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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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욕망을 제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욕망하면 떠오르는 뜨겁고 끈적한 이미지의 그런 것일까. 책을 읽기 전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졌다. 그러면 박제가는 어떤 인물인지. 순간 연암 박지원이 떠오르고, 북학의 였던가 하는 책도 떠오르고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또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박제가는 이처럼 내게 그리 의미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역사책 한 구절 외워야 하는 인물과 저서와 무슨 무슨 파벌의 일원일 뿐. 이 책은 박제가라는 인물이 살아가던 조선 사회와 그 시대상, 그리고 비운의 비뚤어진 천재 박제가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분석의 태도방법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여행이나 방송, 서적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외국의 모습이나 과거의 시대상 혹은 내가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른 오지의 문화를 만날 때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를까. 외국에 여행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역시 음식은 한식이 제일이라는 얘기들을 할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먼저 할까? 역시 우리 것이 최고이고 다른 문화는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될까?

 

박제가는 내가 알던 조선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이질감까지 느끼게 하는 조선의 모습과 앞선 문물을 가진 청나라를 비교하면서 조선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조선의 뜨거워 절절 끓는 온돌보다 전체적으로 미적지근한 청의 온돌이 좋다고 하던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소 조차도 잘 끌지 못하는 마차, 벽돌이 아닌 여러 크기의 무거운 바위로 만든 성벽, 두껍고 질겨서 글씨를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한지, 만들어도 파는 경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 발전이 되지 않는 도자기 등 우리가 세계적으로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유산들까지 비판을 하고 있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가 봐도 맹목적으로 외세를 추종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나도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가슴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참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의문들은 일정부분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저자는 읽는 이의 이런 심리적 변화를 예측하여 책의 목차를 정했을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으로 인해 책장을 더 넘길 수 없었을 테니까. 첫장에는 박제가의 출생부터 청년기까지의 일화들이 나온다. 그의 부모와 가문, 그가 태어난 배경, 그리고 그가 서얼로 살아가며 느꼈을 답답함과 그들이 그렇게 차별 받게 된 이유를 밝힌다. 왕권이 혼인을 통해 세력을 넓혀가는 권문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일부일처의 규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렇게 규제가 차별을 만들고 그 차별이 또 다른 억압을 부르는 그런 상황은 나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억압된 상황, 반골기질이 분명한 천재 박제가는 순리와 사회가 원하는 길을 걷기를 거부했고, 타협을 거부하고, 차근차근 조근조근 설명하는 돌아가는 길을 거부한 사람이다. 주장을 할 때도 앞뒤 자르고 본론부터 결론만 말을 하니 어떤 사람이 그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 주었을까. 지금 들어도 과격한 주장들이 과연 그 시대에 어떤 파장을 불러 일으켰을지 상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욕망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살아가는 데는 자기만의 욕망이 있다. 부자가 된다거나, 인정을 받는 다거나, 유명해 진다거나, 좀더 편리하게 혹은 좀더 멋지게 그런 자신들만의 욕망이 삶의 의욕을 만들고 열심히 살게 한다. 그러나 조선은 민초들에게 그런 욕망을 허용한 사회가 아니었다. 상위 1%도 아닌 0.5% 의 권문세족들, 그들의 욕구를 위해 모든 국민들은 우민화시킨다. ‘고비용 저효율박제가는 바로 조선의 그런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좀더 편하게 이동하기 위해 말을 타도 말을 잡고 걷는 종과 함께 걷는 다거나, 앞서 말한 너무 크고 무거워서 소조차도 지치게 말하는 수레, 농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지도 농업을 위해 기술을 연구하게 하지도 않는 이상한 농본주의 사회, 99% 이상의 국민들은 어떤 욕망도 거세 당한 채 골고루 가난하게 하루종이 일해도 배고픔 조차도 면하게 하지 못하는 저효율의 사회, 폐쇄된 사회를 고수하도록 쇠뇌 시키는 사회였던 것이다.

