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써야 할까?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책은 내고 싶어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출판사의 원고 투고함은 언제나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인 출판계를 단숨에 살릴’ 원고가 넘친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책으로 내면 ‘존 그리샴’의 전율과 ‘성석제’의 유머, 박경리의 ‘민족 정서’를 능가하리라고 확신하지만,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쓰레기’인 경우가 태반이다. 제발 자기가 살아온 여정을 책으로 내기만 하면 천만 독자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착각은 접어두자.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우여곡절이 있고 당신 인생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상업적인 성공을 포기하고 기념 삼아 책을 내는 경우는 ‘광화문에서 똥을 싼’이야기를 적어도 된다. 팔리는 책을 쓰고 싶다면 일단 홍보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래도 신문사 서평란에 실리는 경우가 빠른 방법이다. 신문사 문화면 담당 기자는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 ‘좋은 책’을 좋아한다. 그들이 생각 하는 좋은 책이란, 지방의 동네 서점에서는 도저히 팔릴 것 같지 않은 책이다. 한마디로 대학교수가 쓴 고상하고 유식해 보이는 책이다. 

저자가 유명한 사람이면 좋겠다. 저자가 무명인 경우에는 오로지 ‘단군 이래 그 누구도 쓰지 않은 주제’를 선택 해야 한다. 개인의 독특하고 꾸준한 경험은 글쓰기 실력보다 우선한다. 내용이 중요하지 글쓰기 능력은 뜻밖에 뒷 순위다. 

어떻게 써야 할까? 

글을 쓰다 보면 김훈이나 공지영 작가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자신의 글이야말로 최고라는 자만심의 감옥에 수감자가 된다. 시작하는 작가일수록 자신의 글을 많은 이들에게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SNS가 인생의 낭비라지만 글쓰기의 훌륭한 학교가 될 수 있다. 하다못해 틀린 맞춤법이라도 지적해주는 친구가 있다. 글을 쓴답시고 오피스텔을 임대하고 서재를 꾸미는 경우가 있는데 말리고 싶다. 프로작가에게나 유용하다. 시작하는 작가는 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틈틈이 일기 쓰듯이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 

더욱 위험한 것은 아예 세상과 담을 쌓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산골에 사전과 펜 그리고 원고지만 들고 입산하는 경우다. 글을 쓰는데 인터넷은 필수다. 집필에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책을 내야 하나? 

원고를 출판사의 원고 투고란에 투고하지 말기 바란다. 그들은 당신의 원고를 온갖 핑계를 대면서 거절할 것이다. 그나마 ‘정중하게’ 거절하는 출판사는 양반인데 ‘안타깝다’라는 말에 용기를 얻지 말기 바란다. 그냥 당신의 원고를 책으로 낼 생각이 전혀 없는데 그래도 문화계 업체라서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뿐이다. 

신기한 것은 당신의 옥고를 온갖 핑계로 거절한, 출판에 있어서 그토록 엄격한 잣대를 가진 출판사에서 내는 책들의 면면을 보면 웃기기는 하다. 당신의 원고를 거절한 온갖 기준에 모두 미달하는 책들이 우수수 나오니까 말이다. 너무 억울해하지 말아라. 억울하면 출세를 해야 한다. 심지어는 원고를 투고해도 답장조차 없는 출판사가 태반이다.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가지 말아라. 그들도 마감에 쫓겨 바쁘다. 당신의 방문은 출판사 대표의 페이스북 게시물의 좋은 소재가 될 뿐이다. 자신의 블로그나 SNS에 꾸준히 좋은 글을 연재하다 보면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오기 마련이다.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칼을 갈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홍보를 해야 할까? 

우여곡절 끝에 당신의 책이 출간되더라도 신문사 문화면에 실릴 것을 기대하지 말아라. 그 이유는 앞에서 밝혔다. 당신은 무명이니 분명 1인 출판사나 소형 출판사에서 출간했을 텐데 저자 자신이 홍보사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홍보하고 볼 일이다. 자신이 SNS 활동을 열심히 했다면 도움이 될 것이고, 인터넷 서점의 서평가로 활동했다면 더욱 좋겠다. 홍보보다는 일단 좋은 원고를 쓰는 것이 우선이라는 진리가 우선임을 냉혹하지만 알아 두었으면 좋겠다.

