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나절에 나, 아내 , 딸아이가 모여서 순대와 김밥을 먹는데 여동생이 새 아파트를 하나 청약해놨다는 소식을 아내가 전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뛰어난 살림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여동생에 대한 흐뭇함보다는, 조만간 나에게 튈 것이 분명한 불똥이 걱정된다. 학생들에게 꿀밤을 먹이면 정작 무서워하고 가슴 졸이는 것은 내가 준비 동작을 취할 때지 타격의 순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분명 나에 대한 원망의 프롤로그임이 분명한 주변 사람의 성공담은 나에게 꿀밤을 맞기 직전의 긴장감으로 다가왔다.


아내와 딸아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다가올 후폭풍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순대가 아닌 김밥을 두 번이나 소금에 찍어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처럼 5년 후나 10년 후를 내다보지 않으며 금융 상품이나 재테크에 무지한 집도 없다고 한다. 김밥을 먹어서 오물거리는 아내의 입은 ‘우리’라고 말했지만, 그 눈동자는 분명 ‘당신 또는 너’를 말하고 있음을 눈치 없는 나도 알아챘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집이고, 이사를 하면 이사 비용과 세금 등의 비용은 어쩔 거냐는 나의 주장은 이미 자주 써먹은 터라 다른 기발한 변명을 생각하려는데 숨 쉴 틈도 없이 아내는 다음 현안으로 화제를 돌린다.


딸아이가 영어 학원에 그만 다니고 싶어 한단다. 이 현안에 대해서는 나도 나름 전문가(영어 교사)이니 자신 있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계속 다녀라.”


마지막 안건은, 정 이사를 가기 싫으면(‘이사 갈 능력이 안 된다면’이라고 말해주지 않아서 고맙다) 리모델링이라도 해야 하는데 직장 동료가 편백나무를 사용해서 벽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단다. 이 대목에서 바람직한 가장이라면 편백나무로 리모델링했을 때 장점과 단점을 열거한 후에 장점이 더 많으니 그게 좋겠다고 말함으로써 남편의 해박한 집안 살림 지식을 자랑하고, 또 아내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상한 남편상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거 편백나무가 뭐 어떤 긴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무식할 수 있느냐는 비난을 듣고 평소처럼 나의 은신처인 서재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내의 무서운 공격에 숨 쉴 틈이 필요했다. 단 30초라도.

영혼까지 털린 몸뚱이를 서재의 소파에 내던진 다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퇴근 직전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것은 새로 나온 이문열의 14만 원짜리 《변경》 전집을 지를까 말까였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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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미와 관련된 책부터 시작해보자

책에 대한 공포증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의 취미와 관련된 책을 읽어야 한다.

운동을 좋아한다면 운동과 관련된 책을, 음악을 좋아한다면 음악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즐겁게 독서생활에 입문한다.


2) 단 십분이라도 하루 중 책 읽는 시간을 정해두자.

묘하게도 영어공부와 독서는 공통점이 있다. 영어를 배울 때도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주로 하는 말은 영어공부는 정해진 시간에 해서는 잘하기가 어려우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짧더라도 자주해야 영어실력이 향상된다고 충고했다. 공부하는 시간이 짧더라도 자주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믿음은 필자도 동의하며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꺼번에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금상첨화지만 독서하는 습관이 부족한 사람은 출근 길이나 등교 길 버스를 기다리면서, 출근 후 업무를 시작하기 전, 학생이라면 등교를 해서 수업이 시작되기 전, 점심 식사 후 또는 휴식 시간 또는 잠들기 전 침대에서 십 분간의 독서 습관은 시간이 짧더라도 매우 유용하다. 십 분의 독서시간이 몇 번만 되어도 사실 꽤 많은 독서를 하는 독서가가 되기에 충분하다.


3) 언제든 책을 들고 다녀야 한다.

독서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하는 방법이 좋다고 했다. 자투리 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자투리 시간이 언제 생길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힘이 아주 세거나, 책을 미친 듯이 사랑하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가급적 무거운 책 보다는 가볍고 작은 책을 선택하자. 너무 무겁거나 커서 이동하는데 방해가 되면 책이라는 물건 자체가 싫어진다.


4) 영화나 뮤지컬을 너무 좋아한다면?

영화와 책은 서로 상극이 아니다. 아니 굉장히 밀접하다. 가만히 보면 인기 있는 영화의 대부분은 본디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제작된 경우가 많다. 영화와 책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이지 별개의 다른 길을 가는 매체가 아니다.


