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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규, 그는 내게 어떤 작가인가> 

  나는 그의 책을 볼 때마다 아련해진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이 감정이 어색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잔잔하면서도 큰 파장을 일으키는 그의 책은, 내게 단순한 동경을 넘어선 꿈 그 자체다. 

  17살. 나는 문학을 시작했다. 그의 소설 카스테라를 읽었다. 그의 소설 전부를 읽었다. 그리고 그를 서강대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환상같이 존재하던, 꿈. 그를 만나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열리지도 않은 문앞에 앉아 그의 소설을 읽으며, 그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만난 그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었다. 독자들의 질문에 정성껏 답변해주었으며, 질문 쪽지를 너무 늦게 내 답변을 기대하지 않던 내게 진실된 답변을 주었다. 환상같이 존재하던 꿈인 그를 만나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더 멀어졌다고 느꼈다. 그래, 신기루. 그는 신기루다. 

  행사 당첨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책을 읽었다. 17살과 18살이 다르듯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속의 그는, 예전과 다르다. 무엇이 달라졌냐고 물었을 때, 나는 머뭇거리다 끝내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건 분명 그의 소설은 달라졌다.  

  이리카페에서의 그는 작년과 같이 상냥했다. 독자들의 질문에 정성껏 답변해주었으며, 너무나 떨려 어떻게 했는지 모를 나의 낭독에 마이크를 맞춰주려 했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나는 그 시간동안, 적당한 긴장을 유지했다. 그가 말했던 소중한 말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대상은 지구인이다' 이다. 이 말이 어째서 각인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앞에서 말했다싶이 나는 문학을 한다. 내 목표는 애매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애매하다. 그의 말은 내게 바람을 일으켰다. 아주 나중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문인이 되어 그를 만나는 것을 고대해본다. 나의 첫 책을 그에게 내밀며, '그때 기억하세요?' 묻기를.   

  17살을 지나온 18살의 나는, 그의 책과 함께 냉장고에 들어간다. 문을 닫고 생각한다. 박민규, 그는 내게 어떤 작가인가. 지금의 답은 답이 아니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읽는 소설 속 그는 달라졌을테니. 완전한 답을 얻을 수 있을 때, 나는 카스테라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점점 차가워지며 그의 책을 끌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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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 체크 못한 서노기, 박민규를 보다!
(소설가 박민규와 함께 한 시간들...)


서둘러 출발했는데 그만 홍대에서 헤매고 말았다.
내가 아는 곳이 아니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쯤에 있겠거니 하고 지레 짐작만 하고 찾아간 곳,
그곳이 아니었다.
클럽 빵이 있는 골목을 헤매다 다시 찾아갔지만
이리 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끝내 안되겠다 싶어서 친구에게 구원을 요청,
인터넷으로 위치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앗 지나온 길에 이리 카페가 있었다.
무과수마트 지하였다니... ㅋㅋ
그렇게 20분을 지각하고 말았다.
참석자 명단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불참자 명단에 오르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하여 서둘러 이렇게 글을 쓴다.
저 참석했어요~
다음 이벤트에 불이익이 없도록 해주세요!!!
ㅋㅋ


조금 늦게 도착한 카페에서는 이미 낭송의 시간이 진행되고 있었다.
낭독자 곁에 고개를 숙이고 쪼그려앉은 분이
박민규씨구나 생각했다.
검고 동그란 선그라스를 쓰고 있었다.
검은 수염과 검은 머리
청바지에 빨간 두 줄 체크무늬의 긴팔 셔츠를 입고 계셨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시니컬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말처럼 마흔두 살의 사내는 둥글었다.
더디고 느린 말투.
그 때문에 카페를 찾느라 뒤뚱거리며 함께 따라온 친구는
낭송의 시간에 조금 졸았다고 한다.
친구가 졸았는지 전혀 몰랐던 나는 아무 상관하지 않았다.
친구가 뒤뚱거릴 만큼 배가 나와서 아기를 갖고 있어서
덕분에 뒤늦은 방문에도 등받이 의자에 앉을 수 있었으니
친구가 고마울 뿐이었다.

