세계의 하나의 원형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년)와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된 가장 장대한 소설 《태엽 감는 새》(1994, 1995년)입니다.

체코=프랑스 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어느 에세이에 이렇게 썼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쓴 이야기 속에 몸을 숨기고 있어야 마땅하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작품의 그림자 속에 머물러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런 의견에 찬성하십니까?

나는 글 쓰는 일이 좋고, 글 쓰는 일이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밖의 일은 매우 서툽니다. 인터뷰도 강연도 낭독도 가능한 한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간 적도 없습니다. 다만 너무 자기 내면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건 건전하지 않은 듯해서 이따금은 의식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집필 시간만은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설가란 본래 모든 개인적 행위나 원칙을 소설 속에 담아내야 마땅하며, 그것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ㅡ인터뷰 「포스트 코뮤니즘 세계로부터의 질문」

 

 

 

하루키에 대해 참고할 자료가 많았다.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취재는 하루키 소설에서 참 중요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지금 한국의 세대 충돌, 종교적 맹신, 각종 몰이해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나 스탠퍼드 감옥 실험 등을 거론하며 인간의 본성을 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힘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고립되고 무기력과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 제도가 풍부해져야 한다는 걸 르포만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

"사망자 수는 한신 대지진보다 훨씬 적지만, 이 사건은 일본인의 정신을 근본부터 크게 뒤흔들었다. 일본인은 지진이나 태풍처럼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카타스트로프(대재앙)와 함께 살아온 민족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연이 빚어내는 폭력성은 무의식적으로 정신 안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사람들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늘 카타스트로프의 도래를 준비하고 있으며, 그 피해가 아무리 막대하고 부조리해도 이를 악물고 이겨내는 법을 배워왔다. ‘제행무상’이라는 말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어휘 중 하나다—모든 것은 변해간다. 일본인은 붕괴를 견뎌내면서 덧없음을 깨달으면서 끈기 있게 설정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민족이다.

그런데 지하철 사린 사건은 일본인이—적어도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한에서는— 지금껏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카타스트로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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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섯 명의 범인들 모두 이공계에서 수학한 ‘엘리트’라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공통항이 있었다. 대부분이 당시 삼십 대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시대 이후에 등장한 ‘뒤늦은’ 세대였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커다란 정치적, 문화적 운동이 끝난 뒤였다. 진자는 방향을 바꾸었고 기득권 층이 다시금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잔치가 끝난 후’의 께느른한 고요함이었다. 일찍이 높이 세웠던 이상은 빛을 잃었고, 날카롭게 외쳐댔던 말은 힘을 잃었으며, 도전적이던 카운터컬처도 첨예함을 잃었다. 짐 모리슨도 지미 헨드릭스도 이미 없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은 왠지 서글픈 디스코뿐이었다. ‘좋은 것은 모두 이전 세대에게 엉망으로 침해당했다’는 막연한 실망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시라케 세대’(학생 운동이 시들해진 시기에 성인이 되어 정치적 무관심이 만연했던 세대)라고 불린다. 그들보다 앞선 ‘단카이 세대’가 뜨겁고 집단적인 경향을 띠며, 공격적이고 수직적 사고로 내달리기 쉬운 반면, ‘시라케 세대’는 냉정하고 개인주의적이고 방어적인 데다 사고도 수평적이라고 일반적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배경에 등장한, 새로운 일본인 타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카이 세대’가 정치적인 색채가 짙은 관념론을 중심축으로 한 ‘공유감’을 중심 명제로 삼았던 데 반해, 그들은 오히려 타자와의 차별성을 중시했다. 예를 들어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음악을 듣고, 다른 책을 읽는 것을 지향했다. 그것은 물론 잘못된 일은 아니다. 인간은 마땅히 자유로워야 하며,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사란 그리 간단히 풀리지 않는다. 거기에는 암묵적으로 커다란 사회 규칙이 하나 있었다. ‘그 차이가 세간의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커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다. 큰 줄기에서 보면 ‘같은 것’이면서도 개별적인 국면에서는 ‘타인과 조금 다른’것. 아주 간단히 표현하자면, 전면적인 개인주의를 받아들일 만한 기본적 토양이 일본에는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것이 그들 세대가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차이는 끊임없이 세분화하고 기교를 더해갔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건설적인 차이를 포기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출구 없는 차이’로 변질되어갔다. 그리고 거품 경제의 출현과 함께 그 차이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쏟아붓게 되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로, BMW로, 빈티지 와인으로, 세상사는 카탈로그처럼 진전되어갔다. 1960년대 젊은이들이 내세웠던 ‘이상주의’는 어제의 뻐꾸기시계처럼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그러한 경쟁이 야기하는 것은 대부분의 국면에서 드러나는 한없는 폐색감이며, 목적 상실에서 비롯한 욕구불만이다.

