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우리나무> 봄편-창덕궁 나무 답사

촉촉한 봄비와 함께 박상진 교수님과 창덕궁의 봄나무를 보고 왔습니다.

 

 


경복궁에 이어 조선왕조의 제 2궁궐로 창덕궁이 지어졌습니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2년에 창덕궁이 중건되었습니다.

1824~183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궐도>라는 궁궐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200년 전에는 궁궐에 어떤 나무가 있었는지, 아직까지 남아 있는 나무는 어떤 것들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궁에 그려진 나무의 크기를 보며 나무의 나이를 가늠해보기도 합니다.

 

 

 

 

 

 

봄비가 내리던 날, 눌와출판사 <궁궐의 우리나무>의 저자이자 나무 박사님인 박상진 교수님과 함께 창덕궁 봄나무 답사를 함께 했습니다.

박상진 교수님은 전자현미경으로 나무의 세포를 연구하는 임산공학자이십니다. 백제 무령왕릉이 발굴된 지 23년 만에 관재에 일본 나무인 금송임을 밝혀 일본과 백제의 교류의 결정적 증거를 밝혀내시기도 했죠. 과학자 출신이라 책이 전공서적처럼 딱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책이 술술 읽힙니다. 사진도 좋구요. 책도 재미있었는데 교수님과 함께 고궁을 누비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 기대를 많이했어요. 유머 감각도 넘치시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구요. ^^ 함께 온 나무 매니아는 교수님이 자신의 이상형이라면 ㅎㅎㅎㅎ

 

눌와 출판사에서 책에 나온 창덕궁 지도와 함께 이렇게 예쁜 책갈피를 선물해주셨어요!

우리나라 전통 문화에 관한 책을 주로 출판하고 있습니다. 도서 목록을 보니 매화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돈화문 회화나무

돈화문에 심어진 회화나무는 주나라 때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고 우리나라의 3정승에 해당하는 3공이 정사를 논했다는 예를 따른 거라고 합니다. 자유롭게 뻗은 가지가 아름답습니다. 잡귀가 붙지 않는 나무라 믿어 집 안에 심으면 복이 찾아온다고 하여 서원이나 양반집에서 흔히 심었다고 합니다.

 

 

돈화문 복사나무

복사나무는 무릉도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죠.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을 상징할 때 복숭아꽃처럼 고운 자태라고 하기도 하구요. 도화살에 화가 복숭아이기도 하고. 꽃과 과일도 참 매력적인 나무입니다. 

 

봉모당 향나무

나무를 나이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딱 둘이 알고 있는데 나무 본인과 하느님이시라고. 대략 1년이면 3mm~5mm쯤 둘레가 늘어나니 대략 몇 살이겠구나 추측해 볼 따름이라고 합니다. 동궐도에서 6개의 받침목이 가지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동궐도가 그려진 시기에도 꽤 큰 나무였던 창덕궁 향나무는 700살을 훌쩍 넘겼습니다. 나무 속에 강한 향을 품어 제사 때 향을 피우기 위해 꼭 필요한 나무였다고 합니다. 어진을 모신 선원전 옆에 심어져 있습니다. 선원전 후원과 압뜰에도 비슷한 크기의 향나무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하네요.

 

 

 


 

금천교 버드나무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는 강가나 나루터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옛 연인들은 헤어질 때 떠나는 임에게 잎사귀 하나를 건넸습니다. 내 마음도 이 나무처럼 흔들리니 얼른 돌아오세요, 라는 귀여운 협박이 담겨있습니다.


구선원전 측백나무

그날 본 나무 중에 가장 잘생긴 나무, 측백나무입니다. 선원전 측백나무는 동궐도에도 제법 크게 그려진 것으로 보아 300년 훌쩍 넘었네요. 제주도 유배시절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에 그려진 나무가 속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대조전 미선나무

햐얀 개나리 같기도 하고 팝콘을 붙여놓은 것 같기도 하고 봄이 오지 않은 궁궐을 환하게 밝혀주었던 미선나무입니다. 식물은 과-속-종으로 세분해서 분류하는데 미선나무는 개나리 과에 속하며 1속 1종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궁궐에서 심는 나무는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귀하다고 하니 더 예뻐보이기도 하고, 순백색에 올망졸망한 모양새가 귀엽습니다. 동사무소나 담벼락에 많이 심어져 자주 봤으면 좋겠습니다. 

