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재님 닮은 계단옆 소박한 한련화
그동안 너무 설레이게하고 닮고 싶던 효재님 댁에 다녀올 수 있는 귀한 선물을 받게 해주셔서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책을 직접 구매해서 읽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 간 여러 매체에서 효재님이 나오시면 안테나 쫑긋 눈 크게 뜨고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귀한 선물은 바로 쓰지 못하고 아껴두고 만지작 거리고 계속 가슴설레듯 효재님을 여러 매체 속에서  만날 때 마다 감히 쉽게 마음을 다 열지 못하는 설레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용기를 내어 효재님과 대면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으며 기쁨과 설레임을 받았고 효재님 댁의 봄나들이에 초대되는 귀한 선물까지 얻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었어요.   

 

 귀한 곳에 초대해주신 귀한 마음에 선물하고 싶어 많이 고민하던 차에 효재님의 귀하게 여기는 인형들 특히 내가 한눈에 반한 메리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내 아이가 사랑받고 예쁨 받으면 기쁜 것이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기에 효재님의 사랑을 받는 그 아이 메리에게 선물을 주었을 때 기뻐하실 효재님을 생각했어요.기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말린 색색의 꽃잎들을 두시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예쁜 부채를 만들었어요.메리의 선물을 보며 너무 기뻐하시던 그 모습을 보니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 두 시간 밖에 자지 못해서 피곤했었는데 크게 웃어주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에 피곤이 사라졌습니다.
                                                    메리에게 선물한 부채

 정갈하고 맛있는 떡볶이와 향 좋은 차도 너무 감동이었고 음식 먹기  전에 섬세한 행동가지에 대해 조심스러운 말씀들을 해주시는 자상함에도 감동받았어요.같은 음식이라도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대접하시는 마음을 느끼며 더욱맛있고 행복한 맘으로 성찬을 맛보게 해주심 감사드립니다.  집 안  곳곳에 세심한 손길이 수없이 오고 가고 그런 정성들로 집이 더욱 빛이나는 것이 오감으로 전해지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늘 의미있는 삶이 되도록 일 분 일 초를  디자인하시며 사시는 모습을 꼭 닮고 싶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제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공부하고 있고 그 중 미술치료에 많은 힘을 얻고 제가 가장 의미있어하는 일이라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누구나 다 딸깍 딸깍 넘어가기 힘든 고비가 올 때마다 노력하고 이겨내라는 그 말씀에 저 역시 또 한번 힘을 내어 좋은 미술치료사로 자라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자기소개 시간에 마음에 담아 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마음에 담아 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기 전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이 있어 결국 자기소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말아서 무척 속상했습니다.  이곳에 오게 되어 너무 설레었고,만나뵈어 기쁘고 제게 힘이 되는 시누이와 함께 오게 되어 더 좋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저의 든든한 후원자인 막내시누이도 효재님을 너무 동경하는데 함께 오게 되어 너무 즐거워하고 고마워해했습니다. 


가방모델로 서는 영광을 주신 효재님 감사합니다.

 눈물만 흘리고 슬퍼하던 저를 정갈하고 품위있는 모양으로 손수 머리 땋아 주시고 보자기가방 모델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레지투'라는 별명도 붙여주시고 가을 삼겹살 파티에 꼭 와서 삼겹살 구우라는 또 한번의 초대에 너무 감사드립니다.삼겹살 맛있게 구울테니 잊지말고 꼭 불러주세요.그리고 말씀 중간에 어깨에 손을 올려주실 때마다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던 말씀듣고 와서 지금 힘내고 더 열심히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효재님께 선물드리러 가서 더 귀한 선물들을 받게 되어 너무 기뻤고 행복합니다. 제 생에의 즐거운 이벤트 중 가장 황홀하고 귀한 이벤트라 여겨집니다. 


