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에 갓 입사한 친구에게 재무 설계 상담 같은 걸 받았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수다를 좀 떨었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새로운 종류의 슬픔에 대해 얘기했다. 터져 나오거나 줄줄 흘러내리는 슬픔이 아닌, 우물 속에 두꺼비처럼 앉은 슬픔에 대해. 딱지처럼 굳은 슬픔에 대해. 바닥에 엎드려 가만히 뺨을 대었을 때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슬픔에 대해.

 

그리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건포도가 된 게 아닐까. 우린 예전보다 작고 조글조글해졌지만 그만큼 달고 진해진 게 틀림없어. 그런데 건포도는 그 옛날 캘리포니아 뙤약볕 아래서 무슨 결심을 품었길래 그렇게 새까매졌을까. 막 공상에 잠기려는데 그녀가 내게 노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한쪽 벽을 책장으로 짠 살롱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책도 읽을 수 있고 사람들이랑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오랜 시간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적어도 이제까지 내 경우에 삶의 방향을 좌우한 것은 책보다는 인물, 인물보다는 사건의 체험이었던 것 같단 얘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결정적인 책, 인물, 사건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도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어야 하리라는 얘기도. 살롱을 꾸미고픈 까닭 역시 살롱이 다양한 사건의 현장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독서와 대화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밀도 높은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살롱을 차리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목돈을 마련하려면 지금부터 다달이 체계적으로 돈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였는데 갑자기 불상사가 생겼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반쯤 시공을 마친 살롱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살롱은 3분 정도 지나 깨끗하게 전소했다. 요즘 들어 '돈'이라는 외마디 소리가 자꾸만 머릿속으로 습격해들어와 온갖 낭만적 상상에 죄다 불을 싸지르고 있다. 슬프다. 이 또한 새로운 종류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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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강의 듣고 나서 제 발제가 놓쳤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좀 이해가 되었는데요, 대략 정리를 해보면: 니체는 진리나 신과 같은 금욕주의적 이상의 무가치함을 이야기한 게 아니다. 니체는 가치를 묻는 게 아니라 가치의 가치를 묻는다. 가치의 기저에서 그러한 가치에 다가가고자 하는 앎에의 의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은 것. 그리고 이때 니체는 앎에의 의지가 '허무를 향한 의지'라고 했지만, 이는 단순히 '허무에의 의지'가 아니라, '허무라도 향하는 의지', '허무조차도 욕망하는 의지'이다. 즉, 포커스를 두어야 할 지점은 허무주의조차 하나의 '의지'라는 것. 허무라도 의지함으로써 의지 자체가 구출되었다는 것.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니체가 끝나버린 것 같습니다. 사실 좀 얼떨떨하기도 하구요. 앞으로 니체를 좀 더 깊이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저의 노예적 삶에 대한 '위생학'으로서, 하나의 행동 강령으로서 니체를 읽어볼까 합니다.  

