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읽을 때는 춤이야말로 지극히 소모성의 말초적 운동으로 여겨지다가도 춤 출 때는 또 반대로 책이야말로 한심한 헛소리처럼 생각된다. 내 변덕은 몰두했던 대상을 야멸차게 부정하며 항상 극단을 오가고, 언제나 한 쪽에 질릴대로 질려서 폭발할 때 그 반동의 힘을 빌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 다시 댄스화를 신고 나니 활자 강박 대신 날마다 30분이라도 스텝 연습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강박이 생긴 것 같다. 예전에 스윙 출 때는 책을 읽기는커녕 글도 안 썼는데, 뒤풀이 한다고 날이 새도록 술만 마셨는데, 너무 아무 것도 안 써도 지나놓고 보면 남는 게 없어 후회가 되더라. 그래서 탱고는, 배우면서 느낀 점이라도 틈틈이 글로 남겨놓아야지 싶다.
 
2 탱고 음악은 애수가 넘치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이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격앙시키는 묘가 있는 것 같다. 왜 춤판 사람들이 탱고를 제일 나중에 배우라고들 했는지 알겠다. 이십대에 심수봉을 들어서 뭘 알 건가. 내가 지금이라고 심수봉을 제대로 들었다 할 수 있을까. 사십대에 듣는 심수봉은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딱 심수봉 만큼이나 탱고 음악은 신파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마냥 신파라고만은 규정할 수 없는, 신파를 신파 이상으로 깊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있는 것 같다.
 
3 직장 생활도 결혼 생활도 꿈꿨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겉으로나마 그럴싸하게 굴러가는 게 기적적이라는 생각만 들고 온갖 부조리로 점철된 이번 생은 아무래도 객관적인 관점에서 다소간 망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밤마다 솟구치는 와중에 마치 술주정뱅이가 신변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듯이 그렇게 나도 춤판으로 복귀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인터넷을 돌아다녀보면 일도 사랑도 춤도 심지어는 외국어와 전국 맛집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복한 듯한 땅게로스들이 많이도 보인다. 분명 라스베이거스에도 영락할대로 영락하여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결기로 찾아든 사람부터 환갑잔치를 하러 온 사람까지 다양하겠지. 하지만 그 모두에게도 승률은 공평할 테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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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왜 빠져나오기가 힘드냐면. 왜 자꾸 돌아가게 되냐면... 다른 춤은 몰라도 무도댄스의 경우는 단순히 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아. 이건, 다른 '체제'의 경험이야. 북한 사람들이 귀순하는 거랑 똑같아. 한 번 어떤 체제를 알아버리면, 그 체제를 잠시라도 맛보고 경험해버리면, 그리고 거기서 벅찬 자유와 해방감을 느껴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거야.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지, 새로운 체제를 경험해버린다는 것은. 현실 세계가 일부일처제라면 이곳은 폴리아모리즘 체제야. 이 곡은 이 애랑 추면서 오르가슴 느끼고 다음 곡은 저 애랑 추면서 오르가슴 느낄 수가 있어. 하루에 몇 명이고 번갈아가면서 부둥켜 안고 그렇게 이 곡 저 곡 추는 거야. 동성끼리 추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스윙은 셋이서 추기도 한다고. 그렇다고 여기가 부도덕한가. 그런 것도 아니야. 여기도 여기 나름의 엄격한 관습과 질서와 문화와 법도가 존재하고, 이곳에서도 신용과 평판이 중요해. 경쟁과 질투, 사랑과 슬픔이 있어. 다만 체제가 다를 뿐이지."     

 

왜 또 춤판으로 돌아갔냐는 친구의 물음에 답하다가 나온 얘기. 가끔은 머리보다 입이 더 빨라서, 말하다가 내가 한 말을 듣고 나 자신의 행동이 이해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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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3-2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한권 읽는 것보다 더 곱씹으며 상상하며 읽었네요..
봄은 오고, 갈길 없는 제 이 마음이 이러다가는 춤의 세계로..

식신을 써놓으셔서, 제 생각엔 수양님은
학당귀인과 식상, 그리고 문창귀인, 화개살이 함께 있으실 듯.. 싶어요.
아시죠. 화개살의 위력!
사람들에게 매력을 뿜어내는.. 도화살과는 차원이 틀린..

