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알라디너 분 중에 상당수가 작가가 있고 또 미래의 작가분도 계시니 참고삼아 출판 계약에 관한 이런저런 실무 상황을 정리해본다.

 

일반 출판과 자비 출판

출판 비용을 출판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일반 출판이라고 하고 본인 돈으로 출판하는 것을 자비 출판이라고 한다. 자비 출판은 그야말로 내 돈 주고 내 책을 내는 것을 말한다. 책을 내고 싶어도 내 줄 출판사가 없는 경우에 선택하는 차선책이다. 한 번도 자비 출판을 한 적이 없어서 비용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업체별로 차이가 많은 것 같다. 확실한 것은 본인 돈으로 출판 비용을 대고 출판사는 돈을 받고 책을 내주면 임무는 끝난다. 마케팅이나 이런 것은 없다고 봐야 한다.

 

표지디자인, 내지 편집 등이 매우 촌스럽고 조악하다. 한 눈에도 자비 출판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작가로서 인세가 일반 출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출판 비용과 기타 비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가의 몫이 된다.

 

2. 계약금

일반적으로 100만 원이다. 계약금은 어차피 초판 원고료를 미리 받는 것이니까 얼마를 받든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출판 계약을 체결하고 나서 1달 이내에 지급한다.

 

3. 인세

이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나의 경우는 보통 판매량의 10%. 십년전 첫 책을 낼 때는 8%를 받았다. 그 이후로는 쭉 10%를 받았는데 이게 출판사마다 미묘하게 조항을 다르게 해서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같은 10%라고 할지라도 작가의 수령액이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인세를 매 쇄 새로 할 때 지급하는 출판사가 있고 한 해에 두 번 지급하는 곳이 있다. 후자가 좀 더 흔하다. 또 매 쇄 발행할 때마다 발행 부수에 비례해서 지급하는 곳도 있고 판매 부수에 비례해서 인세를 지급하는 곳이 있다. 이건 유심히 살펴야 한다. 가령 초판이 다 팔리고 2쇄를 1천 부 발행했다면 전자는 1천 부에 대한 인세를 지급하지만, 후자는 2쇄 중에서 팔린 부수만큼만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2쇄를 1천 부 발행했다고 하더라도 1백 부만 팔렸다면 1백 부만큼만 인세를 지급한다.

 

초판 인세를 판매 부수만큼 주겠다는 출판사가 있다면 상종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출판사에서 출판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대중적인 판매가 어려운 학술서나 시집은 인세를 책으로 받기도 한다. 그건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4. 홍보용 도서 및 저자 증정용 책

책을 내면 보통 홍보용으로 뿌린 책에 대해서는 인세를 받지 않는다. 다만 발행 부수의 10%를 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1천 부를 찍었는데 홍보용으로 300부를 뿌렸다면서 그 부분에 대해 인세를 주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 조항을 명시하는 것이 좋다. 저자 증정본은 일반적으로 초판은 10부 재판부터는 2부다. 또 저자가 본인 책을 출판사에 구매할 때는 정가의 30%를 할인받아서 구매한다는 조항이 일반적이다.

 

4. 집필에 따르는 비용 부담

원고를 쓰다 보면 관련 자료도 구입하고 이것저것 비용이 드는데 일반적인 계약서에는 이건 작가의 부담이다. 다만 다른 책을 인용할 때 저작권 문제인데 보통은 출판사에서 부담한다. 다만 출판사에 따라서 저자가 부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비용이 만만찮다. 다른 책에서 인용하는 경우 출판사에서도 비용과 절차 때문에 꺼린다. 되도록 인용은 피하는 것이 서로 좋은 일이다.

 

5. 바람직한 계약의 전형적인 예

인세 10%에 매 쇄 발행할 때마다 발행 부수에 비례해서 인세를 지급한다면 일단은 괜찮은 출판사를 만났다고 생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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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3-07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꿀정보네요~ 생전 책 한 권 낼 수 없을 거 같지만, 알아두면 좋잖아요~ 하하하하하핫!!