아무개님: 매우 대단한 니체선생에 대한 의지담론에 관한 서술이군요. 역시 큰 대인-선생아래 큰 이익(대리)-배움이가 있다는 공자의 사제도에 관한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니체의 강자-귀족개념(권력의지, 초인, 영겁회귀)을 이해한다는 것, 또 그것을 오늘날 우리의 사정에 맞게 써먹는다는 것은 그리 심플한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더욱이 니체를 따라잡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포스트모던적 사유를 한다는 것 등등, 이러한 모든 것은 모든 위대한 독일 블란서 영미의 현대 철학자들의 고민이기도 했었구요. 특별히 수양님의 본 니체 세미나의 최종점 서술은 님의 고스승(주- 고병권 선생님을 말함)의 독특한 스칼라싶을 물씬 풍기게 하는 대목이기도 한 것 같군요. 원래 고스승의 니체 연구는 그의 학적인 이력을 따라가 볼 때에 매우 특이한 형태인 자연과학의 매개학문인(물리-화학-생물학)화학 학문을 거쳐서 독일의 관념론과 실재론자를 대표하는 칸트와 헤겔을 매개하는(?) 맑스의 사회학을 거쳐서 2000년 된 서구사상의 학문자체를 재배치하려는 니체의 망치를 든 철학에 도달하려는 모양을 자아내는 듯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그래도 타국의 현대 니체해석자인 들뢰즈를 우리가 훌륭한 해석자다 라고 치고서도 그와는 전혀 색다른 아주 섬세한 니체 해석의 또 다른 해석 단면을 늘 깔끔하고 깔쌈하게 제시하고 있는 고스승의 매력적 니체읽기가 되기도 하는 셈이지요. 그의 니체에 관한 저서들을 한번 읽어 봐보세요. 마치 어린아이가 동시를 쓰듯이 그렇게 담백하게 니체의 뜨거운 사상 문체들을 맑은 시냇물로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듯합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안 그랬던가요? 참으로 위대한 위인은 하루에 한번씩 또 그 이상을 꼭 어린 아이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니체의 의지사상 역시 독일사상의 아니, 현대의 모든 서구사상의 원류인 칸트의 물자체 사상에 그 근간을 아낌없이 거기 두고 있지요. 아시다시피 니체의 사상적 아비인 쇼펜하우어의 스승은 칸트입니다. 칸트의 미학적 의지이론을 니체의 직계 스승인 쇼폔 선생께서 재해석에 성공했다는 말이죠. 니체의 사상적 전 학적 전술은 다음처럼 간단합니다. "무한하게 약자의 노예도덕에 대립되는 강한 자라는 귀족도덕의 비고정적 주체의지의 그 대립의 지평을 선-악과 진-위와 미-추의 대립지평마저 끝내는, 그리하여 자유로이 그 지평을 왕래할 수도 있게 되는, 그 영원한 모순적 부-드-러-운 생명의 의지력을 소유한 자기실현의 자유의지에 있다." 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한 의지와 무한히 대립되는 강한의지 조차도 그 대립의 지배-실현 지평에 머물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무-대립의 지평인 부드러운 힘의 자기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강-약의 대립구도를 영원히 운명적 힘으로 안고서도 그래도 그것과 함께 부드러운 사랑의 숙명의 지평으로 다시 나아감으로서 니체의지미학의 진정한 방향타가 최종성립 도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미 "미는 현실에서 자유다." 라는 칸트의 의지미학이 "니체의 조차와 마저 라는 그 역설적 미적인 생성해석학을 통한 심화의 과정의 다름이 아니다." 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가치의 가치추구에 대한 앎의 본질적 의미를 진솔히 형이상학적 자기반성에서 물어 들어가는 니체의 새로운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언어해석학은 하나의 통일을 거부하면서 생성하는 존재의 변증법적 형식을 띠고 있음에 분명해 보입니다. 우선 한국어(니체의 독일어 진술도 매우 유사합니다. 이거 연구해보세요. 큰 학문적 부가가치가 될 겁니다.)에 있어서 "조차"는 어미로서 또 "마저"는 조사로서 모든 자립 혹은 실질형태소에 붙어 살면서(기생하면서) 기능하고 있는 즉 단어와 단어들을 문법적으로 연결시키면서 그 의미들을 변형시키고 있는(가감하는) 형식 혹은 의존 형태소의 한글의 최소 단위의 언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수양님의 니체에 대한 위의 의지사상의 재진술은 니체의지의 변증법에 따른 순수한 자기 욕망의지의 방향으로의 그 정위의 지평으로 다가가는 데에 별 무리 없이 잘 진술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그것은 이렇습니다. 우선 조차라는 어미는 그것의 사용에 있어서 이미 언급한 앞 한 단어의 사실에 대한 인정과 가정의 진술의 형태가 앞에서 언급한 말로부터의 뒷말에 대한 즉 뒤에 언급한 단어로 부터 자유로운 의지의 의미에 대한 뜻 강조의 축이 되는 주장 되고 있는 반면( 예: 낫 놓고 기억자조차 모른다), "마저"라는 조사의 사용방법에 있어서는 그 반대로 언급된 단어로서 즉 앞에 대한 뒷말로부터의 앞 단어의의지의 자유로운 의미에 대한 그 단어의 뜻의 강조점이 주장되는 형식형태소가 된다는 것이죠(예: 감기뿐만 아니라 배탈마저 났다). 

