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해킹 - 탐하라, 허락되지 않은 모든 곳을
브래들리 L. 개럿 지음, 오수원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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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시해킹》





컴퓨터 해킹은 들어봤지만 도시해킹은 처음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책은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 만큼 뭔가 참신하고, 해방감이 느껴졌었다. 내가 사는 도시, 수많은 사람과 건물, 자동차, 구조물, 규범과 규칙 등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가득 매우고 있는 곳. 때로는 고향 같지만 때로는 답답한 감옥처럼 느껴지는 곳.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대구는 여름이면 아스팔트가 녹을 정도의 찌는 듯이 달아오르는 더위로 유명한 곳이다. 이런 여름이면 사람들은 자연을 찾아, 아니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기나긴 자동차 행렬을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금기를 깨는 짜릿함, 두근거리는 모험심, 떠나는 것과 찾아가는 것, 그리고 너무나 뻔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오는 이 도시 그래서 늘 벗어날 궁리만 하는 이 도시가 뭔가 두근거리는 존재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글쎄, 내가 사는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대구 타워인데 아무도 모르게 이곳에 잠입해 꼭대기에 올라가 도시의 야경을 본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어떤 건물이라도 사람들이 들어가도 될 곳이 있고 더 이상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기 마련이다. 건물의 옥탑부분이나 지하의 설비 공간 등이 그럴 텐데, 소극적으로 내가 내 생활반경에서 무언가 일탈을 시도한다면 바로 이런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 차라리 산에 오르거나 오지 탐험을 하지 왜 도시탐험을 하는 것일까? 그것도 자신의 도시만이 아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들은 놀랍게도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물론 금기에 벗어나는 규범,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겉으로 드러난 활동을 하지도 않고, 그 일의 특성상 연대가 그렇게 강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이건 그들이 어떤 활동을 하건 간에 이런 일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얼마 전에 소설 <파이브>에서 지오캐싱을, <우리가 밤에 본 것들>에서 파쿠르 라는 거친 운동을 접한 적이 있는데 형태는 다를 뿐 다들 비슷한 욕망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쿠르는 이 책에도 잠시 언급 되어 있고. 모두 현대화 도시화가 진행된 지구에서 정부와 국가, 여러 기관들이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있기에 이에 반하는 인간의 심리가 작동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도시의 랜드 마크라 불리는 높은 건물이나 돌로 된 거대한 조각상, 버려진 지하도, 하수도, 지하철, 방공호과 폐가, 크레인, 다리와 벙커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도시탐험은 이런 공간에 허락받지 않고 [침입]하는 것이다. 목적은 단 하나 [재미를 만끽하는 것!] 그들은 몸을 날려 담벼락과 철조망을 뛰어넘고 건물을 오른다. 때로는 그러다 떨어지기도 하고 오래된 지하철 노선에 들어갔다가 사고로 명을 달리 하기도 한다. 오로지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기엔 위험부담도 큰 것이다. 역으로 위험 부담이 큰 것이 더욱 스릴이 넘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행위에는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숭고하거나 깊은 철학적 질문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우리스스로가 만든 울타리, 규범, 금기를 가볍게 무시하고, 나아가 아무도 규제하지 않는 데도 먼저 스스로를 속박하고 막아버리는 사람들에게 [Why Not?] 이라며 가볍게 웃어 보인다. 그리고 늘 답답하던 이 도시가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가 보물을 찾아 헤매는 신비한 유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버린다. 아! 이런 해방감이란! 아마도 그들도 저자도 아마 이런 기분에서 이 위험천만한 모험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임을, 자신의 본능을 표출하고 즐겁고 짜릿하게 살아도 되는 것임을, 그래도 이 세상이 어떻게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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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백과사전 - 고대부터 암흑세계를 지배했던 3,000여 악마들 보누스 백과사전 시리즈
프레드 게팅스 지음, 강창헌 옮김 / 보누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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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백과사전》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역사와 관련된 미스터리 호러 스타일의 작품들을 보면 어떤 인장이라든지 상징 혹은 전설들이 소재로 쓰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으스스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천사와 악마, 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아예 대놓고 천사와 악마들을 등장시키거나 대결을 벌이는 등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이들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대립 등은 아주 중요한 소재가 된다. 서양과 동양은 악, 악마를 대하는 입장이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동양에서의 악은 어떤 한을 가진 존재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데 반해 서양에서는 선과 대립하는 절대적인 '악' 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악마 백과사전》은 그런 호기심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그냥 정말 단순한, 순수한 호기심이다. 나는 락(Rock)음악을 좋아해서 많은 뮤지션들의 앨범들이나 퍼포먼스에 등장하는 '악마'들과 이를 상징하는 표식들을 보아왔다. 이것은 락 음악이 정말 악마를 숭상하는 것이 아닌, 단지 인간 무의식의 사악함 혹은 전승되어 오는 그런 존재들을 표현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에게는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사회의 악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볼 때는 나에게도 놀라움과 충격이었다. 이는 악마라는 존재가 전승시켜온 인식, 문화라는 생각을 가진 나와는 달리 정말로 현실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실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니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도 다양한 생각들을 가질 수 있음을 알게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악마, 이블, 데블, 사탄, 마녀라 불리는 존재들에 대한 역사, 인식의 역사, 전승의 역사 그리고 각 문화권에 있었던 이들 존재들의 특징과 종류를 총 망라한 책, 말 그대로 백과사전이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악마들의 이름과 특징들을 보고 있자니 이를 정리한 지은이와 또 이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들은 말로 이어져 내려오기도 하도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혹은 각 문화권의 작가들에 의해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현대까지 전해진 것들이다.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 그림, 표식들을 읽어가는 재미는 참으로 쏠쏠하다. 이 책을 심각하게 정독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속된 말로 '오덕'이라 할 만하겠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게 설렁설렁 읽을 책이며 여러 예술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악마들을 만날 때 참고자료로 쓸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백과사전이 바로 그런 운명을 가진 책이 아니던가. 책장에 한 권씩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주인의 엉뚱함을 보여줄 수도 있는 그런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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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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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의 한국 현대사》




