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관상 1~2 세트 - 전2권 - 관상의 神 역학 시리즈
백금남 지음 / 도서출판 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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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1,2

 

 

늘 상상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보자마자 어떤 사람인지 알아맞히고 그 사람의 미래를 읽어낼 수 있는 일. 관상 뿐만은 아니다. 사주팔자, 자연의 변화, 별자리, 꿈, 예언, 풍수지리 등 그 무엇이라도 읽고 사람과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관상은 그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어떤 거부감이나 망설임 없이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관상에 관한 소설이고 이미 알고 있는 역사,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인물에 관해서는 수양이 아닌 김종서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종과 단종에 대한 충정, 수양의 정적. 6진을 설치하고 여진족을 토벌한 위대한 장수. 그러나 이 소설 속의 김종서는 그런 표면적인 모습이 아닌 좀 더 내밀한, 자신의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달과 대대손손 이어질 자신의 핏줄을 위해서 치졸하고 음흉한 일도 저지를 수 있는 일개 사대부인 김종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김내경이다. 그의 아버지가 김종서로 인해 역적의 누명을 쓰고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김종서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김종서에 대한 복수의 칼을 숨긴 비운의 관상쟁이.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그의 정적 한명회.

 

1권은 김내경의 아버지와 스승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경의 탄생, 아버지의 죽음, 가문의 멸망, 그리고 김내경이 관상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가슴에 칼을 품게 되었는지, 어떻게 대단한 관상쟁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아내 아연을 만나 아들 진형을 얻은 사연, 아내 집안의 몰락, 아내와 어머니의 죽음 등의 이야기들이 다소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관상이야기와 함께 엮여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2권부터 이어지는데, 김내경, 신을 받은 기생 연홍, 처남 팽헌이 김종서와 수양대군, 단종과 얽히고, 섥히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된다. 또한 이야기 전개와 함께 관상자체의 요소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아마도 작가는 아주 오랜 시간 관상에 대해 공부를 한 것이리라. 내경은 스승에게 혹독한 방법으로 관상에 대해 배우고 스스로 황금비율을 찾기도 하며, 먼 중원 땅까지 찾아가 달마대사로부터 내려온 관상 법까지 배운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속에 어떻게 내경이 관여하게 되며, 과연 김내경이 원하는 대로 복수를 하게 되는지, 그 과정은 어떠할 지 또한 한명회의 역할은 어떻게 그려질 지 매우 궁금했다.

소설 속의 수양대군은 이리의 상을 김종서는 호랑이상을 갖고 있다. 이는 물형법인데, 관상을 보는 한 방법으로 자연의 모습을 사람의 얼굴에 대비시켜 그 상을 읽어내는 방법이다. 소설 속에는 이 뿐만 아니라 관상을 보는 여러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고, 그 관상들이 어떻게 사람의 운명을 만들어 가게 되는지, 이러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잡아내기도 하고 죽을 날을 알아맞히기도 하면서 소설의 한 축으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리와 호랑이는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며 으르렁거린다.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자신의 사람을 만들어가면서 조선은 이미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다. 내경은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수양을 도와 문종의 명을 앞당기기도 하고, 김종서의 편에서 수양을 견제하기도 하며, 그러다가도 수양을 돕기도 하는 등 추측과는 다른 행보를 이어간다.

 

김내경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처신을 한다. 그는 어느 순간 복수보다는 스스로 역사를 바꾸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노린 사람은 보지 못했고, 자신의 아들도 지키지 못했다. 그는 어느 순간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운명을 거스르고 그 운명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자 했다. 그러나 그리 행했던 모든 일들은 결국 그 타고난 운명을 움직이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모두 아는 대로 김종서는 죽음을 맞지만 이는 김내경의 복수가 아니었으며, 수양을 제거하고자 그의 얼굴에 점을 세기는 위험천만한 일을 저질렀지만 이는 그가 왕이 되는 운명을 더 앞당겼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조차 지키지 못하고 눈이 멀게 만들었으며 자신이 지키고자한 어린 임금 또한 지켜내지 못한다. 결국 모든 것은 순리대로, 그리 되어야 했던 길을 따라 흘러갔고 역사의 수레바퀴도 어김없이 굴러갔다.

