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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가장 선호하는 연극 연출가는 단연 임영웅 선생님이다. 김석훈이 에드먼드의 역을 맡는다는 사실도 끌렸었다. 손숙 아주머니를 수 차례 무대에서 접하면서 사람들이 그녀의 식상한 연기에 열광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거부감이 많았었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나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아, 손숙은 식상한게 아니라 꾸준한 것이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만큼 '메어리'역에 잘 어울릴 여자가 그 누구일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최고의 배역과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기대했던 에드먼드 김석훈은 빛났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이 미남 배우는 단지 외모가 아닌 연기력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배우다웠다. 메어리의 남편이자 에드먼드의 아버지 역을 맡은 노랭이 영감 제임스의 김명수는 또 어떠했겠는가? 김명수는 유진 오닐의 원작이 묘사한 제임스 보다 훨씬 호리호리하고 고뇌에 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와 TV를 오가며 입증된 그의 명확한 발음과 결코 과장되지 않은 섬세함...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선배 손숙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남편 역을 어느 누가 그보다 더 잘 소화해 낼 수 있겠는가?
이미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명배우 최민식의 동생 최광일은 에드먼드의 타락한 형 제이미의 역할을 익살스럽고 명쾌하며 애처럽게 잘 연기해 냈다. 아마도 이제는 최민식의 동생이라는 표현에 좋지만은 않은 시선을 보낼 것만 같다. 형보다 더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그의 연기는 불혹을 앞두고 절정에 무르익은 듯 싶다.

넓은 창과 책장이 있는 가족용 거실, 오른쪽 계단 위로는 셰익스피어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안정감 있는 무대에서 타이런 부부의 행복한 대화가 무르익을 때만 해도 객석의 대다수는 이 작품의 우울함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소소한 부분에서 원작과는 미세한 차이를 보였지만 기품이 있는 분위기는 여느 평범한 연극무대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제이미와 에드먼드 중간에 태어나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은 문제의 형제에 작가 유진 오닐이 자신의 이름을 활용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자전적인 슬픔이 있다. 불행한 원작자의 감정이 그대로 숨어 있는 우울한 작품...

성공한 배우에 별장 주인인 제임스 타이런과 그의 가족 이야기...
서재의 손떼 묻은 책들이 탐스러운 그곳 거실의 아침은 마냥 행복한 한 가정을 보는 듯한 착각으로 관객을 이끈다. 극 중간에 메어리와 말벗이 되어주기도 하는 교양 없는 하녀 캐서린(서은경)만이 가족 외에 유일하게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드러나는 이 가족의 아픈 이야기들을 경험하게 된다. 마약과 알콜중독...... 소녀 시절의 꿈, 애증의 추억들을 오가는 동안 깊은 우울함이 내 가슴을 지배했다. 셰익스피어와 보들레르, 스윈번, 오스카 와일드 등을 적절하게 인용하는 브로드웨이 풍의 멋진 대사들...

중간에 15분 간의 휴식을 포함하여 180분 동안 펼쳐지는 다섯 배우들의 매력적인 에너지에 빨려들다 보니 어느덧 깊은 밤... 품위 있는 연극의 진수를 보여준 가을밤이었다.

명동예술극장은 내가 접한 최고의 연극 무대였다.
1층에는 테라스까지 점령한 채 서울에 뿌리 내린 '왈츠와 닥터만' 매장이 인상적이었고, 연극을 위한 극장들에 대한 편견을 확실하게 깨줄 만큼 아주 고급스러운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극장을 나설 때, 1층 로비에서 혼자 서성거리시던 임영웅 선생님의 희긋희긋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아내와 함께한 명동의 밤길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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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만남 2009-09-24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저희도 임영웅 선생님이 연출하신 작품이어서, 이번 이벤트 진행하면서 고객 분들께 더 기쁘게 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無근님의 글을 보니 공연이 정말 더 궁금한데요. ^-^
게다가 아내와 명동의 밤길에서 데이트까지 하시다니, 뽑아드린 제가 다 부럽습니다. 하하하. 앞으로도 초대석에서 자주 뵈어요~
 

알라딘 문화 초대석에 당첨되어 오랜만에 서울에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동창과 함꼐 문화 체험을 하게 되었다. 

