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움의 왕과 여왕들
대니얼 월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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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움의 왕과 여왕들》




“팀 버튼이 선택한 상상력과 유머, 빅피쉬의 작가 다니엘 월러스가 선사하는 감동의 베스트셀러”라는 카피 문구에 망설임 없이 선택한 작품이다. 나는 팀버튼의 작품 중 ‘가위손’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고, 유령수업과 빅피쉬도 흥미롭게 보았기 때문에 이 소설도 굉장히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 모두가 원작 소설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영상으로 보는 것과 소설로 읽는 것은 많이 다를 것 같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소설을 읽으면 내 머릿속에 등장인물들의 외향, 성격, 독특한 버릇이나 표정 등을 설정 하는데 대부분 그 설정 인물들은 내가 아는 배우들이 차지한다.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들도 ‘이미’ 보아온 여러 가지 이미지들로 현실과 가상의 세계 사이를 메운다.


그런데《로움의 왕과 여왕들》은 이 과정 자체가 내겐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고 보니 앞서 언급한 영화들 특히 유령수업 같은 영화를 만일 소설로 읽었다면 난 아마 거의 도입부인 주인공 부부가 물에 빠져 죽는 부분에서 읽기를 멈추었을 것 같다. 화가 달리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영상 , 큰 자극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내게 참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소설을 ‘서사’ 위주로 읽는다는 것을. 등장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심리’, ‘사건’ 등을 위주로 읽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큰 줄기 없이 이어지는 소설은 소화하기가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내 상상력의 한계를 제대로 느꼈으며, 그래서 이 소설도 읽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먼저 밝힌다.


주인공은 두 자매다. 두 자매의 부모님은 먼저 돌아가셔서 세상에 이 둘만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런데 언니는 외모가 못났고 동생은 외모는 뛰어나지만 앞을 볼 수 없다. 동네 사람들은 언니의 모습 보기를 꺼려하지만 동생을 보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어느 날 동생은 언니에게 자신의 외모가 어떠냐고 묻는다. 그런데 언니는 그만 거짓말을 하고 만다. 자신과 동생의 처지를 반대로 말하고 만다. 동생은 앞을 볼 수 없으므로 이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고 다른 사람의 호의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언니는 앞 못 보는 동생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로움에 대해 끔찍한 이야기를 지어내어 동생의 세계를 속박한다.


로움은 이 두 자매의 고향으로 과거의 영광은 끝이 난 음산한 곳이다. 산자들은 이 마을을 떠나고 죽은 영혼들이 주인인 듯 하다. 소설은 두 자매의 이야기와 이 도시에 사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들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나처럼 시각적인 상상력이 바닥이라면 조금 힘들어 할 지도 모르겠다. 아주 독특하고 독창적인 작품이다. 저자가 만든 세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굉장히 매니악한 작품이다. 팀 버튼의 스타일을 좋아하거나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누구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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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
김성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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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




몇 달 전에《달맞이 언덕의 안개》를 읽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김성종 작가의 소설은 추리소설 모음집에서 단편들로 처음 접했기에 그의 존재감은 그리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조금은 외설적이고 조금은 퇴폐적인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내 머릿속에 김성종은 그저 그런 추리소설 작가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가 대작《여명의 눈동자》의 저자라는 걸 알고 나서 정말 많이 놀랐다. 이 작품을 읽고 너무 좋았던 나머지《최후의 증인》도 찾아 읽었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소설《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는 연작소설《달맞이 언덕의 안개》의 다음 이야기이다. 《달맞이 언덕의 안개》는 작가가 1년 동안 매주 한편씩 부산일보에 연재한 단편 52편 중 전반부 25편을 담아낸 연작소설로 이 소설은 이들을 제외한 후반부 작품들을 싣고 있다.