역사는 참으로 신기한 무엇이다. 어떤 사람, 어떤 시대의 눈으로 보는 가에 따라 같은 사건을 두고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 문제가 터졌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한 쪽에 서 있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왜곡을 할 수 있는지 정말 끔찍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그 역사 서술인식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었다. 게다가 더욱 끔찍한 것은 사회가 너무나 극명하게 갈라져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지역감정 있다고 해도 이렇게 피부에 와 닿을 정도는 아니었고,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 해도 정말 '다르다'는 정도였지 지금처럼 도저히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을 정도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린 분명 같은 하늘아래 같은 시대를 거쳐 살아왔는데 왜 같은 나이, 같은 또래임에도 이렇게 다른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이 책《나의 한국 현대사》의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반갑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막상 이 책을 읽기가 두렵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 유시민도 언급했듯이 저 먼 과거 조선, 고려의 역사가 아닌 지금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자신이 살고 겪어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쩌면 논란의 불씨를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니 만큼 자신의 처한 입장, 자신들의 편 즉<프티부르주아 리버럴>의 입장에서만 역사를 본 것이니, 거기다 저자 또한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니 혹시 이 책을 읽으며 뭔가 내가 보기에 가슴 아픈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심리적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무척 걱정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앞에 두고 정작 펼치는 것은 며칠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른바 소시민의 입장에서 그가 겪었던 시대는 어떠했을까? 그가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적어 내려간 역사는 어떠했을까? 일단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한 선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2012의 선거가 '역사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이른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충돌. 일단은 산업화 세력이 이긴 것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국민들은 이 모두를 긍정했다고 말한다. 기성세대의 선택은 자신들이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일 가능성이 컸다고. 저자는 또한 59년생 돼지띠들의 치열하지만 모순 적이기도 한 삶을 인정하고 긍정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모순투성이에다 뒤틀리고 부조리에 가 득 찬 시대라고 하더라도 분명 과거보다는 현재는 나아졌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 부정적인 모습은 단 기간에 발전을 했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자기 나름의 논리로 충분히 객관적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평가 또한 비교적 중심을 지키고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어떤 정치적인 틀로 보는 것이 아닌 <프티부르주아 리버럴>의 틀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쓴 이유가 <과연 대한민국은 어떤 점이 55년 전보다 훌륭한지, 무엇이 그 변화를 만들었는지, 어떤 면이 아직도 부끄럽고 추악하며 앞으로 우리는 어떤 변화를 더 이룰 수 있을지>를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며 <자신의 시대를 힘껏 달려온 동시대 모든 사람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청년들에게는 의미 있는 조언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책은 정말 이 서문에 꼭 맞는 책이다. 평가나 비판, 주장보다는 돌아보며, 들여다보며, 서술하며, 살펴보는 것에 무게 중심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긍정한다.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 한다.


