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The Classic Collection (Hardcover)
Life Magazine 지음 / Time Home Entertainment Inc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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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카페의 책장 한구석에서 우연히 <The Best of LIFE>라는 제목의 1977년판 라이프 잡지 사진집을 발견했다. (알라딘에는 해외서적으로만 검색이 된다.) 책을 펼치면 첫 장에 1936년 헨리 R. 루스라는 사람이 쓴 라이프지 창간 예고문이 실려 있다.

 

“사람들의 삶, 즉 라이프와 세계를 봅시다. 큰 사건들의 목격자가 됩시다. 가난한 이들의 표정과 어엿한 사람들의 거동을 살펴봅시다. 기계, 군대, 엄청난 군중, 그리고 밀림에서 달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우주 삼라만상- 이들, 평소에는 눈에 익지 않은 것들을 봅시다. 그림, 탑, 대발견 등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들을 봅시다. 수천 킬로미터나 저편에 있는 것, 혹은 벽이나 방 안에 숨어 있는 것, 위험을 무릅써야 접근할 수 있는 것, 사나이들이 한없이 사랑하는 여성과 어린이들- 이 모든 것을 봅시다. 그리하여 즐기고, 놀라고, 배웁시다.”

 

다음 페이지에 라이프지 최후의 편집장으로 남게 된 랄프 그레이브의 서문 역시 인상 깊다.

 

“라이프지는 1936년 11월에 창간, 1972년 12월에 애석하게도 폐간되었다. 36년의 삶이었다. 수명이 긴 편은 아니었으나,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잡지를 들추어 보아도 라이프만큼이나 생생한 충격을 독자에게 던진 잡지는 없으리라. 라이프는 전세계를 독자의 눈앞에 펼쳤다. 그 방법 또한 독자들이 들어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경험’이란 결정적인 무게를 가진 낱말이다. 무수한 사진은 다만 봄으로써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보는 자의 마음을 감동으로 끓게 한다. 기백만, 아니 기천만 독자의 가슴에 남긴 감동의 물결, 이것을 ‘경험’이라고 부르고 싶다.(하략)”

 

세상에 나온 지 37년 만에 우연히 내 손으로 흘러든 이 책은 카페 책장에 꽂힌 어느 책보다 노쇠했지만 그 위력만큼은 내게도 충격과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본군에 의해 참수 직전에 놓여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비행사,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게릴라들의 시체 속에서 자기 아들을 발견하고 실신한 부인, 동독의 어느 폭탄제조공장에서 대거 학살된 노동자들, 수용소 건물의 문을 빠져나오다가 목과 팔이 문틈에 낀 채 그대로 불에 타 죽은 어느 정치범, 베트남 전쟁 당시 온몸이 묶인 채 죽어있는 남편의 시체를 발견하고 통곡하는 월남 여성, 곤봉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을 추격하는 영국군인들...

 

사진집에는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가슴 먹먹한 사진들뿐만 아니라, 중국 대기근 당시 통통하게 살쪄서 웃고 있는 쌀장수 부인과 그 옆에서 뼈만 남은 채로 구걸하는 굶주린 소년의 사진도 있고, 물레질 하는 마하트마 간디와 달의 표면에 첫발을 내딛은 닐 암스트롱의 사진도 있다. 불법선거자금을 받았다고 비난받은 부통령후보 닉슨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솔한 대모대가 경찰견에 의해 저지당하는 장면, 심지어는 인간의 두피를 500배로 확대한 모습까지도 실려있다.

 

 