7시 30분 공연을 위해 6시 30분에 만나 저녁먹고 수다 떨고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시작하면서 알게된 사실은 공연이 3시간 짜리라는 것이다. 집이 인천인 나는 차가 끊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건 걱정도 잠사 금방 공연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미 황혼에 접어든 부부와 두 아들의 이야기 

배경은 영국, 19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다. 

가부장적이고 엄격하고 인색한 연극배우였던 아버지와 굉장히 섬세하고 날카로우며 감성적인 어머니 그리고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한 아들들.... 

그들에게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 

이들은 왜 이렇게 불행할까? 안타깝게 바라본다. 

엄마는 죽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마약으로 해결하게 되고 큰 아들에게 많은 상처를 준다. 그리고 둘째 아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하지만 마음속과는 다른 행동들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괴로워했던 가족사를 보면서 우리 가정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12시가 넘어 집에 돌아와 나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엄마로서 죄책감을 갖지 않기 그리고 마음의 짐을 풀기를 다짐해본다. 

언제나 서울 나들이는 피곤하다. 하지만 덕분에 고등학교 친구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3시간짜리 연극은 정말 처음이었는데 연기자들의 대사량과 놀라운 연기에 감동했다. 특히 정말 내가 예상대로 김석훈은 조각처럼 멋졌다. 김명수의 수전노 아버지 역할도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또 이런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  

훌륭한 작가의 자전적 작품이라고 하니 더 가슴이 아프다. 이런 아픈 가정사는 빨리 고쳤으면 한다. 엄마를 이해하고 아빠를 이해하는 배려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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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남자 2009-09-2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공연이었지요?
어제는 아내와 갔었는데, 조만간 직원들을 선동해서 다시 한 번 가려구요. ^^;

오월의바람 2009-09-24 22:07   좋아요 0 | URL
어떤 직장인지 모르겠지만 수준이 조금 높던데요. 피곤하신분들은 많이 주무실것 같아요. 저도 살짝 깜빡 좋았는데... 문학적 소양과 감상력이 있는 분들이라면 괜찮겠지만요.작품을 읽고 가면 더 좋겠어요.

작가와의만남 2009-09-24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조각이라고요? @_@ 흐. 멋졌겠습니다. (조각이라는 표현에 잠시 신분을 망각하고 휘둥글..)

오월의 바람님, 집에는 무사히 들어가신거죠?
잠시 가족 곁을 떠나 오랜친구분과 함께하셨으니 더 의미있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자신에게 선물을 하는 시간 많이 갖길 바랄게요.

문화초대석도 기회가 닿는다면 또 열심히 함께하겠습니다. 불끈!

오월의바람 2009-09-2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차를 놓이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 하면서 왔어요. 다행히 차가 끊기지 않아서 집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답니다. 다음에도 좋은 기회 주세요. 아부
 

 

3년을 30년처럼 사는 사람, 김학원 대표   

<미래의 편집자와 함께하는 출판 - 편집자란 무엇인가> 강연회 후기를 중심으로  

출판 기획 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절, 김학원 대표가 출판사를 차리기 위해 5년의 준비 기간을 갖고 전국의 서점을 돌아다니며 시장조사를 했다는 기사를 읽고, 철저한 준비성과 발로 뛰는 기획력에 반한 바 있었다. 언제든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출국 이후 출간한 책<편집자란 무엇인가>를 통해 강연회에 참석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강연회장 들어가는 입구에 김학원 대표가 수년간 써왔던 편집일기와 편집인의 자질을 키우기 위해 공부해왔던 자료인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가 ‘날 때부터 편집인’이 아님을, 공부로 다져진 탄탄한 내공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강연회 당일 출판사 편집인으로 살아온 그가 만난 사람들은 어쨌거나 출판에,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출판사 취직을 희망하는 예비 편집인, 현직 편집인, 출판사 창업을 준비중인 편집인 등 다양했으며, 그 자리는 김학원 대표에게도, 참석자들에게도 무척 특별한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김학원 대표는 책을 출간한 이후, 할 말이 없어졌다는 우스개소리로 강연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책에 모든 말을 아낌없이 쏟아냈다는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수 쫓아 무조건 달려라!
그는 나름 전략적으로 출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나와 방향을 같이하는 출판사인가’와 ‘내가 뜻을 같이하고 싶어할만한 사람이 있는가’를 확인한 후 출판사 취업을 결정했다. 출판사가 쫓는 방향과 사람이 중요하다는 원칙 아래 행동했고, 그것은 좋은 시작이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좋은 사수를 만나 그를 쫓아다녔고, 1:1 과외 못지 않은 실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편집, 제작, 영업, 마케팅 그것이 무엇이든 출판에 관련된 것은 그것에 관계된 전문가를 쫓아 탐색해고, 그것은 결국 책에 대한 모든 것을 잘 아는 편집인이 되도록 만들었다.