5) 가급적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을 멀리하자.

단언컨대 필자가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났다면 결코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와 독서를 해야 하지만 유혹이 너무 많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채널을 가진 TV에 이르기까지 모두 너무나 강력한 방해꾼들이다. 내가 요즘에 태어났다면 도저히 저 많은 재미있는 유혹거리를 뿌리치고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자신이 도저히 없다. 

그러나 어찌됐든 책을 읽기 위해서는 TV를 비롯한 IT기기를 멀리해야 한다. 자기 나름의 규칙을 정해두면 유용한데, 독서를 할 때는 아예 스마트폰은 별도의 장소에 두고 TV가 없는 장소로 가서 책을 읽으면 좋다.


6) 밑줄을 긋고 책을 험하게 다뤄야 한다.

책을 지고지순하게 순결한 상태로 보관할 이유는 없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책을 흠짐 없이 보관하지 못해서 낭패를 보는 일도 드물다. 책도 끊임없이 개정이라는 이름으로 업데이트를 하니 더더욱 책을 마음껏 함부로 다뤄야 한다.


7) 장바구니에 담긴 책은 한 달이 지난 후에 결제를 하자.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서 책을 산다면 장바구니에 한 달 정도는 묵혀 두어야 한다. 의외로 책도 충동구매를 하기 쉬운 아이템이다. 괜찮은 책을 발견했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한 달 동안 장바구니에 담긴 책을 바라만 봐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내게 꼭 필요한 책인지 정답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8) 독서 기록장을 작성해보자.

독서는 읽는 행위가 아니고 쓰는 행위에서 완성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읽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리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 치고 머리가 좋아서 감동적인 문구나 절묘한 표현 등을 타인에게 술술 암송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9) 독서하기에 좋은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책의 종류만큼이나 책을 읽기에 좋은 장소는 다양하다. 조용한 곳이 독서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적당히 시끄러운' 곳이어야만 집중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내 사촌동생은 적당한 TV 소리와 대화하는 소리를 들면서 잠들기 좋아했다. 잠이 들고 싶을 때 그 사촌 동생은 주위 사람에게 적당히 떠들어 주고 TV를 끄지 말도록 요청하기까지 했다. 책을 읽는 장소로 도서관이나 조용한 서재가 모든 이에게 권장하기는 어렵다. 독자 자신이 편안하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버스를 타면서 책은 읽지 않도록 하자. 버스는 흔들림이 심해서 시력에 악영향을 준다. 당연히 독서가는 러닝머신을 하면서 TV를 보지 않아야 한다. 시력을 망치는 행위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굳이 독서를 해야겠다면 기차는 차선책이 된다. 이 경우 KTX보다는 새마을을 권한다. 새마을이 오히려 실내 좌석이 넓어서 독서하기에 더 편하다.


스타벅스 같은 커피 전문점도 훌륭한 도서관이다. 스타벅스에서 애플 노트북을 켜두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는다면 된장녀 또는 허세남으로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커피 전문점은 책읽기에 매우 좋은 장소다. 집중력을 높이기 쉬운 적당한 소음도 좋지만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이 졸음을 예방해주니 책을 읽기에 쾌적하다.


침대도 독서하기에 쾌적한 장소다. 잠들기 전 침대는 화장실과 더불어 독서하기에 집중이 잘 되는 장소다. 고대 로마의 상류계급 저택에 있던 호화스러운 침대의 가장 중요한 용도 2가지는 '식사'와 '독서'였던 사실을 아는가? 침대위의 독서가 더욱 쾌적한 이유는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들어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고 꿈을 꾼다면 그 꿈이 악몽이기는 어렵다.


10)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최대한 오랫동안 읽어야 한다.

소설은 스토리 전개가 계속 연관되기 때문에 읽기를 멈추고 한 참 뒤에 다시 읽으면 그동안 전개됐던 스토리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표현방식에 있어서 아주 미묘하게 은유적으로 사건진행이 되는 책이나 이름이 복잡하고 애칭이 다양한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각 단원으로 구분되어 있는 인문서적은 소설만큼 긴 호흡으로 오랫동안 한꺼번에 읽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11)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자.

독서가가 도서관을 가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겸손'을 배운다는 데 있다. 독서가는 스스로 많은 책을 읽었다며 자만에 빠지기 쉽다. 종종 허세에 빠지고 또 아집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는 수많은 책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보잘것없는 지식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더욱 독서에 정진하는 계기가 된다.

