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송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소송》

 

 

 

<건강이 최우선 가치이자 법인 21세기 중엽의 미래> 사람의 몸에 마이크로 칩이 삽입되고 알몸으로 건강과 신체에 관한 모든 것이 노출, 관리, 통제되는 사회. "건강은 정상성이며, 정상성은 건강" 이라는 순환논리의 오류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나무위에 지은 집은 "다칠 위험", 반려동물은 "전염위험" 이라 불리는 사회. 이 사회는 <방법-Die Method>이라 불리는 체제 아래의 자유롭고 안전하게 보이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은 사회다.

 

각자의 DNA 가 관리되기에 질병관리, 운동, 먹을 것, 나아가 결혼까지 각자의 DNA에 맞는 과제와 의무가 지워진다. 생물학 전공자인 주인공 <미아 홀>은 강간 살인사건의 억울한 희생양이 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동생 <모리츠>의 일로인해 깊은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 있다가 신체 상태와 식사, 운동, 수면 등의 정보를 주기별로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법정에 소환되고, 담배라는 독극물을 피웠다는 죄까지 추가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생의 변호를 맡았던 <로젠트레터>를 만나게 되어 자신의 변호를 맡기게 되는데, 이 사건에서 로젠트레터는 모리츠의 무죄를 증명해 내고, 미아 홀은 체제를 불신하는 사람들의 상징적인 인물이, 모리츠는 숭고한 순교자가 된다. 사건은 그러나 독자의 바람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체제를 옹호하고, 체제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을 정당화 시킨 <건강한 인간 오성>의 저자이자 체제의 중요한 인물 <크라머>와 <방법>의 조작된 증거로 인해, 미아 홀은 체제를 뒤엎으려는 불순한 세력 <달팽이>의 수괴로, 생물학 전공자의 경험으로 바이러스를 퍼트려 모두를 죽이려한 테러리스트가 된다.

 

그런데 소설의 거의 후반부인 이 장면에서 참으로 재미난 상황이 연출된다. 과거 중세시대 마녀사냥에서와 같이 이 체제 또한 개인의 자백이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다. 크라머를 내세운 <방법>은 그녀에게 앞서 말한 혐의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조작된 증인, 조작된 증거, 심지어 고문까지 자행한다. 자, 이제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녀는 영웅이 되어 어리석은 민중을 밝은 빛으로 인도할 것인가? 결국 <방법>의 체제아래 부활한 <마녀>가 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질 것인가?

 

 

솔직히 소설은 굉장히 현학적이고 읽기가 불편하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서사적 구조라기보다는 각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나타나는 자유, 인권, 권리, 도덕, 사랑, 자연 등 철학적 사유이다. 그 대화는 마치 연극의 대사와 비슷하다. 때로는 독백이, 때로는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은 무료함,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에 불쑥 불쑥 끼어드는 상상의 인물인 <이상적 애인>의 대사가 때로는 독자를 생경한 세계에 떨어뜨려 놓기도 하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짜증나게도 한다.

 

그리고 결론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겉으로 보기엔 해피엔딩이라고 해야겠지만 미아 홀에게는 분명 좌절이며, 패배이며, 경악할 일이 분명하다. 결국 그녀에게서 죽을 권리마저 빼앗아 간 것이기에.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건강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사회, 빼앗겼지만 그런 줄 모르는, <병날 권>, 고민한 권리, 생각할 권리를 안전이라는 이유로 거세당한 사회.

 

조작된 사건, 언론의 통제, 선동, 체제의 강압은 과거에도 현 시대에도 형태만 바뀐 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맨 먼저 우리는 체제를 기독교라 불렀어요. 그 다음엔 민주주의라고 불렀죠. 오늘날엔 방법이라 부르고요. 체제는 항상 절대 진리고, 항상 순전히 좋기만 한 것이고, 항상 온 세계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강박적 욕구죠. -p181-> 지금 우리에게 <방법>은 무엇일까? 모든 가치위에 군림하고, 때로는 신앙처럼 추앙되고,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그 무엇, 바로 <자본>이 아닐까? 

