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상 차림을 위해서 시장을 갔다. 마침 밥 때가 되어서 초밥을 먹기로 했다. 세 식구가 앉아서 초밥 세트를 시켰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딸아이는 느닷없이 다이어트를 한다고 먹지 않겠단다. 다이어트를 선언했다가 음식 앞에서는 금방 다짐이 무너지는 것을 하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막상 초밥이 식탁에 오면 숟가락을 들 줄 알았다.
먹지 않는다. 아내가 내가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했지만 철옹성이다. 먹방 방송하는 사람처럼 맛나게 먹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조바심이 나서 몇 번이고 권했다. 딸아이가 먹지 않으니 그 맛나던 초밥이 모래알처럼 느껴진다. 집요하게 권하다가 문득 우리 어머니가 생각난다. 요양원에서 나에게 음식을 자꾸 권하시던 어머니. 작은 냉장고에 억지로 구겨둔 간식인데 내가 축낼 수 없다고 거절했었다.

어느 듯 어머니가 나에게 권하던 횟수를 훨씬 넘겨가고 있었다. 이런 마음이었구나. 그때 어머니가. 나보다 어른스러운 딸아이는 내가 아무리 권해도 짜증을 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사양한다.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짜증을 버럭 내고 말았다. 그때 그 짜증이 오늘 딸아이 앞에서 비수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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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9-1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들 이야기를 들으면 집집마다 다른데도, 가깝고 따뜻하고 재미있지만,
가끔씩은 살짝 눈물 날 것 같은 이야기도 있는 것 같아요.
박균호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20-09-11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9-14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고 도는 인생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꾸 먹으라 하고
또 친정에 가면 우리 어머니가 저에게 자꾸 먹으라고 권하시고...ㅋ

박균호 2020-09-14 13:2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2020-09-1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4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아셰트클래식 3
빅토르 위고 지음, 성귀수 옮김, 장 미셀 파예 그림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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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출근만 하지 않는다면 밤새 읽고 싶은 소설이다. 아주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은 시간을 걱정하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파리의 노트르담>이 대충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사람이 여간해서 있을까? 그런데도 교수형을 선고 받고 지하 감옥에 감금된 집시 처녀를 구하기 위해서 주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오금을 저려가면서 읽었다. 


세상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어린 시절에 축약본 고전을 읽는 일이다. 출판사에서도 그런 책은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요약본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고 평생 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원전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는데 말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4세기에 완공되었는데 <파리의 노트르담>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이 열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2019년 화재가 발생해서 13세기부터 있던 목조 지붕과 19세기에 축조된 중앙 청탑이 유실된 비극을 겪었지만 파리 전체를 통틀어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관광 명소다. 


프랑스 혁명전에는 기득권층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혁명이 발생하자마자 성난 민중들에 의해서 여러 조각이 훼손되는 시련을 겪었다. 위고가 <파리의 노트르담>을 집필 할 당시 노트르담 성당은 과거의 명예를 뒤로 하고 낡고 훼손되어 방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철거하자는 여론도 등장했다.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을 통해서 노트르담 성당이 얼마나 아름답고 중요한 유산인지를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서 강조하였다.  위고의 눈물겨운 노력 덕택에 여론은 반전되었다. 10년 뒤에 성당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고 1864년에 마무리되었다. 노트르담 성당을 재건하기 위해서 <파리의 노트르담>을 집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오늘 날 우리가 감상하는 노트르담 성당이 모습은 그 상당수가 빅토르 위고 덕분이다. 소설 제목 자체가 성당이름인데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사랑이야기에 웬 건물 이야기를 왜 주저리 주저리 적어놨어?라고 불평하지 마시라. 빅토르 위고에게는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 영화는 원작 소설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매체가 아니라는 것은 이 소설을 통해서 명확해진다. 빅토르 위고가 심혈을 다해서 쓴 파리의 건축물 이야기는 영화로 담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닌데 정작 위고가 생각한 소설의 정수는 건축이야기다. 


