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중학교 15살 난 여자 아이다. 아빠는 영어교사로 엄마는 국어 교사로 일하신다. 두 분은 모두 어문 계열을 전공한 공통점이 있지만 마치 국어와 수학이라는 반대되는 과목을 공부한 사람들처럼 서로의 특기가 확연히 다른 분야에서 각기 발휘된다. 아빠가 책을 좋아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국어를 전공한 엄마의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을 사서 읽었다는 점과, 엄마는 학창시절 영어공부를 좋아했고 잘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공집합만 제외하면 부모님은 묘하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겹치지 않는 특기와 세상을 가진다. 


두 분의 다른 세상은 여행을 가보면 확연히 드러나는데 2년 전 싱가포르 여행이 딱 그랬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해외를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여행 일정을 두 분의 역량을 모두 발휘해야하고 두 분의 진면목이 드러난 기회였던 셈이다. 

우선 비행기 티케팅과 호텔 예약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는 비행기 표를 예약한 것도 모자라서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외국의 호텔을 예약한 엄마의 업적에 가슴 깊숙이 경의를 표했다. 아마도 당신이 하면 싱가포르에 도착은 했는데 호텔 예약은 다음 날에 예약이 되어 있는 황당한 실수를 할 것 만 같았으리라.


아빠는 인천 공항에서 필사적으로 나와 엄마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고 혹시나 우리가 당신을 떼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심지어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않았고, 다른 장소였다면 혼자서 마구 이리저리 다닐 텐데 낯선 공항에서는 우리가 볼일을 마칠 때까지 가방을 들고 얌전히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심지어 중학생인 나를 본인보다 더 공항의 지리와 시스템에 정통하다고 여기는 게 확실하다. 엄마가 잠시 어딜 다녀왔는데 내 옆에 딱 붙어서 절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여자라서 육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를 보호한다는 아빠는 사실 나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쉽게 알았다. 


아빠는 엄마와 내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고 주장하면 신발도 벗을 태세였다. 마침내 비행기를 탈 때 그는 입구에 비치된 신문을 여러 부 가져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 확신을 못 한 나머지, 스튜어디스 언니의 눈치를 보는 것도 나는 쉽게 알아챘다. 그에게 난관은 또 남아 있었다. 끔찍한 고소공포증 환자인 아빠는 이륙을 할 때 눈을 꼼 감고 좌석의 팔걸이를 마치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보루나 되는 것처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지막한 산을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아빠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받친 채 고개를 숙이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고 지면에서 발이 떨어진 상태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다. 비행기가 갑자기 난기류에 진입을 해서 흔들릴 때 그의 공포는 극에 달해 엄마의 손을 부둥켜 쥐고 마치 지구의 종말을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고난이 시간이 끝나고 스튜어디스 언니가 입국서류를 나눠주었을 때 마침내 아빠의 세상이 도래했다. 아빠는 입국서류를 영어로 메꾸면서 온갖 유세를 부려서 엄마와 나는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었지만 그나마 아빠가 죽을상을 짓다가 모처럼 살 만해 보이는 게 반가워서 참아주기로 했다. 아빠는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엄마와 나는 아빠 없이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었고 우리도 그런 간단한 그 입국 서류 작성은 이미 작성해봤지만 아빠의 체면과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모른척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는 그간의 서러움을 한 번에 만회하려는 듯 기고만장해져서 ‘내가 아니었으면 어디 감히 너희들이’ 해외여행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느냐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공항에서 길을 잃을까봐 13살 난 딸내미의 손을 놔주지 않던 기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꼼꼼하지 않고 나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가령 내가 짜게 먹지 말라고 주의를 몇 번 주었는데 지키지 않아서 마침내 내가 일일이 양념의 양을 그때그때 숟가락으로 얹어줘야 한다. 미리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조사를 하지 않았고 싱가포르에 도착을 했는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고 달랑 우리 식구끼리 움직여야 한다는 무서운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을 하고서야 이곳저곳 들릴 곳을 검색한다. 


검색과 임기응변은 단연코 아빠의 세상이다. 단 몇 분 만에 그는 그날의 여행지와 일정을 엄숙하게 발표를 했다. 아빠는 택시를, 엄마는 나의 현장체험을 위해서 지하철을 주장했는데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나는 당연히 엄마의 편을 들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렇다. 지하철의 이용은 엄마의 세상이다. 아빠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지하철 티켓을 사지 못해서 30분간 고군분투를 한 분이다. 보증금 500원을 고려하지 않아서 생긴 불상사인데 아빠는 지하철을 타고 오라는 죄 없는 친구 분을 향해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엄마는 능숙하게 싱가포르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아빠가 정한 일정은 나쁘지 않았다. 쇼핑과 볼거리를 적당히 배합했는데 그 와중에도 아빠의 보이지 않는 실수가 있었다. 예전에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는 싱가포르의 관광명소의 목록을 보다가 ‘리틀 인디아’를 발견했고 별생각 없이 ‘한 꼬마 두꼬마 세 꼬마 인디언’의 인디언을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어리고 귀여운 어린 인디언들이 재롱을 자랑하는 목가적인 풍경을 상상하고 우리를 그곳으로 이끈 그는 인디언이 아닌 인디아를 발견하곤 덥디 더운 날씨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차마, 내가 생각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며 우리를 다시 데리고 나가기엔 너무 어이없는 실수라 그는 평생 카레를 한 번도 먹지 않았으면서 억지로 꾹 참고 인도의 거리를 거닐어야 했다. 마치 정말 인도의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온 것처럼 태연히 걸었지만 나는 아빠가 몸을 파르르 떨고, 구경거리에 대한 기대감이 넘치던 얼굴이 순식간에 초점이 풀린 눈과 축 늘어진 팔자주름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을 보고 이미 아빠의 실수를 눈치 챘다. 