알지도 못하는 페이스북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어떤 책을 낸 아무개 저자인데 일독을 권합니다’라고 홍보는 하지 말자. 같은 저자로서 안구에 습기가 찬다. 명색이 저자인데 기본적인 자존심은 지키자. 차라리 지하철 행상을 하는 것이 더 빠르지 그런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당신을 즉각 차단할 것이 분명하다. 

부모님 말고는 책을 공짜로 주지 말아라. 지인이 낸 책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물건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책을 냈는데 왜 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지인들은 상종하지 말아라. 그들이 무슨 국회도서관인가? 공짜로 납본하게.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겠다는 친구들도 상종하지 말아라. 돈이 없다는 그 친구는 예쁜 여자들에게는 술을 사주고 밥도 사준다. 여직원에게 둘러싸여 ‘오늘 팀장님이 쏜대요’ ‘팀장님 최고예요’라는 당신의 친구 이름이 태그된 인증사진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사족> 여전히 무명인 작가가 쓴 웃자고 한 이야기니 이 글에 대한 '진지한' 비판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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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21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구걸하지 맙시다!!ㅎㅎ
이 말씀 맞으시죠? 공감합니다^^;

박균호 2017-02-21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cyrus 2017-02-21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지인에게 선물로 준 책은 대부분 헌책방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죠. ^^;;

박균호 2017-02-21 12:48   좋아요 0 | URL
네 책을 꼭 읽을 사람에게는 선물하고 싶지요.

stella.K 2017-02-21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구구절절 옳은 말씀인데요 뭐.
공짜책 좋아하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 사람이 뭐하던 사람이냐 연혁, 현혁 따지는 것도 많고.
프랑스만 하더라도 그런 정보는 일부러 차단하고 오직 글로만
평가한다고 합니다.
저는 몇 사람은 그냥 예의상 선물해 드리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 내가 혹시 두 번째 책을 내면 그땐 사서 볼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더군요.ㅠ

블로그나 sns를 적극 활용하란 말씀은 숙고해 봐야겠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해서 책을 낸 케이스이긴 하지만...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박균호 2017-02-2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대

에디터D 2017-02-22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읽다가 한 부분에서 빵 터졌어요. 차마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요^^;;
 
네 멋대로 읽어라 -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
김지안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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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안의 <네 멋대로 읽어라>는 ‘블로그 문학’의 진수다. ‘블로그 문학’이란 내가 생각해낸 용어인데 블로그에 연재하는 사람들의 문학적인 글을 일컫는다. 블로그는 문학을 지망하는 이에게 훌륭한 도구다. 원고료는 없지만 언제나 마음껏 자신의 취향대로 글을 올릴 수 있고 꾸준히 활동하면 제법 많은 독자도 확보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글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하니 자산의 취향대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인터넷 서점을 기반으로 한 블로그는 아무래도 책에 관한 글이 많고 원고료를 받고 쓰는 글이 아니니 친구들과 수다를 떨듯이 자유스러운 글도 많다. 


<네 멋대로 읽어라>는 너무 진지하고 어렵지도 않으면서도 출간을 할 만할 만큼 문장력도, 책을 고르는 안목도 충분하다. 이 책을 블로그 문학의 진수라고 정의한 이유다. 나의 첫 책인 <오래된 새 책>에 대한 글도 보이는데 이 책을 읽고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지안이 내 책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 놀랍다. 