정갈하고 우아한 머리로 변신한 제 모습이에요*^.^*

여러 가지 사연만큼 여러 곳에서 오신 모든 분들께 효재님이 들려주신 여러 가지 좋은 말씀들 많이 초대받은 모든 분들께 영양제가 되어 힘을 길러주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귀한 만남을 준비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고운 자태로 좋은 말씀 들려주시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닮아 한 미모하는 내 사랑 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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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삶에서 진보의 희망을 찾다 


예수로 읽는 한국사회, ‘B급 좌파’ 김규항의 <예수전>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이 가장 아름다운 글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불온한’ ‘B급 좌파’ 김규항. 그가 또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위해 책 <예수전>을 내놓았다. 그는 주로 칼럼을 통해 이야기를 해왔었는데, 이 책은 그가 본격적인 단행본으로 집필한 최초의 책이다.
2005년부터 진행된 ‘예수전’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에는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의 진정한 목소리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김규항의 고민과 답이 담겨있다. 그는 이 책에서 마르코복음을 인용하여 예수의 삶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독자가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는 교리 속에 화석화된 예수를 되살려 내고, 그로부터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을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전> 출간을 맞아 지난 5월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벼레별씨 카페에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 있었다. 아기자기한 까페는 50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고, 저녁 7시30분부터 2시간가량 계획됐던 만남은 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10시 반경까지 계속됐다.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독자의 질문에 작가가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긴 만남의 모든 내용을 전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일부나마 중계한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소란스럽고 사나울 수 있다   

Q. 장사꾼들의 상을 뒤엎은 예수의 과격한 행동에 관련하여 선생님의 비폭력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A. 예수의 행적 중에선 상당히 과격한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상 좀 엎은 게 그렇게 큰 일 입니까? 우리는 보통 평화란 뭔가 조용하고 온순하고 차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은 사회적 불의와 모순을 덮는 나쁜 의도로 많이 사용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란 사람과 사람사이에, 사람과 세상 사이에 깨진 조화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때론 가장 소란스럽고 사나울 수 있습니다.
세상엔 사실 폭력주의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폭력을 사용하는 주요한 사람들도 공식적으로는 다 비폭력주의자이지요. 폭력을 미화하고 폭력이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렇게 폭력으로 돌아가고 불의할까요. 그래서 ‘폭력은 나쁘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비폭력주의라는 것은 오로지 폭력의 현장에서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의 미사일 공격에 자식이 찢겨 죽은 어미가 죽음보다 더한 슬픔을 뚫고 ‘우리는 똑같은 폭력의 보복을 해선 안된다’고 말할 때 누구도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지요.
그러나 1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는 사람, 1년 내내 파출소 한번 갈 일 없는 사람이 ‘저항으로서의 폭력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의 피해자들에겐 가해자의 폭력보다 끔찍한 폭력이 됩니다. 이건 폭력, 비폭력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염치의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비폭력이란 것은 항상 이론, 논평, 구경으로서의 얘기였습니다. 비폭력주의를 얘기하려면 자신을 폭력의 현장에 위치시키고 자신을 폭력에 충분히 노출시킨 후에 그런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기억하고 존경하는 비폭력주의자들은 언제나 폭력의 현장에 있었고 바로 그 폭력에 의해 죽어갔습니다.

Q. 한국 기독교의 부패, 비리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교회를 다니는 청년들이 제게 고통스런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것이 뭔가 외람된 것 같고 꺼려진다는.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것이 교회인가 교회가 아닌가를 먼저 물으라고 물어봅니다. 십자가를 달고 교회란 간판을 달았다고 해서 다 교회는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하지요. 교회는 진정한 교회이든지 아니면 더 나쁜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목사의 재정비리, 교회 세습 등 워낙 타락해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없애면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준이 낮아져 있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 그건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게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최소한의 것입니다. 그것은 기본을 갖추는 일이지 진정한 교회를 만드는 일은 아닙니다.
예수가 살던 당시의 성전이란 현대의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성전은 하느님이 살고 있는 곳이었지요. 그런데 예수는 그런 성전을 바라보며 벽돌 하나 남김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폭언을 합니다. 저는 예수가 성전 앞에서 보인 이런 당당한 태도를 교회, 기독교 문제로 고뇌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NGO, 시민운동, 개혁운동, 실현 가능 진보’는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세력  