 

 

 

자시문 매화나무
창덕궁 후원에 올라가는 길에 심어진 만첩홍매입니다. 옛날에는 매실로 식초를 만들기 위해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자시문 앞 매화나무는 선조 때 명나라에서 건너왔습니다. 보통 매화가 아니라 겹꽃홍매화입니다. 꽃잎이 일반적으로 보던 매화보다 훨씬 탐스럽죠? 꽃잎이 여려겹이라 만첩홍매라고 부릅니다. 임진왜란  때부터 산 것 치고는 나이는 꽤 젊어? 보이는데 나무 세포를 조사해 보니 그 당시 나무 형질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원래 심어진 나무는 죽고 이 나무는 아들이나 손자뻘 쯤이 될 거라고 합니다.

 

 

 

 

낙선재 쉬나무
쉬나무는 글 읽는 선비에게 고마운 나무였습니다. 전기가 없던 깜깜한 옛날에는 쉬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짜서 불을 밝혔습니다. 유채, 해바라기, 들깨에서도 기름을 얻을 수 있지만 경작지에 심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산에서도 잘 자라 공부하는 선비집 뒷산에는 쉬나무를 심었습니다. 유서깊은 선비의 집이라면 앞마당에는 학자수인 회화나무, 뒷산에는  쉬나무 심어져 있을거라구요.

 


아직 봄이 제대로 오지 않아 조금 아쉽긴 했지만 쌀쌀한 날씨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꽃을 보니 대견합니다. 비가 내리니 운치도 있고 꽃잎의 색상은 선명하고 마른 가지에 윤기를 더하네요. 올해는 계절마다 궁궐에 나무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나무를 쓰다듬어 봐야겠습니다.
살구와 매화꽃을 구별하는 팁을 얻은 건 큰 수확이었어요.  꽃이 피었을 때 살구는 꽃받침이 꽃잎 뒤로 확 꺾여지고 매화는 꽃잎에 붙어있습니다.  (순천에서 봤던 개봉숭아꽃도 비슷했는데 이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지네요.)

 

사계절로 이어지는 이번 강연.

다음 경복궁에서 강의 정말 기대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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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봄다운 날씨로 반겨주던 4월 13일, 소중한 초대의 연락을 받고서 서울성곽의 생태문화 이야기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혜화문에서 시작하여 창의문에서 끝나는 코스로 나무와 역사와  숲과 삶의 다양한 모습에 대하여 진지하고도 유쾌한 질문들과 함께 즐거운 사색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때론 골목길도 지나고, 학교담장, 흙길, 경사높은 계단도 지나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눈이 너무나도 호강했던 하루였습니다. 1번부터 27번까지 이야기거리로 현장강의는 구성되어 진행되었습니다. 

 

1. 혜화문

2. 서울시장 공고나의 버드나무와 성벽의 개옻나무

3. 경신중고등학교의 아까시나무

3-1. 선잠단지의 뽕나무

4. 서울과학고 옆의 살구나무와 매실나무

5. 성곽 안쪽의 단풍나무

6. 성곽의 식물들

7. 은사시나무와 그림을 그린 건물

8. 전나무와 가로수 _ 미래를 생각함

9. 아까시나무 의자

10. 심재가 썩고 훼손된 양버즘나무

11. 정향나무

12. 성곽벽의 소나무

13. 안내소 앞의 소나무

14. 말바위 안내소

15. 숙정문 가기 전의 소나무 숲

16. 숙정문

17. 성곽 벽의 위치표시 번호

18. 촛대바위?

19. 곡장

20. 암문과 성벽의 거미고사리

21. 청운대

22. 1.12사태 소나무

23. 백악마루

24. 가파른 절벽의 노간주나무

25. 돌고래쉼터

26. 계곡아래의 밤나무

27. 창의문 감나무

 

 

 

 

 

 

성곽의 식물들, 특히 막연히 '잡초'로만 여겼던 식물들의 이름과 특징을 푸근한 미소로 설명해 주신 신정섭 선생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는 거미고사리, 꼬리고사리, 부싯깃고사리의 이름들을 불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길따라 느껴지는 봄의 향기와 새로운 서울의 모습

 

 

 

 

 

관점의 차이, 나의 가치,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것인지.. 삶의 모습들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던진 질문들이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따뜻한 봄날의 기운과 함께 소중한 강연을 위해 애써주신 눌와출판사 관계자분들과 알라딘에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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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문 회화나무


