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란 무엇인가 - 천재들의 생각을 훔칠 단 하나의 방법 북클럽 은유 1
김용규.김유림 지음 / 천년의상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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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천재 주인공이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저런 기발함과 창의력은 극소수의 천재의 전유물이려니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은유란 무엇인가>는 누구나 은유 훈련을 통해서 설득력과 창의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솔깃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한권의 책으로 누구나 아인슈타인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가 하는 분야에서 남보다 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상대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니 얼핏 저자의 객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러나 저자 김용규 선생은 독일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다수의 저작을 발표한 철학자이며 또 다른 저자 김유림 선생은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말하기 글쓰기 전문가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로 대표되는 은유가 당신의 말과 글의 표현력과 설득력을 높인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두고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을 뿐만 아니라 철학자 칸트도 ‘재기 넘치게 시 짓기를 배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과연 이 두 사람의 말대로 우리는 은유는 학습될 수 없는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은유란 무엇인가>는 과거에는 맞지만, 현재는 틀린다고 주장한다. 은유를 창조하는 과정이 인지과학의 발달 덕택에 서서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유는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당시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사다리 치우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뽑아주는 은유적 사고 방식을 개발하는 실용적인 훈련 방법 즉 ‘은유 패턴’을 활용한다면 누구나 아리스토텔레스까지는 아니어도 자기 분야의 고수는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은유적 사고를 훈련할 수 있는가? 우선 반복이다. 학습이 일어나려면 우리 뇌에서 새로운 뇌 신경 막이 만들어져 강화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반복을 통해 이뤄진다. 마치 피아니스트나 피겨스케이팅 선수 들이 대부분의 연습 시간에 기본 동작과 테크닉을 무수히 반복하는 이유다. 단기간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 적당한 간격으로 반복 학습하는 것이 장기기억에 도움이 된다. 


다음은 이해다. 연주가들이 코치와 함께 다른 연주가의 연주를 듣거나 운동선수들이 코치들과 함께 경기 영상을 보며 분석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자각을 얻기 위해서다. 강의실 내에서는 천재였던 MIT 학생이 강의실 밖에서는 간단한 자연현상마저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습만 했지 이해를 하는 데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실용이다. 학습에서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정도로’라는 전제다. 실용적이지 못한 교육은 분명히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강조한 이해는 ‘실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반복과 이해 그리고 실용이 서로 순환하면서 되풀이될 때 마침내 가장 뛰어난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유란 무엇인가>가 제시하는 은유적 사고 방식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인 훈련법을 익힌다면 분명히 ‘학습에도 왕도는 있다’라는 명제를 믿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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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선, 면 다음은 마음 - 사물에 깃든 당신에 관하여
이현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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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시인의 <점,선,면 다음은 마음>은 사소하면서 고귀한 책이다. 스마트폰, 실내화, 도마, 책장, 모뎀 등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해 빠져서 보이지 않아도 표시가 나지 않는 사소한 물건에 대한 시인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괴테는 모든 사람의 인생은 각별하고 독특하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흔해 빠진 사소한 물건이라도 주인에 따라 각자의 사연과 특이점을 소유하기 마련이다. 


가령 이 책에 수록된 ‘휴지’는 이토록 사소한 물건에 이토록 따뜻한 감정을 내재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잘 더러워진다는 것은

오히려 더 깨끗하다는 뜻이다.


살짝 힘을 주면 툭 끊어져서

함께 울어주는 사람,

위로하는 사람.


혼자 구겨져서 울기도 하지만,


자기를 전부 풀어내고 나서야 

그 단단한 심지를 알게 되는 사람.


아주 오랜만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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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2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사소한 것에서 사소하지 않은 마음을 찾아내는 시인이란 이들은 뭔가 같은 사람이 아닌듯요. ^^

박균호 2023-02-27 09:0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감성이 남다른 분들이죠.
 
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 더숲히스토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 더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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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서가의 고민은 더 이상 장서 수가 아니라 책을 둘 곳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 생활이 길어질수록 넓고 아름다운 서재를 갈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마음껏 책을 사모아도 둘 곳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 있는 독서가는 드물다. 어쩌면 서재 공간의 부족이야말로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 최고의 조언자인 셈이다. 책을 사다 둘 곳이 없으며 새 책이 들어오면 헌책이 나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새 식구를 들일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나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서 ‘강제로’ 깐깐하게 살 책을 고르는 편이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책을 사더라도 부족한 공간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산 만큼’ ‘버려야 할’ 운명은 피하기 어렵다. 내 경우에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꼭 필요한 책은 절판되어서 더 이상 구할 수 없거나 집필하는데 참고해야 할 책이다. 일종의 데이터베이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책만 내 서재에 입주할 수 있고 서재 한켠 작은 공간을 차지할 축복을 누린다. 


