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강연에 대한 후기를 쓰기에 앞서 제가 어떻게 해서 이 강연을 듣게 되었는지 설명하는게 순서일 듯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 선택이라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무한하게 반복되며 그 선택에 의해 우리의 삶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지요. 만일 누군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과거의 선택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만족한다면 선택의 꽤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저역시 이번에 “진중권”님의 저자 강연회에 참가하게 된 것은 저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것도 꽤 많이 고민한 결과입니다. 이유는 강연회 다음날 시험이 있기 때문이었죠. 시험 전날에 시험준비 이외에 다른 것을 한다는게 마음에 걸렸고, 그렇다고 시험공부를 완벽히 준비해 놓은 것도 아니었죠.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선택’했죠. 진중권님의 저자 강연회에 가기로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전 이번에 진중권
씨가 쓴 ‘교수대위의 까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신문에서 소개글을 본게 고작이었죠. 그런 제가 진중권씨의 강연회를, 그것도 시험공부까지 제쳐두고 가게 된 것은 그리 거창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진중권씨란 사람. 그 분자체를 실제로 한번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 진중권씨 책은 보지 못했지만 평소 꽤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주장은 전개해 나가는 모습, 혹은 사회적 이슈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그의 모습에서 감탄과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고 또 한편으로 아직 저 정도의 지성을 쌓지 못한 저에 대해서 부끄러움 비슷함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그를 볼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정도의 지성을 갖출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만큼의 각고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지의 충만함이 온몸 구석구석에서 뿜어나오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tv에서 보는 것 말고 실제로 만나서 그분이 자신의 수많은 지식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험과 강연회의 선택에서 강연회를 선택한 것입니다. 책도 안읽어 본놈이 말이지요. 하지만 진중권님이 말했듯이 정해진 정답이란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꼭 책을 봐야 강연회에 가는 것도 아니지요. 그저 한번 뵙고 싶어서 갈 수도 있는 것이고, 전 그런이유 때문에 강연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을 보는 관점에는 숲과 나무가 있다고 하죠. 전 강연를 기다리며 궁금했습니다. 과연 책의 내용을 살펴보는 ‘나무’를 보는 강연을 하실까, 아니면 좀 더 높은 시간에서 ‘숲’을 바라보는 강연을 하실까 라는 궁금증이었죠. 책의 내용을 살펴보는 강연이라면 책을 읽지 않은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강연이 될 수도 있고, 책의 내용을 넘어서 숲을 바라보는 강의, 즉 책 내용보단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진중권님의 생각이라던지 아니면 그런 생각과 우리사회와 연결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을 무엇인지 같은 것들을 강연하신다면 저로선 좀 더 좋은 강연이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것입니다. 책을 미리 읽고 오지 않은 덕?에 이런 이기적인 생각도 해본 것이지요. 책을 읽으시고 오셨던 다른 분들은 책을 읽으며 자신이 느꼈던 것과 진중권씨가 생각한 것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그런 강연을 원하시는 분들도 많았겠죠. 게다가 어쨌든 저도 강연회에 온 근본적인 목적은 그저 진중권씨를 보고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강연은 ‘나무’라기 보단 ‘숲’이었습니다. 책의 내용보다는 이 책을, 아니 이러한 ‘독창적인 그림읽기’라는 책을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을 ‘풍크툼(Punctum)’이라는 용어로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전공이 미술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제게 풍크툼이란 용어가 너무도 생소한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겠죠. 그러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용어가 생소한 것이 어찌 나만 그렇겠냐’ 라고 생각하며 어리둥절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모두 그런 것 용어쯤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도, 본래 인간이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길 꺼려하기에, 그런 표정들 속에서도 나같이 용어의 생소함을 느낀 사람들 또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그 의미를 추론해가며 들어보면 알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하자 풍크툼이란 용어든, 그리고 스투디움(studium)이란 용어든, 아니면 롤랑바르트라는 프랑스의 사진작가든, 처음에는 무척 생소함에 이해가 힘들었지만 강연을 계속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풍크툼이란 단어, 자신의 가슴에 확 꽂히는 그 무엇이라는 저 용어는 ‘아니 저렇게 멋진 용어를 왜 아직까지 몰랐지’라고 스스로 반문할 정도로 인상깊었습니다. 풍크툼이란 단어 자체가 저에겐 또하나의 풍크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어느 것에 확 꽂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럴때 ‘아 이게 뭐지’ 하며 궁금해 합니다. 무언가 끌리는게 있는데 그게 무언지는 영 감이 안잡힐 때가 많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럴때에 이 풍크툼이라는 단어는 최소한 이건 풍크툼의 순간이야 라고 정의내려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만 해주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참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든 회화든 이제는 그것들이 단순히 도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도상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상징과 지표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것이든 그것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고, 진중권님이 설명하셨듯이 설령 객관적인 사진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는 이미 찍는 사람의 의도가 담기기 마련이지요. 사진이든 회화든 그 속에 담긴 의미, 그 속에 감추어진 의미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게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은 정해진 답이 없지요. 이미 세상에 알려진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천편일률적인 답도 물론 존재하겠죠. 그리고 그것들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생각하는 답일 것입니다. 그 누가 내린 답도 아닌 바로 내가 생각해서 내린 답이지요. 모두가 이미 세상에 보편적으로 알려지고, 누군가 내린 답만을 따른다면 이 세상의 미래는 어떨까요? 그런 세상에 미래가 있을까요? 너무 혼자 앞서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세상은 실제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판단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주변이나 세상에 끌려가고, 그런 것들이 이 세상에 만연해진다면, 그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꼴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 것들이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신의 판단이 꼭 옳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이 세상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그렇긴해도 자신만의 생각과 가차판단을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번 진중권님의 책도 이러한 관점하게 쓰여진 것입니다. 강연중에 원래 다른작품도 실을것이 있었는데 제목을 몰라서 실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이나 진중권님은 잘 알려지지도 않고, 남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들에서 자신만의 느낌을 찾아서 이 책을 지은 것이겠지요. 제목을 찾지도 못할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작품이지만 내가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어떤것을 느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는 훌륭한 작품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이란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그게 답이지요. 그런 답이 가장 의미있는 답인 것입니다.
진중권님의 독창적인 그림읽기라는 이 책, 전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독자가 읽는 순간 이 것또한 독자 각자의 독창적 감상이 아닌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내린 답’을 그대로 답습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이분이 이 작품을 이렇게 보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야 난 그것이라기 보다는 이렇다고 생각해’ 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게 진정 진중권님이 이 책을 내놓으시면서 우리들에게, 또 우리들이 만들어갈 이 사회에 바라시는게 아닐까요. 그 바람이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바로 우리들에게 달린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런 개성있고 독창적인 사람들로 가득차지길 바라면서 강연후기를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에 초대해주신 알라딘 및 오마이뉴스관계자 분들게 감사하다는 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