작가와의 대화는 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미리 질문을 가져오라는 숙제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질문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웠다.
더구나 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지 못해서
조금 부끄러웠다. ㅎㅎ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카스테라" 두 권을 들고 갔는데도   

새책이 없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사인도 받지 못했다. ㅋ
집이 멀어서 일찍 나와야했다는 것도 핑계에 불과하지 않겠지. ㅎㅎ


마흔 두 살의 둥근 부드러움 때문일까,
박민규씨는 아주 친절했다.
더디고 느린 말투였지만 또박또박 그리고 길게 답변해주었다.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였을까?

질문의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아
마구잡이로 메모한 내용을 옮겨 적는다^^;;

# 박민규식의 유머는 어디서 나오는가?

- 평소에는 웃지 않습니다. 농담을 좋아하지 않아요.
어린 시절 과거 힘들었던 일들이 웃음의 원천이 아닐까요?
농담하고 그렇지 않으면 집안에 웃을 일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웃음으로 넘기지 않으면 현실은 너무 슬플 거에요.
그런식으로 살아오면서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바람이 있다면 한국이 개그나 오락 프로그램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 자신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가?

- 저도 똑같은 남자, 어쩌면 과거에 상처를 주던 남자였겠지요.
출판사와 6년전 계약한 건데, 처음에는 써지지 않았어요.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나이'.
쓸데없이 마흔 둘이 되었습니다.
뒤늦게 철이 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저도 모르게 '꼰대'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쁘다고 생각하니까.

저는 아내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일상속에서 아주 자주합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변화를 준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건 부모님.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단 한번도 감사하다는 말을 못했지요.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도 마찬가지.
외아들로서 사랑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그런지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언제 삶이 끝날지 모르니까.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

외모, 돈
돈이면 안되는 것 없고, 예쁘면 용서되고.
그건 당대의 진리입니다.

저는 그런 만능주의를 공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부정하지는 말자는 거지요.
사람은 만가지라고 하지만
만가지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냉전이데올로기, 남아선호사상이 이제는 우스워지지 않았습니까?
외모지상주의도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무엇이든 인간을 억압하는 것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시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걱정마세요. 스스로의 보편성을 각자의 삶에서 획득하시길 바랍니다."

# (기억나지 않는 질문-.-;;)

- 소설은 대안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다만 소설은 '말랑말랑한 정서'예요.
그 정서가 철학이 되고, 정신이 되겠지요.
저는 다만 '정서'를 만들 뿐입니다.

"스스로의 팬이 되세요."

내가 쓴 글이 뭔가?
그저 정서를 만들고 싶었을 뿐.

다른 작품에 비해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로맨스를 쓸 인간이 아니거든요.
조각에는 음각과 양각이 있습니다.
세상은 양각이었었습니다.
그래서 음각으로 표현했습니다.
주변인물을 통해 주인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 전업작가로서의 불안함은 없는가?

- 스스로의 성취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글을 쓰고 싶어서 쓴 것.
쓸 수 있는 문체를 여러가지 갖고 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요. 계속.
멈춰서서 어디지? 라고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겁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거라고 믿으니까요.
오래전 경험을 하나 들려드린다면,
학창시절 교련시간이나 조회시간에 늘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교실에 남아있다가 늘 선생님께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또 맞았지요.
그렇게 두 달이 흘렀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타협을 요구해오셨습니다.
"안 보이는 데 가 있어라."
학교 뒤에 산이 있었거든요. 뒷산에서 상을 받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들보다 내가 더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경험은 작가로서 직업은 힘들지만 구르고 굴러서 상처를 입게 되고, 그 상처로 인해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알게 되고 그렇게 열심히 쓰면 어느 날 세상이 타협해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힘들지만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아쉬운 점은 문학이 수출되지 않고, 수입만 한다는 것.
어쩌면 농민보다 못할 지 모르죠.
처음 상을 탔을 때 국외작가들의 작품들과 놓여진 제 작품이
마치 명품관의 중소기업우수작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 작가지망생입니다. 욕심없이 글을 쓴다해도 인정받고 싶어져요.

- "그 사람 심사할 줄 모르네"하고 생각하세요.
작가지망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표독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가르치려고 합니다. 수동적이게 만들죠.
언젠가는 둥글어지게 됩니다. 마흔 두 살이 되거든요.
그때 되도록 덜 깎이게 했으면 합니다.