 

이 소설은 <건강>을 소재로 진정한 자유, 독재, 언론의 역할, 인권, 법과 국가의 역할 등을 고민하게 해 주는 소설이다. 아무리 선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과연 공공의 선이 될 수 있는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정당한 사유가 되는 것인지, 소수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과거의 이념 논쟁을 끌어들여 통제와 규제, 자유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상황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의미심장한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양미술사를 보다 세트 - 전2권 -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의 미술 여행 서양미술사를 보다
리베르스쿨 인문사회연구회 외 지음 / 리베르스쿨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양미술사를 보다》1,2권 세트

                                     -소장을 적극 권하고 싶은 미술책

 

 

 

 

 

학창시절에 미술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요즘 학생들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고 붓글씨를 쓰고, 찰흙으로 뭘 빚거나, 운동장에 나가 풍경을 그리는 것 거의 모두를 좋아했다. 그러나 미술 필기시험은 달랐다. 특히 미술의 역사와 작품명, 작가들의 이름 사조 등등 외우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어려웠다. 일단 미술사 전체를 꿰고 있어야 하고 그 시대별로 유행했던 사조, 무슨, 무슨 시대, 작가 명, 그의 생애와 스타일 등 얼마나 어렵고 딱딱했는지 모르겠다.

 

미술사도 역사의 일부분이고, 풍미했던 스타일이나 분위기도 그 시대상을 벗어날 수가 없었을 텐데, 그때는 왜 미술사만 따로 떼 내와서 그렇게 외우기만 했는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교육의 한계를 체험한 듯하다. 결국 남는 것은 미술은 어렵고, 볼 줄 아는 사람만 즐기고, 경매를 통해 부를 축적한다거나 혹은 검은 뒷거래의 장치로 쓰인다는 불명예스러운 편견뿐이니.

 

 

그래서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난 내가 이 책을 보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거시적' 시각을 키워 주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를 조각조각내서 배우면 어떤 특정 시기, 특정 인물에 대해서만 보게 되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부터 크게 '꿰뚫어 보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책《서양미술사를 보다1》는 <거시적 시각>을 키워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1권에서는 인류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구석기 시대의 인류가 행했던 주술성격이 강한 선사미술, 서양 예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미술, 실용적이고 규모가 큰 공공 건축물을 세운 로마의 고대미술을, 중세 봉건제도와 맞물려 그리스도교의 신의 메시지나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전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중세미술, 중세 봉건제도의 몰락으로 엄격한 종교의 교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인간과 자연을 표현 할 수 있게 된 르네상스, 17세기 세력을 키운 교황과 군주를 중심으로 발달한 바로크 미술, 프랑스 궁정의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 로코코 미술까지 살펴볼 수 있다.

 

《서양미술사를 보다2》에서는 크게 근대와 현대미술을 볼 수 있다. 근대 미술은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어난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종교도, 왕도 아닌 '이성' 의 시대가 열림으로써 미술가들의 작품은 교황이나 부자 등의 취향에서 벗어나고 전통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겨난다. 19세기부터는 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이 새로운 미술 경향이 이전의 미술을 빠르게 대체하고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등의 '주의'의 말을 달고 나타난다.

 

 

 

20세기의 특징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달이 아닐까? 현대미술 초기의 특징은 발상부터 결과까지 창조의 과정을 중시하는 것과 과거의 미술과 단절하는 것이었다는데 색을 대상에서 해방시킨 야수주의, 형태를 해방시킨 추상주의, 고상함과의 결별인 다다이즘, 기술과 예술을 조화시키려고 한 바우하우스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미술의 중심지가 된 것은 미국인데 후기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산업 제품 및 기술까지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와 팝 아트, 비디오 아트 등의 미술이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선사시대부터 후기 산업 사회까지의 긴 여정을 통해 역사와 미술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고, 각 시대와 '경향, 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들을 큰 화면에 꽉 차는 실감나는 사진으로 볼 수 있다. 그냥 어떤 작가가 어떤 화풍에 속하고 몇 년에 태어나 몇 년간 작품 활동을 하고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 살펴보는 미술은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이 책은 그런 단점을 뛰어넘어 큰 역사의 흐름 속에 그 작가가 어느 지점에 위치하며, 그의 활동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동료들과 사회,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매력이다.

