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추적자들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의 발칙한 에덴 탐험기
브룩 윌렌스키 랜포드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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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추적자들

 

 

 

 

 

 

 

난 한 번도 에덴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굳이 따지면 진화론자이며, 신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인류가 일으킨 문명전에 먼 고대에 우리보다 더 번성한 문명이 있었을 지도 모르며, 혹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누리는 이 문명은 외계인이 전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물며 에덴이야.

 

 

종교인이 시각은 어떨까. 그들에게 에덴이란 존재는 어떠한 곳일까. 신이 만든 동산에 직접 빚어 만든 남자와 그의 갈빗대를 뽑아 만든 여자란 존재. 그들이 살아가던 이상향, 그 너머 어떠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에덴은 어찌 보면 그들이 찾고자 한 이상향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에덴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에덴'을 이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지식, 명성, 지위를 이용하여 더욱 유명해 지거나, 스스로 돋보이기 위하여, 때로는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부풀리고 논쟁하고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때로는 싸움, 정쟁의 도구로 쓰기도 하고, 자신이 믿는 바를 억지로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쓰기도 하였다. 도저히 과학자로 보기 힘들만큼 비과학적인 근거를 대고, 때로는 그 근거를 진심으로 믿어버리기도 하는 등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 듯 한 행동을 보였던 사람도 있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에덴보다는 그 에덴을 추적한 사람자체에 집중이 되기도 하고, 그가 활동했던 시대상, 에덴 논쟁으로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에 더 주목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도 그 비슷한 상황 속에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바로 논쟁의 '주제' 보다 그런 논쟁을 벌이는 사람이 더 주목을 받게 되는 현상. 변희재, 진중권, 낸시랭의 트위터 설전 말이다. 어느 순간 논점은 사라져 버리고, 논쟁하는 사람들만이 남아 그 사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그 사건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이슈의 중심이 되어 버리는.

 

 

에덴의 느낌이 바로 그러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에덴'이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에덴을 찾는 가족 때문에, 외세의 위협에 빠진 자신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 새로이 대두되는 과학에게 신학의 힘을 내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이기 위해, 처음에는 어떤 간절함에서 시작한 에덴 찾기는 어느 순간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그들의 가슴에서 떠나가고, 그 색이 변질 되었다.

 

 

책을 읽은 후 나의 느낌은 근대사의 한 귀퉁이를 둘러본 느낌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리 상쾌하지 만은 않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 눈부신 업적을 쌓아 올렸다는 인류,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지구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리를 지닌, 늘 과학적이고 진취적이며 합리적이었다는 그 인류가 걸어온 길은 어쩌면 모순과 실수, 아집과 이기심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과거에 국한된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큰 의미가 없는 것을 두고, 자신이 조금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자신이 가진 부족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변화하는 세상에 뒷방 늙은이로 밀리지 않기 위해 늘 싸우고 악을 쓰며 살아가지 않는지.

 

 

이 책은 '에덴' 이라 표현되는 자신만의 '이상향'을 찾아 어리석은 모험을 하는 인간의 바보 같은 역사이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내가 찾아 가는 이길,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꾸는 꿈이 과연 무엇을,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인지를 늘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순간 그 목표는 잃어버리고 그저 어느 곳을 찾아 방황하는 '나' 만이 주인공이 되어, 눈과 귀를 닫고 아집과 이기심에 똘똘 뭉친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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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이 좋다 - 불영사 자연 그대로의 밥상 불영사 사찰음식 시리즈 3
일운 지음 / 담앤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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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이 좋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불영사'라는 이름이 참으로 익숙했다. 노트북을 뒤져 사진을 보고나서야 불영사에서 주최한 공연에 초청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 당시 불영사에서 '사찰음식 문화향연' 이라는 행사를 했었는데 공연보다 실은 사찰 경내에 진열되어있던 갖가지 음식들에 더 관심이 갔었다. 먼 곳이라 일찍 출발을 했었고 연주자들과 함께 버스를 맞춰 타고 공연이 아니라 마치 소풍가는 기분을 즐겼던 기억도 났다.

 

 


불영사의 첫인상은 아담하기도 하고 따뜻한 햇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비온 뒤가 그런지 상쾌한 느낌이 들었고. 그러나 경내에 가득 차려진 각종 나물들이며, 장류, 장아찌, 채소 무침, 색색이 고운 옷을 입은 전류, 이름도 모르고 처음 보는 음식들을 보는 순간 연주자들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리허설을 마친 후 바로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흥분했었는지. 종류와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또 얼마나 깔끔하고 맛깔난지, 다 맛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웠고, 모두 먹는 것 이상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 법석이었던 기억도 난다.

