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종조모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장례식장에서 한나절 머물다가 집으로 내려왔다. 나에게는 넷째 할아버지의 아내가 되는 고인은 우리 집안에서 독특하고 특별한 분이셨다. 유교적 관습의 틀 속에서 옹기종기 유대관계를 지켜나가던 다른 친척과는 달리 깊은 산 속에 혼자 사는 꽃사슴과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탑골을 본거지로 하는 함양박씨 일족이라는 소속감과 유대관계를 다지는 명절과 제사에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집안의 다른 여인네처럼 일찌감치 종갓집 와서 음식을 장만하고, 차례나 제사가 끝나면 큰 방에 둘러앉아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떨다가, 늦은 오후가 되면 성미 급한 남편들의 재촉에 쫓겨 명절 음식을 싸 들고 길을 떠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서 유교적 제례에 불참했을 수도 있고 워낙 허약한 분이어서 귀향길 자체를 자제했을 수도 있겠다. 종조모님은 일찍이 병약한 건강 문제로 유명했던 분이다. 집안 아주머니들이 번갈아 가면서 종조모님을 대신해서 빨래해주었다니 ‘시집을 올 때부터 병자’였다는 말이 대단한 과장은 아닌 듯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젊은 시절부터 종조모님에 대한 주변의 건강에 대한 평판과 진단을 고려하면 50년 전에 고인이 되었다고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50년 전에도 ‘아니, 아직 그 사모님이 살아 계신단 말이냐?’며 오래 보지 못한 지인을 놀라게 한 분이다.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모르는 사이에 고인이 되어서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 계신 것으로 놀라게 한 분이 종조모님 말고 얼마나 더 있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시집온 이후로 평생 명절에 시댁을 찾지 않은 며느리를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아프고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식구로 여겼던 모양이다. 워낙 왜소하고 마른 체구이셨다. 종손인 나도 넷째 종조모님이 명절 때 고향에 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종조모님은 평생 명절 제사 차례에 불참했지만, 우리 집안 어른이라는 정체성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다른 어른에 비해서 어른으로서의 위세와 친근감 또한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어른과는 달리 종조모님을 뵐 때는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말을 하고, 옷깃을 한번이라도 더 여미고 인사를 했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50년 이상 이 세상을 함께 했지만 96세를 일기로 소천하신 작은 할머니를 뵌 적은 많지 않다. 20년 전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 작은 할아버지 댁을 인사차 갔었는데 할아버지는 어디 가시고 없고 할머니만 ‘이불을 끼고’ 안방에 앉아 계셨다. 근황을 여쭈니 ‘이불만 끼고’ 사신다고 하셨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오래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오랜만에 외출하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한 아이가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오더라는 것이다.

“너, 왜 나를 따라오니?”

“네, 할머니 저기 뒤에서 나쁜 아이들이 저를 따라와서 무서워요”

“아, 그래? 그럼 나하고 같이 가자. 이리 오너라”


아이를 만났다는 곳은 대구의 중심가 거리 중의 하나였고 할머니 말고도 지나가는 건장한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왜 자그마한 키에, 구부정한 허리, 마른 체구를 가진 병자로 보이는 할머니 품으로 들어오려고 했을까.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는데 나는 그 아이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할머니는 연약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영민함과 따뜻한 배려심이 묻어 나오는 눈빛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온화한 인상에서는 누구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의지와 힘이 내비치는 분이다. 품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를 내치지 않고 함께 걸었던 할머니의 행위에는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을 기도하면서 살아오신 따뜻한 분은 무서울 것도 주저할 것도 없으니까. 장례식장이 있는 안성에서 한참을 운전해서 대전 밑으로 오니까 도로는 한산했고 초저녁 밤은 고요했다. 고향 집 내 방에서 벽에 기대어 있다 보면 은은하게 교회 음악 소리가 들려올 시간이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마치 자장가로도 들리는 그 소리를 나는 무척 좋아했고 평온함을 느꼈었다.


어둠이 깔린 도롯가로는 안개처럼 수증기가 몽글몽글 올라가고 긴 여행에 지친 아내는 조수석에서 고요히 잠들고 있었다. 할머니와 나눴던 마치 꿈속에서 있었던 일로 느껴지는 추억이 생각났다. 