저자인 나보다 더 <오래된 새 책>의 취지를 파악했다. <네 먹대로 읽어라>에 언급된 그의 서평의 판단력을 신뢰하게 된다. 독서에세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을 정도로 책에 관한 책은 홍수처럼 넘친다. 다른 독서 수필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저자와의 만남에 직접 참관한 후기가 여러 번 보인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지면의 인터뷰나 기사에서 볼 수 없는 저자의 솔직담백한 육성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박범신, 김훈, 은희경, 성석제, 김탁환을 비롯한 요즘 잘나가는 작가들의 진솔한 강연 내용을 읽을 수 있었는데 김훈이 법전과 소방실무지침을 즐겨 읽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법전은 선명한 언어로 쓰여 있고 소방실무지침은 위기 상황에서 생존할 방법을 기술해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좋아한다고 한다.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이처럼 선명한 조언이 또 있을까 싶다. <네 멋대로 읽어라>의 매력 또한 여기에 있다. 


<네 멋대로 읽어라>는 적재적소에 인용문을 넣었는데 이 또한 나에겐 자극이 되었다. 나는 인용문을 삽입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내 이름으로 내는 책인데 남의 글을 삽입하는 것은 반칙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실상은 인용문을 넣는 것은 반칙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나 독자들에게 장점으로 작용한다. 


저자에게는 인용문의 분량만큼 자신의 글을 쓰지 않아도 되니 수고를 들게 되고, 독자들 입장에서는 모든 책의 내용이 저자의 것으로 채워지는 것보다는 양념처럼 타인의 글을 읽음으로써 신선함을 맛본다.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좋은 서평 집이다. 저자 자신이 소설가를 꿈꾸는지라 같은 길을 지망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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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9 10:49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좋은 휴일 보내세요 !!

2017-02-19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2-19 12:27   좋아요 0 | URL
네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북프리쿠키 2017-02-20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텔라님 팬인지라 박균호님의 평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박균호 2017-02-20 15:47   좋아요 1 | URL
네 공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stella.K 2017-02-20 18:26   좋아요 1 | URL
전 쿠키님을 못 믿겠습니다. 팬이라면 리뷰를 쓰셔야죠.ㅠㅠ
누가 압니까? 저의 책으로 이달의 당선작이 되실지...ㅋㅋㅋㅋ

북프리쿠키 2017-02-20 18:04   좋아요 1 | URL
으흐흐흐 저에게 리뷰를 쓸 시간을 달라~~ㅋ 텔라님 책은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싶어 덜 읽었어요ㅎㅎ

당선작에 마음 비워서
그냥 100자평 정도 깔짝거려요 요즘ㅋ

stella.K 2017-02-20 18:28   좋아요 1 | URL
치~! 안됩니다. 꼭 정식으로 쓰십시오.ㅠㅋㅋㅋㅋ

캐모마일 2017-02-21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로그문학 신조어로 써도 손색이 없네요.
 

수집가는 궁색하다. 가족들로부터 핍박받는다. 60대 할아버지가 코카콜라 한정판을 구해보겠다고 행사장에서 관계자에게 팔아달라고 사정하는 모습만 봐도 궁색하며 그분을 가족들이 좋게 볼 리가 만무하다. <수집의 즐거움>을 집필하면서 다양한 수집가를 인터뷰했지만, 가족들로부터 환영받고 응원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청첩장 수집가 할아버지는 무작정 이승엽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신분으로 청첩장을 달라고 떼를 썼다. 청첩장뿐만 아니라 신문스크랩을 좋아해서 온 집안이 당신의 잡다한 수집품으로 가득 채운 끝에 가족들에게 더는 수집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해야 했다. 수집활동을 위한 인터넷 카페까지 폐쇄 당했다. 


만년필 수집가는 <수집에 즐거움>에 넣을 만년필 사진을 요청했을 때 ‘아내가 출타한 틈’을 타서 촬영해서 보내주었다. 나만 해도 그렇다. 절판본을 구해보겠다고 서울에 있는 출판사 사무실을 쳐들어가기도 했고, 불혹이 넘은 나이에 탐나는 절판 본을 사려고 20대 초반 학생과 댓글로 싸우기도 했다. 용돈이 궁한 대학생의 약점을 노려 그가 아끼는 절판 본을 뺏어오기도 했다.