 

 

 

저자가 의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누구나 타고난 관상은 있다고 한다. 그것은 타고난 운명이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운명을 개척하는 것도 사람이라 한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고.

 

소설 속 김내경, 그의 어머니, 그의 아내, 아들까지도 그것을 원했다. 어리석고 힘든 백성이 자신의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그 길을 열수 있기를. 그러나 김내경은 아마도 자신의 상에 갖혀 스스로 보고자 한 것만 보고 만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이 조금 허무했는지도.

 

세상에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으랴. 있다 해도 그것은 자기 자신만이 만들어 갈 수 있는, 스스로의 몫이리라. 영화에서는 어떨지 궁금하다. 아마도 2권부터가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 같고 소설 보다 한명회의 역할이 좀 더 크지 않을까. 그리고 극적인 효과가 있으니 관상, 특히 국부 관상에 대한 부분은 좀 더 재미있게 그려지지 않을 까 상상해 본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모습도 어떨지 궁금하다. 색 기 넘치는 연홍과 내경과의 사이도 좀 에로틱하게 그려지려는지.

 

여전히 나의 호기심과 미래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내 얼굴만은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람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일이라 내가 과연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할 수 있을지, 어쩌면 지금처럼 살다가 끝나 버릴 지도 모르지만 타고난 내 얼굴보다 더 못난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 가' 바로 이것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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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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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몇 년 전에 나는 아주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매일 울고, 삶의 의욕이 없었으며, 누군가를 끊임없이 원망하고 미워했다. 주위 사람들을 붙들고 그 사람이 나에게 했던 가혹한 행동들과 내가 그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끝도 없이 이야기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런 일을 반복하는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어느 순간 내가 그 사람을 원망하는 힘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었다. 그 순간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해 버리면 더 이상 나는 어떤 힘으로 살아가야 할 지 몰랐다. 그 당시 내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내가 그렇게 무기력 할 수밖에 없고, 내가 그 '꼬라지' 로 살아가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 때문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내 한심한 꼴은 모두 '내 탓'이 되는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내게 했던 가혹한 일들을 그만두게 할 기회가 있었고, 내가 그를 원망하기에 앞서 그 잘못된 일을 시정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그냥 도피처를 찾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어렵사리 인정하고 나자 나의 우울증도 비통한 심정도 모두 씻은 듯이 사라졌다. 또 그 사람도 나처럼 그저 '완벽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책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으면서 나는 '에고'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는 아주 심각한 상태였다. 이 책에 따르면 그 당시의 나는 에고의 '피해자의 역할' 을 연기하며 사람들의 동정과 연민, 관심을 받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에고는 '자신에 대한 허구의 이미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신적 이미지, 생각과 감정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인간의 근본적인 착각' 을 의미한다.

 

에고는 소유와 존재를 동등하게 여긴다. 내가 소유하는 것이 바로 나라는 환상이다. 그것은 어떤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미지나 육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가진 집, 자동차, 명성, 부가 될 수 있으며, 여기서 에고는 '갖고 싶어 하는 것' 보다 '더 많이'원하는 욕망을 말한다.