어떤 것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가에 따라 읽는 이의 평가도 많이 달라질 수가 있겠다. 아마도 이 책은 나와는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예 읽지도 않겠지만 그 사람들이 읽어도 꽤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왔든 지금 우리가 어떤 모습이고 어느 쪽에 서있든 간에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만일 나이가 들어 내가 소위 말하는 기성세대가 된다 하더라도 내가 살아온 시대를 인정하고 긍정하고 싶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모순과 실수와 부조리함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서라도 말이다. 저자의 서문처럼 이 책은 59년 돼지띠들을 위시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위로가, 청년들에게는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게다가 위험한 현대사이기에 이 책을 읽은 나의 진정한 마음, 평가와 책 속의 자세한 내용과 감상을 지면에 밝히기보다,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는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것이 우리 부모님이면 더 좋겠다.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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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꽃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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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꽃》





실은,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당혹스러웠다. 소설이니까 뭔가 이야깃거리나 등장인물들의 독특함이나 사건의 특이함 뭐 하여간 이런 것을 기대했고, 주인공이 '연쇄 살인마'이니 아주 무시무시하거나 엽기적이거나 심장을 죄어오는 긴장감을 상상했건만 이 소설은 내가 원한 것과는 아주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팔려가다시피 하녀(요리사)로 전국을 떠돌아 다녀야 했던 몰락한 귀족의 딸이다. 엘란 제가도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다. 그녀는 이유 없이 사람을 독살하고 다녔다. 그녀는 팜므파탈의 전형으로 아주 섹시하며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외모에 그러나 선량하고 인간적인, 겉으로 보면 완벽한 사람이다. 그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의 유명한 '선돌'에 기대어, 그 곳에 전해 내려오는 온갖 신화와 초월적인 존재들과 교감하며 결국 자신이 죽음의 신인 <앙쿠>라고 믿어버린 여자다. 그렇게 사제관과 가정집에서 일하며 그녀가 일했던 곳은 모두 시체로 넘쳐나게 만들었고,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을 그녀가 만든 요리들로 독살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의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고, 콜레라가 창궐하던 때라 그녀의 행각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결국 그녀는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죽음의 신 앙쿠>네이버 이미지


아주 오랫동안 브르타뉴 남부는 프랑스의 위대한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는데 켈트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곳으로 많은 신화와 이야기들이 전승되는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 거석문화인 선돌, 고인돌이 발견되는 문화권으로, 전승되는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다고 한다. 산과 바다사이에서 고갱, 르노와르, 모네는 뛰어난 재능으로 그 지방의 멋진 경치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했다고 하며, 특색 있는 마을, 돌로 된 예배당, 패어 들어간 절벽, 가는 모래로 덮인 해변이 아름다운 도시라고 한다. 소설 속에는 그 지역에 내려오는 많은 금기와 독특한 믿음들이 등장하는데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물을 치워 영혼이 빠져나가게 한다든지, 죽음의 신 앙쿠가 오면 사람들이 죽고, 죽음을 몰고 오는 사람을 찔러 피를 내면 자신은 죽음을 면할 수 있다고 하는 등의 신비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프랑스 브리타뉴지역의 선돌>네이버 이미지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이런 신비로운 소재 외에도 독특한 '문체'가 한 몫 하는데, 마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처럼 '그녀는 ~하고 만다.', '가발 장수가 묻는다.'.등의 묘사와 서술체에 대화이외에는 모두 현재형으로 표현하는 스타일로 소설을 아주 독특한 느낌이 나도록 만든다. 또한 우연인지 손에 낫을 들고 마차를 타고 죽음을 몰고 다니는 <앙쿠>의 코믹버전처럼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2명의 가발 상인의 모습은 블랙코미디의 모습을 띄기도 한다. 소설은 어떠한 기승전결이나 인과관계의 구조 없이 그저 주인공이 여러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사이사이 전승되는 이야기들이 등장시키는데 각 지역의 사람들의 생활 모습, 간간히 등장하는 주인공과 남성인물의 에로티시즘이 소설이 지겨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글쎄, 이 소설은 그래서 독특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번역의 한계랄지(번역이 잘 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원어로 읽으면 뭔가 문장에서 운율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해 보기도 했다. 뭔가 신비한 느낌, 분위기, 할머니한테 들었던 무시무시한 이야기, 어른들이 해 주었던 금기의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나름의 재미가 있는 소설인 것은 틀림없다. 비록 내 예상과 다른 소설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 읽고 나서 앙쿠와 켈트 신화 등에 관해 찾아보았지만 큰 정보가 없어서 좀 아쉽긴 했다. 남아있는 판화 자료에 주인공인 엘란 제가도의 실제 모습은 소설처럼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는 게 가장 놀랄 일이었다면 그럴까. 그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거석문화와 연결되는 초 고대 문명이나 외계인의 이야기들을 접한 것은 지금 읽고 있는《태양계 연대기》와 닿아있어 굉장히 반갑기도 했다. 추천을 한다면 나처럼 뭔가 신기하고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고딕, 켈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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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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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호러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의 단골소재가 바로 '밀실'이 아닌가한다. 땅굴, 큐브, 무덤, 지하, 폐허, 빙하, 우주선 등 어둡고 습하거나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 한정된 생존 식량, 그리고 한정된 사람들이 등장하는. 자연재해로 인해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몇몇의 인간 혹은 현대 문명과 떨어진 자연 속에서 조난을 당하거나 어떤 목적으로 납치 감금당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적대감을 느끼며 한정된 장소와 식량으로 생존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 그 곳이 지하든, 폐허든 얼어붙을 듯 차가운 빙하속이든 지구 저 멀리 조난당한 우주선 안이든 폐쇄된 공간과 한정된 식량이 주는 공포와 타인에 대한 적대감은 언제나 공포와 스릴을 안겨주는 최상의 조건임은 틀림없다. 거기다 알 수 없는 생명체나 그 곳에 있게 된 비밀이 있다면 그 극적인 공포와 스릴은 최고치를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깨어보니 빛도 없는 꽉 막힌 빙하 안. 그 빙하 안에 텐트가 쳐져있다. 내 손은 사슬에 묶여있고 밖에서 어떤 일을 하던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남자 둘이 하나는 머리에 쇠 가면을 뒤집어쓰고 하나는 다리에 쇠사슬이 묶인 채 무시무시한 공간에 함께 '놓여 있다'. 그리고 1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나의 개도 함께. 그들은 왜 잡혀왔는지도 모르고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상황에 처해있다.


