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매리 저수지
김주앙 지음 / 비티비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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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의 이동준은 인생의 절정기를 맞보고 있었다. 4선 의원이자 집권당 사무총장의 자격으로 자신이 만든 것이나 다름 없는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자신의 희망이자 분신인 아들은 착실하고 계획적으로 정치인이 되기 위한 코스를 밟고 있다. 정권의 실세가 된 그에게 줄을 대기 위해서 가져다주는 돈뭉치도 거절하는 청렴결백함도 과시한다.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고 부러운 것도 없는 결정적 순간에 괴상한 문자가 날아온다. 


그것도 단 세 사람만 알고 있는 비밀 휴대폰으로 말이다. 16년 전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진상을 알고 있다는 암시를 하는 괴 문자 메시지는 평온하고 화려한 그의 일상을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인생의 절정기에서 엉뚱한 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스토리는 흔한 대중 연예 매체의 상투적 수법이다. 


김주앙 작가의 소설 <산매리 저수지>는 이 흔한 포맷으로 비범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368쪽의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소설은 한번 손에 쥐면 내리기 힘들 정도로 독자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어떤 점들이 독자들을 끌어당기는지 이 소설에 배치된 여러 가지 설정과 배경을 살펴보자.


<산매리 저수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한국 추리 소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지형을 가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쫓는 자’가 아니고 ‘쫓기는 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추리 소설의 전형은 의문의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담는 것이다. 범인이 비록 주변에 있거나, 일찍 소설 속에 등장했더라도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후반부에나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인 추리 소설의 기법이다.


<산매리 저수지>는 철저하게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이동 경로와 심리 상태의 변화에 따라 진행된다. 마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처럼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심리 상태와 행동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묘사가 뛰어나다.


<산매리 저수지>는 다른 추리 소설처럼 형사는 추적하고 범인은 도망을 다니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살인자는 자신의 범죄를 암시하는 문자를 받고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집요하게 추리하고 추적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도대체 누가 범죄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에 감정이입 되어서 마치 자신이 괴 문자 메시지를 받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산매리 저수지>는 독자들의 궁금증과 흥미를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끌어들인다. 사법시험에 실패하고 은행원이 된 평범한 남자가 어떻게 은행을 그만둔 지 4개월 만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지, 여당의 실세에게 감히 누가 괴 문자 메시지를 왜 보내는지, 범인이면서 주인공인 이 남자는 왜 살인을 했는지 그 살인과 출세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숨겨 두었는지 등 이 소설을 다양한 갈래로 독자들의 시선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범죄자이기도 하면서 추격자이기도 한 주인공의 이중적인 정체성과 여러 갈래로 분산된 스토리 전개가 복잡하지만, 톱니바퀴처럼 짜임새 있는 전개 덕분에 <산매리 저수지>를 읽으면서 한 단어조차 놓치지 않게 되는 몰입을 하게 된다.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오로지 피비린내가 진동해야 한다는 상투적인 설정도 이 소설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추리소설로도 삶에 대한 철학과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저자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 소설 속에서 드러난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 자의 심리 묘사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탐내는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사람이 죽기 직전에 ‘돈은 종이에 지나지 않는다’며 절규를 하는 모습, 20살 연상의 남자에 대한 애정이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변모하는지에 대한 묘사만 살펴보더라도 <산매리 저수지>를 추리소설에 묶어 둘 수 없다.


<산매리 저수지>는 저자가 정치학을 전공했고, 정당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한데 그만큼 정치계 주변에서 일어나는 실감 나는 상황이 많다. 존 그리샴의 법정 스릴러에 버금가는 김주앙의 정치 스릴러는 뛰어난 전문성 덕택에 또 다른 몰입 요소를 제공한다. 


정치자금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기업에 거절당했을 때는 분노와 전투력을 배가시켰지만 가진 것 없는 시골 노인에게 용돈을 건네다가 거절당했을 때는 위축되었다고 기술하는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으로는 나올 수 없는 대목이다. <산매리 저수지>는 단숨에 읽히지만 오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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琴兒 피천득 문학 전집 - 전4권 (10주기 한정판)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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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한국인에게 피천득 선생은 <수필>이나 <인연>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선생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선생은 번역으로도 일가를 이룬 분이기 때문이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 중에서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 바로 피천득 선생의 번역이었다. 명 번역이었다. 1910년생인 피천득 선생은 소금상인인 할아버지와 신기료 상인인 아버지를 두었는데 그의 집안은 구한말의 거부였다고 한다. 조부와 부친 모두 거상이었던 모양이다.

