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의 작사법 -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
김이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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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의 작사 법》




오늘은 작사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아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책이 나와 소개를 할까 한다. 시중에 자기소개서나 기획서, 논술이나 논문 등의 목적이 분명한 글을 쓰는 방법에서부터 블로그나 웹사이트에 방문자를 많이 불러 모으기 위한 글 잘 쓰는 법, 순수하게 시나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을 쓰기위한 방법까지 글씨기에 관련된 책이 굉장히 많다. 이 책은 이 중에서 어디에 해당될까?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에서는 처음 언급한 분야로 노랫말 이라는 것에서 ‘시’를 떠올리면 문학 작품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작사는 이 모든 분야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또 완전히 다른 분야의 글쓰기 인 것 같다.


가사는 오로지 멜로디(음악)와 함께 해야만 되는 글쓰기 분야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당연히 여기고 있는 ‘가사도 시’라는 생각과 다른 점이다. 가사가 시라면 음악과 분리해도 문학적이 면이 두드러져야 하겠지만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가사는 음악과 분리하면 제대로 된 글쓰기에서 한참이나 멀어진다. 때론 전체 주제, 진행과 다른 단어나 문장이 불쑥 나오기도 하고 아무리 시적 허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문법에 맞지 않는 단어가 등장하거나 외래어를 남용하기도, 뜻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인터넷 신조어들이 등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음악에 맞는 감탄사가 문장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그러니 작사, 가사는 일반적인 글쓰기와 다른 분야라는 것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작사는 작품이라기보다 ‘상품’에 가깝다는 점이다. 대부분 작사, 노랫말은 곡이 나온 후에 만들어진다. 이 점은 또한 전문 작사가가 싱어송라이터, 예술가와 다른 점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곡으로 만드는 예술가들은 멜로디와 편곡, 작사의 틀에 구애받지 않는다. 가사가 먼저 나오고 멜로디를 만들기도 하고 좋은 가사가 떠오르면 이미 만들어둔 멜로디를 과감히 수정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작사가는 작곡가나 프로듀서의 ‘의뢰’로 가사를 쓰는 ‘상업적인’ 작사가다. 대부분의 작사 의뢰는 ‘가이드’음원, 곡의 컨셉, 부를 가수의 특징(걸 그룹, 솔로, 듀엣, OST 등), 앨범에서 차지하는 위치(타이틀인지 팬 송인지 등) 등을 전제로 완성 기한, 발음의 특징 등 사항을 함께 요청받기 마련이고 작사가는 이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써 보내더라도 앨범에 실리는 ‘픽스’의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책에는 김이나 작사가의 노하우가 정말 깨알같이 담겨있다. 나 또한 가사를 쓰는 입장이지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작사가는 3~4분 내외의 곡에 한 인물 인생 전체를 담기도 하고 잊기 힘든 찰나의 순간을 담기도 한다. 저자는 먼저 곡을 들으며 하나의 캐릭터를 설정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캐릭터가 이 노래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다고. 같은 이별이지만 각기 다른 캐릭터는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같은 사랑이라 하더라도 누구는 순수하게 설레고, 누구는 노련하게 상대방을 리드하기도 하며, 누구는 용서를 하고 누구는 저주를 한다. 이는 그리고 가수는 이 가사에서 그 캐릭터를 잡아내고 연기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작사가와 가수는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와 연기자의 관계와 비슷하다.


이 책에는 자신의 이런 작사 노하우, 곡을 의로 받고 쓰는 과정, 음악관련 일들의 설명, 캐릭터를 만들고 가사로 쓰는 방법, 대중가요 가사에 주로 쓰이는 사랑과 이별의 방식에 대한 분석을 ‘참고서’처럼 설명하고 있으며 자신이 쓴 가사를 분석해 왜, 어떻게 그런 가사를 쓰게 되었는지 ‘첨삭지도’까지 하고 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막연한 작사라는 일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식으로 연습하고 어떤 식으로 쓰면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책은 잘 못하면 자화자찬으로 끝날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데 놀라울 정도로 유용하다. 작사는 앞서 말 한 것처럼 상품의 생산에 가깝다. 싱어송라이터나 스스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자유롭게 고민하면 될 것이나 상품을 팔아야 하는 ‘작사가’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지근거리에서 제작자, 작곡가, 가수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해야 하며, 창작이라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직업인 것이다.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작사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뽑아내는 부분’에 ‘독서’만큼 좋은 것은 없다. 결국 작사라는 일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정과 정서에 대한 예민함, 노래 부를 가수와 들을 사람들의 느낌까지도 예상해야만 하는 일이니 다양한 분야의 독서는 분명 작사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하나,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들의 가사를 많이 읽고 분석하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 훈련의 포인트라고 저자는 말한다. 작사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이 책은 정말 꼭 한번 읽어 보라고 말하고 싶고,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어떻게 그런 가사가 나오게 되었는지 그 뒷이야기를 맛볼 수 있는 아주 유쾌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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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범인인가 -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 범죄사회를 말하다
배상훈 지음 / 앨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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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범인인가》