아직 나뭇가지에 새순 돋지 않았고

봄비가 소름 돋게 할 정도로 서늘하지만

창덕궁 정문 돈화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늠름한 회화나무 세 그루가 장엄하다


주나라 때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삼정승이 정사를 논했다는 예에 따랐다

1824-1830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동궐도에 그려져 있으니 나이는 300살쯤 된다

금천 너머 회화나무를 비롯하여

돈화문 일대의 회화나무 여덟 그루는 천연기념물이다

행랑 앞 세 그루 외 다섯 그루는

400살 정도 된다


회화나무는 수백 살에서 천 살을 살 수 있다

나뭇가지의 뻗음이 조금은 제멋대로인데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고 하여

학자수(學者樹, scholar tree)라고도 한다

양반들은 집 앞에는 회화나무를

집 뒤에는 책 읽는 데 필요한

기름을 얻을 수 있는 쉬나무를 심었다.

 

 

 

 

빗소리


박상진 선생님은 준비를 철저히 하셨다

폭우가 온다고 일기예보를 하여 방수복에 장화

추울 것에 대비하여 내복도 입으셨다

출판사에서도 대표를 비롯하여 다섯 명이나 왔다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는 셈이다


돈화문 매화나무와 복사나무

금천교 버드나무와 느티나무

봉모당 700살 향나무

구선원전 측백나무

궐내각사 뽕나무

인정전 자두나무와 박석과 조릿대


선생님의 설명을 계속 듣다가

대조전으로 가기 전에 잠시 쉬었다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땅바닥에 생긴 조그만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정겹다

성품이 어진 동화작가

임어진 선생님이 옆에 앉아 더 그렇다

도심 한복판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비오는 봄날의 풍경이 평화롭다

이런 시간을 자주 몸에 새기면

멋진 할아버지 박상진 선생님처럼

주름살도 아름답게 될 수 있으려나.

 

 

 

 

자시문 만첩홍매


대조전 화계

후원을 뒤덮은 참나무

화계의 앵두나무

성정각 살구나무와 감나무

자시문 매화나무

낙선재 소나무와 산수유와 쉬나무


나무에 얽힌 사연을 듣다 보면

소중하지 않은 나무가 없다

한결같이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시문 매화나무는 지난주에 추운 때가 있어

몽오리를 채 터뜨리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꽃망울을 터뜨린 꽃도 있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 며칠 내로 활짝 피겠다


선조 때 명나라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꽃잎이 여러 겹인 만첩홍매이다

임진왜란 때 가져왔다면 400살은 되었을 텐데

원래 나무는 죽어버리고 다시 심은 나무이다

나무도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다.



201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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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목요일, 창비에서 나온 인권만화 세번째 시리즈 '어깨동무' 북 토크에 다녀왔다.

 

 

한주 전에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에 당첨되었는데 무려 다섯 명에게 물어보았지만 다들 일정이 맞지 않았고, 나도 직장 일이 겹쳐서 참석하지 못했다. 아쉬웠던 찰나, 한주 뒤에 어깨동무 북토크 당첨 소식에, 마찬가지로 앞서 친구들은 모두 힘들게 되었고 혼자라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주 탁월했던 것으로 입증되었다.^^

 

 

인문카페 창비를 찾기 위해서 지도를 출력해 갔다. 길치인 나로서는 늘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서교 호텔'을 묻는 어느 여자분, 미안하게도 내 지도에서 서교 호텔은 잘리고 없었다. 알고 보니 아주 가까웠는데 알려주지 못해서 살짝 미안한 마음. 카페 2층으로 안내받고 올라가보니 이런 풍경이 맞아준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 서재가 떠올랐다. 저 기다란 책장 위에 여백의 미를 갖고 꽂혀 있는 책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저녁 시간 주린 배를 잡고 부랴부랴 도착했을 사람들을 위한 센스있는 간식! 빵도 맛있고 커피도 맛나고, 그리고 오렌지 쥬스는 더더욱 맛나고!!(어디 제품인가요!!)