 

 

화면을 가득채운 사진은 정말 실감나고 그 작품의 해설을 함께 보면 작품의 이해도가 높아진다. 이 책의 타이틀처럼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의 미술 여행>과 아주 정확하게 매치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책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논문이나 소설, 연설문등이 당대의 혁명이나 변혁에 도화선이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미술도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예술이 입시교육의 일환이나 방편으로 혹은 상품 정도로 '소비'되는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볼 때, 과거의 사람들은 예술을 예술로써 더욱 풍부하게 경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시대, 작가, 작품 모두 균형 있는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 책을 접하는 사람들에게(주 대상은 학생이지만) 각 챕터가 끝날 때 마다 다양한 질문들도 던지고 있는데, 이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우리가 이제껏 <예술>을 대해왔던 질문과 정답, 시험을 넘어선 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세요: 튜브 물감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 까요, 뚱뚱하면 아름답지 않은가요?, 로마가 망한 이유가 목욕 때문이라고요? 등> 또한 작품에 대한 설명과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정말 재미난 이야기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게 한다.

 

 

이 책은 학생들에게 아주 좋은 미술 교재, 사고력과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일반인이 교양서로 읽는다 해도 정말 손색이 없을 것 이다. 서양사와 서양 미술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작품을 보는 눈을 가지게 도와 줄 수도 있을 것이며 소장용으로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다른 많은 책을 접할 때 기본도서로도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읽는 것을 넘어서 <소장>을 적극 권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시마다 소지 지음, 이윤 옮김 / 호미하우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고글 쓴 남자, 안개속의 살인》

 

 

 

책을 덮고 나서 참으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이 소설에 공식적으로는 2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더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돈과 편리함에 모든 것을 팔아넘긴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이 도시에는 의외 적으로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담뱃가게 3군데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일본에서는 담뱃가게를 해야 자판기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가게라도 (보통 담배는 자판기로 구매) 운영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게 중 한 군데 주인 할머니가 살해당하고, 증거는 근처에서 목격되었다는 고글 쓴 사람, 노란 줄이 그어진 5천앤 지폐2장, 피 묻은 대리석 탁상시계뿐이다. 경찰은 이 증거를 들고 지지부진 씨름하다 한 여성 추행 사건에서 고글 쓴 남자를 보았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전환기를 맞는다. 이 여성을 중심으로 수사를 넓혀가는 경찰. 가수가 꿈인 여자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 작곡가, 이 여자와 한 건물에 사는 애인, 그 애인의 룸메이트, 그리고 이 여자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마트사장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한편, 이 소설은 크게 두 줄기로 전개가 되는데, 소설 초반에 '나' 로 서술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한 남자가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 남자는 중학교 때 소설 배경이 되는 마을의 숲에서 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 남자는 <스미요시 화학연구소>에 취직해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 회사는 원자력 발전의 방사능 원료를 만드는 곳이다. 참으로 어이없게도 이 연구소는 위험한 방사능 원료를 다루는 데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하청업체>의 직원을 쓴다. 하청업체의 사람이 늘 바뀌기에 안전교육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고, 결국 방사능 피폭을 당하게 되는데 이 '나' 라는 남자도 감독하다가 함께 사고를 당하고 만다. 이 소설 속 피폭을 당한 하청노동자는 몸 속 DNA가 가닥가닥 끊어지게 되어 피부가 검어졌다가 벗겨진 후 다시 소생하지 않아 근육과 지방층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장내 출혈이 계속되어 끔찍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 소설에서는 원자력의 위험성이 아주 중요하게 다뤄진다. 현실적으로 우라늄이라는 광물 자체는 지구상에 대단한 매장량을 가지지도 않고, 이 에너지가 내놓는 폐기물인 방서성핵종의 독성과 위험증은 상상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 폐기물은 없앨 수 없고 지구 어딘가에 묻어 둘 수밖에 없으나 이 반감기는 몇 십 억년이 넘는 물질도 있다. 이들이 인간의 심신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실질적인 것은 암을 만든다는 것 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핵종의 독은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고 DNA의 분열 복제 순간을 습격해서 복제 에러는 유도 서서히 별종의 생물로 바꿔버리는 무시무시한 성질을 지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도시에 악마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저자는 원자력의 위험성보다 이를 대하는 인간들의 욕구와 이기심에 더 큰 무게를 두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이 사고를 당한 뒤 안개 낀 밤에는 고글을 끼고 미친 듯이 도시를 질주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결국 범인 찾기에 어려움을 느낀 경찰은 언론에 살인 사건의 범인인 <고글 쓴 남자>를 수배하는 내용을 내 보낸다. 사람들은 이 남자를 보았다며 경찰에 신고를 하기 시작하는데, 정작 '나'는 살인을 저지른 기억이 없다. 어찌된 것일까? 방사능은 그의 기억을 파괴한 것일까?