편집자를 전문가로 만들어라!
편집자는 대중이 주목하는 저자나 서점(판매 조직)으로부터 상처를 받아 왔다. 주역이 아닌 주변인으로 여겨지는 편집자로서의 역할 때문이다. 그래서 김학원 대표는 ‘편집’이라는 역할을 전문화하기 위해 꾸준히 고민했다. 국내에서 출판된 ‘출판/편집/기획’에 관련된 책들을 섭렵하는 것이 모자라, 일본과 미국에서 책에 대한 연구를 했고, 필드에서의 영역을 구축하여 편집자로서의 상을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전문가적인 것을 전문적 용어로 설명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병원에 갔을 때 전문적 용어로 병명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갸우뚱할 것이다. 이것을 일상적인 단어로 치환하여 설명할 때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맥락이다. 편집인의 역할을 전문가적 용어로 설명하여 영역을 구축하면 이 일은 전문가의 일이 된다는 것이고, 그는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편집자라면 염두에 두어라!
첫째, 책을 잘 만들려고 하지 말아라. 그것에서 ‘잘’을 빼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텍스트를 대할 때 ‘잘’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일정한 서사, 메시지, 감흥을 가진 책으로 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 편집인이 주변을 살펴 조미료를 잔뜩 치면 모두 비슷한 책이 되기 마련이다. 하여 편집인은 텍스트에 집중해야 한다. ‘왜, 어떻게’를 추적하여 적확한 편집을 할 때 텍스트에 맞는 편집을 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네트워크를 구성하라. 출판에서는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배워야 할 점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면 아끼지 말고 투자해야 한다. 돈, 시간 상관없이 발견하면 투자하라. 교감할 수 있는 저자를 발견했다면? 그와 깊은 관계를 맺어라. 통하는 저자를 만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므로 시간을 두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셋째, 연구의 시공간을 확보해라. 일상에서 기획할 수 있는 시공간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김학원 대표의 경우 새벽 시간을 활용했다. 이른 시간 출근해 청소하고 낙서하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고, 그 가운데서 기획하고 구상하고 설계하는 많은 부분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3년 정도 일하면 반드시 휴식을 취한다. 3년을 30년처럼 일하고 나면 모든 것이 소진되어 더 이상 추출할 것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한계를 느끼면 외국으로 나가 출판 현실을 지켜보고, 분석하고, 공부하여 방전된 자신의 능력을 충전하곤 한다고 한다.
넷째, 주변으로부터 익히고 배워라. 어떤 것이든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편집자로부터, 디자이너로부터, 제작자로부터 배우는 것을 재편집하여 자기화하는 과정을 꾸준히 하라고 강조한다. 그가 편집일기를 썼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행위, 사고를 기록하고, 기록한 것들로부터 확장하고 싶어서 시작했고, 그것은 그에게 충분한 보상을 안겨주었다.