 

이어서 네분의 작가님이 들어오시고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유승하, 최규석, 김성희, 윤필 작가님이 참여해 주셨고 사회는 뒷풀이에 빠지는 바람에 떠안게 된 김성희 작가님이 맡게 되었다. 작품에 참여한 작가님이 사회를 보면서 자연스레 작가님들에게서 여러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게 분명 목적이었겠지만, 편집을 맡은 창비 직원분이 사회를 보았더라도 좋았을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세번째 책 어깨동무. 사실 나는 이 책이 네번째 시리즈인 줄 알았다. 사이시옷이 나오던 시점에서 같이 보게 된 '이어달리기'는 여성노동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똑같이 열 명의 만화가들이 참여하였고, 여성과 노동과 인권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주제 의식도 통했기 때문이다. 다시 보니 출판사도 다르고(길찾기), 기획 주체도 달랐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의 세번째는 엄연히 어깨동무였던 것이다.

 

네분 작가님 앞의 마이크가 앙증맞고 귀여웠다. 빨간 불이 들어오는데 뭔가 새싹이 돋는 그런 분위기? 유승하 작가님이 마이크에서 멀찍이 얘기하셔서 잘 안 들렸던 게 하나 흠이었을 뿐이다.

 

 

(왼쪽부터 최규석, 유승하, 윤필, 김성희 작가님)

 

전작을 전혀 읽어보지 못한 작가님은 이중에서 윤필 작가님 뿐이었다. 최규석 작가님 추천으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원고료가 높아서 아주 깜놀했다는 후문!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신도 놀랐다는 증언이 방언처럼 터진다. 최규석 작가는 사이시옷 때부터 참여했는데 당시 받은 고료가 무려 일반 원고료의 네배나 되었다고! 그러나 지금도 그때 그 고료라는 건 함정!

 

아무튼. 당시 유승하 작가님은 만화가들의 인권을 생각해서 책정한 금액이었는데 그게 만화계의 전설이 될 줄 몰랐다고 하셨다. 그림책 작가이셔서 당시 만화계의 고료 사정에는 어두우셨나보다. 그 덕에 원고료의 생수를 담뿍 부어주셨으니 고마운 일!

 

 

 

 

 

 

 

 

돌쟁이 선물로 적극 추천해 왔던 '아빠하고 나하고'의 작가님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정말 몰랐지~

 

김성희 작가님도 높은 원고료에 잔뜩 고무되어서 작업을 빨리 마치셨다고 했다. 원고료 빨리 받고 싶어서였다고...^^

 

각각의 작가님께 '인권이란?' 질문을 드렸다.

 

최규석 작가님의 답변이 관심을 끌었다. 숭고한 인권을 지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찌질한 인권 역시도 지켜져야 한다고. 그러면서 사이시옷에 실은 '창'이란 작품으로 설명해 주셨다. 이 작품은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 어마어마한 민폐 캐릭터가 나온다. 이기적이고 아주 못된... 그런데 이런 성향의 인물일지라도 인권은 지켜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무척 은유적으로 표현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자면, 나도 그랬다. 도저히 그 캐릭터가 받은 대우가 부당하다고 느껴지질 않는 거였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런 인물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 맞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그 찌질한 인물에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아주 백해무익한 어떤 인물을 대입시켜 본다면 여전히 수긍하는 게 참 쉽지가 않다. 머리와 가슴의 판단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시사점을 던져준 작가님이 참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그때 독자들의 몰이해에 부딪혔던 최규석 작가님은 이번 작품에서는 '직구'를 던졌다. 이번 작품에서 '맞아도 되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참여했는데, 역설적인 제목에서 이미 많은 것을 얘기한 것이다. 아주 쉽게,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사실적인 질감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담아냈다. 작품을 위해서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그것들을 작업에 반영시키지는 못했다고 했다. 재미가 없어도 주제가 명징하게 드러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그렇다고 취재가 의미 없었던 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번 작품은 주제도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최규석 작가님이 더 좋아졌다.^^

 

김성희 작가님은 인권이 사람에 관한 모든 문제라고 했고, 윤필 작가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권리라고 말했다. '개'에 관한 작품을 많이 쓰신 것 같은데, 그랬기에 사람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도 두루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다. 처음 작품을 만들었을 때는 다이애나 시점에서 얘기하는 빨강 머리 앤을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잔잔해서 퇴짜를 맞았다고..ㅜ.ㅜ 그리하여 마감 시간에 쫓겨 고민하던 와중에 일본에서 잦은 고독사로 인해 그 뒷처리를 해주는 업체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작업 시간은 4~5일 정도 걸렸고, 너무 급히 하는 바람에 컬러 그림까지는 못했다고 한다. 음, 고백하자면 배경 그림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그림에 좀 성의가 없다고 여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은 짧고도 굵직했다. 고독사 하니 언젠가 읽었던 데스 스위퍼가 생각난다.