더숲 출판사에서 나온 <비잔티움의 역사>와 같은 책은 내 서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서재 영주권을 보장해줘야 하는 책이다.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서 존재하며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을 자랑하며 고대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천 년 동안 버틴 비잔티움 제국의 모든 것을 다룬 이 책을 버린다면 내 서재에 존재할 수 있는 책은 아마도 한 권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동로마 제국이라고 부르는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 왜 이토록 중요할까? 우선 비잔티움 제국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오랫동안 살아남아 로마법과 신학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 전통을 형성하고 전파했다. 또 러시아, 프랑스, 오즈만 군주 등 동서양의 군주들에게 살아있는 로마제국의 모델 역할을 했다. 따라서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지만, 오늘날 유럽의 정치 문화 경제의 근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즉 오늘날 서양문명은 비잔티움 제국의 폐허 위에서 건설된 것이나 다름없다. 


<비잔티움의 역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리스도교 제국의 탄생을 기술한 부분이었다. 역사 교과서에는 단 몇줄로 요약하며 지나가지만, 그리스도교가 비잔티움 제국에 정착하는 과정과 속사정이 흥미로웠다. 한때 갖은 박해를 받던 기독교는 4세기에 이르러 제국의 종교로 정착하였다. 율리아누스를 제외한 모든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일약 특권을 누리며 로마의 문화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자 로마 황제는 앞다투어 기독교를 지지하는 법을 제정하고 로마 고유의 고대 신앙은 탄압하였다. 고대 신앙에 대한 지원은 중단하였고 필요하다면 재산을 박탈하였고 신전에서의 그 어떠한 의식도 금지하였다. 물론 고대 신앙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아 곳곳에서 기독교와의 충돌을 벌였고 서로에게 린치를 가하기도 하였다. 


고대 신앙과 함께 올림픽을 비롯한 고대의 제도도 그 운명을 함께 하였다. 서기 390년에 이르러 올림픽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고대 신앙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만은 아니었다. 기독교 신앙은 고대 신앙의 자양분을 차용하고 그리스도교 사상과 이상을 발전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찬란했던 비잔틴 제국의 문명은 고대 신앙과 기독교 신앙이 이상적으로 융합되어 이룩된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 비잔틴 제국의 몰락과정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왕과 왕비가 돈이 없어서 보석이 아니라 색을 넣은 유리가 박혀 있는 왕관을 써야 할 정도로 나라 곳간은 비었는데 소수의 귀족 기업가 들은 더할 나위 없는 호시절을 보냈다. 빈부 차가 극심하여서 일부 부유층 들은 자신 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을 요새화하고 탑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인구가 줄어만 갔다. 세금을 내고 전쟁터에 나가 싸울 인구가 준 것은 물론 전쟁 탓도 있겠지만 페스트를 비롯한 전염병의 창궐이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비잔티움의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모름지기 나라는 변화 속도에 뒤처지면 망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지만, 더 빨리 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다른 이탈리아 국가 들이 민주적인 투표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모든 것이 황제나 총대주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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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그림 - 고통과 환희를 넘나든 예술가 32인의 이야기
이은화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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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기발한 문장을 발견하거나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게 되면 왜 이제야 이 책을 읽었는지 한탄하게 된다. 한편 이렇게 재미나고 중요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고 지냈던 지난 세월이 안타까워 한숨을 쉬게 된다. 이은화 작가의 <사연 있는 그림>을 읽다 보면 앞에서 말한 한탄과 한숨을 자주 하게 되리라. 그리고 우리가 수도 없이 자주 보았던 그림이라도 그 그림에 숨겨진 사연을 알게 되면 전혀 다른 그림으로 다가온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다빈치의 <모나 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크지도 않은 이 그림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고 그토록 비싼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뭉크가 <절규>가 어떻게 해서 그의 대표작이 되었는지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사람 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림을 감상만 하면 되지 굳이 사연까지 알아야 하냐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미술 작품이야말로 한 시대를 알려주는 거울이다. 물론 우리는 역사책을 통해서 역사적인 사건의 인과관계나 배경을 알 수 있지만 미술 작품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문화와 관련된 동시대 사람 들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알려주기 마련이다. 


1770억원짜리 그림을 화장시킨 사람

1990년 5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 안. 경매사가 낙찰 봉을 내려치는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1770억원에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이 낙찰되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그림값뿐만 아니라 낙찰자 사이토 료에이 일본 제지 회장이 자신이 죽으면 이 그림도 자신과 함께 화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폴 가셰 박사로 고흐를 마지막까지 돌봐졌던 정신과 의사이자 마음을 나눈 친구였다. 





신경쇠약으로 고생하던 고흐는 동생 테오의 권유로 가셰 박사의 치료를 받게 되었고 예민한 고흐는 가셰 박사 또한 자신처럼 우울증으로 시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과 닮은 가계 박사를 평생의 친구로 삼은 고흐는 마침내 그를 모델로 <가셰 박사의 초상>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이 그림의 모델은 누가 봐도 우울한 표정이다. 고흐는 모델의 우울한 표정으로 당대 사람 들의 우울함과 암울함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건 그렇고 반 고흐 마니아였던 이 그림의 낙찰자 사이토 회장의 유언은 실행되었을까? 정답은 사이토 회장의 유가족만이 안다. 소문만 무성할 뿐 진짜 사이토 회장과 함께 화장되었는지 다른 소장가에게 팔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에는 왜 요람이 비어 있을까?

