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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4. 일요일 오후 4시 공연
연극 나생문 리뷰  

인간이라는 찌질한 존재에 대한 차마 거둘 수 없는 신뢰 
 


  한 때는 내게도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 있어 존경이라는 것은, 그 대상이 완벽하다는 착각이 유지됨을 전제로 할 때만 유효한 것이었다.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이의 약점, 혹은 결점 등이 하나 둘 씩 드러날 때면, '그래, 인간은 그냥 인간이지'하는 나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어떤 자조섞인 생각과 함께, 그 존경의 대상에 대한 나마음을 접고는 하였다. 그리고 이 연극 나생문을 보면서 역시 인간은 존경할 수는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나약하다.   

  나생문은 전반적으로 진지하게 흘러간다. 공연의 다소 지루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다행히도 사이사이 등장하는 가발장수로 인해 상쇄된다. 가발장수는 매우 해학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끔은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귀속(?)을 앞 둔 스님에게, '조금만 지나면 다른 사람들과 다 똑같아진다'는 것과 같은 말을. 이는 작품의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연극은 이 가발장수와 나무꾼, 그리고 스님이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전개된다.

  어느 마을의 산 속에서 한 무사가 살해되고 그의 아내가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두고 법정에서 심리가 열린다. 그런데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산적 타조마루와 무사의 아내, 무사의 혼이 빙의된 무당의 증언이 제각각이다. 모든 사건들이 그러하듯 진실은 단 하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리한 정황은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스스로를 지키고 싶을 뿐이며, 끊임없이 자기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나무꾼은 이 사건의 전말을 지켜보았다. 그는 객관적 시각에서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법정에서 심리를 지켜 본 스님은, 증언한 이들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만 같았고, 특히 진정성을 담아 슬피 우는 것만 같던 단아한 인상의 무사의 아내를 믿었다. 그러나 나무꾼이 그가 본 것을 모두 말하자 스님은 곧 낙담하고 만다. 법정에서 증언한 세 사람의 증언 모두가 진실이 아니었고, 그들이 각자에게 유리한 진술만 늘어놓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나무꾼은 일말의 거짓도 없이 완전한 진실을 꺼내놓은 것일까. 불행히도 증인으로 불려갔던 그는 법정에서 거짓을 고했으며, 스님과 가발장수에게 들려준 이야기 또한 빠짐없이 복원된 사실의 원형은 아니었다. 나무꾼 역시 이 살인 사건과 관련해서 숨기고 싶은 자신만의 치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발장수의 추궁에 의해 그의 숨기고 싶었던 행위가 드러난 순간, 스님은 이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 버릴 것만 같다.

  그 때, 갑자기 나생문 뒤에서 쌩뚱맞게도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얼른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아기를 안아온다. 나무꾼은 이미 집에 자식이 여섯이나 있고, 비록 가난하지만 자신이 그 아이를 맡겠다고 이야기한다. 나무꾼, 아니 모든 인간에게 실망한 스님은 처음에는 그가 아기를 팔아버릴지 어쩔지 모르고, 믿을 수 없다며 거절하지만 이내 그에게 아이를 내어준다. 나무꾼을 한 번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연극 나생문은 이렇게 마지막을 맺는다.

  수능 지문처럼 해석하자면 일반적으로 새 생명은 희망과 같은 어떤 긍정적인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등장한 아기는 생명의 재생산, 그리고 스님이 인간을 다시 신뢰해보려는 계기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일지 모를 인류 멸망의 순간까지, 끊임없이 죽고 또 태어날 것이다. 나면서부터 사회에 속하는 모든 인간은 숱한 다른 이들과 부대끼며 살아야한다. 다른 인간을 믿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스님처럼 인간에 실망하더라도, 계속 믿어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사는 인간들 틈에서 우리는 속고, 또 속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어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어떠한 포장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까발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언급했듯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 내게 존경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존경은 신에게나 어울리는 단어이다. 인간은 존경하고 존경받아야 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아야할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과 연민만이 찌질한 인간에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게 해 줄 유일함일 것이다.

