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⑨

   

9.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 (2)

   
 

 사유는 (……) 나 이외의 타자가 되기 위해 행해지는 모든 작업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심문하는 방법이다.  


 - 푸코, 폴 라비노우와의 인터뷰 중에서

 
   

   타임 리프를 하기 전까지, 마코토에게 시간은 단지 ‘지켜야 할 시간’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시간’으로 나뉘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학교를 중심으로 구획되는 기계적 시간표)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그녀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자유 시간). 그녀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란 뭔가 독특한 외부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뿐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시간의 충돌을 경험하면서, 그녀의 시간과는 다른 이질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마코토는 조금씩 깨닫는다. ‘나의 시간’이란 무중력 상태의 물체처럼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심코 저지른 나의 행동이 시간의 흐름은 물론 타인의 인생까지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시간은 너의 시간과 그 · 그녀의 시간, 그들의 시간과 끊임없이 덧붙여지고 이어져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패치워크를 만들어가고 있었음을.

   유희의 시간에서 책임의 시간으로 이동한 마코토. 그녀가 저지른 시간(?)에 책임을 지기 위해 그녀는 좀더 ‘근본적인 시작’으로 돌아가는 타임 리프를 실현한다. 고스케와 카호(고스케를 짝사랑하는 여학생)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그 두 사람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조작하는 마코토. 고스케는 자신에게 부딪혀 넘어진 소녀를 일으켜주며 그녀와 첫번째 스킨십(?)을 경험하고 그녀를 부축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수줍은 눈길이 오고 간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마코토는 신이 나서 중얼거린다. “마음이 다 뿌듯하네. 이 행복감을 뭐라 하면 좋을까.” 그때 마코토의 팔에 새겨진 숫자가 문득 눈에 띈다. 10으로 보이기도 하고 01로 보이기도 하는 이 숫자. 전에는 09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혹시 타임 리프가 가능한 횟수를 뜻하는 걸까. 

   자신과 부딪혀 발목을 삔 소녀를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고스케. 고스케는 마코토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소녀를 바래다주려 한다. 고스케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 나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기억난 마코토. 그녀는 정신없이 달려가 고스케를 말리러 가지만 이미 자전거는 사라진 뒤다. “어떡하지? 시간을 되돌릴까? 하지만 아직 확실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잖아.” 마코토는 다급한 마음으로 달려가 기찻길 근처에서 고스케를 찾아 헤매지만 헛수고다. 미친 듯이 고스케를 찾던 중 치아키의 전화를 받은 마코토. “고스케는 집에 있다던데, 너 오늘 야구 안 할 거야?” 마코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치아키의 전화를 반가워한다. 그래, 고스케는 죽지 않은 거야.


   치아키는 전화기 저편에서 묻는다. “마코토.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너 혹시……타임 리프 하는 거 아냐? 너…… 타임 리프 하지?” 마코토는 ‘타임 리프’라는 은밀한 단어가 그녀와 이모 이외의 다른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치아키가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아, 이 방법밖에 없다. 마코토는 다시 한 번 타임 리프를 한다. 허를 찌르는 치아키의 질문을 듣기 직전의 순간으로. 마코토는 뭔가 중요한 질문을 하기 위해 뜸을 들이는 치아키의 입을 막으려고, 동생 이야기로 얼렁뚱땅 화제를 돌린다. 팔에 적힌 숫자는 ‘0’으로 바뀐다. 마코토는 그제야 깨닫는다. “역시 이 숫자는 남은 타임 리프 횟수였어. 시시콜콜한 일에 마지막 타임 리프를 날렸구나. 뭐, 아무렴 어때. 고스케도 무사하고.”
   그런데 그 순간. 고스케가 마코토의 자전거를 타고 소녀를 등 뒤에 태운 채 지나간다. 마코토가 고장 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 했던, 아니 한 번 죽었던, 바로 그 기찻길 쪽으로. “마코토. 자전거 좀더 쓸게.” 마코토는 미친 듯이 달려가 고스케를 부르다가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고스케와 소녀는 그 기찻길에서 사고를 당한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마코토는 고스케를 향해 절규한다. 멈춰, 멈춰, 멈추라고!