주류가 되기 위해 노력해라
영화, 동영상 등 비쥬얼 미디어는 주류로 인식되는 반면, 활자 매체인 책은 비주류로 치부되곤 한다. 이러한 편견은 쉽게 바꿀 수 없으므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편집인들은 주류적 활동을 눈여겨보고, 비주류 미디어에 적용하여 확장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책이란, 권력과 자본에서 분리된 살아있는 미디어다. 그렇게 때문에 비주류 캐릭터가 책에 등장하여 주류로서의 캐릭터를 갖는 것이 가능하다. 안철수, 한비야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들은 권력, 자본과 거리를 둔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비주류 매체인 책을 통해 주류로 인식된다. 이것이 책이 갖는 희망이고, 이런 류의 활동을 편집인이 해야 하는 것이다. 비주류 매체를 다루는 편집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강연은 끝났다. 편집인이라면 김학원 대표와 같은 신념을 가진 출판사에서 일하는 꿈을 꾸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인들이 휴머니스트의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기획력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출판사이기 때문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 출간될 휴머니스트의 책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 김학원 지음 / 휴머니스트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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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란 누구, 가 아니라 무엇, 이냐는 고민
- 모든 것은 태도가 전부다  
 

저는 일 년 조금 넘게 어린이 책 편집자였고 현재는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바라던 편집자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 매일의 업무와 일정에 치여 처음의 열성이 사라진 채, 편집자가 아닌 직업인처럼 살고 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책 한 권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란 정말이지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후에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며 공감과 위안을 받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그 고통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나의 정성과 소양의 부족 탓인 것 같아 끝없이 자책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과연 직업인이 아닌 편집자가 될 각오, 책을 ‘읽는’ 독자가 아닌 ‘만드는’ 편집자로의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런 물음이 머릿속에 가득한 채,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강연은 한 시간 반 남짓의 강연과, 30분 가량의 질의 응답 시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은 한마디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제기들과 출판인으로서의 자부심, 업계 선배로서의 지극한 격려를 느낄 수 있던 자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편집자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1. 일을 ‘잘’ 하려 하지 마라.  

-> 일을 잘 하려고 하면서부터 편집자 자신과 책의 기준, 콘셉트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편집자는 개념을 잡고 그것을 기준으로 편집을 해야 한다, 책의 구성물이 각각 왜 그 자리에 왜 그렇게 편집되어야 하는지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어요. 저자와 디자이너, 회사 내부와 외부, 다른 책들과 내가 낼 책, 회사와 독자 등 어떤 ‘사이’에 끝없이 서게 되는 편집자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편집자들에겐 이어지는 것들이 갖춰져야 합니다.

 

2. 책의 세계가 주는 호기심, 갈증을 해결해야 한다. 그것도 전문적으로.
  

-> 편집자로서 전문적인 영역이라면 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나 출판계의 동향 (독자들의 특성, 디자인 트렌드 등) 이 되겠는데요. 이를 끝없이 봐야 하는 건 편집자로서 일을 하는 데 자신감을 붙여 줄 거라는 말씀이었어요. (일례로, 일본의 편집자들은 편집장이 되기 전 2-3년의 제작 과정을 필수로 거친다고 합니다.)

더불어 편집자는 자기 분야에 전문적인 필자들을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창작자인 저자들은 원고나 자기 세계에 대한 자부심과 전문성이 있으며 특히 전문성은 우리가 모두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항해 편집자 역시 전문적인 지식과 자부심을 갖추고, 그걸로 승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역시 굉장히 중요하고도 실용적인(^^;) 조언이었습니다. 
 


3. 네트워크, 연구 (주변으로부터 배우고 익히기 -출판에서의 학습은 Field work이다)  


-> 개인적으로 취약 부분이라고 생각한 네트워크 부분이었습니다만, 굉장히 위로가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출판에선 넓은‘ 관계가 아닌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며 격려를 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질의 응답 시간에 다시 한번 강조하셨듯 '편집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편집자적 소통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계속 하다 보면 판단이 서게 된다' 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100번 만나 1명의 저자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나머지 99를 하는 걸 번거로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말씀을 하셔서 무척 찔리며 공감(과 반성)을 했습니다.^^;

'연구의 시공간을 확보하라, 마감만이 아니라 구상과 설계의 시간도 필요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으로부터 배우고 익혀라. 단, 무조건 다녀본다고 특별한 변화로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내 것으로 만드는 ‘재편집’의 과정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이다.'
 