글이 이렇게 맛과 멋이 묻어나다니...^^

2015-03-24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지온 2015-03-26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보다 입이 빠르다는 말이 와닿네요

수양 2015-03-26 17:17   좋아요 0 | URL
가끔은 정말 그런 거 같더라구요^^
 

1 쁘락에서 잘 추는 땅게라들 보면 스텝 밟는 게 좋은 글을 쓰는 것과 닮았다. 낱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어순에 맞추어 날렵하게 완성한 문장. 지저분하지 않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명확하게, 신중하게 바둑알 놓듯 이어나가는 문장과 문장들. 스텝도 그렇게 밟는다. 글 쓰는 것과 발 쓰는 것이 별 차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땅게라들 발놀림 자체가 무슨 붓털 끝의 움직임 같기도 하고.
 
2 평일이든 주말이든 보통 밤 8~9시부터 시작되어 자정 넘어 문 닫는 춤판은, 마치 세상이 깊은 숙면 속에서 꾸는 하나의 화려한 꿈 같다. 밤에만 꿈틀대는 거대한 무의식. 뉴스에 나오지 않는 세계. 배면의 세계. 어떤 강습소는 제대로 된 간판도 없어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3/4번 승강장처럼, 아는 이들만 쓰윽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선 정말로, 머글들이 모르는 또 다른 삶의 희노애락이 펼쳐지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간극이 큰, 억압된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밤마다 달콤한 악몽을 꾸듯 춤판으로 모여드는 것인지도. 몽정을 해서라도 욕망은 어떻게든 그 출구를 찾아야 하므로.    
 
3 사주적으로 보면 십신 중에서 춤은 식신·상관이다. 끼와 재주를 펼쳐내는 것이다. 요리, 출산과 육아 등도 모두 다 식상이지만 춤이 식상에 해당하는 각종 활동 중에서도 유독 허망한 까닭은 그것이 아마도 오행적으로 순환이 되질 않기 때문 아닐까. 아기를 낳으면 무럭무럭 성장하여 다음 세대가 된다. 음식을 만들면 먹는 사람이 기운을 차리고 튼튼해진다. 그러나 춤은 자족적이다. 춤으로부터 다른 무엇인가로 기운이 이어지질 않는다. 강사급을 제외하고는 식신생재로 에너지가 연결되지 않는다. 자신의 재주를 펼쳐내어 변화를 도모하지 못한다. 밤중에 꾼 꿈처럼, 환상으로 떠올랐다 저버리면 그 뿐. 춤추고 돌아올 때 우리가 종종 우주의 블랙홀 한 가운데로 떨어진 듯이 쓸쓸한 허무를 느낀다면 바로 그 때문인지도.  
 
4 오늘 아브라소를 배웠고, 아니, 배웠다기보다는 한 번 해봤고, 선생님 두 분이 한 곡 추는 걸 지켜봤다. 두 번의 감동. 땅고는 정말 멋진 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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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락에 처음으로 가봤다. 적당히 어수선하고 적당히 화기애애한 분위기. 아는 이도 없으니 벽에 붙어있다 오겠거니, 열심히 걷기 연습이나 하자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랑 홀딩을 하게 되었다. “이건 발스라고 해요. 음악을 들어보세요. 3/4박자죠. 네. 이게 왈츠예요.”, “오초를 이렇게 변형시킬 수도 있어요. 재미있죠?”, “어디까지 배우셨죠? 아, 그럼 충분해요. 이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한 곡 출 수 있어요.”, “아, 이 음악이 괜찮네요. 여기 맞춰볼까요?”, “음악을 많이 들어보세요. 도움이 될 거예요.”

 

스스로가 퍽이나 남루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우스꽝스럽고도 참혹하게 밑도 끝도 없이 추락했다고 여겨질 때, 춤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지. 절체절명의 순간에 얼마나 황송한 구원으로 다가오는지.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도 아까 쁘락에서 홀딩하면서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얘기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추운 날 따스한 국물 같은 그런 말들이 나는 몹시 그리웠던 것 같다. 함께 무언가를 완성해가며 다정하게 마음과 감정과 기분과 느낌을 나누는 그런 말들.