Q. 책에서 바리사이인 얘기를 하시면서 NGO, 시민운동, 개혁운동, 실현 가능 진보 등이 진정한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세력이라고 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설명을 더 듣고 싶습니다.
A.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사회운동 주류가 민중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운동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기존의 민중운동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민중운동을 배제한 것이기도 하지요. 노동자, 농민 기반 운동은 이제 옛날의 운동이 되어버렸습니다. 90년대 이후 진행된 개혁운동, 개혁정치들에 의해 배제된 것이지요. 거기에 대해서 보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보를 가로막는 것은 일상에서 가장 나쁜 세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가장 나쁜 세력은 그 나쁨이 이미 충분히 드러나 있어 우리가 특별히 영향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가장 악한 세력과 갈등하거나 짐짓 적대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인민들에게 존경심과 설득력을 얻는,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위험하지요. 그래서 예수는 바리사이인들과 그렇게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을 쓰면서 ‘NGO, 개혁운동’ 등의 표현을 빼야하나 상당히 고심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순수하고 정의로운 활동가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고 해야 할 말이 더 많습니다.  

 

예수로부터 구하는 진보의 희망   

Q. 어떻게 예수의 삶으로부터 진보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A.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새로운 혁명론이 필요하다, 새로운 상상력과 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 사람들의 노력의 방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예수가 말하는 건 이미 새로운 세상의 씨앗이나 현상이 이미 우리 안에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을 우리는 새롭고 어려운 것을 이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 꼴을 갖추고 사람과 사람 관계를 회복하는 것, 이러한 것이 중요한 혁명의 씨앗입니다.
결국은 우리 내면의 문제입니다. 이 사회의 반영, 거울인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가 문제이지요. 하지만 사람의 내면은 계량할 수 없고 측정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보수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지요. 신자유주의, 이명박을 비판하면서 내 안에 있는 것들도 계속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면에서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는 것들을 자기 자신은 들여다 볼 수 있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좀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혁명이라는 것은 결국 종교적인 차원의 것입니다. 가장 급진적으로 싸우면서도 늘 기도하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혁명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의 결과가 반영되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형태가 될 때 세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제주도의 해녀할머니들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평생 해녀 물질로만 살아 온 여든 된 해녀할머니에게 물었지요.
"스킨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더 많은 수확을 하실 텐데요?"
"그걸로 하면 한 사람이 100명 하는 일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안 하세요?"
"그렇게 하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이 할머니가 제주도 해녀 좌파 연합의 회장은 아닙니다.(웃음) 그런 정서가 수천년 동안 정직하게 일하면서 먹고 사는 보통 사람들의 지배적인 정서였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지요. 지금은 그 사람들의 정서가 오히려 특별하고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이러한 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보다 많이 갖는 것이 인간의 욕망일 수 있지만 더 가진 게 뭔가 불편하고 더디 가더라도 같이 가는 것, 결국은 자기 안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사회가 변해야 한다, 내면이 변해야 한다’ 이분법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예수에게는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였지요. 예수한테는 기도하는 것과 싸우는 것이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우리가 이미 잉태하고 있는 혁명의 씨앗들이 있습니다.
예수의 표현대로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초대했고 우리는 그 초대에 응하면 됩니다. 물론 떵떵거리고 배불리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 받고 눈물짓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초대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로부터 현재 공황 상태에 이른 혁명, 다음 세상, 진보에 대한 상상력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의 삶으로부터 구하는 진보의 희망 이야기를 끝으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마무리 되었다. 이 외에도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말들이 오갔다.
김규항은 그가 기존에 가진 모든 종교적 지식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진지하고 순정한 묵상을 통해 예수의 삶을 해석하려 했으며, 그러한 예수의 삶이 복음 즉 ‘기쁜 소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가 묵상한 예수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려 한다. 그는 이 책이 수많은 ‘나의 예수전’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수많은 ‘나의 예수전’은 결국 나와 세계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동력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삶으로부터 얻는 진보의 희망, 김규항은 우리 안에 숨겨진 새로운 세상의 씨앗을 건드리고 있다.