제목에서 보듯 전작은 저자가 직접 사재를 털어 지은 추리문학관이 있는 달맞이 언덕의 풍경을 그대로 담았다. 그리고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읽는 내내 마치 내 주위에 안개가 가득한 것처럼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었다.《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는 해운대와 모래사장이 배경이 되곤 있지만 전작처럼 그 장소의 풍경을 짙게 나타내진 않은 것 같다. 물론 안개와 바다가 주는 느낌은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작품들은 연결되지는 않고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의 망명시절 이야기가 알파와 오메가라는 킬러의 이야기로 그려지기도 하고, 성형수술, 성형외과의 사회적인 문제점이 전혀 다른 소재의 형태로 그려지기도 하고, 현재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갑질의 문제,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뻔한 트릭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이 소설들은 사회성과 퇴폐미, 몽환적이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요소들이 참 오묘하게 얽혀있다. 추리소설의 대가라고 하지만 저자를 그 틀 속에 가두기는 너무 자유롭다. 저자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자신의 의견을 자주 끼워 넣는데 특히 장르문학을 문학과 차별하는 것에 대해 쓴 소리를 뱉는다. 때로는 정치적인 의견을 비치기도하고 때로는 남성으로써의 환타지를 맘껏 펼치기도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를 자유분방함이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다.


장르문학을 좋아하거나, 저자를 좋아하거나, 부담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장편 읽기가 힘든 독자들도 좋아할 만하다. 저자는 역시 이야기꾼이고 참 유쾌하고 괴짜 같다. 그런 저자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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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J의 다이어리
전아리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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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J의 다이어리》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소설인데 그 중에서도 미스터리, 추리, SF판타지를 좋아한다. 탐정이 나오면 더욱 좋고 그 배경이 역사라면 더더욱 좋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헤치고 말미에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반전이 있으면 더욱 좋다. 범죄나 스릴러, 활극 보다는 진실을 파헤치고 머리싸움을 하는 서사에 집중하는 그런 소설들을 좋아한다. 역사 미스터리나 음모, 외계인이 나오면 정말 좋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런 소설과는 영 딴판인 잔잔한 드라마도 좋다. 앞서 말한 소설은 가슴 두근거리고 막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 읽고 싶은 그런 스타일이라면 후자의 것은 뭔가 일상이 의미 없이 느껴질 때나 너무 지쳐서 에너지를 받고 싶을 때,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손이 가는 소설이다. 늘 똑같이, 별 의미 없이, 큰 사건 없이, 말 그대로 무미건조하게 지나가는 일상에도 뭔가 깨달음이 있고 내가 놓치고 있는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기 때문이라 그런 걸까. 이런 소설을 읽으면 뭔가 가슴이 따뜻해지고 지긋지긋하던 일들에도 애정이 느껴진다. 심지어 밉던 사람도 그리 밉지가 않다.


예전에 읽은 무레 요코의《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정이현의《달콤한 나의 도시》데이비드 제임스 덩컨의《낚싯대를 메고 산으로 간 거스 오비스턴은 왜?》등의 작품들이 내게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 《간호사J의 다이어리》도 바로 그런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단숨에 다 읽어버릴 정도로 꽤 괜찮았달까? (분량이 적었다는 것은 비밀)