요즘은 뉴스 보기가 겁날 만큼 하루하루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즉각적으로 보도된. 과거에는 일어나는 강력 범죄들 대부분이 원한에 의한, 즉 분명한 이유가 있는 유형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처럼 이유 없는 범죄들이 많아졌고 그 양상도 굉장히 가혹하며 변태적이고 무차별적이다. 이에 따라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프로파일러 등의 용어들이 자주 매스컴에 언급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분석하는 경찰이나 심리학자 들이 등장하여 범죄학이나 심리학에 대한 관심도 많이 높아졌다. 이 책《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바로 이런 사회적 현상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대한민국 제1호 프로파일러 배상훈이 범죄와 사회, 프로파일러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프로파일러’란 직업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다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과 사회학을 연구, 국회의원 보좌관 및 정책연구원을 거쳐 경찰청 범죄분석 1기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로 입직했고, 퇴직 후 사이버대학 경찰학과 교수로 프로파일링 범죄 수사를 가르치고 있는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프로파일러’ 하면 범죄 심리학자를 연상하지만 프로파일러는 범죄 심리 ‘수사관’이며 범죄 심리학자는 수사관들이 가져다준 파일을 분석하고 컨설턴트를 하는 ‘학자’ 로 하는 일이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이 책은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강호순 연쇄살인,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조선족 박춘봉 토막 살인 사건, 칠곡 계모에 의한 자녀 살인사건, 조두순 성폭행 사건 등의 이야기가 프로파일러의 시각에서 분석되고, 이런 범죄들을 통해 현재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공소시효 문제, 범인을 잡고도 처벌할 수 없는 증거 보관 시스템의 문제, 친권과 가족의 문제, 술 마시면 감형되는 이상한 법체계, 전자발지와 화학적 거세로 본 성문제, 가해자 교정에 뒤로 밀리는 피해자 지원문제 등을 조목조목 살펴본다. 또한 가장 놀라운 것은 프로파일러로써 자신이 속한 경찰 조직의 무능함과 비효율, 문제점들을 비판 한 대목이다. 특히 6장 경찰이란 무엇인가에서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놓고 조목조목 따지고 있는데 경찰 조직이 어떠한 조직이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누가 진짜 범인인가》란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정말로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범죄자, 범인만 골라내는 것이지만 실제 문제가 일어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성공’, ‘1등’만을 최고의 가치로 포장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는 일이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논리로 포장되는 것은 결국 소시오패스가 성공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며 이에 관한 대책을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로 논의 되어야 할 것이 ‘사회의 공정함’, ‘정의’ 라고 말한다.-p94-


언뜻 생각할 때 범죄자나 악인이 되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같은 조건에서는 누구라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실험결과도 있는 만큼(짐바르도 실험) -p30- 사회, 가족, 국가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서는 그 누구도 범죄의 굴레에서 편안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시민위에 군림하는 경찰과 법률체계가 아닌, 법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제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아닌 가하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프로파일러(부록 부분), 범죄와 범죄자의 특성과 이슈가 된 사건들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 이를 통해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짚어 준 통찰, 경찰과 법 조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흥미와 지식, 다양한 논점을 멋지게 요리하고 있다. 어느 쪽에 관심이 있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혼자보기 아까운 책이다. 자신 있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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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 - 장화홍련전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고전 2
고영 지음, 이윤엽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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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