 

*초대해주신 알라딘 관계자 및 돌베게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특히 김희진 편집자님 멋지세요!!!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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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효재’엘 갔었다. 개인적으로 토요일에 비가 내린다고 하여 속으로 은근히 좋아했었다. 모름지기 마당이 있고, 나무가 있고, 풀이 있는 곳은 비가 내릴 때 훨씬 운치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난 비오는 날의 고궁을 좋아하고, 한옥을 좋아한다. 처마 밑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시름 모두 잊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가 보지는 못했지만 책으로, 이미 다녀온 다른 분들의 사진으로, ‘효재’의 분위기를 파악한 나는 비가 와라, 비가 와라, 주문을 외웠다. 하늘은 내 편이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꽤 굵은 비가 내려주었다. 

혹시라도 떨어질까봐 이 친구 저 친구 모두에게 신청하라 바람 잡아 놓고선 혼자 달랑 당첨이 되어버려 얼마나 민망하던지. 그러거나 말거나 씩씩한 친구들은 이리저리 온갖 루트를 다 찾아보더니 결국 오지 못하는 사람을 대신하여 갈 수 있었다는. 덕분에 아침 일찍부터 만나 조조를 보고 비 내리는 풍경이 멋지게 보이는 파스타 집에서 점심을 먹고 ‘효재’로 향했다. 

예전에 삼청동에 살 때는 자주 넘어가던 성북동 길을 너무나 오랜만에 가보니 낯설기는 하더라마는, 차도 없이 그 언덕을 우산 받쳐 들고 걷는 기분이라니!(택시가 잡히지 않아 버스타고 근처에 와서 그 주택가를 한참 걸어올라 갔다.) 빗물이 샌들 사이로 들어와 발을 적셔도 즐겁기만 했다. 헥헥거리며 길상사까지 올라오니 맞은 편에 작은 간판이 보인다. 한문으로 적은 ‘効齋’,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양쪽에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작은 돌계단, 비에 젖은 꽃들과 나무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현관을 들어서니 이미 많은 분들이 와 계셨다. 마루엔 가방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렇게 ‘표시’를 해 두어야 ‘효재’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이웃들이 왔다가 가방을 보고선 ‘손님이 와 있구나!’ 하고 그냥 돌아가거나 화장실만 살며시 다녀가곤 한단다. 또 가방 들고 들어와 좁은 공간에 여기저기 두어 정신 사나운 것보다 빈손으로 앉아 있으니 얼마나 보기 좋으냐고 효재님은 말씀하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부엌에 있는 효재님이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고, 참석한 독자들은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던 것 같다. 뒷자리 구석으로 앉아 방안을 살피고 창밖을 보니 역시 내 예상대로 처마 밑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내리는 비를 감상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구나 싶었다. 

대충 올 분들이 다 온 후에 효재님의 강연이 시작 되었다. 비가 내리는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시작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어느 집을 방문했을 때의 예의라든가, 전화 받으며 걸레질을 하는 노하우라든가, 이사 온 이야기며 친구 이야기도 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침을 맞아 정신이 몽롱할 텐데도 우릴 보니 힘이 난다며 정말, 씩씩하게 강연을 해주셨다. 



기다리던 떡볶이 시식 시간, 분명 점심을 먹고 왔건만 ‘효재’에 들어올 때부터 풍겨오던 그 매콤한 냄새. 지리산에서 직접 따온 뽕잎차가 같이 차려져 있었다. 우선 떡볶이를 먹을 때의 예의, 차를 잔에 따를 때의 예의범절을 배웠다. 떡볶이 하나 먹는 데도, 차 한 잔 마시는 데도 이리 어려운 건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다만 살짝 모자라는 떡볶이, 아쉬웠다. 

떡볶이를 먹고 난 후 집을 두루두루 구경할 시간이 주어졌다. 가지고 간 카메라로 구석구석 다니며 ‘예쁘고 아름다운 소품과 장소는 몽땅 찍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찍었건만, 고물 디카는 그다지 호의적이질 못해 대부분 흔들려주시고.





처마 밑에 서서 비 내리는 마당을 바라보았다. 초록빛의 화사한 나뭇잎들이 비에 젖어 더욱 진해져 있었다. 저 멀리 장독대도 그림 같았고, 그냥 나둔 검정고무신도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효재’에선 그렇게 작은 공간 하나, 자그마한 소품 하나도 그림이고 사진이었다. 여기 저기 둘러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이런 삶을 꿈꾸지 않을까?