 


이 책에는 그 때 보았던 많은 음식들이 다 실려 있는 것 같지 않다. 아마도 그 음식들 중에 특히 맛깔나고 단지 먹는 것을 넘어서 더 큰 의미를 줄 수 있는 음식들이 선택되어 실려 있는 것이겠지.


요리에 관심이 많고, 요리 자체보다 '안전한 먹 거리' 와 '다이어트' 또 다이어트를 넘어서 '건강한 식습관'과 '지속가능한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는 나에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교본이다.


식품첨가물, 공장 식 사육, 농약, 환경오염, 유전자 변형, 방사능, 비만, 건강, 다이어트에 까지 우리의 생활은 먹 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간편한 것을 찾은 사람들의 중심에서 늘 뜨거운 감자로 자리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건강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로 까지 많은 부분을 고민하는 것일 게다.


또한 음식을 '치유'와 '비움' 등의 정신적인 수양의 의미로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는 것을 보면 이 또한 가정에서 음식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은 이런 고민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지침서 이다. 불영사 사찰음식 시리즈 3권인 이 책은, 제철에 나는 식재료를 저장하는 장아찌, 장류, 특별하지 않은 늘 밥상에 올라오는 볶음, 조림, 무침 류, 하루도 빼지 않고 먹는 밥과 간단한 죽이나 수프, 다소 특별한 느낌을 주는 샐러드나 면, 튀김 류, 떡과 전 종류의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

 

 


사찰음식이라서 육류를 쓰지 않으니 채식을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정말 딱 이고, 굳이 채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칼로리나 영양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보기에도 예뻐서 식감을 자극하고 굳이 맛보지 않아도 그 담백한 맛이 짐작이 된다. 채식을 해서 늘 어떤 것을 먹을 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 책을 보며 고민이 조금 줄었다.


특히 장아찌 류가 중점적으로 실려 있는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재료들이 나오는 것도 신기한데다 토마토나 참외 같은 과일도 장아찌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좀 독특했다. 또한 제철에 나는 재료들을 그때, 그때 먹을 수 있는 방법들이 있어서 좋았다.


레시피도 복잡하기 않고 간단간단하게 적혀있고, 각 재료의 특징들과 이름의 유래, 성질 등이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어서 재료를 쓰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짧은 스님의 말씀 또한 마음을 다스리기에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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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 - 한 권으로 읽는 모든 것의 역사
데이비드 크리스천 & 밥 베인 지음, 조지형 옮김 / 해나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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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 교양서, 우주와 지구, 인류의 거대한 역사

 

 

역사라고 하면 인간이 거쳐 온 모습이나 인간의 행위로 일어난 사실, 또는 그 사실에 대한 기록 즉 각 시대, 나라와 민족별로 독특한 문화, 특정 시기나 인물, 관계, 특정 사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부분은 인류학, 고고학, 사학 등 인류가 살아오면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연구하는 '인문학' 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역사는 더 크고 융합적인 개념이다.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지구가 생기게 된 과정, 지구가 어떤 사건들을 겪으며 생명을 만들어 내고 결국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를 연구하는 물리학, 지질학, 천문학,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 을 역사라는 인문학적인 영역과 융합한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며,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보고 독특한 의문점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책은 빌 게이츠가 지원하는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 의 기본 텍스트를 번역한 책이다. 이 프로젝트는 기본 텍스트와 영상으로 된 강의라고 하며, 책에는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가, 우리나라로 보면 중3~고1 정도의 나이의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이 수록 되어 있다. 그래서 실제 영상자료에 있는 사진들이 많이 수록 되어 있고,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한 내용, 그리고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함께 토론하거나, 스스로 좀 더 고민하면 좋은 만한 질문들이 각장의 마지막에 실려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 발등에 떨어진 불' 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나 직장인들과 대화해 보면 그들의 모든 신경은 오로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되고 있다. 곧 다가오는 시험, 입시, 성적, 학점, 자격증, 연애, 졸업, 취업, 결혼, 월급, 이직 등 내 눈앞의 일들이 힘들어 큰 시각을 가지지는 못한다.

 

 

그건 물론 잘못은 아니다. 그들도 나도 늘 생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우리들에게 바로 눈앞에 있는 나무를 보게 하는 책이 아닌 '숲'을 보는 시각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우주는 기나긴 역사 전체에 걸쳐 놀라운 방식으로 더욱 복잡한 것들이 출현했는데 어떤 일이 벌어지는 딱 알맞은 조건인 '골디락스 조건' 이 충족 될 때마다 나타나는 총 여덟 가지의 '임계국면'을 살펴보고 있다.