그들 세대의 어떤 부분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무방비하게 신비주의적으로 운동화한 것도 어쩌면 그런 숨 막힘이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강력한 아우라를 가진 누군가가 시스템 밖에서 나타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불러들여, ‘개별적 차이니 뭐니 그런 성가신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리로 와 시키는 대로만 해라’고 말을 건넸을 때 그들은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러한 유혹에 대항할 만한 이상적인 지주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를 입은 삼십 대 직장인들 대부분이 범행에 대해 분노를 쏟아놓았지만, 그러면서도 “옴진리교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개인적으로 전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라고—조금 작은 목소리로— 덧붙이는 모습에 나는 적잖이 놀랐고 또한 깊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ㅡ 지하철 사린 사건과 《언더그라운드》에 관해 써달라는 미국 어느 잡지의 의뢰를 받고 쓴 글, 「도쿄 지하의 흑마술」

 

 

 

 

 

 

하루키 때문에 결국 레이먼드 챈들러도 파보기로 했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부터 읽기 시작했다.

반박하기 어려운 훈계에 혼나는 기분ㅎ

애거사 크리스티를 아마추어 추리 소설가 같다라거나 히치콕은 영화를 만들 줄 모른다는 둥 거침없이 비판하는 챈들러의 신랄함을 빼면 비유, 유머가 하루키 에세이랑 판박이다. 특히 고양이 묘사는 꼭 비교해 보시길ㅋㅋ 하루키가 정말 그를 영웅처럼 받들어 배웠군! 챈들러의 독설은 감칠 맛의 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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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일찍이 “챈들러는 나의 영웅”이라 말했으며, 최근까지도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와 챈들러를 한 권에 담는 것”이라고 밝혔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저서에서 챈들러를 읽으며 문체를 공부했다고 언급했다. 그 외 폴 오스터, 마이클 코널리, 하라 료 등 수많은 작가들과 마틴 스콜세지, 코언 형제 등 유명 감독들이 챈들러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다르지 않아서, 정유정 작가는 문체나 문장에서 챈들러를 스승으로 삼았다고 했고, 정이현 작가는 “가장 내 타입인 탐정은 필립 말로”라고 했으며, 류승완 감독은 평소 챈들러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말했다. 챈들러는 자신이 쓴 글이 십 년, 십오 년 뒤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만족시킬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름과 글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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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가 된 챈들러는 아내와 함께 크루즈를 타고 태평양을 돌다가 불현듯 소설을 쓰겠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이때 나이가 44세였다. 펄프 매거진의 대표 주자였던 《블랙 마스크Black Mask》에 단편을 기고하기 시작한 챈들러는, 1939년 51세의 나이에 마침내 첫 장편 소설인 『빅 슬립』을 출간했다."

ㅡ 「레이먼드 챈들러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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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고자 하는 건 오직 이야기 속 대화에서 이루어지는 몇 가지 실험에 대한 변명일 뿐입니다. 그런 실험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플롯과 상황이 필요하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그 두 가지 다 거의 신경 쓰지 않아요. 내가 정말로 신경 쓰는 것은 에롤 플린이 ‘그 노래’라고 부르는, 그가 말해야 하는 대사들뿐이죠. 나는 그저 필립 말로 이야기를 쓰면서 재미를 좀 보는 중인데(막히기 전까지는), 여기 오든이라는 친구가 나타나서는 나한테, 내가 범죄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쓰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내가 쓰는 모든 걸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하죠. 이봐, 늙은 친구. 기억하라고. 이 얘기는 범죄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어야 해. 제정신입니까? 아니죠. 내 책들이 범죄 환경에 대한 고찰이냐고요? 아닙니다. 그저 평균적인 수준으로 타락한 존재를 멜로드라마적인 관점으로 아주 강조해서 그릴 뿐입니다. 내가 멜로드라마 자체에 미쳐 있어서가 아니라 게임의 규칙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펄프 잡지에 기고하면서 나는 글에 이런 식의 문장을 집어넣었죠. ‘그는 차 밖으로 나와 햇볕이 내리쬐는 보도를 가로질러 현관 차양이 드리우는 그늘이 차가운 물의 감촉처럼 그의 얼굴에 내려와 닿는 입구까지 걸어갔다.’ 출간할 때 그 부분은 빠졌더군요. 독자들이 그런 종류의 문장을 좋아하지 않고, 오로지 행동에만 주목한다고요. 그래서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로 했지요. 내 이론은 독자들이 행동에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본인들도 깨닫지 못하지만, 사실 행동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독자들과 나의 관심사는 대화와 묘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감정입니다. 독자들에게 기억되고 각인되는 건 이를테면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죽음이 닥친 순간, 그는 매끄러운 책상 위에 놓인 클립을 집으려고 책상 위를 긁고 있었고, 클립이 자꾸만 미끄러져서 불만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으며, 그의 입은 고통스럽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반쯤 벌어져 있었고, 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이 죽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죽음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죠. 그 망할 클립이 자꾸 손가락에서 미끄러졌고, 그는 그저 책상 모서리로 그 클립을 밀어 떨어지게 해서 잡을 수 없었던 겁니다."

(1948년 5월 7일)

​ㅡ「독자들에게 기억되는 것」

 

 

 

 

하루키가 번역 작업을 하고 해설도 쓴 그레이스 페일리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2018, 비채)도 읽었다. 하루키가 언급하는 여성 작가는 드문데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이고 그녀의 단행본으로 유일하게 국내 번역된 책이다. 읽으면 하루키가 왜 격찬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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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대 두 개짜리 요트를 사려고 계약금을 걸어두었어. 올해는 제법 괜찮았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있거든. 하지만 당신은 영영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을 거야.

