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여러번 갈아 타고 목동으로 향했다. 멀다고 하면 먼 거지만 사십대에 들어서야  나의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걸 생각하면 거리와 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맨 앞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만 강연 후기는 용기만으로는 글솜씨를 메울 수가 없어 이이화 선생님의 귀한 말씀 중에서 개인적으로 깊이 와 닿았던 몇 말씀만 올리고자 한다. 
이이화 선생님께서는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과 이해를 목표로 글을 쓰신다고 하셨  
다. '아~ 그래서 이긴자만의 역사가 아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시는 구나' 라는 궁금중 
 풀린다. 더불어 사는 것,  미래의 시대는 인권의 시대라는 말씀과도 일치하는  내용이였 
다. 
인권의 문제는 종교,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정당성을 고민해야 하고 국가의 문제를 넘어서 세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권의 문제를 희망적으로 보셨는데, 옛날 신체와 관계된, 신분에 관계된, 형벌을 받는 것의 변화에서 그 중 몇가지 예를 들 
어 귀족이 없어지고, 호주제가 폐지되어 가족제도로 바뀐 것, 일부일처제, 여성의 의복의 변화 (가슴을 조여던 부분이 끈으  
로 대체되는 일..) 등을 말씀하셨다. 뒤안길을 봐야 하고 더 좋도록 노력해야 한다 라는 말씀도 생각난다.  
새로 나온 오만원권을 서두로 그동안 우리 나라의 화폐에 실린 여러 인물에 대한 기준을 쭈욱 말씀 하셨는데, 이제는 인물의 
평가기준도 사회의 공헌이나 사회의 개혁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광활한 영역을 넓혔던 광개토대왕, 신분을 극 
복 하고 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장영실, 여성인권에 도전장을 던진 황진이, 뛰어난 시를 지은 허난설헌 등) 지나온 역사 
와 현재를 바라볼 때도 당연시 하는 나의 시각과 일방적으로 받아들 이는 수동적인 태도, 오늘날 변화의 흐름에 주체적으로  
따라 가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였다.  
선생님께서는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새롭게 다가가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영토 분쟁이 있는 지역은 자원이  
는 엄청난 경제 논리가 깔려있었다. 고구려사는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걸려있는  중요한 일 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  
다. 역사자료 논증은 상식의 흐름에, 역사의 상상력은 역사의 법칙안에서, 역사의 접근방법은 생활사, 민중사, 문화사로 
다가 서야 한다는 것이다. 바탕이 없으면 상상력은 발휘할 수 없다 라고 하신다. 오늘 날 자녀 교육에서 강조하는 창의력과  
상상력은  역사에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였다. 교육에 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시대가 바뀌었으며 무엇이 중요한가를 들여  
다  봐야 한다고, 유행에 따르는 것은 금방 잊혀진다고, 창의성와 개성을 너무 무시해 왔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개성을 살려주어야 한다고, 출세의 방향이 달라졌다. 다양한 재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인데 선생님께서는 어렸을 때 다양  
한  경험, 고생했던 경험이 내성이 생겨 10년에 걸친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한국사 이야기' 22권 소중한   
기록 유산을 남길수 있었다. 끝으로, 구체적인 역사, 정확한 역사를 통해 역사를 공유하고 국민의 동질성, 통일성은 정신적   
자산이라고 말씀 하셨다.  
후기를 쓰면서 잘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느낀다.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매 순간의 물음을 가지는 태도를 지녀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무엇보다 역사책을 균형있게 보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며 뜻깊은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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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염싸가지 2009-07-14 15:13   좋아요 0 | URL
품바 꼭 보고 싶은데~~~
당첨됐으면 좋겠네요^^
왠지 품바라는 제목부터가 느낌이 좋아요^^

비로그인 2009-07-14 15:32   좋아요 0 | URL
[18일]세상이 조그마한걸로 바뀌기 힘들다는 말이 많은데...
이 연극보면서 사람들도 조금씩 느낀다면 그것만큼 보람있는 일이 없을것 같아요.
저도 그중의 한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2434118 2009-07-14 18:08   좋아요 0 | URL
(17일)진짜 거지는 마음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효정 2009-07-14 18:58   좋아요 0 | URL
(18일)품바!!
딱 15년전 원주에서 4살짜리 딸아이 데리고 친구와 봤었는데.
그 친구와 엊그제(11일) 대학로에서 또 연극을 봤더랬습니다.
'품바'
이제 성년이 된 딸아이와 다시 한번 그때 그즐거움을 맛보고 싶습니다.