그날도 딱 지금처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초저녁이었다. 고향 집에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할머니셨다. “이 좋은 것을 나 혼자 누리고 죽으면 죄가 될 것 같아서‘전화를 하셨단다. 첫 마디를 듣고 할머니가 하도 오래 아프셔서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명약’이라도 알려주시려나 싶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교회’ 말씀을 하셨다. 


‘죽을 때까지 유교 사상을 버릴 수 없다’고 단언한 아버지의 아들이며, 그 아버지를 종교처럼 생각하는 아들인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다. 구미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마디도 듣지 못하는 것이 탑골을 본거지로 하는 함양박씨 남자들의 주요한 특징이다. 할머니가 알려주신다는 것이 귀한 정보가 아니라는 실망감은 다소 실망감은 있었지만 대략 20분간의 말씀을 조신하고 귀하게 들었다.


 타고난 성품과는 다르게 말이다. 손자로서 어른의 말씀을 공손하게 들어야 한다는 윤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할머니의 말씀이 어찌나 따뜻했는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할머니의 말씀은 온전히 손자에 대한 연민과 배려 그리고 사랑만 있었지 세속적인 다른 말로 부를 수 없었다. 간곡하게 ‘가까운 아무 교회나 다녀라’고 하시는데 ‘알겠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밖 에 없지 않은가. 


무작정 할머니 품으로 와 함께 걸었던 그 아이도 나처럼 따뜻했을 것이다. 그날이 할머니와 내가 나눴던 처음이고 마지막 통화였다. 물론 예수님 믿으라는 이야기도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은 평온했지만, 할머니의 간곡하고 따뜻한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한 죄책감과 조문을 다 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득 유난히 하늘이 포근하게 느껴져서 올려 보았다. 그림 같은 구름 위에서 할머니와 내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 할머니가 말씀하신 ‘이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은 멀지 않을 터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안방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 할머니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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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11-2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분간 잘 들어주시고 알겠어요 라고 대답해 주신 것으로 충분할 듯 합니다. 종조모께서도 만족하셨을 거에요. 종조모님도 훌륭하시지만 그 분 품성 자체로 인정하시고 평생 명절 차례 불참하셨어도 탓하지 않으신 다른 어르신들도 존경스럽습니다. 박균호 작가님 글에서 느껴지는 따스함도 물림인가 생각해봅니다^^

박균호 2019-11-26 22:41   좋아요 0 | URL
늘 좋게 말씀해 주셔서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쓴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가 ‘세종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우수 도서’에 연이은 경사입니다. 부족한 제가 책을 쓰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원고 쓰는것이 어렵다고 ‘더 이상 못해먹겠다’며 투정을 부린 저를 다독거려주시고 아낌없는 조언을 주신 갈매나무출판사 박선경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는 고전을 색다르고 재미있는 시각으로 읽자는 생각으로 쓴 책인데 또 다른 독자의 또 다른 시각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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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25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축하합니다. 올해 좋은 일이 많으셨군요.
근데 원고료 반환에 계약 파기까지 하셨다니 마음 고생이 심하셨나 봅니다.
또 그런만큼 기쁨이 남다르시겠어요.^^

박균호 2019-11-25 16:49   좋아요 1 | URL
정말 고맙습니다. 파기를 하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냥 원고 쓰기 힘들다고 투정 부린거에요.

빵굽는건축가 2019-11-25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박균호 2019-11-25 16:50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고맙습니다.

moonnight 2019-11-2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합니다. 고생하셨는데 보람도 크시겠어요^^

박균호 2019-11-26 11:23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9-11-26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이 책을 쓰시면서 힘들어 하시는 것도 지켜보았고,
읽어보고 한낱 투정에 지나지않으셨다는 걸 확인한 저로서는,
많이 축하드릴밖에요~^^

박균호 2019-11-26 23:16   좋아요 0 | URL
아, 따뜻한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어려서부터 성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전문가와 성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많은 두 아이의 엄마가 쓴 성교육 책이다. 자식이 대학 신입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성에 관해서는 아이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아재 독자로서는 더 이상 흥미로운 수 없는 책이다. 주문한 책을 기다리는 것은 항상 설레지만 이 책은 유난히 그랬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공동저자인 최은경 기자가 부디 발칙한 질문을 거침없이 해주기를 응원하면서 배송상황을 실시간으로 주시한 끝에 영접을 하였다.


