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한창훈 작가님과 염승숙 작가님의 작품을 읽지 못했었다. 강연을 신청한 이유는 사회자로 나오시는 신형철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 분의 책 <몰락의 에티카>의 서문을 읽고 마음을 뺏겨 버렸다. '문학은 비루한 자들이 하는 것이다', '문학은 몰락의 에티카다' 라는 그 분의 말에 나는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던가? 비평집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만한 나에게 비평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분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 분을 뵐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신청 댓글을 달아놓고 당첨이 되기만을 기다리면서 한창훈 작가님의 나는 여기가 좋다를 읽었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바다 내음이 날아왔다. 그리고 짭쪼름한 바다 냄새 보다 내 코를 더 자극하는 건 바다에서, 섬에서 한 평생을 산 이들의 땀 냄새와 얼큰하게 취한 술 냄새였다. 책을 읽으면서 장면이 상상이 되는 것은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그곳의 냄새가 같이 떠오른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한창훈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하나의 장면보다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그만큼 생생하고 날 것 그대로의 감성이 묻어 있는 소설이었다.
25일 저녁 7시 10분 쯤 홍대 토끼의 지혜에 도착했다. 3월은 언제나 변덕이 심했다. 얇은 옷을 꺼내 입으면 그제서야 꽃샘 추위로 사람을 놀라게 했다. 어깨를 웅크리고 까페에 들어섰을 때 이미도 많은 사람들이 까페 안에서 강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연회 장소가 참 좋았다. 아늑하고 집중이 잘 되는 분위기였다. 얼마 후 세 분의 선생님이 도착하셨다. 그리고 신형철 선생님의 사회로 강연이 시작됐다.
신형철 선생님은 느릿느릿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사회를 진행하셨고, 작가분들께 질문을 던지셨다. 한창훈 작가님은 그럴 때 마다 위트있게 좋은 답변을 해 주셨다. 한창훈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야기꾼 그대로의 느낌이 묻어났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을 안달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창훈 작가님의 이야기에 마냥 웃고 있다보면 어느 새 그 말 속에 담겨 있는 진한 삶의 애환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작가들에게 더 거친 곳으로 가라! 더 많은 곳에 퍼져 살아라! 라는 충고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과 쓰려는 사람 모두에게 뼈 아픈, 그러나 중요한 말이 되었다.
또한 염승숙작가님은 참 귀여운 분이셨다. 웃음이 많은 분이셨고, 유머와 농담, 속담과 사투리를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그 모든 상상력과 환상은 아마 그 유머에서 나오는 듯 했다. 꽤 많은 80년대생 작가들의 책이 나왔고,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신형철선생님의 말씀처럼 염승숙 작가님의 작품은 또래 작가분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 방식을 선택하고 있었다. 다르다는 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하나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강점이 아닐 수 없다. 조곤조곤 자신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참 많이 고민하고, 공부하는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시간은 물론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지만 그 분들의 책에 사인을 받은 것 또한 말 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사인이 된 책을 가슴에 품고 나오면서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나에게 글을 쓰는 작가란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이야기꾼을 동경했으며 사람들을 깔깔거리게 만들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잠을 못자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꾼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떨리고, 설레인다. 3월 변덕스러운 봄 날씨를 마냥 낭만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은 세 분과의 만남은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 시간이었다.
덧 - 한창훈 작가님이 자신이 토끼띠라고 소개하시면서 강연회 장소였던 까페 이름이 '토끼의 지혜'라는 것에 웃으셨던 것이 기억난다.
덧 - 신형철 선생님은 <몰락의 에티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꽤 쑥스러워하셨는데 그런 와중에도 해주셨던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선생님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이렇게 착하게만 비평을 하느냐? 왜 비판하지 않느냐?라는 말씀을 많이 듣는다고 하셨다. 요즘은 비평과 비판을 같은 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선생님은 비평은 비판보다 더 넓은 개념이라고 생각하신다고 하셨다. 작가들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 보다 한 것에 대해서 잘 했다고, 그것을 부각시켜주는 것이 비평가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계속해서 그렇게 비평을 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왜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독한 말을 하고, 못한 것을 조목조목 꼬집어야 진짜 비평이라 생각했을까? 신형철 선생님의 그 말씀은 한참 동안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