  

뱀발) 남자치고 여자의 나신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공연 중의 여주인공 가슴 노출이 좀 불편했다. 영화도 아니고 실제로 사람을 보는 건데 ㄷㄷㄷ. 솔직히 누가봐도 극 중에서 강간당한 거 다 알겠는데, 리얼리티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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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cnd 2009-10-2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게 연극으로도 나왔군요 너무 늦게 알았다는...
그건 그렇고 가슴노출이 나왔다니, 표를 훔치기라도 해야겠군요 :)
 

기자가 되기 전에 신청했었던 강연회였다. 이여영 기자는 잘 모르지만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라는 말은 그 당시 내게 절절하게 필요했던 말이었다. 나는 그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물음표의 해답을 얻기 위해 강연회를 신청했던 것이고 한달 뒤 강연회 당첨 소식을 듣고 누리꿈 스퀘어에 갔던 것이다.

강연회에 참여했던 당시에는 나는 기자가 되어 있었으며 기자가 되면서 사람을 믿지 못하는 습성이 생겼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실은 그건 내 잠재의식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사소하면서도 신경쓰이는 상처와 고민거리가 생겨난 이유가 나는 규칙에 매달리고 창의적으로 일 처리를 못하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잘못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여영 기자의 강연은 내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이여영 기자가 말한 대부분의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이 있다. 20대가 오해하기 쉬운 '스펙(능력 척도)'이라든지 대학생활과 사회생활의 차이점 등에서는 이여영 기자가 말한 것이 대부분은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여영 기자가 말하는 옷차림에 대한 입장은 경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반드시'라는 수식어가 붙는 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격식을 차린 옷을 입고 일을 할 때와 그렇지 않고 일을 할 때가 분명 존재한다. 또 모든 직장이 양복 정장만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캐주얼을 입고 면접을 보는 곳도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하나의 관점으로만 놓고 볼 수는 없는 게 '옷의 격식' 문제이다.

나 같은 경우는 회사에 양복을 두고 인터뷰 하러 갈 땀 갈아입고 나간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청바지남방을 입고 출근한다. 어쩌면 이런 전문직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제약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옷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옷으로 그 모든 걸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이여영 기자가 애초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내 예상과는 좀 다른 강연이었지만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혹은 아직 대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 강연이었다. 나 역시 대학교 때 생각했던 사회생활과 사회 초년생이 되면서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는 것은 고려는 해보겠지만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나는 책 읽는 것 자체가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내 머릿속에서 빙빙 도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의미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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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작해!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2009-10-25 14:08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이여영 지음 / 에디션더블유 기자가 되기 전에 신청했었던 강연회였다. 이여영 기자는 잘 모르지만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라는 말은 그 당시 내게 절절하게 필요했던 말이었다. 나는 그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물음표의 해답을 얻기 위해 강연회를 신청했던 것이고 한달 뒤 강연회 당첨 소식을 듣고 누리꿈 스퀘어에 갔던 것이다. 강연회에 참여했던 당시에는 나는 기자가 되어 있었으며 기자가 되면서 사람을 믿지 못하는...
 
 
 

  최근 이런저런 보수단체들과 숟가락 관련 장난질을 겪으면서 진중권씨도 많이 지친 것 같다. 재작년인가 인천에서 강연을 들었을 때는 뭐랄까, 그 생기가 달랐던 것 같다. 두시간짜리 강의에서 얼마나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냐마는 그 위트있는 화술과 풍부한 예시속에서 정말 오랜만에 무언가 들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두번째로 접하게 된 그는 한바디로 맥이 다 빠진 것 같았다.  