   그 순간. 타임 리프를 암시하는 화면이 지나간다. 멈춰, 멈춰, 멈추라고! 고스케를 향한 그 피투성이 외침을 ‘무정한 시간’이 들은 걸까. 믿을 수 없는 마법처럼, 시간이 정말 멈춰버렸다. 길 위에 북적이던 사람들, 하늘을 나는 헬리콥터, 달리는 자동차, 창공을 가르던 새떼들, 그 모두가 멈추고 오직 마코토만이 움직인다. 정지된 세계의 화면 위로 치아키가 불현듯 나타난다. “마코토, 역시 너였구나.” “치아키……. 네가 어떻게 여길……. 고스케는?” “아직 집에 있겠지.” 치아키는 마코토의 고장 난 자전거를 보여준다. 마코토의 자전거를 가져옴으로써 고스케가 그 자전거를 아예 탈 수 없도록 만든 것이 바로 치아키라니. “지금 이거……. 네가 한 거야? 너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
   치아키는 마코토를 조용히 응시하며 말한다. “내가 미래에서 왔다면 웃을 거야?(……) 내가 사는 시대에는 자유롭게 시간을 오갈 수 있는 장치가 있어. 바로 이거야. 몸에다 충전해서 쓰면 돼. 나도 이걸로 이 시대로 온 거고. 그런데 멍청하게도 어딘가에 흘려버렸어. 초조했었지. 여기저기 헤매다 겨우 찾았어. 과학 실험실에서. 이미 누가 써버렸지만. 하지만 다행이야. 이걸 쓴 게 바보라서. 나쁜 일에 쓰일까 봐 한숨도 못 잤어.” 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된다. 어느 날 갑자기 마모토에게 생긴 타임 리프 능력과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치아키는 정지된 시간 속에 얼어붙은 거대한 도시 속을 천천히 걸어 이모가 일하고 있는 박물관 쪽으로 걸어간다. 마코토는 치아키에게 그 먼 미래에서 왜 지금 여기로 날아왔냐고 질문한다. “꼭 보고 싶은 그림이 있었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어디에 있어도, 어떤 위험한 일이 생겨도, 보고 싶던 그림이었어.” 치아키가 다가간 그림에는 “보존을 위해 전시를 보류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이모가 복원하고 있는 바로 그 그림이다. “내가 사는 시대에서는 이 그림이 사라져버렸거든. 이 시대 이전에는 어디 있었는지 모르고. 확실히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건 이 시대, 이 장소, 지금 이때뿐이었어.” “그냥 보기만 해도 돼?” “보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해. 평생 잊지 않을 생각이었지. 하지만 이젠 다 부질없지만.” 유리 저편에 그림이 걸려 있던 자리를 덧없이 만지작거리던 치아키의 손가락이 유리 위로 힘없이 미끄러진다.
    “뭐? 네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내 시대로 못 돌아간다고. 고스케가 타려던 네 자전거를 빼오느라 나한테 충전돼 있던 타임 리프 횟수를 다 썼거든.” 마코토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따지듯 묻는다. “왜 써버렸어! 꼭 쓸 일이 있었잖아!” 치아키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게 꼭 쓸 일이었어. 지금의 넌 모르겠지만 고스케랑 그 여자애. 한 번 그 건널목에서 죽었다고. 누군가가 자기 탓이라며 울고불고 난리인데…….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어. 돌아갔어야 했는데. 어느새 여름이 되어버렸어. 너희랑 함께 있는 게 너무 즐겁다 보니.”

  치아키: 강물이 흐르는 걸 처음 봤어. 자전거도 처음 타 봤고. 하늘이 이렇게 넓은 줄 처음 알았어. 무엇보다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도 처음 봤어.
   마코토: 저기, 치아키. 혹시 그 그림과 네 시대가 관련이 있는 거야? 가르쳐 줘.
   치아키: 난 이 시대가 좋아. 야구도 있고.
   마코토: 뭐, 야구가 없어? (……) 그 그림말이야. 곧 볼 수 있어. 지금 복원 중이거든. 같이 보러 오자. 고스케랑 셋이서. 이제 여름방학이잖아. 치아키, 치아키?
   치아키: 미안, 무리야. 나, 내일부터 없을 거야
   마코토: 어, 어째서?
   치아키: 과거 사람에게 타임 리프의 존재를 들키면 안 되거든 난 그 규칙을 어겼어. 그러니까 이제 우린 만날 수 없어.

   그토록 찾고 싶었던 ‘나의 시간’을 위해 시간의 주사위놀이를 살짝 했을 뿐인데, 되찾으려는 나의 시간 때문에 타인의 시간을 빼앗아버렸다. 그저 나의 즐거움을 위해 벌였던 시간놀이가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이 되어버리다니. 게다가 이제 치아키를 다시 볼 수 없다니. 치아키가 이별을 선언하는 그 순간.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시간의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공포가,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시간의 세포가 파열되는 끔찍한 고통이, 나를 꿰뚫고 지나간다. 그 순간 치아키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이 마코토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가슴 설레고 행복했던 그 모든 시간들, 그 속엔 늘 치아키가 있었으며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그 시간, 그 고백의 시간을 스스로 삭제해버리려는 마코토의 타임 리프 소동은 뼈아픈 후회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마코토는 잃어버린지도 모른 채 잃어버린 시간의 존재를 이제야 깨닫는다. 치아키와 함께 했던 그 모든 기억은 마코토의 어리석은 현재를 내려치는 죽비가 되어 그녀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기억들. 무의식에서 잠자고 있던 기억의 파편들은 ‘끝나는 순간에야 발견한 첫사랑’이라는 별자리의 이름에 걸맞게 서글픈 성좌를 그리며 그녀의 기억을 완전히 다시 재구성한다. 치아키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소중한 추억들은 비자발적인 기억의 세포를 구성한다.
   시간을 벌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철저히 시간을 잃어버린 마코토.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상실은 바로 그 ‘고백의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타임 리프를 통해 시간을 ‘창조’하던 마코토, 제멋대로 타인의 시간을 ‘지휘’하던 마코토는 정작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은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 절망한다. 이 순간만큼 긴 시간이 있을까.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는데, 그 순간 너를 잃어버려야 하는 이 고통스런 순간만큼 기나긴 시간이 또 있을까.  

