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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의 일상사 - 순응, 저항, 인종주의, 개마고원신서 33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폴라니는 파시즘 사회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자체의 내부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당도하게 되는 하나의 극단적 귀결로 봤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나치의 인종주의 정책까지 해명해주지는 못한다. 강제 불임, 수용소 수감, 대량 학살 등 나치 시대에 자행되었던 야만적 광기에는 어떤 해석이 뒤따라야 할까. 이 책은 나치즘을 “근대문명의 병리사”로 이해하고, 나치즘과 근대문명의 밀월 관계를 나치 시대 일상사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나치즘을 근대성의 그늘진 배면으로 보는 이같은 관점에서는 나치의 인종주의 역시 근대문명의 발전 도상에서 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치가 수용소에 격리시킨 대상은 비단 유태인뿐만이 아니었다. 집시, 비행청소년, 부랑자, 동성애자, 정신분열증자 등 사회적 유용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모든 일탈 분자들이 “공동체의 이방인”으로 한데 묶여 똑같이 수용소에 수감되고 학살되었다. 진보의 이념을 함축하는, 유전생물학에 근거한 지극히 근대 과학적인 세계관에서 비롯한 인종주의는, 나치가 일탈 분자들을 배제, 격리하고 나아가 존재를 말살시켜버리는 일련의 과정을 가능케 한 이념적 명분으로 기능했다. 인종주의는 결국 “서양 근대문명의 중핵을 표출하고 있었던 것”.
푸코 역시 나치 시대의 인종주의와 우생학을 근대의 생명관리정치 권력이 작동하는 원동력으로서 언급한 바 있다. 인종주의에 근거한 격리 수용과 대량 학살 뿐만 아니라, 훈련과 규율, 통제와 감시, 철저하게 구획된 영역 안에서의 제한적인 자유, 일상생활의 원자화 등등 이 책이 묘파하고 있는 나치 시대의 일상 풍경은 푸코가 말한 근대 정치 권력의 작동 양상이 가장 첨예하고도 노골적으로 구현된 역사적 사례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치즘을 근대의 외설적 이면으로 보는 순간, 나치즘은 더 이상 흘러간 지난 날의 일탈적 과오도, 근대 경제체제가 내부 모순 끝에 당도하게 될 미래의 극단적 종착점도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엄존하는 현실적인 위험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나치즘을 고찰하는 일이란 결국, 근대가 발전하면서 노정시킨,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위험 요소들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이며, 그것은 곧 그 자체로 오늘 당장 우리의 삶이 비극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실천이기도 하겠다.
사족 1
나치 시대에 벌어진 흥미로운 일탈의 한 사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대에 미국과 유럽을 풍미하던 스윙 문화가 나치 사회에도 유입되기 시작하는데, 스윙 문화라는 게 그 속성상 나치가 장려하는 비정치적인 대중오락에 전적으로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스윙에 심취한 청소년들의 일탈이 체제를 교란하는 위협적 요소로 인식됨에 따라 결국 나치 정부가 스윙 청소년들을 근절하기 위해 애를 먹었다는 것(8장). 체제가 부과한 정언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선의의(?) 결과가 궁극에는 체제를 위협하는 짓이 되어버리고 마는 이 기묘한 역설을 어떻게 응용(?)해볼 수 있을까. 고민해볼 일이다. 저항과 탈주는 어쩌면 이토록 '웃프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기에.
사족 2
나치 체제에 대한 인민의 적극적 동의는, 체제가 거듭되는 실제의 혹은 가공의 새로운 성공들을 내세움으로써 안전과 상승과 유의미한 삶의 전망에 대한 인민의 기초적인 일상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한에서만 확보될 수 있었다. 나치 체제의 출발 자본은, 패전과 인플레이션과 대공황에 끼어버린 바이마르 공화국이 격심한 불안을 야기하자 수많은 독일인들이 사이비 해법이라도 움켜잡았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카리스마적인 총통 신화는 새로운 실제 혹은 가상의 성공을 끝없이 추구함으로써 독일인들이 일상의 경험을 통해 망상에서 깨어나는 일을 막아야 했다. -p.108
일체의 환상 없이, 비루함과 처참함을 있는그대로 인정하고 그대로를 견디는 것도 크나큰 용기이며 능력인 것 같다. 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다만 정견(正見)하는 것. 독일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바로 이 정견의 능력이었는지도. 꿈꾸지 않는 것. 불안과 위태를 나이브한 방식으로 봉합하며 쉽게쉽게 살지 않는 것. 끔찍한 현실을 두 눈 부릅뜨고 견디는 것. 환상으로 시야를 덧칠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