  강연은 물론 재미있었다. 내용도 충실했고 새롭게 알게된 사실도 많아서 분명 알찬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단지, 이제 더이상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 속에서 이 사회를 향한 진절머리남이 엿보였고, 거기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지쳐버린 지식인.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교수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밥을 굶게된다면 이 나라에 미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말하자면, 진중권씨는 미학교수다. 그것도 아주 좋은 교수다. 해박하고 유머 넘치며 잘 생기기까지했다. 더구나 신념을 가진 인간이다. 그런데 그 신념 때문에 고생을 하는 중이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의 강연 내용도 일견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서두에서 기호의 세가지 기능, 즉 도상, 상징, 지표적 가치를 설명하며 운을 땐 그는 이러한 세가지 가치가 사진과 미술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우선순위를 변동해왔다고 이야기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면서 절대적인 '무엇'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절대적일 수 없는 가치. 언제건 대체될 수 있는 가치. 꼭 사진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정의였던 것이 불의가 되고 불한당들이 영웅이 되는 얼핏 토끼굴 속의 세상을 빗댄듯한 절묘한 강연이라니. 다행히 예전의 강연과 커리귤럼이 그닥 바뀌지 않았던 관계로 이러한 생각이 나 혼자만의 착각임은 곧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저 쉽게 넘기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 썩었다. 

  해박하고 유머 넘치고 잘 생긴 것으로 모자라 요새는 비행기 조종사까지 꿈꾸는 그가 아직은 이 나라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그래도 배움에 열정이 있는 학생들과 노력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바보들이 남아 있는 만큼 포기는 조금 이르지 않나 싶다. 더군다나 무식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모자라 생긴 것도 못생긴 것들이 판치는 이 우울한 세상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것들은 비행기 조종도 못한다니까 글쎄! 