27년을 함께 사는 내내 전 남편은 속 좁은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말들은 막힌 관을 뚫는 배관공의 긴 와이어처럼 정말 좁다랗게 생겨서, 내 귓속으로 파고들어 목을 타고 거의 심장 부근까지 와닿곤 했다. 그러고 나면 전 남편은 배관공의 좁다란 장비가 목에 걸린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나를 내버려두고 어딘가로 사라지곤 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번에도 나는 도서관 계단에 주저앉았고, 그는 어딘가로 가버렸다는 얘기다.

《환희의 집》을 펼쳐 훑어보았지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비난을 들었다고 느꼈다. 그렇다. 사실 나는 뭘 해달라거나 이건 꼭 해야 한다고 요청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도 뭔가 소망하는 건 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두 주 만에 책 두 권을 반납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학교 제도를 바꾸고 사랑하는 이 도심의 여러 문제와 관련하여 예산위원회에서 연설하는 유력한 시민이 되고 싶다."

ㅡ단편 「소망」, 그레이스 페일리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

 

 

 

 

 

하루키 도로를 벗어나 다른 길로 갈 때도 있다.《Axt》(no. 031) 때문에 뽐뿌 받은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도 샀다.

 

 

 

 

 

낮에는 e book으로 윌리엄 트레버(전자책으로 1,200페이지가 넘는데 56% 정도 읽었다), 밤에는 자기 전 종이책으로 존 치버를 읽는다.

윌리엄 트레버는 아일랜드에서 대학 졸업 후 영국으로 이주해 전업 작가가 되었는데, 아일랜드 작가에게서 대체로 느낄 수 있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의 정서가 있다. 그는 '안톤 체호프와 제임스 조이스를 계승한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평도 받는데,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단편집을 읽으면 제임스 조이스 책으로 『더블린 사람들』과 닮았지만 전체적 흐름과 정서, 일상의 불안과 몰락은 안톤 체호프와 더 흡사하다.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첫 단편 「욜의 추억」

휴가를 온 미스 티처와 미스 그림쇼 앞에 탐정 일의 미행으로 갑자기 나타난 퀼런은 어린 시절의 불운을 이야기하며 어쩌면 지금과 달랐을 자신의 얘길 수다쟁이처럼 떠든다. 외로운 자는 수다쟁이와 연민에 휩싸이는 자로 쉽사리 바뀐다. 미스 티처는 퀼런의 아내가 되는 상상까지 한다. 갑자기 관계가 묘하게 바뀌는 국면이 흥미로운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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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런은 동정을 받은 것에 놀란 기색은 없었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부모님이 익사하지 않으셨다면 자기는 지금 두 사람 앞에 보이는 남자와는 다른 사람이 됐을 거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미스 그림쇼는 퀼런이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다. 퀼런은 그 여자가 유모차에 누워 있던 아기를 데려가기만 했어도 자기는 다른 사람이 됐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은 불운했다고 덧붙였다. “욜은 아담하고 멋진 해변 휴양지예요. 하지만 그곳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몸서리가 쳐져요.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불운 때문이죠. 까만 철문과 포드에 올라앉아 땀을 흘리고 있는 숙부를 생각할 때면 다른 일들도 모조리 떠올라요. 그 여자는 아이를 원했어요, 미스 티처. 아이한테는 사랑이 필요하죠.”

“여자한테도 그래요.” 미스 티처가 속삭였다."

ㅡ 「욜의 추억」

 

 

 

교외 지역을 다룬 작품들이 많아 존 치버도 '교외의 체호프'로 불렸는데, 트레버처럼 외톨이 같은 주인공, 정서를 많이 담지만 뉴요커 같은 산뜻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트레버는 비유도 거의 없고 사실주의 소설과 비슷해 약간 지루한 면도 있지만 가끔 놀라운 단편이 있다. 치버는 화려한 비유가 반짝반짝해 독자에게 트레버보다 치버가 더 호응이 높을 듯. 존 치버의 단편 선집이 나왔을 때 각종 도서상을 휩쓴 것만 봐도^^

윌리엄 트레버(1928~2016)와 존 치버(1912~1982)의 생존 연대를 생각하면 둘의 정서 차이는 더 신기. 사는 나라의 차이가 그토록 🤔?

 

존 치버에 꽂혀 치버도 모으기 시작하자 책 친구께서 치버 책을 선물로^^♡

 

 

 

 