이 책에는 ‘스포오츠맨이 전개하는 근육과 정력의 드라마’라는 타이틀 아래 각종 스포츠 경기 장면을 포착한 사진들 역시 대거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그중 조지 실크가 찍은 <파도타기 명수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위 사진이 압도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꼽고 싶다. 파도 꼭대기에 오른 서퍼 니크 벡의 모습을 찍은 이 사진은 카메라를 널빤지에 부착시킨 후 벡으로 하여금 셔터의 줄을 당기게 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이 사진을 봤더라면 흔한 광고 사진 같아 시큰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과 독재, 국가 폭력, 인종 갈등, 기근과 지진 등 20세기 인류가 통과한 절망적이고도 참혹한 비극의 현장 사이에 끼어있는 이 사진은 실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준다. 아, 그러나 또한 이것이, 하지만 바로 이것이,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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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예술, 악의 꽃에서 샤넬 No.5까지 한길컬처북스 24
고봉만 외 지음 / 한길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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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잡탕 같은;;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문화 예술 전반에 관련된 태그 수집 용도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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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그 막힘과 트임 또하나의 문화 6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엮음 / 또하나의문화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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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필자들이 대부분 50년대 생이다. 엄마뻘 이야길 듣고 있으려니 격세지감이 몰려오면서 책을 좀 잘못 고른 것 같다는 생각이;; 그동안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데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딱히 부당함이나 불편을 느껴본 경험이 없었던 점이 큰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인적으로 이십 여년의 세월을 가히 격리 수용이나 다름없이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사회 집단 내에서만 머무르고 있는 통에 이성과 업무적으로 부딪히거나 경쟁해야 일이 거의 없었고 큰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이러할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계급 갈등이 더 눈에 들어오면 들어왔지 젠더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간해선 갖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역시 인간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도무지 사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주부'가 되고 나면 어찌 될까. 여성학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될까.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내가 읽어나가는 책들이 내 상태를 어느 정도 반영해주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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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결혼이야기 1 또하나의 문화 11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 또하나의문화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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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등을 보거나 여러 인간 관계를 경험하면서 근본적으로 남녀 간의 감성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영화 <클레어 온 더 문>(Claire on the moon)에는 "이방인과 낙원을 나누어 가질 수는 없을 거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다른 종족 사이만큼이나 다른 남녀 사이에서 긴밀한 감정 교류를 원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없어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나는 나의 내부에 어떤 이성에 의해서 내 외로움이 이해되면, 완전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든지 내 삶의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짝짓기의 신화를 내 안에서 깨뜨리며, 남자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낀 나의 심리를 분석했다. 피해자이어 온 여성의 속성을 가지지 않은 남자의 이해를 필요로 했다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어 온 남성적 속성을 더 우위에 두었다는 증거이다. 나는 내 소외감의 원인이 나의 여성성을 부끄럽게 또는 억울하게 여기는 잘못된 인식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장하은, <삶의 각본을 찾아가는 과정> 中에서

 

글쎄, 꼭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진단할 필요가 있을까. 여성주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경도된 가혹한 자아비판이 아닐까. 호연재 김씨(1681~1722)의 글이 떠오른다. 그는 딸에게 주는 가르침을 적은 <자경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편이 비록 멀리하더라도 스스로 잘못이 없기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비록 알지 못하나 푸른 하늘의 밝은 해를 대해도 부끄러움이 없으니, 무슨 까닭으로 깊이 스스로 걱정하여 부모님께서 주신 몸을 상하게 하랴? 오직 날마다 그 덕을 높이고 스스로 자기 몸을 닦을 뿐이니, 참으로 장부(남편)의 은의(恩義)와 득실만 돌아보고 연연하여 여자의 맑은 표준을 이지러지고 손상하게 한다면 또한 부끄럽지 않겠는가?" 소외감을 타기하고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있어서 김씨의 호방한 태도는 귀감이 된다.   

 

이들 여성들이 소위 '바람'이라는 '연애'를 하게 되면서 자식에 대한 애착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지면 자식에 대한 생각도 멀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가족 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특히 남편이 먼저 '바람'이라도 나면 여성들은 남편은 물론 자식들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즉 남편과 자녀를 같은 차원에서 간주하면서 일반적으로 '모성'이라고 하는 자녀에 대한 집착은 살펴보기 힘들다. 자식은 남편 것이며, 자신은 남편 집에 와서 식모 같이 일만 해주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남편과 자식을 두고 나가 버리는 주부가 나올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조옥라, <주부들을 위한 사람의 부적> 中에서

 