먹거리의 천국이라는 싱가포르에서 서양문학을 전공했다는 아빠가 먹은 것은 주로 ‘된장찌개’ ‘김치찌개’였다. 그나마 용기를 내서 먹어본 색다른 음식이라곤 ‘칠리 크랩’이 유일했다. 반면 그의 세상의 물건에는 심취를 해서, 라이카 카메라 매장 앞에서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우리들을 그의 시선의 범위에서 풀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호텔의 57층에 위치한 야외 옥상 수영장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풍경을 감상한다든지, 수영을 즐긴다든지, 선탠(이건 내가 봐도 불필요하다. 그는 모태 선탠이라는 축복을 받고 태어났다)을 즐기지 않았다. 아빠가 세계적인 그 수영장에서 몰두한 것은 남미계열의 연인이 잠깐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신기해하는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을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괜한 호기심의 눈초리를 보냈다가 졸지에 붙잡혀서 20분간 카메라 방수 팩의 놀라운 성능에 대한 강의의 수강생이 된 그 불쌍한 커플을 본국에 돌아가자마자 주문을 하겠다는 맹세를 받고서야 풀어주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우리 가족은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지하철역도 보이지 않고 택시역도 보이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특이하게 택시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탈 수 있는데 우리가 정류장을 알 리가 없다. 그때 아빠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우리를 인적이 많지 않은 도로로 데리고 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서 손을 든다. 마치 한국에서 택시를 잡는 그 방식 그대로 말이다. 벌금의 나라에서 하는 아빠의 행동에 우리는 기함을 했지만 아빠를 나무랄 기운조차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택시가 우리 앞에 섰다. 우리는 택시 기사가 법규를 위반한 우리를 고발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그 택시 기사는 한국의 택시 기사처럼 급하게 우리에게 택시에 타라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아빠의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임기응변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자국의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 손님을 태운 것에 성공한 기사의 성취감과 위기의 가족을 자신의 기지로 구해냈다는 아빠의 자부심은 서로의 만남이 무슨 전생의 인연이라도 이어진 것처럼 감격해하고 서로를 용기와 배려 심을 치하하기 바쁜 눈치다.


가장의 임기응변을 고마워해야 할지, 타박을 해야 할지를 고심할 기운조차 없어서 멍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우리를 두고 그들은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열심히 뭔가에 대해서 대화를 즐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속 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나누었냐고 아빠에게 물었더니 ‘싱가포르의 비밀경찰 제도와 위협받는 민주주의’, ‘교육을 통한 싱가포르 국민의 시민 의식 함양’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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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 <유혹하는 글쓰기>을 보면 우리나라 출판가들의 제목 뽑기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의 원제목은 소박하게도 ‘On Writing’ ‘글쓰기에 관하여. 도저히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얄궂은 제목으로 독자를 유혹하려는 욕심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이야말로 자서전적인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두 권의 책이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그 중 첫 번 째 책은 스티븐 킹의 살아온 이야기이고 두 번 째 책은 물론 그의 유머감각이 가미된 글쓰기 방법이 되겠다. 일부 독자는 그의 자서전적인 내용이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서전적인 내용을 읽어본 독자는 알겠지만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주로 고단했던 그리고 아픈 사생활이다. 그런 내용을 독자들에게 공개한 이유는 어찌됐든 그런 고단했던 삶의 경험들이 자신의 글쓰기에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서전적인 요소는 그의 글쓰기의 밑바탕인 동시에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경험이기 때문에 글쓰기와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못한다.

 

스티븐 킹이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의 방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째, 많이 읽어야 한다. 글쓰기는 독서의 최종 종착역이며 글쓰기의 출발역은 독서다. 독서를 하지 않고 글을 쓸려고 하는 사람은 쌀 없이 밥을 짓겠다는 겪이다. 아무리 현대가 정보를 자신의 머릿속에 두지 않고 정보의 출처를 찾아서 사용하는 시대라지만 기본적인 지식이 없이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는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글을 쓰기 위한 영감은 머릿속에서 생기지 않고 경험 속에서 생기고 그 경험의 대부분은 간접 경험 다시 말해서 독서를 통해서 얻는다. 독서를 강조하지 않는 글쓰기 교재는 세상에 없다. 둘째 수동태를 가급적 사용하지 마라. 정작 우리말보다는 영어가 수동태를 더 빈번히 사용하는 언어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동태는 상당부분 영어의 번역어법에서 비롯된다. 영어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가르쳐온 필자 같은 경우는 더욱 더 피해가 심해서 급기야 능동태를 쓰면 뭔가 대담한글을 쓴 착각이 들 정도다. 수동태가 좀 더 안전한 느낌은 들지만 자신의 메시지에 자신이 없어 보이고 글의 힘이 확실히 떨어진다. 필자가 영어를 전공하면서 가장 폐해가 심한 부분이 바로 수동태의 남발이다. 이제는 완전히 몸에 체득이 되어서 고치기 힘들다. 그러니 이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수동태를 장마철의 빗방울처럼 피해 다녀야 한다.

