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명령하기를 딸아이의 입장에서 겪었을 지도 모르는 성차별적인 에피소드를 써보란다. 양성평등 교육을 직접 가정에서 챙기겠다는 말인 것 같다. 딸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라면 이런 고민을 한 번은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내가 여자도 아닌데 경험하지 않은 일을 타인이 어떻게 상상을 해서 만들어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조심스럽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는데 아내가 ‘글 쓰는 재주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한다.


아내도 이젠 교사 생활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사람을 움직여서 일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나 보다. 하루에 대략 아내에게 20번 정도의 꾸지람을 듣는 처지라 아내로부터 ‘글 쓰는 재주가 있는 남자’라는 공인을 받으니 ‘여성이 겪은 성차별 에피소드에 관한 101가지 글쓰기’도 작성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생겼다. 


우선 딸아이가 겪었을 성차별에 대해서 맹렬히 상상력과 기억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나에게는 무남독녀이자 할아버지 가계로 따지면 30년 만에 태어난 자손이다. 비록 내가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졸지에 대가 끊기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우리 집안의 그 누구도 ‘아들을 낳아야지’라고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딸아이를 보면서 평생 의지할만한 동기를 낳아주지 못해서 안타깝기만 했지 딸아이가 아들이 아니어서 서운하다거나,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따라서 집안에서 딸아이가 겪었을 만한 에피소드를 상상하고 기억해내기는 어려웠다. 다음은 학교로 가보자. 요즘 학교는 ‘여자가 말이야’라는 식의 말을 했다가는 24시간 내 교육청에 신고 되고 경찰 수사를 거쳐서 성범죄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얻게 된다. 


남학생, 여학생이라는 단어 자체를 쓴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역시 학교에서 겪었을 만한 성차별 요소도 내 능력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남은 것은 단 하나의 가능성이다. 남자인 나와 여자인 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험. 나로 말하자면 성차별적인 언사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상적인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경상도 시골 출신의 50대 초반 남자. 게다가 잔소리하는 것이 주요한 업무 중의 하나인 교사.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도 딸아이에게 ‘여자가 자고로’라든가 ‘여자는 그라면 안대’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자식이지 아들이나 딸이냐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포기하지 않고 더 깊게 생각해봤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딸아이에게 교대를 가서 초등학교 선생이 되라고 조언을 서너 번 한 적이 있다. 겪지 않은 일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만약 내 자식이 아들이라면 교대를 권하지 않고 공대를 권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한 성차별적인 행위가 아니었나 말이다. 유레카를 외치며 금방 딸아이가 겪은 성차별 경험담을 완성했다. 어찌나 집중해서 작성했는지 고분 분투하는 남편을 위해서 아내가 옆에 두고 간 머루 포도를 발견하지 못했을 지경이었다. 


딸아이에게 좀 더 넓은 진로에 관해서 이야기 하지 않고 단지 취직이 용이하고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를 권했던 과오를 치열하게 반성을 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딸아이가 아버지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하고 ‘아트 앤 테크놀로지’라는 이상한 전공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공부라고 하니까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딸아이가 살아가면서 뀌는 방귀 횟수와 ‘그게 뭘 배우는 과에요?’라는 질문을 받는 횟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큰 수가 될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딸아이가 겪었을 한 줌의 좌절, 실망, 분노에 대해서도 극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써 내려갔다. 완성된 글을 보니 거대한 나의 반성문이 되어 있었다. 내가 쓴 반성문을 퇴고하다 보니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서 새삼 후회를 하게 된다.  능력 이상의 상상력과 기억력을 소진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평생을 보낸 할아버지와 그 형제분들은 이런 순간에 늘 칭찬을 내리셨다. 옛 추억이 현실화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숙제를 마쳤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과연 아내의 의도대로 여성에 대한 배려심이 금방 아내의 답변이 날라 왔다. “거봐, 할 수 있잖아. 추가로 한 네 개만 더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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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10-2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으면서 내내 웃습니다. 행복한 따님으로 잘 키우셨네요 존경합니다^^

박균호 2019-10-22 14:26   좋아요 0 | URL
웃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제가 딱히 잘 키운 것은 없고 그냥 혼자 잘 자란 것 같아서 다행스럽네요.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19-10-2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버지가 그리 글을 잘쓰시는데, 따님이 글을 못쓴다니 뜻밖입니다. 아무튼 이 글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막판에 답이 나오네요. 역쉬 작가님답습니다!