하루키가 즐겨 마신다는 '시베리아 익스프레스'(하루키 문장 같은 깔끔한 맛의 보드카 토닉)를 마시며 치버의 일기를 읽는 밤은 세상 태평한 순간이 된다. 레이먼드 카버나 레이먼드 챈들러처럼 알콜중독으로 고생하기도 한 치버. 치버의 일기는 외로움의 연대기라고 해야 할. 일기가 원래 그런 것이지만. 문학동네에서 내는 치버 책이 품절도 있고, e book으로 하나도 없는데 e book도 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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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앉아 있는 의자, 방, 집 등 그 무엇도 내겐 중요하지 않다. 헤밍웨이를 생각해본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하늘의 색깔이라기보다 외로움이라는 절대적 미각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외로움은 절대적이지 않지만 그 외로움의 맛은 다른 무엇보다 강렬하다. 진지한 작가가 되고자 애쓰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ㅡ 『존 치버의 일기』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나'와 쥐가 25미터짜리 수영장을 가득 채울 만큼의 맥주를 마시고, 가게 바닥에 껍데기가 5센티미터나 쌓일 정도로 땅콩을 먹어댄 '제이스 바'가 가까이 없어서 나는 내 집을 술 마실 수 있는 나만의 책방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어도 견딜 만한 건 책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정리할 걸 어딘가 놔둔 기분이다.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서 생겨난 환영을 제거하는 것"(칸트 『순수이성비판』)이라면, 책의 의무는 외로움과 절망에서 생겨난 환영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문학만 마냥 읽을 수 없어서 틈틈이 다른 분야도 찾아서 본다.

짐 홀트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는 철학, 수학, 과학(뉴턴부터 양자물리학, 끈이론), 생물학 등등 방대한 내용을 종횡무진 연결하며 사고를 확장시켜 준다. 과학책 많이 읽어봤는데, 기존 상식을 수정하는 논점을 제시해줘 도움이 많이 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피타고라스의 것이 아니다! 같은ㅎ 이런 분야를 종합적으로 보고 싶은 분에게도 좋을 듯.

나는 이 책에 별 다섯 🌟🌟🌟🌟🌟을 주기로 했다.

 

 

 

 

 

여유롭게 책을 보는 건 이미 불가능한 상태인데, 알라딘이 연휴 할인 쿠폰을 줘서 책 사느라 또 난리도 아니었다ㅠㅠ

 

 

 

 

 

 

그저 그런 에세이들이 난무하는 이 시즌에 뛰어난 에세이스트로 손꼽히는 제프 다이어, 세스 노터봄 책을 만나 기쁘다💙

존 치버 단편 선집도 속속 수집에 성공해 『이제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만 사면 된다😤

《Axt 2020.7.8》(no.031)에서 정영목 번역가 얘기를 읽은 여파로 필립 로스도 수집에 박차를.

 

 

 

 

 

 

 

 

 

 

 

 

 

 

 

 

 

 

 

앙투안 볼로딘 『메블리도의 꿈』은 사려고 찜했던 책인데 우드스틱 북마크(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사은품으로 주길래 냉큼 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앙투안 볼로딘, J.D. 샐린저 책들이 주르륵 있으니 보기 좋다!

 

 

 

 

 

 

 

 

 

 

 

 

 

 

장 루이 셰페르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2020, 이모션북스)는 질 들뢰즈가 “이론이 하나의 위대한 시詩에 도달한 책”이라고 할 정도로 스틸 컷과 함께 남다른 영화 비평을 보여준다.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 보기로 한 번 보시길. 이모션북스에서 고품질 영화 서적을 낸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알 텐데 이 책도 아주 독특하고 재밌는 책이라는 걸 바로 캐치할 것임.

 

 

 

 

 

 

 

 

수 프리도 『에드바르 뭉크』 평전을 읽었기에(두꺼워서 완독은 못함;;) 이번 신간 니체 평전 『니체의 삶』도 믿고 구매. 벽돌책이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 주저주저했는데 알라딘 연휴 할인 쿠폰으로 기쁘게 지름😭(정말 기쁜 거 맞냐...)

벽돌책 & 완독 못하고 있는 책은 e book👍

수 프리도는 소설가이기도 해서 그녀의 글은 따분한 전기가 아니라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니체도 수학은 싫어했다는 게 정감 간다ㅎㅎ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는 사진이나 삽화 감상을 위해서도 종이책으로 갖고 싶었으나 역시나 알라딘 연휴 할인 쿠폰의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e book 소장😭 빨리,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위안.

 

 

길가메쉬 엔키두 설형문자 키링과 알라딘 럭키백 블랙이랑 잘 어울리네요😊

 

 

 

 

 

코로나19의 파도가 거칠어 언제 닫힐지 모르는 도서관 이용도 꾸준하다.

 

 

 

⚡​멋진 에세이를 찾아서⚡

제임스 설터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2020, 마음산책)

학교 선배였던 잭 케루악의 책을 보고 본격 글쓰기 투지를 불태웠던 설터 얘긴 작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ㅎㅎ 설터의 단단한 문장은 오랜 군 복무 영향도 있었지 않을까 싶다.

 

 

 

 

 

 

 

이 달은 온통 '나는 왜 쓰는가'에 사로잡혀 있는 거 같은데, 사두고 완독 못한 다나와 요코 『영혼 없는 작가』도 펼쳐보게 되었다. 독일로 간 다나와 요코는 허수경 시인과 겹치기도 한다. 알라딘에서는 종이책으로는 품절인데 e book은 5,000원에 살 수 있다. 쿠폰, 적립금 모아 사면 이런 좋은 책이 거저라니!

 

 

 

 

 

 

 

⚡ 책의 NG⚡

물론 내가 지금 이걸 왜 읽어야 하나 하는 책도 있었다. 베스트셀러로 시끄러운 책 중 하나인 이서윤, 홍주연 『더 해빙(The Having)』을 읽었다.