 

더불어 장례사 이야기가 나온 영화 '굿바이'도. 우리나라에도 남일이 아닐 것이다. 초고령 사회에 맞추어 치매도 늘어나고 노후가 보장이 되지 않는 불안한 삶이 줄곧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ㅜ.ㅜ

 

유승하 작가님은 십시일반 작업할 때에는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막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그 시설물이 그때는 대단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다 생각해주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시혜가 아니라 당연한 복지가 되어야 하는 부분인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였던가? 클론의 강원래 씨가 지하철에서 휠체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와중에 사인 요청을 받고 거절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사과'를 앞세웠지만 그 생각없는 팬심에 대해 둘러서 지적한 것이 아닐까.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의미이겠지만, 그 기구가 움직일 때 나오는 노래도 신경쓰인다. 그 위에 올라선 채로 그 노래가 끝날 때를 기다리는 시간이 참 길 것 같다.

 

최규석 작가님은 어떤 부분에서 인권감수성이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예인 스캔들 기사에는 이니셜로 표기하는 게 당연했는데 언젠가부터 기소 여부와 상관 없이 본명을 바로 쓰고 있다고. 사실 그렇게 묻지마 까발림 기사로 애먼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다. 한명숙 전 대표가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른다. 좀 더 올라가서 바보 대통령도 한 분...

 

유승하 작가님은 탈모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만화 속에서 나쁜 놈은 '대머리'로 표현되곤 했던 관행에 대해서 지적했다. 하긴, 예전에 조춘 씨였던가? 쌍라이트로 활동하시면서 그런 캐릭터를 컨셉으로 삼았던 것도 같다. 만화 속에서도 그런 편이고... 유작가님은 '대머리'란 말도 쓰지 않고 '탈모인'이란 표현을 쓰셨다. 탈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아주 절절하게 느껴졌다...

 

십시일반, 사이시옷, 어깨동무까지... 인권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쏟고 보태라는 기획으로 만들어졌는데, 사실 이런 책이 만들어질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읽혀질 필요가 없어질만큼 인권이 제자리를 찾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우리는 꿈꾼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쉽게 오지도 않지만 빨리 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걸 만들어내는 게 인간인 이상. 그래서 떠오른 생각 하나. '인권' 과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영수만 배울 게 아니라 인권도 배우고 노동도 배우고 정직한 소비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정작 중요한 것은 배우지 않은 채, 모르는 것도 모르는 채 겉껍데기만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는 조바심이 든다.

 

얼마 전 중학교 어느 교실에서 학급문고로 비치해 둔 책중에 '십시일반'을 보았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 읽으라고 본인의 책을 갖다 놓으신 건데, 그밖에도 강풀 작가의 여러 시리즈와 '맨발의 겐'도 있었고, 여러 쉬우면서도 의미있는 책들이 가득했다. 그 바람에 그 반 담임선생님께 잔뜩 호감을 가졌다는 걸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분은 여자...;;;)

 

서로 마이크를 앞다투어 잡는 분들이 아니었기에 토크 시간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대신 이 자리에 참여한 분들이 질문을 많이 해주셔서 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었다. '습지생태보고서'를 쓴 최규석 작가님께, 어떤 여자분이 자신이 이 작품을 습지생태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읽었다고 했을 때는 온 청중이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하하핫, 그런 재밌는 우연이!

 

 

 

 

 

 

 

 

 

공룡 둘리에 대한 과제가 있어서 나오게 된 작품이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였다고... 오, 이렇게 극적인 전환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웠다. 역시 작가들은 남다른 상상력을 가진 게 분명하다. 존경스럽다. 최작가님은 노동문제를 다룬 만화를 연재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것도 네이버에! 그렇다면 '다음'에 연재하는 게 낫지 않냐는 어느 청중의 질문에도 모두가 빵빵~

 

 

사인해 주시는 작가님들. 최규석 작가님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실물이 더 근사했다. 영화 포스터 하나 더 찍으세욧!

(영화 '두개의 문' 포스터 주인공인데 너무 가리고 나와서 아무도 먼저 알아보지 못했을 거라고, 사인 받으며 우리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평소에 작가님들 사인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지만, 이번엔 만화가분들이 자리했으니 그림 사인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놓칠 수가 없었다. 재빠르게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작가님들이 그리신 작품의 앞 페이지를 열고 기다렸다.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그림들이다. 최규석 작가님의 저 사인은 무척 익숙하다. 이미 받은 것도 있고~

 

위에 그림이 잘려 있는 건 내 실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하핫....