  마지막으로 힘든 시기에도 끝까지 밝은 모습으로 강연을 마쳤던 진중권님께 감사를 드리며 서둘러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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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강연에 대한 후기를 쓰기에 앞서 제가 어떻게 해서 이 강연을 듣게 되었는지 설명하는게 순서일 듯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 선택이라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무한하게 반복되며 그 선택에 의해 우리의 삶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지요. 만일 누군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과거의 선택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만족한다면 선택의 꽤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저역시 이번에 “진중권”님의 저자 강연회에 참가하게 된 것은 저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것도 꽤 많이 고민한 결과입니다. 이유는 강연회 다음날 시험이 있기 때문이었죠. 시험 전날에 시험준비 이외에 다른 것을 한다는게 마음에 걸렸고, 그렇다고 시험공부를 완벽히 준비해 놓은 것도 아니었죠.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선택’했죠. 진중권님의 저자 강연회에 가기로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전 이번에 진중권씨가 쓴 ‘교수대위의 까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신문에서 소개글을 본게 고작이었죠. 그런 제가 진중권씨의 강연회를, 그것도 시험공부까지 제쳐두고 가게 된 것은 그리 거창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진중권씨란 사람. 그 분자체를 실제로 한번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 진중권씨 책은 보지 못했지만 평소 꽤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주장은 전개해 나가는 모습, 혹은 사회적 이슈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그의 모습에서 감탄과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고 또 한편으로 아직 저 정도의 지성을 쌓지 못한 저에 대해서 부끄러움 비슷함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그를 볼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정도의 지성을 갖출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만큼의 각고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지의 충만함이 온몸 구석구석에서 뿜어나오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tv에서 보는 것 말고 실제로 만나서 그분이 자신의 수많은 지식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험과 강연회의 선택에서 강연회를 선택한 것입니다. 책도 안읽어 본놈이 말이지요. 하지만 진중권님이 말했듯이 정해진 정답이란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꼭 책을 봐야 강연회에 가는 것도 아니지요. 그저 한번 뵙고 싶어서 갈 수도 있는 것이고, 전 그런이유 때문에 강연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을 보는 관점에는 숲과 나무가 있다고 하죠. 전 강연를 기다리며 궁금했습니다. 과연 책의 내용을 살펴보는 ‘나무’를 보는 강연을 하실까, 아니면 좀 더 높은 시간에서 ‘숲’을 바라보는 강연을 하실까 라는 궁금증이었죠. 책의 내용을 살펴보는 강연이라면 책을 읽지 않은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강연이 될 수도 있고, 책의 내용을 넘어서 숲을 바라보는 강의, 즉 책 내용보단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진중권님의 생각이라던지 아니면 그런 생각과 우리사회와 연결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을 무엇인지 같은 것들을 강연하신다면 저로선 좀 더 좋은 강연이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것입니다. 책을 미리 읽고 오지 않은 덕?에 이런 이기적인 생각도 해본 것이지요. 책을 읽으시고 오셨던 다른 분들은 책을 읽으며 자신이 느꼈던 것과 진중권씨가 생각한 것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그런 강연을 원하시는 분들도 많았겠죠. 게다가 어쨌든 저도 강연회에 온 근본적인 목적은 그저 진중권씨를 보고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강연은 ‘나무’라기 보단 ‘숲’이었습니다. 책의 내용보다는 이 책을, 아니 이러한 ‘독창적인 그림읽기’라는 책을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을 ‘풍크툼(Punctum)’이라는 용어로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전공이 미술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제게 풍크툼이란 용어가 너무도 생소한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겠죠. 그러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용어가 생소한 것이 어찌 나만 그렇겠냐’ 라고 생각하며 어리둥절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모두 그런 것 용어쯤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도, 본래 인간이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길 꺼려하기에, 그런 표정들 속에서도 나같이 용어의 생소함을 느낀 사람들 또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그 의미를 추론해가며 들어보면 알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하자 풍크툼이란 용어든, 그리고 스투디움(studium)이란 용어든, 아니면 롤랑바르트라는 프랑스의 사진작가든, 처음에는 무척 생소함에 이해가 힘들었지만 강연을 계속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풍크툼이란 단어, 자신의 가슴에 확 꽂히는 그 무엇이라는 저 용어는 ‘아니 저렇게 멋진 용어를 왜 아직까지 몰랐지’라고 스스로 반문할 정도로 인상깊었습니다. 풍크툼이란 단어 자체가 저에겐 또하나의 풍크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어느 것에 확 꽂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럴때 ‘아 이게 뭐지’ 하며 궁금해 합니다. 무언가 끌리는게 있는데 그게 무언지는 영 감이 안잡힐 때가 많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럴때에 이 풍크툼이라는 단어는 최소한 이건 풍크툼의 순간이야 라고 정의내려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만 해주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참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든 회화든 이제는 그것들이 단순히 도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도상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상징과 지표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것이든 그것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고, 진중권님이 설명하셨듯이 설령 객관적인 사진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는 이미 찍는 사람의 의도가 담기기 마련이지요. 사진이든 회화든 그 속에 담긴 의미, 그 속에 감추어진 의미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게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은 정해진 답이 없지요. 이미 세상에 알려진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천편일률적인 답도 물론 존재하겠죠. 그리고 그것들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생각하는 답일 것입니다. 그 누가 내린 답도 아닌 바로 내가 생각해서 내린 답이지요. 모두가 이미 세상에 보편적으로 알려지고, 누군가 내린 답만을 따른다면 이 세상의 미래는 어떨까요? 그런 세상에 미래가 있을까요? 너무 혼자 앞서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세상은 실제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판단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주변이나 세상에 끌려가고, 그런 것들이 이 세상에 만연해진다면, 그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꼴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 것들이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신의 판단이 꼭 옳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이 세상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그렇긴해도 자신만의 생각과 가차판단을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번 진중권님의 책도 이러한 관점하게 쓰여진 것입니다. 강연중에 원래 다른작품도 실을것이 있었는데 제목을 몰라서 실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이나 진중권님은 잘 알려지지도 않고, 남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들에서 자신만의 느낌을 찾아서 이 책을 지은 것이겠지요. 제목을 찾지도 못할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작품이지만 내가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어떤것을 느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는 훌륭한 작품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이란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그게 답이지요. 그런 답이 가장 의미있는 답인 것입니다.