도서관의 다른 장점은 그 비용이 무료라는 점이다. 관심이 가는 책을 언제든 보고 소장하고 싶은 책은 별도로 구매를 하는 습관은 권장하고 싶다. 물론 최신간을 원하는 만큼 빨리 보기는 어렵지만 신간 비치를 신청하고 기다렸다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 적응이 되면 답답함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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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6-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허은진 입니다~~

박균호 2015-06-18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코 여기서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저 여기 초보에요 잘 부탁합니다

cyrus 2015-06-18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번 내용에 공감합니다. 아이가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무조건 책을 사주는 것보다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도서관의 책을 소중히 다루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을거예요. ^^

박균호 2015-06-1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재미 못지 않고 고르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 포토넷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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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서울의 한 가정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대학에서 사진반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딸아이의 아버지는 귀여운 딸을 낳아준 아내와 딸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가족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기로 결심했다. 딸아이의 이름은 윤미였고 그 딸아이를 너무나 사랑한 아버지는 전몽각 선생이었다.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은 이렇게 윤미의 출생과 함께 잉태되었다.


전몽각 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은 여러모로 각별하다. 사진집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반 독자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는데 전문사진작가가 아닌 평범한 '아빠 사진사'의 작품이라는 것이 더 놀랍다. '장가도 못 갈 것 같았는데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을 가지게 된 것이 너무 신기해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한 게 이 사랑스러운 사진집의 시작이었다.


전몽각 선생은 아빠의 시선으로 사랑하는 딸아이 '윤미'가 태어나서 시집 가는 순간까지 일상을 카메라로 꾸준히 담았다. 이 사진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도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간 '윤미'가 그리워서였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소장용으로 출간이 된 <윤미네 집>은 의외로 독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전몽각 선생 자신이 말한 것처럼 '아마추어리즘의 소산'인지 플래시와 삼각대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 흑백사진들은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이 주는 잔잔한 감동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독자들의 관심은 많은데 애초에 많지 않은 수량으로 출간이 된 이 사진집은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애를 태웠다. 사고 싶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이 사진집이었고 급기야 가족들이 소장하고 있던 분량마저 독자들의 성화에 금방 판매가 되었다.


워낙 많은 이들이 <윤미네 집>을 찾는 탓에 결국 초판이 나온 지 20년째 되는 2010년에 새로운 장정과 편집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주명덕 작가가 편집을 맡았고 초판에 없던 '마이 와이프My Wife'가 더해졌다. '마이 와이프My Wife' 는 2006년 유명을 달리한 전몽각 선생이 췌장암 선고를 받고 가장 먼저 정리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진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구판을 간신히 구해서 소장하던 나는 신판이 나오자마자 2권을 주문해 비닐랩핑도 뜯지 않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전몽각 선생은 원래 토목학자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가했으며 성균관대학 부총장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이제 그는 '윤미네 아빠'로 더 잘 알려졌다. 딸아이와 가족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는 큰 딸 윤미가 태어난 1964년부터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 1989년까지 윤미와 아내의 일상을 렌즈에 담았다. 집에 돌아오면 항상 그에겐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아내와 딸은 그에게 최고의 모델이었다.


카메라가 흔해진 요즘에는 '아빠 사진사'가 아닌 아빠가 드물다. 그러나 자식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할 때까지 '아빠 사진사'노릇을 하는 아빠는 드물다. 전몽각 선생은 심지어 윤미가 결혼을 할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곳까지 따라가서 사진을 담는 열성까지 보인다. 물론 딸의 허락을 사전에 받기는 했지만 참으로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딸의 일상을 담으려는 그의 의지는 심지어 결혼식까지 이어져서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쥐고 로우촬영으로 윤미의 모습을 촬영하려고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의 시도는 딸아이 윤미에 못지않게 사랑하는 아내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고 대신 그의 절친인 강운구 선생이 대신 촬영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윤미가 결혼을 했다고 해서 그가 윤미를 더 이상 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윤미가 미국생활을 하기 위해서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 사진이 윤미의 마지막 사진이 된 것이다. 사진집으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윤미네 집>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진이란 결국 기술이나 장비의 소산이 아닌 따뜻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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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는 주로 서재에서 서식한다. 책도 읽고, 소파에서 낮잠도 자고, 글도 쓰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 야구 중계도 본다. 사실 두 여자(딸아이와 아내)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취향이 달라서 거실에 머무는 시간이 적기도 하다. 