 

 

나라면 이 책의 프롤로그부터 50페이지까지는 확 쳐서 버렸을 것이다.

이서윤을 대기업가들이 2년이나 기다리는 대단한 신비주의 구루로 받들면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도 있고 경영컨설팅 회사의 이사까지 한 홍주연 기자가 어리석은 대중의 역할극을 하며 깨달음을 내려 주십쇼~ 하는 참 거슬리는 형식이다.

예전에 류시화 씨가 인디언 잠언집, 구루 라즈니쉬 잠언집 내던 것과 비슷한데 그보다도 얕고 일상어로 쉽게 전한다.

 

할머니 혜안으로 이서윤은 어려서부터 사주 명리와 동서양 고전을 공부했고, 이 책은 그런 선문답 같은 우화를 곁들여 내가 예상했던 대로 최근의 뇌과학이나 마시멜로 실험 같은 행동심리학, AI, 양자물리학을 거론하며 설득력을 키우려 한다.

 

 

 

요즘 자기 계발서 양상은 또 이런 거군요. 서양식 법칙 전개, 성공담(혹은 실패의 교훈) 설득이 아니라 멘토와의 상담 스타일?

2~3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매우 쉬운 책이어서 더 인기인 걸까요? 점을 보러 간다거나 상담을 받는 것보다 이 책값이 더 싸긴 하겠죠. 하지만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 생활 상식 정도의 내용인데 이 책에 호평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 마음공부도 안 하고 사는 겁니까? 겉으로는 부러우면 지는 거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 등등 정신 승리하면서 속으로는 안락하게 사는 부자 되고 싶고 공부는 골치 아프고?? 허허.

『시크릿』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관점에서는 크게 다를 거 없는 듯.

나도 이런 책을 좋게좋게 얘기해야 복이 올까나요.

"Having(지금 가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

이 책은 한 마디로 마음 여유를 늘 가지라는 소리. 긍정적인 분위기와 마인드의 사람에게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니 기회도 운도 굴러오기 마련. 그러면 일상도 여유롭기 마련.

2020년 3월에 1판 1쇄인데, 한 달 지난 4월엔 1판 15쇄ㅎㄷㄷ  이제 내 앞엔 부자의 길이 열릴 일만 남았어~ 메아리로 끝나는 먹을 거 없는 요란한 잔칫상. 한국이 미신/신비주의 전략이 잘 먹혀서 이서윤이라는 구루를 대동, 해외에서 호평이다!로 마케팅해 제대로 먹힌 거 같습니다. 책이 아주 쉽다는 것도 장점이겠죠. 굳이 살 만한 책은 아니니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훑어보시는 걸로도 충분하겠습니다.

 

 

 

 

 

🎁 빠지면 섭섭한 8월 알라딘 굿즈 정보 공유

 

본투리드 문구류는 꾸준히 레트로 느낌의 각진 디자인을 선보였죠.

이번에 나온

지워지는 볼펜(0.7) - 블랙, 블루

- 지워지는 성질 때문인지 진하지 않고 물 탄 느낌의 필기체가 나옵니다. 만년필보다 간편하고 재밌는 텍스처. 필체가 굵어서 긴 필기보다는 켈리그라피, 서명, 간단한 메모용으로 적당합니다. 지운 흔적이 미세하게 남지만 슥 지울 수 있어 신세계~ 필기감도 괜찮아요.

본투리드 볼펜(0.5) - 블랙, 블루, 그린, 브라운

- 실리콘 지우개 빼면 지워지는 볼펜이랑 디자인은 같습니다. 무광이라 따로 보면 고급스러운데 모여 있으면 좀 칙칙ㅎㅎ 필기감은 so so.

 

 

 

 

8월도 온통 책의 계단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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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8-19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챈들러 책 좋아해요! 챔피언은 더이상 스트라이크 존에 높고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할 땐, 자기 심장를 대신 던집니다. 무런가를 던지죠. 그저 마운드를 빠져나가 울어버리지 않아요.” 에서 울컥했던 기억이 나네요 :)

AgalmA 2020-08-19 19:35   좋아요 1 | URL
챈들러는 시니컬하면서 묘하게 울컥하게 만드는 문장이 많아서 곱씹게 돼요. 하루키 초기 소설 정서도 이런 울컥하게 하는 문장이 많아 좋아한 건데. 하루키가 챈들러를 왜 좋아한지 알겠더라는^^ 하루키의 원탑은 챈들러고, 피츠제럴드에게서는 우아함을 배운 듯 싶어요.

하나 2020-08-19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가 영향받았대서 챈들러도 쭉 읽었는데 기나긴 이별 읽고 엄청 울었었어요 ㅋㅋㅋㅋㅋㅋ 울일이 아닌 거 같은데.. 이러면서 ㅋㅋ이 비열한 거리를 어떻게든 재미있게 걸어보려고 놀라왔어요

AgalmA 2020-08-19 19:25   좋아요 1 | URL
예전에 <안녕 내 사랑> 읽다가 재미없어서 덮었었거든요ㅎㅎ; 저도 지금 <기나긴 이별> 제일 읽고 싶은데 <빅 슬립>부터 찬찬히 읽어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하나 2020-08-19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솔직히 기나긴 이별 말고는 다 그냥 그랬던 거 같아요 ㅋㅋㅋ 그 충격이 다시는 안 오던 거 같아서요 저는 감히 기나긴 이별 강추드립니당!