 

여기저기서 이 남자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스미요시 화학연구소에 대한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그 근처 숲에는 기형의 동물들의 사채가 묻혀있고, 귀신이 출몰한다는) 고글 쓴 남자의 이야기는 <도시의 괴담>이 되어 안개 속을 떠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밤, 나는 또 다른 나와 마주친다. 눈은 붉고 고글을 쓴 한 사람, 그리고 나는 질문 한다.

 

"너는, 나인가?"

 

결국 경찰은 살인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저자의 교묘한 트릭은 독자를 점점 더 깊은 의문 속으로 데리고 간다. 이건가 싶으면 아니고, 저건가 싶으면 또 다른 증거가 나타난다. 그렇게 독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바로 이게 너의 모습이 아니냐고, 도시의 괴담, 도시의 괴물은 바로 너희가 만들어 내는 것 아니냐고 다그친다. 독자는 불편함에 빠진다.

 

돈의 노예로, 편리함의 논리에, 정치권의 이권놀음으로 병들어 가는 것은 여기나 저기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한 쪽에선 그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고, 또 한 쪽에선 괴물이 만들어 지고, 또 한 쪽에선 살인이 일어난다. 인간은 점점 하나의 점으로 소외된다. 저자 <시마다 소지> 는 독자를 들었다 놨다하는 매우 똑똑한 작가이다. 후쿠시마 원폭이후 방사능의 위험에 대한 우리의 불안감에 새로운 <괴담>을 만들어 냈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 우리는 이런 현실 앞에서 수명이 다한 발전소를 재가동하고, 이도 부족해 발전소를 더 지을 예정이라고 하며, 이에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들을 <괴담 유포자>로 몰아가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런 도시 괴담은 참으로 많았다. 어린아이만 잡아간다는 홍콩 할매, 요쿠르트를 얻어먹고 정신을 차려보면 콩팥이 하나 없어진다는 그런 것들. 이제 정부가 나서서 광우병 때도 방사능 문제도, 민영화문제도 어리석은 일부 시민이 퍼뜨리는 괴담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이런 괴담 아닌 괴담이 퍼질 때 어떠한 원인도 이유도 없었는지를. 언제나 원인이 있었고 그 원인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가며 더 큰 무서움으로 부풀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 것을 이용하는 세력도 있었다. 괴담이라면 언젠가는 잊힐 테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두고두고 주위에서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불행한 남자, 고글을 쓸 수밖에 없는 남자, 그리고 사람들. 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소설이 그저 재미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이며, 추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을 벗어난 빠르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소설은 점점 자극적이고 기괴한 형태가 되어가는 현대의 추리, 스릴러와는 달리 추리 자체의 재미를 추구하는 추리소설의 원형에 가깝고, 사회적인 주제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 결 같이 가족과 사회에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금은 무겁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전개감도 그렇다. 그런데 이번 소설 <질풍 론도>는 그 형식을 과감히 파괴한듯하다. 스키장을 배경으로 범인이 숨겨놓은 병기를 찾는 주인공들의 질주는 상쾌하고 시원하다. 물론 그 안에 가족 간의 유대와 공감의 코드는 여전하다.

