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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무게

고도비만, 술과 약물 중독, 야구 모두 외로움의 다른 말. 아니, 외롭다는 말 보다 더욱 처절한 외로움의 말. 그런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
한 때 대학교수였던 한 남자 아서 오프, 한 때 그 남자의 야간 수업을 듣던 여자 샬린. 그 남자는 <그녀를 만난 순간 나는 생각했다. 당신도? 샬린의 눈빛에서 그녀 역시 외로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 샬린은 나보다 더 외로워했다. 난 그걸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p358>라고 했다. 그 둘이 헤어지게 된 후 그 남자는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10년간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녀는 병과 외로움 때문에 술과 약물에 찌들어 살다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그 남자는 어느 날, 사랑했지만 함께 하지 못했던, 10년간 편지만 주고받던 샬린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고 어떤 변화를 느낀다. 10년간 은둔 생활을 하던 어두운 삶에 어떤 햇빛이 깃든 느낌이었을까?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집안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청소회사에 연락해 사람을 불렀고 일을 위해 그를 찾아온 사람은 욜란다. 그녀는 작고 연약한 듯 보였지만 따뜻하고 강한 사람이다. 너무나 비대해져서 움직이기도 힘든 그 남자를 서서히 집이라는 고치에서 걸어 나오게끔 돕는다.
한편 샬린은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스스로 계획한- 자신의 아들 켈 켈러를 자신이 사랑하고 늘 존경했던 아서에게 부탁하려고 그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이 전화 한통으로 아서의 삶에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를 시작으로 욜란다를 만나게 하였으며,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함과 동시에 어떤 '희망'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 후 샬린은 결국 자살을 하게 되고, 그의 아들은 혼자 남게 된다. 아들 켈 켈러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옛 친구 가족들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다. 그의 아버지는 4살 때 그를 떠났고 자신의 엄마 샬린이 망가진 것도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그는 늘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서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기억은 야구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가 제일 잘 하는 것이고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유일한 일이 바로 야구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인공인 이 네 사람을 전화와 편지한통으로 연결시킨다. 이 네 사람은 하나같이 버림받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10년이나 집 밖에 나오지 못하거나 약과 술에 절어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저자는 그들의 이런 생활을 담담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외로움'을 극대화시켜 표현한다. 어느 구절에도 외로움을 직설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들의 심리를 자세히 묘사하고는 있지만, 어느 구절도 그들의 외로움을 적극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그 외로움을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250kg의 거구의 남자가 만삭의 욜란다와 함께 산책하는 장면, 켈 켈러가 여자 친구와 그의 가족, 그의 옛 친구인 디와 그의 엄마의 도움을 받는 장면을 상상하면 조금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코끝이 찡한 감정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서로의 외로움과 아픔을 어루만진다.
아서의 엄마도 고도비만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아서가 어렸을 때 두 모자를 떠나 다른 가정을 꾸린다. 아서를 도와주는 욜란다도 어린나이에 임신했지만 아이 아빠와는 헤어졌고, 그녀의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켈의 여자 친구인 린지도 모든 걸 가진듯한 부유한 집의 딸이지만 그 가족도 린지의 오빠인 아들을 잃은 상처가 있다. 샬린 또한 켈의 친부가 아닌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 또한 켈이 4살 때 그들을 떠나버린다.
그들 모두는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헤어지고, 거부당한 상처를 지니고 있다. 결국 그 외로움과 소외감은 자신들을 단단한 고치 속에 가두어 버린다.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도 상처 주지 못하도록 할 것처럼. 그러나 그런 세상, 그런 사람들이 결국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 자신이 도움을 받고, 또 그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희망을 품게 된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 이 책의 원어 제목인 <Heft>는 Weight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짐이 되는 것, 고통스럽게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고 설명한다. 이 책 속 인물 모두가 나름의 짐을 지고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으며, 자신이 과거에 했던 모든 결정 혹은 다른 사람에게서 떠안은 문제 때문에 마음으로 그 무게를 감당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그 <무게>를 부담스러워하거나 힘들어한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는 그 <무게>를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고. 자자는 그런 모습들을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역할들 속에 섬세하게 심어 놓았다. 켈이 마지막에 깨달은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힘들게 할지도 모르지만 서로에게 선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런 소설을 읽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추운 겨울날 냉골이던 자취방에서 웅크리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사랑에도 일에도 사람들에게도 외면 받고 있었고, 스스로 고치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담을 쌓았다. 그러나 그런 나를 세상으로 꺼내 준 것도 사람이었다. 나처럼 외롭던 우리들은 서로를 토닥이고,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 주었다. 지금은 또 생각한다. 누구나 외롭고, 누구나 서로의 <무게>를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사람은 의외로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