집안의 가장 큰 방을 서재로 차지한 원죄로 툭하면 ‘서재 철폐령’이 내려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먼지를 혐오하는 아내에게 ‘먼지의 온상’인 서재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서재의 마지막 남은 한쪽 벽면에 책장을 넣겠다는 이야기를 10년째 하지 못한다. 수집가는 과연 ‘잉여다움’과 ‘철없음’의 표상인가? 나는 헌책을 수집하는 취미 덕분에 <오래된 새 책>을 냈다. <오래된 새 책>으로 T.V 출연도 했고, 인터뷰도 여러 번 했으니 ‘출세’를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책을 수집한 덕분에 <수집의 즐거움>을 출간하자는 제의까지 받았다. 책을 수집하니까 다른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알지 않겠느냐는 출판사의 판단이었다. 수집가들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그분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사실이나 이른바 눈길만 잘 못 돌리면 <개저씨> 소리를 듣는 연배 지긋한 사람들의 ‘소년 감성’을 구경하는 일은 흥미진진했다. 


돈 버는 일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간의 사연을 듣는 것이 즐거웠다. 그 양반들을 취재하면서 얻은 소득은 ‘수집’이 문화적 자산이 될 수도 있고 수집가 자신의 돈벌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돈 되는 일이 아닌 것에 몰두했는데 ‘돈벌이’가 되기도 한다. 콜라 수집가는 콜라 수집의 경험을 살려 자신의 본업인 마케팅에 큰 도움을 받고, 텀블러 수집가는 아예 텀블러 제작 공장을 차렸으며, 영덕의 대게 식당 아저씨는 자신의 식당에 그간 수집한 피겨를 전시하여서 손님들을 더 많이 끌어모았다. 괴담을 수집하는 작가 선생은 자신의 창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구의 카메라 및 영상 기기 수집가는 아예 박물관을 차려서 어린 학생들의 체험활동 장으로 인기를 끈다.


청첩장 수집가는 애초부터 ‘결혼 생활’의 ‘성스러움’ 때문에 수집을 시작했는데 ‘이혼’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담기 싫어한다. 그만큼 가족을 아낀다. 아내 몰래 비싼 만년필을 모으는 수집가는 자식들이 성인이 되면 깜짝 선물을 하는 것이 수집의 목적이다.


수집은 성스러운 과업이며 즐거운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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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인 나는 늘 학생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나는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에디슨의 격언을 귀에 박히도록 듣고 자란 세대다. 적어도 공부에서만큼은 이 격언이 우리 세대에서는 유효했다.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위치가 학생들의 학력과 연관이 높다. 


야구 팬들 사이에 ‘야잘잘’이란 말이 있다. ‘야구는 잘하는 선수가 잘한다’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대선수는 90% 이상이 타고나는 것이고 일부가 노력으로 발전된다는 것이 정설이고 주위를 둘러봐도 사실인듯하다. 


글쓰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름난 문필가의 부모 또한 문필가인 경우가 허다하다. 글쓰기 재주의 유전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너무 절망하지 마시라. 타고난 글재주가 없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기는 이르다.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주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한 권쯤은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굴곡이 많은 시대를 거친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이 책으로 낼 수 있을 만큼 사연이 많다고 여긴다. 문학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신춘문예의 경쟁률은 치열하며 글쓰기 강좌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내 경험에 비추어 우선 책을 내자면 ‘돈 버는 일’을 제외하고 뭔가에 몰입하는 삶을 10년쯤은 살아야 한다. 뭔가에 미쳐야 한다. 나의 경우는 헌책과 희귀본 수집에 몰입했다. 특정 분야에 몰입하다 보면 일반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다양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들이 책을 쓰는데 더 없이 좋은 소재가 된다.


나의 첫 책 <오래된 새 책>은 형편없는 글 솜씨와 완성도가 높지 않은 편집, 그리고 처음 책을 내는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언론사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책을 낸 지 열흘 만에 초판이 소진되었다. 다들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뭔가에 몰입해서 ‘이상한’ 경험을 하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호기심과 재미를 느낀다. 


책을 내자면 글 솜씨보다 ‘독특한 경험’이 우선이다.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으면 미진한 글 솜씨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국인이 어설프게 한국어를 말하더라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해서 이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지 글 솜씨가 아니다. 