 

상업과 공업이 흥하면 국민들은 돈을 가지게 되고, 경제가 흥하면 사람들은 욕망을 가지게 될 터였다. 남들보다 더, , 사람들은 좀더 좋은 것, 좀더 편한 것, 예술과 학문을 가지게 될 것이었기에 상위 1%의 권문들은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오로지 시키는 데로 먹고 사는 1차적인 문제에만 매달리게 하기 위해 조선은 오히려 과거의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더 낙후된 사회, 더 폐쇄적인 나라를 만들었던 것이다.

 

새로운 세상, 내가 알던 그 조선이 아닌 다른 조선을 만나고 나니 나 또한 저자가 제기한 문제에 다다른다. 다른 문화, 다른 사실들을 만날 때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저 머리 속에 변호사를 불러내야 할까. 내 생각을 바꿔야 할까, 이 인지부조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욕망내가 살아가는 에너지. 나를 발전하게 하는 에너지. 드라마에서 보던, 답답하지만 생동감 넘치던 조선이라는 나라가 순간 무채색으로 바뀌는 느낌을 받았다. 박제가. 그는 그 답답한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귀양가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어떤 마음으로 버틴 것일까. 비운의 천재. 그의 삶이 그의 거친 언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비단 이기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이것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시대의 모습이 과연 이 발달한 한국 사회, 글로벌한 한국사회에서 사라졌다고 과연 자신있게말 할 수 있을까? 박제가의 외침은 아직도 유효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뒤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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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흑치상지
신규식 지음 / 산마루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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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흑치상지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상대적으로 별 관심이 없었던 백제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은 김운회 저 대쥬신을 찾아서를 읽은 후부터였다. 백제를 그냥 백제로만 알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약한 나라로만 알고 있었던 내게 김운회 저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백제를 보게 해 주었다. 백제는 그냥 백제가 아니라 바로 부여의 한 줄기라는 것, 그리고 백제뿐만 아니라 도 부여의 한 줄기라는 것, 백제 황실의 성이 부여라는 것, 부여는 망한 것이 아니라 축소되긴 했으나 그 줄기를 이어왔던 것 등등 내게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 주었다.

 

이 소설 속에도 바로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백제가 신라와 당에 의해 패망하자 왜가 도움을 주기 위해 수도까지 옮겨가며 병력을 지원한다. 그러나 백제는 결국 망해버렸고, 한반도에서 부여의 정통성을 가진 줄기는 끝이 나 버린 것이다.

 

대장군 흑치상지는 백제라는 존재가 그렇듯 내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그런 장수들 보다 우리 조상들 중 이순신을 제외한 어떤 장수가 큰 조명을 받고 있을까 생각하면 내가 흑치상지를 모르는 것 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남의 나라 장수들 이름이나 그들이 전투에서 썼던 병법, 그들의 말과 일화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늘 회자되고 응용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장수들은 그 존재가 참으로 미미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패망한 나라 백제의 장수라니. 저자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흑치상지라는 장수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하여 부여의 후손인 찬란한 제국 백제가 패망하게 되었는지, 백제의 장수가 자신을 망하게 한 나라의 장수로 싸우게 되었는지, 그 위대한 싸울아비들이 어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게 되었는지 안타깝고 안타깝다.

 

저자는 이 장수를 통해 올바른 리더쉽과, 인재등용의 중요성 그리고 요즘 특히 더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보안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백제는 당과 신라에 의해 패망한 것이 아니다. 바로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한 리더에게 문제가 있어, 자신들 스스로, 안에서부터 먼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시대를 달리해 오며 늘 되풀이 되어온 역사다. 바로 근대 조선이 그랬다. 을사오적들이 일본에게 나라를 통으로 갖다 바친 것,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자신들이 국민들을 배신하고 국민들에게 빼앗은 자신들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다. 그들에게 나라도 국민도 중요하지 않다. 바로 백제 귀족들이 백제든 신라든 당이든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 재산만 유지 할 수 있다면 어떤 나라이든 상관없어 세작 노릇을 했던 것처럼 친일파라고 일컬어지는 이들도 마찬가지 인 것이다.