7살 때 유치원에 입학했고 동시에 서당에서 한문 공부도 함께 했다. 타고난 천재여서 10살이 되기 전에 당시 서당의 한문 교육의 입문서로 사용된 통감절요를 3권까지 익혔다. 서울고보 부속초등학교를 마친 후 무려 2년을 월반하여 1923년에 현재 경기고등학교의 전신인 서울 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선생의 나이가 13세였는데 고리야마라는 일본인 영어 교사에게 영시를 처음 접하게 된다.

당시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이었던 이광수의 집에 거주하였고 그의 추천대로 많은 조선 유학생이 선택한 일본이 아닌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이광수는 영어실력이 뛰어나서 영역된 러시아 문학을 탐독했는데 영어에 대한 중요성이 피천득 선생에게도 어느 정도 전파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천득 선생의 필명 금아(琴兒)는 거문고의 아동이라는 뜻으로 이광수가 지어준 것이다.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는 등의 집안 사정 때문에 고보를 졸업하지 못하고 이광수 선생의 조언대로 상하이에 소재한 귀족학교 토마스 한베리 공립학교(Thomas Hanbury Public School)에 다녔는데 이 학교는 모든 과목을 오로지 영어로만 수업했다고 한다.

미국인 교사에게 혹독하게 영어 교육을 받은 피천득 선생은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추었고 이것이 후일 뛰어난 번역가가 되는 토대가 되었다.1929년 상하이 후장대학에 입학한 선생은 애초에 상업경영학을 선택하였지만 이내 ‘돈 버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영문학과로 전과한다. 당시 후장대학의 영문학과 학생은 총 4명이었는데 그 중 여학생이 3명이었고 유일한 남학생은 피천득 선생이었다.

학생이 4명이다 보니 수업은 주로 교수의 자택에서 진행되었고 차나 케이크를 간식 삼아 먹으면서 셰익스피어와 토머스 하디, 찰스 디킨스를 비롯한 영문학을 공부했다. 학생이 4명이다 보니 수업은 밀도 있게 진행되었고 과제는 혹독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1대 1일첨삭식으로 교수의 지도아래 영문으로 작성된 과제를 고치고 또 고쳐야 했다.

피천득 선생은 20세의 나이로 1930년 4월 7일 자 동아일보에 서정시 <차즘>을 발표한 시인으로서 문인이 되었다. 피천득 문학의 기본과 영혼은 시에 있다. 시를 사랑했던 피천득 선생은 영문학자로서 영시의 번역에 몰두했다. 샘터사에서 출간된 피천득 문학 전집 4권 중 2권이 번역 시집인 것만 보아도 그의 문학 인생에 차지한 번역의 비중을 알 수 있다.

애당초 시라는 장르는 해당 민족만의 고유한 정서와 배경을 담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지만, 선생은 당신이 좋아했던 시를 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외국 시를 번역했다. 외국 시는 원문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럴만한 외국어 실력을 갖춘 독자는 많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외국 시를 열심히 번역한 선생이 염두에 두었던 자신만의 번역 원칙은 다음 3가지다.

첫째, 원작자가 심어둔 원래의 의미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둘째, 번역 시지만 마치 우리나라 시를 읽는 것처럼 친근한 느낌을 주고
셋째, 누구나 읽기 쉽고 재미있는 번역을 하자.

피천득 선생의 <내가 사랑하는 시>와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은 이와 같은 원칙대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은 영문학자 피천득 선생의 가장 빛나는 업적 중의 하나이며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저작물이다. 우리나라 시를 읽는 듯 한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직역보다는 의역에 충실했다.