글구 저한테 이런 미션이 주어졌다면, 저와 누나가 다른 대접을 받은 경험을 쓸 거 같아요. 수능, 그러니까 학력고사가 끝났을 때 누나는 아무도 마중을 안나가서 제가 나갔지만, 이듬해 제가 봤을 땐 부모님이 모두 정문 앞에서 기다렸지요. 이것이 그땐 몰랐지만 큰 차별이더라고요.

박균호 2019-10-22 15:37   좋아요 0 | URL
딸아이를 디스하는 것이 좀 불편하지만 입시 때 자소서를 도와주려고 해도 어디서 부터 손을 봐주어야 할지 몰라서 포기했습니다. ㅎㅎㅎ근데 그 나이 때 저는 훨씬 더 글을 못 썼으니 ㅠㅠ 저와 누나의 차별성을 이야기 하라고 하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요 ^^ 다만 2000년생 무남독녀인 제 딸아이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 글이라 ㅎㅎㅎㅎ 제 딸아이는 마중으로 모자라 전날 수능장까지 태워주는 예행연습까지 했었어요 ㅎㅎㅎ 혹시 길을 잘 못 들어서 늦을까봐요. 그리고 신간 출간 하신 것 거듭 축하드립니다.

10030223 2019-10-22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 글재주가 좋으시네요!~

박균호 2019-10-22 22:17   좋아요 0 | URL
아..별 것 아닌데 ...정말 감사합니다.
 


대학에 다니는 딸아이가 교양과목 과제 때문에 한 숨을 쉰다.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주말에만 본가에 내려오는 딸아이랑 신나게 놀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우리 부부는 과제가 뭐냐고 물었다. 책의 일부를 요약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란다. 어떤 내용인가 궁금해서 보자고 했더니 복사된 수십 쪽의 종이를 건넨다. 텍스트를 보니 역시 만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책 제목도 모르고 저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책의 일부를 뚝 떼어서 읽으니 더욱 그랬다. 


이 대목에서 이상했던 것은 교수님이 유인물을 나눠주고 요약하고 발표하라고 했다고 해서 달랑 그것만 들고 와서 과제를 하겠다고 덤비는 딸아이의 학습방식이었다. 우리 땐 교수님이 무슨 책 이야기를 하고, 과제를 내면 냉큼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 책을 빌리거나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사지 않았나 말이다. 어쨌든 새마을운동 세대와 뉴밀레니엄 세대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딸아이가 건넨 ‘종이 쪼가리’를 꾸역꾸역 읽긴 읽었다.


원전이 궁금해진 잉여력과 집착력을 집중시켜서 책 제목을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리베카 솔닛’이 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이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알라딘 서재에서 자주 본 책이어서 반가웠다. 내가 읽은 한 챕터의 내용 중에서 고개를 끄덕인 부분이 있었는데 계량이 가능한 여성의 처우 개선보다는 돈으로 살 수 없고, 기업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행복, 그리고 배회할 수 있는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취업률, 승진 비율, 급여의 차이와 같은 수치적인 항목에 대한 개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밤늦게 술을 마시고, 식사를 하며 거리를 배회할 수 있는 자유를 더욱 원한다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은 매우 한적한 산골 근처에 있는데 밤늦게 외부 행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고 퇴근을 할 때 여자 동료들이 일삼아 남자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퇴근을 한다. 야간이면 인적이 아니고 차량 통행 자체가 드문 외진 곳이기는 하지만 걸어가는 것도 아닌데 굳이 남자 직원의 차를 얻어 타고 퇴근을 하는 것이 이상했다.


새삼 그 일이 이해가 되는 것이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으나 심야나 외진 곳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피해자는 아무래도 여성이 높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남성 보다는 조심스럽고 두려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치안이 세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 조차 아직은 여성들이 심야 거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배회할 수는 없다. 노브라 문제로 네티즌의 악플과 오지라퍼의 비난 때문에 고생한 한 연예인이 끝내 생을 마감했다.


체험해보니 앓겠더라. 꽉 조이는 속옷의 불편함을. 브라와 비교하면 새발에 피 이겠지만 나도 꽉 조이는 팬티를 벗을 때 해방감과 편안함을 체감한다. 아예 퇴근을 하면 속옷을 벗고 헐렁한 잠옷 차림으로 지내는데 참 편안하고 좋다. 아내와 딸아이도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브라부터 벗는다. 브라가 무슨 예복도 아니고 유니폼도 아닌데 왜 굳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착용을 해야 하고, 그걸 안했다고 해서 악플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된다. 