 

나아가 에고는 원하는 것을 충족하기 위해 일정한 역할을 연기하는 데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능보다 그 역할에 지나치게 '동일화'된 나머지 그것이 자신을 점령해 완전히 그 역할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 역할에는 그 중산층 주부, 부모, 체제 거부적인 예술가나 배우, 문학, 미술, 음악 등의 지식을 과시하는 문화인, 거칠고 사내다운 남성, 유혹적인 여성이 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관계는 사라지고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에고는 집단화되기도 한다. 에고는 분리하고 배척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데 나와 다른 생각, 내가 속한 단체가 국가 이외에는 모두 비정상적이고 적으로 간주하게 되는데 개인이면 하지 못하는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일들도 어떤 집단이 되면 무의식중에 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에고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은 비정상적이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체가 에고로써 기능한다. 그저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에고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고 진정한 '존재' '진정한 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속에는 붓다, 예수, 인디언을 비롯한 여러 신비주의 영적 지도자들의 이야기도 접할 수가 있는데 종교로써가 아니라 어떤 깨달음을 얻은 선지자로써의 이야기를 접할 수가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성경속의 에피소드나 예수의 말씀은 이제껏 오로지 '종교'나 '믿음'으로써 '강요'받던 것이 아니라 존재와 깨달음의 말이었다는 것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저자는 에크하르트 톨레는 특정한 종교인이 아니다. 이 책속에는 어떠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다만 '에고'와 '에고에 대한 집착'을 알아차림으로써 현재의 순간을 사는 자유와 기쁨을 알 수 있도록 그 길을 제시한다. 또한 이 책은 알기 쉽게 적은 '깨달음'의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생활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면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게 일어나는 생각, 나의 욕심, 내가 연기하고 있는 역할들에 대해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관계자체에 대해 그리고 나의 행복에 대해. 이제 어떤 감정이 피어오를 땐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사실' 과 '감정'을 분리시켜 보려고 노력한다.

 

또한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는 성공, 인정받는 것, 남들과 비교하며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 보다 그저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 하고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애써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그저 현재와 지금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이 책은 한번 읽으면 그만인 책이 아니다. 늘 가까이 두고 자주 펼쳐보아야 할 책이다. 읽기 쉬운 책도 아니다. 한 구절 한 구절 버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꼼꼼히 읽히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어떤 화두를 받은 것처럼 묵직함으로 다가오는 책이며, 읽는 것보다 실천이 더 중요하고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내겐 숙제 같기도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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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대를 메고 산으로 간 거스 오비스턴은 왜?
데이비드 제임스 덩컨 지음, 김선형 옮김 / 윌북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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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대를 메고 산으로 간 거스 오비스턴은 왜?

 

 

 

어렸을 때 '흐르는 강물처럼' 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거대한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강에서 긴 낚싯줄을 휘두르며 물고기를 잡던 그 장면은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내 뇌리 속에 깊이 박혀있다. 햇빛이 반짝이는 넓은 강, 그 한가운데로 들어간 사람, 그리고 그이가 낚아 올린 커다란 물고기. 그 거대한 자연과 그에 동화된 사람, 그 장면들은 정말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던 것 같다.

 

우리 외삼촌은 낚시 광이었는데 한 달에 거의 2주 넘게 집에 들어오지 않는 적도 많았다. 그러나 외삼촌이 하던 낚시와 이 소설에 나오는 낚시는 형태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외삼촌은 떡밥이나 지렁이를 한 낚싯대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바늘에 꿰고 한자리에 앉아 여러 개의 낚싯대를 드리웠는데, 이 책에서 묘사된 낚시는 미끼를 쓰지 않고, 직접 만든 플라이라고 하는 깃털이 달린 가짜 미끼를 이용하며, 낚시꾼이 강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서, 긴 줄을 휘둘러 던져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 형제들은 낚시보다 외삼촌이 잡은 물고기로 그 자리에서 바로 끓여주는 매운탕이 더 좋았던 것 같고.

 

동양에서도, 특히 내가 좋아하는 이외수 작가도, 서양에서도 낚시는 어떤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방법인 걸까. 때로는 미끼 없이 줄만 드리우기도 하고, 자신이 던진 미끼를 문 물고기와 어떤 교감까지 하는 것을 보면 낚시는 양식을 얻기 위한 사냥 이상의 그 무엇인가 의식적인 어떤 면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거스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큰 어려움 없이 낚시를 시작하고 또 남들은 한번 잡기 어렵다는 큰 물고기들을 쉽게도 잡을뿐더러 리스트를 작성할 정도의 천재이다. 아마도 낚시에 전문가들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것일 테지만 말이다.