 

 

이런 임계국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빠르게 새로운 임계국면이 나타난다. 바로 다섯 번째 임계 국면인 '생명탄생' 이후이다. 이후에 지구에는 많은 생명들이 출연했고 그 중 바로 인류가 출연하고 이 인류가 '집단학습' 이라는 여섯 번째 임계 국면을 맞으며 지구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한다. 인류는 '종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것이 아닌 정보를 변화시키는 빠른 메커니즘으로 진화한 종' 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고 '글로벌 네트워크, 통상시장 팽창, 화석연료'를 이용하여 변화를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고, 그 과정 속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임계국면에서부터 여덟 번째 임계국면이 일어난 과정을 보면 지구상에 일어나는 자연재해, 환경변화, 화석연료사용, 농경의 변화, 인구증가나 감소의 모습들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국 이 책은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결국 '미래'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와 우리가 만들어가는 정치, 문화, 사회, 환경 등 많은 것들은 우리의 미래를 긍정적이게도 혹은 부정적이게도 만들 수 있다. 이 거대한 '빅 히스토리' 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과연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를, 어떠한 시각을 가질 것인가를 묻고, 고민하게 한다.

 

 

학생들에게는 자연과학, 인문학에 대한 교양을 쌓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통해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사고를 균형적으로 잡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일반인이 읽는다면 역시 교양을 쌓을 수 있을 것이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발상의 전환까지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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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때 잠자리
마르탱 파주 지음, 한정주 옮김 / 열림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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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때 잠자리

 

 

 

 

'피오는 여덟 살 때의 자신이 알아보지 못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상상을 해보자. 나는 어느 순간 생각지도 않은 어떤 계기로 정말로 유명한 사람이, 일명 벼락 스타가 되어버렸다. 언론과, TV, 잡지, 파파라치, 이미 유명해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렇게 되자 대중들도 나를 일제히 찬미하기 시작한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도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늘 이런 상황을 꿈꾼다. 좀 더 유명해지고, 좀 더 영향력이 커지고, 좀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좀 더 무엇인가 많은 것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런 욕망은 누구의 마음속에도 작게나마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닐까. 자기 자리에서 좀 더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그런 삶을 사는 것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는데 그냥 그렇게 돼버렸다. 부모님은 강도와 경찰로 만나 함께 도망자 신세가 되어 결국 감옥 속에서 죽고, 가난한 할머니와 가난하게 살던 주인공은 할머니가 죽고 나자 혼자가 된다. 그러다 먹고 살기 위해 작은 '사기'를 치기위한 방편으로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이를 예술계에서 유력한, 아주 유력한 사람이 보게 되고,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주인공은, 마치 '그의 마지막 작품'처럼 남게 된다. 천재적인 작가가 되어서.

 

그 이후로 주인공인 '피오'는 자신의 삶을 살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을 보지 않고도 그녀가 천재라고 떠들어 대고, 그녀의 재능과 천재라는 이름을 인정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들 논쟁의 중심이 되고, 그녀가 가지 않았던 파티에서도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의 인터뷰가 나고, 그녀가 하지 않은 말, 하지 않은 행동조차도 모두 이슈가 된다.

이제 그녀는 없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만 무성해지며,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의 등장으로 인해 잊힌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그녀를 더욱 더 환상적인 존재로 만들어간다.

 

이 일련의 과정은 정말로 사실적으로 그리고 우스꽝스럽고 조소하는 듯이 그려진다. 지금의 스타시스템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실력, 그의 작품, 그의 생각은 아무 상관없이 유명한 누군가 칭찬을 하고, 누군가가 언급을 하며, 자신이 그에 대해 더 잘 안다는 듯이 떠들어 대면 그는 그냥 '스타'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좋다면 대중은 그를 스타로 만든다.

 

문제는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 그의 삶이다. 자신으로 살 것인지, 그저 환상적인 존재로 남을 것인지, 그 거품이 꺼지고 나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 소설 속의 '8살 때 잠자리'는 그런 의미이다.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이 아니게 될 수도 있는 그런 날이 올 때,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건' 자기가 자기일 수 있도록 하는, 기준점이 되는 그 무엇. 8살 때 큰 빗줄기에서도 힘차게 날개 짓을 하던 그 잠자리를 보았던, 그때의 피오, 그때의 자신이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나는 내 인생에서 그런 기준이 되는 장면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고 있나. 내가 원하는 삶은 유명한 사람의 삶인지 아니면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는 그런 삶인지. 만일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다면 내 욕망쯤은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는지.

 

때로는 자식을 향해, 나의 승진이나 더 많은 돈을 향해, 권력이나 명성을 향해 우리는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그러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였는지 그러한 의문이 문득 떠오를 때, 우리는 가슴속에 기준이 될 만한 그 무엇을 품고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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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작가의 열두 빛깔 소설들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박연진 옮김 / 솟을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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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

 

 

 

 

 

이 소설의 제목은 왜 '순례자' 일까? 하는 궁금증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다. 소설에는 기, 승, 전, 결이 확실한 것을 원하고, 이야기의 전개는 좀 빠른 것이 좋다. 내가 처음 일본 소설을 접했을 때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숨 막히도록 느린 전개와 장황하리만큼 긴 심리묘사 때문이었으니까.