주인공은 소위 말하는 날라리 였다가 어떤 기회로 열심히 공부해 간호사가 된 인물이다. 그러나 공부와 실전 근무는 달랐다. 늘 친구들과 클럽에 죽치고 있다가 병원 현장에서 환자들을 만나려니, 게다가 까칠한 상사라도 만나면 늘 핀잔에 깨지기 일쑤니 좀 힘들었을까. 결국 몇 군데 전전하다 경기도 변두리의 한 쓰러져가는 병원에 근무하게 된다. 이 병원도 수상한 것이 건물은 쓰러져가고 환자도 순 ‘나이롱’ 환자들만, 원장도 가끔 한번 씩 들러 분위기를 잡는 게 전부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분위기였기에 주인공은 그나마 근무를 할 수 있는지 몰랐다, 크게 아프거나 병든 환자도 없으니 심적 부담이나 업무의 압박감이 적었고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환자들을 컨트롤 하는 방법을 터득한 후론 그냥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물론 가족에 비유 하려해도 정이 넘치는 집은 아닌 막장 콩가루 집안 이겠지만. 소설은 이런 배경위에서 마치 드라마처럼 한편씩 에피소드들을 풀어간다. 문고판 보다 조금 큰 판본에 200여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라 각 등장인물들을 설명하는 내용은 짧지만 오밀조밀하게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티격태격 대는 두 할머니는 원수 같지만 가장 가까운 영혼의 동반자이고, 이주 노동자의 서툰 사랑이야기는 안타깝지만 슬며시 미소 짓게 되고, 부부 자해 공갈단의 진짜 사고와 할머니 한 명의 보호자 자살소동은 주인공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을 따라가다 보면 허황된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이고, 뻔 한 듯해도 가슴이 슬며시 젖어오는 우리의 일상을 만난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고 읽은 작품이었는데 의외의 수확을 얻은 듯 하여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일상에도 언제나 깨달음은 가까이 있고 소중한 것도 가까이 있는데 외면하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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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준비하는 미래 - 상위 1%의 멘토가 밝히는 운의 기술
이서윤 지음 / 이다미디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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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준비하는 미래》





살아가면서 인생의 갈림길이나 벽을 만날 때 하는 일이 정말 더럽게도 안 풀린다 싶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운명’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세상은 너무나 각박하고 나이가 들수록 결정의 무게는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리라. 입시, 진로선택, 직업, 사람과 인연, 거주할 집, 투자의 종목, 자녀의 교육과 미래 등등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어디 한 둘인가?

운명을 믿는가? 인연을 믿는가? 나의 운을 믿는가? 이런 질문 자주 듣고 또 자주 한다. 다양한 형태로. 살다보니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가족이나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더라. 또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사람’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고 어떤 사람과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을 때 남는 건 바로 ‘운’이다.


이 책《운, 준비하는 미래》에서 저자는 완벽히 불행하거나 완벽히 행운아인 사람은 없다고 한다. 모두 행복한 삶을 살 만큼의 행운을 타고 났으며 자신이 타고난 행운을 누리는 공식도 논리적이라 말한다. ‘운명학’은 언제,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 알게 해주며 이 책은 바로 그 원리를 가르쳐준다. 또 저자는 ‘명’은 정해진 것이고 ‘운’은 바뀔 수 있다고 하는데 ‘운명학’은 타고난 사주(명)가 후천적으로 만나는 때(운)와 어떤 조화를 이루고 길흉화복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예측하는 학문이라 말한다.


《운, 준비하는 미래》는 간결하고 쉽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운명이란 자신을 잘 알고, 때를 잘 알아 대처하는 것이다. 자신의 그릇이 어떤지 알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내 자녀의 그릇이 어떤지 알면 올바른 교육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사람은 30년 주기로 운이 바뀐다고 하는데 다가올 흐름을 잘 알고 흐름을 잘 탈 줄 알면 운이 오르막일 때 극대화 시킬 수 있고, 내리막일 땐 대비를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책을 읽다보면 심리학자 융도 만나고 저자가 만난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이 책의 조언에 따라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그래 맞아’하는 부분도 있었고 이런 부분은 조심하고 이런 부분은 대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인간 관계에 대한 부분과 ‘운’은 선악을 따지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또한 행운을 좇기보단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릴 것, ‘최적의 타이밍’과 ‘올바른 방향’ 인생의 굽이굽이 선택의 순간에 이 두 가지 요소에 해법이 있으며 이를 현명하게 선택하는 힘은 내부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p91~92)