글을 쓸 때도 다른 사람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독서 만담>을 읽고 재미난다는 독자가 많은데 나의 이런 문체는 사실 한 독자의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

3년 전 무심결에 어떤 글을 썼는데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지금까지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재미났어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 한마디로 나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생각하는 글의 코드를 알게 되었다. 내 글의 ‘정체성’을 댓글 한 줄로 정했다. 자신의 글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 SNS에 글을 게시해보라. 독자들의 반응을 알 수 있고 하다못해 틀린 맞춤법을 지적해주는 고마운 친구도 있다. 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꾸준히 보여주는 것은 글쓰기 선생을 모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만의 자아도취에 빠져서 ‘단군이래 최대 불황인 출판계를 부활시킬 불후의 명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쓰레기’로 취급받는 사태를 방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책을 쓰겠다고 원고지 1천 매를 단박에 채워나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소액을 저금하듯이 편의점의 포인트를 모으듯이 자신의 블로그나 SNS에 한 꼭지씩 올리는 것을 권한다. <독서 만담>의 원고도 그렇게 완성되었다.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전질로 한꺼번에 사면 기가 죽어서 읽기 힘들다. 서점에 갈 때마다 한 권씩 사서 읽는 것이 좋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블로그에 잡지에 연재하듯이 한두 편씩 공개해보자.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집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지식을 넓히기 위함이 아니다. 어휘력을 늘이기 위해서고, 자신의 기호에 맞는 표현법을 모방하기 위해서다. 소설가를 희망한다면 다른 사람의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법을 체득한다. 극적인 전개가 이루어지는 공식을 배운다. 


<독서 만담>은 책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내 서재가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올 수 없었다. 소개할만한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찾는 것보다는 고개를 한 번 돌려서 자신의 서재의 면면을 살펴보는 쪽이 편리하다. 훌륭한 서재는 책을 쓰는 연장이다. 책은 펜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서재와 경험으로 쓰는 것이다. 


맞춤법도 중요하다. 문서작성 프로그램의 맞춤법 기능을 믿지 마시라. 

부산대학교에서 개발한 '한국어 맞춤법/문법검사기를 이용해서 틀린 맞춤법을 상당 부분 걸러낸다. 이 사이트가 없었다면 아마 나의 편집자는 내 원고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것이다. 


꾸준히 글을 쓰고 SNS나 블로그에 연재를 하다 보면 분명 기회는 온다. 출판사는 늘 좋은 원고에 목말라 있다. 섣불리 출판사에 원고를 기고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자신만의 길을 걷다 보면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온다. 


글을 쓸 때 억지로 짜내서는 안 된다. 대가가 아닌 이상 억지로 짜낸 글은 독자들로부터도 외면 받는다. 단숨에 써나간 글이 독자들도 단숨에 읽힌다. 글이 안될 때는 산책도 좋고 차라리 넋 놓는 편이 낫다. 문학이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이지 ‘짜내는’ 것이 아니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머릿속으로 차분히, 꾸준히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구성을 해봐야 한다.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그때 펜을 들어야 한다.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이지 써야 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독서를 열심히 하고, 서재를 충분히 일궈놓으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 설비를 마친 것과 다름없다. 일상 속에서 자기가 쓸 원고를 늘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훌륭한 글감으로 다가온다. 


늘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낼 수 있도록 세밀한 눈을 가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순간’은 찾아온다. 깨어 있는 눈을 가진 사람 많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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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뵈 2017-02-17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ᆢ막 책 주문 했답니다~ ^^

박균호 2017-02-17 09:02   좋아요 1 | URL
네 모쪼록 즐겁게 읽으시길

물감 2017-02-1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읽었습니다!
대중이 좋아하는 코드를 감 잡는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ㅎㅎ

박균호 2017-02-17 22:25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7-02-1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만담, 잘 읽었습니다.
잡식성책장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박균호 2017-02-18 06:20   좋아요 1 | URL
네 제가 감사하지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순오기 2017-03-09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자기 인생에 책 한 권 쓰고 싶은 사람은 꼭 읽어봐야 될 책인데요!^^

2017-03-09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7-03-0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고맙습니다 편안한 밤 되새요

skysar77 2017-03-12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사람많이 가 아니고 사람만이

박균호 2017-03-12 14:16   좋아요 0 | URL
네 그렇네요. 감사해요.
 