셋째 부사를 가능한 사용하지 말라. 글을 장황하게 길게 쓰면 어쩐지 유식해보이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준다는 미신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능한 문장을 길게 늘여서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다. 그러나 명문장은 짧은 문장이지 긴 문장이 아니다. 같은 뜻을 전달하면서 길게 늘여 쓸 이유가 없고 그렇게 못한다면 자신의 문장력에 대한 무능을 광고하는 겪이다. 넷째는 역시 많이 써봐야 한다. 습작을 거치지 않은 위대한 작가는 없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습작과 연습은 낭비되는 노력이 아니다. 그 습작이 명작은 되지 못하기도 하지만 명작의 좋은 밑거름은 된다. 거름 없이 자라는 좋은 농작물이 없듯이 습작이라는 양분이 없이는 결코 명작은 탄생하지 않는다. 이 책이 자서전적인 요소가 많지만 어쨌든 스티븐 킹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알려줄 방법은 다 알려준 셈이다.

 

본인의 저서 <아주 특별한 독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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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독자들은 베스트셀러를 궁금하지만 사고 싶지는 않은 책으로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불과 몇 십 년 전의 상황과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요즘과 비교해서 현격하게 정보 공유가 부족하고 뭔가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이었던 불과수 십 년 전만 해도 신문을 비롯한 언론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는 다수의 독자들에 있어서 비판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기 힘든 독서의 가이드라인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당시의 일반 독자에게 있어서 베스트셀러란 좋은 책’ ‘시간이 없어도 꼭 읽어야 할 책쯤으로 인식했다.

 

요즘 일반 독자들이 적어도 베스트셀러에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고 매우 진보된 지식 소비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일부 출판사의 잘못된 관행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집중 조명되면서 오히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좋은 책을 펴내기 위한 대다수의 출판인들 까지 함께 묻어가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아울러 베스트셀러는 무조건 영악한 상술의 소산이자 대대적인 광고 덕택이라고 생각하는 과잉반응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그토록 경외하며 진정한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많은 고전이 당대에는 베스트셀러였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두 말하면 잔소리이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은 출판 산업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책이 시장에서 성공적인 팔리는지 알게 되고, 독자입장에서도 어떤 책이 돈을 쓸 만 한 지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은 어떤 책을 선택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나쁜 베스트셀러는 잘 걸러내고 보석과도 같은 좋은 베스트셀러를 골라내는 안목을 기르는 능력이야말로 요즘 독서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라고 확신한다.

 

결국 베스트셀러라고 함부로 무시할 필요는 없다.

좋은 베스트셀러는 진정한 독서가가 되기 위한 어쩔 수 없이 거쳐야할 통과의례인데 어찌 보면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필연적인 견습과정이기는 하다. 진정한 독서가가 되는 과정은 테니스의 고수가 되는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면을 발견한다. 일종의 배은망덕한 경우인데 테니스에 처음 입문하는 남자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좋은 시합 파트너는 남자 고수가 아니고 숙련된 아주머니들이다. 남자 초보 테니스 입문자가 노련한 아주머니 테니스 고수와 게임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숙련된 아주머니와 게임파트너를 하면 테니스 초보자에게 가장 중요한 안정된 랠리를 오래 한다.

 

아주머니들은 파워 보다는 안정되고 적당한 속도의 볼을 구사하므로 시합에서의 랠리를 연습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한마디로 남자 고수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게임을 하는 재미를 만끽한다. 남자고수와 게임을 하면 그야말로 꿔다 논 보리자루 신세가 되기 십상이며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고수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테니스에 대한 흥미를 일찌감치 접을 수 있는 상황이 온다.

테니스 초보자에게 너무 과하지 않은 적당한 훈련파트너가 필요하듯이 초보 독서가에게도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대중성을 가지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과 쉽게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베스트셀러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가만히 보면 장비가 필요한 거의 모든 취미생활에는 소위 말해서 입문용또는 초보용장비가 따로 잘 구분한다. 예술분야도 그렇고 스포츠 분야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초보라도 그 분야에 쉽게 적응하고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는 목록이 어느 분야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반드시 출판사의 인위적인 손길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단순히 유명작가의 이름 값 덕택에 그 자리에 오른 것만은 아니다. 일례로 1992년에 이경훈이 쓴 <인맥 만들기>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는데 물론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이 책이 우리나라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인맥과 학맥으로 출세의 향방이 결정되는 우리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그나마 책으로 나마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인맥을 형성하고자 했던 당시 우리나라 독자들의 욕망의 정확한 표출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를 제외하면 많이 팔린 책은 그 당시 사회 구성원들의 정확한 자기표현 또는 욕망 또는 염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대 사회 구성원들의 욕망을 저급하다고 치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난쏘공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18년간 무려 40만부가 팔린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의 속도전에서 소외받고 희생을 강요당한 이들의 사회를 향한 외침의 소산이듯이.