아쉬울 게 없는 서재에서의 칩거지만 단 하나, 굶주림에는 장사가 없다. 식사 시간에는 주로 딸아이가 와서 “지금 식사를 하시겠느냐” 묻거나 “식사를 하시오”라고 통보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이 주식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사란 것이 어느덧 틀에 박힌 일상의 습관이거나 의무감에서 이뤄지는 행위라면, 순수하게 호감으로 선탁해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이 ‘간식’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서재 생활은 간식에 치명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는 나의 아지트인 서재를 할렘처럼 생각해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손을 놓고 있는데, 음식 찌꺼기나 냄새마저 고약하다면 서재 철폐령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서재에 먹거리를 들이지 않는다.

서재 생활에 심취하더라도 늘 바깥세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다. 그래야 후각으로 그들이 어떤 간식을 준비하는지와 요리는 완성되었는지, 청각으로 그 양은 어느 정도 되는지와 간식을 얼마만큼 먹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물론 아내가 야구 중계소리가 신경 쓰이니 문을 꼭 닫으라는 요청을 하면 당연히 꼬~옥 닫아준다.


그들이 언제 간식을 먹는지 어떤 종류의 간식을 먹는지 그 양은 얼마나 되는지 서재에 앉아서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괜히 가장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의 식탐도 충족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 즉 카레라든지 치즈를 잔뜩 얹은 옥수수 비빔밥을 먹겠다고 쪼르르 나갔다가 괜히 체면만 구길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대체로 식사를 끝내고 30분 정도 뒤에 간식을 먹는다. 그때쯤에는 더욱 레이더를 정교하게 가동해야 하며, 그들이 완성된 간식을 텔레비전 앞의 탁자에 딱 올리자마자 염치없이 달려 나가서는 안 된다. 그들의 포만감이 3분의 1정도 충족되어서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눔의 미학을 고려할 수 있을 때여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진즉부터 준비한 자에게만 찾아오는 법.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 가령 어느 날 딸아이가 순댓국밥이 먹고 싶은데 취객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순댓국밥집에 행차하기가 거시기하다고 하면 냄비를 들고 가서 포장해 와야 하고, 그들이 새우 버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냉큼 운전하고 가서 사 와야 한다.


여느 때처럼 느긋하게 메이저 리그를 감상하는데 촉이 왔다. 가장 적절한 시간에, 너희의 간식을 뺏어 먹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는 표정과 몸짓으로 군웅이 할거하는 거친 광야인 거실로 나갔다. 그들이 먹으려고 하는 것은 골드키위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여인들의 간식을 뺏어 먹는 하이에나도 지켜야 할 상도가 있다. 칠거지악에 삼불거라는 예외가 있듯이 나도 삼불식을 지킨다. 우선 딸내미가 직접 장만한 간식이다. 아직 과도를 다루지 못하는 딸내미가 직접 깎은 과일은 그녀가 그걸 극도로 먹고 싶었음을 의미한다. 그 과일을 뺏어 먹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둘째,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뺏어 먹었다가는 그들의 식탐이 충족되지 못해 원망받을 수 있는 경우다. 셋째는 배스킨라빈스31의 체리쥬빌레 속 왕 체리. 그건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불행하게도 오늘은 작은 접시 위에 올라앉은 골드 키위를 보아하니 키위 두 개쯤을 딸내미가 직접 깎아서 마련한 간식이다. 삼불식 중에 무려 두 가지나 해당된다. 아내도 딸아이를 위해서 먹지 않고 있었다. 지킬 것은 지키는 매너남답게 조용히 물러나려 했는데 거실까지 나온 것이 괜히 머쓱해 딱 한 조각만 먹겠다고 했다. 예상대로 딸아이와 아내는 완강히 거부한다.


 나는 그들의 거부 탓에 내가 과일 한 조각도 못 얻어먹고 돌아선다면 그들도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고, 가장으로서 가족 구성원에게 괜한 죄책감을 주기 싫으므로 한 조각만 먹겠으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의 합리적인 요구에 딸아이와 아내는 경계를 풀었다. 딸아이는 저게 접시에서 가장 작은 조각이라는 제 어미의 조언에 따라 그놈을 포크로 찍어 내 입에 넣어줬다. 물론 포크에 침을 묻혀서는 절대 안 된다는 지엄한 요구를 했다.