최은경 기자와 나는 더 이상 성교육을 받고 실습(?)을 해볼 기대로 잠을 설칠 나이는 아니다. 다만 자식과 어떻게 섹스 이야기를 나눌지 모르는 부모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아이를 둔 부모가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길을 끌어서 베스트셀러가 되겠다는 욕심은 보이지 않고 부모가 알아야 할 필요한 성지식을 차분하고 자세하게 알려준다. 성교육 책에도 필수 교과목이 있다면 이 책이 교재가 되어야 한다.


요즘 학교에서는 예전과는 달리 성교육을 좀 더 많이 한다. 하지만 정규교과가 아니고 이따금씩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성 문제를 일상이 아닌 과외활동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성 교육 자체가 성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고 있는데 민망하게 부모가 가정에서 성교육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이 의문에 대한 내 대답은 확고하다. ‘부모의 성교육은 학교와는 별개로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이 실제로 만나는 성과 관련된 일들은 가정을 비롯한 학교 밖에서 주로 일어나지 않는가 말이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에는 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자식을 둔 부모라면 꼭 알아야 할 성지식과 이슈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망라되어 있다. 노브라, 19금 동영상, 화장하는 아이, 생리, 동성애, 낙태, 데이트 폭력, 정애인의 성, 성범죄 등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아이를 위한 성교육 강사가 아니고 학생이 먼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른이라면 이 책이 좋은 선생이 되어 줄 수 있겠다. 


생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생리 혈 자체에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고 생리대에 들어 있는 화학약품 때문에 불쾌한 냄새가 생성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생리하는 여자의 고생을 단지 생리통으로만 생각했던 무지도 반성하게 되었다. 자기도 느끼지 못하게 생리 혈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굴을 낳은 느낌’이 난다니 그 불편함을 상상도 못하겠다. 이 책이 성을 배우지 못한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위생적이고 안전한 생리 컵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상한 책이기도 하니까.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을 읽다가 육성으로 한탄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섹스를 ‘남자가 성기를 삽입하면서 시작되고 사정을 하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섹스는 남자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닌데 남자의 행위로 시작해서 끝나는 것이 섹스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이다. 섹스의 주체로서 여성은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섹스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영접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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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11-21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대로된 성교육을 받지못해서 슬플때가많았답니다ㅜ

박균호 2019-11-21 17:32   좋아요 0 | URL
우리 같이 받아요. 성교육...ㅎ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 서재에 읽지 않은 책이 쌓여 있는 것은 책을 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읽는 속도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일단 사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더 이상의 용도가 없어져서 그냥 아무렇게나 내 팽겨 둔 이유가 더 크다.


 좋은 책은 사두면 언젠가는 읽게 되겠다는 기대는 별로 없다. 유혹하는 책을 발견하고, 주문하고, 택배를 기다리고, 도착한 택배를 열어서 새 책을 만지작거리는 몇 분 정도까지가 책과 관련된 나의 즐거움은 거의 끝난다. 철이 없는 것은 알겠는데 호사스러운 취미는 아니다. 한 달에40만 원 정도의 투자로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취미 생활이 책 사재기 말고 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은정 작가가 쓴 <눈물이 마르는 시간>은 사는 즐거움, 읽는 즐거움, 읽은 보람을 모두 만족시키는 희귀한 책이었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유난히 책을 사는 재미가 뛰어났고, 도착한 책은 ‘손맛’(적당한 크기, 재질, 재본 상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이 탁월했다. 표지는 화사한데 제목은 ‘멜랑꼴리’하다. 


평소대로라면 잡은 물고기를 통에 휙 던져 넣는 것처럼 내 서재나 책상 구석에 꾸겨 넣어야 하는데 이 책은 시선을 잡아끌었다. 읽기 시작했는데 온종일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쪽까지 읽고 나서야 이 책을 내려놓았다.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심정이 이해가 되겠더라.