그 연예인이라고 굳이 속옷 문제로 불특정 다수와 설전을 벌이고 싶었겠나. 불편을 감수하면서 노브라를 어필한 것은 아마도 속옷을 입지 않을 권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를 꿈꾸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당당히 내 의지와 자유에 의해서 속옷을 입지 않겠다는. 


그러니까 아직 우리나라는 개인이 속옷을 입지 않을 자유마저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뭔가 남과 조금만 달라도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사회는 참 답답하고 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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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0-1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책 받았습니다.
책이 정말 묵직한 게 고급져 보입니다. 게다가 <도쿄 디테일>까지...!
어제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책 박스를 들어냈는데 좀 미안하긴 하더군요.
저의 젊은 날 모았던 책인데 이사 와서 한번도 풀어보지 못한 책들이었습니다.
주인 잘못 만나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책들이죠.
들어내자 위로 같이 박균호님의 책을 받게 되는군요.ㅎ
고맙습니다.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박균호 2019-10-19 15:02   좋아요 0 | URL
네, 잘 받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아주 오랜만에 옛 책을 들쳐보는 것도 참 재미나죠.
모쪼록 즐거운 주말 되세요.
 

책에 관한 넓고 깊으며 세밀한 지식을 가진 분이 쓴 문학동네 판 <닥터 지바고> 소개 글을 읽었다. 문예 영화(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와 원작 소설을 비교할 때 대개는 원작 소설을 더 좋아하는데 <닥터 지바고>는 영화와 소설의 우열을 가리지 못하겠단다. <닥터 지바고> 영화를 볼 때는 꼭 70mm 대형 화면으로 봐야 닥터 지바고의 참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70mm 대형 화면이라야 러시아의 광활한 설경과 주인공의 방황이 맞물려서 우러나오는 감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번역가 박형규가 1990년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낸 <닥터 지바고>가 우리나라 최초의 러시아어 직역 본이라고 한다. 서지 정보를 찾아보니 박형규는 2001년, 2006년, 2009년 연이어 역시 열린책들에서 개정판을 출간하다가 2018년에는 문학동네에서 <닥터 지바고>를 출간했다.


번역에 대한 신뢰와 대형화면으로 멋지게 구현되는 <닥터 지바고>를 다시 읽고 싶어서 얼른 주문을 넣었다. 어찌나 사고 싶었는지 너무 서두른 탓에 작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제 배송받은 책 서너 권이 내 책상에 놓여있고, 오늘도 배송 중인 책이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내가 저지른 실수라는 것이 별것 아니긴 하다. 나는 책을 배송 받을 주소를 3개 사용한다. 직장, 본가(주로 주말에 머문다), 혼자 지내는 숙소(직장 때문에 평일에 혼자 지내는 곳).


 주문한 책의 수량과 부피 그리고 택배가 도착할 것으로 예정되는 요일을 고려해서 주소지를 달리한다. 그러니까 <닥터 지바고>를 주문할 때 내가 지키는 몇 가지 조건과 배송지가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존재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꼰대로 치부되기 쉬운 50대 남자라서 그런지 내 돈 주고 책을 사면서도 이것저것 눈치를 보게 된다. 


하루를 멀다하고 직장으로 책이 배송되어 오고 사무실 책상에 업무용 책보다 취미 삼아 보는 책이 더 많이 쌓이면 월급도둑으로 낙인 찍힐까 두렵고, 아내와 함께 사는 본가는 본가대로 서재는 먼지가 쌓이고 책으로 터져 나갈 판인데 무슨 책을 또 사느냐는 아내의 꾸중이 무섭고 그렇다고 혼자 사는 숙소가 마냥 편하기만 하지는 않은 것이 엘리베이트가 없는 3층이라 무거운 책을 굳이 3층 문 앞에 두고 가는 택배 사원에게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책을 주문할 때 그날의 주문량과 도착 시기를 예측하여 위에 열거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주소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배송지를 잘못 입력한 <닥터 지바고> 주문 정보를 수정하려는데 오류가 나는지 되지 않는다. 같은 과정을 5번 했는데도 잘못 선택한 주소는 요지부동이다. 


