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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매살인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 / 책에이름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촉매살인》
나는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흔히들 말하는 장르문학 마니아다. 국내 대표 추리작가인 김성종 작가는 추리소설을 장르문학이라 칭하며 일반 문학 작품과 구별하여 폄하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성토하였지만-나도 강력히 동의하는 바이다-내게 있어 장르문학은 동경의 대상이며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이러한 분위기에도 많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꾸준이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 수준 또한 굉장하다는 것이다. 예전엔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선을 보였는데 요즘은 다른 나라 작가들의 작품도 자주 만날 수 있어 자칭 마니아인 나는 즐거울 따름이다.
이번에 읽은《촉매살인》의 작가 '한스 올라브 랄룸'은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요 네스뵈'와 같은 노르웨이의 작가로 역사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특히 자국 정치계의 역사가 전문영역이라한다. 작가의 이력을 밝히는 것은 이 소설이 바로 그의 전문영역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노르웨이이다. 나치의 잔당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고 이념의 대립으로 날이 서있던 시대에 공산주의의 이상향을 위해 활동하던 급진적 운동권의 젊은이들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 그룹을 이끌던 의욕적이고 매력적인 리더 '팔코'는 5명의 멤버들과 함께 별장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근처 절벽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추정은 되지만 시신을 찾지 못한 상태로 2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2년후 현재, 사라진 팔코의 약혼녀인 '마리에 모르겐스티에르네'가 전철역에서 살해된다.
소설은 우연히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본 주인공인 '크리스티안센' 경감이 사건을 맡게 되는데 그는 불행히도 형사로써의 능력은 볼품없다. 그가 가진 유일한 강점이라면 천재적인 추리능력을 가진 여인 '파트리시아'의 조건을 얻을 수 있는 것 뿐이다. 미국스타일의 소설이었다면 분명 그녀는 통통튀는 매력을 가지고 경감과 함께 범죄현장을 누비며 콤비로 수사를 해나가는 캐릭터로 그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녀는 사고 때문에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터라 능력없다 못해 답답하기까지한 경감이 가져다 주는 증거들로만 추리를 해 나가야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건 해결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증거물들도 늦게 도착하고 증인들에게 알아내야 하는 정보들도 일일이 코치를 해주자니 독자들은 답답함 속에서 긴장을 늦출수가 없다.
심지어 경감은 주요 증인 중 한명에게 호감을 가지기 까지 하고 파트리샤와 3각 관계로 미묘한 긴장감 까지 안겨준다. 열린 공간에서의 사건에다 과거의 사건까지 얽히고 국가정보원에 과거 나치주의자들과의 연관성까지 밝혀지니 사건은 점점더 오리무중이 된다. 그리고 '마리에 모르겐스티에르네'의 살인사건이 촉매가 되어 연이어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답답한 경감의 현장수사와 예민한 천재 '파트리시아'의 추리력으로 소설은 서서히 독자들을 진실의 문으로 안내한다.
소설은 생각보다 그리 술술 읽히는 편은 아니었다. 이는 주인공인 '크리스티안센' 경감의 호흡때문이기도 하고 시대가 70년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데다 우리의 주인공인 '크리스티안센' 경감은 정말 형사로써의 감은 거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경감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단서와 증거들을 수집하고 이를 '파트리시아'에게 가져다 주면 순간 속도가 빨라지고, 다시 경감의 호흡으로 돌아오면 참으로 정직하게 시간은 흘러간다. 그럼 소설이 지겹냐면 또 그건 아니다. 작가는 적절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데 참으로 적재적소에 던져주는 증거들은 독자들의 추리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천천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노르웨이의 과거, 정치와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도 참으로 쏠쏠하다. 자주 접해보지 못한 이름과 지명 때문에 조금 헤깔리기는 하지만 다양한 사상과 생각을 가진 사람, 가족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재미있다. 바람둥이라기엔 젊잖고 딱히 큰 매력을 가진것 같진 않은 '크리스티안센' 경감과 '파트리시아'와의 케미도 눈여겨 볼 만하다.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소설이다.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