 

춤으로 대동단결하여 지상에 천국을 건설한 것처럼 보이는 이곳도 기실은 인간의 소굴인지라- 경쟁과 시기 질투가 있고 정치가 있고 권력이 있고 자본의 획책이 있고 거짓말과 배신과 사기극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 춤판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냉혹한 정글의 세계라는 것을 나도 이제는 잘 알지만, 그럼에도 실로 오랜만에 방금 막 태어난 아기처럼 세상의 환대 속에서 이렇게 또 다시 새로운 춤을 한 걸음 씩 배워나가는 상황에 놓이고 보니 선의로 가득한 사람들의 따스한 말 한 마디가 다시금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고 애틋하게 생각된다. 딱 10년 전 부기우기바에서 스윙댄스를 처음 배웠을 때처럼 그렇게,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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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8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9 0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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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8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9 0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주 오래 전 처음으로 책의 세계라는 것을 접하였을 때는 그 방대한 규모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급기야 온갖 도서 분야를 두루 섭렵하여 마침내 백과사전적 지식을 갖추고야 말겠다는 터무니없는 결심을 품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어나가면 갈수록 광범위한 분야를 섭렵하는 일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지고 차라리 가장 본질적으로 여겨지는 분야의 고전적인 저작들을 공들여 독파해 나가는 편이 훨씬 의미가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데, 요즘 들어 춤의 세계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추는 춤이 소셜댄스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드는 의문은 과연 춤을 다양한 사람들과 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요즘은 해피데이에도 플로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잘 추는 사람들이 별로 안 보인다. 예전에는 온통 잘 추는 사람들밖에 안 보여서 해피데이 출빠가 두려울 지경이었으나 이제는 춤 추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저마다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사가 빠진 것처럼 몸의 중심을 못 잡고 들썩이는 사람, 화려하게 추는 듯 하지만 텐션이나 모멘텀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로 추고 있는 사람, 제멋에 겨워 추는 사람, 춤이 아니라 운동을 즐기고 있는 사람 등등. 물론 내가 이런 말 할 계제는 아니다. 내가 추는 춤도 동영상으로 찍어보면 틀림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게 될 테니. 그러나 여기서의 핵심은 내가 해피데이의 전반적 수준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니 넘어가자.

 

아무튼 요는, 춤 실력이 예전에 비해 월등하게 향상됨에 따라 제너럴 현장에서의 나 자신의 선호가 점차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곡을 추더라도 나와 스타일이 맞는 상대를 만나 그 곡을 멋지고 아름답게 예술적으로 완성하고 싶다. 그래서 요즘 무척 파트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춤판의 아나키스트라고 자위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의 범동호회적 왕따나 다름없는 현재의 내 처지를 고려할 때, 나와 스타일도 수준도 딱 맞는 그런 100%의 파트너를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파트너만 구해져도 내 춤인생에 대격변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

 

퇴근이 늦어져 지금 가면 한 시간도 채 못 출 거 같았는데도 기어코 갔다. 30분 만이라도, 딱 30분 만이라도 춤출 수 있다면 오늘 하루는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겠단 생각으로. 한 40분 정도 추고 온 것 같다. 춤이라는 건 참, 화려하고도 허망하다. 무상하고도 찬란하다. 그래서 눈이 부신 나머지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이 춤에 빠져들었다가 결국 허무감 때문에 발길을 끊게 되고 그러다가도 이내 또 미련과 그리움 때문에 다시 춤판을 기웃거리고... 가슴 벅찬 환희와 공포에 가까운 허무를, 열광과 환멸을, 충만과 결핍을, 의미와 무의미를, 살아있음에 대한 생생한 감각과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쓸쓸함을,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춤! 참으로 알 수 없는 춤! 헛되고 헛되다며 치를 떨다가도 지하철에서 내려 스윙빠가 가까워져 오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난생처음 스텝이란 걸 밟았을 때처럼. '명랑한 허무주의'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춤판에 버금가는 장소가 또 있을까 싶다.