AgalmA 2020-08-19 19:29   좋아요 1 | URL
보통 빅 슬립, 안녕 내 사랑, 기나긴 이별 세 작품을 챈들러 대표 3부작으로 치잖아요. 제 생각에도 가장 후기인 <기나긴 이별>이 제일 읽을 만하지 싶어요. 혹시 <기나긴 이별> 리뷰 쓰셨어요? 하나 님 리뷰 있다면 꼭 보고 싶어서요^^

하나 2020-08-19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는 아시다시피 ㅋㅋㅋㅋㅋ 신간평가단 아니면 잘 안 썼구요. 아주 예전에 메모를 어딘가에 남겨둔게 있을 거 같은데 찾아볼게요! (신남) 아... 회사는 안 좋은 거네요. 책 얘기 몇년만이라 넘 신난 거 양해해주세영~

AgalmA 2020-08-19 19:34   좋아요 1 | URL
저도 책 수다 오랜만이라 재밌어요ㅎㅎ

2020-08-19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3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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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루키스트(harukist, 무라카미 하루키 팬의 통칭), 무라카미언(murakamian, 프랑스)이란 조어가 생길 정도로 하루키 팬층은 두텁다. 창작 생활 40년이 넘어서도 청년층의 인기도 여전하다. 북플 통계를 보면 하루키는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작가다. 하루키가 책을 계속 내는 한 이 순위는 변함없을 거 같다. 하루키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한 권만 읽을 수 없고 한 번만 읽지도 않는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에세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곳을 골라 마음껏 빠져든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하루키 팬들도 그럴 것이다. 독자들은 하루키식 (때론 오글거리는) 청춘형 문장과 (‘봄날의 곰’이나 ‘100퍼센트 소녀’ 같이 기발한) 비유와 유머, 그의 라이프 스타일(마라톤 같은 열혈 운동가, 영화와 음악 등 박학다식한 교양인, 요리와 다림질 등 만능 가사맨, 문화마저 멋지게 섭렵하는 매력 만점 여행가)에 반해 그의 소설에 쉽게 접근한다. ‘재밌다’, ‘이전보다 어렵다 or 별로다’, ‘여성을 도구적으로 쓴다’ 등의 인상평으로 그치기도 하고, 그가 뿌려놓은 메타포와 상징의 의미를 해석해보려 머리를 쥐어짜기도 한다. 하루키 소설은 어렵게 읽고 싶으면 어렵게 읽을 수 있고 쉽게 읽고 싶으면 쉽게 읽을 수 있다. 

나카무라 구니오, 도젠 히로코 『하루키의 언어』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소확행'이란 조어는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 하루키의 아내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림과 사진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1993~1995년 미국 체류기)이란 수필집을 통해 유명해진 것이라고 한다.

 

 

위에서 열거한 하루키에 대한 전반적 호응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본의 서브컬처 비평가 오쓰카 에이지는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에서 가라타닌 고진을 인용하며 "재패니메이션, 하루키, 요시모토가 쉽사리 세계화되는 이유는 구조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독자든 비평가든 하루키가 영향받았다고 언급한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샐린저, 피츠제럴드 같은 후광 효과로 작품 분석에 실패했다고 말하고, 하루키는 오히려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나 《스타워즈》에 더 영향을 받았다며 신화적 구조('모험으로의 부름 - 조력자(여신)와 만남 - 모험 - 역경 - 변모 후 귀환')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하루키 작품을 쭉 읽어온 독자라면 그의 소설에서 신화의 특성을 읽는 건 어렵지 않다. 남편이 저승의 나라로 죽은 아내를 찾으러 가는 오르페우스 신화(『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 연대기』 비롯해 기타 등등), 아버지 살해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해변의 카프카』) , 고대의 죽임을 당하는 왕(『1Q84』) 등등 말이다. ‘구조밖에 없다’라고 질타하는 에이지가 전말을 제대로 파헤친 걸까. 그 또한 캠벨, 《스타워즈》 같은 대단한 기표들로 폼 나는 비평을 했다는 느낌이다. 이계(異界)와 현실을 오가는 신화적 구조로만 읽을 때 소설의 매력은 휘발된다. 주목할 것은 구조 자체가 아니라 왜 이런 구조를 가지느냐이다. 하루키가 자주 다루는 '실종', '가출', '상실', '죽음'이 오히려 이런 구조를 부른다.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일층은 모두가 모여서 밥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는 공동 공간이다. 이층은 개인 공간으로 나뉘어 각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한다. 지하가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쟁여두거나 이따금 들어가 넋 놓고 있다가 나오기도 한다. 일반 소설이라면 이런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실은 지하 일층 아래에는 또 다른 지하가 있다. 그곳에는 특수한 문이 있어서 평소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어쩌다 들어가면,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어둠뿐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평소 집 안에서는 하지 못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건 자신의 혼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몰라 복귀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소설가는 의식적으로 그 지하 이층의 방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밀의 문을 열고 캄캄한 어둠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어떤 일을 체험하고, 다시 문을 닫고 현실로 복귀한다. 그것이 직업적인 작가이고, 진짜 작가다.’