 

그는 플라이 낚시를 다소 상업적으로 하는 아버지와 떡밥을 써서 낚시를 하는 어머니의 불 장난 같은 사랑으로 태어났다. 이 소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참으로 괴짜 같은 캐릭터들이다. 낚시의 스타일이 다르듯 삶의 철학도 추구하는 것도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며, 늘 티격태격 싸우고 아웅다웅 살아간다. 그 속에 첫째아이인 거스는 낚시에 천재이지만 우울한 청년으로 자라나고 그 동생 빌 밥은 어떤 신비로운 면을 가진 캐릭터로 그려진다.

 

거스가 19살 정도 되던 해에 역시 늘 우울하던 그는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던 자리에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막말을 마구 내뱉으며 소리를 치고-이 장면은 정말 시원하면서도 웃겼다- 집을 떠나 삼나무 숲의 통나무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거기서 매일매일 하루 종일 낚시만 하고 산다. 낚싯대를 만들고, 플라이를 만들고 줄을 묶으면서 그의 유일한 친구인 낚싯대 '로드니'와 함께. 그는 고독이 만병통치약이라 믿는다. 자신에게 남은 부모님의 언쟁들, 자신이 낭비한 시간 등을 고쳐줄 것이며 독립하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독은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주위에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이웃이 생기고, 강에서 죽은 사람을 건져내고 그 일련의 행위를 계기로 철학자 타이터스와 그의 개 데카르트와 만나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기가 찾아온다. 늘 어둡고, 우울하고 무료하고 늘 중독 적으로 하는 낚시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타이터스와 대화하고 그가 주는 많은 책들을 읽으며 천천히 삶의 의미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 많은 과정들, 낚시를 하는 모습, 그가 만난 사람, 그의 사유의 변화, '영혼' 의 메시지를 들으러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산 속에서 밤을 지새우는 그 모든 장면들은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되어 있으며,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혹은 함께 그 속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들만큼 시각, 촉각, 후각, 청각까지 자극하는 문장들로 표현되어 있다.

 

가장 충격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한 부분들이 참으로 여러 번 있었는데, 자신의 일을 배우러 온 닉의 손에 패인 이야기를 듣는 장면, 그가 운명의 여인 에디를 만나는 장면, 헤어졌다가 다시 재회하며 둘이 같은 감정을 느꼈음을 교감하는 장면, 에디가 거스와 함께 있다가 잠시 자신의 집에 다니러 간 단 하루 동안 자신의 낚시 바늘을 삼킨 연어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오르며 교감하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그중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적이면서도 슬펐던 장면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알게 된, 인디언 토머스가 낚시하는 장면을 회상하는 부분이었다. "치누크 한 마리를 잡을 때 마다 잡은 물고기를 하늘로 높이 치켜들었다가 놓은 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곤 하며" 낚시하는 토마스와는 대조적으로, 옆에선 젊은 청년들이 작살로 물고기를 잡으면서 물고기들에게 온갖 욕을 하고 잡지도 않을 거면서 물고기들을 마구 죽이고 상처를 내고 있다. 게다가 그곳은 백인들이 댐을 만들어 회류성 어류들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정신을 놓은 채로 거친 물살에 대항하며 죽어가고 있는 곳이다.

