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가장 추웠던 어느 월요일, 박찬일 셰프와 그의 스승인 멀리서 날아온 시칠리의 쥬세뻬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자리를 가졌다. 박찬일 셰프가 1년반에 걸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이번에 새로 나온 책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출간행사로 책에 나온 그 쥬세뻬!가 한국까지 날아와 제자인 로베르또(박찬일)과 요리대결을 하는 컨셉의 모임.이였는데, 먹고 마시는 모임이라 일단 신청은 해두었지만, 어떤 모임일지 가기 전에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100여명 정도 모인 큰 행사라고해서 혹 스탠딩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왠걸, '와인메이커스 디너'를 방불케하는(이 경우에는 요리가 주였지만) 멋진 디너였다.
일곱시 조금 지난 시간, 때아닌 한파를 뚫고 도착하니, 와인잔 다섯개가 조르륵 세팅되어 있고,
이날 서빙될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의 와인 리스트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와인잔을 보는 순간 흐뭇하기 시작해진 하이드 ^^ v
고급스러운 메이드 인 이탈리 나이프와 포크( 늘 이런데 눈이 간다. ^^)
행남과 빌레로이 & 보흐의 식기. (와인잔은 미처 확인 못했다.)
훌륭한 서비스, 매끄러운 진행.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쥬세뻬가 이 쥬세뻬더냐! 박찬일 셰프는 칼럼으로, 이전의 와인책들로, 그리고, 누이누이의 셰프로 현실감이 있지만,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에 나오는 시칠리 깡촌의(?) 쥬세뻬는 뭐랄까, 너무나 먼 존재였단 말이지. 본인도 의식하는듯, 아님, 누가 물어봤는지, 우리 테이블에 들러서 '진짜 쥬세뻬'라며 웃고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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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전 박찬일과 쥬세뻬의 음식설명이 있었다. 쥬세뻬 뒤쪽으로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레스토랑의 센터에 자리잡긴 했는데, 입구에 있었으면, 더 많은 사람이 보고, 그날 행사도 돋보이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일주일 전에 와서 적응하며, 재료를 찾았다던 쥬세뻬와 박찬일이 선보이는 음식들은
현지(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한 시칠리식 요리였다.
패스트푸드에 대항하는 '슬로우푸드'
슬로우푸드란 패스트푸드가 대변하는 대량생산, 기계화를 통한 미각의 획일화에 지양하며,
지역별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식생활 운동이다.
정식명칭이 슬로우푸드 아르치골라로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1986년 맥도날드가 로마에 진출했을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게 슬로우푸드의 매력은 현지의 재료를 사용한 개성있는 음식이라는 거다.
아마, 논현동 레스토랑의 특성이었을꺼라고 생각되지만, 책에서 보고 생각했던것보다
음식에 장식이 많았고, 책을 읽고 생각했던 것처럼 양이 적긴 했다;;
물론 코스라서 다 먹고 나니, 무척 배가 부르긴 했지만서도. 아마, 천천히 요리되고, 서빙되는 특성상,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평소에는 자발적으로 못누리는(?) 천천히 제속도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포만감을 느끼고, 과식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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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흔들려 죄송; 식사중 요리에 대한 이야기와 질문을 받고 가신 박찬일 셰프. 기자의 모습은 모르지만, 요리사의 모습은 무척 잘 어울린다. 글도 잘 쓰고, 요리도 잘 하다니. 둘 다 못하는 나는 그저 부러울뿐;;
이 날의 요리 : 왼쪽부터
멍게와 키조개 카르파치오, 단감과 배, 파인애플 슬라이스, 민트향의 멜론 그라니타와 김을 우려낸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 멍게와 키조개가 맛있었고, 민트향 멜론 그라니타와 잘 어울렸으며 단감, 배의 사각함이 풍미와 입맛을 돋구었다.
제주갈치와 고등어로 만든 작은 토르티노. 레드 파프리카 크림과 샐러리 크로칸테, 발사믹 터치
- 음.. 맛있었다. 아래가 레드 파프리카 크림이었다는걸, 지금 새삼 깨달았다는; 갈치와 고등어로 만든 토르티노는 70도 정도의 불로 아주 오래 끓여서 부드럽고 약간 흐믈한 느낌의 생선살을 뭉쳐 놓은건데, 요런 맛, 최고! 그위의 가니쉬는 튀긴거다. 바삭한 튀김이 아니라 씹는 느낌이 부드러운 튀김. 대파인가 생각했는데, 메뉴보니 '샐러리 크로칸테'라고 하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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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뽑은 오징어먹물 생면, 늙은 호박 크림과 삶은 한치
위에 올린 껍질벗긴 익힌 토마토 포인트!
오징어먹물 생면은 그간 맛봤던 오징어먹물 파스타와는 달랐던듯. 색은 까맸지만, 맛과 씹는 맛은 따뜻한 소면맛^^이었다.
그 위에 한치, 아래의 호박소스와 잘 어울렸다.
검은깨가루와 허브를 입힌 소 등심과 깻잎 카포나타
메인인 스테이크~~ 깨가루와 허브를 입힌 요런 튀김이 시칠리 특유의 요리법이라고 한다.
맛있었다! 깻잎 카포나타에는 버섯과 야채들이 들어 있었다.
에피타이저에서부터 음식이 하나하나 서빙될때마다 와인이 서빙되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의 와인이였고,
향과 바디감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처음 서빙된 샤도네이의 청량함. 메인인 스테이크에 서빙되었던 메인와인 '돈나푸가타 밀레 우나 노떼 Donnafugata, Mille e Una Notte 의 풀바디와 강한향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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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식의 '쥬세페 바로네식' 라코타 디저트, 계피향의 마르멜라타
돈나푸가타 벤리에 디저트 와인
왠만한 단 디저트는 잘 못먹는 나인지라 디저트는 조금 남겼다. 계피향의 마르멜라타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벤리에 디저트 와인. 부담스러울정도로 살구류의 단 맛이 입안에 확 퍼졌던 와인.
그래, 디저트 와인이 소화를 돕기 때문에 다 마시는게 좋은건 알지만, 단건 질색이라ㅡㅜ
매니저님의 '다른 와인은 남겨도 되지만, 이 와인은 꼭 다 드셔야 소화가 잘되어 내일 편안합니다' 라는 말을 들을때까지도
다른 와인은 다 먹었지만, 이 와인은 조금 남긴채였다.
'11만원 상당의 고가라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병도 750ml 아니라, 작았던걸로 기억하는데;) 남은 와인을 다 마셨다나 뭐라나.
디저트와 디저트와인까지 다 마시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은 분명, 온도는 더 떨어졌겠지만, 더 따뜻한 기분이었다.
'책'으로 멋진 디너 마련해준 '알라딘'과 '창비'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