노지연 2009-07-14 19:26   좋아요 0 | URL
18일} 욕심납니다.명작 한번 보게 해주세요.
거지같은 세상땜에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러 나온 거지들을 안 만나볼수없죠!

노지연 2009-07-15 09:54   좋아요 0 | URL
18일 관계자님! 저 이거 정말 보고싶어요 ㅠㅠ 꼭 뽑아주세요.
배우고 느낄점이 많은 최고의 명작이라고 들었습니다.
부탁드려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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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선생님의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6.25가 왜 터졌을 까

2009년 6월 24일 오목교에 위치하고 있는 현대백화점에서 이이화 선생님 강연회가 있었다. 이 강연회는 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강의를 저술한 윤승일 저자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그날의 강연은 이이화 선생님의 책 내용으로 강연을 했던 것이 아니라 윤승일 저자의 책 내용에 멘토로 들어가 있는 이이화 선생님의 저술 이야기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런 전반적인 내용을 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면서 이이화 선생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선생님의 강연 내용의 주요 내용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화' 였다.

하루 10시간씩 글을 쓰는 선생님의 집필 능력이 특히 귀에 들어 왔는데 그렇게 집필을 끝내면 자식을 얻은 것처럼 자신이 생산을 한 것 같아 뿌듯해진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역사란 대중들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오만원권이 왜 신사임당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며 의문점을 이끄셨다. 왜냐하면 신사임당을 둘러싼 유교의 열녀 이미지는 다분히 남성 중심의 생각이 작용된 것이라며 차라리 황진이허난설헌이 더 이 시대의 여성상에 근접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이이화 선생님은 시대가 바뀌고 있지만 여성들의 상은 아직도 바뀌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 여겼고 그 문제에에서 앞으로의 시대에 대해 언급을 하셨다.

앞으로의 시대는 경제적으로 녹색의 시대를 걷는 것이 당연하고 문화나 역사로는 인본중심, 인격존중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제시하였는데 여기서 의문점이 들었다.
바로 이번 정부의 녹색정치 운운하는 따위 즉 4대강에 대해 이이화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에 대해 여쭤보고 싶었다.

선생님은 역사학자이기에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가급적 애기하고 싶지 않다고 처음에 말씀 하시다가 이번 4대강 개발은 적당함에서 너무 벗어난 개발이라며 모든 것에서 개발은 필요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 무분별하게 개발을 하고 있다고, 이번 4대강도 그러한 축에 들어가는 것 같다며 답변을 하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래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함을 재차 강조하셨다.

동북공정에 대한 질문에서는 이미 서남공정은 중국이 마무리 했고 이제 서북공정과 동북공정의 문제만을 중국이 다루고 있는데 이 문제는 모택동 이후에 다시 등장한 중화 정신을 갖은 학자들의 의해 생겨난 것으로 보고 계셨다. 모택동 시절에는 중국인들은 소수민족을 존중했고 그들의 역사를 인정했었는데 그 이후의 학자들이 소수민족들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역사는 상식과 상상력으로 살펴보아야 하는데 중국의 역사가들이 그런 말도 안되는 역사관으로 문제를 일으켰고 현재는 중국 역사가들 중 일부가 반성을 하고 다시 재조명하는 추세인 것 같다며 다음 질문으로 이어 가셨다.

다음 질문이 바로 역사는 왜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앞서 잠깐 애기하셨듯이 역사가는 상식인 사실로만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 상식을 기본으로 역사는 다시 재편집되고 시대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런 뼈대 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라고 마무리를 지으셨다.