나는 늘 궁금했던 것이 아무리 극한의 상황이라고 한들 사람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적대감과 폭력과 잔인함이 그토록 강력하게 표출 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어떤 사람은 -특히 남자-순식간에 이 상황과 사람들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고, 누구는 전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고, 누구는 심각하게 정신이 무너져 내려 서로에게 짐이 되는지. 물론 그럴 것이다. 재난이나 조난과 어떤 목적 하에 납치되어 왔다면 또 다른 양상을 보이겠지.


이 소설은 분명 이렇게 납치된 데에는 강력한 이유가 있다. 이들을 납치한 자는 친절하게 몇 가지의 단서가 적힌 종이를 서로의 등에 붙여놓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조금의 식량과 불을 밝혀줄 랜턴이나 가스들을 가져다 놓았다. 비밀번호를 풀어야 열리는 금속 금고와 딱 1장의 사진만 찍을 수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에, 총알 하나가 든 권총 거기다 서로가 멀리 떨어지면 남자가 쓴 철 가면은 폭파한다는 단서까지. 게다가 그들 옆에는 죽은 남자의 시체까지 놓여있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살기위해 발버둥 친다. 그들이 먼저 한 일은 최대한 오랜 시간 생존을 위해 물품을 점검하고 주위를 탐색하며 나갈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범인이 그들을 이곳에 가둔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상대로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 안에 범인과 관련된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먹을 것을 숨기기도 하고 누구나 예상하듯 식구나 마찬가지인 개를 식량으로 삼을 생각을 한다. 여러 날이 흐르자 한 줌 빛도 없고 축축하고 너무도 추운 곳에 지내는 육체적, 정신적 한계가 찾아와 서서히 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그리고 결과는? 그들은 그들이 잡혀온 비밀을 밝히고 그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가 설정한 상황이나 결말 등 작은 부분에서 예상한 데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작은 단서 하나하나를 알아차리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참을 탁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반전! 조금은 당황스러웠던 결말은 이 소설 제목이 왜《현기증》인지 비로소 알게 해 준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뭔가 후련하지 않은 이 찝찝함. 아마도 저자는 이런 걸 바란 것일 게다. 만일 결과가 다른 식으로 진행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러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마 소설의 제목이 《현기증》이 되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제한된 상황과 장치들 속에 등장인물들을 밀어 넣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심리와 감정, 관계의 변화. 글쎄, 사건과 해결 위주의 전개가 빠르고 충격이 이어지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조금 읽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음산한 분위기 호러와 스릴러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묘미, 치밀한 심리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여름에 읽기에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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