 

 

 

이 소설의 첫 장을 펼치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떤 특별한 주제나 사건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저 정말로 '있는 그대로의 일상' 이었다. 내가 아침에 출근해 고양이들 똥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확인하고, 카페에 들어가 새로운 책이 뭐 올라왔나 확인하고, 페이스북을 보고, 틈틈이 웹툰을 보고, 잠깐 졸고, 뭘 먹을까 고민하는 그 하루의 일과를 그대로 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나는 지루했다. 그러나 다소 충격적인 것은 그 지루한 일상, 그 지루한 대화 속에도 주인공들은 자신들만의 비밀을 하나씩 갖고 있다. 1편 순례자들의 주인공은 폭력적인 자신의 아버지를 우연히 죽이고 도망치는 여정에 있는 것이고, 남자는 그녀와 함께 말을 타고 도망가자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내게 익숙한 소설의 기법을 빌자면, 이런 지루한 일상속의 대화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긴박하고, 조금 더 자극적이며, 조금은 더 충격적인 것이라야 했다.

 

 

 

제대로 이해를 못한 '엘크의 말' 편과 한심한 형제들을 떠나 길을 떠나는 '동쪽으로 가는 앨리스' 편에 이어 소설은 잔잔한 사랑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뭔가 평범한 일상 속에 그들만의 열정과 강렬한 색채를 숨기고 있는 듯이.

 

 

 

'새 사격' 속의 남자와 친구의 아들의 관계는 어떨까? 아마도 친구는 나쁜 일을 당한 게 틀림없다. 그는 친구의 아들을 데리고 친구와 함께 하던 비둘기 사격을 억지로 하러 간다. 아이에게 잔인한 일을 시키는 남자는 아마도 과거에 그 친구의 아내와 삼각관계에 있었지 않았던가 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톨 폭스' 편에서는 더 아리송하다. 남편과 불화를 겪고 있는 여자는 작은 술집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남편의 가게가 있다. 어느 날 남편의 가게가 문을 닫고 스트립걸이 춤을 추는 바가 생긴다. 스트립 걸의 이야기가 잠시 나오다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조카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비밀이 드러난다. 아니 그 둘은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니! 이런 충격적인 스캔들이 이렇게 잔잔해도 되는 거냐고! -

 

 

 

'착륙'에서는 젊은 한 남녀를 만난다. 깍쟁이 여자가 결국 이 수염 까칠한 남자에게 착륙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잘됐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어 '와서 이 멍청한 녀석들 좀 데려가게' 속의 멍청한 녀석들을 지나, '데니브라운이 몰랐던 많은 것들' 편에서는 다소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필체로 데니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아버지는 훌륭한 간호사이며, 자신을 제일 많이 괴롭혔던 녀석이 그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며, 그 녀석의 누나와 사랑에 빠지는데 데니는 그 모든 것을 모른다. -이 편이 가장 재미있었다.-

 

 

 

'명성 자자한 자르고 붙여 불붙이기' 담배마술에서 엉뚱하고, 집요하고 우스꽝스러운 아빠를 만나고 끝으로 자신이 일생동안 사귄 남자들을 한꺼번에 다 싣고 가는 환상적인 이야기 '더 없이 참한 아내' 편을 끝으로 나도 드디어 소설 '순례'를 마친다.

 

 

 

읽는 내내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왜 이 소설의 제목은 '순례자' 일까 끝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다 솔직히 어느 순간 이 소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마 '톨 폭스' 편에서부터 인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너무나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 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처음에는 지루했지만 그리 나쁘진 않았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소설들이 풍기는 뉘앙스와도 묘하게 닮았다.

 

 

 

이 소설 제목이 순례자인 이유를 '우리 인생도 삶의 목적이라는 길고 신비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 이라는 그런 심각한 말을 하고 싶진 않다. 그저 우리는 태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그 길이 때로는 극적이기도 하지만 늘 펼쳐지는 일상은 비슷할 것이다. 나의 인생이라고 별반 다른 것이 있을까? 때로 내겐 반짝이는 그 어떤 순간도 바라보는 이에겐 따분한 오후의 햇빛 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았다. 누군가는 어디엔가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고 나는 그저 그 이야기의 일부를 아주 '잠깐' 보았을 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떠나 그들의 여정은 계속 될 것 같고, 나도 이 심심한 인생을 계속 살아가겠지. 어느 순간이 반짝였는지 그것은 이 길의 끝에서만 알 수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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