강연이 시작하기 전에 '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강의'를 저술한 윤승일 저자가 이런 말을 했었다. 그가 가장 영향을 받은 분이 이이화 선생님이었고 나의 멘토이시라고. 나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이화 선생님의 강연내용을 정리하면서 선생님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이런 기회가 있어 선생님을 또 뵙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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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을 만나고 오다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2009-06-26 01:47 
    이이화 선생님의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6.25가 왜 터졌을 까 2009년 6월 24일 오목교에 위치하고 있는 현대백화점에서 이이화 선생님 강연회가 있었다. 이 강연회는 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강의를 저술한 윤승일 저자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그날의 강연은 이이화 선생님의 책 내용으로 강연을 했던 것이 아니라 윤승일 저자의 책 내용에 멘토로 들어가 있는 이이화 선생님의 저술 이야기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런 전반적인 내...
 
 
 

 

과학의 얼굴은 몇 가지일까? 적어도 하나는 아니다. 인류를 미몽과 마법에서 해방시킨 얼굴 하나. 다시 재영토화를 해내는 얼굴 하나. 재영토화를 하는 과학의 얼굴에는 두 그림자가 지워져 있다. 그 이름은 정부와 자본이다. 저자의 강연에서 그 기점은 80년도다. 80년을 기점으로 과학은 정부에서 자본으로 스폰서가 바뀐다.  

저자의 강연 초두에서 과학이 팽창한 시대는 1,2차 대전과 더불어서다. 과학의 최초 스폰서는 정부였다. 정부의 예산은 과학의 본질을 변화시켰다. 과학은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시작했고, 그후 주인은 정부에서 자본으로 넘어간다....김명진 강연을 짧게 골자만 잡은 것이다. 강연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훨씬 많았고, 책에는 좀 더 정교한 서술이 있다.   

강연에서 Big SCIENCE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요즘의 과학 연구 추세에서의 테마잡기 방식의 특정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비판적 뉘앙스가 내포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과학의 스폰서가 정부에서 자본으로 이행된 후 특히 강화되는 경향이다. 90년대 미국에서의 게놈프로젝트, 허블망원경 등과 같이 거대규모의 프로젝트가 실시되는 것은 과학과 자본의 결탁이 초래한 결과다. 

그 결과로 과학연구자의 위계구조화, 연구와 연구자의 소외와 같은 자본주의적 모순구조들이 과학계, 연구프로젝트에 비대해 진다. 기실, 빅 싸이언스화는 그 자체로만 보면 정당한 것이며 사회와 과학사의 진전에 적절하게 조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큰 과학연구를 수행하기에는 이런 방법 외에는 다른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것에 대해서 직접 비판을 삼가한다.  

빅싸이언스의 또다른 얼굴은 업청난 비효율성과 낭비다.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국민(주도자가 정부인 경우), 노동자(주도자가 자본인 경우)에게 전가될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돈이 도는 구조를 생각하면 그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될 것인가는 뻔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지적은 강연에서 배제되어 있다. 

강연의 전반적 구조는 입증가능한 상황들의 제시와 그 증거제시로 되어있다. 이번 강연에서 상상력은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강의자는 직접적으로 자신이 비판하는 것이 무엇인지 노출시키지 않았다. 수강자(또는 독자)에게 나머지 몫을 차지하라고 안겨준 기분이다.   

강연내내 그리고, 질의응답에서 느낌은 탈주당한다는 것이다. 강연자는 무언가 회피하는 가운데 무언가를 말하고 답했다. 피하고, 우물거리고, 생략하고, 넘어가고가 간간히 등장하면서 강연자는 자신의 로직에 충실했다. 메모를 안하는 나로서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강연의 구조가 논리적이라는 인상은 받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반쪽은 내가 내 생각을 더해서 조합해 낸 것들이다. 거기에 강연자의 탈주본능은 되려 방해가 되는 것이다. 