 

제대로 된 베스트셀러는 당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시금석이며 독서 목록으로 나쁘지 않다.

 

본인의 저서 <아주 특별한 독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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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는 무엇이며 왜 하는가?>

필사(筆寫)란 쉽게 말해서 주로 문장력 향상을 위해서 뛰어난 작가의 책을 옮겨 적는 일을 말한다. 필사가 과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긴 역사를 자랑하는 필사는 여전히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진행 중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디지털 정보가 세상을 지배하는 요즘 오히려 더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필사를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신을 믿는 자에게는 신이 존재하듯이 필사의 위력을 믿는 독자에게는 분명 필사의 효과는 탁월하다. 소설가 신경숙의 경우 소설<외딴 방>의 소재가 되는 공장근로자로 일할 때, 멈춰선 컨베이어벨트에 앉아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를 필사한 덕분에 고통스러운 시절을 참았고, 어른이 된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소설가 신경숙을 ‘필사’예찬론자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눈으로 보는 글과 한 글씨 한 글씨를 직접 손으로 옮겨적을때와는 분명 느낌이 다르다. 독서를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라면 필사는 걸으면서 주위의 풍경을 천천히 구경하는 것이다. 독서는 맛있는 요리를 눈으로 보고 군침을 흘리는 행위이지만, 필사는 그 음식을 한입 가득이 넣고 씹으면서 그 음식을 맛을 만끽하는 행위다.


아무래도 필사라고 하면 조정래의 일화를 빼놓지 못한다. 그는 10권으로 구성된 <태백산맥>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필사하게 했는데 막대한 저작권료를 상속 받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일생일대의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읽히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깊은 자식사랑이다. 결론적으로 필사는 단기간에 문장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필사를 함으로써 자신이 필사하는 작가의 심경과 의도 심지어는 그가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을 배운다. 직접 그 작품의 저자가 되고 모든 전개에 있어서 저자의 생각과 자신이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느끼고 저자와 서로 상의해서 다음 구절을 결정하는 경험을 한다. 비행기 조정석에서 원저자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자신이 직접 조정을 해보는 놀라운 행복을 느낀다.

필사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천천히 읽는 습관을 가지게 한다. 필사를 하면서 각 단어와 문장을 흘려보내지 않고 음미하고 자기 것으로 체득하게 된다. 필사는 주로 인문서보다는 소설을 비롯한 문학작품을 많이 한다. 소설을 필사함으로써 앞뒤의 문맥을 잘 파악함과 동시에 저자의 독특한 어휘사용방법과 구성을 온전히 자신의 피 와 살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필사의 효과는 악필교정에 있다. 필자가 책을 내고 주위분들게 증정을 할 기회가 많은데 필자의 악필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말하자면 컴퓨터가 없었다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많을 만큼 악필인 필자는 자필 서명 본을 부탁받으면 전전긍긍하고 심혈을 기울려 서명을 하고 인사말을 적고나면 단 몇 십 초 만에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언젠가 관계기관에 들러서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 책을 선물했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그 분은 책을 받자마자 표지나 내용은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고, 아주 노골적으로 책의 내지를 뒤적거리면서 필자의 서명과 인사말을 찾았다. 그분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기왕에 줄 거면 그래도 저자의 서명정도는 해주어야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굳이 신언서판이라는 옛말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글씨체는 그 사람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글씨를 잘 쓰는 비결을 생각해보면 느리게 천천히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필자는 그러지 못해서 악필이고 급한 성격은 글씨체와 상극임이 분명하다. 느리게 천천히 필사를 하다보면 글씨체는 자연스럽게 고쳐지고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을 때 좋은 수양법이다. 


<필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첫째 필사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으로 해야 한다. 필사를 하려면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끼고 다니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되새겨야한다. 당연하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책, 장르를 선택해서 해야지 취향에 맞지 않는 책으로 필사를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책이 필사하기에 좋은 지 묻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내야한다. 

둘째 어떤 책을 읽기도 전에 필사를 하면 안 된다. 필사는 항상 읽고 나서 좋았고 감동 깊고 닮고 싶은 작가의 책으로 해야 한다. 처음 읽는 책을 필사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그 책이 흥미진진하다면 필사를 하는 속도는 도저히 호기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아마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필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든지 필사 자체를 포기하기가 쉽다. 더구나 필사를 하는 중간 그 책이 도저히 재미가 없고 공감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할 건가? 

셋째 필사는 빽빽이 숙제가 아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빽빽이 숙제를 내서 아무 생각 없이 연습장을 까맣게 채운 기억이 다들 있다. 빽빽이는 연필과 연습장만 낭비할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영혼과 생각이 함께 하지 않은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기 어렵다. 필사는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키우는 운동과 비슷하다. 아무리 무거운 역기를 든 다해도 운동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한다면 운동의 효과는 미약하며, 아무리 연필을 꾹꾹 눌러써가며 필사를 하더라도 문장과 낱말 그리고 글의 맥락을 마음속 깊이 음미 하지 않는다면 ‘손가락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애꿎은 손가락만 아프고 종이 낭비만 할 뿐이다. 