선생은 자신이 정한 원칙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총 발휘해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마치 한편의 우리나라 시로 재창작하려고 시도했다. 소천할 때까지 무소유에 가까운 삶을 살았고 가족을 사랑했던 영문학자 피천득 선생은 외국 시를 번역할 때는 실험적이고 자유분방한 ‘홀로서기 번역’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많은 독자는 피천득 선생의 번역 시를 읽으면서 마치 우리나라 시를 읽는 듯 한 느낌이 들고 따로 알려주지 않으면 외국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피천득 선생의 번역시집이 우리에게 유독 친근하게 읽히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문학자로서 문학사적 작품성이 뛰어난 것보다는 시를 좋아하는 독자 개인으로서 좋아했던 시를 골라서 번역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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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진보다 - 지금의 어른들, 무엇이 다른가
김경집 지음 / 레드우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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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보수만큼 억울한 단어가 또 있을까? 국가와 국민보다는 당익이 더 중요한 정당이, 엄마와 애국을 대변한다는 구실로 길거리에서 추태라고 볼 수 밖에 없는 혐오적인 시위를 일삼는 무리가 보수를 자칭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경집 선생의 <어른은 진보다>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잘 설명한다. 보수란 집에서 배운 가치와 학교에서 배운 가치를 실천하는 태도를 말한다. 아버지에게 어른들을 공경하라는 예의를 배웠으니 밖에 나가서도 어른에게 예의바른 태도를 취하는게 보수이고, 학교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배웠으니 부정하고 독재를 일삼는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이 보수다. 

반면 진보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낡은 교과서대로 살라는 거야? 교과서를 바꿔야해. 라고 주장을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태도를 지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우리 사회의 상당수의 보수는 가짜 보수이며, 상당수의 진보는 사실 보수에 가깝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보수의 품격은 촛불혁명이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부정한 권력에 대해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항거를 하고 그 뜻을 이루어냈으니 말이다. 진짜 어른이라면 혹시 자신이 가짜 보수는 아니었는지 살펴 볼 일이다.

국민 모두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통령을 만들어준 일이 있었다. 유권자가 그에게 표를 준 것은 청렴해서가 아니고 최소한 경제만큼은 잘 하겠지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경제와 안보는 그래도 보수가 잘 한다는 미신을 버려야 한다. 정신 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이 연구한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의 통계에 따르면 보수 정당이 집권할 때 자살자와 타살자가 11만 4,600명이 더 많았다고 한다.

보수 정당이 집권했으니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살인을 할까? 보수 정당은 친기업 정책을 많이 펴고 ‘규제 철폐’라는 선물을 재벌에게 안겨준다. ‘규제 철폐’라는 마법의 지팡이로 기업들은 직원들을 더 쉽고 빨리 해고한다. 더 쉽고 빨리 해고를 당하면 더 쉽고 빨리 새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위 통계는 미국의 것이고 다소 일반화의 오류가 될 수는 있겠으나 보수라고 경제를 잘한다는 명제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 미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를 지독한 고통과 함께 경험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책을 한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단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다. 심지어 꼰대 정치인의 표상이라고 여겨지는 한 보수 정치인은 누가 봐도 진보의 소굴(?)인 방송 프로그램에 기꺼이 출연해서 토론에 참가했다. 보수(물론 정상적인 보수)와 진보는 절대악이나 절대선이 아니다 나름의 명분과 장단점이 있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성향과 반대되는 채널도 둘러 봐야 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안된다며 혀만 차지 말고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보고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난관에 부딛쳐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성향의 기호에 맞는 책이나 영상 그리고 기사에만 탐닉한다면 눈앞에 있어서 3살 짜리도 분간할 수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세력의 노예이자 앵벌이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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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발견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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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43년 33살이 된 한 여성은 절절하고 괴로움으로 가득 찬 편지 한 통을 썼다. 그녀의 편지 시작은 이랬다. 


내 유일한 친구에게.

슬픔에 매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다시 한번 깨뜨려준 일에 그대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까요? 내 심장은 뛰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가치 있는 청중이라고, 내가 그대를 위해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여성은 여행기이자 인류학 연구서, 정치적 논문이기도 한 자신의 첫 저서를 완성했는데 자료를 보충하기 위해서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하버드대학교에 장서 열람을 신청했다. 그녀 이전에 여성이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의 문턱을 넘은 것은 몇 년 전 케이스가 유일했다. <호수의 여름>을 통해서 백인에 의해서 핍박받고 학살된 아메리카 원주민의 실태를 고발한 그녀는 장차 정신병원, 보육원, 노숙자 보호소를 들이닥쳐 비참한 실태를 고발했다. 여성에게는 대학의 도서관 출입조차 허용이 되지 않은 시대에 여성이 일궈낸 진보였다.