강연자는 지식을 전당할 의무가 있다? 없다! 강연자는 자신의 말을 자신의 방식으로 전달을 하고,수강자는 자신의 말로 정리를 한다..... 대충 내가 생각하는 강의의 구조다... 그런 것들이 '탈주'를 낳는다.  

강의자는 20세기 초엽부터를 강의의 초두로 삼는다. 그전이 개인과학자, 즉 천재가 과학을 발명하는 시대라면 20세기부터는 과학자 수가 급속히 팽창한다. 시기적으로 양차대전에 조응한다. 그리고, 윤리가 과학세계에 등장한다. 전쟁에 복무한 과학자에게는 죄의식이 드리운 것 일까 아니면 윤리가 제어하지 않는다면 과학의 폭발해 버리는 것 일까? 양차대전후 뚜렷한 변화는 과학에 윤리가 요구되고 과학이 제도가 되는 것 이다. 

최초에 과학을 지원한 스폰은 정부다. 정부는 왜 과학을 스폰할까? 과학엔 정부 밖에 스폰이 될 수 없었을까? 양차대전은 과학자를 국가과학자로 양성하는 계기가 된다. 국가가 강화되고 과학은 국가에 복속된다. 이 구도는 그후 80년대가 되어 그 주인이 자본으로 전환될 때 까지 우세한 구도다.   

2차대전후 동서냉전이 심화된 것은 이 구도를 계속 유지, 존속, 재생산한다. 대체로 강의에서 노출된 정보들은 미국위주다. 그러나 이 구도는 다만 미국에만 한정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강의자는 평가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강의의 스토리텔링은 완결되지만 너무 단순화된 감이 든다.  

이번 강의는 한편의 뛰어난 스토리텔링이다. 책도 궁긍적으로 일정한 스토리텔링에 기초해 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결여된 것은 받아드릴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고, 잊혀지기도 쉽다. 이것은 스토리텔링의 장점이다. 학술논문이 아닌 다음에는 스토리텔링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단점도 있다. 그걸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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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회원들이 로쟈님에게 사전에 댓글로 질문한 내용에 대해 먼저 답변을 주시고 현장에서 참석자들에게 몇 개의 질문을 따로 받아 답변을 하는 걸로 토크를 마무리하셨습니다. 토크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서평은 어떻게 쓰나. 

일단 몇 매짜리인지 분량이 중요하다.  그 분량에 맞게 책을 읽는다. 책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10 매짜리 서평을 쓸 수가 없다. 생각할 거리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런 경우 슬쩍 읽어야 한다. 20 매짜리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가야 되고 30 매짜리는 더 깊이 들어가고 다른 책도 보고 하는 차이가 있다.

 

2. 그렇게 많은 책을 어떻게 읽나.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책은 자세히 읽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되지 않아 부득불 이것저것 들춰 본다.   

읽지는 않지만 많은 책의 표지와 목차를 본다. 학교 도서관에서 50권, 동네 도서관에서 3권을 대출할 수 있는데 늘 53권을 다 대출해 놓고 있다. 이렇게 읽지는 않더라도 많은 책을 본다.

거의 매일 검색을 해, 관심 저자나 관심 주제다 싶으면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은 다 구해 쌓아 놓는다. 필요한 부분을 필요할 때 찾아 읽는다. 쏟아져 나오는 책을 다 읽는 건 불가능하다.   

 

3. 인문학이 위기라는데. 

한마디로 생계위기다.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이다. 즉 인문학자의 위기다.  

하지만 이런 뭉뚱그린 인문학 위기 담론엔 공감하기 힘들다. 인문학 내에서도 위기에 대한 체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부제 실시 후 군소학과는 위기지만 영문학과나 중문과는 절대 위기가 아니다.  

 

4. 인문학의 범위는. 

