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뒤늦은 우석훈 강연 후기다. 그날 강연하는 곳에 초행길이라 헤매면서 제법 늦게 도착했다.
20대 학생들이 자리를 많이 채우고 있었고 모두들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20대 끝자락… 간만에 대학생들과 강의를 들으니 설렜다.
화이트보드에는 이미 <쯤, 미완성, 호구, 진법>이라고 필기돼 있었다. 우석훈 선생은 생각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였는데, 말법은 상당히 젊었다.
신간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읽지 못한 터라, 우석훈 선생이 강연 내내 하던 말이 신간의 목차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좀 전에 알았다. 샤넬 이야기를 갑자기 왜 하시나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던 거였다. 샤넬 등 명품 마케팅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20대 얘기를 했다.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여성성을 남성들에게 제공하고 구입하거나 혹은 명문대로 통칭되는 세칭 지적 계층의 상위에 속하는 여성들이 주 타킷이란다, 그들을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엔트리라고 부른다고. 우 선생은 그런 20대(잠재적 엔트리 포함)에게, "샤넬을 사기보다는 샤넬처럼 되라"고… 말했다. 나는 듣기 좀 쑥쓰럽더라(손발이 오글). 자기계발서적에서 자주 보던 문구가 아니었던가…. '…되라'. 그래요, 샤넬 엔트리들, 샤넬이 되세요.
들어보니 샤넬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 20세기 여성해방의 선각자란다. 여자들에게서 레이스를 떼내고 코르셋을 벗기고, 바지를 입혔단다(이 부분에서 샤넬 싫어할 남자들 제법 생기겠군). 그에 비해 크리스찬 디올은 남성적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네. 샤넬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샤넬의 인생에 대해 좀 알아라고…. <코코 샤넬>이란 영화도 추천했다.
대리인 운동과 당사자 운동 얘기도 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라 나의 무식을 눈치챘다. 자연을 대리하는 게 환경운동이고 우리나라에는 참여연대가 그런 일을 한다고. 노동자나 농민 등의 민중을 대리하는 게 학생운동이란다. 여성이나 장애인들은 예전엔 부모와 의사들이 대리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당사자가 직접하는 추세라고 한다. 책에서는 이 주제에 관해 어떻게 논리를 펼치는지 궁금하다.
내가 제대로 못 들은 것일 수도 있는데, 일본에는 모임이 형성되면 '양산박'처럼 된단다. 수호지의 108인 호걸 집단처럼, 모두 기세등등한 일당백의 청년들인 모양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20대의 영웅이 없단다, 우 선생이 보기에. 꼽아보자면 강의석, 장기하, 류현진이 20대의 영웅이란다. 나는 장기하만 알고 다른 둘은 생판 처음 듣는 이름이라 깜놀했다. (내가 모셔야 할 분들인겨?) 장기하가 가수이지 왜 영웅인지 모르겠고 나머지 둘 중에 야구 선수는 잘 모르겠고, 남자 아이는 상태가 좀 애로해 보인다는 게 간략한 인상기다. 내 친구들한테 누가 20대 영웅이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면, 지성이형을 외칠 거 같다. (김연아가 쵝오!)
아무튼 나는 우 선생의 혁명을 주제로 영웅론과 리더십과 '…되라'의 경구를 들으며, 본의아니게 자기계발이란 뭘까란 고민에 빠져만 들어갔으니…….
이야기는 책의 목차별로 흐르는지, 진형 이야기가 나왔다. 진형이라 하면, 고전 컴퓨터 게임 <삼국지 5>가 생각난다. 나는 요즘도 가끔 이 게임을 한다. 거기엔 16가지(?)의 진법이 나오는데 나는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적을 격파하는 책략가다(ㅋㅋ). 이 순신이 쓴 학익진 얘기는 잠시, 허술한 장사진 얘기를 했다. 그와 덧붙여 장사진 안에서 옛적 학생운동 하면서 교문격파하던 후일담도 풀었다…. 삼국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 선생은 현대판 조자룡을 진중권이라고 했다. 옛 속담에 '조자룡 헌 창 쓰듯'이란 말이 있긴 하다만, 조자룡은 후에 청홍검이라는 명검을 득템해서 쓴다. 진중권도 남의 반론이나 어법을 뺏어서 잘 쓴다고. 그에 반해 박노자는 관우의 청룡언월도처럼 늘 쓰는 좌파이론이 있다고 한다.
21세기는 미친 이들의 시대라고 한 거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다. 왤까? 책을 읽으면 그 이유가 있으려나? "옆의 친구에게 밥 먹자"고 말해보라며 강연을 끝맺었다. "관계의 결핍으로 굶어죽는다, 밥보다 소통이 먼저다"는 말이 퍽 인상적이었다.
질문자에게 답변하며, 교육에 대한 견해를 펼친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21세기 교육은 자유방임형, 놀이형 교육이란다. 사교육은 이중손해다, 한국은 망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가난한 소녀를 위한 수학도서관을 만들고 싶댔다. 참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말씀이다. '가난한 소녀'라는 이미지가 등장해서 다시 손발이 오글거리긴 했다.
어째서 20대를 뭉뚱그려서 보는 걸까? 라는 의문이 내내 들었다. 나는 세대론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은 저마다 너무 다르다. 시간적 공간적 환경에 의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딱지 붙이는 건 싫다. 게다가 딱지 붙임 당했지 않은가. 아주 전위적이고 저항적이고 궁핍하지 않으며 뛰어난 20대들도 참 많을 건데, 사회적으로 유명세 안 타면 그렇게 뭉뚱그려 20대 바보, 라고 해야 되는 건가,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대를 전혀 긍정하지 않으며, 그다지 '편'인 거 같지도 않았다. 훈수 식으로 20대여 이렇게 하라, 고는 하는데 받아들이려면 필터가 꽉 찰 거 같았다.
나는 이렇게 30대가 되어 가는 건가?… 정말로 88만원 세대인데다… 언제 어디서든 뜨내기 신세인데 왜 편이라고 하는 사람의 참 좋은 강연마저 순수하게 보이지가 않는 걸까… 물질적인 것과는 다르게 정서적으로는 이미 20대와는 멀어진 것일까… 라고 느끼게 된 조금은 안타깝고,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좋은 강연이다, 라고 감상을 맺는다.
<88만원 세대>는 내게 뜻깊은 책이다. 일일이 사연을 풀어놓진 못하겠다. 그 88만원 세대의 저자를 볼 수 있어 뜻깊은 자리였다. 그런 기회를 마련해준 알라딘에게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