자, 그럼 위의 문장을 니체의 글쓰기 방식인 전술과 후술의 최종 글쓰기의 자유로 향하는 강-약의 대립을 넘어선 부드러운 선악의 피안 밖에 영원히 도달하려는(잠언적 글쓰기에 있어서 조차마저의 이 상호적인, 침투하는) 니체의 변증법적 텍스트로 다시 재구성해보면, "1)포커스화 된 형이상학적 가치- 2)가치의 가치전도화- 3)가치에 대한 앎에의 의지-4)앎에 대한 허무한 무지에의 의지-5)허무 자체를 의지하는 능동적인 허무의 의지, 즉 허무자체가 앎에 주체인 허무를 생성함 - 6)허무가 초점화 된 최초의 형이상학적 의지로부터 구원되는 영원한 부드러운 의지자체의 구출성" 이라는 이 도식과정에 '조차'와 '마저'라는 어미조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용체언에 붙어서 서술되면서 마치 유희하는 어린아이가 주사위를 땅에 던지고 놀며 유유자적 유희하는 주사위놀이와 같은 그런 형국을 이룬다는 것이됩니다. 물론 니체의 이러한 의지단계에 있어서 그 이전의 인간의지단계는 낙타와 호랑이로 상징 되는 그런 단계인 두 단계로서 강한 인내의 노략의지와 약한 단계의 그런 의지의 단계를 이루고 있고요. (최종도식화: 낙타-호랑이-어린아이-운명의 사랑의 의지단계) 

여하튼, 조차-마저! 이것은 멋있는 한글의 체언과 용언들의 주변언어들로써 기생하면서 붙어사는, 그러한 익명의 조사와 어미들 같습니다. 결국 니체의 모든 글쓰기가 이러한 마저-조차의 운동하는 잠언적 글쓰기의 방법형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한번 그의 모든 텍스트에서 확인해 보세요. 자 그럼 "입춘대길 화기만당!" 하세요.  

수양: 저도 이번 강의 들으면서 어미나 조사 때문에 해석이 굉장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요. 무엇보다도 단지 의존형태소에 불과한 '조차'와 '마저'가 니체 사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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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얼마나 예리한 침(針)인가. 그것은 세계를 요란하게 분해하지 않고도 그저 단 몇 마디의 소곤거림으로 본질에 도달해버리는 것이다. 시는 세계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아니, 차라리 시는 세계를 인식하기보다 세계에 조응한다고 하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시는 얼마나 겸허한가. 그리고 또한 그것은 얼마나 보드랍게 세계를 만지는가. 시에 몹시 빠져들었던 무렵에는 시 아닌 모든 텍스트들이 심지어 더럽게마저 느껴졌다. 정말이지 더러워서, 시 아닌 모든 것들이 한동안 읽기 싫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승자 시인의 말처럼 “시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무슨 말도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무슨 할 말도 없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도 시는 여하튼 존재한다는 배짱 혹은 체념 혹은 위안에서가 아니라, 그러나 시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시는 매번 그 자신을 새롭게 '시'이도록 함으로써 시로서 존재할 뿐이다. 시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 자신뿐이리라. 시에 대해 무어라 얘기하는 지금 이 글 역시 결국은 시에 대한 모독에 불과한 것이리라. 마음이 가난한 나는 단지 시라고 하는 성전과 그 성전을 짓는 사도들을 향해 한없이 달뜬 마음으로 경배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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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의 중에 흥미롭게 들었던 대목은 ‘전향’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곱씹어 보면: 

 

노예가 의식적인 훈련을 통해 주인의 경지로 ‘이행’할 수는 없다. 다만, 노예가 ‘전향’을 통해 일거에 새로운 주체가 되어 주인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전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사건의 체험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2)차이의 파토스 속에서 자신의 노예적 상황(?)을 준열하게 응시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다. 처절한 자기 응시가 극한에 달했을 때 비로소 일어나는 어떤 전환, 이것은 변증법과는 다른 종류의 도약이며, 이것이 ‘전향’이 될 수 있다.