2021-03-07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3-07 10:57   좋아요 2 | URL
아니, 왜 우세요~ 당연히 후기 남겨야죵~~ 아껴읽느라 그만..ㅎㅎㅎ 조만간 올릴 겁니다!!😊

2021-03-07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3-07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번의 정보는 정말 몰랐던 그러나 꼭 알아둬야 할 사항이네요. 상세히 보면 결국 책을 쓰는 저자들이 부담하는 비용이 크고 출판사 측은 최소비용에 최대 이익을 거둬드리는 계약이고

박균호 2021-03-07 10:59   좋아요 0 | URL
네 그런경우가 많지요. 계약서에는 저자가 갑이고 출판사가 을인데 말이죠.
 
장벽 너머 단 하나의 길 청소년문학의 봄 1
알렉산드라 디아즈 지음, 조수연 옮김 / 봄개울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종이 신문을 구독할 필요가 있다. 주말 북 섹션은 한 주 동안의 신간이나 독서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좋은 매체다. 정치경제면이 아무리 꼴통이라도 북섹션은 좋은 퀄러티를 자랑하는 신문이 많다. 한 해에 몇 달은 거처가 달라지는 나로서는 종이 신문을 구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다행히도 SNS나 알라디너 덕분에 종이 신문을 구독하지 못하는 부족함을 채운다. 페이스북 친구를 주로 출판사 경영자, 편집자, 작가, 독서가로 채우다 보니 이분들이 포스팅하는 글만 보아도 충분히 출판 방향과 신간 정보를 입수하는 데 문제가 없다. 급기야 집필해야 하는데 좋은 책을 소개하는 포스팅을 보고 그 책을 사서 읽느라 집필이 미뤄지는 부작용이 있을 정도다.

 

<장벽 너무 단 하나의 길>도 이런 경로를 통해서 읽게 되었다. 여기 이웃 알라디너 분이 번역한 책이라서 냉큼 주문했는데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중앙아메리카 이민자들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자유를 찾아서 위험한 국경 장벽을 넘는 사람들이라는 교과서적인 개념이 아니고 그 들의 삶으로 들어가서 밀착 취재한 것 같은 구성인데 나도 모르게 그들의 절박함에 스며들어서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읽어 나갔다.

 

중앙아메리카인들이 단순히 부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고 누구나 그 상황이 되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든 가장 큰 수확이다.

 

이념적이고 이론적인 배경 설명이나 기술보다는 상황 설명과 대화를 통해서 주로 진행이 되는데 이런 구성은 확실히 독자들 스스로가 중앙아메리카인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번역하신 알라디너 분은 이 책을 번역하면서 멕시코 지도를 펼쳐놓고 무사히 장벽을 넘도록 기도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도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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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3-05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알라딘은 너무 좋은 곳이에요~ㅠㅠㅠㅠㅠ

박균호 2021-03-05 23: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ㅎㅎ

바람돌이 2021-03-0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던곳을 떠날수밖에 없는건 정말 절박하기 때문이죠. 저는 다른 책에서 치안이 무너진 나라에서 실제로 딸이 마약조직에 끌려갈 위기때문에 살기위해 장벽으류 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봤어요. 아 나라도 그러겠구나싶더라구요. 언제쯤 세상이 그래도 안전하게 내 고향에서 그냥 평범하게 살수닜게 될까요. 항상 어디선가는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니말이죠.

박균호 2021-03-05 23:49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 케이스와 비슷한 이유로 이 책의 주인공들도 장벽으로 향합니다.

psyche 2021-03-08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리뷰를 남기시다니 감동 + 감사합니다!

박균호 2021-03-08 08:17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제가 덕분에 좋은 책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우리 집은 세 식구인데 교사가 2명이고 학생이 1명이다.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우리 집은 방학 때가 가장 행복하겠고 개학이 되면 뿔뿔이 흩어질 운명이다. 근무처가 너무 멀어서 주말부부 신세인데 딸아이는 그 와중에 멀리 서울로 대학을 갔다. 