소설로 영화로 예술작품으로 수 없이 리메이크되는 고전 <장화홍련>.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무 유명하고 늘 상 볼 수 있는 작품들은 의외로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 드물고 그래서 제대로 된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고전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북멘토에서 기획한 ‘열네 살에 다시 보는 우리고전’ 시리즈 2번째 작품으로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그러면 1편은 무엇일까? 역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고전인 <심청전> 이 책에는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폭을 무릎 쓰고’ 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어렸을 때 그림책으로 보았던 작품들을 14살, 즉 자의식이 형성되는 청소년에 다시 읽는 다는 것과 부제에서 바로 이 책들의 출간의도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전은 어렸을 때 보통 그림책으로 접하게 되는 데 어린이들이 대상이다 보니 원작을 보여주기 보다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각색이 되기에 작품을 읽긴 했지만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는 채 지나오고 마는 것이다. 외국의 동화들도 그래서 원작 그대로를 보여주는 책들이 기획되는 것일 터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소설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전래된 과정을 보여 주는데 있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는 바로 [여는 글]에서 조선 효종, 평안도 철산에서 발생한 자매의 사망사건이 있었음을 이를 해결한 이가 ‘정동흘’이란 철산 부사임을, 후에 그의 6대 손과 8대손에 의해 기록되고, 이 철산 사건은 사실과 허구가 영향을 받다가 19세기 후반이 되어 소설《장화홍련전》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됨을 알려준다. 그리고 왜 이 책의 부제가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인지 설명이 되는데 이런 사건이 가능했던 그 시대 강력했던 가부장의 권위와 사회적 분위기를 설명해준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평안도 철산에 배무룡이란 사람이 장씨라는 여인과 결혼해 장화와 홍련이라는 효성 지극한 딸을 낳게 되는데 그만 병으로 일찍 죽게 된다. 그 시대 어느 남자가 그렇듯 당연하게 재혼을 하게 되는데, 이 후처는 아들을 낳고 전실 소생인 장화와 홍련이를 괴롭히다 계략을 꾸며 장화를 죽이고 만다. 이를 안 홍련이는 언니를 따라 자살하게 되고 고을 부사에게 나타나 억울함을 풀어주길 호소하지만 귀신을 본 부사는 공포심에 죽어나간다. 새로 부임한 부사 ‘정동우’만이 기지를 발휘하여 자매의 한을 풀어주고, 이 일을 꾸몄던 계모와 그의 아들을 죽이는데 배무룡만은 살려주어 3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자매는 다시 아버지의 쌍둥이로 태어나 행복하게 산다.


소설은 짧지만 총 9장으로 나뉘어있고, 각 장이 끝나면 <이야기 너머>란 짧은 챕터를 실어 각 장의 역사적 배경이나 관련 인물, 역사, 관련자료 등을 첨부해서 설명하고 있다. 소설만 읽으면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어쩌면 호러 작품처럼 끔찍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도와주고 있다. 또 중요한 부분은 ‘이윤엽’ 작가의 그림이다. 평소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목판에 새기고 알려왔다는 그의 강렬한 그림이 이 소설의 강렬함과 잘 어우러지고 있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


이 지면으로 자세한 것을 다 쓸 수는 없지만 장화홍련의 이야기는 그냥 동화로 흘려버리기엔 참 많은 것을 담은 시대적 작품이며, 현재의 정서로는 절대 이해 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다. 장화홍련의 비극은 전처의 자식을 미워한 계모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 가부장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그 누구도 침범 할 수도 심지어 임금조차도 건들 수 없었던 시기에 가부장을 제외한 모든 가족 구성원은 결국 누구든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지. 이런 부조리가 무서운 계모를 만들고 부모와 가문을 위해 죽음을 강요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 많은 질문을 던져준다.


소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만들어 졌지만 성인이 읽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고전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얼마나 있는지, 초반에 말했던 너무나 유명하여 오히려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결국 《장화홍련전》은 가족과 가족의 형태가 만들어 지게 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며, 과연 우리의 가족은 안녕한지 돌아보게 하는 뜨끔한 소설이다. 자녀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더 없이 좋을 소설이고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니라면 꼭 한번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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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언덕의 안개
김성종 지음 / 새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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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언덕의 안개》




한국 추리문학의 대부 <김성종>작가의 작품이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예전에 그의 단편들을 여러 편 읽었고 단편 추리소설 모음집에서도 그의 이름이 보이면 꼭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대표작중 <여명의 눈동자>는 드라마로 접했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보았지만 그가 원작자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1941년 출생하셨으니 벌써 70세를 훌쩍 넘기셨지만 이렇게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달맞이 언덕의 안개》는 작가가 1년 동안 매주 한편씩 부산일보에 연재한 단편 52편 중 전반부 25편을 담아낸 연작소설이다. 작가를 형상한 70대의 유명한 추리소설가 ‘노준기’가 주인공인 소설은 부산 해운대 달맞이 언덕의 노천카페 ‘죄와 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 때문에 알게 된 것이지만 부산 달맞이 언덕에는 ‘김성종’작가 사재를 털어 세운 ‘추리문학관’이 있는데 ‘죄와 벌’은 바로 그곳의 가상 카페다. 그런데 신문 소설 연재 후 카페 '죄와 벌'이 어디 있는지 묻는 독자들을 위해 실제 카페 겸 책방 '죄와 벌'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정말 독특한 사람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많은 팬들을 거느린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러 번 결혼하고 이혼을 했으며, 이 외에 아주 많은 여자들을 만나 자신도 모르는 자식이 있기도 했고 본의 아니게 사기를 치기도 하고 군사독재시절 억울하게 시국 사범이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전쟁 때문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몸 한 쪽이 마비되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도 여전히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대출을 받아 억대가 넘는 캠핑카를 사서 여행을 다닌다.