또한 중요한 점은 모든 ‘운’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란 것이다. 어떤 인연을 만나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내 운이 좋지 않아서이고 좋은 일이 생긴다면 바로 내 운이 좋아서라는 것이다. 이 책의 거의 반이 바로 ‘인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인생은 인연을 만나고 맺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저자는 어떤 사람, 어떤 인연을 만나라고 조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의 주체는 ‘나’자신이다. 어떤 인연이든 감사할 부분이 있고 내 욕망이나 자격지심, 연민, 자존감 등이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니 결국 나 자신이 바로 서는 것이 바로 ‘운’을 좋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외에도 가족, 형제, 공부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궁금해 할 부분을 짚어가며 저자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쉽고 간결하고 재미있다. 내 인생이 변화를 맞이할 시점인지 얼마 전부터 이런 책을 자꾸 찾게 된다. 그런데 아직 모르겠다. 적절한 타이밍과 올바른 방향이 무언지 그저 나 자신을 돌아보며 그저 최선을 다해 살 뿐이다. 단 하나를 꼽자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게 된 것은 가장 큰, 정말 큰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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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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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전쟁》




김진명. 이름만으로도 이제 브랜드가 된 작가가 아닌가 한다. 작품이 나오면 꼭 읽어보는 작가 중 한명으로 늘 기대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애국심 마케팅, 감상적 민족주의, 국수주의, 배타적 민족주의자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들 대부분이 현 국제정세를 바탕으로 역사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으며 음모론을 파헤치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소설이란 것이 실제와 허구가 교묘히 섞이기 마련이지만 그의 소설은 늘 현재 민감한 사안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논란을 비껴갈 수 없을 터이다.


이 소설은 연작하던 소설《고구려》를 잠시 미루고 나온 소설이다. 전작은 무려《싸드》였으니 그가 얼마나 시의적절한 작품을 내는지 알 수 있다. 《글자전쟁》은 ‘황병서 미스터리’라는 북한의 권력서열 문제를 우리나라의 방산비리와 연결시켜 전개하고 있는데 스탠퍼드 출신의 무기중개상 ‘이태민’이란 인물을 등장시켜 이 둘을 잇는다. 북한의 권력서열 미스터리를 멋지게 풀어 미국의 무기상의 신뢰를 얻게 된 이태민은 한국에 들어와 무기중개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데 한국에서 방산비리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피해 중국으로 도망가게 된다.


중국에서 북한과 한국의 동태를 살피며 재기를 노리던 이태민은 한 미스터리한 남자를 알게 되는데 그 사내는 자신이 쓰던 소설이 담긴usb를 넘겨주고 살해당하고 만다. 소설은 액자 식 구성으로 현재의 이태민의 상태와 죽은 사내의 소설 속 상황이 함께 그려진다. 소설 속 이야기는 ‘한자’에 대한 이야기로 고대 중국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통설을 뒤집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분명 살해당한 것이 분명한 사내의 죽음을 축소 은폐하려는 중국 공안을 보며 이태민은 사내의 죽음에 음모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처지와 사건 앞에서 갈등한다, 그러던 그는 결국 그 음모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데...


결론은 역시 그의 전작들이나 뭇 영화들처럼 해피엔딩을 맞음으로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무척 ‘김진명’ 스럽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논란이 될 수 있는 작품 하나가 또 세상에 나왔다. 일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읽고 뭔가 가슴에 차오르는 감동을 느낀다고 하고 또 한편에선 그의 역사의식을 굉장히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나 또한 애국이나 한민족의 우수성을 내세우기 위해 독재자를 미화하고 정설이나 통설과는 다른 역사를 이야기 할 땐 걱정스럽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다. 가끔 핵조차도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은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소설’이다. 약간의 진실에 더 많은 상상력이 그의 작품세계다. 어쩌면 굉장히 ‘영악한’ 작가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일부의 시각처럼 ‘위험’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분석하며 욕하더라도 우리 역사와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더 바란다, 일단 관심이 있어야 비판이나 욕도 할 수 있으니까. 차라리 반가울 만큼 우리가 처한 현실은 시궁창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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