6번째 수정 시도를 하면서 아련하게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설마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사무실 캐비넷을 열었는데 역시 내가 그토록 주문하려고 하는 문학동네 판 <닥터 지바고>가 뻔뻔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바보가 확실하다는 자백을 할 수밖에 없다. 분명 이전에 이 책을 주문할 때도 매혹적인 소개 글을 읽고 나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토록 까마득하게 기억을 하지 못할 수가 있는지 나의 뇌가 신비로울 따름이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에 유재덕 셰프의 <독서 주방>을 읽다가 발견한 <음식과 전쟁>을 대뜸 주문했더랬다. 유재덕 셰프가 이 책을 배송 받고 펼치자마자 호그와트 마법학교가 떠올랐다는데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삽화와 흥미진진한 음식 이야기가 어우러진 <음식과 전쟁>을 배송받자마자 읽었다. 다 읽고 책장을 덮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이토록 유니크한 디자인과 내용이 담긴 책을 모르고 또 샀을 리는 없다고 수십 번을 중얼거렸다. 마치 죽음을 부정하는 말기 암 환자처럼 말이다 .다행히 직장에 있는 여러 곳의 내 아지트에는 <음식과 전쟁>이 없었다. 


주말에 본가를 가자마자 서재 문을 열었는데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음식과 전쟁>이 놓여 있었다. 반성하건대 나는 혹시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고 택배를 받는 즐거움 때문에 주문하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같은 책을 2번 주문했더라도 분명 어딘가에서 유혹하는 책 소개를 2번 읽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같은 책을 2번 주문하면서도 각자 다른 유혹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책 소개를 하는 글쓴이가 그 책에 얽힌 각자 다른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니까 말이다. 머리가 나빠서 좋다는 것이 같은 책을 2번째 주문하면서도 1번째 주문하는 때와 마찬가지로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란 이런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독자에 따라서 너무나 천양지차의 매력과 경험을 느끼게 한다는 것. 어쩌면 내가 머리가 너무 나쁘기보다는 너무 좋은 책이라서 같은 책을 두고 개인에 따라서 극히 독특한 책 소개를 하게 만들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 같은 책을 2번 주문하긴 했지만 2번 모두 주문으로 이르게 하는 즐거움과 설레는 책 소개를 읽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그리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혹시 의학용어로 ‘치매’라고 부르는 것은 아닌지 슬며시 걱정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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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0-17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여전하신가 봅니다.
언젠가 <독서만담> 저에게 두 권 보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한 권은 다른 분께 보내셔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그 책 한 권은 지금도 제가 가지고 있고, 또 한 권은 주민센터에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 기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근데 책 정말 많이 사시네요.^^

박균호 2019-10-17 20:26   좋아요 1 | URL
아.그러고 보니...ㅎㅎㅎㅎㅎ
기증 잘 하셨고요. 혹시 <음식과 전쟁> 관심 있으시면 보내드릴께요. ^^
제법 비싼 책인데 상태는 새책이나 다름 없답니다.

2019-10-17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7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행운과 불운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지독히 운이 좋은 점 중의 하나가 밝은 눈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붙어 산 지가 20년이 훨씬 넘었고, 주변에 읽고 있는 책이 없었던 경우가 거의 없이 30년 이상을 보냈는데도 지난주 안과에서 측정한 내 시력은 양쪽 모두 1.0이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을 때 초점이 흐려져서 활자를 읽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꼈지만 설마 내 눈에 이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연히 독서용 안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안경원에 가보기로 했다. 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은 아니고 뭔가 책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아이템 인줄로만 알았다. 마치 책갈피라든가 독서대처럼 사용자의 건강과는 상관없는 독서가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물건인 것으로 생각했다. 


평생 안경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은 묘하게 안경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심하게 말하면 저렴한 패션 아이템(인터넷 쇼핑몰을 보니 독서용 안경은 2만 원이 채 되지 않더라)이나 하나 추가하자고 재미 삼아 난생 처음  고객으로 안경원에 들렀다. 동네 안경원이라고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내 눈의 건강함을 자랑할 기회 따위는 주지 않았다. 대뜸 멋지게 생긴 기계에 나를 앉히고 들여다 보란다.


 자신만만하게 안경사가 시키는 대로 보이는 대로 대답을 했다. 안경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서 나는 내 장래를 읽을 수 있었다. 그 표정은 신규 고객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근엄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안경사는 피고석에 앉아서 처분을 기다리는 나에게 판결을 내렸다.