 

*

 

땀에 절은 채로 빠 나오면서 더 이상 여한이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윙감에 있어서 날마다 최고치 경신 중. 이 얼마만에 만끽하는 지복의 체험인가. 살아있었다. 나는 오늘 정말로 살아있었다.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살아있었다. 스윙아웃 할 때의 느낌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점성이 붙고 있다. 갈수록 걸쭉해짐을 느낀다. 스텝은 더욱 더 경제적으로 구사되고 왼손은 구심력에 힘입어 저절로 뮤지컬리티 같은 게 이루어진다. 이 모든 변화가 점도의 상승 그리고 구심력의 증가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내 몸이 하나의 채찍이 된 기분. 더 탄력있고 더 낭창낭창하고 더 야무진 채찍이 되고 싶다. 요즘은 정말 춤 출때 너무너무 즐겁고 상대방도 행복해 하는 게 느껴진다.

 

*

 

팔뤄로서 리더의 리딩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유머가 필요한데, 이것은 단순히 춤의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성격의 문제 내지는 삶의 방식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부분이 내 한계인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유머를 몹시 좋아한다는 것. 나 스스로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일단은, 춤출때 여유를 잃지 말자. 이것저것 염두해둘 점들은 많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추진 말자. 서로 함께 즐거우려고 추는 게 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

 

그나마 다행한 일인데, 확실히 스윙은 쉰다고 해서 그 실력이 퇴보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 번 깨우친 것을, 몸은 몇 달이 지나도 놀라우리만치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구체적인 패턴이 아니라, 커넥션과 모멘텀, 균형 감각을 기억하는 것이다. 멈출 때와 가야할 때를 알고 적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 균형 잡힌 턴을 할 줄 아는 것. 정중동과 동중정. 원초적이고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앎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부분들은 일단 습득을 하고 나면 반드시 '체화'가 된다. 신기해라.

 

 

사실상 리더가 백이면 백 가지의 바운스와 백 가지의 커넥션과 백 가지의 스윙아웃이 있는 셈인데, 각각의 리딩에 대해 최적으로 반응한다는 게 여전히 쉽지 않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일이 그렇고 남의 깊은 속을 헤아리는 일이 그렇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예전보다는 확실히 다양한 스타일의 리딩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듯. 예전에 리더의 리딩을 읽는 화소가 10이었다면 지금은 한 100정도로 그 감도가 확장된 것 같다. 그러나 제대로 섬세해지려면 아직도 멀었다.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귀 기울일 것.

 

*

 

습관적인 풋워크를 지양할 것.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데 꼭 쓰리스텝일 필요는 없는 거다. 호 그리면서 갈 수도 있고 슬라이드 하면서 갈 수도 있는 거다. 좀 더 자유로워져 보자. 좀 더 변화를 줘보자. 자유. 변화. 표현. 이런 것들이 다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습관에 안주하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새로운 걸 시도해 보자. 아울러 늘 명심할 것- 수용, 이해, 배려, 조화, 다정한 마음.

 

*

 

카라가 보여주는 간지의 비결은 무엇일까. 선천적으로 타고난 몸매와 비율 때문인가 하면 꼭 그런 거 같지도 않다. 국내 유명 고수 팔뤄 아무개 몸매도 카라처럼 마른 듯 날씬한 체형이지만 춤사위에서 나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아무개 팔뤄의 춤이 익살맞고 신명나다면 카라는 좀 더 단정하고 절제된 듯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유독 견고해 보이는 상체 프레임도 그렇고, 확실히 카라의 춤에서는 어떤 절도 같은 게 느껴진다. 가령 이 여자는 아무리 웃긴 이야기를 들어도 결코 의자에서 뒤집어질 정도로는 웃지 않을 것 같다. 깔끔하고 차분하고 우아한 가운데 반짝이는 센스와 세련된 위트. 확실히 리더든 팔뤄든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그 사람 성격이 어느 정도는 짐작되는 것 같다.  

 

*

 

왜 사람들이 프리다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프리다의 춤은 예술적이라기보다는 기예에 가까워 보인다. 기예적인 춤은 멋지고 대단해보이기는 하지만 예술적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샤론이나 카라 같은 팔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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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4-07-10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려놓은 블로그에서 오래 전 일기들을 다시 읽었다. 반가워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