인문(人文)은 사람 인(人) 자와 글월 문(文) 자를 쓴다. 즉 인문학은 전부다. 이런 포괄성이 인문학의 특장이기도 하고 인문학의 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협소한 관심을 갖는 인문학자라는 것은 넌센스다. 문학을 예로 들면 작가마다 전공이 다 있다. 나는 A 작가 전공이라서 B 작가는 잘 몰라요, 혹은 C 시대가 전공이라서 D 시대는 모르겠어요 같은 얘기가 통한다. 이런 전문화 경향 때문에 다른 분야에 대한 무지가 아주 쉽게 정당화되곤 한다. 인문학에 대한 원(原) 이미지와 어긋나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  

요즘 들어 내가 전체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주의와 대립되는 이념으로서의 전체주의가 아니라 올바른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체성에 대한 고려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인문학적 보편성이란 게 유럽적 보편성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 유럽인의 사고는 인문학이 되고 비유럽인의 사고는 인류학으로서 연구가 된다. 비유럽권은 학문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것이다. 인문학 자체에 유럽 중심주의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게아닐까. 어느 일본인이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인이 인문학을 하는 것은 원숭이가 그리스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가능은 하지만 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5. 인문학 공부가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것 말고 세상에 대해 바른 태도를 가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별로 상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공부라면 아주 지겨워 하는 것을 많이 봤다. 세상에 대해 바람직한 태도를 가지는 것 같지도 않다. 인문학과 인격은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6. 요즘 같은 세상에 인문학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난 희망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절망이다. 희망, 행복은 값어치가 없는 말이다. 제대로 절망하는 법만 알게 되어도 다행이 아닌가 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는데 책을 읽을수록 고통에 대해 민감해지게 된다. 가령 양차 대전에서 유럽에서만 6천만 명이 죽었는데 그 역사를 맨정신으로 읽기는 어렵다.

어떤 행복이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다만 우리에게 왜 희망이 없는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이 왜 부끄러운 것인가 제대로 아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재미란 말도 싫다. 요즘 세상이 루키즘, 외모지상주의, 외관주의, 온통 그런 것에 지배되는 것 같다. 책도 재미난 책만 찾는다. 재미 없어도 좀 읽는 거다. 재미 없어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재미만 찾는 생활방식은 동물적이다.  

 

질문. 서재에 번역 관련 글이 많다.

단순한 번역비평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확장해 번역과 주체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번역-내(內)-존재이다. 대다수 책들이 번역서이고 사회, 국가, 민족처럼 우리가 쓰는 개념어들이 수입되어 번역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의 기원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오역을 다루는 번역비평과 관련해서 나는 기본적으로 번역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 고난이도의 오역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부정문을 왜 긍정문으로 옮겼냐를 지적하는 수준이다. 명백한 오역을 교정해서 읽자는 주의다.   

알려진 것과 달리 한국어가 영어보다 의미가 섬세한 경우 번역이 어렵다. people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어론 인민, 민중, 국민, 다중, 어중이떠중이, 사람이 다 people이다. 영어 단어 people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걸 한국어로 번역하는 건 어렵다. 다른 예로 에스키모어엔 눈에 대한 단어가 수십 가지라고 한다. 한국어의 눈을 에스키모어로 옮긴다면 그 중 무슨 단어를 골라야 할지 어려울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면 내년쯤 번역서와 번역비평서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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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속의 내 책 2009-06-28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식은 숨기고 싶은 건데요~~~ 자꾸 자꾸 무식함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의 저변을 확대해야 할 듯하다는 생각과 나의 무지함을 반성하고 돌아왔습니다. 멀리 대전에서 직장 끝나자 마자 달려간 서울에서 저를 나름 채찍질하고 돌아왔다는 저 스스로의 안도감이 드네요. 그런데 이런 안도감은 저에게 좋지는 않겠진요
전 다른 것 보다 많은 생각을 해야겠다. 그리고 세상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많은 생각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서
그런 의미에서 너무 좋았습니다. 카메라에 찍히는 건 로쟈님도 저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던걸요

바른생활 2009-07-0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알라딘 글에 처음으로 댓글 달아주신 분이 윤님이시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