잠시 후 2부라 칭해진 시간에 자기소개들을 들으면서 그걸 알게 되었다. 난 내가 어릴 때 가졌던 첫 번째 꿈이 ‘현모양처’였기에 나 같은 사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그곳에 온 많은 분들이 효재님과 같은 삶을 꿈꾸고 있었다. 살림 하는 여자(효재님은 이제 ‘살림’만 하는 여자이진 않지만), 그게 뭐가 그리 좋겠냐마는 우리가 꿈꾸는 살림이란, 아무 걱정 없이 오직 살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서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해봤다. 집안을 꾸미고, 예쁜 수를 놓고, 요리를 하고…. 걱정거리나 일이 있으면 언감생심 마음이라도 먹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어진 보자기 강의, 큰 보자기로 너무나 멋지게 가방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나도 예쁜 보자기로 한번 만들어 들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예쁜 보자기를 어디서 구하나 고민스럽긴 했지만(내 집엔 프린터가 되어 있는 요상한 보자기밖에 없으니;;). 독특했다. 어디 나갈 때 혹시라도 보조 가방이 필요할 것 같다 예상되면 보자기 하나 준비하며 걱정이 없겠다.



보자기 강의를 끝으로 ‘효재’네 즐거운 시간은 막을 내렸다. 한 상 잘 차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사인을 책에다 받고, 예쁘다고 소문난 화장실도 다녀오고, 만화가 한 벽 가득 있는 만화방을 보고 친구랑 ‘우리 나중에 여기 와서 라면 먹으면서 만화 보자’고도 했다. 그리고 비 내리는 작은 돌계단을 기분 좋게 내려와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어둑어둑한 길상사로 갔다. 고즈넉한 사찰의 비 내리는 저녁은 조금 으스스했지만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알라딘 덕분에, 문학동네 덕분에, 그렇게 비 내리는 주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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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06-0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경험하고 오셨네요..전 책으로만 효재님과 만났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함께 보고 느끼셨으니 너무 좋으셨겠네요.
 

 

 

 

평소, 다큐멘터리를 너무 좋아하는데, 알라딘에서 다큐 영화 시사회가 있다고 메일이 왔어요. 그래서 보자마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제목이 길이라고 정말 어떤 의미의 길일까?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보고 싶었는데, 제가 되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와~저 혼자 감탄에 감탄을...^^ 솔직히 제가 저번 겨울? 초봄? 그때쯤에 워낭소리를 너무 보고 싶었는데, 못 봤습니다. 주변에서 꼭 보라고 했는데, 못 봤습니다. 시간도 시간이고 가까운 곳에서 상영도 안되... 그런데, 알라딘에서 메일이 와서 너무 좋아아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가 되었습니다...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너무 기대했던 거라 5월 13일이 정말 기대되었습니다. 2009년 5월 13일, 드디어 길을 보았습니다. 정말, 제가 좋아할수 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감동...이기전에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평택으로 미군기지을 이전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옛 대추리 사람들이 바다였던 그곳을 물을 못 들어오게 막아서 땅을 가꾸어 대를 이어 그 땅을 지키고 있는데, 그 땅을 뺏았는...   

논에서 벼를 가꾸셔야 할 분을 견건한 논에서 쫓아내어 경비를 만들어야만 하? 국방부와 정부, 그리고 무력한 젊음이 죄송스럽기까지 느끼게 했던, ...  영화를 보는내내 "살아가는데 기본적인게 있다고 오직 하나 정의" 말이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이 촛불을 들 수 밖에 없는 현실이...안타까웠고, 화가 났습니다. 무엇이 중심이 되는 세상인지... 대추리 주민들의 권리는 묵살되어고 그들의 생명은 포기되었습니다. 이것은 국각가 이들의 권리를 위해 아무일도 하지 못했다는 거ㄹ ... 비록 935회 동안 이어졌다가 꺼진 촛불이었지만, 그 정신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대추리에서 시작된 평화의 발걸음 논에서 보낸 70년 땅이 가르쳐준 진실
2006년 5월 4일 정부는 대추리에 공권력을 투입해 대추초등학교를 무너뜨리고 볍씨가 뿌려진 논에 철조망을 쳤다. 미군기지 확장 공사를 위해서였다. 평생을 소중하게 가꿔온 ‘자식 같은’ 논밭이 바싹바싹 말라갈 때, 방효태 할아버지의 속도 함께 타들어갔다. 씨 뿌리고 농사 짓는 게 ‘죄’가 되버린 세상. 하지만 할아버지는 “논은 자식보다 소중한 것”이라며 논으로 가기 위한 길을 만들기 시작하고, 그 곳엔 ‘평화’의 힘을 믿는 마을 주민들과 대추리 지킴이들이 함께 있다.