 

그것뿐인가? 보안 문제를 보자면 현 MB정부는 그들이 주장하듯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폭파되도록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으며, 일이 일어나자 마자 지하벙커로 들어가 그들만의 은밀한 회의만 가질 뿐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다 아는 정보조차 우리 정부는 알지 못한다. 이런 여러 일들을 보면 백제나 지금의 한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보안 이라 말하면 아직도 빨갱이를 떠올리며, 북한을 떠올린다. 이 글로벌한 세계에서 우리가 경계 해야 할 존재는 오로지 북한뿐인 것처럼 더 중요한 것들은 알지 못하고 관심도 가지지 않도록 많은 정치적 장치들로 결계를 처 놓은 듯 하다.

 

실은 읽으며 별로 재미가 없었다. 흥미 있는 전투씬도 없었고, 흑치상지가 백제를 놓아버리게 된 계기도, 당나라 사람의 양자가 되는 것도, 당의 장수로 살아가게 되는 것도 그런 당위성을 느낄 수도 없었고 읽는 내내 참으로 힘이 빠졌다. 패망한 나라의 장수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흑치상지는 백제의 위대한 싸울아비로써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나라는 망했고, 겨우 목숨을 부지해 성 안에서 버티기만 하다 결국 당으로 가게 되 버리니까.

 

이 지독한 패배감은 현실에서 바로 내가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닌가 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상식 밖의 투표 방식은 정말로 이런 나라에 내가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한심스럽고 어이없음이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친일의 청산, 대통령 인수위 임명에서 보는 대통령 당선자의 리더쉽은 어떤지, 그들이 내세우는 리더와 그 리더를 보좌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한심스럽기 그지 없다.

 

흑치상지는 너무나 아픈 존재이다. 백제가 사라지고 유일한 부여의 후손 일본은 지금 우리와 어떤 관계인가? 훌륭한 인재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지만 참으로 씁쓸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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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카니발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 다니엘 홀베 지음, 이지혜 옮김 / 예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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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카니발

 


대학생들이 모여사는 쉐어하우스. 친구들과 모여 간단히 시작한 가든파티가 술과 마약의 광란의 카니발로 변질된다 . 그 과정에서 제니퍼 메이슨이라는 여학생이 마약을 복용한 상태로 잔인하게 살해 된채 발견된다.

 

이 사건에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율리아가 투입된다. 그러나 그녀는 전작에서 범인하게 간강 납치 당한 트라우마를 갖고있다. 상부에서는 당연히 그녀가 과연 이 사건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규정에 따른 상담 자료를 요구하고, 그녀는 친구이자 상담치료사인 일리나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맡게된다.

 

그러나 그 사건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은 하나같이 지난 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고 범행을 부인한다. 결국 알리바이가 있는 알렉산더 베르트람 이외 다른 용의자들은 모두 법정 최고형을 살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이후 부터 범인을 알려주고 전개가 된다. 범인은 변태 성욕자이며 사람을 살해하는 과정을 비디오테이프로 남기는 스너프 필름을 만드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2년이 훌쩍 지나가고, 제니퍼 메이슨과 비슷한 케이스의 사건이 하나 둘 일어나면서 예전의 사건이 다시 도마위로 오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재의 범행과 과거의 범행을 연결시키는 것은 주인공이 아닌 동료 형사 자비네이다. 자비네의 예리한 기억력이 레드제플린의 유명한 곡을 떠올리며 연결을 시키는 것이다. 주인공인 율리아는 자신의 상관이 허리 디스크로 자리를 비우자 일선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이 아닌 상사의 역할로 한발 뒤로 물어나 있고, 그녀의 동료들이 사건해결을 주도한다.