우리 부부는 방학 때 요란스럽게 교육활동을 하지 않는 학교에 근무하다보니 아무래도 방학은 사이버연수라든가 다음 학기 준비를 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코르나 때문에 재작년 겨울에 본가에 내려온 딸아이는 어제까지 집에서 지내다가 이제야 서울로 올라갔다. 겨울방학 내내 우리 세 식구는 집에서 같이 보냈다. 지나고 보니 참 행복했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좀 더 재미나게 지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우리 부부의 루틴은 변함이 없겠지만 대학 3학년이 되는 딸아이는 이제 방학이 되어도 집에 내려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취업 공부도 해야겠고 인턴 활동도 필요하단다. 취업을 하고 결혼도 할 테니까 올 해처럼 몇 달 동안 우리 식구가 모여 사는 시절이 또 올까 싶다. 가끔 교육대학에 가서 교사가 되라는 우리 부부의 조언을 거절한 딸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본인의 인생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하겠다는 결심은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한다. 


이번 겨울 우리 세 식구가 함께 보내는 마지막 평일, 주말을 기념하고 소풍을 다니며 외식을 했다. 마지막 날에는 딸아이가 오늘은 세 식구가 같이 자자고 보채는 바람에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주책을 부리기도 했다. 서울에 올라간 딸아이는 다행히 좋은 친구와 선배가 있어서 환영을 받고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또 혼자 사는 곳으로 내일 새벽이면 떠나야 한다. 그래봤자 금요일이면 다시 돌아올 텐데 마음이 아프고 혼자 남은 아내가 안쓰럽다. 큰 집에 아내 혼자 남겨두고 가려니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된다. 혼자 남은 아내는 얼마나 쓸쓸할까. 


오랜만에 책을 꺼내들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인데 건축가의 이야기다. 한 참을 읽다가 거추장스러운 외지를 벗겼는데 세상에! 내지 디자인이 건축가의 중요한 소재인 목재다. 겉표지는 주인공 건축사 사무실의 여름 별장이 자리 잡은 풍경을 연상케 하고 내지는 그 건축가가가 즐겨 사용한 건축 자재를 담는 천재성이라니. 이런 출판사는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으면서 우리 세 식구의 추억도 오래 우리 집에 남기를 희망해본다. 다가올 여름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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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vebooks 2021-03-01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가... 마음이~ 아련해지네요
곁에 있음의 소중함,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박균호 2021-03-01 17:26   좋아요 1 | URL
네 공감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비오는 삼일절 편안하게 보내세요...

stella.K 2021-03-01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었던 책이라 반갑네요.
책 정말 잔잔하죠? 착한 일본 만화 보는 것 같기도 하고.ㅎ

사진 따님이신가 봅니다.^^

박균호 2021-03-01 19:20   좋아요 1 | URL
네 재미나요😃 딸아이 맞습니다 ㅎ

바람돌이 2021-03-02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커갈수록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죠. 저희는 아직 모든 식구가 같은 집에서 복작거리는데 이 글 읽다보니 얼마 안남은 이 시간들을 좀 더 소중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
아니 나만 소중하게 여기면 뭐해, 우리집 저 어린 것들은 하나도 소중한거 모르는데 싶어서 또 울컥합니다. ㅎㅎ

박균호 2021-03-02 06:32   좋아요 0 | URL

지금 현재가 가장 행복한 순간 인 것 같습니다. 함깨 사는 지금이요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아내에게 붙잡혀서 아내를 업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키 170cm의 건강한 아내를 업은 조랑말이 되었다. 초원을 누빌 처지는 아니어서 소박하게 거실을 몇 바퀴 도는데 딸아이가 재미나다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동영상을 찍는다며 깔깔 거린다.
아내를 업고 숨이 차는데 갑자기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마침 요양원에 독감주의보가 내려서 한 달 종안 면회를 못 간 사이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원통한 마음이 더한데 별의별 원통한 마음이 많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한 번도 업어드리지 못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슬픈 일인지 실감이 된다. 이제는 어머니를 업어드릴 방법이 없다.
요양원에 어머니를 뵈러 가면 주로 사이좋게(?)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 언성을 높이며 싸울 때가 있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간식을 먹으라고 강권을 하는 경우다. 어차피 자식들이 어머니 드시라고 조그마한 냉장고에 우겨넣은 것들인데 내가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번번이 거절하고 또 거절했다. 한번쯤은 어머니 앞에서 게걸스럽게 마구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어머니가 한탄하시면서 ‘빨리 죽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구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늘 투명스럽게 ‘또 쓸데없는 소리 하신다’고 말하기만 했지 한번이라도 ‘도윤이 시집가고 증손자 볼 때까지 사셔야지’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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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21-02-25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처럼...
알라딘에도 ‘좋아요‘ 말고 다른 표현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이 글에는 ‘슬퍼요‘나 ‘힘내요~‘를 남기고 싶습니다.