 2006년 5월 4일 정부는 대추리에 공권력을 투입해 대추초등학교를 무너뜨리고 볍씨가 뿌려진 논에 철조망을 쳤다. 마을 주민들은 무너진 학교와 철조망 쳐진 논을 바라보며 힘들어 하고, 그런 상황을 촬영하던 감독은 묵묵히 텃밭을 일구던 방효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는 철조망 건너편의 논에 가봐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길은 끊어져 있다. 다시 농사가 시작되고, 할아버지는 논주변에 경운기라도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미군기지 확장공사 때문에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에서 강제 퇴거 당하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사람들...이기는 싸움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 힘겹고 힘든 싸움을 해야 했던 대추리 농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한구역이라는 표말 때문에 자신의 농작물에 손도 댈 수 없는 대추리 농민들과 바짝 마른 농부의 몸은 농부의 손길이 닿을 수 없어 무기력하게 말라버린 그의 논...영화를 보며 가슴이 찡했습니다. 정부 권력을 향해 목청을 높이는 농민들의 모습보다 땅에 기대 앉아 망연자실 황량한 논을 응시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의'라는 길이라 믿기 때문에 힘겨운 싸움을 선택했고 후회 없다는 영화 속 농부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영원히 여운을 남기고 대추리 사건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슬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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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009-05-2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우리가 지금의 시간에 가야할 길은 어떤 길인가?
그 길이 과연 옳은 길인가?
길은 진정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버지가 알려주신 그 길로 난 똑바로 가고 있는 걸까?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기회를 주신 알라딘에게 감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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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4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깡세 2009-06-04 23:01   좋아요 0 | URL
[12일,13일]
저는 고3수험생입니다.
수험생이 공부는 안하고 왠 응모냐하시겠지만;;
참고서주문하고 알라딘 이곳저곳 둘러다니다가 사춘기..하니까 꼭 보고싶다는 생각에
응모하고 가겠습니다~
제 사춘기는... 글쎄요..
아직도 철이 덜든걸봐선 아직 사춘기를 벗어버리지 못한 것 같네요^^
원래 성격이 잘 삐지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라..
저희 엄마도 사춘기때나 지금이나 하는 행동은 똑같아서
엄마도 제 사춘기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하시네요..하하;;
기억도 안남기고 사라진 제 사춘기인데..
사춘기라는 이 뮤지컬을 응모하게 된 이유는 따로있답니다.
이 뮤지컬.. 여동생과 함께 꼭 보고싶어요~
여동생이 현재 중3이라 한창 사춘기 겪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에 비해 느린편인 것 같지만,
평소엔 정말 순둥이였던 동생이 어느샌가 신경질부리고
작은 것에도 화를 내곤해요..
그래서 최근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저도 여자다 보니 꽥꽥 소리질러대고 동생도 함께 소리지르며 싸우고..
사이즈가 같은 옷은 돌려입다보니 셔츠하나가지고도 잘 싸우구요..
동생에게 화해신청할겸, 언니로써 기억에 남을 무언가 해주고 싶네요.
꼭~ 부탁드릴께요~
마침 12. 13일날 같은 소속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학교와 제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이예요~
정말 꼭 보고싶습니다~ 사춘기겪고있는 동생에게 추억하나 남겨주고 싶어요~

unspoken 2009-06-05 11:30   좋아요 0 | URL
[11일] 남들 다 그렇듯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에 반항했던 게 '사춘기'하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특히 진로 문제로 아버지와 많이 부딪히고, 수능 앞둔 몇 달전부터는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지내기도 했었어요. 당시엔 왜 그렇게 어른들, 교복을 진작 벗은 사람들이 모두 권위적이고 내 의지에는 무조건 반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는지 막연히 이제 성숙한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지망 대학 관련해서도 고3 담임 선생님의 배려가 쓸데없는 참견이고 귀찮은 관심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니; 다시 생각하면 그 사람들 딴의 염려였을 텐데 늘 비뚤게 생각했던 스스로가 좀 죄송스러워요.