정리하자면, 세상과 저자에게 ‘나’를 깨고 다가가되 늘 ‘나’를 돌아보고 자기화하는 과정이 우선 수반 되어야 책도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에 편집자는 누구, 가 아니라 무엇인가, 라고 고민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이라는 미디어의 특성을 정확히 알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학원 대표는 출판을 ‘영원한 비주류의 미디어’로 정의내리셨다고 합니다. 중요한 건 주류 미디어와의 콤플렉스를 버리고 확장시키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라는 것이라며, 차별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통념적인 성공에 대한 사고와는 다른, 가치 지향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날 강연에서 제가 가장 감동받은 부분이었습니다) 권력과 자본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 물론 한계가 있지만, 여기에서부터 시작해보자며 동업자인 우리에게 제안과 격려를 던지셨죠. 박수 짝짝짝짝!   



질의 응답 시간에도 역시나 중요한 얘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 원고가 아닐 때 어떻게 판단하느냐   -> 내적인 기준으로는 ‘싸늘하게’ 접근해야 한다. (저자의 인간적인 관계와는 별개다)
 

- 편집장의 꿈을 꾸는 편집자가 되라  -> 아마추어는 프로의 상을 유보하지만, 프로는 처음부터 프로다. 자기 스스로 프로라고 생각하면 프로다.
 

-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은 하지 않아야 한다   -> 출판 윤리적인 문제. 이 부분은 책에도 많이 등장하는데요, 사재기 문제, 만연된 온라인 독자 리뷰 문제 등은 윤리적으로도 문제이지만, ‘떠 있는 가상의 독자’를 상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게 지속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참혹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많이 아시다시피 휴머니스트 출판사는 판권 면에 쇄 당 부수까지 공개하는 등 이런 고민과 문제제기를 많이 실천했던 곳이죠. 거듭 그 지점을 고민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 ‘훌륭한’ 출판사가 있느냐, 이제는 훌륭한 출판사와, 훌륭한 편집자 군이 나와야 한다, 며 자신도 고민하며 노력할 테니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며 소통해 보자며 강연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상대적으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밀도 높은 강연이었습니다. 김학원 대표 본인이 오래 농축해 오신 듯한 출판인으로서의 고민, 인간적이고 소탈한 자기 고백들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1년 일했다고, 실무자로서 굉장히 구체적인 공감  지점들도 많았구요.^^;

강연을 듣고 더 커진 고민의 파장 속에 있지만, 훌륭한 편집자가 될 각오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게 되었다는 점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신 알라딘과 휴머니스트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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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글을 쓴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것이다. 

 

일단은 금요일이니까. 

지친 육신도 달래야 하니. 

 

우선 신영배님이 틀어준 envy의 a warm room이 계속 귀에 맴돈다. 

 

다시 듣고 싶은 사람은 이리로. 

 

http://blog.naver.com/sexpi/20064819513  

또는 

 http://www.myspace.com/officialenvy

오늘 상당히 기대를 하고 나갔다. 

 

시낭독하는 것을 신청했기에 . 

 

그리고 좋아하는 여류시인분들앞에서 시를 읊을수 있다는 희열,약간의 흥분. 

 

그러나 나의 그 기대는 처참히 무너져내렸다. 

 

이근화 선배님의 시를 읊기 위해 호밀밭의 파수꾼에 좋아하는 몇편의 시까지 써서 갔는데. 

 

어흑. 

 

좋은 자리였지만. 

살롱드 팩토리 찾는데 좀 애 먹었다. 

 

다음에는 낭독 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음악. 

 

계속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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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남자 2009-09-1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늦게 들어온 어떤 청년이 제 맞은 편에 앉았답니다.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놓은 뒤 리드미컬하게 콜라를 쪽쪽 빨아 마시며, 문예출판사판 호밀밭의 파수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 분이신가요? 아리따운 여학생들 틈에 시커먼 30대 후반 하나 바로 접니다. 어쨌거나 같은 공간, 반갑습니다. ^^;

참고로 제 후기는 http://blog.aladdin.co.kr/corelk/3108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