 

그렇게 형사들은 하나, 둘씩 사건의 본질에 가까이 가게되고 이미 독자들은 알고 있는 범인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그렇게 책의 5분의 4가 지나가고 나서야 경찰들은 범인을 알게 되는 것이다. 글로 읽어 그 충격은 덜했지만, 이 소설은 소설보다는 영화가 좀 더 어울릴 듯하다. 잔인한 장면들은 글 보다는 시각적인 효과가 더 크니까 말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조금 지루하다는 말이다. 주인공은 한 발 뒤로 빠져있고, 결정적인 역할은 주위 동료들이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고, 먼저 범인을 알려주는 설정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반전은, 글쎄 반전도 그렇게 소설의 긴장감을 살려주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중간에 작가가 바뀐 탓일까. 원작자의 느낌을 못 이어간 탓일까. 아쉬움이 많이 드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기 보단 호러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고, 앞서 적은 대로 영화화 된다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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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다시 읽는 수학 - 인생의 절반에서 지혜의 원리를 만나다
오카베 쓰네하루 지음, 김정환 옮김 / 예인(플루토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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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다시 읽는 수학

 

 

 

어렸을 때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바로 수학이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 수학만큼 재미난 학문도 없다는 것이다. 우연히 몇 학생들의 교과서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예전과는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산수가 아닌 수학이라는 명칭을 쓰고 그 안의 문제들의 수준도 내가 학교를 다닐 때와는 말도 못하게 달라져 있었다. 또한 교과서의 구성이나 표현방식들은 학생들이 참 알기 쉽고 예쁘고 세련되게 적혀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배웠던 수학 책은 너무나 딱딱하고 재미가 없게 느껴졌었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중학교 이후였던 것 같다. 수학에 흥미를 잃은 것은. 그때까지는 곧 잘 했었던 것 같은데 중3정도가 되면서 어려운 내용이 나오기 시작하자 머리가 아팠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수학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사교육과 학교수업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지방 중소도시였던 우리동네에도 이미 그때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었으므로 수업은 학원에서, 3때 이미 고등학교 내용을 배웠던 나는 학교 수업은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수업시간에 노는 일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생겼던 자만심은 오히려 나를 망쳐버린 듯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수학에 흥미가 없어졌지 않나 생각한다. 수학은 철저히 논리와 증명의 학문이다. 그런데 시험문제를 잘 맞추는 공부를 하고, 외우는 공부를 했으니 잘 될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가끔 머리를 쓰는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수학이 생각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찌하여 그런 공식이 나왔는지 선생님이 증명 해주실 때가 제일 흥미로운 시점이 아니었나 한다. 그 즐거움을 왜 어렸을 땐 알지 못했는지 나의 어리석음과 입시 교육의 잘 못된 형태의 모든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때 만난 마흔에 다시 읽는 수학은 그래서 참 반가웠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 거란 생각도 재미있고. 그런데 참 슬픈 것은 내겐 이 책도 어렵다는 아이러니랄까. 어쨌든 이 책의 의도는 수학의 본질에 있는 듯 하다. 입시를 위해 포기해 버린 수학의 순수한 학문적 유희라고 할까? 공부가 아닌 철학으로써의 수학이랄까? 문제의 본질을 찾고, 다르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시각을 제시해 주는 아주 멋진 목적을 가진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아주 기본적인 산수라고 할 수 있는 저학년의 수준 정도로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 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시작은 적도를 따라 설치한 전선의 길이를 구하는 것에서 나열된 숫자의 합을 도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막상 생각하면 어려울 것 같은 일을 저자는 참 쉬운 방법으로 접근하여 해결한다. 특히 나열된 숫자의 합을 도출하는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문제> 다음 연속하는 15개의 수를 더하시오.

7+8+9+10+11+12+13+14+15+16+17+18+19+20+21 

 

어떻게 풀겠는가? 암산이 가능하지 않다면, 연습장을 가져와서 죽 나열한 후 풀거나, 귀찮으면 전자계산기를 사용하겠지. 그러나 저자는 숫자를 시각적인 막대 그래프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다. 결국 이 숫자들은 길이가 다른 막대들의 합이다. 중앙값을 찾아내 15 를 곱하면 끝이 난다.