"하고싶어, 쓰고싶어 견딜 수 없는 에너지"로 글을 쓰세요.

# 작가지망생, 문창과를 졸업하고 내 얘기를 다 쓰고 보니 쓸 게 없습니다. 소설의 글감은 어디서 찾으시나요?

- 가장 안 좋은 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험한 이야기는 쓰지 않는 편입니다.
개인의 경험이 중요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는 한국을 대상으로 글을 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구인을 대상으로 써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죠.

어떤 걸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그건 이 세계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주의 먼지 알갱이에 불과합니다.
이 세계는 '이야기 덩어리'죠.

성경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다고 하잖아요.
말씀이 이야기를 말하는 거죠.

카스테라를 쓸 때,
가까운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썼습니다.
한 사람을 앉혀 놓고 글을 쓰면 믿음이 갑니다.
그 한 사람은 어느 정도의 그 사람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테니까요.


# 고2의 작가지망생, 슬럼프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30대 중반이 넘어서 소설을 쓰고 싶어서 소설을 썼습니다.
등단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도 한국사회가 면허증 사회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연료가 된 이야기들이 솟구치게 마련입니다.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내부에 석유가 생기면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
....

"저는 괜찮은데...."

참 따뜻한 말이었다.
시간은 9시 30분을 향하고 있었다.
7시 30분부터 시작되었을 텐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들었다.
가게 문을 닫아야해서 어쩔 수 없이 이야기는 중단되었다.
갑작스러워서 아쉬웠다.

그리고 사인회를 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배송중이라서 새로 살 수 없었다.
솔직히 새로 살 수 있는 돈이 없었다. ㅋㅋ
작가를 만났는데 사인을 받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다니
정말 억울하고 아쉬웠다. ㅋㅋ
또 기회가 닿겠지.
다음에 만날 때는 나도 '선물'을 챙겨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이야기로 선물을 준 박민규 작가에게 감사하다.
그의 열정에 감사하고, 그의 건강에 감사한다.
고마워요,
몰라몰라,

아 그런데 왜그럴까?
처음봤는데 낯익다.
어디서 본 것 같다.
공연을 보러 다닐 때 봤나?
ㅋㅋ
스물 다섯 살 때, 두 살 많은 언니와 어울려
1995년부터 97년까지 홍대 클럽에서 노래를 들으러 다녔는데...
신윤철과 유앤미블루를 좋아했는데
블루데빌도 자주 갔는데..... 혹시 그때? ㅋㅋㅋ
어찌되었든 만나서 반갑다.
언니에게 자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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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 2009-08-2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깔끔하시게 정리하셨네요~!!! 와닿는 말들을 많이 하셔서 가슴에 담고싶었는데..고맙습니다~
저도 카페를 못찾아서 헤매고 다니다가 마지막 낭송때 들어갔지뭐에용...>.<
싸인도 받고, 악수도 해주시구..ㅎㅎ 진행하셨던 분께서 읽어주신 어떤분의 서평도
너무 좋았구요.^^ 코드가 통한 사람들과의 만남~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 Review

7~8년 전으로 기억한다. ‘아이엠 샘’이라는 영화가 나왔던 그 때, 감정이 극도로 풍부해져 있던 나는 영화 한 편을 보고 1년에 흘릴 눈물을 한 자리에 쏟아내었다.




그리고 2009년 8월. 정말 오랜만에 감동을 전해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영화는 바로 인도영화 ‘블랙(Black)'.

귀도 들리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는 주인공 미셀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이다. 부모조차도 통제하지 못해,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어 놓는 것처럼 허리에 방울을 매달고 다니며 어떤 동물보다도 더 짐승 같은 취급을 받아 오던 아이 미셸. 8살을 계기로 그녀 인생의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티쳐라고 불리는 사하이 선생!

모르는 누가 본다면, 학대라고 보일만큼 혹독하고 가혹하게 사하이는 미셸을 가르쳤다. 인생, 삶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 미셸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어둠에서 빛을 발견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단어를 깨우치기 시작하면서 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또 그 배움으로 자아실현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 이 영화 메시지

영화는 말한다. 불가능은 없다고...