 

다이호대학 의과대학연구소의 직원인 구즈하라 가쓰야는 허가 없이 몰래 개발하던 탄저균 생물학 병기를 연구소에 들키게 되면서 결국 쫓겨나는데, 자신이 만든 탄저균 병기 K-55를 몰래 갖고 나와 스키장 근처에 묻어두고 연구소와 협상에 들어간다. 이 병기는 아주 미세한 형태로, 섭씨 10도가 되면 밀봉된 뚜껑이 열리며 공기 중에 퍼져나가 호흡기 질병을 유도하는데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치료제가 없는 강력한 대량 살상 병기이다.

 

제시액은 3억앤.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하는 범인은 병기를 묻어둔 장소를 찾을 힌트를 주는데, 병기를 묻어둔 곳 나무에 전파 송신기인 테디베어를 걸어두고 이 사진을 증거물로 보낸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도 전에 범인은 어이없게도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결국 사진 몇 장과 수신기로 우리의 주인공들은 날이 따뜻해지기 전에 이 병기를 찾아야만 한다. 극비로 개발한 것이라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아무에게도 알려져선 안 된다.

 

이 사건해결을 맡은 주인공은 연구소에서 같이 근무하던 구리야바시로 서장 도고의 명령으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 병기가 묻혀 있을 만한 스키장을 찾아내고 실재로 그 병기를 찾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다. 서장 도고는 구리야바시를 전화로 윽박지르기만 하고 우리의 주인공은 서툰 스키솜씨로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소설 초반부터 그냥 발이 묶여 있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의외로 구리야바시의 아들 슈토, 스키장의 구조요원인 네즈와 여성 스노보드 선수 치아키 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슈토가 스키장에서 만나게 된 학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설명한 카피 "등장인물에게 절대 지지마라", "지상 최고의 두뇌게임" 등의 설명에 비하면 내용은 그리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이지 않다.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도 뒤에 나오는 반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라는 것. 이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그의 전작들을 읽어보았다면 이 소설이 얼마나 <스피디>한 소설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카피들만 보고 이 책을 선택한다면, 뭔가 엄청난 것을 기대했다면 살짝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 서두에 말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진 특징들인 추리소설의 원형, 가족 간의 유대와 사회를 향한 따뜻한 시선, 자극적이지 않은 추리하는 재미는 생생히 살아있다. 긴박한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은 '추리'를 통해 사건에 다가가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함을 가지고 있다. 그 와중에 신종플루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따뜻함을 전해준다.

 

자극적이지 않은 추리소설의 순순한 재미를 느끼고 싶거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들이라면 주저 없이 선택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뭔가 정말 강렬하고 짜릿하고 강한 자극을 원한다면 고민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소설. 상쾌함을 주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근혜노믹스 -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
정승일 지음, 공은비 엮음 / 북돋움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굿바이 근혜노믹스》

 

 

 

 

개인적으로 경제서는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평소 궁금해 하던 부분이 많아서 읽게 되었다. 특히 선거철이면 공약으로 난무하는 경제관련 내용, 때로는 포퓰리즘으로 공격받고, 때로는 공수표를 난발하며 당선된 후 당연한 수순으로 폐기처분 되는 약속들은 나를 포함한 일반 대중들은 알 수 없는 수치들과 용어들로 이뤄졌다.

 

이 책은 현재 스웨덴 등 북유럽식의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비영리 연구 및 정시 단체인 '사회민주주의센터'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장하준 교수와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공저한 정승일 박사를 경제부기자 공은비가 인터뷰한 내용으로 공은비가 묻고 정승일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바로 '경제 민주화' 이다. 보통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는데, 민주화란 말이 들어가니 직관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일 것 같긴 한데 학자들마다, 사람들마다 '경제 민주화'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모호한 '경제 민주화'의 개념을 세울 수 있고, 보수와 진보, 시장만능주의, 국가개입, 야경국가, 완전시장, 복지국가 등 교과서에서 보았던 용어들도 만나고, 지난 정권부터 현 정권까지의 경제 문제 관련 정책들의 차이점도 알 수 있다.