'외도'는 가장 접근이 쉽고 또 그만큼 환상에 젖어있는 기간이 짧아 허무를 빨리 느낀다는 점에서 급이 낮은 쾌락 같다. 부부 간의 감정 소모를 격하게 일으키는 등 쾌락의 추구에 따른 괴로운 부산물을 너무 많이 발생시킨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렇고. 가정을 파탄내지 않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누려볼 만한 개인적인 쾌락으로는 뭐가 있을까. 종교나 사상 또는 예술에 빠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직업이나 육아, 사회 운동, 하다 못해 화초 가꾸기라도 역시 그것이 당사자에게 창조적 활동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무언가에 빠져든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람을 살아있게 만드니까. 보들레르가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항상 취해 있으라고. 시간의 중압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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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결혼이야기 1 또하나의 문화 11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 또하나의문화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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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결혼하면서 동시에 이혼할 준비를 하였다. (...) 이런 이야기가 '편안해야 할' 결혼 생활을 살벌한 것으로 들리게 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이혼이라는 거점이 결혼 생활을 신선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언제나 '혼자 살 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함으로써, 나를 보다 독립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자원이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노력으로 연결되었다. 결혼은 둘이 사는 것이지만 또 자신이 살아 내는 것임을 두고두고 일깨워 주었으므로. -신해순, <결혼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살기> 中에서

 

'이혼을 준비하며 사는 것'은 '죽었다 생각하고 사는 것'과 결과적으로는 동일한 효용을 낳는 태도일지도. 삶의 강밀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염두하며 사는 것과 삶 자체를 매순간 의식하며 사는 것이 결국은 똑같은 강박증인 것처럼. 

 

(...) 결혼 생활은 둘이, 아니 여럿이 사는 것이지만 결국 자신이 사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독신과는 다른 방식의 '혼자 살기'라고 말하고 싶다. (...) 결혼에도 역시 외로움과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독립되어 있는 것이 결혼의 준비라는 것을 말한다. 사실 남자에게서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이란 곧장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으로 생각되는데, 여자의 경우에도 그것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남성 및 그의 가족에의 종속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자기 지원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의 사회 조직 성격상 가족 역시 중요한 사적 지원의 네트워크가 될 수 있겠지만, 가족 바깥으로 눈을 돌려서, 여성들의 다른 네트워크를 키우고 보살펴야 한다. 친구, 이웃, 직장 관심사 등으로 연결된 여성의 네트워크는 여성에게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지원을 주는 일종의 대항 네트워크가 되어 줄 수 있다. 가족은 이때 많은 의무와 부담의 판을 여성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들 네트워크는 다른 종류의 판을 만드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려면 여성들은 거기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먼저' 자신의 일과 시간과 관심의 판을 만들어 놓을 때 저쪽의 판은 이 판과 협상할 수밖에 없어질 것이다. -같은 곳

 

남편은 나와 대화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편이 나의 감정을 이해하느냐, 아니냐가 나의 삶의 방향과 목표에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대답은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족이 좀더 서로 이해한다면 내 삶의 색깔이 더 다양해지고 따뜻해지겠지만, 내가 지향하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덜어 주거나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혼자 져야 하는 책임의 몫은 여전히 나의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 스스로 행복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누군가의 이해와 몰이해가 더 이상 나의 행복 여부를 좌우하지 않는다.

 

(...)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사랑을 원한다.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것이 내 가정에서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랑을, 그리고 관계를 원한다. 나는 내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내가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먼저 남을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사랑을 나누어가는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남편과의 밀착된 관계가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 큰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 나도 비슷한 편안한 느낌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는 (...) 자신이 삶의 주인이고자 노력하면서 중년에 이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 나이를 먹었다는 것과 마음에 여유를 얻은 것, 또 직업상 정진이 있었던 것 등은 행복하게 사십대를 맞이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소들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원 중 하나는 항상 주위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지원과 신뢰가 내게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 나의 삶의 과정에서 결혼이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각본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길목을 열어준 것이었다. (...) 돌이켜 보면 자신의 삶의 각본을 완성해 가는 길목에서 결혼하느냐 마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갈림길은 아니다. 어떻게 삶의 주체(주인공)가 되어서 자신 안에 있는 여성적인 힘을 키워 내느냐 하는 선택이 중요하다. 그 여성적인 힘이란 우선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을 돌보는 힘이다. -장하은, <삶의 각본을 찾아가는 과정>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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