 

 

 

 

이 책은 결국 마치 작은 씨앗이 점점 커지고 자라나는 것처럼, 이 생각의 전환을 씨앗으로 삼아사고의 폭을 점점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단순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뒤에 원뿔, 사다리꼴, 부채꼴의 면적을 구하거나 삼각기둥, 뿔의 부피를 구하고,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의 회전 수를 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구의 공전궤도 혹은 자전주기를 구하는 것에 까지 다다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앞 쪽 몇 페이지 밖에 풀지 못했고, 뒷 부분은 이해도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풀지도 못했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으로 볼 때 그것은 별 문제는 아닌 듯하다. 문제 푸는 것에 목적과 의미를 둔다면 이 책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린다. 그런 책은 널리고 널렸다. 이 책은 사고의 전환’, ‘문제 해결 방향 찾기’, ‘다르게 보기’, ‘다르게 생각하기에 있으니까 말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순수한 지적 유희에 빠져들 수 있어 좋았고, 어려운 수학을 원칙과 원리를 찾을 수 있는 생활에 아주 밀접한 학문으로 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좋았다. 나 같은 성인에게도 좋은 책이지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더 필요하지 않은 가 한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이나 문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즐거운 학문을 중도에 포기해 버리는 나 같은 우를 범하게 하지 않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은 머리가 아픈 일이 있을 때 종종 꺼내 진짜 머리 쓰는 일을 하게 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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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을 위해 당신이 희생한 15가지
최용섭 지음 / 문예춘추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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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을 위해 당신이 희생한 15가지

 

 

 

며칠 전 페이스 북에 박원순 서울 시장의 글이 올라왔다. <흔히 정규직으로 하면 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지만 진실은 달랐습니다. 이렇게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면 인건비가 16% 늘지만, 민간 용역업체에 주는 이윤과 관리비 등의 경비가 39%가량 줄면서 오히려 연간 53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도 예산을 훨씬 남긴 것입니다. 그 동안 생각이 없어서 못한 것이지 예산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는 청소노동자 등 비 정규직 노동자들을 6,231명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올라온 글이라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이 글의 댓글에는 응원의 글도 많았지만 부정적인 글도 꽤 있었다. 부정적인 글의 요지는 철밥통 공무원수를 왜 늘리냐, 있는 공무원 수도 줄여라, 혹은 이런데 쓸 예산은 어디서 마련하는가, 동유럽 나라 망할까봐 복지 줄이는 거 모르냐, 기업에게 혜택을 주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좋지 않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사회의 경제가 위험하고, 복지를 늘리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 정규직 고용은 당연한 것이며, 정규직은 쓸데없는 비용증가로 인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한 비 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정규직의 임금이 줄어든다는 생각도 있다. 같은 노동자들도 결국 내 것을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한때 그런 의문을 가졌었다. 지금 경제가 어려우니 그런 것은 당연하지 않은지, 기업에 혜택을 더 주어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있지 않은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 책 재벌을 위해 당신이 희생한 15가지에서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허망하며, 그 동안 정부와 재벌들이 결탁해 만들어 놓은 허상이고 세뇌인지 일일이 까발려 준다. 이 사안은 chapter10낙수효과는 없다’ –p141- 편에서 다루고 있다. 특히 MB정부에서 낙수 효과를 기대해 기업들의 직접세인 법인세 부담율을 낮춰 주었지만, 그 돈으로 투자를 더욱 확대하여 서민들에게 보다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재벌들은 그 돈을 금고에 쌓아두고 고용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소기업은 어떨까? 사회에 극심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 실업은 어찌 봐야 할까? 이 문제는 chapter02 ‘중소기업의 낮은 임금, 왜 구조적 문제인가편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사회는 청년들에게 눈을 낮추면 할 일이 많다고 하지만 같은 노동을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와, 중소기업 고용의 불안정성은 20년 이상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 노력한 청년들에게 과연 좋은 일자리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런 일자리를 기피하는 것은 오히려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주종관계, 업계 관례로 자리잡은 상식을 뛰어넘는 불공정 거래에서 중소기업은 언제나 이 될 수 밖에 없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은 그 기술조차도 빼앗아 가버리는 일례들을 많이 볼 때 고용의 안정성은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을 제쳐두고 청년들에게만 눈을 낮추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이 책은 그 동안 알고 있었던 대기업 집단의 탐욕과 독재정권과의 유착으로 형성된 재벌의 기원부터 외국인 근로자, 사교육, 치솟는 물가, 낮은 출산률 등의 상관관계를 15chapter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벌은 독재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온갖 특혜와 밀착을 통해 고도의 성장을 이룩했다. 그들이 제일 쉽게 돈을 번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부동산 투기이다. 1970년대 후반 정부의 수출주도 경제 발전 계획으로 인해 정부의 종합상사 지원으로 요건이 되는 재벌들이 정부로부터 막대한 자금-국민의 세금-을 지원받고, 중동건설 호황으로 재벌 건설사 들이 떼돈을 벌게 되었는데, 재벌들은 돈의 대부분을 R&D 등에 투자하는 것이 아닌 부동산 투기에 사용을 하게 되어 막대한 이윤을 얻게 된다. -P 17-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공이래 노동자들의 임금이 과거보다 상당히 올라 재벌들은 인상된 노동비용으로는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만 끊임없이 쏟아내고, 언론들은 이런 상황을 확대 재생산하여 마치 노동비용이 발전의 걸림돌인냥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과 재벌은 국민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들이 견인차 역할을 하여 이 땅의 경제를 이끌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탐욕은 이제 그 한계를 벗어났다. 그들의 문어발식 경영, 이제 골목상권까지 점령하려는 그들의 사업방식을 어떤 사람들은 해외의 기업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낙수효과를 운운하며 높은 임금이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몇십년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대학 졸업부터 학자금대출로 인한 부채에 시달리고, 취업은 늦어지거나 어렵고, 그렇게 출산률은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대기업들이 흔들어 놓은 부동산 경기는 평생 집 한 채를 갖기 위해 국민들을 대출과 이자, 고리사체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거래는 일자리 안정에 치명적인 적이며, 중소기업이 클 여유조차 박탈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세금정책은 부유층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세계최고의 자살률을 가진 나라로 만들고 있다.