넷째 필사는 연필이나 펜으로 꾹꾹 눌러 쓰면서 해야지 컴퓨터 자판으로 해서는 안 된다. 요즘 하도 컴퓨터로 모든 일을 하는 버릇이 돼서 필사마저도 컴퓨터로 하면 안 되겠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컴퓨터로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타이핑은 본래의 특성상 별 생각 없이 하기 쉽고 또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에 주의를 빼앗길 가능성이 많다. 필사를 하다보면 특별히 감명 깊다거나 중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획 하나를 긋더라도 힘이 실리기 마련인데 키보드로는 자신의 온몸에서 나오는 기운을 싣기 어렵다. 다시 강조하지만 타자를 하면서 그 내용에 신경을 쓰기 어렵다. 

다섯째 번역서는 필사하기에 좋지 않다. 필자의 극본적인 목적이 저자의 어휘선택이나 표현법을 배우자는 취지인데 번역본은 원저자의 어휘선택도, 표현법도 아닌 번역가의 어휘선택과 표현법이다. 물론 훌륭한 번역가는 좋은 우리말 실력을 갖추고 있고 문장력 또한 대단하지만 결국 번역본을 필사한다면 그 번역가의 문체를 배우지 원저자의 숨결이 느껴지는 문장력을 배우지는 못한다. 

여섯째 필사는 꾸준히 오래 계속해야 한다. 필사가 단기적으로 문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단편소설 한 권 필사를 했다고 해서 당장 문장력이 좋아지게 만드는 마법사가 아니다. 운동을 해서 훌륭한 근육을 키우는데도 몇 달이 걸리는데 하물며 지적인 능력을 키우는데 한두 달로 효과를 기대하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일곱 번째 필사를 한다면 필사노트이외에 따로 정리를 해야 한다. 필사를 하면서 발견한 기발한 표현이나 절묘한 어휘, 혹은 그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감이나 줄 거리등을 기록하면 그 효과는 더 크다. 마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운동을 같이 해주는 게 더 좋듯이 필사도 정리노트를 작성하면 필사의 효과는 상상외로 커진다. 독서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가장 풀기 힘들어하는 영어 문제가 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과제이다. 긴 내용을 요약하고 자신의 어휘선택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적는 능력은 비단 시험을 대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업무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여덟 번째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시를 필사하자. 시는 문학의 다양한 장르 중에서 가장 난해하다. 왜냐하면 시인의 생각과 느낌이 가장 짧게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필사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강도 높은 훈련을 제공한다. 손 글씨를 오랫동안 쓸 여유가 없다든지 끈기가 없다면 하루에 한편이라도 시를 필사해보자. 일 년 동안에 무려 365개의 시를 적고 감상하며 시인의 심상을 느낄 수 있지 않는가?

아홉 번째 신문기사나 사설도 좋은 필사의 대상이다. 신문기사나 사설은 매우 논리 정연한 글이다. 글쓰기에 있어서 논리의 정연함이 매우 중요하다면 신문기사와 사설은 좋은 교재다. 신문논설의 경우 신문사에서 경험이 많고 그 신문사를 대표할 만한 글쓰기 역량을 갖춘 사람이  작성한다. 더구나 일반적으로 일분일초에 쫓겨서 작성하지도 않고 자신의 총역량이 결집된 글이라고 보면 맞다. 자신의 성향과 맞는 신문사를 선택한 후에 매일 정독하고 필사를 하면 논리가 정연한 글을 배우기 쉽고 또 논술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훌륭한 공부방법이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논술과외를 받기보다는 이 방법이 더 좋다. 


그러면 어떤 책을 필사하면 좋을까? 보통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책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 토지>, ‘김승옥’의 <무진기행>, ‘김훈’의 <칼의 노래>와 <화장>,  ‘이청준’의 소설, ‘오정희’의 소설을 비롯해 ‘백석’의 시도 여기에 포함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독자 개인별로 자신의 시대를 추억하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하는 작가의 책이 좋다. 부모가 되고 나이가 들수록 자신들의 시대의 추억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당하기 쉽다. 게다가 ‘촌스럽다’는 덤도 받아야한다. 그러나 문학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시대의 이야기가 더 이상 구시대의 유물이 아닌 소중한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심신의학의 창시자 ‘디팍 초프라’는 그의 저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에서 노인들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현재의 상황처럼 꾸며진 환경 속에서 지내게 했더니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능력까지도 젊은 시절의 수치로 되돌아간다는 놀라운 시험결과를 나타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시대를 뛰어난 문장력으로 말하는 좋은 작가를 소유하는 일은 큰 복이다. 