읽고 나니까 이 책을 읽은 감상을 쓰고 싶어졌다. 내 글쓰기 인생에 졸음을 참아가면서 글을 쓴 것이 아마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을 때 언제 가장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가 하면 책 속에서 꼭 나 같은 사람을 만날 때다. 현실 세계에서는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하고 별나다 싶은 나의 독특한 면을 책 속에서 캐릭터나 화자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면 그것만큼 재미나고 위안이 되는 경우가 없다.


만선 하지 못하고 항구로 돌아오는 어선에 탄 선원의 근심을 읽어내고, 엄마가 없는 엄마를 위로할 줄 알며, 동네 할머니가 건네준 오래된 수저와 며칠 뒤에 세상을 달리한 그 할머니의 죽음 사이에 있는 개연성을 생각하는 공감이 감동적이었고 위로가 되었다. 정작 본인은 남들은 아름답고 늠름한 보는 나무를 ‘목매달기 딱 좋은 나무’로 보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궁핍하고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담담한 어조로 찬란한 슬픔을 말하는 이은정 작가의 글쓰기가 놀랍고 존경스럽다. 


쳐다보는 것만도 아까워서 눈물이 났던 그 사람이, 기필코 이생에 이 사랑 하나는 지키겠노라 다짐하게 했던 그 사람이, 이제는 남이 된 채 미안해, 미안해를 반복하며 내 우체통에 꽂혔다. 그 수많은 편지를 쓰며 그가 흘렸을 후회와 자책의 눈물 자국이 편지지에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나는 그저 할 만큼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할 만큼 하고 미련 없이 당신 인생을 살라는 뜻이었다. 그는 이미 늦은 사람이었다.


이은정 작가만큼 책에 대한 진솔한 사랑을 보여준 사람을 보지 못했다. 꿈과 낭만이 담긴 수 백 권의 책을 헌책방에 팔아넘기기로 하고 트럭으로 실려 나갈 때 작가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책을 판 돈을 들고 내내 울었다. 나는 안다. 이은정 작가는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생명이 없는 물건에도 연민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 어머니가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났을 때 우리 아버지는 나를 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쳐다보는 것만도 아까워서” 


<눈물이 마르는 시간>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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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명령하기를 딸아이의 입장에서 겪었을 지도 모르는 성차별적인 에피소드를 써보란다. 양성평등 교육을 직접 가정에서 챙기겠다는 말인 것 같다. 딸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라면 이런 고민을 한 번은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내가 여자도 아닌데 경험하지 않은 일을 타인이 어떻게 상상을 해서 만들어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조심스럽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는데 아내가 ‘글 쓰는 재주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한다.


아내도 이젠 교사 생활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사람을 움직여서 일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나 보다. 하루에 대략 아내에게 20번 정도의 꾸지람을 듣는 처지라 아내로부터 ‘글 쓰는 재주가 있는 남자’라는 공인을 받으니 ‘여성이 겪은 성차별 에피소드에 관한 101가지 글쓰기’도 작성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생겼다. 


우선 딸아이가 겪었을 성차별에 대해서 맹렬히 상상력과 기억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나에게는 무남독녀이자 할아버지 가계로 따지면 30년 만에 태어난 자손이다. 비록 내가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졸지에 대가 끊기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우리 집안의 그 누구도 ‘아들을 낳아야지’라고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딸아이를 보면서 평생 의지할만한 동기를 낳아주지 못해서 안타깝기만 했지 딸아이가 아들이 아니어서 서운하다거나,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따라서 집안에서 딸아이가 겪었을 만한 에피소드를 상상하고 기억해내기는 어려웠다. 다음은 학교로 가보자. 요즘 학교는 ‘여자가 말이야’라는 식의 말을 했다가는 24시간 내 교육청에 신고 되고 경찰 수사를 거쳐서 성범죄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얻게 된다. 