길냥93 2009-06-05 11:34   좋아요 0 | URL
학업, 성적, 수행평가 등등.. 하고싶은 것보단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사춘기. 그 시절에 느꼈던 여러가지 감상들을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다시 느낍니다. 여전히 해야 할 것은 줄지 않고 더 늘어나기만 하는 아이들. 제대로 숨한 번 쉬기가 어려운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봐요.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데 이미 저도 어른이 되어버린 건지 가끔은 애들을 상처입히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의 맘 속 고민까지 다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싶네요. 사춘기를 보면.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은데.. 기회 주시면 좋겠어요.^^

mykimji 2009-06-05 11:59   좋아요 0 | URL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가서~ 밤새.. 라디오주파수를 붙들고 음악삼매경에 빠져있었던 일..^^:
그때 전후보다 훨씬 더 많이~ 음악과 예술이라는 세계에 빠져서..
내 감성의 깊이를 측정했던 시기였던거 같아요

토퍄 2009-06-05 19:49   좋아요 0 | URL
[11일] 베데킨트의 사춘기! 제 사춘기와는 좀 동떨어진 것 같은 사춘기에요. 학업은 소홀이 했지만, 미술학원을 열심히 다녔었거든요. 매일 밤 학원에서 11시까지 그리다 친구들과 집에 돌아가면서 나눴던 고민들. 그 때가 너무 그리워 지네요.

dewron 2009-06-06 04:07   좋아요 0 | URL
[11일] 학교에 너무 가기 싫었던 한 소녀는 6월 첫 주, 월요일에 받은 용돈 8만원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무모하고 황당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소녀의 목적지는 서울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6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계산해보니 오고 갈 차비를 빼고는 4만원 정도가 남을 뿐이었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서울역에서 4만원을 든 교복입은 소녀는 어디를 갈지도 정하지 못한채, 구 역사의 버거킹에 앉아 고픈 배를 채웠습니다. 눈 앞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흘끔거리는 낯선 시선.... 힘들게 서울에 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지금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구나. 소녀는 다시 기차를 탔습니다. 이번에는 무궁화가 아니라 새마을을 탔습니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한 부산... 그러나 결말은 뻔하겠죠?!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등짝을 후려치는 소녀 어머니의 매타작이었습니다!!

hinjinlee 2009-06-06 09:38   좋아요 0 | URL
사춘기에 접어든 딸 아이에게 엄마가 설명해줄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고 싶습니다.

샤키라 2009-06-06 14:39   좋아요 0 | URL
[11일] 올해 연봉 동결되구 대신에 월차를 준답니다. 그 월차를 11일에 쓰기로 해서 승낙받았습니다. 근데 친구들 다들 일한다구 안놀아줘요~ 딱히 약속도 없는 목요일, 행운을 누릴기회 좀 주세요~ '사춘기' 어떤 내용인지 참 궁금하네요~ ^^

다람쥥 2009-06-07 10:42   좋아요 0 | URL
[13일] 하루만이라도 학교 밖으로 벗어나고 싶네요 ㅠㅠㅠㅠㅠㅠ제발 당첨 !!!

dlawngp 2009-06-07 13:23   좋아요 0 | URL
13일.. 꿈을 이루기 참 힘드네요

비로그인 2009-06-07 14:18   좋아요 0 | URL
13일 : 코밑 솜털 보송보송한 아들과 함께 보고 싶네요. 사춘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간건지, 남아 있는건지 가늠못하는 철없는 에미와 단무지(단순무식)한 아들이 사춘기를 보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글쎄요 2009-06-07 18:32   좋아요 0 | URL
지금이 사춘기시절인데요.. 지금시대에는 단연 수능압박아닐까요,,,ㅠㅠ 학교학원집..다른데로 빠지고 싶어도 빠질시간이없고... 그냥 놀고 즐기기에는 미래의 자신이 두려운 수능세대의 여고생 지금이 가장 힘든것 같습니다.
이 뮤지컬이 저에게 힘이될수있도록 해주세요!!