“네, 노안이 오셨군요. 정도를 보아하니 대략 1년 정도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쩐지 현미경처럼 생긴 물건이 심상치 않더니 정확하게 내가 책을 읽을 때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현대 기술은 정말 놀랍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쪽 눈을 가리고 검사하는 시력과 노안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마치 죽을병이라도 선고받은 것처럼 안경사에게 ‘치료할 방법이 없느냐’고 몇 번이나 캐물었는데도 안경사는 특별한 치료법은 없고 갈수록 악화할 뿐이고 2년 뒤에 도수가 더 높은 렌즈로 교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동안 홀수 해에 휴대폰을 교체해왔으니 내 돋보기 렌즈 교체 주기는 헛갈리지 않겠다)안경원의 진짜 고객이 된 나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안경테를 고르기 시작했다. 범죄자가 자기가 찰 수갑을 고를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이겠다. 


뜻밖에 고객을 확보한 안경사는 승리자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위로의 덕담을 던져주었다. “그래도 먼 곳을 보는 시력은 정말 좋으시네요” 물론 그 와중에 나한테 잘 어울리는 테를 고르고 또 고르긴 했다어쨌든 들어갈 때는 한가한 쇼핑객이었는데 나올 때는 노안을 앓는 환자가 되었다. 다음날 가족들과 외출을 하는 길에 내 안경이 완성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심 지금껏 겪지 못한 신문물의 성능이 궁금했다. 마침 이웃 동네 구미의 핫 플레이스로 소문난 삼일 문고를 가볼 셈이었는데 좋은 우연이었다.


 다만 딸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보채는 바람에 신문물의 성능 확인은 약간 뒤로 미뤄져야 했다. 식사하고 무려 3km의 산책 그리고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나서야 구미 삼일문고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내 안경을 닦고 또 닦았다. 안경 인생의 첫걸음 아닌가? 그 첫 경험을 내가 가고 싶었던 서점에서 하게 된다니 설렌 일이다.

 


들어가자마자 빨리 안경을 끼고 책이 어떻게 보이나 허기에 찬 사자처럼 서점 안에 있는 아무 책이나 집어 들려고 덤비는데 내 눈에 금방 띈 것이 내 책 <독서 만담>이라니.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자세히 보니 ‘시민의 서가’라고 해서 구미 시민 독자가 추천한 책을 전시하는 모양이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다.



삼일문고는 아늑하고 따뜻한 서점이다. 사실 개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와 보긴 했다. 그때는 그냥 서점이었는데 지금은 문화공간이 되어 있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참고서를 팔지 않는 단행본 서점은 그 자체로 존재가치가 대단하다. 더구나 삼일문고는 작은 동네 서점이 아니고 강연 공간까지 겸비한 중형 서점이다. 공단과 유흥으로 유명한 구미에 이런 서점이 생겼다는 자체로 놀랍고 뿌듯한 일인데 그간 삼일문고에서 진행한 행사와 초청 강연 저자의 면면을 보면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의 것이라고 해도 믿기는 정도다.



개인적으로 더욱 감탄한 것은 최근 내가 아껴가면서 읽은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의 저자 이지은 선생의 강연이 삼일 문고에서 진행되었다는 것. 내가 알기로 이지은 선생은 현재 파리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다. 누구의 안목인지 모르겠다. 저절로 리스펙트하게 된다. 단지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대형 출판사의 저자를 무작정 초청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는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은 단지 책을 파는 장소만 다른 것으로 생각했는데 삼일문고를 보자니 새삼 오프라인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복합문화공간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지하층의 강연장은 아예 책을 전시하지 않고 오로지 강연을 위한 공간으로 양보하고 있었고, 출판사의 요란한 광고 대신에 서점 자체에서 따로 책 소개를 하는 띄지를 선보인다. 고민을 적어내면 약(책)을 처방해준다. 



책과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방이자 놀이터가 바로 구미 삼일문고라는 생각을 한다. 내부 공간도 절묘하고 재미나게 배치하여 책장이 마치 숲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두막집 같은 느낌을 준다. 꼭 돋보기를 끼고 보지 않아도 삼일문고 책들은 또렷하게 보인다. 재미나고 따뜻한 곳이다. 구미 삼일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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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10-0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만담 좋은 책이죠. 맨 앞에 전시한 건 서점 측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요. 안경 쓰기 전에 한번 뵀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안경 쓰고 만나요. 저는 참고로 눈은 작아도 시력은 좋습니다

박균호 2019-10-06 21:40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저는 퇴근하면 늘 한가합니다 ^^ 저도 눈은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돋보기를 쓰니까 너무 쾌적해서 우울해질려고 합니다.ㅎㅎㅎ
 
독서 주방 - 불과 칼 사이에서 따뜻한 책읽기
유재덕 지음 / 나무발전소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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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무척 좋아하는 제자가 있다. 이 학생은 시험기간이 되면 읽던 책을 친구에게 맡겨두고선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돌려받지 않기로 맹세한단다. 그러니까 이 학생에게는 이런 식의 강제적인 자기 구속을 하지 않으면 너무 재미나서 읽기가 참기가 어려운 책이 있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칼잡이 즉 셰프인 유재덕 선생의 <독서 주방>이 내게는 그런 책이다. 지난 몇 년 전부터 신문 칼럼으로 연재된 유재덕 선생의 글을 일부러 읽지 않았더랬다. 