 그녀의 용감한 고발 덕분에 정신병 환자에 대한 치료가 획기적으로 달라지기 시작 했다.이 용감한 여성은 평생 타인의 권리를 위해 살았지만, 자신은 궁핍과 고난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 “모든 진실은 음악과 수학으로 구성된다”는 자신의 명제를 입증해준 증거인 거창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지 16년 뒤에 그에게 보낸 편지는 랠프 월도 에머슨과 함께 만들던 잡지 <다이얼>에 싣기 위해서 쓴 것이다. <다이얼>은 수익이 전혀 없었고 이 여성은 또 다른 일을 해야 했다.


<19세기 여성>이라는 저서로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고 페미니즘의 시작을 알린 그녀의 이름은 마거릿 풀러다. 첫 책 <호수의 여름>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출간 과정 자체가 여성주의자들을 위한 경로를 제시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월든의 그 소로가 맞다)가 풀러가 편집을 맡았던 <다이얼>의 수익금으로 인쇄비를 충당하고 자비로 출간할 것을 조언했지만 풀러는 이익이 없었던 <다이얼>의 사정을 고려해서 신생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하고 인세 10%를 받기로 한다. 


저자 이름을 마가렛 풀러를 써지 않고 S. M 풀러라는 이름으로 냈다. 독자들이 여성 작가라는 편견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훗날 <침묵의 봄>으로 환경 운동의 불꽃을 지핀 레이철 카슨도 첫 책의 저자 이름을 R. L. 카슨을 사용했는데 20세기가 되어서도 많은 여성 작가들이 논픽션이나 문학책을 낼 때 성별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흔하게 되었다.


풀러의 글쓰기는 소로우처럼 월든 호숫가를 한가로이 산책하면서 철학적인 사색을 모색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풀러의 글쓰기는 인간이면 누구나 남녀, 인종, 부의 정도에 상관없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행력이 있었다. 미국 여성에게는 ‘독립 선언’이나 다름없는 <19세기 여성>을 통해서 풀러는 여성의 자립(self-dependence)이야말로 사회를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힘이자 진보적인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남자와 여자는 한 생각의 반쪽들이다. 나는 그 어느 쪽이 더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한쪽의 발전이 없다면 다른 한쪽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바라는 소망은 이 진실이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이해되는 일이며, 우리 시대의 딸과 아들이 삶의 조건과 자유를 똑같이 인식하며 살아가게 되는 일이다.


# 2


1617년 어느 추운 1월, 세계 최초로 공상과학(S.F)소설을 쓴  중년 남자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며 마차에 타고 어머니에게 가고 있었다. 이 남자의 어머니가 마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수학자가 본업인 이 남자는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지동설을 지지하는 우화를 발표했는데 그 우화 속에는 아이작 뉴턴이 아직 정리하지 못한 중력 작용, 아직 등장하려면 수백 년을 기다려야 하는 음성 합성 장치, 우주여행이 등장한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찬 이 공상과학 소설은 과학의 힘으로 미신을 물리치자는 취지와는 달리 어머니가 마녀로 고발당하는 엉뚱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꿈>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하기 전에 쓴 것인데 달나라로 여행을 떠난 한 천문학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상’은 곧 ‘현실’이 된다는 명제의 뿌리이기도 하다. 


수백 년이 지난 20세기의 막바지의 캐서린 존슨(영화 히든 피겨스의 실존 인물)이 이 사내가 만든 법칙을 이용해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수 있는 궤적을 계산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들이었고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기도 한 이 사내의 이름은 요하네스 케플러다. 


천체가 예측하고 계산할 수 있는 궤도(케플러가 처음 만들어낸 용어다)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어머니가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도 입증해야만 했다. 케플러가 살았던 시대는 과학이 싹트기도 했지만, 지동설을 주장하는 자는 처벌을 받았고 마녀사냥이 성행한 시대이기도 했다. 


이 위험한 시대에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완곡하게 주장한 케플러의 공상과학 소설 <꿈>은 케플러의 어머니를 마녀사냥의 재물로 만들고 말았다.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꿈>은 악의에 찬 해석으로 케플러의 어머니를 마녀로 둔갑시키기에 좋은 도구가 되었다.  1577년 6살 소년 케플러를 집 근처 언덕에 데리고 가서 핼리혜성을 보여줌으로써 아들에게 천문학의 매력을 일깨워준 이가 바로 그의 어머니 카타리나 케플러였다.