   
 

비자발적인 기억이 주는 계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으며 “잠드는 순간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광경 앞에서 이따금 체험하는 것과 비슷한 불안정에서 오는 현기증”같은 타격을 우리에게 주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다.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기억은 우리에게 순수과거,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과거를 건네준다. (……) 비자발적인 기억은 우리에게 영원성을 준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그 영원성을 잠시라도 더 지탱할 힘도, 영원성의 본질을 발견할 방법도 갖지 못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비자발적인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오히려 영원의 순간적인 이미지이다. 


 - 들뢰즈, 서동욱 · 이충민 옮김,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2004, 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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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finder 2009-10-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돌아가야 했는데. 어느새 여름이 되어버렸어. 너희랑 함께 있는 게 너무 즐거워서... 치아키의 이 대사 정말 슬펐지요...

sotkfkd 2009-10-19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의 순간적인 이미지 형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비자발적인 기억.
'사유' 우리들의 교묘한 고육지책? 가까스로라도 살아내려는......

love hurts 2009-10-2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패치워크. 흠... 그렇게 오늘 하루도 한땀한땀 초대형 패치워크가 만들어지고 있네요. 똑딱똑딱...

맨손체조 2009-10-2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살다보면 '고백'할 타이밍을 언제나 놓쳐요. 그럴때 '타임 리프'는 유용할까요??

둥이 2009-10-2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백할 타이밍을 놓쳤던 그 순간도 기억으로 놔두는건 어떨지...

to make friends 2009-10-23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백할 타이밍. 이것이 거의 모든 인간관계를 결정하는 관건이죠, 크... 친구 사이에도, 부모자식사이에도, 조직사회에서조차도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고백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은 어찌나 휘리릭~~ 지나가버리는지. 정말 매일 어김없이, 원치않는 타임리프를하며 살아갑니다.

doingnow 2009-11-0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코토가 흐느껴 울던 모습이 그 목소리가아직도 가슴에서 울려요 너무너무 슬펐어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⑧

   

8.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 (1)

   
 

인류 역사에서 우연히 10세기 또는 20세기를 들어낸다 해도 우리가 인간 본성을 인식하는 감각적 방식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손실이 있다면 그것은 그 세기에 탄생하는 것을 봤던, 그러나 더는 볼 수 없는 예술 작품들의 손실이리라.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만든 작품에 의해서만 변화하고, 그 작품을 통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작은 나무를 낳은 목각상처럼 작품들만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실제로 무엇인가가 일어났음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레비 스트로스, 고봉만 · 유재화 옮김, <보다 듣다 읽다>, 이매진, 2005

 
   

   마코토는 이모가 일하고 있는 박물관에서 불현듯 눈길을 잡아당기는 그림 한 점을 발견한다. “아! 이 그림……. 이모가 계속 복원하고 있던 거잖아.” 시간의 칼날로 여기 저기 긁히고 마모된 옛 그림을 복원하는 이모의 손길. 그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잃어버린 시간을 기약 없이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닮았다. 아직 형태와 명암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희미한 그림은 아스라이 멀어지는 연인의 뒷모습처럼 애잔한 정조를 뿜어낸다. 이모는 소식이 끊인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으로 말한다.
    “한참 보고 있다 보면 왠지 마음이 편해져. 작가도 모르고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은 몰라. 하지만 이 그림을 복원하면서 알아낸 게 하나 있어. 몇 백 년 전 큰 전쟁 속에서 그려진 그림이란 거. 세상이 뒤집힐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천방지축 마코토의 표정도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영문도 모르는 아련한 그리움에 물든 마코토의 골똘한 표정. 마코토는 전쟁의 포화와 시간의 침식을 견디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 그림을 보며 그녀 자신이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아직 찾을 생각도 못하고 있는 시간의 그림자를 만나고 있다. 
 

   이윽고 마코토는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시간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타임 리프를 하기 전에는 잘 들리지 않았던,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잃어버린 시간의 속삭임을. 이모를 만난 다음 날 자원봉사부 학생들이라며 여자 후배들이 마코토를 불러세운다. “마코토 선배! 저희 자원봉사부인데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요즘 고스케 선배랑 늘 같이 계시던데요?” 마코토는 당황한다. 고스케랑 친한 것이 이 친구들과 무슨 관계가 있지? 그러고 보니 후배들의 무리 중에 유난히 한 소녀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선배님들 사귀는 거 맞죠? 사귀시죠? 사귀는 거 맞죠?” 마코토는 어리둥절하고, 한 소녀의 얼굴은 더더욱 붉게 물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언제부터 이 친구들은 나와 고스케를 감시하고(?) 있었던 걸까.