미술사의 바이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는 700쪽에 달하는 대작이지만 여성 미술가는 단 한 명만 등장한다. 초판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고 1994년에 출간된 독일어판에 케테 콜비츠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새로 추가해야할 여성 미술가가 있다. 바로 18세기 말 프랑스의 궁정화가였던 르브룅이다. 물론 이 화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녀가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본다면 ‘아, 이 그림!’ 하게 될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자녀들>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기록이나 책을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꼭 구경하게 될 만큼 유명하다. 이 그림 속에 그려진 장남 루이는 요람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요람은 비어 있고 검은 천이 드리워져 있다. 


원래 이 요람에는 막내딸 소피가 그려지고 있었는데 그만 죽어버렸기 때문에 최종본에서 지워졌고 대신 검은 천이 그려져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다. 이 그림 속에 숨겨진 속사정을 모르고 이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또 그림 한 점으로 18세기 마리 앙투아네트의 복잡한 속사정을 간파하는 것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앙투아네트의 어두운 표정은 2년 뒤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자신의 운명을 암시라도 하는 듯하다.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조차 제대로 읽거나 쓰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된 교육보다는 그저 공주와 황녀로서 곱게 자란 그녀는 사실 사악하기보다는 다소 철이 없고 동정심이 강했던 평범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혁명군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을 때조차 자기 자식 들을 끔찍이 보살피고 아꼈던 평범한 어머니였다. 단두대에 올라가면서 실수로 집행인의 발을 밟은 것을 사과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이 그림의 모델은 2년 뒤에 죽었지만, 화가 르브룅은 50년을 더 살면서 숱한 명작을 남겼다. 


평생 여성만 그린 드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그림을 그렸던 드가는 부친이 사망하자 경제적 궁핍에 빠졌고 그제야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유독 여성 특히 발레리나 그림을 무려 200점 남겼다. 그렇다고 그가 여성 편력이 심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성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싸우는 여성을 그리기 좋아했다고 미술사학자 존 리처드슨은 주장한다. <기다림>이라는 작품 역시 목을 앞으로 숙여 아픈 왼쪽 다리를 마사지하는 발레리나가 등장한다. 그런데 발레리나 옆에 엄마로 보이는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흥미롭다. 자식이 다리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고 손에 든 우산만 바라볼 뿐이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라.’며 자식을 혹독하게 조련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윌리엄 새커리가 쓴 <허영의 시장>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 들이 아이들을 그냥 좀 내버려 둔다면, 부모 들이 아이들의 감정을 지배하려고 들지 않는다면, 공부는 좀 덜할 수는 있지만 최소한 아이 들이 겪는 상처는 별로 없을 것이다. <기다림> 속의 어린 발레리나가 혹시 발레보다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으면서 현실 세계를 잊고 신드바드와 함께 다이아몬드 계곡을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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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1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그림도 이야기의 힘이 보태지면 더 잘 보이고 새롭게 보이죠. 요즘 이런 책이 많이 나오는 것도 좋은 일인거 같아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미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니 말이죠.
박균호님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 복도 듬뿍 받으세요. ^^

박균호 2023-01-20 00:28   좋아요 1 | URL
네 미술은 언제나 매력적인 주제지요. 바람돌이님도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래요 ^^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너무 감동적으로 읽어서 내친김에 카이절링의 <파도>라는 독일 소설에 도전했다가 쓴맛을 맛봤다. 우울하고 섬세한 감정 묘사가 소설 내내 이어지는 데 없던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아서 다 읽은 책을 바로 버릴려다 간신히 참았다. 내 서재에 두면 제목만 봐도 우울한 기운이 맴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 배송하러 온 세권의 책은 재미날 것 같아서 기대된다. 


서머싯 몸의 작품은 거의 다 읽어봤는데 <케이크와 맥주>는 아직이다. 재미 하나는 보장하는 작가니 독일 문학으로 지킨 심신을 좀 달래야겠다. <남아 있는 나날>은 영화로 먼저 보았는데 잔잔하고 여운이 남는 소설이라니 기대가 크다. <실크 스타킹 한 켤레>는 제목이 눈에 띄어서 골랐다. 여성 작가의 작품 모음집은 난생처음 읽어보는데 ‘재미나다’고 해서 주문했다. 이 소설집에 케이트 쇼팽의 작품이 실려있어서 반가웠다. 대학원 시절 The awakening을 강독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좋았다. 


넓고 광활한 캠퍼스를 맘껏 산책하고 놀고 싶어서 간 대학원인데 강의실과 숙소만 왕복했는데도 그때 그 교실, 교수님, 교우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립다. The awakening을 우리 땐 ‘각성’이라고 번역했는데 요샌 ‘깨어남’이라고 번역하는 모양이다. 소위 말하는 페미니즘 소설의 원조 격이라고 할까. 그러고보니 당시만 해도 소위 폐미니즘이란 용어 자체가 낯설던 시절이었다. 그저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애처가’정도를 의미하는 용어가 가끔 사용되었을 뿐. 케이트 쇼팽을 강의한 교수님은 퇴임을 앞둔 노교수님이셨는데 시대를 앞서간 분이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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