박균호 2021-02-25 21:32   좋아요 2 | URL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붕붕툐툐 2021-02-2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쿵.... 재밌다가 안타깝고 찡한 얘기네요... 박균호님이 어머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늘나라까지 전달되었을 거예요~~

박균호 2021-02-26 05:2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해요....툐툐님..

바람돌이 2021-02-26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을 생각하면 항상 이런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박균호님 어머님은 님의 말속에 들어있는 뜻을 아마 다 아셨을걸요. 원래 부모님이 그렇잖아요. ^^
그나저나 아직은 아내분을 업을 수 있군요. 연애할때는 저도 업혀봤는데 이제는 남편 허리 부러질까봐 업어달란 소리 못합니다. ㅠ.ㅠ

박균호 2021-02-26 05:27   좋아요 0 | URL
간신히 업습니다..ㅎㅎ 드라마 같은데 보면 남주가 여주 업고 한 참을 걸어서 집에 데려다 주는 장면이 부럽고 대단하게 생각되더라구요..

psyche 2021-02-26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와 아직 아내분을 업을 수 있다니 대단하시다 (저도 바람돌이 님 처럼 남편 허리 부러질까봐 업어달라고 못합니다. )하면서 읽어 내려오다가 찡했어요. 저는 작년에 급하게 한국에 갔지만 자가격리하느라 아버지랑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얼마나 원통하던지...

박균호 2021-02-26 06:51   좋아요 0 | URL
이게 대단한 것인가요 ㅎ....네 돌아가시면 원통한 일 투성이네요..모쪼록 프시케님의 아버님도 명복을 누리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나 혼자 쓴 것이 아니다. 많은 분들이 희귀한 사진을 제공하셨고 도움을 주셨다. 여러 출판사에서도 귀한 원본 사진을 기꺼이 보내주셨다.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을 내면서 특별히 좋았던 점은 <성문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 선생이 베푼 거대한 선행과 아내를 향한 극진한 사랑을 담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분의 자제분은 사실 관계 확인과 사진 자료를 보내주셨는데 고맙게도 학창시절에는 넘지 못할 거대한 적이었던 성문종합영어도 보내셨다. 




고등학교 시절 그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분의 자제분이 보내주신 성문종합영어를 붙잡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영어교사가 되었다고 해서 이 책을 여러 번 보았다고 생각들 할지 모르겠다. 정확히 나는 전체 20장중에서 6장까지 겨우 공부하다가 덮었었다. 대신 내가 탐닉한 것은 <진본 영문해석 1200제>라는 책이었다. 나는 영어 참고서를 표지를 보고 선택한 학생이었다.


그 해 대입 영어 시험지를 보자마자 성문종합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차원이 다른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더라. 물론 <진본 영문해석 1200제>도 영어 참고서의 고전으로 군림한 좋은 책이다. 


일본 참고서를 참고해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오명을 송성문 선생은 한평생 변명하지 않으셨고 대신 문화재급 서책과 자료를 수집하는데 몰두했다. 송성문 선생이 평생 모은 문화재를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그 양과 질이 박물관이 개관한 이후로 최대, 최고였다. 박물관 관계자 입장에서는 경천동지할 사건이었다. 내가 송성문 선생을 더욱 존경하게 된 것은 당신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시 두 편을 읽고 나서였다. 고구마 줄기 무침을 유난히 좋아하셨다는 송성문 선생의 소박하고 진솔한 아내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시를 책에 실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바둑 소설 <명인>을 번역했던 민병산 선생의 자제분도 내게는 은인 같은 분이다. 최근에 번역된 <명인>도 좋은 번역이긴 한데 민병산 선생의 번역본은 <나는 이  소설의 작자인 가와바타 야승나리보다 그 번역자인 민병산 선생의 글을 더 좋아한다>로 시작하는 신경림 선생의 작품해설이 유명하다. 또 민병산 선생 본인이 바둑 광이어서 번역이 유려하다.