 

 

긴 책장 맞은 편에는 창비의 책들이 놓여 있고, 그 뒤로 주방이 있다. 인문카페 창비에 행사 아닐 때에도 가서 커피 마셔도 되는 걸까? 살짝 궁금...

 

사실 이날은 목요일이었고, 업무가 많았던 한주라서 무척 피곤했던 날이었다. 같이 갈 사람도 없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는데, 이 자리에 참여하지 않으면 무척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은 내가 조금 기특했다. 좋은 시간을 나누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또 깊이 생각할 거리들을 잔뜩 안고 갈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인권에 마침표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니까 우리는 물음표를 가지고 더 많은 느낌표를 찾아가면서 인권 여행을 떠나 보자. 우리가 합승해야 할 많은 친구들이 이곳에 있다. 같이 가자.

 

***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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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기행서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갖고 돌아온 시골의사 박경철의 저자 강연회. 책의 내용 중편안한 부분들만을 발췌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책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질문에서 나왔던 것처럼 서양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해답에 가깝다. 독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만을 받아들여라. 그리스 신화라는 배경지식이 부족해도 충분히 그 속에 얻을 것만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나라에 함께 여행하는 느낌, 부지런하지 못해서 여행의 경험이 부족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 정도를 준비하고 떠난 여행이니 발길이 닿는 곳마다 그 속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나에 완전히 몰입하는사람에게서 보이는 미소. 20대의 꿈을 고이 간직해서 50대에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에게도 나의 이상화된 모습의 영웅이 있는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영웅이 있어 누군가 물었을 때, 무의식 중에 준비하지 않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저자 강연회  

그리스 문명에서 길어올린 것들, "그리스의 어제와 오늘"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저자 강연회 2013년 3월 11일 (월) 19:00 @ 연세대학교 백양관

 

  오랜만에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것이라 떨리는 마음이 듭니다.   제가 그리스를 여행한다고 했을 때 저의 주변에 반응은 대체로 아래의 세 가지였습니다. ① "시간이 많구나."  ② 비행기 표 값만이 얼마나 드냐? ③ 도대체 왜 그리스인가?

 

왜 그리스인가? 

  그리스 여행의 시작은 스물 여섯 살에 우연히 만났던 책 때문입니다. 시험이 끝나고 단골서점에서 제목이 눈에 띄어서 읽게 된 책이 있었습니다. 눈에 띤 책의 제목은 《예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다》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역시 책은 제목이 반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의 책 제목이 《문명의 "배꼽", 그리스》입니다. (웃음) 

  저는 성실하지는 않지만 신자입니다. 그래서 제목에 눈이 갔습니다. 위의 책을 펼쳐들 때, 옆에 같이 꽂혀 있어서 같이 딸려온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와《미할리스 대장》이었습니다. 

 《예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다》를 처음 읽으면서의 느낌, 정서는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뭐지?" 뭔가 뚜렷하게 길어 올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슴 속에 뜨거운 것, 무엇인지 모르지만, 불이 확 붙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처음 책을 읽은 때부터 10년이 지나, 제가 30대 중반이 되어서 다시 읽으니 마치, 비가 내리면서 불이 사그라드는 듯 한, 촉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다시 10여 년이 흘러서 40대 중반 의사가 되어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모든 책을 읽고나서야, 20년이 지나고 비로소 이제 무언가 길어 올려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단골 책방의 서가를 둘러보던 그 청년은 《예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다》라는 책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이름도 낯선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 그리스 작가의 책을 산 청년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단숨에 읽어버립니다. 작은 불씨가 큰 산을 태우듯, 책을 읽어가면서 그의 가슴에는 점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불이 일었습니다. 마침내 그 뜨거운 불길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습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입니다. 그 불도장 같은 강렬함은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아니 갈수록 더욱 강렬해지면서 지천명의 나이가 되기 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라 그리스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게끔 이끌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이십대의 청년이 가슴에 새긴 꿈을 나이 오십을 앞두고 실현한 긴 여행의 기록입니다. (...) 