<필사의 도구들>

연필

손 글씨로 필사를 할 때 필기구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되는데 연필, 볼펜, 만년필사이에서 고민이 된다. 필자의 경우 연필을 선호한다. 존 업다이크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고 조용한 무기가 바로 연필이라고 했다.  볼펜은 아무래도 볼(ball)로 된 심이 특성상 부드럽게 써지지만 종종 의도하지 않게 앞서서 써지는 부작용이 있다. 만년필은 아날로그 특유의 정취와 기품이 있지만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잉크가 번지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만년필로 하는 필사는 태생적으로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적합하다. 연필로 하면  언제든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기가 가능하다. 혹시 연필로 쓴 글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지워지지 않느냐는 우려를 한다면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이다. 필자가 1987년에 싸구려 샤프연필로 쓴 필기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생생히 잘 살아남았다. 연필은 국산도 품질이 좋아서 딱히 연필의 종류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연필로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면 <그라폰 NEW No.3 데스크 펜슬>이 아마 연필의 루비통이라고 할 만한 가격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자루당 가격이 무려 1만 3천 원 정도이고 고급 삼나무로 만들었다는데 필자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


 연필의 대명사 ‘파버 카스텔’을 제외하고 최근 새롭게 필자가 주목하는 연필은 <팔로미노 블랙윙 연필>인데 전설의 연필이라는 명성을 자랑한다. 전설의 명품 연필인 <블랙윙> 연필을 철저히 조사한 끝에 <팔로미노>라는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필기구 회사가 <블랙윙>을 재현한 연필이 <팔로미노 블랙윙 연필>이다. 향나무 소재의 이 연필은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자랑하며 납작하게 생긴 지우개가 독특하다. 또 지우개를 분리하고 새것으로 교체하는 지우개교체방식이라는 신개념의 연필이기도 하다. 연필을 쓰다보면 지우개가 금방 다 닳아서 곤란한 경우가 있는데 이 연필은 그런 상황에 대비한다. 그러나 대체로 지우개의 품질은 낮다. 또한 무개중심이 지우개 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사용자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린다. 그러나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고 또 필기감이 부드럽고 글씨 또한 진한편이라 필사에 좋다. 한 타스에 24,000원 가량이니 제법 비싸다. 


연필을 사용하고 구매할 때 주의할 점은 반드시 연필 캡을 함께 사야한다는 점이다. 연필의 생명은 심이고 심은 볼펜처럼 휴대하다가는 금방 부러진다. 연필사용자는 잘 안다. 한번 연필깎이로 깎을 때마다 연필이 얼마나 더 짧아지는지. 그래서 연필깎이 전용 칼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불의의 사고로 연필심이 부러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연필 캡을 구매하면 좋다.

그리고 몽당연필을 활용하기 위해서 ‘연필깍지’ 즉 ‘펜슬 홀더’라는 물건을 구비해야 한다. 연필을 오래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하고 꼭 필요한 물건이다. 이런 물건들은 온라인 문구전문점이나 교보문고의 핫트랙스에서 구한다. 볼펜으로 필사를 하는 이에게는 <제트스트림 1.0>을 권한다. 부드러움과 진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유이한 단점은 이 볼펜에 맛을 들이면 다른 볼펜을 사용하지 못하며, 잉크가 빨리 소진된다는 점뿐이다. 손 글씨를 어지간히 싫어하는 필자도 <제트스트림 1.0>이라면 뭔가 쓰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필사뿐만 아니라 필기량이 많은 모든 이에게 권한다. 답안지를 길게 작성해야 하는 고시생을 비롯한 학생에게도 정말 좋은 볼펜이다.


연필깎이

별로 중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막상 없으면 매우 곤란한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연필깎이가 딱 그런 물건인데 연필과 연필깎이는 실과 바늘의 관계이다. 기관차 모양의 ‘샤파’연필깎이를 흔히 많이 사용하는데 평균이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권할 만하다. 조금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간다면 <Carl angel-5>를 권한다. 묵직하고 견고해서 최상급 연필깎이라고 인정할 만하다. 조금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서 장식품으로도 사용가능한 연필깎이를 찾는다면 <Boston연필깎이>를 권한다. 미국은 OMR카드를 사용할 때 연필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생들도 연필을 많이 사용하는데 미국의 강의실 벽에는 종종 <Boston연필깎이>가 설치되어 있다고. 다양한 굵기를 가진 모든 연필에 사용하기 위해서 구멍이 여러 개 있고 무엇보다 연필을 고정한 자국과 흠집을 남기지 않아 좋은 연필깎이다. 


메모장과 노트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지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메모장과 노트는 중요한 도구이다. 나의 첫 책 <오래된 새 책>을 집필할 때만 해도 노트를 사용하지 않았던 필자도 이 책을 집필하면서 메모장과 노트를 애용한다. 급기야 이제는 노트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글쓰기를 상상하기 어렵다. 어지간히 IT기기 마니아인 필자가 책상을 떠날 때 노트북 컴퓨터와 노트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할 상황일 때는 어김없이 노트를 집어 든다. 노트는 가볍고 전원이 필요 없으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아이디어를 옮겨 적는데 편리하다. 반대로 노트북 컴퓨터는 그 반대의 불편함이 존재한다. 