누구도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하이 선생을 만난 후 가르침에 대해 깨닫게 된 미셸은 불가능이 없음을 몸소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삶에 대한 깨달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미셸을 통해 영화는 사람은 생각이 있으므로 갇혀있는 것이 아니며, 비록 블랙의 어둠속에서 시작했지만, 가르침과 깨달음을 통해 빛을 얻게 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 이 영화 명대사

“꿈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저에게 눈은 없지만 꿈이 있으니까요” 

“인생은 아이스크림. 녹아내리기 전에 맛있게 먹어야죠.”




◆ 이 영화 평점

- 10점 만점에 [ 10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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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그를 만나고 오다.   

[노서아가비] 라는 구한말 바리스타의 이야기를 새롭게 낸 그.  

출간즉시 영화화 판권이 팔렸다는 홍보문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훅킹한 소설이었다. 

꽤 더웠던 여름날 밤에 만난 뜨거웠던 그와의 천일야화.  

  

[한 길 사람 속] 이라는 제목을 두고 고민을 했었다 한다.  

역시, 글쟁이들은 제목이 절반이라 여길터, 꽤 적절한 제목이었다. 

마징가의 '아수라 백작'.  

선과 악. 혹은 남성성과 여성성. 혹은 다중 인격자로서의 작가라는 존재.  

내 안의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내고, 만나고, 표현해 내는 것이 바로 작가의 존재론적 본질일터.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화두로 강의는 시작되었다.  

작가는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이라는 걸 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보르헤스는 그 선택에서 '가지 않은 길'까지 한번 전부 이야기에 담고 싶어했다. 

바로 이 단편소설에서. 

내가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 그 길에서 끝없이 갈라지는 수많은 길들... 

인생이 바로 선택이고, 선택이 바로 이야기이고, 고로 삶이 이야기가 되는 운명의 수레바퀴. 



사람은 '나랑 닮은 이'와 사랑에 빠지거나 '나랑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양귀자의 이 소설처럼 어떤 선택을 하던 선택하지 않은 이를 늘 그리워 하게 될터. 

헌데, 생각을 달리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야기를 버린것이 아니고, 

선택할 이야기들의 가능성들이 모여드는 것이라 한다.   

'반쯤 찬 물컵'을 보고 반이 비었다가 아닌 반이나 차있다 라고 생각할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탁환은, '우짜다가' 글쟁이가 되었을까? 

 

여행자로서의 김탁환.  

리심과 혜초, 그리고 따냐는 세상을 부유하며 떠다니는 여행자들이다.  

왜 이렇게 인물들은 헤메일까? 

방콕을 사랑하는 작가들을 길로 나서게 하는건 바로 이야기.  

소설이, 나를 여행하게 만들었다! 





최근에 출간된 여행 에세이집에서 혜초의 여행길에 대한 글을 올렸던 그였다.  

앞으로 가고픈 곳은 사하라 사막 아래 있는 진짜 아프리카라 한다.  

만약 시간 이동을 할수 있다면 40년전 과거나 40년전 미래에 가보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 

 

그는 칼 세이건의 SF 소설을 소싯적에 읽으며 미래소설을 오랬동안 꿈꿔왔다 한다.  

고전문학 전공자이자 역사소설의 1인자로서 확고한 자리에 오른 그의 또다른 도전이 될듯하다. 

 

알고 봤더니, 그는 이미 동아일보에 정재승과 함께 '눈먼 시계공'이라는 미래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다. 소설의 첫 문구를 살짝 엿보면,

“사건번호 35! 30세, 93퍼센트 인간, 여, 유전형질연구원, 직접사인 뱀독에 의한 급성중독, 간접사인 오른 팔꿈치 절단에 의한 과다출혈. 지금부터 서울특별시 종로 8가 홀로그램 거리 <앙상블>에서 살해된 박진숙의 브레인 스캔을 시작하겠습니다. 브레인에서 인출할 피해자의 단기기억은 120초입니다

그는 테크노 스릴러라고 불리는 추리형사물 SF 소설에 벌써 도전하고 있었다.  

역사소설과 과학소설을 오가는 그의 진화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철학자 김용석님이 우주 철학자라며 그에게 '우주 소설가'가 되라 했다는 농은 이루어질까? 