 

 《문명의 배꼽, 그리스》 p.5 ~ p.6

 

  저에 대한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은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너는 누구인가?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① 의사? 진료를 보지 않으니 장롱 면허입니다. ② 경제 전문가? 경제학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③ 작가? 저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남이 생각한 것, 제가 본 것을 정리하는 사람이니 "나레이터"에 불과 합니다. ④ 그렇다고 방송인? 방송인이라고 하기에는 저의 외모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⑤ 청년 강연을 많이 하는 것을 두고 선동을 하고 다니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두리번 거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이유가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의 영혼때문이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이 마치 연가시처럼 나를 지배했습니다. 

  이런 망상에 빠져있습니다. 망상이 지나쳐 지난 20년 동안 그의 저작을 읽으면서, 하나의 결심을 했습니다. "그의 흔적을 따르는 순례 여행을 해보자." "쉰이 되기 전에 시작하자." 는 나와의 약속을 했습니다.  "인생 2막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이 생겼을 때, '이전에 나와 했던 마음의 약속을 지키자.' 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흔적을 따르는 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 우정 "모든 선의를 베푸는 것이 친구이다"

  그리스 여행의 시작은 다른 여행객들처럼 아테네가 아니었습니다. 아테네에 도착해서 고민 없이 바로 그의 고향인 크레타 섬으로 직행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공항의 이름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 공항"입니다. 

  만약, 한국의 공항이름을 누군가의 이름으로 한다면, 그게 가능할까요? 자부심을 갖는 인물은 있지만, 공항이름으로 붙이기는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50%가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크레타섬에서도 처음으로 간 곳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라는 세 문장이 써 있습니다. 

  20년 동안을 동경했던 대상의 무덤 앞에서 절을 하고, 우조(그리스 증류수)를 사다가 무덤의 주변에 뿌렸습니다. 만약, 남미에서 온 외국인 한 명이 우리나라의 윤동주 시인, 이육사 시인의 시비나 무덤에서 저처럼 행동 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할까요? 그들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광경이라고 생각을 해서 제가 절하는 모습을 사진을 찍으며 궁금해 하였습니다. 

  

  주변의 그리스 사람들이 놀라워하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방금 한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나는 한국에서 온 사람인데, 내가 한 행위는 돌아가신 분에게 하는 최고의 경의를 표현하는 행위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He is my Hero." 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은 준비하지 않은, 무의식적으로 나온 대답이었습니다. 

그 무리 중에서 한 분이 나와서,

  "나는 크레타섬의 택시기사이다. 괜찮다면 내일 내가 당신을 위해 무보수로 크레타섬을 안내해주겠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다닌 초등학교, 그가 소꿉놀이했던 동굴 등 제가 자료를 조사하면서 알지 못하던 곳까지 둘러 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로또"에 당첨된 것 같았습니다. 

  택시기사의 안내가 끝나고 저에게 "괜찮다면, 저녁을 대접해도 되겠냐?" 고 했습니다. 

  그리스의 식사방식이 마음에 대는 것이 다른 서구 나라처럼 에피타이저 나오고, 메인요리 나오고 하는 것처럼 순서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원샷으로 다 나옵니다. 맛있게 그 택시기사의 식사대접을 받고 있었지만 머리 속으로는 계산기가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국민소득을 계산해 볼 때, ( '썩어도 준치' 라고 그리스는 지금 비틀거리고 있지만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입니다. 망해서 3만 달러. ) 얼마를 주어야 적당할까를 계속 계산하면서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머리속의 계산기가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숙성된 와인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얼마를 드려야 할까?' 고민하며,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보니, 제주도에서 안내받고 저녁 먹은 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을 그리스의 수준에서 생각해서 봉투에 사례를 담아 드렸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완강하게 마음으로 거절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것을 거두며 물어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저에게 잘 대해주시는 것인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내게도 영웅이다. 그러니깐 우리도 친구이다." 라는 답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친구관계에서는 '물리적 시간'을 중요시합니다. 당신과 내가 학교, 생식기 친구처럼... (웃음) 그러나 그리스에서 만난 이 분은 "가치, 지향점, 철학이 같다면 친구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치가 일치하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만남을 통해서 서로 북돋우며 자극하고, 격려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렇지만, 물리적 시간의 친구와 만나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요? '검색어 1위가 무엇이더라.' 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그치기도 합니다. 

 

 

"영웅"이라는 단어

  왜 그 사람이 당신의 "영웅"인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영웅이란 나의 가장 이상화 된 나의 모습이다. 그와 부합하는 모습을 찾아 그를 닮아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시선으로 아키텍쳐(architecture) 가 아닌, 본질을 보았으면 좋겠다.