   수줍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소녀가 드디어 고스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마치 고스케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도 되느냐는 허락(?)을 마코토에게 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가 중학생 때였어요. 저희 할머니가 계신 양로원에 쿠라노세 고등학교 자원봉사부가 왔었는데 할머니는 그 중 한 학생이 아주 맘에 드셔서 그 사람 얘기를 많이 해주셨죠. 참 착하고 멋진 남학생이라면서, 몇 번이고 칭찬을 해주셨는데. 계속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머니에게서 듣다 보니……. 본 적도 없는 그 사람이 점점 좋아졌어요.” 마코토는 영문도 모른 채 어느새 이 이름 모를 여학생의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 감탄한다. “와, 정말 예쁜 이야기네.” 여학생은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야 알았어요. 그 사람 이름이 츠다 고스케라는 걸.” “이야,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 
   고스케는 그 여학생의 수줍은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고, 혹시 마코토와 사귀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아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새 보니 고스케와 마코토가 매일 단둘이 있는 장면들이 목격되는데, 정말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는, 수다쟁이 소녀들의 속사포 같은 항의가 빗발친다. “분명히 고스케 선배는 마코토 선배랑 사귀는 거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 하는 걸 봐요. 앞뒤가 안 맞잖아요. 딱 부러지게 설명해 보세요.” 마코토는 마치 이 모든 어색한 상황이 자신의 탓이라도 되는 듯이 무한한 사명감으로 불타는 표정이 된다. “자, 잠깐 있어봐.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았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마코토는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양 비장한 각오로 타임 리프에 임한다. 이번에는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한 소녀와 내 친구 고스케를 위한 것이니까, 좀더 멋진 타임 리프의 대의명분이라도 생긴 듯이. 마코토는 또 자신의 몸을 무작정 내던져 타임 리프를 시도한다. 그런데 우리의 마코토는 역시 그 어처구니없는 부주의함 때문에 시간에 대한 무개념을 스스로 폭로하고 만다. “고스케! 너 양로원에서 얘네 할머니를 많이 도와드렸다며? 짜식, 대단한걸!” 그녀가 기억하는 시간 속에는 존재하지만 타인이 기억하는 시간 속에서는 이미 삭제되어버린 시간 속에서 그녀는 순식간에 길을 잃어버린다. 마코토에게 ‘고백한 시간’을 깡그리 말소 당한(!) 이 소녀는 충격으로 비틀거린다. “선배가 우리 할머니를 어떻게 아세요?” “아, 그게……. 볼링장에서 만났는데…….” “우리 할머니는 거동을 전혀 못하세요!” 
    마코토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또 한 번 타임 리프를 시도하지만 이번에는 고스케에게 엉뚱한 실언을 해서 ‘그들의 시간’에 잘못 개입하는 화를 자초하고 만다. 몇 번이나 타임 리프를 헛되이 써버리고 고스케와 그 소녀 사이를 더욱 어색하게 만들어버린 마코토는 다시 한 번 타임 리프를 이용해 상황을 ‘전면 수정’하고자 마음먹는다. “아, 진짜! 더 근본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야겠어.” 그녀는 더 깊게 몸을 던져, 더 위험한 타임 리프를 시도한다. 아, 그런데 이번엔 너무 많이 앞으로 돌아와버렸다. 다시 그 전날 아침으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마코토는 이제 시간의 무분별한 유희를 넘어 시간의 윤리적 책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인간은 시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마코토가 돌아가려는 그 시간은 정말 ‘일이 잘못되기 시작한’ 바로 그 근원적인 시작일까. 마코토는 아직 시간이라는 ‘상수’와 주체라는 ‘변수’ 사이에 어떤 일관성 있는 ‘계산 가능한 함수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마코토가 돌아가려고 하는 그 시간으로 정확히 타임 리프에 성공하면, 정말 ‘배배꼬인 이 모든 욕망의 사슬’을 가지런히 정돈할 수 있을까. 인간의 무한한 지성을 활용하면 정말 인간은 자신들의 손아귀에 시간을 움켜쥘 수 있는 것일까. 
 

   
 

베르그송은 지성이 (마치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할 때 이미 영화의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미래를 현재 속에 말아 넣음으로써 시간과 자유를 부인했다고 비난했다. (……) 과학자들은 체험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으며, 그렇게 측정된 시간의 간격을 비교하여 변화의 법칙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틀렸다. 자신의 생을 부채처럼 펼쳐서 한눈에 다 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오류인 것처럼.
 실제 우리의 생은 시간에 있어서 매우 상이하게 펼쳐진다. 베르그송은 이를 <창조적 진화> 도입부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내가 만일 설탕물 한 잔을 준비하고 싶다면 어쨌거나 설탕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소한 사실의 중요성은 실로 엄청나다.” 내가 줄곧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은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간격과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간격은 측정이 이루어지기에 앞서 이미 완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내가 살아내야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체험하는 시간은 ‘나의 마음 졸임’과 합치한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체험된 시간의 본질을 이루고 나의 자유를 보장한다. 기다림이 없다면 미래는 기지(旣知)의 것처럼 펼쳐질 수 있고 우리는 결정론에 갇히고 만다. 과학은 법칙을 발견하고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지만, 인간의 경험은 시간 속에서 사건들이 불확정적으로 연쇄되어 가는 것이다.  


 - 스티븐 컨, 박성관 역,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휴머니스트, 2004, 257~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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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hurts 2009-10-1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가 체험하는 시간은 '나의 마음 졸임'과 합치한다, 그러니까 나의 마음 졸임이 나의 시간을 결정하는 거군요!^^

sotkfkd 2009-10-17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어려워집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⑦

   

7.  기억을 지배하는 인간  vs  인간을 지배하는 기억 (2)

   
 

 내 상처는 나 이전에 존재했으며, 나는 그것을 체현하려고 태어났다.
 - 조 부스케(Joe Bousquet)

 
   

   영혼의 타임 리프는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매일매일 ‘기억하고 싶은 것’을 더 명료하게 인지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압하거나 삭제하면서 비공인 타임 리프를 하고 있다. 어떤 시간에 분명히 그곳에 있었는데 완전히 그 시간을 건너뛰어 버린 듯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A와 B가 함께 있었는데, A는 그 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B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 B는 일종의 타임 리프를 한 셈이다. A에게는 분명히 일어났던 사건이 B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이다.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함께 했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옛사랑, 함께 나눈 우정의 순간을 깡그리 잊어버린 친구들, 자신이 분명 저지른 일을 기억하지 못하여 타인을 상처 입히는 그 수많은 순간. 
    