사실 그 골드키위는 우리 모친께 드리려고 사둔 것인데 어찌하다 보니 가져가지 않아서 우리 집 냉장고에 있었다. 딸아이도 제 할머니처럼 골드키위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 그뿐이 아니라 유년 때부터 제 할머니처럼 노란 시루떡을 좋아해서 재래시장에 가면 조공용으로 자주 사들고 집에 오곤 했다.


제 할머니와 식성을 닮은 딸아이에게서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가 느껴진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다.



===== 이 글은 제가 쓴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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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그들(아내&딸)에게 굴욕적으로 패배하고 지배를 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도 승리의 순간이 엄연히 존재한다.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 대첩이 바로 그 경우다. 지난 일요일 나는 어머니에게 드릴 떡을 사기 위해서 재래시장에 들렀는데 그들에게 조공을 할 먹거리를 찾다가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발견했다. 
중국산은 노랗게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 국산 옥수수는 꺼무칙칙하게 보기엔 그래도 역시 농산품은 신토불이 아니던가? 더구나 조공용이니 그 음식의 원산지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어머니를 뵙고 집으로 돌아갔다. 의기양양하게 까만 비닐봉지에 든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마누라 상전에 바쳤으나 그딴 걸 뭐하러 사오냐는 예상치 못한 혹평을 받았다.
순간 화가 치밀어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거실에 패대기치려고 했으나 상전 앞에서 감히 그런 불손한 행동은 못 하고 내 서재로 들어와 소파에 살포시 패대기를 쳤다. 저들에게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절대로 주지 않고 나 혼자 다 먹기로 결심을 했다.
무려 5,000원 어치고 나와 안면이 있는 주인아주머니께서 가래떡 뻥튀기와 쌀 뻥튀기까지 덤으로 주셔서 혼자서 다 먹기엔 너무 벅차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매일 매일 먹기로 하고 봉지를 열었는데 뻥튀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 꾸역꾸역 먹는데 목이 따가울 지경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료수라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자몽’ 주스뿐이다. 내가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주스인데 너무 급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 쓰디쓴 자몽 주스를 벌컥 벌컥 마시고 다시 서재로 복귀했다. 저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음 날부터 야구 중계를 보면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먹었다. 서재의 형광등도 꺼두어서 마치 영화관에 온 것 같은 운치가 느껴진다. 역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사길 잘했다. 그러나 또 목이 따가워져 온다. 나가서 또 자몽 주스를 먹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맛없는 걸 사왔냐고 조금 짜증을 낸 것 같은 기억이 나는데 이제 자몽주스가 입맛에 맞기 시작했다.
저들도 분명 뻥튀기를 싫어하지는 않는데 자신들이 한 소리가 있어서 참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새삼 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경우 냉우동 한 그릇에 자존심과 나의 이데올로기쯤은 쉽게 버리는 위인이 아닌가? 저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명분을 위해서라면 먹거리쯤은 안중에도 없구나!
6일째 되는 날 여느 때처럼 야구를 보면서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먹는데 아내가 덜컥 문을 열었다. 뻥튀기를 마치 떡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우적우적 먹느냐고 타박을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여자도 강렬한 뻥튀기 향을 맡았을 때이고 적어도 인간인 이상 ‘입질’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저녁을 먹은 후 두 시간이 지났다. 간식거리에 대한 욕구가 극대화되는 시점이다. 서재를 나가는 아내의 뒤통수에 대고 ‘지금이라도 먹고 싶으면 말해라’라고 말하는 호기를 부렸음은 물론이다.
과연 정확히 18분 후 아내가 “뻥튀기 이리 좀 가져와봐”라며 백기를 들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실로 얼마만의 승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승자라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먹고 싶으면 여기 와서 가져가”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패자에게 해서는 안 된다. 
거실에 있는 아내에게 조용히 ‘국산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가져다주었고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소비한 뻥튀기의 양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의 승리를 재확인했다.
이번 승리에 오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다음날 학원을 다녀온 딸내미가 뻥튀기를 찾았는데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조롱’을 조금 하다가 ‘빡친’ 딸내미를 달래주기위해서 ‘국산옥수수로 만든 강냉이 뻥튀기’를 제발 먹어달라고 애원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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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6-1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재미나게 쓰시네요 스타일도 비슷하시고....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박균호 2015-06-1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