단언컨대 나는 책을 의무감으로 읽은 적이 없다. 오로지 ‘재미로’ 읽었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많이 읽은 것은 ‘혼자서 하는 가장 재미난 놀이’이었기 때문이지 ‘마음의 양식’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1970년대에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있었다고 해도 책을 즐겨 읽었으리라고 장담을 못 하겠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 말고는 달리 유흥거리가 없었던 시대적, 장소적 배경이 나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든 주요한 요인이라고 믿는다. 


숙제로 책을 읽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드물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고통이 큰 벌은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이다. 요즘이 얼마나 역동적인 시대인가? 굳이 멀리 눈을 돌리지 않고 손안의 스마트폰만 터치해도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요즘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책을 강제로 읽게 하는 것은 마치 솔제니친이 국외로 추방되는 고통에 비견되는 일이다. 


출판계의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독보적이었던 ‘정보 제공’의 기능도 상당 부분 인터넷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의해서 빼앗겼고, 과거 독서의 중요한 매력이었던 ‘시간 죽이기’나 ‘유희’로서의 기능은 거의 멸망단계에 이르렀다. 굳이 책을 통하지 않고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많아졌고, 책을 읽는 것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수도 없이 많아졌다. 


오늘의 출판인들은 선배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괴물’ 즉 인터넷을 비롯한 멀티미디어라는 적을 상대해야 하며 이 싸움은 갈수록 힘겹기만 하다. 나만 해도 그렇다. 인터넷보다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고서야 겨우 책장을 넘기는 편이다. 그런데도 책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늘 재미있는 책을 찾아왔던 경험이 다섯 번째 책을 출간한 동력이 되었다. 


이번에 낸 <독서 만담>은 제목에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듯이 실용적이거나, 깊이가 있다거나, 지식이 충만한 책이 아니다. 책을 읽고 모아온 그간의 에피소드와 즉흥적으로 가지게 된 책에 대한 생각들을 담았다. 아내와 딸의 틈바구니에서 꼼꼼하지 못하고, 권위라고는 전혀 없는 책을 좋아하는 가장이 겨우겨우 살아가면서 겪었던 ‘웃기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겨울철엔 군것질거리가 오직 처마 밑에 걸린 곶감이 유일했는데 일찍 잠이 드신 부모님의 코 고는 소리가 커지면 나는 몰래 방문을 열고 나갔더랬다. 곶감을 몰래 먹기 위해서였다. 누나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혼자서 곶감을 따 먹지 않았다. 아랫방에 모여 자던 누나들을 불렀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좋은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었었다. 


<독서 만담>에는 웃기는 에피소드와 함께 책 이야기도 있다. 단순히 재미있는 책을 이야기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재미’를 함께 나눴으면 하는 취지에서 쓴 글이지 무슨 거룩한 목적이나 계몽을 위해 쓰지 않았다. 

<독서 만담>은 하나도 실용적이지도, 깊이가 있지도, 수려하지도 않은 책이다. 


책을 수집하고 읽다 보면 이런 웃기는 일도 경험할 수 있구나! 

이런 모자란 남편도 있구나!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웃기는 일도 겪는구나! 

세상에 이런 책도 있었구나! 

이런 정도의 감탄과 함께 재미를 느끼면 원래의 기능을 다 한 책이다. 

이 책에는 재미있고 웃기는 에피소드만 담았다. 세상살이가 고달픈 요즘인데 굳이 책을 읽으면서 까지 우울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짧은 소견 때문이다. ‘재미’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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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2-16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두근두근^^ 스텔라님 서재에서 뵙고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독서만담의 작가분이시지요? 저도 주문하고 받아보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괜히 자랑^^;) 친구신청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박균호 2017-02-16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만나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