   문제는 타임 리프의 가능성 자체가 아니라 기억의 삭제나 리와인드, 리플레이가 아무리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기억을 ‘편집’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의도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억은 매 순간 우리의 의도를 뛰어넘는 곳에서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발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완전히 잊은 줄만 알고 있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당황하기도 하고, 그토록 기억이 나지 않던 무언가를 엉뚱한 계기로 갑자기 기억해내기도 한다. 우리 의식에 완전히 기입되지 않은 기억들은 무의식에 슬며시 기록되어 언젠가 도래할 ‘비자발적 기억’을 기다린다.
    이 비자발적 기억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지금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 연대기적 시간의 믿음이 깨지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사건의 재해석’이 가능해진다. 한때는 그토록 부끄러웠던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 비자발적 기억이 꿈틀대는 무의식의 카오스에서 진행된다. 즉 영혼의 타임 리프는 우리 명료한 의식의 등 뒤에서, 즉 무의식의 그림자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신발과 할머니에 대한 추억의 경우를 이야기한다. (……) 그러나 이 추억은 우리에게 되찾는 시간의 풍족함을 주는 대신에 고통스러운 소멸을 느끼게 하고,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의 기호를 이룬다. 자기의 신발 쪽으로 몸을 굽혔다가 주인공은 무엇인가 성스러운 것을 느낀다. 그런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며, 비자발적인 기억이 죽은 자기 할머니에 대한 비통한 추억을 불러온다. (……) 할머니를 묻은 후 일 년 이상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할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할머니를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 들뢰즈, 서동욱 · 이충민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2004, 45쪽.

 
   



   프루스트는 ‘감정의 달력’과 ‘시간의 달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응시한다. 상실에 직면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상실을 깨닫는 인간의 ‘비자발적 기억’이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고통. 마코토 또한 치아키를 잃고 나서야 치아키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빠진 스스로를 응시한다. 마코토는 유리와 데이트 중인 치아키로 인해 마음이 복잡해져 멍한 표정으로 기계적인 캐치볼을 하고, 도무지 어떤 일에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 마코토가 그토록 유지하고 싶었던 우정의 삼각형은 흔들리고 있다. 고스케는 치아키 없이 마코토와 둘이서 심드렁하게 캐치볼을 하며 불쑥 마코토의 허를 찌른다. “치아키, 너한테 차여서 유리랑 사귀는 거 아냐?” 고스케는 목격하지도 않은 사건을, 게다가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어버린 ‘사라진 사건’을 귀신같이 포착해낸다. 어쩌면 고스케의 무의식에도 마코토를 향한 치아키의 마음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사건화’되지 않는 우리의 욕망이 너의 무의식, 나의 무의식 안에서 꿈틀거리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이모는 마코토의 외로움을 걱정해주는 고스케의 마음을 알아채고 이젠 고스케와 사귀지 그러냐고 너스레를 떤다. “마코토 넌 고스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려울 때 도와주는 건 늘 고스케였잖아. 사귀지 그래?” 마코토는 어이없다는 듯 이모를 빤히 쳐다본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모는 빙그레 웃으며 마코토의 ‘시간 놀이’를 살짝 풍자한다. “어차피 아니다 싶으면 시간을 돌려버리면 되니까!” 마코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든다. “그런 짓은 절대 안 해. 사람 마음을 갖고 노는 거잖아.”
   이모는 마코토에게 질문한다. “그런 나쁜 일은 못하겠니? 일이 잘 안 풀리면 과거를 되돌려버릴 생각으로 지금까지 신나게 놀았잖아.”  마코토는 허를 찔린 듯 깜짝 놀라 이모를 노려본다. “날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어? 이모는 마녀가 확실해. 우리 이모는 진짜 마녀야.” 이모는 깔깔 웃고 마코토는 상처 입은 듯 씩씩거리며 이모를 흘겨보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 이제 ‘타임 리프로 인해 매일매일 행복한’ 철없는 마코토 또한 ‘기억 속의 마코토’로 사라져가고 있음을. 더 이상 마코토에게 타임 리프는 매력만점의 놀이기구가 아님을.

 

   
 

모든 사건은 나를 기다린다! (……) 도덕이란 결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좋던 싫던 네게 도래하는 것을 네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시인 조 부스케는 가장 위대한 모럴리스트의 한 사람이다. 부스케는 끔찍한 부상을 입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말하고 설명하려 한 것은, “이 사건, 나는 그것을 체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문제는 말하자면, 사건에 걸맞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었다.  