그러면서도 독자를 급격한 긴장감으로 몰아가는 서사 능력을 생각하면 빅토르 위고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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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9-0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약본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 동감!그렇죠.영화는 감독의 시선이고 책은 저자의 사유와시선이죠

박균호 2020-09-09 10:21   좋아요 0 | URL
네 그럼요...

막시무스 2020-09-09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뮤지컬로만 봤는데 읽어보고 싶어지네요!ㅎ 레미제라블은 책도 뮤지컬도 정말 위대했는데!

박균호 2020-09-09 11:22   좋아요 0 | URL
네 네 일독을 권합니다

moonnight 2020-09-09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미제라블>에 하수도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덕분에 지금도 연구자료로 잘 이용되고 있다고 작가님께서 쓰셨지요. 이번엔 건축이로군요. ^^ <파리의 노트르담>은 아직 못 읽었네요. 저도 읽고 싶어요♡

박균호 2020-09-09 20:2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냥 역사학자라고 봐야 할 듯 ㅎㅎ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 - 북클럽 운영자의 기쁨과 슬픔
김민영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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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선생이 쓴 <나는 오늘도 책모임에 간다>에 대한 추천사를 썼다. 원래 추천사는 저자 보다 압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써서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김민영 선생은 이미 책모임을 십년이 넘게 했고 이 분야에 있어서는 일가를 이룬 분인데 시골에 묻혀서는 일개 서생인 내가 감히 ‘추천사’를 쓸 입장은 아니다. 다만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이제 겨우 독서 모임을 시작한지 1년이 갓 지난 초보로서 도대체 좋은 독서 모임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도움을 얻고 싶었다.


<나는 오늘도 책모임에 간다>를 읽다보니 책 한 권을 귀하게 알뜰하게 챙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말하자면 책 배송 택배 상자를 뜯기가 귀찮아서 몇 날 며칠을 그낭 방치하는 경우가 있다. 김민영 선생과 독서 모임 회원들은 한 권의 책을 읽고 경험을 나누고 공감을 나눈다. 내가 읽은 책이 이런 책이었나는 감탄을 자주 하게 되었다. 같은 책이라도 좋은 독서 모임을 거치면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책으로 다가 온다는 것도 알겠다.


회원들 간에 호구조사를 하지 않는 다는 것만으로도 김민영 선생이 운영하는 책모임이 얼마나 책에 집중하는지 알겠다. 한 권의 책을 대충 읽고 소화를 채 못시키는 경우가 잦는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서 한 권의 책이 어떻게 ‘잘근 잘근’ 씹어서 한 줌의 건더기를 남기지 않고 소화를 시키는지 알게 된다.


김민영 선생과 <나는 오늘도 책모임에 간다>가 참 대단한 것은 책모임에서 있었던 내용을 자세하고 재미나게 기록했기 때문에 누구나 이 책을 읽는다면 마치 본인이 직접 책모임에 참석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옛날에 읽었다고 구석에 처박아둔 책을 다시 찾게 될 일이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그저 좋은 책 정도로 알고 넘어갔던 책들에 대한 새로운 매력을 찾게 된다. 


내가 헌정한 추천사를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에 대한 찬사를 마친다. 


독서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책 모임과 만나게 된다. 좋은 책 모임은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백 가지의 매력을 누리게 해준다. 좋은 독서 모임을 만나는 것은 인생 책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15년간 북클럽을 운영한 김민영의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독서 모임에 대한 이야기가 넘친다. 독서에 대한 관념적인 기술이 아닌 독서 토론 모임과 그 참석자들의 살아 숨 쉬는 경험과 통찰로만 채워져 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읽어야 할, 읽고 싶은, 사고 싶은 책이 넘친다는 것이다.


독서가 문제라면 독서 모임이 정답이다. 독서 모임이 문제라면 <나는 오늘도 책 모임에 간다>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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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9-08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왼데요? 책 상자 받아놓으시고 며칠씩 쌓아놓고 계시다니요.ㅎㅎ
하긴 포장 뜯기가 귀찮긴 해요.
옛날에 온라인으로 책을 산다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엔
그저 서점 나가 책을 들고 오던가 가방에 넣어오면 됐는데 말입니다.
테이핑을 좀 덜해도 나을텐데...