진중권님의 독창적인 그림읽기라는 이 책, 전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독자가 읽는 순간 이 것또한 독자 각자의 독창적 감상이 아닌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내린 답’을 그대로 답습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이분이 이 작품을 이렇게 보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야 난 그것이라기 보다는 이렇다고 생각해’ 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게 진정 진중권님이 이 책을 내놓으시면서 우리들에게, 또 우리들이 만들어갈 이 사회에 바라시는게 아닐까요. 그 바람이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바로 우리들에게 달린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런 개성있고 독창적인 사람들로 가득차지길 바라면서 강연후기를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에 초대해주신 알라딘 및 오마이뉴스관계자 분들게 감사하다는 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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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만남 2009-10-22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대위의 까치를 보고 있는데 12편의 그림모두 매우 매력적이고 다양하게 살펴볼 거리들이 많아서, 그러니까, 푼크툼을 불러올 여지가 매우 많은 작품들이어서. ㅎㅎㅎ 진중권님 그림읽기에 내것이 덧붙여질 여지들이 충분하겠더라고요. 그나저나 그 제목모르는 작품들 괜히 궁금해지지 않던가요? 흐흐. 저는 그렇던데.

좋은 후기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자행사 많이 참여해주세요!
 

  알라딘에서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응모는 안했었다. 딱히 만나고 싶었던 작가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한비야는 한번쯤은 보고 싶었지만..보고 싶은 마음보단 귀찮다는 마음이 더 컸었다..), 굳이 작가의 강연을 듣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진중권 교수님의 <교수대 위의 까치>로 강연회를 한다는 말에 신청할까 말까로 계속고민을 하다 결국 종료 하루전에 응모를 하게 되었고, 운좋게도 당첨되어 오늘(날짜상으론 어제지만 아직 잠을 안자서인지.. 그냥 오늘같다..) 처음으로 강연회라는 것에 가보게 되었다..  

진중권 교수님하면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경력을 가지셨는지, 어떤 모습이신지, 어떤 글을 쓰셨는지 등등 진중권 교수님에 대해선 아는 것이 하나 없이 그냥 <교수대 위의 까치>를 통해 새롭게 보는 그림읽기 방법이 좋았을 뿐이었고, 그래서 강연회를 신청했을 뿐이었다.. 이 책속의 이야기들이 중앙대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단 한번의 수업이후 수업이 없어졌으며 그 수업자료를 모아서 만들어 냈다는 책이었기에 이 책의 여러 그림 중 한 점의 그림을 선택해 대학때의 수업처럼 강연을 하실까라는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상암DMC에 가보게 되었다..바보같이 누리꿈스퀘어라는 것과 오마이뉴스라는 것만 기억하고 "비즈니스타워 18층"이라는 것은 적어가질 않아 한참을 헤매다 겨우겨우 찾아가서인지 강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더욱 설레이기 시작했다.. 