6년간의 미신에 대항한 이성의 투쟁으로 케플러는 어머니가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그의 노모는 혹독한 감옥생활과 재판의 후유증으로 금방 세상을 버리고 만다. 마녀사냥을 금지하는 법령이 만들어진 후에도 케플러는 <꿈>의 본문과 맞먹는 분량의 주석을 다는데 몰두했다. 223개의 주석은 그가 소설 속에서 사용한 상징과 은유에 대해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악의적이고 미신적인 해석을 차단할 임무를 수행했다. 


케플러는 <꿈>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339년 후 인류가 처음으로 그가 만든 법칙으로 계산한 궤도를 따라 달에 첫걸음을 내딛음으로써 그의 <꿈>은 실현되었다. 


위의 두 에피소드는 마리아 포포바의 쓴 <진리의 발견>의 두 가지 장면이다.


나는 문학작품은 서사와 아름다움을 기대하고 읽는다. 비문학 작품은 지식과 정보를 기대하고 읽는다. <진리의 발견>은 비문학이지만 아름다운 글로 가득 차 있다. 800쪽이 모두 한편의 서사시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가령 이런 문장들.


미첼은 수학이 저 높은 곳에 있는 추상적 도락이 아닌, 항법에 필요한 실용적인 도구였던 바닷가 마을에서 성장했다.


우리는 앞을 가로막는 장애에 모든 비난을 덮어씌울 수 없듯이, 우리가 이룬 위업에 대해 모든 공을 독차지할 수도 없다.


감정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곳에 고여 있던 지하수에서 새어 나온 증기가 융합하여 만들어지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빛과 접촉하여 한순간 어떤 무지개를 흩뿌리지만, 이는 나타날 때처럼 순식간에 불가해한 방식으로 흩어지고 사라져버린다.


<진리의 발견>은 여성의 굴레를 극복하고, 과학을 발달시키고, 여성의 권익을 개선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환경운동의 기반을 마련한 위대한 여성들의 비범한 생애를 그린 책이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수백 년의 시공간을 오가며 등장인물을 연결하는데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들이 서로 인연을 맺고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미국인들이 ‘립 서비스의 장인’이라고 생각해서 책에 대한 미국 언론의 찬사를 무시하는데 이 책 만큼은 예외로 해야겠다. 


이제껏 과학과 시, 사랑과 배움, 연애가 어떻게 엮일 수 있는지를 이토록 완벽하게 탐구한 이가 없었다. ... 더 읽고 싶어 몸이 떨릴 정도이다.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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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문학 읽기 2012-2020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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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책장. 이 문구만큼 독서가를 설레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반대로 독서가에게는 더 책을 둘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만큼 비극적인 것도 없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서재가 꽉 차서 우울해하고 있던 차에 직장에서조차 직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그동안 사용했던 세 개의 사물함 중에 두 개를 비워야 할 처지다. 


비워줄 사물함을 열자 그동안 탐욕스럽게 모아왔던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동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폭소를 터트렸다. 묘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꼈다. 직장인으로서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책을 직장에 둔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내의 눈을 속이고 몰래 본가의 서재에 책을 반입할 수 없는 노릇이다. 책이 앉을 자리는 직장에도 본가에도 없다.

 <이현우 선생의 문학 전집 서고>


한때는 세상의 고통을 이겨내는 동반자였던 책들이 솎아내야 할 잡초가 되었다. 처지가 달라지니 ‘구매해야 할 이유가 오만 가지’였던 책들이 ‘떠나보내도 좋은 이유가 오만가지’가 생겨나더라. 절판본이자 아끼던 <늑대 토템>, 꾸준히 구독하는 <녹색평론>, 칼 오베의 <나의 투쟁>도 보내기로 했다. 출판사에서 받은 내가 쓴 책은 더더욱 미련이 없었다.