모든 소설은 ‘안개’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며 카페 ‘죄와 벌’의 주인인 고혹적 여인 ‘포’와는 사랑하는 사이다. 주인공은 매일같이 죄와 벌에 들러 커피와 와인을 마시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기도 한다. 자세히 뜯어보면 연작 소설이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같은 인물의 이야기라고는 볼 수 없다. ‘찢어진 안개’ 편에서 도진기는 북에서 살다 한국 전쟁 때 자기 대신 형님이 입대 한 후 남쪽으로 피난 와 헤어진 형님을 겨우 만나고, ‘안개 속으로 사라진 여인’ 편에서 도진기는 서울에서 살다 한국 전쟁 때 피난 갔다 어머니를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한 인물의 이야기지만 그의 과거 이야기는 각각의 다른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각각 모든 단편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안개’는 현재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소재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회상을 돕기도 하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때로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고 해결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또한 단편들은 현실의 과감한 풍자이기도 하고 저자가 한국사를 관통해 살아오며 직접 눈으로 목도했던 전쟁과 독재의 뼈아픈 되새김이도 하여 (달리, 안개를 그리다, 안개는 알고 있다, 찢어진 안개, 죽음의 땅에 흐르는 안개, 그리고 개들의 축제 편 등) 짧은 작품이고 때로는 좀 황당한 진행과 결말로 맺어지더라도 허투루 읽을 수 없게 한다. 억대가 넘는 캠핑카라든지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여러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과거 여인들이 그를 잊지 못해 찾아오는 장면들은 저자의 로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 작품을 접한 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달맞이 언덕’과 ‘안개’다. 멋진 노신사가 늘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카페가 있는 언덕, 그 언덕에만 유난히 가라앉아있는 짙은 안개. 시인 ‘류시화’도 말했듯 안개는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그 거리는 안개에 가려지고 채워진다.-안개속에 숨다- 이렇게 신비하고 몽환적이며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안개. 그 속에 앉아 세상을 관조하는 ‘미스터리 작가’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사랑과 추억과 인생과 미스터리하며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이야기는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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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표윤명 지음 / 새문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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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몇 년 전 ‘인사동 스캔들’이란 영화를 참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관심 밖이던 고서화와 미술계의 이야기가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일반인에게 과거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예술성보다 어쩌면 ‘얼마에 거래되는 가’ 가 아니겠는 가. 경매에서 얼마에 낙찰되었다거나 어떻게 발굴되고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으로 전해 왔는지, 때로는 위작 논란에 거물급 정치인들의 돈세탁 의혹까지. 가만 생각해 보면 서화에 대한 지식은 학창시절 때 배운 것이 다이고 나머지는 이런 가십거리의 소재가 전부였다. 내가 과거 읽은 소설 중에 《위작》처럼 고서화의 위작이야기를 다룬 소설은 이외수 작가의 《벽오금학도》가 있었다. 고서화를 감쪽같이 모사하는 방법들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졌었는데 《위작》을 읽게 된 것 바로 이들 영화와 소설의 영향이다.


소설《위작》은 본격적으로 현 고서화계의 비리를 다룬 책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젊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대학원생 ‘지환’, 그의 지도교수이자 고미술계 최고 권위자인 ‘박찬석’교수, 그리고 주인공을 도와주는 고서화점 탐묵서림의 탐매 ‘송계화’ 그리고 액자 식 구성으로 등장하는 과거 조선시대에는 명필 추사 김정희와 그의 제자였던 흥선군과 추재 윤증후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소설은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와 그 제자들의 이야기와 현재 고서화계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전개되고, 탐매의 입으로 현대 고미술계의 비리와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들의 권위와 명성 때문에 위작을 진작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하고, 심지어 위작을 만들어 내어 유통시키기도 하고, 이런 진실을 은폐하기위해 ‘보화회’라는 비밀 단체를 만들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를 숨기기까지 한다.


소설은 많이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고 이야기가 복잡하지도 않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은 고미술계의 더럽고 추악한 부분이며 추사의 노력과 숭고한 일생이 위작의 이야기와 대비되어 현실을 더욱 매섭게 조롱한다. 위작을 만드는 이도 이에 속아 넘어가 고가에 사들이는 자들도 모두 허영과 탐욕에 찌든 같은 얼굴이다. 이런 위작이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군의 군사자금을 조달하는 데 쓰이고, 고관대작들의 주머니를 터는데 일조를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보통 책들 보다 작은 판형에 큼직한 활자, 250여 쪽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출퇴근 시간 정도면 수월하게 다 읽을 수 있겠다. 따라가기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소재도 주제도 흥미롭고 공감할 만하다. 누구라도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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