‘주디 리버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을 맞추고 포옹하는 순간에도 그의 목선과 등 근육을 기록하라고 했다. 기록이야 말로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따라서 마치 다람쥐가 겨울의 양식을 모아가듯이 순간적인 아이디어의 기록과 메모로 공책을 가득 채워나가야 한다.


필사를 하는 이의 노트는 가급적 하드커버가 좋다. 아무래도 오래 만지고 자두 들춰보니 튼튼해야한다. 필자는 <로디아 웹노트 라지>를 애용하는데 어디를 가거나 함께 한다. 이 노트는 필기하기에 매우 편한 재질, 부드럽지만 오래가는 인조 가죽 재질의 커버, 그리고 노트가 펼쳐지지 않게 고정하는 고무 밴드에 이르기까지 정말 사랑스러운 노트다. 다만 단편소설이상의 소설을 필사할 만큼의 분량이 되지 않다는 점이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처음으로 메모와 필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고마운 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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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28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사하기에 좋은 책으로 <책과 세계>도 추천합니다^^

박균호 2015-06-28 20:20   좋아요 1 | URL
오..고맙습니다.

ritamville 2016-03-04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리탐빌요가명상(Ritamville) >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리탐빌에서 이번 4월 20일 수요일에 워커힐 비스타 홀에서 힐링멘토 `디팍 초프라`를 모시고 강연을 열 예정입니다.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의 선구자, 유명인사와 리더들 멘토 그리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배출한 그는 지금 까지 어떻게 하면 더 풍요롭고 잠재의식을 더 끌어 올릴 수 있는지 얘기 해왔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의 방법으로 명상을 권유 하고 있는데요. 세계 명상의 흐름은 이미 애플이나 구글처럼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명상을 권하고 명상을 하는 유명인사들은 수없이 많죠. 명상에 관심이 많으셨던 분들은 이번이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 입니다. 또한, 동양철학과 서양의학을 한데 아우른 그의 독창적인 건강론과 행복론은 전세계 수많은 정치, 경제, 문화지도자와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아유로베다를 현대의학에 점목한 그의 심신의학의 창시자로 세계를 선두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한국을 찾아 쉴새 없이 돌아가는 우리 일상에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더 집중 하고 자신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법에 대해 강연을 하러 오게 됩니다. 플로리다(2016/3/17)를 시작하여 서울, 뉴욕, 뉴저지, 테네시, 런던, 파리, 체코, 스위스, 호주 등의 순서로 세계순회강연 중인 디팍 초프라 박사는 본 강연에서 건강, 행복, 창조 등 각 분야의 통합열쇠인 해답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블로거 분들에게 나누고자 합니다.



<2016 리탐빌 주최 – 슈퍼 소울 릴레이 3>


신청안내 - 네이버에 ‘리탐빌’을 검색하여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보세요.

Youtube – 유투브에 ‘슈퍼소울릴레이 3’ 치시면 홍보동영상 외 디팍초프라에 관련된 많은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채널구독!!

Facebook - ‘Ritamville Yoga Meditation’ 방문하셔서 친구추가 해주시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내한강연과 리탐빌의 관련된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재를 정리하다면 ‘내가 대체 이 책을 왜 산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책 만큼 성가신 존재도 드물다. 그래서 집안을 정리할때 퇴출 1순위가 주로 그런 책들이 물망에 오른다. 부지런하고 알뜰한 사람은 헌책방에 내다 팔기도 하지만 헌책이 어디 팔아서 돈이 되는 물건이어야 내다 파는 수고를 감수하지 않겠는가? 나 같은 경우는 공공도서관에 기증을 하거나 재활용품으로 버리는 쪽이다.


일주일에 수백권의 책이 쏟아지는데 아무리 열독가라고 하더라도 읽어봐야 얼마나 읽을 수 있겠는가? 만만찮은 책값도 책값이려니와 80년 남짓한 인간의 수명을 고려할때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가급적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누구라도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서 애써지 않는 사람은 또 어디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서점에 가서 ‘요새 어떤 책이 잘 나가나요’라고 주인에게 묻거나 ‘베스트셀러’코너를 눈여겨 보는 것도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본다. 내가 말하려 하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이란 것도 어짜피 절대적이지 않고 다만 개인적인 체험의 소산에 지나지 않으나 혹여 독서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적어본다.


우선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코너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물론 베스트셀러도 좋은 책이 많다. 그러나 아무래도 스테디셀러에 비해서는 ‘검증’이 덜 된 책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 우려가 된다. 실제로 세월이 지나서 버려야 할 책을 추려낼때 가장 흔히 보이는 책들이 ‘한 때 베스트셀러’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스테디셀러는 꽤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베스트셀러보다는 좀 더 오래두고 읽을 만 확률이 높다고 말해야겠다. 화려한 반짝 스타보다는 조용하지만 꾸준한 강자를 선택하는 편이 좀 더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베스트셀러도 옥석을 잘 고르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둘째 고전을 무서워 하지 말아야 한다. 안전성을 고려하면 고전만큼 좋은 선택도 드물다. 길게는 천년이 넘도록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목록이니 당연하다. 고전이 생각하는 만큼 어렵고 지루한 책만은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든지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박지원의 <양반전>따위는 일단 읽기 시작하면 무서운 몰입감을 발휘하는 ‘재미 있는’ 책들이다. 고전도 그 시대에는 ‘대중적인’ ‘베스트셀러’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의 소설’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지켜드는 ‘멜빌의 <모비딕>같은 소설은 난해하다고 느끼는 독자도 있겠지만 하루에 몇 페이지를 읽어서 완독하는데 몇달이 걸리더라도 웬만한 다른 책 열댓권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는데 기능이나 디자인이 큰 차이가 없는데 단지 명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몇 갑절 비싼 경우가 허다한 다른 물건에 비해서  내용이 명품이라고 해서 딱히 비싸지 않은 고전은 매력적인것이 분명하다.