참고로 <명인>은 불패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와 젊고 패기만만한 기타니 모노루(조훈현 9단의 스승이기도 하다)와의 반년에 걸친 대국 관전기라고 볼 수 있는데 바둑을 둘 줄 모르는 나도 흥미롭게 읽었을 정도로 묘한 재미가 있다.


어쨌든 민병산 선생의 자제분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 분에 대한 일화와 귀한 자료를 기꺼이 제공하셨다. 민병산 선생의 일대기와 마지막을 읽게 되면 이 분의 인품과 인간미에 누구나 감탄하게 되리라. 


민병산 선생의 자제분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을 보내드렸는데 며칠 후에 내가 보냈던 택배 봉투가 고스란히 돌아왔다. 개봉해보니 서예가로도 유명한 민병산 선생의 작품이 들어있었다. 그 고마움을 오롯이 표현하기 위해서 그 분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한참을 연습한 뒤에 전화를 드렸었다. 표구를 해서 서재에 모셔두고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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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2-24 0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겸양의 말씀을.
제가 본고사를 보고 대학에 들어갔는데요, 고등학생 시절에 성문 기본, 핵심, 종합을 다 떼야 이름만 들어도 으시시한 천이백제 들춰볼 내공이 쌓인다고 했습니다. 당시 실제로 천이백제 공부한 애들은 최상위 몇 명 뿐이었습지요.
그러니 여러분! 박균호 님께선 애초부터 영어에 남다른 자질이 있으셨던 겁니다!!!

박균호 2021-02-24 10:29   좋아요 1 | URL
저는 그냥 겉멋으로 ㅠㅠ 성문종합영어 문법 문제가 풀기 싫었어요 ㅎㅎ그 해 대입이 문법으로 도배가 되었더군요 ㅠㅠ

stella.K 2021-02-24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씀하신 두 이야기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민병산님의 책은 정말 읽고 싶더군요.
성문 영어 책은 지금도 나오고 있는 책인 줄 몰랐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영어와는 담을 쌓고 지내다 보니.
그래도 가끔 궁금하긴 했었습니다. 학제가 과거와는 많이 다를텐데
그 책은 지금도 나오고 있나.
지금도 후기를 보면 칭찬 일색이던데 이걸로 다시 영어 공부를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균호 2021-02-24 13:13   좋아요 2 | URL
네 성문 영어 변함 없는 디자인으로 요새도 나와요 ㅎㅎㅎ

붕붕툐툐 2021-02-24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병산 선생님 글 너무 좋네요~👍
서로가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모습 보니 절로 흐뭇합니다~ 참 행복하시겠어요~😊😊

박균호 2021-02-25 04:47   좋아요 0 | URL
네 재미나고 감동적인 일화가 많은 분이에요..

kwansooko 2021-02-25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책을 읽고, 공부했던 <성문종합영어>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버렸죠.
책 뒤에 또 이런 일화가 있었네요.

박균호 2021-02-25 13:44   좋아요 0 | URL
아이코 선생님 여기 까지 찾아주시고 !! 영광이에요!

쉽싸리 2021-03-24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책내신거 축하드립니다. 그때 바둑관련해서 통화했던 사람입니다. 벌써 일년도 전이죠? 가물가물...
민병산 선생이라! 어마어마 합니다. 저도 새로나온 ‘명인‘은 읽어봤지만 민병산 선생 ‘명인‘은 언감생심이죠...
새로내신 책은 아직 못봤어요. 조만간 볼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박균호 2021-03-24 08:15   좋아요 0 | URL
아이고 반갑습니다. 그때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서 참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사실 제가 바둑을 잘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민선생님 번역 못지 않게 새 번역도 훌륭했습니다. 다른 분의 평가도 그렇고요. 그냥 기념으로 소장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선생님의 기보 사진을 책에 수록하지 못했습니다. 출판사에서 그리 결정을 했는데 대신 대국 모습을 담은 사진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고맙고 여기에서 뵈니 더욱 반갑네요. 친구 신청드렸어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