 

경제민주화란 용어는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사회민주당의 '프린츠 나프탈리의' 저서 <경제민주주의: 그 본질과 길, 그리고 목적>에서 처음 쓰였다고 하는데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론을 따르는 공산주의자들의 "생산수단(기업)의 즉각적 사회화, 즉 국유화" 를 주장한 것에 대항하여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장한, 국유화가 만능은 아니며 종업원공동결정제처럼 종업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해 "자본가들과 함께 공동으로 통치하는 것" 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경제민주화-재벌개혁에서 이런 논의는 없다. 우리에게 경제민주화는 출자총액제한, 금산분리처럼 재벌 그룹을 '축소' (계열사 강제분리) 혹은 재벌그룹 해체에 있어 시종일관 "자유주의 경제 사상" 편에 서있다고 한다. 대기업을 해체시켜 중소자본들(중소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완전시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그러나 정승일 박사의 의견은 다르다. 다양한 자료와 논거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지금 논쟁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이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세대, 삼포세대 신세가 된 원인을 IMF 때문이라고 보지만 정승일 박사는 97외환위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이 외환위기의 원인을 잘 못 진단하고 잘못된 대처를 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군부독재시절을 마감하고 들어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군부독재 유산의 해체와 함께 박정희 경제체제 유산의 해체를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군부독제가 수행한 것은 모두 악이라는 윤리적 흑백논리가 등장하면서 정부, 국가 주도 자본주의는 악이고 시장주도 자본주의는 선이라는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국민 대다수의 삶을 좌우하는 실질 권력은 민주공화국이 아닌 <시장 자본주의>에 넘어갔다고 말한다.

 

 

주류 경제학은 언제나 완전 경쟁 시장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고, 재벌그룹 같은 경제력 집중은 이를 방해하는 시장 '왜곡' 현상으로 보기에 재벌그룹 자체를 해체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승일 박사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을 돈 없고 자본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어떻게 기업과 국민경제 차원에서 확보할 것인지의 문제로 본다. 그리하여 재벌을 해체하자는 논의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처음 경제민주주의가 태동한 이유처럼 산업 민주주의, 노동권, 종업원의 권리 차원에서 볼 것을 주장한다. 재벌 '가'와 재벌 그룹을 분리하여 생각하여야 하며, 재벌그룹을 지배하는 총수의 일가들의 권리와 독점을 해체하되, 후발 공업국가의 특징인 집중된 경제력을 인정하면서 그 집중된 경제력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소유,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하자고 제안하며 그 방법들을 제시하고, 스웨덴, 독일, 벨기에 등을 예로 든다.

 

이런 주장들을 펼쳐가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철도, 의료, 교육 등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사영화)에 대한 의견, 복지에 관련된 의견을 말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국가개입', '국가주도'의 정책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한창 논의 중인 복지에 관해서도 주택의 예를 들면서 고소득 국민의 돈을 끌어다 저소득 국민을 "도와주는" 어떤 적선 형태의 복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보험처럼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지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 해법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경제학은 참 어려운 분야이지만 이 책은 그렇게 힘들게 읽지는 않았다.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는 부분을 다루었기 때문인 것 같고,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의 입장 차이를 떠나서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유산을 나 또한 모조리 부정하였지만 후발 공업국가인 상황에서 보호무역이나 대기업 육성정책, 국가 주도형 복지정책은 적절했다고 생각된다.(물론 인권을 유린한 독재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받은 엄청난 지원, 보호무역을 통해 국민이 키워준 대기업이 자신이 잘나서 크게 된 냥 오만하게 굴며 법망을 피해 자신의 이익만 꾀하는 재벌 총수 일가의 개혁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