셋째 출판사에도 전문 영역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령 순수문학에 ‘창작과비평사’, ‘민음사’, ‘문학동네’가 있다면 인문관련으로 ‘소명출판사’라는 거대한 산맥이 있다. 독자들에게 덜 알려져서 그렇지 당장이라도 인터넷서점에서 소명출판사의 출간 목록을 검색하면 신세계가 보이리라. 표지디자인은 다소 촌스럽지만 ‘까치출판사’도 굉장히 훌륭한 인문서적을 많이 낸다. 해외문학은 단연 ‘열린책들’이 돋보인다. 이 출판사는 애초에 러시아문학전문을 표방했는데 다른 해외문학도 눈여겨볼만하다. 장정과 표지디자인 그리고 번역이 수준급이다. 과학분야에서는 ‘사이언스북스’가 선두주자인데 출판사의 이름에 사이언스를 표방한만큼 오로지 과학분야의 책만 내는 고집쟁이다. 젊은 감각과 과학적 사고로 지식과 문화의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는 ‘동아시아사’도 주목할만하다. ‘동아시아사’는 주로 출간하는 과학책말고도 인문관련 서적도 출간하는데 모두 진국이다. ‘지호’는 미시적인 관점의 흥미로운 책을 많이 낸다. 사진과 예술분야에서는 ‘열화당’과 ‘눈빛’이 양대 산맥이다. 특히 눈빛출파사는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라는 기치하에 사라져가지만 소중한 장면을 담은 사진집들이 매우 훌륭하다. 역사쪽으로 넘어가면 ‘푸른역사’가 원탑이다. 그 이외에 에세이는 ‘마음산책’이 경제경영쪽은 ‘더난’이 선두주자다.


넷째, 책도 충동구매가 심한 품목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물건값이 비싼 다른 취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단가인 책은 의외로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책을 살때는 한발짝만 뒤로 물러서서 생각을 다시 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섯째, 일단 깊게 생각해서 꼭 필요하고 두고 두고 읽을 책이다라는 판단이 서면 미리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장 다른 읽을 책도 있고 시간이 없더라도 사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출판계는 절판이 너무 잦아서 나중에 생각이 나서 살려고 챙기면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절판본이 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책을 곁에 두면 언젠가는 읽게 된다는 격언은 틀리지 않다. 


여섯째,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제목’에 끌려 책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해야 한다. 나만해도 그렇다. 야구를 좋아하는 내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소설을 무심결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같은 야구에 관련된 재미난 소설인줄 알고 샀는데 적잖이 실망한 경우가 있다. 물론 20세기 일본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소설이긴 하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또 일반적으로 자기계발서적에 독자의 이목을 끄는 ‘요상한’제목이 많은데 제목보다는 내용을 요모조모 따져보는 것이 좋겠다.


일곱번째, 종이신문이나 서평잡지를 구독해야 한다. 요즘 시대에 누가 종이신문을 볼 시간이 어딨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종이신문은 좋은 책을 소개받는 가장 편리한 매체다. 물론 인터넷에서도 서평기사를 검색해서 읽을 수 있지만 일삼아 찾는 경우와 자연스럽게 펼치면 보이는 경우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종이신문의 서평기사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독서트렌드와 좋은 책을 고르는 눈이 길러진다고 믿는다. 종이신문이나 서평잡지를 읽지 않고 책을 고르는 것은 마치 나침판없이 항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목할만한 서평잡지로는 <기획회의>, <책 Chaeg>, <비블리아>가 있다.


번째,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독서모임에 참가해보자. 때로는 전문가나 대단한 독서고수보다는 평범한 다른 동료 독서가에게서 추천받는 책이 눈높이도 맞고 읽기에 적합하다고 느껴진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자신이 이해하기 어렵다든지, 관심분야가 전혀 아닌 책은 읽기에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또 독서모임을 통해서 같은 책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읽히는지 확인하는 일은 독서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아홉번째, 만화나 자기계발서라고 무작정 무시할 일은 아니다. 만화는 텍스트로 된 매체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장점이 많은 매체다 나만해도 조선시대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기거나 의문이 생길때 제일 먼처 펼쳐보는 것이  <박시배의 조선왕조실록>이고 파우스트 같은 난해한 고전의 워밍업으로 <만화로 읽는 불멸의 고전시리즈>를 들쳐본다. 아무리 자기계발서라도 해도 <카네기 인생론>같은 책은 꼭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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