이 땅에도 부디 '1984'와 '멋진 신세계'가 나오길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몽상의 자식들의 아비로서의 김탁환.  

다른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이야기 그 자체만이 갖는 재미를 추구하고 싶어했다.  

그의 역사소설 궤도에서 벗어난 작품 여럿이 있다.  

특히 '부여...'는 '나, 황진이'의 필드 리서치를 하며 서경덕과 연관된 '전우치전'에서 나왔다한다. 

 

'홍길동전'과 강호의 무협을 다투는 우리 고전소설 '전우치전'  

이미 국문학도 출신 이야기꾼 최동훈에 의해 선택되어 강동원, 임수정에 의해 올 연말을 휘저을 예정인 바로 그 소설 아닌가.  

'지괴소설'이라는 동양의 모든 귀신들을 하나하나 잡아 가두는 '고스트버스터' 부여현감. 

이렇게 그의 소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져 나온다.  

시대와 맞부딛혀 살다가 죽어가는 여성의 비극적인 이야기인 '리심'에서 출발한 '노서아가비' 

같은 시대에서 점핑하는 가벼운 이야기를 통해 무거운 소설로 휘청한 균형을 잡고 싶었다 한다.   




재미 있으면 살려주고, 재미 없으면 죽인다! 

바로 이야기꾼의 운명은 바로 이 천일야화속에 있다.  

고전소설 전공자로서, 그가 추천하는 필독서 셋.  

'아라비안 나이트'와 '서유기' 그리고 '태평광기'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고전속 원형을 '발견하는 것 !' 그게 바로 이야기꾼의 운명. 



'센' 여자들을 사랑하는 김탁환. 

시대의 비극속에서 운명의 굴레와 한판 맞짱을 뜬 그의 여인들은 '센' 여인들이다.  

남성작가가 여인이 주인공인 작품을 쓸때는 분명 좋아하는 여성형이 나올수 밖에 없을터. 

섬세한 작가들이, 강한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마 당연한게 아닐까?  

아마 앞으로 나올 여성 캐릭터들도 아주 일관성 있게 이렇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꾼으로서의 김탁환. 

'쓴다'의 주어로 살아남기 위한 작가의 길.  

픽션 뿐 아니라, 산문, 번역, 평론 등 이른바 잡문에도 능한 그.  

이미 소설 못지 않게 수 많은 비소설 서적을 출간해왔다.  

정신분석학, 심리학, 뇌과학, 그림, 춤, 노래.... 그리고 글쓰기. 

한길 사람속을 알기 위한 인간의 여러 활동중에 글쟁이는 글쓰기로 그 일을 파헤친다.  

경험론자로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쓰고, 그분을 잘 영접해 뮤즈의 여신으로 사람속을 파헤치기.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글쓰기를 통해 할려는 아수라다. 너도 아수라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를 글쓰기를 통해 알려는 아수라다' 

'내 안의 추악함을 오래오래 보고보고 또 들여다보는 것의 고달픔이여!'

보통사람들은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보면 미치거나 범죄하게 된다.  

헌데, 작가들은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 보며 그걸 글로 풀어내 먹고 사는 천형을 지녔다. 

사람을 괴롭히는, 고문하는, 죽이는 100만가지 방법 이런걸 늘 공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허균이 능지처참 당하는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어떻게 하면 죽일까 몇날을 고민했었다. 

대로에서 두 팔과 다리를 네 방향으로 소가 끌어서 찢기워 죽이고 피가 동료의 얼굴에 튀는... 

'내가 어디까지 갈수 있는가? 나는 환자가 아닐까? 

공상속에서 작가는 참 잔혹하다. 고통과 아픔을 주는 오만가지 방법을 늘 꿈꾸지 않는가.  

이런 파괴적인 타나토스의 충동이 바로 예술가의 창작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완월회맹연'  

180권짜리 가문소설이다. 네 가문이 결혼하는 이야기인데 해군학교 근무시절 군인정신으로 읽었다. 매일 아침에 칼출근해서 멍하니 바다만 봐야 하기에 읽었다는 바로 이 소설로 인해 소설가가 되었다는 그였다.  