ㅡ 유카와 유타카, 고야마 데쓰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하루키가 정의한 작가론처럼 그는 지하 이층형 작가다. 아기자기한 재미 가득한 그의 에세이나 소설 속 일상 묘사는 일층의 모습이다. 정체성을 찾는 근대적 교양 소설의 면모는 그의 모든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지하 일층의 모습이다. 주체가 해체되고, 선악의 기준도 없고, 시공간도 모호하고, 이질적인 게 뒤섞여 경계가 없는 어둠의 세계는 지하 이층의 모습이다. 실제 소설에서도 지하에서 한 단계 더 내려가야 하는 지하 세계나 우물, 문 너머 문, 벽 너머 거울 등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암호를 2차 암호화하는 ‘셔플링(인간의 잠재의식을 이용한 정보 변환술)’도 지하 이층의 표현형이다. 하루키는 가능하다면 더 깊숙이 더 복잡하게 엮고 싶어 한다. 신화적 구조에 혼령의 세계나 노몬한 같은 역사적 사건까지 곁들여 지하를 아주 두텁게 만든다. 그럴수록 주인공이 돌아오는 현실세계와 일상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루키는 스티븐 킹의 소설이 보수적이고 도식적이면서 가장 문제가 선은 올바르고 강하며, 악은 언젠가 멸망하는 ‘선악이원론’에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지극히 단순한 도식을 부조리의 세계에 가져왔다는 데 스티븐 킹의 성공비결이 있지만 바로 그래서 그는 제2의 러브크래프트가 될 수 없다’라고 했다.(무라카미 하루키 「동시대로서의 미국 1: 피폐 속의 공포-스티븐 킹」, <바다> 1981년 7월 호. 오쓰카 에이지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에서 인용) 스티븐 킹의 허점 파악은 하루키의 이야기론에 분명 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하루키 이야기 속에는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눌 수 없다. 저 세계에서는 가능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으며, 선택 속에 이야기가 달라질 가능성을 항시 담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하루키 소설을 게임 문화와 많이 연결하지만 소설과 영화 속에 힌트가 있다고 본다. 하루키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해 늘 격찬했다. 그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도 좋아했다. 하루키는 초기 소설부터 지금까지 쭉 미스터리·스럴러 장르 소설의 특징을 고수해왔다. 이 속성은 감춰진 비밀과 욕망, 민낯, 악을 뒤쫓는 액셀레이터로 작동한다. 최근 하루키의 소설 경향을 보면 지하 이층의 규모를 더 키워 판타지 세계로 만들고 있는데, 주인공이 관계 맺지 않는 거리 두기(detachment)에서 적극적인 관계 맺기(commitment)로 변화해가는 모습이나 줄곧 고수해온 1인칭에서 다른 인칭으로 시점 변화를 준만큼의 효과는 낳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가 일반 연애소설 『노르웨이의 숲』(1987), 르포 『언더그라운드』(1997) 만큼 하루키 소설 연보에서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초기 쥐 3부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1988년 『댄스 댄스 댄스』 추가)이 타인의 죽음을 매개로 이계로 가는 연대기를 진행했다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양립하도록 SF적 소재와 패러럴 월드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 소설 같은 평행세계는 2009년 『1Q84』의 ‘1984’와 ‘1Q84’로 다시 만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자연과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져 있는 소박한 가상 공간 '세계의 끝'과 철저히 인공적이고 어두운 현실 공간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나뉘어있는데 많은 것들이 뒤틀려 있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소리를 뽑거나 사람이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현실이다. 주인공 ‘나’는 조직에서 ‘계산사’로 일하며 중요한 암호를 숨길 수 있는 능력자이지만 그저 보통 사람이다. ‘세계의 끝’에서도 ‘꿈읽기’라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무력하긴 마찬가지다. ‘계산사’나 ‘꿈읽기’는 인생의 메타포다.

 


 

“도무지 모르겠군.” 나는 말했다. “내가 이 뼈에서 오래된 꿈을 읽어 내야 한다는 것까지는 알겠어. 그런데 그런 다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군. 그럼 일하는 의미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일에는 뭐든 목적이 있을 테니 말이야. 예를 들어서 그걸 어딘가에 베껴 쓴다든지, 어떤 순서에 따라 정리하고 분류한다든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설명할 수 없어요. 오래된 꿈을 계속 읽다 보면 당신 스스로 그 의미를 절로 알게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어차피 그 의미란 당신의 일 자체와는 별 관계가 없어요.”

(중략)

“읽기로 하지.”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한번 테이블에 놓인 두개골을 들고 손안에서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을 것 같으니까.”