 - 들뢰즈, 조 부스케의 <달몰이>에 대한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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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나 2009-10-1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내게 일어난 사건에 어울리는 사람일까...가끔 어떤 사건은 내게 일어나기엔 너무 커다란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처에 걸맞게 존재하기, 흐흠....그것이 존재의 윤리라는?^^

맨손체조 2009-10-1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프루스트, 마들렌, 기억. 타임 리프를 한다고 그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마들렌을 먹던 느낌을 복원할 수는 없겠죠^^*

sotkfkd 2009-10-16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그것을 체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내 전생이 궁금해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⑥

  

6.  기억을 지배하는 인간  vs  인간을 지배하는 기억 (1)

   
 

 호글런드는 아내를 간병하다가 잠시 침대를 떠나 휴식을 취했다. 침대로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서 오랫동안 어디에 가 있었느냐는 심한 불평을 들었다. 사실 그가 자리를 비운 시간은 아주 짧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경과한 시간은 그보다 아내에게 더 길게, 그것도 실제보다 더욱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그러잖아도 생리학에 관심이 있었던 호글런드는 ‘화학적 시계’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두뇌나 신체 속에서 시간의 경과를 판단하는 데 사용되는 모종의 화학적 과정을 가리킨다. 물리화학의 법칙에 따르면, 모든 화학적 과정은 열을 받을 경우 속도가 증가하게 마련이므로 호글런드는 아내의 시계가 높은 체온에 의해 열을 받아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감으로써 그가 비운  시간을 아내가 실제보다 더 길게 생각했던 것이라고 추론했다.  
   

- 스튜어트 매크리디 엮음, 남경태 역, <시간의 발견>, 휴머니스트, 2002, 259쪽.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앓고 있던 아내를 두고 별생각 없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돌아오니, 아내는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쳐, 남편에게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렇듯 한 침대를 쓰는 부부에게도 시간은 완전히 다른 속도와 다른 뉘앙스로 흘러가고 있다. 아내의 ‘높은 체온’이라는 물리적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몸이 아프고 힘들어 잠시도 남편과 떨어져 있기 싫었던 아내의 절박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빈방에서 홀로 끙끙 앓을 때처럼 더디고 고통스럽게 가는 시간이 있는가.
   우리는 주관적 시간 · 객관적 시간, 심리적 시간 · 물리적 시간이 각각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을 지닌 인간에게 시간은 늘 주관적이고 늘 심리적일 수밖에 없다. 마코토가 온몸을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몸 구석구석에 타박상을 입어가면서 깨달았던 시간도 바로 이런 시간, ‘우리 몸과 마음의 연금술이 빚어낸 시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마코토는 내 맘대로 리와인드하고 리플레이할 수 있는 시간 덕분에 쪽지 시험도 잘 보고, 가정 시간에 자리를 바꿔 ‘망신살’도 면하고(마코토가 피한 재난은 엉뚱한 남학생이 대신 뒤집어쓰게 되었다), 노래방 러닝타임도 늘이고, 동생이 먹어버린 푸딩도 ‘새것’으로 되찾았지만, ‘내가 바꿔버린 기억’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 입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마코토는 ‘사소한’ 일에만 타임 리프를 활용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가정 시간에 자신의 실수를 떠넘긴 바로 그 ‘어벙한’ 남학생이 마코토에 대한 복수심으로 소화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마코토의 실수를 대신 뒤집어쓴 그 남학생은 (미리 일어날 사건을 예견하고) ‘자리를 바꿔달라’라고 요구한 마코토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마코토, 너 왜 그때 나한테 튀김을 하라고 한 거야?” “아니, 그게……. 설마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 마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줄 알았기 때문에’ 그 남학생과 자리를 바꿔치기했던 것이다. 마코토는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잔뜩 주눅이 든다. 게다가 치아키가 자신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리저리 치아키를 피해 다니다가 어느새 치아키와 소원해질 기미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내 맘대로 맘껏 오려붙일 수 있는 기억’에 대한 마코토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타임 리프의 최대 장점은 ‘기억을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었는데, 마코토는 ‘완전한 나만의 기억’도 ‘현재로 고정할 수 있는 기억’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시간을 지배함으로써 기억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코토의 상큼한 계산은 들어맞지 않는다. 늘 마코토의 고민을 조용히 들어주던 이모는 웃으며 말한다. “일단 사귀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사귀기 전으로 돌아가지? 너라면 할 수 있잖아.” 그런 일 절대 없을 거라며 얼굴을 붉히는 마코토. 이모는 아쉽다는 듯 치아키의 편을 들어준다. “그래? 없던 일로 해버렸구나. 치아키 너무 불쌍하다. 힘들게 고백했을 텐데. 하긴 본인은 눈치도 못 채고 있겠네.” 이모가 치아키에 대해 이것저것 묻자 마코토는 ‘치아키와 별로 안 친하다’며 자기도 모르게 시치미를 뚝 뗀다. 치아키로 인해 생긴 미묘한 감정의 혼돈 때문에 치아키랑 그토록 매일 붙어 다니면서도 ‘안 친하다’고 둘러대는 마코토.  