 

작가는 이 둘의 장면을 대비시키며 우리 인간들에게 생명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며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거스 또한 자신이 물고기를 잡아 죽이는 그 "낚시" 라는 행위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생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강과 물고기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다시 돌아가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에디가 자신의 집에 다니러 간 단 하루 동안 거스가 연어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장면이다. 거스는 어느새 자신의 바늘을 삼킨 연어와 줄을 통해 교감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연어를 떠나 물, 다른 물고기, 숲에서 나온 동물들과도 인간 대 동물이 아닌 각자의 존재자체로 교감함을 느낀다. 에디와의 사랑, 그리고 깊은 사유, 자연과의 교감이 결국 그를 구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장면은 이렇게 묘사된다. "낚시 바늘에 꿰인 것처럼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나의 통증은 강해졌다. 나는 기쁨에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하얀 길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머리를 비추는 햇빛 같은 손길을 느꼈다. 그 빛이 영역이 아닌 한 존재에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 빛과 낚싯바늘은 그분의 것이며,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나는 울기 시작했다. 태고의 존재가 나를 당기고 있다는 것, 이 가을의 풍경으로부터 영원한 기쁨을 향해 나를 불러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빛의 낚싯줄과 사랑의 손길" 을 얘기하기 위한 600쪽이 넘는 거대한 서사시가 결국 그렇게 아름답고 훈훈하게 막을 내린다.

 

 

 

 

이 소설속의 주인공은 19살 때 홀로 독립을 하고 고독하게 살아가려 마음을 먹고 20살에 거대한 사랑의 존재를 느끼며, 진정한 짝을 찾고 드디어 격정 같은 청소년기를 지나 진정한 성인이 된다. 낚시를 통한 깨달음, 거대한 자연과 초월의 존재와의 교감,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과정은 아주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그려진다.

 

아름다운 풍광, 아름다운 사람들, 극심한 고독과 깊은 철학적 사유를 이 짧은 글에 다 표현할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격심한 방황과 고독, 질풍노도와도 같은 시기를 지나 진정한 성인이 된다. 인디언들이 자기 부족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영혼' 에게 자신의 소명을 듣는 것으로 성인식을 치르듯 우리도 자신들만의 성인식을 치른다. 나 또한 내 인생의 소명을 듣기위해 아주 오랜 시간 나 자신과 싸우고 부모님과 대립하고 나 혼자만의 세계에서 고독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성장기이기도 하고, 인간과 자연의 대립과 화해의 대 서사시이기도 하며, 영성과 가족애, 종을 넘어선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가, 어떠한 시각으로 읽는가에 따라 아주 다른 이야기와 교훈,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나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온 몸에 전율을 느끼기도 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책장을 펼치면 눈앞에 거대한 삼나무 숲과 넓은 강이 나타나는 듯 했고 각종 물고기들과 짐승들과 이야기를 하는 듯도 했으며, 인디언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참으로 아름답고도 유쾌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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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으로 세상의 흐름을 읽다 - 어떻게 세상은 움직이는가?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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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으로 세상의 흐름을 읽다

 

 

 

 