 

(1)과 관련해서 더 생각해 본 것인데요. 주체를 독립적이고 고정된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의 작용(칸트 식으로 말하면 통각작용) 내지는 작용의 효과로 정의한다면, 새로운 배치 속에서 접속하는 항이 달라진 주체, 그러니까 새로운 배치 속에서 다른 ‘기계’가 된 주체 또한 전향이 일어난 주체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즉, ‘사건’이 통시적인 측면에서 각각의 어떤 상태(항)들이 계열화되는 것을 뜻한다면, 공시적인 측면에서는 ‘배치’의 문제를 주목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 경우에 직장에선 전형적인 원한의 인간이자 초특급 노예인데 공부하러 오면 그래도 좀 주인다워지거든요. 처해 있는 환경(물적 토대)에 따라서, 그러니까 어떤 배치의 장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서 힘의 발생 양식도 사뭇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능동적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만한 배치의 장 속으로 자신의 위치를 이동시키거나, 혹은 새로운 배치(환경)를 스스로 창조해낸다든지 함으로써 주인으로의 전향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배치 속에서 전혀 다른 기계가 됨으로써 말이죠. 물론 포괄적인 범주에서 보면 이 또한 '사건의 체험'일 수 있겠습니다만...

 

선생님의 답변: 사건은 통시적인, 즉 크로노스(연대기)적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고 평평한 시간, 그러니까 아이온(영겁회귀)의 시간 속에서 생성되는 게 아닐까요? '전향', 내지 '존재변이'를 위해 우리는 통시적인 사건을 겪는 게 아니라 영원회귀적인 사건을 기다리고, 혹은 창조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또한 '배치'가 어떤 초월론적 '장'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공시적으로 보이지만 그 선험적 장에는 시간성이 내포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야 장의 변이(차이생성)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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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타자란 무엇인가, 타자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타자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선생님이 던지신 화두에 대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점점 더 엉켜가는 것 같습니다. 뭔가 복잡한 대로나마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몇 자 적어봅니다. 먼저 선생님이 던져주신 화두가 갖는 문제 설정 자체에 대한 의문입니다.

 

강의 중에도 말씀 드린 바 있듯이 A라고 하는 어떤 대상을 정의(인식)하는 방법으로는, ①not A와 A 간의 차이의 정도에 의해 A를 정의하는 방법(A 외적인 것에 의존하는 방법) 외에도 ②not A라고 하는 타자를 상정하지 않고, A 내부에서 발생하는 차이(A를 존재하게 하는 A의 속성들)에 의해 A를 정의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작년에 남산에서 했던 이수영 선생님의 <니체와 철학> 강의때 주워들은 거예요^^;;)

 

저는 ‘타자’라는 어휘 자체가 대상을 인식하는 ①의 방식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특수한’ 용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 타자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궁극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어떤 딜레마가 있다면, 그것은 ‘타자’라는 용어에 갇혀있는 인식 방법 자체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즉 ①번의 인식 방식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 한계를 다른 인식 방법을 통해 극복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상의 정의에 대한 두 가지 인식론적 방법을 응용(?)해보면, 인간의 인식 활동은 ①인식하려는 것을 타자화시킬 수 있는, 즉 대상화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가능한 부분이 있고, ②반대로 거리를 아예 두지 않음으로써, 그러니까 대상에 참여함으로써, 대상과 겹쳐짐으로써, 융화함으로써, 다시 말해 어떤 '몰아'의 상태 속에서 ‘존재론적 닮기’를 통해 가능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업시간에 잠깐 언급한 바 있듯이 '여행'이라는 체험을 통해서는 전자의 인식 활동이, '정주'의 체험을 통해서는 후자의 인식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 같습니다.)

 

저는 ②번 역시 하나의 명백한 인식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인식의 영역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인식일 것 같습니다. 이 또다른 차원의 인식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인식의 영역에 포섭되기 위해서는 차후적으로 언어의 외피를 걸쳐야 할 것이겠죠. 언어라는 객관적 인식의 틀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겠죠. 어쩌면 이것이 레비스트로스가 20년 동안 침묵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하고요.