그렇게 육개월간 180권을 읽었는데, 이게 다 작가가 계획하고 쓴건가, 그냥 쓰다보니 이렇게 된건가 궁금한 맘에 다시 또 육개월을 읽었는데, 복선이 좌악 깔렸던 것. 마지막 멘트가 압권인데, 이 책은 원래 1800권인데, 180권으로 압축한것이니 나머지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다른 소설을 읽으라고 했다.  

'노서아가비'에서 이 이야기가 생각나 따냐의 또 다른 책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라 한다.  

아... 180권짜리 고전소설에 도전해 보아야 하는가. 이 책은 20권으로 출간되어 있다.  

사료의 고증과 작가의 상상력에 관한 김탁환의 변.  

역사책을 뒤적이다보면, 역사의 검은 구멍이란게 있다. 자료가 더 이상 안나오는 지점.  

바로 이 역사학자들이 멈추는 자리에서 몽상이 시작된다. 구멍을 메우는 상상력의 과정이다.  

늘상 엉뚱한 곳으로 가는 상상을 한다.  




<난중일기>를 보면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이것에서 난중일기를 쓰는 이순신의 마음을 그려낸 것이 '불멸의 이순신'이다.    

우들목 전쟁의 내용은 거의 소설이다.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를 내며 상상해 봤다. 

있는 텍스트는 모조리 다 읽고, 그 구멍을 몽상하는 게 포인트다.

  

'어우동' 시대에 있었던 '감동'이라는 희대의 팜므파탈. 

이 둘 사이에 있는 검은 구멍을 채우는 이야기도 그려볼수 있다. 

 

한시를 600여편 모았다. 황진이가 읽었을 법한 시를 몽땅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하나의 문단이다. 접속사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는데,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서 접속사를 쓰는 듯 해 강박적으로 하나의 문장으로 쓴 글이다.  

러시아 배경으로 소설을 두편정도 기획중이다.  

배경이 반복되는건,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모여있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호러나 추리도 무척이나 흥미가 가는 장르다. 호러 주말 연속극이 꿈이다.  

 

  

글쓰기에 대한 김탁환의 조언

 아이디어에서 초고단계로 바로 넘어가면 안된다. 그 사이에 노력이란게 필요하다.  

매천야록을 보다가 김용옥 이야기가 눈에 띄면, 어 재밌네 하면서 또 다른 공부를 하게 된다.  

아이디어 노트에 100여가지 이야깃거리가 담겨져 있다.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이 아이디어와 에피소드로 만들어 진다.  

관심 가는 아이템은 킵 해놓는다. 항상 관심은 두고 살아간다.  

학회, 책, 논문 모아서 구석에 주욱 놓아둔다. 언젠가는 쓰리라 다짐하며 말이다.  

그렇게 모아놓은 자료를 후룩 보고서, 쓰자 하면 바로 쓰게 된다.  

자료는 10년정도 오랫동안 모아놓는다. 생각은 오래하되, 쓸때는 집중해서 말이다. 

'한문장으로 압축'할 필요가 있다.  

'불멸의 이순신은' '모든 장수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패할때, 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승리한 장수' 라는 한줄 로그라인이 있었다.  

왜 그길로 갔을까? 그럴수 밖에 없었던 삶을 어릴적부터 써보는 거다.  

아.. 그래서 다른 병법이 나올수 밖엔 없었구나 하면서 말이다.  

'허균'은 '배고픔과도 같은 희망'이었다. 

배고픔을 채우려는 지식인이 바로 허균이었다.  

잘먹고 잘살았는데 혁명을 한 이유가 뭘까? 고민하는 거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라는 허균의 고민이 그 안에서 나오게 된다. 

쓰는게 뭐냐. 핵심을 틀어쥐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헐리우드 엘리베이팅 피칭 처럼 '한줄로 이야기를 요약'하는 로그라인이 먼저 나와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한게 있나 하며 전부 찾아본다. 그래서 뛰어난게 있으면 질단 질투한다.  

여기서 더 잘쓸 자신이 없으면 접는다.  

 

예전에 한참 나노기술에 빠져서 쓰려고 했었다.  

헌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접었다.  

세계에서 제일 잘 쓴 놈이 누군가? 제일 쎈 작품이 뭔가? 그 장르의 마스터를 마스터 하라! 