내가 ‘버림’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는 와중에 유독 눈길이 가고 껴안게 되는 책이 있었다. 로쟈 이현우 선생의 <책에 빠져 죽지 않기>가 그 주인공이다. 내가 쓴 책도 아니고, 귀하디 귀한 희귀본도 아닌데 이 책을 ‘생존시켜야 할 소중한 한 권’으로 지목한 것은 ‘고심’의 결과가 아니고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현우 선생의 독서 에세이는 책으로 점철된 내 성인 시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독서 생활의 아이콘이 로쟈의 독서 에세이다. ‘우리 때는’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다. 어쩌면 책으로 꽉 찬 내 서재를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한다면 그 주인공은 당연히 내가 쓴 책이 아니고 로쟈 선생의 책이다. 우리 시대의 독자가 <책에 빠져 죽지 않기>와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게걸스럽게 읽는 것은 소가 싱싱한 풀을 뜯는 것만 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고 또 얼마나 장바구니가 가득 찰지 두려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기대와는 달리 ‘보통의 독자’라면 모두 알 법한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누구나 잘 아는 문학책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문학 작품’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번역해서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기여한 번역가 사이덴스티커가 쓴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를 소개하는 꼭지 또한 서평이 아니라 차라리 한편의 뛰어난 단편 추리 소설로 읽힌다. 번역은 세계문학의 필수조건이라는 명제를 끌어내기 위해서 이현우 선생은 치밀하고, 흥미진진한 전개를 이끌어 간다.

이현우 선생의 ‘서평 문학 작품’은 세계문학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세계 공용어로서 에스페란토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한계는 사용자가 20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보다 고유한 문학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통찰을 거쳐서 유럽의 언어와 이질적인 일본어로 쓰인 <설국>이 어떻게 좋은 번역을 거쳐서 노벨상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현우 저자>


번역문학이 보편화 되지 않아서 노벨문학상이 지역 문학상에 머물러 있었던 시기에 톨스토이마저 그 수상자가 되지 못한 것이 비극의 ‘절정’이다. 번역이 세계문학의 필수조건의 시대가 되면서 대부분의 세계문학을 번역으로 접하는 우리나라야말로 세계문학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 낸다. 번역의 중요성을 이토록 지적이고 우아하게 강조한 글이 또 있었나 싶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서평집이 아니고 문학작품으로 읽어야 할 이유는 좋은 소설에서나 발견되는 매력적인 서두와 말미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령 이런 서두.


소설은 왜 읽는가. 제인 오스틴의 유고작 가운데 하나인 <노생거사원>은 그 한 가지 답변을 제시한다. 등장인물이 아닌 작가 오스틴의 견해인데, 소설이란 “정신의 위대한 힘이 드러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인간 본성의 변화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 위트와 유머의 생생한 발현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선별된 언어로 전달되는‘ 작품들을 가리킨다. 소설에 대한 최대치의 예찬 아닌가.


이현우 선생만이 쓸 수 있는 이런 말미는 어떤가.


그는 ‘생김새는 거무튀튀한 집시’이지만 ‘옷차림과 행동거지는 신사’가 돼 폭풍의 언덕으로 다시 돌아와 모진 복수를 시작한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오해의 산물일까? 그가 캐서린의 말을 끝까지 들었더라도 집을 떠났을까? <폭풍의 언덕>의 섬뜩한 교훈 하나는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하나의 좋은 문학 작품이기도 하지만 ‘독서 안내서’의 본분에도 충실하다. 오랜 강연과 무지막지한 독서로만 가능한 여러 번역서의 출간 이력과 서지 정보가 가득하다. 또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키스 장면을 둘러싼 번역의 문제는 키스보다 더 달콤한 읽을거리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문장은 이현우 선생의 저자로서의 성실함을 보여준다.


조이스는 마지막 순간에 프랭크와의 탈출을 포기하고 주저앉은 이블린의 모습을 짐승에 비유한다. “묶인 짐승”(창비), “넋을 잃은 짐승”, “수동적이 되어 어찌할 바 모르는 짐승”,(민음사), “미약한 한 마리 짐승”(열린책들) 등으로 옮겨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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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3-0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속아낼 때가 제일 마음 아프더군요.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짐이고.
책은 정말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건데 말입니다.

로쟈님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더군요.
학교뿐 아니라 여기저기 강의 나가시면 언제 책을 읽고
쓰실까 하는데 다 해 내시는 걸 보면 철인같습니다.
박균호님도 그러시겠지만.^^

박균호 2020-03-06 17:06   좋아요 1 | URL
네 글쵸. 저는 주로 방학때 글을 쓰는 편이에요. 스텔라님 부디 코르나 사태를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