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設, 첫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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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의 문장은 어른의 문장이고 아버지의 문장이다. 내가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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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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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시인은 퇴고할 때 시를 무슨 탈곡기 같은데다가 한번씩 집어넣는 모양이다. 아니면 종이에 활자들을 뿌려놓고 선풍기를 초고속으로 돌려서 웬만한 것들은 다 날려버리는지도. 그러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그만의 어떤 희한한 작법의 비결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간유리에 맺힌 상처럼 하얗고 흐릿하고 아스라한 시들. 슬픔도 기쁨도, 곤란한 마음도 애매한 마음도 모두들 부끄러운 듯이 숨었다. 그래서 언뜻언뜻 꼬리만 비치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흐릿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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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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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어느 날엔가 이 시인의 책 <마음사전>을 펼쳐놓고 우리가 멋대로 '마음사전 놀이'라고 명명한 어떤 놀이를 해본 적이 있었더랬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마음에 얽힌 낱말들을 말 그대로 사전처럼 풀이해놓은 대목이 있는데, 예컨대 그 사전에 따르면 '설렘'은 '뼈와 뼈 사이에 내리는 첫눈'이고 '슬픔'은 '생의 속옷'이며 '한숨'은 '나의 궁리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이런 몇 개의 문장들을 읽고 탄식하며 무릎을 치는 것으로 부족해서, 우리는 각자가 아직 읽지 않은 항목들을 가지고 퀴즈 놀이를 해볼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최승자 시인의 말대로, 청춘의 트라이앵글 중 하나. 청춘 이후로는, 유일한 정신적 구호품"인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그리움. 맞아도 한 잔, 틀려도 한 잔을 들이켜가면서 이 놀이는 한동안 지속되었는데, 그러면서 우리는 마음학교의 학생이 되어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 둘 알아가는 것이었다. 왜 그때는 그렇게 행복했고 왜 그 행복은 또 그토록 불안했으며 그 불안은 어째서 조금은 달콤하였던가를. 그러니까 마음이 몰랐거나 모른 척했던 삶의 소이연들을.   -김소연 시집, <눈물이라는 뼈>에 실린 신형철의 해설 中에서 

문학의 심약함이, 그 자폐적 순수성이 지겹다고 함부로 떠벌이곤 했으면서도, 나는 내심 문인들이 즐겼다던 이 '마음사전 놀이'를 질투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사전>을 구태여 찾아 읽지는 않았던 것인데, 이는 문학이 지겨워서가 아니라 명백히 나의 게으름 탓이리라. 그러던 차에 지난 주말 우연히 이 책을 선물로 받게 되었으니 신기한 일이다.  

딱히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상 받을 만한 기특한 일을 해낸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므로 이는 필경 나의 게으름을 다그치는 선물이 아니겠는가, 하고 제멋대로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마음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마음이 달아올라 결국, 이 책을 선물해준 이에게 장문의 문자메세지를 보내고야 말았다. <마음사전>에 대한 독후감은 내가 보낸 이 문자메세지로 갈음해도 충분할 것 같다.       

"<마음사전> 참 좋다. 시인의 글은 그것이 어떤 형식을 띠든 나를 안달하게 하는 것 같다. 그들이 지어내는 텍스트들은 마치 봄철의 공중을 조용히 떠다니는 치명적인 꽃가루와 같아서 읽는 이로 하여금 언제나 격한 문학적 알러지 증세에 시달리게 만든다. 행간에 멈춰서서 자꾸만 눈 비비고 재채기 하느라 이 책 몹시 더디게 읽고 있지만, 아- 그럼에도 이토록 곱디 고운 책을, 이토록 곰곰이 언어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책을, 이토록 낱말의 구석구석을 핥고 쓰다듬고 다정하게 애무하고 있는 책을, 나 이리도 쉽게 함부로 읽어버려도 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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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8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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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좋아하는, 이라는 말이 좋아서 자꾸만 되뇌어 보게 된다. 성냥팔이 소녀가 어둠 속에서 성냥을 켜듯이 자꾸만 자꾸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가만히 좋아하는 것들로 마음이 온통 환해지고 나는 그동안만큼은 따뜻해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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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 그 절절한 내면일기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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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외아들이 스물여섯에 요절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일기 형식으로 된 이 수필집은 자식을 잃은 어미가 하느님께 내지르는 쇠된 비명으로 점철되어 있다. 작가가 겪었을 극한에 가까운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식의 죽음마저도 문학의 소재로 도용하는 지독한 작가 근성에 기가 질린다. 자식의 죽음마저 이 노작가에게는 예술적 체험 세계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이 물음을 단순히 힐난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그것은 차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에 대한 기막힘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 수필집은 퓰리처상 수상 때 논란이 되었던 사진작품 <굶주린 수단 소녀>를 연상케 한다. 

강준만이 쓴 <글쓰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의 머리말에는 글쓰기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여러 소설가들이 나온다. 내가 인상깊었던 것은 그들 대부분이 글이 안 써져서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글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아서 괴로워한다는 점이었다. 폴 오스터는 작가란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선택되는 직업'이라고 하던데, 정말이지 작가라는 직업은 일종의 천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발설하고 고백하고 폭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천형 말이다. 그들은 어쩌면, 대밭에라도 들어가 임금님 귀의 진실을 털어놓아야만 했던 그 옛날 어느 궁중 이발사의 후예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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