7시 40분(30분이 넘어서 시작했는데.. 40분은 안넘은 것같고..대충 어림짐작으로..), 드디어 강연이 시작!! 책의 내용을 그대로 강의하는 것이 아닌 사진이론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푼크툼에 대해, 그리고  회화와 사진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강의하신다며 짧게 브리핑을 해주시고 사진이론의 역사에 대해서부터 강연을 시작하셨다.. 처음엔 그림읽기에 왠 사진? 인가 싶었는데 사진이 도상에서 상징, 그리고 지금은 지표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나 그림이 사진으로 인해 도상에서 상징, 그리고 지표적 성격을 지니다 다시 도상으로 회귀했으며, 사진이론의 역사에서 푼크툼이 나오게 되고, 그 이론을 조금 뜻을 넓혀 회화에 적용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 관계없는 것이 하나 없었고, 서로 다른 이야기같은 것이 한 데로 뭉쳐져 오히려 책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솔직히 처음 듣는 진중권교수님의 강연이었기에, 아무리 쉽다고는 해도 그래도 강연이데 조금은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했었었다.. 안그래도 미술쪽은 젬병이다보니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분명히 지루하게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강연내내 진중권교수님의 입담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 강연을 듣게 되었다.. SBS에서 허경영을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더불어 "허경영신드롬"에 대한 분석에 웃으며 들으면서도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비행을 좋아하신다는 이야기에 놀라기도 하며 이래저래 다양한 이야기에 빠져있다보니 어느새 9시를 훌쩍 넘기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시간과 사인회시간.. 쑥스러운 마음에 질문은 다른 분들께 양보하고, 처음으로 저자의 사인을 책에 받게되었다.. 예약판매때마다 주는 사인본 책은 그냥 별 감흥이 없었는데.. 저자의 강연을 듣고, 내 이름이 적힌 저자의 사인을 받으니 왠지 책이 한 시간전보다 몇백배 소중해질 뿐이었다.. 사인회를 하기전, 속지가 까만색이라 어디에 싸인을 받나 한참을 고민했는데, 센스만점 금색펜으로 까만속지에 멋드러지게 싸인해주신 진중권 교수님^^ 아무래도 이번 강연회를 통해 진중권교수님의 열렬한 팬이 되버릴 것 같다.. 

 

 덧))  이건 확실히 출판사의 음모다.. 이렇게 좋은 강연을 듣는 자리에서 책을 팔다니!! 강연을 듣기전에는 아직 읽을 책이 많으니 다 읽고나서 사야지 싶었는데.. 강연을 듣고 나니 안살수가 없다.. 아직 진중권교수님의 책은 <교수대위의 까치>밖에 읽지 않은 상황이니 그 유명한 <미학 오디세이>도 읽어봐야겠고, 알라딘의 당일배송으로 산다고 해도 읽는 것은 내일 오후라는 생각을 하며 그것도 못참겠다며 결국 그 자리에서 사버리고야 말았다.. 그것도 1권만 사야지라는 굳은 결심을 떨쳐버리고 책은 세트로 사야한다며, 예쁘게 비닐 포장된 3권짜리 세트로... 

거기다.. 서양 미술사1을 바라보는 내 눈길을 바라보며 출판사직원분 왈 " 목요일 Yes24에 들어가보세요.. 하루특가를 꼭 보세요"라는 말을 남기시니.. 확인해본결과 진짜 이번주 목요일에 <서양 미술사 1>을 50% 할인판매한다.. 이거 참.. 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그냥 단순히 귀띔에 불과한 것이고.. 꼭 사야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좋은 정보까지 얻은 마당에 이젠 안사고는 못배기게 되버렸다.. 

 정말이지 알라딘의 "작가와의 만남"이벤트는 정말 좋은 이벤트이면서, 안그래도 매일 내리는 책지름신을 단 몇분사이에 파바박하고 내려보내고야 마는 이벤트였다.. 그래도 좋으니, 다음 번에도 이런 좋은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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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만남 2009-10-22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자&콩자님. 지금 이 옆에 저렇게 매력적인 작가행사들이 줄줄줄줄을 서있는데 어찌 한번도 신청을 안하셨단 말입니까. 네? 서평단만 열심히 하지 마시고, 문화초대석도 사랑해주세요. 네? (질투하는 문화초대석 담당자 ㅋ)

누리꿈 스퀘어 찾아오는 길이 쉽지 않지요? 저도 실은, 워낙 길치이기도 하지만, 누가 물어봐도 절대 설명 못하겠긴 하더라고요. 하하. ㅜㅜ 허경영씨 이야기는 정말 재밌었지요. 공중부양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암튼, 앞으로는 문화초대석 사랑해주셔야 합니다. ^-^ (그나저나 출판사 직원분 미워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