요리사는 어떻게 글을 쓰는지, 음식을 어떻게 글로 녹여 내리는지 궁금했지만 참았다. 이게 나만의 특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지면이든 모니터이든 내가 인식하고 싶지 않은 정보는 눈에 보이지만 뇌로는 인식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항상 칼럼제목과 필자 사진만 보고 지나쳤었다. 언젠가는 책으로 나올 것이니 책으로 한꺼번에 읽고 싶었다. 


과연 몇 년을 칼럼의 한 줄도 읽지 않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첫 쪽부터 긴장감과 절제미가 넘치는 글이 이어지는데 숨을 죽여가면서 읽게 된다. 음식 재료를 맛을 보고 알아내는 과정일 뿐인데 마치 거대한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스릴이 넘친다. 요리로 일가를 이룬 분인데 글 솜씨마저 이렇게 좋으니 자괴감이 생긴다. <독서 주방>을 읽다보면 역시 글쓰기는 재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색이 책을 7권을 낸 바 있어서 강제적인 글쓰기 훈련을 오랫동안 한 나보다 글이 훨씬 좋다. 


읽어갈수록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유재덕 선생의 글 솜씨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솟구친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요리사답게 식습관을 기준으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시장 통 유세를 다니는 영상을 찾아서 음식을 보는 시선, 그것을 집어드는 손 모양, 입에 넣어 씹고 삼킬 때의 표정 등을 평가 재료로 삼은 모양이다. 


먹는 방법으로 품성을 환히 볼 수 있었다는데 ‘거친 음식을 드시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품위 있던 바로 그분’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유재덕 선생의 통찰력과 글쓰기에 대한 천재성을 발견하게 된다. 최대한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지만 그 정답은 누가 봐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품위 있게 풀어내는 솜씨라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사는 미슐렝의 별이 주렁주렁 달린 최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생명의 철학을 위해 자신의 부엌에서 날마다 음식을 만드는 주부들이다!’


<독서 주방>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구절이다. <독서 주방> 북콘서트에서 유재덕 세프의 딸아이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해서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유재덕 셰프는 성공한 전문가라기보다는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 존경은 사회적인 성공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가족을 아끼는 지극한 정성과 사랑덕분이라는 것을 그의 글 몇 줄만 읽어도 알겠다.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 너무 어려서 술을 마실 수 없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술에 취하면 안 되니까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다는 구절을 읽고 내가 얼마나 내 가족에게 미개했는지 실감했다. 세상에 이토록 따뜻하고 자상한 가장이라니.


 유재덕 셰프의 직업적 성공은 위대한 재능 덕분이 아니고(심지어 그는 조리가 아닌 식품공학을 전공한 이방인 이었다) 겸손하고 노력하는 마음 덕분인 것도 알겠다. <독서 주방>을 읽다보니 유재덕 셰프야말로 독서를 가장 실용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겠다.


주방에서 일이 꼬이거나 심지어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 때문에 슬플 때도 그가 해답을 구하고 위안을 구하는 것은 요리에 관한 책이었고 책은 그에게 해답과 위안을 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재덕 셰프가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쓰는 이유를 알겠다. 요리를 하는 과정은 글쓰기의 그것과 닮았다. 좋은 음식 재료(글쓰기 재료)를 준비한 다음 차례를 잘 지켜서 진행을 하며 음식이 다 되면 맛을 보고(퇴고) 간을 맞추지 않는가 말이다. 요리사로서 경력이 20년이 넘었으니 겨우 10년 경력이 채 되지 않은 나보다 윗길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유재덕 셰프가 말하길 음식은 생의 이미지 그 자체이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던 음식을 해놓으면 잠시나마 그 분이 본인 곁에 온다고 한다. 내 어머니는 종부로서 평생 떡을 만드셨는데 그래도 떡을 가장 좋아하셨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땐 이젠 떡을 내 곁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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