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면 대개 정신이 강건한 자들은 굳이 니체를 안 읽어도 니체 이상으로 잘 살아가는 것 같다. (니체의 표현대로) 나비 같고 비눗방울 같은 그들은 니체 없이도 경쾌하고 단순하고 우아하고 활동적으로 세계를 충분히 향유할 줄 안다. 어쩌면 니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니체라도 붙들지 않으면 중력의 영에 짓눌려 곧 가라앉고 말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만성질환 환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내복약을 섭취하듯 밤마다 자기 전에 니체를 한 줄이라도 읽어야지만, 그렇게 가까스로 영혼을 소독해 놓아야지만 다음 날을 근근이 버티고 사는 그런 사람들이나 니체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이들에게 니체는 벗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로 군림한다. 니체로서는 당혹스럽고 아이러니한 일일 것이다.

 

이왕 함부로 말하게 되었으니 노예적 원한 감정을 좀 더 발휘해서 더욱 나쁘게 말해보자. 솔직히 나는 니체도 의심스럽다. 그는 가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기실 가면이란, 가면 없이 맨 얼굴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유약한 자들이나 쓰는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들은 가면 같은 건 쓰지도 않는다고. 애당초 강건한 자들의 정신세계에는 ‘가면’이라는 언표가 존재할 만한 인식론적 토대 자체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미루어 짐작컨대 텍스트 상에서의 과격하고 용감무쌍한 니체와 가면을 벗은 실제의 니체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을 것 같고, 정신병이 심해지기 전에도 그는 이미 어느 정도 분열증적이었을 것 같다. 철학적으로 의도된 전략적 분열증이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도 잘 수습하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분열증 말이다.

 

어찌되었든 내 바램은 나 자신이 지금처럼 이렇게 니체 언저리를 맴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니체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다. 니체뿐만 아니라, 활자 따위에(니체도 결국은 활자에 지나지 않으므로) 기대지 않고도, 오직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힘만으로 정신을 지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너무나 원대한 소망이라면 다자이 오사무 만큼만이라도 강해지고 싶다. 그는 결코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용납할 줄 알고 나아가서는 자신을 문학적 소재로서 객관화, 희화화시킬 줄 아는 인간이었다. 설령 자학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다자이 오사무에게는 자신과 화해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을 것이다. 딱 그 정도로 나도 강해지고 싶다. 강해져서 나도 나 자신과 화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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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새롭게 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개운할까. 한 살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지난날에는 그 누구의 생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고 싶다. 적어도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리셋, 그러니까 의식훈련을 통해서 머릿속에 누적된 과거를 자체적으로 소각해버리는 작업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사실 의식의 표층 정도는 의지에 따라 재량껏 정돈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누군가의 기억에 침투하여 거기 어떤 형태로든 잔존해 있을 내 과거의 모습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소망인 것이다. 탈퇴를 해도 게시판 작성 기록은 남아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때로는 얼마나 절망적으로 불쾌한지. 이 이상한 결벽은 뼛속까지 이기적인 성질의 것이어서, 과오와 실수를 저지르고 다녔던 지난날의 행실에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굴욕감과 수치심에 비하면, 그동안 내 부덕의 소치로 인하여 타인이 입었을 피해와 상처에 대한 회환 따위는 일순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수일에 걸쳐 옷가지를 비롯한 일체의 소지품들을 계획적으로 처분하고 휴지조각 하나 없는 텅 빈 방에서 목매단 채로 발견된 어떤 여자의 이야기를 언젠가 신문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자살에는 동조할 수 없지만 그녀의 결벽 만큼은 이해가 간다. 목매달기 전 그녀에게 딱 한 가지 미련이 있었다면, 그것은 타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자신의 기억까지는 끝내 치우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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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도 절망적이지도 않게 흘러간다. 오늘도 나는 내게 주어진 배역을 순조롭게 마쳤고, 지금은 아무런 걱정 없이 편히 잠들 시간이다. 결국 나는, 사회의 요직에서 권력을 발휘한다거나 예술적인 사업에 골몰하며 창조적인 욕망을 분출한다거나 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대신 소시민적이고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다행임과 동시에 불행히도 나의 직업은 성실성과 책임감 그리고 약간의 인내심 말고는 내게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마치 정략결혼으로 만난 부부 사이와도 같아서 뜨거운 애정은 없으되 서로에게 적당히 예를 갖추며 평화롭게 지낸다. 환희와 열락과 성취감으로 매순간 가슴이 벅차지는 못하지만 딱히 원망과 불만을 품어야 할 이유도 없는 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자려고 누웠으면 부득불 찾아드는 이 야릇한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순조롭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 복병처럼 숨어 있다 문득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향해 무섭게 달려드는 이 기분의 정체는. 끊임없이 나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설레게 만드는 이 알 수 없는 기분을, 도저히 추스려지지도 길들여지지도 않는 이 기분을 나는 오랫동안 무슨 병균처럼 품고서 조마조마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일상에 충실해도 이 이상한 기분은 결코 박멸되지가 않는다. 어쩌면 병균이 아니라 차라리 나의 세포의 일부인지도 모를 그것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허기에 시달리게 만들고, 평화로운 일상을 저주하게 하고, 어디에서 비롯했는지도 어디로 분출해야 하는지도 모를 증오와 불만을 품게 만든다. 모든 단정하고 정숙하고 순조로운 것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 깊은 곳에서 배반하도록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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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2-03-25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병 아닐까요