ㅡ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세계의 끝’으로 들어오며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림자를 떼어낸 ‘나’는 과학에서 정의하는 ‘자아’와 완전히 다르다. 신경 뇌과학에서는 ‘기억’이 ‘나’를 형성한다고 본다. “마음이 없으면 어디에도 가지 못해”라고 말하는 ‘나’의 대화처럼 하루키는 ‘마음’, ‘혼’을 ‘나’의 본질로 상정했다. 이걸 이해하면 ‘세계의 끝’에서 ‘그림자(기억)’와 이별하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소설 속 두 세계에 다 존재한 ‘일각수’는 이와 비슷한 상징성이 있다. 일각수는 특수한 의미를 지니지만 동서양이 다르게 해석하는 가공의 동물이다. 동물이나 자연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적 존재이자 남근적 상징을 가지면서 처녀만이 잡을 수 있는 신화적 특징(‘세계의 끝’), 홀수의 뿔로 인해 자기방어가 취약한 기형의 고아로 도태될 진화적 특징(‘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양면성을 가진다. 진화의 세계에서 일각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의식 프로그램을 나도 모르게 ‘나’에게 프로그래밍한 박사는 과학의 모습을 한 신(神)이었다. '나'가 만든 '세계의 끝'은 그것을 받아들여 붕괴의 숙명에 처한다.

 

 

 

“맞아요. 사고 시스템이란 그야말로 그런 것이야. 한 마디로 할 수 없어.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자네는 강단이 있거나 겁이 많은 두 가지 양극 중에서 어느 하나를 거의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것이야. 그렇게 세밀한 프로그램이 이미 자네 안에 있는 것이지. 그러나 그 프로그램의 자세한 내역과 내용에 대해서 자네는 거의 아무것도 몰라. 알 필요가 없거든. 그걸 몰라도, 자네는 자네 자신으로 기능할 수 있어. 이거야말로 블랙박스 아닌가. 다시 말해서 머릿속에는 인류가 아직 발을 내딛지 않은 거대한 코끼리 무덤 같은 것이 묻혀 있는 셈이지. 대우주를 제외하면 인류 최후의 미지의 대지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지. 코끼리 무덤이라는 표현은 좋지 않군. 왜냐, 그곳은 죽은 기억의 집적장이 아니기 때문이야. 정확하게는 코.끼.리. 공.장.이라고 해야 가깝겠어. 그것에서는 무수한 기억과 인식의 칩이 선별되고, 선별된 칩이 복잡하게 얽혀서 라인을 만들고, 그 라인이 또 복잡하게 얽혀서 번들을 만들고, 그 번들이 시스템을 만들고 있어. 정말 ‘공장’이지 않은가. 그곳은 생산을 하고 있어요. 공장장은 물론 자네지만, 안타깝게도 자네는 그곳을 방문할 수 없어.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그곳에 숨어들려면 특별한 약이 필요하지. 루이스 캐럴의 그 이야기는 참 잘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그 코끼리 공장에서 떨어지는 지령에 따라 우리의 행동 양식이 결정된다는 말이군요.”

“그래요.” 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러니까…….”

“잠깐만요.” 나는 노인의 말을 막았다. “먼저 질문할 게 있습니다.”

“그래요, 어서 해 봐요.”

“얘기의 맥락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현실적으로 행동 양식을 표층적 행위의 결정까지 확대할 수는 없잖아요. 예를 들어서 아침에 일어나 빵과 함께 우유를 마실 것이냐 커피를 마실 것이냐 홍차를 마실 것이냐, 그건 기분에 따른 것 아닐까요?”

“옳은 지적이에요.” 하면서 박사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인간의 그 심층 심리가 늘 변화한다는 것이지. 비유하자면, 매일 개정판이 나오는 백과사전 같은 것이에요. 인간의 사고 시스템을 안정시키려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어요.”

“문제요?” 나는 말했다. “그게 왜 문제죠? 인간의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잖아요.”

ㅡ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쯤 되면 하루키가 이런 실험, 이런 질문을 소설에 담은 배경이 궁금해지지 않나.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하는 물음은 변하지 않는 탐구 주제인데,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968년)를 원작으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스릴러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1982년에 개봉했다. 1984년에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가 개봉했다. 공교롭게도 1985년 개봉한 테리 길리엄의 디스토피아 SF 영화《브라질》은 하루키의 이 소설과 매우 유사하다. 하루키의 이 소설은 그 시대를 빼고 말할 수 없을 거 같다. 박사는 인간이 시간을 확대해서 불사에 이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분해해서(사유 속에서) 불사에 이른다는 걸 깨닫게 되자 과학자의 지적 호기심에서 계산사 ‘나’를 실험 대상으로 이용했고, 불사의 세계와 그의 세계(세계의 끝)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운명을 내놓는다. 스스로 사고하는 AI가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의미를 되묻듯 인간을 프로그레밍된 생존 본능 때문에 살아가는 존재로 해석할 수 없다.

아무도 비를 그치게 할 수 없고 아무도 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모두에게 공정하게 내리는 빗속에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가 흐르며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닫히는 풍경은 《블레이드 러너》의 포크 풍 같다. '나'가 만든 세계인 ‘세계의 끝’은 문지기가 지키며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열리던 그로테스크한 알레고리 소설 카프카 『법 앞에서』의 낭만적 오마주였다. 소설의 역사가 그렇듯 이 모든 것은 이야기만을 좇는 모험이 아니었다. 우리는 하루키를 우리의 ‘꿈읽기’로 여겨 읽고 또 읽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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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남진희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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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화권의 방대한 신화적 존재들을 간략하고 재밌게 살펴보기 좋았습니다. 보르헤스가 만든 상상동물도 사랑스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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