패턴으로 세상을 보다는 것은 나무보다는 숲을 본다는 얘기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늘 반복되는 문제들은 형태를 달리할 뿐 결국 그 본질은 결국 같은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흐름을 읽을 수 있다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또한 인생과 사회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을 가지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이 책은 그러한 의미에서 써졌다. 세상과 문제와 일과 사람을 보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나무와 숲의 비유를 많이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무를 보고 어떤 부분에서는 숲을 보아야 하는지 문장 그대로는 알지만 진정한 의미를 알고, 나아가 그를 실천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책은 우리의 자연, 과학, 역사, 정치, 사회를 좀 넓은 의미에서 보게 해준다. 어떻게 보면 각 분야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숨겨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을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제목을 보지 않으면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지식의 백과사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신기한 것도 많고,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이런 것을 연구한 학자도 있구나 하고 하면서 많은 것을 알려준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이론들이 등장하고 이제까지 여러 책에서 본 많은 이론들도 소개가 되어있다. 과학과 철학의 사조, 수학이론, 논쟁의 방법, 공자와 맹자, 종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수직적 사고와 수평적 사고 등 여러 분야에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이룩해 오거나 달라진 점들을 크게, 크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기대한 패턴과 이 책에서 말하는 패턴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내가 기대한 패턴은 '세상이 변하는 어떤 특별한 법칙, 원리'로써의 패턴이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패턴은 '작게는 여러 일이 있었지만 크게 보면 이런 것으로 말할 수 있다' 는 의미가 강한 것 같았고, 때로는 A에서 B로 발전이라는 보다는 A와 B의 비교가 더 적절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는 것이다. 전체론과 개체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논쟁이나 회의의 방법, 수직과 수평적 사고, 과학 사조, 진화론과 단속평형, 공자와 노자, 불교의 세계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등의 분야가 그랬고 수학의 부분은 문제를 보는 시각의 '인식의 방식'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책을 읽어가다 보니 내가 책에 대해 많은 오해와 선입견을 가지고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내가 기대한 '원리' 이기보다는 세상과 역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혹은 '사고 패턴의 변화' 로 생각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사고의 패턴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준다. 과학, 철학, 사고, 역사, 이데올로기 사회 현상 등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지게 해준다. 책의 분량도 많지 않고, 한 단락의 분량도 적어서 언제든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새로운 사고로의 전환을 꿈꾼다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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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곤충학 - 자원 곤충, 인간의 물질문명을 진화시키다
길버트 월드바우어 지음, 김소정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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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욕망의 곤충학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곤충은 어떠한 존재일까? 요즘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오지를 탐험하는 예능프로를 보면 우리는 먹지 않는 동물이나 곤충을 먹는 장면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다른 여러 나라들은 전갈이나 쥐, 뱀, 애벌레들을 재료로 하는 요리도 있는데 우리는 메뚜기를 먹는 것 이외 다른 종류의 곤충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곤충은 먹기에는 좀 징그러운 존재, 혹은 해충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곤충들을 소개한다. 그중 특별히 인류에게 도움을 준 곤충들과 그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을 소개한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곤충은 일단 벌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달콤한 꿀을 주고 그들이 만든 6각형 집은 사람들에게 건축의 아이디어와 건강에 좋은 성분을 준다. 또한 꽃들을 수분시켜 우리에게 열매를 주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꿀벌이 사라지면 몇 년 안에 인류도 멸망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기도 했는데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일 것이다. 지금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매년 몇 퍼센트씩 꿀벌이 없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 환경이 오염되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말할 수가 있으니 그건 인류에게도 좋은 징조가 아니다.

 

또한 우리에게 옷감을 주는 누에나방, 염료를 주는 깍지벌레, 말리거나 살아있는 그대로 악세서리로 쓰는 화려한 딱지벌레, 비단벌레류, 잉크를 주는 혹벌레의 혹등,도 있고, 다친 부위를 소독해 주는 구더기에 벌어진 피부를 집어서 붙여주는 병정개미까지, 이렇게 우리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또한 저자는 동양의 상형문자인 한자에 곤충을 뜻하는 글씨가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우리에겐 별것 아니지만 문화가 다른 곳에선 그런 글자가 있다는 것이 신기해 보이는 모양이다.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들이 애써 만든 것들을 우리가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닌가, 곤충이라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은 계속되고 그에 덧붙여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는 곤충들을 벌레라하여 너무 징그럽게 여기거나 함께 살아가는 것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 어느 학자는 미래의 떠오르는 식량자원으로 곤충을 얘기했다고 하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듯 느껴진다.

 

책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책 읽은 전후를 비교해 보면 곤충에 보는 느낌이 달라진 같은데, 예전에는 무작정 징그럽기만 했다면 지금은 모르는 곤충을 만나면 어떤 곤충인지 궁금증이 먼저 일어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이 책에는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 좀 더 많은 삽화나 실제 사진이 첨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벌레들이나 벌레들이 만든 고치, 그들을 이용해 만드는 물건들이 글의 묘사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곤충.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물 무생물이 의미 없는 존재가 없지만 특히 곤충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들을 주고 희생을 하면서도 그 진가는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반대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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