천재 2009-06-07 21:21   좋아요 0 | URL
[13일]
사춘기라....... 글쎄요 너무 무미 건조하게 지나간 것 같군요.
그 시절에 대한 별로 좋은 기억도 없습니다. 청소년 드라마 같은거 보면서 반항하고, 이성 친구 문제, 동성 친구 문제, 학교 문제, 집안 문제, 그 시기에는 모든 것들과 트러블이고 세상이 모두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며, 가족보다는 친구들이 더 중요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지 않습니까?

근데요, 저는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구장창 공부만 했습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닌적도 없습니다. 스스로 놀러 다니기를 거부했거든요.
또 중학생때의 남자친구를 사귈때도 제가 '그 친구를 좋아한다'라는 그런 감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폼으로. 그렇게 겉치레에 신경쓰며 살았습니다.
남들보다 더 고상하게 일찍 성숙해져 버린건지.
남들 다한다는 반항도 뜸했고, 이성, 친구문제로 고민한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회상해보니 참 재미없게 살았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없습니다.휴.. 이럴수가 이게 제가
끄집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나의 사춘기 기억입니다.

추첨을 통해 꼭 당첨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칩니다.



라벤다 2009-06-08 00:49   좋아요 0 | URL
(13일) 친구랑 사춘기시절을 그리워하며 보구싶습니다~~

주혀니 2009-06-08 15:05   좋아요 0 | URL
[11일] 사춘기... 사실 사춘기라 말할 수 있었던 시기였던 중고등학교때는, 마냥 학교가 좋아서
사춘기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갔던 것 같아요~
오히려, 대학과 사회에 나서게 된 20대 초반이 되서는 오춘기라 불릴정도로 '나의 자아, 삶'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춘기'연극이 제가 그 시절 느꼈던 고민들을 오버 랩시키고, 지나온 날들에 대한 반성과 자아성찰을 하게끔
할 것 같습니다. 보고 느끼고 반성하고 또 새로운 저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렁소년 2009-06-08 23:20   좋아요 0 | URL
[12일] 가고파 극장의 추억

벌써 '십년전'이라고 얘기해야 할만큼 시간이 흘러버렸네요.
지금이야 포항에도 멀티플렉스 극장이 3개나 들어섰지만
그때엔 작은 극장들이 이곳저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맘때쯤 '내마음의 풍금'을 보여주던 가고파 극장도 그중 하나였는데
그런 극장에 걸린 영화들은 언제 막을 내릴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다음주에 보러가야지' 했다간 영화를 놓쳐버리기 십상이었죠.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던 '약속'을 학원 선생님께 부탁드려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볼만큼
전도연 누님의 열혈팬이었던 저는 '내마음의 풍금'을 그날 꼭 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2때 담임선생님은 얼굴색 때문에 우리가 '연탄'이라 부르던 분이었는데
눈빛이 상당히 매서웠습니다. 꾀병부리고 조퇴할지 집에 일이 있다고 할지
청소시간 내내 고민하다가 자율학습 시작 전에 교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오늘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자습 빠지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의외로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수학성적을 꼭 올려야한다는 조건을 거졌지만요.

친구 녀석의 부러운 눈빛을 뒤로 하고 유유히 교실을 나온 저는 그날
가고파 극장에서 세번 연속으로 그 영화를 봤습니다. 좌석이 지정된 것도 아니고
티켓에 회차가 표시된 것도 아니어서 화장실에 잠깐 앉아있다 나오면 됐거든요.

열심히 활동했던 천리안 전도연팬클럽도 사라졌고 칸의 여왕이 되신 도연누님을
예전만큼 열렬히 좋아하진 않지만 아직도 장필순, 한동준 씨가 부른 '내마음의 풍금'
노래만 들으면 그 영화에 취해있던 그날밤이 떠오릅니다. 돌아갈수없는 학창시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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