수양 2012-03-25 20:0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ㅜ_ㅜ
 

확실히 예전보다 내 일을 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일에서 단순히 재미나 흥미로는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일에 책임을 느끼고 그 일에 보다 성실하게 매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일이 때로는 자기 탈각과 소외를, 치욕과 비참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일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확신하게 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아니, 인간이라고 일반화시킬 것도 없이,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나는 나의 직업이란 것이 점차 그런 의미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얘기를 조금은 수줍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좀 더 성심으로 일하고 싶다.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요즘은 하루하루가 피곤하면서도 보람이 있다. 고통 속에서의 쾌감. 쾌감 속에서의 고통. 고통과 쾌감의 이 황홀한 혼융! 서른을 목전에 두고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일을 어느 정도 '향유'하기 시작한 것 같다.


믿어지지 않는다. 불과 일 년 전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기를 적었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 분석해 보건대 이 글은 필시 일시적 흥분 상태에서 읊조린 강박적 자기최면이었음이 틀림없다. 취소한다. 전적이고도 대대적으로 취소한다. 그리고 번복한다. 나는 일이 지겹다. 참을 수 없이 지겹다. 일에도 복부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밤마다 이불 속에서 그 복부의 정중앙에 칼을 찔러넣고 모퉁이를 돌아 도망치는 상상을 한다. 그러고는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출근한다. 날마다 이혼을 부르짖으며 결코 이혼하지 못하는 아낙네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특별한 요행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내년 이맘 때에도 일과 일에 대한 저주의 무한반복은 계속되리라. 나는 지금 살 집이 필요하고, 집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면 일을 해야 하므로. 

 

과연 나에게 이 일이 최선일까.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다른 일이 없을까. 그러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 보고자 머리를 짜보아도 역시 여러가지 여건상 이 일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 일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일인지 인류 공영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인지 어쩐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항상 이 따위 생각을 하고 있는 통에 혹여나 자신의 직업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 앞에라도 서면 나는 도무지 떳떳하게 내 직업을 밝히지도 못하겠다. 간밤에 일의 복부를 찌르는 불온한 상상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 앞에서 나는 이미 잠정적 범죄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하여간 일에 관해서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의지가 솟구쳤다가 울화가 치밀었다가 하여 도무지 감정적으로 정리가 되질 않는다. 언젠가 나도 나의 직업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을 날카로운 첫키스라도 성공할 수 있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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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2-03-2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는 게 직업이 되서 그런지...이런 느낌이 없네요. (여기서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수양님 홧팅!

수양 2012-03-25 20:12   좋아요 0 | URL
대책없는 푸념이나 지껄였는데 이렇게 격려까지 받으니 감사하구 부끄러워요...=_=
 

시가 비르투를 모른다면서 이죽대고 경멸하다가 정작 활자를 마주할 시간조차 귀해지면 다시 또 시만 찾게 된다. 사막에서 물 찾듯이 온몸 헐떡이며 오로지 시만을 구하게 된다. 종일토록 허겁지겁 시를 퍼마셨던 오늘 나는 얼마나 비굴했던가. 시가 창녀는 아닐 텐데. 더럽다고 욕하면서 자꾸만 찾아가는 그런 창녀는 아닐텐데. 나는 왜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할까. 왜 욕하고 침뱉고 짓밟고 뺨을 때릴까. 그리고 또 왜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고 달아나려 할까. 마음 속에 든 것과는 무조건 반대로 행하라는 저주에 걸렸나. 이 고질적인 심리가 나 자신을 평생토록 힘들게 할 것 같다. 위악의 병폐가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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