박균호 2020-09-08 17:56   좋아요 1 | URL
책을 사도 너무 자주 많이 사니까 가끔은 포장을 뜯기가 귀찮을 때가 있더군요. 더구나 저는 성질이 급한데 택배 상자를 열려면 가위나 칼을 또 찾아야 하니까...ㅎㅎㅎㅎ택배 상자를 분리수거하는 것도 귀찮고..ㅠㅠ

페크pek0501 2020-09-1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추천사를 다 쓰시고... 대단합니다.
저는 책을 살 때 추천사나 서문을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문을 제가 썼죠.
그런데 그런 것들을 중요시하는 독자도 있겠습니다.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겠어요.

박균호 2020-09-10 13:2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딴게 뭐가 중요하나 싶었는데 출판사 직원 말로는 그래도 책을 고를 때 약간의 영향은 있다고 ㅎ.ㅎ

anniekim 2020-09-2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민영샘 좋아하고 존경해요. 추천사 글이 쏙쏙 들어옵니다.

박균호 2020-09-24 16:47   좋아요 0 | URL
앗 여기서 또 뵙네요 선생님 신간 고대하고 있어요
 

책이 가지는 물성의 아름다움을 책에 대한 첫 인상으로 꼽는 나로서는 훌륭한 책이다. 주로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나로서는 실물을 받아보고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실물이 사진 보다 낫다. 우선 내가 환장하는 하드커버인데다 자간이나 폰트의 가독성이 훌륭했다. 책이 잘 펼쳐지고 갈라지지 않는 견고한 장정도 마음에 든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에 대한 러시아인의 숭배에 가까운 사랑이 우리의 눈에는 다소 낯설다. 


라는 첫 문장도 마음에 든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지적이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문장이다.


삶보다, 적어도 삶만큼이나 죽음이 문제적인 작가들이 더러 있는데,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도 그중 한 명이다. 


문학적인 지식과 문장가의 창의력이 어깨동무를 한 문장이다. 김연경 선생은 첫 문장으로 독자를 확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는 작가라는 것을 알겠다.


거의 60년에 이르는 그의 생애는, 열여덟 살 소년이 쓴 편지에서 명시되었듯이, ‘인간’이라는 비밀을 푸는데 바쳐졌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누가 이보다 저 적확하고 창의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정의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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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9-08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완전 땡깁니다!!! :-)

2020-09-08 0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책을 쌓아두면 장점이 있긴 하다. 우선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한정 된 이야기이겠지만 서재를 둘러보면 글을 쓸 만한 소재가 되거나 참고자료가 되는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다보면 생각지 못한 책을 발견하고 그 발견 자체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될 수 도 있다. 



겹겹으로 쌓여있어서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는 책이 많다면 ‘책 놀이’를 하기엔 금상첨화다. 가끔씩 앞 쪽에 있는 책을 치우고 감춰져 있던 책이 드러나면 저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고향친구를 수십 년 만에 타향에서 만난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수십 년 전에 대학 입학을 앞두고 예비소집에 갔다가 구내 서점에서 산 책 그리고 그 책 속에 붙어 있는 서점 영수증조차도 추억으로 다가온다. 


이삼년 전에 책을 선물 받으면서 함께 받은 엽서 편지도 다시 보면 감회가 새롭다. 몇 십 년이 흐른 뒤에 어느 날 우연히 이 엽서 편지를 다시 보게 된다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안부인사와 근황을 적은 몇 줄이 적혀있을 뿐인데 말이다. 2040년쯤 되면 2017년이라는 년도만 보아도 눈물이 쏟아질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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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06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과 더불어 사는 인생이네요. 저 역시도... ㅋ

박균호 2020-09-07 21:28   좋아요 0 | URL
그럼요..책과 더불어 사는 인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