남학생, 여학생이라는 단어 자체를 쓴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역시 학교에서 겪었을 만한 성차별 요소도 내 능력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남은 것은 단 하나의 가능성이다. 남자인 나와 여자인 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험. 나로 말하자면 성차별적인 언사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상적인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경상도 시골 출신의 50대 초반 남자. 게다가 잔소리하는 것이 주요한 업무 중의 하나인 교사.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도 딸아이에게 ‘여자가 자고로’라든가 ‘여자는 그라면 안대’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자식이지 아들이나 딸이냐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포기하지 않고 더 깊게 생각해봤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딸아이에게 교대를 가서 초등학교 선생이 되라고 조언을 서너 번 한 적이 있다. 겪지 않은 일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만약 내 자식이 아들이라면 교대를 권하지 않고 공대를 권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한 성차별적인 행위가 아니었나 말이다. 유레카를 외치며 금방 딸아이가 겪은 성차별 경험담을 완성했다. 어찌나 집중해서 작성했는지 고분 분투하는 남편을 위해서 아내가 옆에 두고 간 머루 포도를 발견하지 못했을 지경이었다. 


딸아이에게 좀 더 넓은 진로에 관해서 이야기 하지 않고 단지 취직이 용이하고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를 권했던 과오를 치열하게 반성을 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딸아이가 아버지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하고 ‘아트 앤 테크놀로지’라는 이상한 전공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공부라고 하니까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딸아이가 살아가면서 뀌는 방귀 횟수와 ‘그게 뭘 배우는 과에요?’라는 질문을 받는 횟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큰 수가 될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딸아이가 겪었을 한 줌의 좌절, 실망, 분노에 대해서도 극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써 내려갔다. 완성된 글을 보니 거대한 나의 반성문이 되어 있었다. 내가 쓴 반성문을 퇴고하다 보니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서 새삼 후회를 하게 된다.  능력 이상의 상상력과 기억력을 소진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평생을 보낸 할아버지와 그 형제분들은 이런 순간에 늘 칭찬을 내리셨다. 옛 추억이 현실화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숙제를 마쳤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과연 아내의 의도대로 여성에 대한 배려심이 금방 아내의 답변이 날라 왔다. “거봐, 할 수 있잖아. 추가로 한 네 개만 더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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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10-2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으면서 내내 웃습니다. 행복한 따님으로 잘 키우셨네요 존경합니다^^

박균호 2019-10-22 14:26   좋아요 0 | URL
웃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제가 딱히 잘 키운 것은 없고 그냥 혼자 잘 자란 것 같아서 다행스럽네요.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19-10-2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버지가 그리 글을 잘쓰시는데, 따님이 글을 못쓴다니 뜻밖입니다. 아무튼 이 글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막판에 답이 나오네요. 역쉬 작가님답습니다!

글구 저한테 이런 미션이 주어졌다면, 저와 누나가 다른 대접을 받은 경험을 쓸 거 같아요. 수능, 그러니까 학력고사가 끝났을 때 누나는 아무도 마중을 안나가서 제가 나갔지만, 이듬해 제가 봤을 땐 부모님이 모두 정문 앞에서 기다렸지요. 이것이 그땐 몰랐지만 큰 차별이더라고요.

박균호 2019-10-22 15:37   좋아요 0 | URL
딸아이를 디스하는 것이 좀 불편하지만 입시 때 자소서를 도와주려고 해도 어디서 부터 손을 봐주어야 할지 몰라서 포기했습니다. ㅎㅎㅎ근데 그 나이 때 저는 훨씬 더 글을 못 썼으니 ㅠㅠ 저와 누나의 차별성을 이야기 하라고 하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요 ^^ 다만 2000년생 무남독녀인 제 딸아이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 글이라 ㅎㅎㅎㅎ 제 딸아이는 마중으로 모자라 전날 수능장까지 태워주는 예행연습까지 했었어요 ㅎㅎㅎ 혹시 길을 잘 못 들어서 늦을까봐요. 그리고 신간 출간 하신 것 거듭 축하드립니다.

10030223 2019-10-22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 글재주가 좋으시네요!~

박균호 2019-10-22 22:17   좋아요 0 | URL
아..별 것 아닌데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