  이상화 된 모습은 무엇이고, 현재 실존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영웅이라 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모습은 우리의 가장 저열하고, 가장 저급한 욕망이 투여된 모습입니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 가 헤로도토스가 말하는 영웅의 기준에 부합하나요? 

  우리에게 영웅은 우리의 내밀한 욕망만이 투사된 대상이 아닐까요? 

  나의 가치관, 나의 인생관이 같은 영웅의 대상을 찾는 것.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이상화된 모습의 영웅을 찾아야 합니다.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그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분쟁지역은 피하는 것이 여행자의 태도입니다. 총성을 듣고 저는 그곳을 피해서 파르테논 신전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을 돌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그리스 언론에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총성은 은퇴한 치과 의사의 권총자살이었습니다. 

  그리스는 현재 국민연금의 60%가 삭감되었고, 추가로 20% 삭감이 논의 중입니다. 

 

  (...) 자살한 치과의사가 남긴 유서는 다음날 그리스 사회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나는 조국을 믿고 성실하게 일하며 연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조국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내게 이런 조국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 

 《문명의 배꼽, 그리스》 p.5 ~ p.6


  그리스인다운 어법의 유서였습니다. 이 사건의 파장이 커져서 그리스의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를 촉발시켰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 1997년 한국의 IMF 구제금융을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경제부총리가 외환위기 이후에 IMF의 지원을 받기로 하였다는 장면이었습니다.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입니다. "스파르타식 교육"  저의 학창시절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시대였습니다. 석차 1등이 하락하면, 1대씩 맞는 시대였습니다. 또, 스파르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영화 <300>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스파르타는 더 대단한 국가였습니다. 9,500명의 스파르타 시민이 43만~45만 명의 아테네를 정복하고, 지배했습니다. 지중해의 패권 국가로, 아테네를 공기돌처럼 갖고 놀듯 하였고. 800년간 무패의 부대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법치의 실현입니다. 스파르타는 80년 간 법의 개정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말은 법을 어기거나 법의 개정을 말하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에서는 모두가 법을 지키고 싶어하고, 법은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행복

  페르시아(이란)인 여자, 그리스 인 여자들은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느낌이 듭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엘레강스(elegance)한 느낌이 듭니다. 이지적이고, 우아한 느낌. 여신의 후예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찾은 식당의 여인도 그랬습니다.

  유적을 돌아보다, 오후 3시 경에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근처 식당에 갔습니다. 56세, 55세 부부가 한국에서라면 그럴 수 없는 모습으로 코를 가까이 맞대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우리였다면, "분명히 부부관계가 아닐꺼야. 불륜아닐까?" 의심을 받을만한 모양새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그 분들에게 멍청한 질문들을 하였습니다. 

① "두 분 부부이십니까?" 

    "네, 부부입니다."

② "이 식당의 주인이십니까 (당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 국립은행에서 일했는데, 경제위기로 구조조정 되고, 지금은 장인어른이 운영하시는 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중입니다."

③ "그러면 어떻게 지금처럼 행복해보일 수 있습니까? 지금 행복하십니까?"

    "당신은 지금 내가 지금 불행해야 한다는 말하는 것인가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직장을 잃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불행해야 하는 것입니까? 인생이란 행복한 것입니다. 삶은 경이로운 것입니다. 주변에 좋은 것들이 이렇게 많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보석같은 자녀들과 동네에 이사를 와서 새로 사귄 스무명의 친구들, 올리브 색깔 같은 바다, 지중해의 햇살처럼 행복의 요인은 별처럼 많습니다. 삶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 사이에 단지, 행운과 불운이 있습니다.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것이 삶입니다 . 길거리에서 돈봉투를 주었다고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운이 좋았다." , "행운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것처럼 현재의 실직도 가끔 있는 불운입니다.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바탕이 행복이라는 것에 변함은 없습니다."

 

 

끝으로... 

  그리스에 다니면서 느낀 것 중 우리와 삶의 방식을 비교해서 더 나은 것을 채택하려 합니다. 문화, 문명, 삶을 이해하려 합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없이 3월 19일에 다시 그리스로 출국합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이렇게 모여서 함께 눈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눈 것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번에 나가서는 2권을 탈고하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이런 여행을 앞으로 19년 6개월 더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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