   무슨 일이든 이모에게 다 털어놓고, 굳이 털어놓지 않아도 얼굴에 온통 감정이 낱낱이 ‘필기’되어 있는 투명 소녀 마코토에게, 이제 비밀이 생겼다. 내가 타임 리프를 했다고 해서 나에게 고백한 치아키의 진심까지도 사라져버린 걸까. 치아키의 마음을 받아주지도 못했는데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이 기묘한 상실감은 뭘까. 도대체 타임 리프란 무엇일까.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노력은 헛수고일까. 시간을 되돌려도 내 기억이 축적되는 한 그렇게 남몰래 쌓인 기억은 내 영혼에 날카로운 흔적을 남긴다.
   저장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들은 애초의 내 의도와 달리 내 등 뒤에서 배회하며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나를 만들고 있다. 타임 리프로 인해 나는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하여 내가 감독한 나만의 ‘UCC형 기억’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되돌리고 싶었던 바로 그 과거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가 버린 나의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내 삶을 응시하고 있다.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내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다.  

   
 

나는 (……)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떠올린다’고 할 때,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에게 도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 기억은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에게 찾아온다. 여기서 주체는 바로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이 이와 같이 갑자기 도래하는 것에 대해 ‘나’는 철저하게 무력하며 수동적이게 된다. 바꿔 말하면 ‘기억’이란 때때로 나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의 신체에 습격해 오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건은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현재를 살아간다. 그렇다면 기억의 회귀란 근원적인 폭력성을 숨기고 있는 게 된다.   


 - 오카마리, 김병구 역, <기억 서사>, 소명출판, 2004, 48~49쪽.

 
   

   치아키가 혹시나 고백을 할까 봐, 아니 이미 ‘나의 기억’ 속에서는 고백해버린 치아키를 피하느라, 치아키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대하는 마코토. 마코토는 타임 리프를 하게 되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동떨어져 고립된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시간적 차원을 경험하게 된다. 갑자기 ‘마코토스러운’ 명랑함과 천진함이 사라지자 치아키는 마코토를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들이 잠시 멀어진 틈을 타 마코토의 친구 유리는 치아키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이상하다. 분명히 치아키와는 친구 이상의 사이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는데, 막상 치아키가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자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든다.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을 잃어버리고, 사귀지도 못한 채 이별하는, 시작조차 없이 끝나버리는 이상한 감정.
   정말 치아키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몇 번이나 나에게 사귀자고, 진심이라고 고백하던 그 진지한 표정은 그럼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치아키의 고백을 한사코 듣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해 다녔던 나 자신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마코토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상실감에 비틀거리고,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에 난입하는 기억들의 난투극으로 인해 그토록 단순하던 그녀의 ‘뇌 구조’가 복잡하게 흐트러진다.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려던 노력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에 소중하게 둥지를 틀어버린 바로 그 시간을 잃어버리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와버렸다.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 채 흘려버린, 아니 억지로 삭제해버린 그 시간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나로 인해 시간을 도둑맞은 그 남학생의 상처받은 시간은 또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잃어버린 시간,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 존재했던 것들의 소멸, 존재들의 변화에 대해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기호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와 친숙했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는 뜻밖의 계시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윌에게 익숙하지 않게 되어버린 그 사람들의 얼굴은 시간의 기호들과 시간의 영향을 순수한 상태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사람들의 얼굴 특성을 변질시키고 다른 특성들을 늘리거나 또 무르게 하고 부숴버린다. 시간은 그 자체로는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우리 앞에 나타나기 위해 육체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육체들을 만나기만 하면 어디서든 그들을 붙잡아 그 위에 자신의 환등기를 비춘다. 
  

- 들뢰즈, 서동욱 · 이충민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2004,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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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hurts 2009-10-1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져보지도 못한 걸 잃어버리고, 만나지도 못했는데 헤어지고,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끝나버리는 첫사랑. 가질 수 없어서 되찾을 수도 없는 시간들. 맞아요, 그땐 그랬지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⑤

  

4.  크로노스의 시간과 아이온의 시간 (2)

   
 

 신들은 시간을 구별하는 법을 처음 알아낸 사람을 저주한다.
 또한 이곳에 해시계를 세운 사람도 저주한다.
 나의 하루를 마구 깎고 쪼개어
 작은 조각들로 만들었다고!
 어렸을 때 나의 배는 나의 해시계였다.
 어느 누구의 배보다 확실하고 올바르고 정확한 시계였다.
 이 시계는 내게
 밥 먹을 때를 말해줬다.
 하지만 지금은 태양이 허락하지 않으면
 왜, 언제 밥을 먹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시내에는 이런 저주스런 해시계들이 가득하다. 


 - 기원전 3세기 후반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 스튜어트 매크리디 엮음, 남경태 역, <시간의 발견>, 휴머니스트, 2002, 145~146쪽.

 
   

   시간이 ‘의식’되는 순간, 시간을 ‘훈련’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은 ‘내 몸이 느끼는 시간’의 고유성이 파괴되는 경험을 했다. 인간은 시계를 발명하여 시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꾸로 그 ‘발명된 시간’으로 인해 시간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시간표를 지켜야 하니까’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 끝내야 하는 모든 순간,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경험하는 셈이다.
   아이온의 시간에서 ‘고정된 현재’란 존재할 수 없다.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줄 세우는 일도 불가능하다. 아이온의 시간은 ‘상태(being)’가 아니라 ‘과정(becoming)’, 고정된 상황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건의 생성 속에서 꿈틀대는 존재의 운동을 가정한다. 시간이 ‘고정된 현재’로 얼어붙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과거와 미래로 무한히 열어놓는 시간. 그것이 아이온의 시간이다. 