 

 

아직도 재벌들의 낙수효과만 기대하고 있는가? 내가 가진, 반 이상이 대출인 아파트 값을 올려줄 정부를 기대하고 있는가? 이런 불공정한 구조를 그대로 두고 사교육만 규제하면 공교육이 살아날 거라 보는가?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데 어느 누가 사교육을 포기 하겠는가? 젊은 부부에게 아이를 낳아라고만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 되는가? 복지 얘기만 하면 곧 나라가 망할 거라고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분위기를 호도하는 재벌들이 있는데 복지를 얘기하지 않고 출산률을 높일 수 있는가? 가난한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해도 한 달에 받는 돈은 생활비도 안나오는 현실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파업을 해서도 안되는가? 파업현장에 민간군사기관을 표방하는 용역들을 공용해 폭력을 일삼는 것을 그대로 용인해도 되는가?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빨갱이나 좌빨 등의 불온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는 것은?

 

 

이번 대선의 중요쟁점들 중 하나가 재벌해체와 복지였다. 재벌이 해체되면 곧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된다고 노동비용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다. 안정된 일자리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교육, 레져, 내수 등의 좋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는 앞서 본 박원순 서울시장의 일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몰라서가 아니라 집행의 의지와 관련된 부분이다. 더 이상 재벌들과 언론, 정부가 합동하여 선동하는 불안감에 흔들리지 말자. 더 이상 불 건전한 재벌의 악행을 두고 볼 수 없다. 그들에게 올바른 세금을 거두고 재벌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관행을 막아야 한다.

 

 

이 책은 이제껏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재벌의 실체를 알려주었다. 재벌과 관련된 정치, 경제, 일자리, 복지에 이르기 까지 많은 것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왜 재벌해체와 경제 민주화가 국민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도 말이다. 이 책과 함께 날아라 노동’ –부키/ 은수미지음- 이라는 책도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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