 

제가 예전에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프리조프 카프라, 범양사)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요. 그 책에 따르면, 현대물리학에서 다루는 물질의 아원자 단위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양면성을 띠는 매우 추상적인 실체입니다. 그것은 입자이면서 또한 동시에 파동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최소의 단위로 더 이상 분해가 불가능합니다. 대상을 뚫고 들어가 보면 볼수록 자연은 어떤 독립된 기본적인 구성체를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전체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 있는 복잡한 '그물의 관계'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아원자 세계를 탐구함에 있어 그들 '그물의 관계'들은 언제나 그 본질적인 면에서 관찰자까지도 포함합니다. 인간이라는 관찰자는 관찰되는 과정들의 연쇄에서 마지막 연결을 이루며, 어떤 원자적 대상물의 성질도 단지 관찰자와 대상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원자물리학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데카르트적 구분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원자물리학에서는 관찰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을 동시에 언급하지 않고서는 자연에 관해서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현대물리학의 이런 내용이 오늘 우리의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식이 극도로 치열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순수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대물리학의 분야에서와 같이) 타자라는 개념 자체를 파기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생기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타자’와 ‘인식’이 동시에 한 문장 안에서 사유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수업 시간에 잠시 언급했던 청량리 이야기는 이런 맥락과 닿아있는 저의 개인적인 경험담입니다. 청량리 중에서도 할렘가(?) 쪽에 첫 직장을 얻어 그곳에서 2년 반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부랑자, 노숙자, 성매매여성, 정신이상자, 술 취한 사람, 싸우는 사람, 길에서 잠자는 사람, 돈 달라는 사람, 안 씻는 사람, 신발 안 신고 다니는 사람 기타 등등을 마주하게 되었는데요. 저로서는 그런 세계(?)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동정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정심이란 얼마나 위선적인 감정인지요. 동정이라는 감정의 배후에는 ‘동정을 느끼는 대상’과 ‘동정하는 나’의 처지(성별, 나이, 생활환경, 경제력, 지능, 사회적 지위 등)가 서로 다르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의 총체적 처지가 대상의 그것보다 좀 더 우월하다고 판단될 때에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그제야 비로소 ‘역치값 이상이 되는’ 감정이 동정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지가 다른 타인에 대하여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와 내가 서로 처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인식하는 거밖에 안 됩니다. 동정이라는 것은 결국, 타자와 나의 명확한 선 긋기인 셈이죠. 명확한 선을 긋고, 그 선 너머를 쯧쯧 거리며 바라보는 것- 그런 것이 동정인 것입니다. 대단히 졸렬하고 저급한 수준의 감정적 이해입니다. 대상으로부터의 거리가 똑같다는 점에서 동정은 혐오의 이면이 아닐까, 그러니 동정을 베푼 대상은 동시에 언제든지 혐오의 대상으로 전복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동정과 혐오가 야누스의 두 얼굴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기까지 딱 일 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청량리에서 근무하던 시절, 만약 제가 위선을 저지르지 않고 양심을 유지하길 원했다면, 저는 그때 그들 안에 들어가서 '부대끼는 게' 옳았습니다. '부대낀다'는 것은 저에게는 그러니까 존재론적 닮기, 동일화, 그들과의 처지가 똑같아지는 것(사고의 양태까지 모조리)을 의미합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면 저는 카메라를 들고 사창가 골목을 돌아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며(‘사진찍기’는 결코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제가 청량리를 어떻게든 이해해 보기 위해 고심 끝에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 행동이 자기 본위로 타자를 이해하려는 대단히 자족적인 활동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폭력이 될 수도 있었음을 깨달은 것은 꽤 나중의 일입니다), 청량리를 청량리라고 의식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청량리 사람을 청량리 사람으로 의식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저는 청량리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세수하고 이 닦고 잠자는 것에 대해 일일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때 저 스스로에게 ‘너는 과연 이들과 부대낄 자신이 있는가’ 하고 물어보면 늘 부정적인 대답만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부대끼고 싶지 않고, 어울리고 싶지 않고, 제가 그은 선을 지우는 것이 무섭고 두렵고 싫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청량리에 적을 두는 동안 제가 도달할 수 있었던 한없이 초라한 사유의 최종점이었고, 그 결론이 보다 일진보할 만한 어떤 새로운 기회를 갖기도 전에 다른 사정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뭔가 해소되지 못한 꺼림칙한 마음으로 청량리와는 영원히 작별하고 말았습니다.

 

'타자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타자란 무엇인가, 타자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타자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라는 오늘 선생님 물음에 제일 먼저 떠오른 타자는 저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청량리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량리라는 타자는 저로서는 아직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어쩜 아마도 저에게는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해서 따끔거릴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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