독해져야 살아 남는다. 전 세계의 대표선수들과 필드에서 경기하는 게 작가들이다! 

 

 

그의 글처럼, 짧았던 시간속에 강렬함과 재미와 깊이가 있었던 만남이었다. 

이야기꾼은 말에서 그의 내공이 묻어나는 법이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있는 그 이지만, 재미난 놀이에 대해 열광하는 어린아이인듯 했다.  

글 쓰기를 진정으로 즐기고, 그 안에서 행복해 하는 그는 역시 타고난 작가였다.  

늘 고통속에서 글을 쓰는 나는 언제쯤 즐길수 있게 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글을 보고 이야기를 접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겨낼 재간이 없다고 생각되어 미련없이 서랍에 넣었더랬다.  

헌데, 이 날 강의를 들으며 순간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진 길'의 하나가 번쩍 눈에 들어왔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 다른 길을 다시 가면 되는 것이다.  

이내 웃으며 몽상에 빠지기 시작한다.  

선택할 가능성의 이야기들이 내게 모여들기 시작한다.  

나의 천일야화가 이렇게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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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서사시-오뒷세이아에서 살펴보았듯이 강대진 저자가 해석한 <오뒷세이아>을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09년 8월 7일 논현에서 강대진 저자의 강연회가 열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강대진 저자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별개의 이야기로 보고 있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호메로스가 만든 작품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오딧세이아>에서 들어나는 여성 우위의 관점을 볼 때 <일리아스>와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그렇기에 호메로스가 두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깅는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날 강연회는 저자가 그림과 미술작품으로 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진행해 나갔다. 모든 이야기 중에서 옛날 이야기 그것도 신호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속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까 20 여명이 참여한 이날의 강연장은 연신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는 책에서도 밝혔듯이 이 오뒷세우스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와 둘째는 각각 오뒷세우스의 모혐과 복수라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에 있는데 마지막 세번째가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모험이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를 <오뒷세우스>에서 집어넣었던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텔레마스코스는 젊은 날의 오뒷세우스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텔레마코스가 그의 모험을 잘 견디고 무사히 돌아오는 부분에서 우리는 오뒷세우스가 그의 모험을 잘 끝내고 아내와 아들 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오뒷세우스만의 이야기가 아닌 아들이 이야기가 들어가 있어 맥이 끊어진 느낌이 들지는 모르지만 이 <오뒷세이아> 이야기 속에 들어오면 그들이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서사시'로 묶여진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더 특이한 점은 오뒷세우스의 젊은 날의 이야기를 끌어 당기기 위해 아들을 쓴 점과 오뒷세우스의 먼 훗날의 늙은 모습을 그리기 위해 할아버지 라에르테스를 언급한 이유도 저자는 이런 오뒷세우스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오뒷세이아>를 쓴 시인이 장치해 놓은 것이고 해석하였다.

작가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전자는 영웅문학이고 후자는 전후문학이라고 역설한다. 그렇기에 책 리뷰에 언그했듯이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오뒷세우스와 <오뒷세이아>에 등장하는 오뒷세우스는 마치 딴 사람처럼 등장한다. 그는 <일리아스>에서와는 달리 더 성숙해져 있다.

참을성을 <오뒷세이아>에서는 강조하고 있는데 그 점을 오뒷세우스는 지키고 있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이 오뒷세우스가 죽음으로서 '영웅시대'의 끝이라고 보고 있다지만 자신은 '아이아스' 이후로 영웅시대가 끝났다고 보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오뒷세우스는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생각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고전은 그냥 재미있으면 된다는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모든 고전은 스스로 읽어봐야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 강연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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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고전 읽기-'오뒷세우스'를 해석한 강대진 저자 강연회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2009-08-09 11:53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서사시-오뒷세이아에서 살펴보았듯이 강대진 저자가 해석한 을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09년 8월 7일 논현에서 강대진 저자의 강연회가 열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강대진 저자는 와 는 별개의 이야기로 보고 있었다. 와 는 호메로스가 만든 작품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에서 들어나는 여성 우위의 관점을 볼 때 와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그렇기에 호메로스가 두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깅는 좀 미심...
 
 
알고지내자 2009-08-1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