   근대적 시간관은 개개인의 이질적이고 상이한 시간을 국가의 시간, 학교의 시간, 군대의 시간, 교회의 시간, 회사의 시간, 병원의 시간 등 무수한 ‘집단의 시간’으로 포획하려 한다. 그러나 이 크로노스적 시간에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길들이지 못하는 인간은 매 순간 ‘집단의 시간’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생체 시간을, 심리적 시간을 느낀다. 우리는 권태를 느낄수록,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수록, 참을 수 없이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느낀다. 직선적 시간의 중력으로 인간을 빨아들이려는 모든 권력, 그것이 바로 크로노스의 시간을 구성한다.
   반대로 영원히 이 순간에 빠져들고 싶은 희열의 시간, 예를 들면 연인과 키스할 때, 우리는 이 순간이 곧 영원으로, 무한한 시간으로 확장되는 듯한 열락에 들뜬다. 굳이 무한을 가정할 필요도 없이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만한 시간. 지금이 몇 시인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완전히 잊어버리는 망아(忘我)의 상태. 그럴 때 우리의 삶에는 아이온의 시간이 깃든다.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인생의 모든 필름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듯한 느낌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현재-미래를 가르는 인위적 ․ 관습적 경계가 사라지고,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불가해한 시간이 이제야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성좌’를 그릴 때. 우리는 아이온의 시간에 진입한다. 

  

   
 

무한일 필요가 없는 이 시간, 단지 “무한히 분할될 수만” 있으면 되는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그것은 바로 아이온이다. (……)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동일한 시간성의 세 부분이 아니다. 그들은 각자가 완전하고 독자적인, 또 시간에서 읽어낼 수 있는 두 측면이다. 한편으로 언제나 한계 지어지는, 원인들로서의 물체들의 활동과 이들의 혼합 상태를 측정하는 현재(크로노스)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한계지어지지 않으며, 효과들로서의 비물체적 사건들을 표면에 모으는 과거와 미래(아이온)가 존재하는 것이다. 


- 들뢰즈, 이정우 역,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136쪽. 

 
   

   타임 리프가 마코토의 삶에 던져준 메시지는 ‘네 맘대로 시간을 요리해보라!’는 단순명료한 계시가 아니라, 시간 자체를 한없이 낯설게 만들어 ‘시간 속의 나’를 사유해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마코토가 그토록 엄청난 타임 리프 능력을 저토록 ‘사소한 곳’에 써먹는 이유는 그녀의 천진무구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그만큼 시간에 대한 ‘무개념’ 상태에 처해 있음을 암시한다.
   태어나서부터 정해진 인종, 국가, 성별 따위의 기계적 정체성처럼 ‘시간’ 또한 그녀 자신에게 당연하고도 선험적인 ‘초기 조건’으로 세팅되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코토는 자신의 타임 리프로 인해 온통 ‘똘똘 말리는’ 주변 인물들의 상황을 바라보며 그제야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가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난생처음 시도하게 된다. 시간이 단지 조건이나 전제가 아닌 일종의 난해한 기호처럼 사유의 재료로서 마코토 앞에 내던져진 것이다. 

   
 

심리적으로 중요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중대한 의미를 갖는 시간, 이런 시간들을 현상학적 시간, 또는 아이온(Aion)의 시간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간 안에서 시간 단위들의 선적인 연결은 중요하지 않으며, 사건의 의미들은 항상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느림이나 한가로움, 느긋함 등은 이제 낭비와 게으름, 무능력과 동일한 것으로 비난받고 있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은 이제 ‘속도는 돈이다’라는 말로 변형되어 우리들의 발걸음과 손놀림, 눈의 움직임과 마음의 움직임을 미덕이 된 속도를 향해 몰아붙이고 있다. (……) 뭔가를 기다리며 하늘 가운데 멈추어 서 있는 매를 본 적이 있는가? (……) 날아보려 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것보다 훨씬 힘든 ‘내공’을 요한다는 것을. 떨어지는 것은 속도가 없으며, 단지 중력에 끌려갈 뿐이다. 반면 이렇게 멈추어선 매의 느림은 중력을 이기고, 관성을 이기는 어떤 절대적인 속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 노동이나 이동, 소비, 생활 등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 속도를 갖는 것, 속도의 중력에서 벗어난 외부를 창조하는 것, 강요된 속도나 시간에 벗어난 자율적인 속도와 리듬을 갖는 것, 그리하여 자율주의적인 삶의 리듬, 일의 리듬, 사유의 리듬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낡은 시간적 형식을 변형시키는 일이며, 자율주의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형식의 시간, 새로운 리듬의 시간을 창안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푸른숲, 2002, 76~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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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 2009-10-13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배꼽시계만큼 정확한 시계도 없죠~ㅋㅋ 우리 몸속에 저마다 저장되어 있는 멋진 시계들의 입을 틀어막는 못된 자본의 시계들!

sotkfkd 2009-10-13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형식 속으로 잠식되어지는 우리네의 삶! 참 안쓰럽지요. 다만 자, 이제부터라도 최소한의 잠식에 그칠 수 있기에 최선을 다할 것. 즉 나름대로 살아낼 것. 남을 의식하지 말 것, 남에게 보이는 나를 의식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