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 미래 인류를 위한 담론, 도덕경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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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리는 말하여 질 수 없다

 

 

대학교 때 좀 있어 보이려고 노자의 도덕경을 사서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그 얇았던 책은 지금도 책꽂이에 그대로 꽂혀있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한자한자 손으로 베껴썼던 노트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애매 모한 그 구절들이 막연히 좋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10여 년도 넘게 흐른 지금. 그 후에 노자나 장자에 대한 책을 몇 권 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제일 충격적이었던 책은 갑골문 연구에 조예가 깊으신 김경일 님의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였다.

 

 

그분의 주장에 따르면 노자는 한 명의 학자가 아닌 듯 하고, 도덕경의 첫 구절인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고의 구절의 뜻은 내가 사는 여기와 네가 사는 거기의 말의 뜻이 다르다는 정도로 해석이 될 듯하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근본부터 흔들리는 소리였다. 물론 이 분의 주장을 들어 이 책을 깎아 내리려는 생각은 없다. 모든 학문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자신이 가진 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하고픈 말은 여러 가지 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비교해서 읽으면 더 재미있다는 것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경남 작가의 이 책도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깊은 학문적 소양과 현실감을 잃지 않는 해석은 때로는 너무나 어려운 말들로 일부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적어놓았는지 의문이 들기까지 하는 책들과는 질적으로 달라 보였다. 그것은 단지 고전을 해석하는 것에 그치거나 그런 자신의 모습에 빠진 학자의 꽉 막힌 모습과도 다른 것이다.

 

 

고전이 좋은 점은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도덕경과노자가 21세기의 것으로 새로이 태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순자나 공자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철학자들과 비교를 해놓은 것도 좋았던 점이 아닌가 한다. 노자가 다른 학자들과 달랐던 점은 학문으로써가 아니라 를 이야기 했기에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변화무쌍함을 가지며 실생활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시대의 시대상과 현시대의 상황을 적당히 비교하거나 다른 학자들과 비교를 한 것 또한 그래서 유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특히 현실의 종교와 돈, 정치에 대해 비판을 해 놓은 부분들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세속적이며 돈을 좇는다. 노자는 시대가 변해도 불변하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들을 남긴 대단한 철학자가 아닌가 한다. 또한 그런 부분을 찾아내어 쉬운 말로 풀이해 놓은 작가 또한 참으로 진정한 학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노자와 도덕경을 해석해 놓은 죽은 책이 아니다. 현실에도 푸릇하게 살아있는 어떤 선지자의 이야기이다. 노자는 우리 사회가 각박해 지면 질수록, 우리가 기본적이라고 여기는 것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길지도 어렵지도 않는 몇 구절에서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또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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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캣 사계절 1318 문고 80
존 블레이크 지음, 김선영 옮김 / 사계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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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리 캣

 

 

이 소설은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국가 권력 또 그 권력과 손을 잡은 거대 기업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투쟁기 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고양이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권력이 자본, 언론, 과학과 손을 잡고 어떻게 국민들을 통제할 수 있으며, 그 어마어마한 권력과 세력이 어떻게 시민들을 억압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는 시민들이 어떻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지, 그러나 그에 대항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일깨워 준다.

 

 

수 많은 각자 다른 형편, 욕구,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뭉쳐 만들어 놓은 국가와법이라는 틀. 그러나 그 믿을 수 있다는 제도가 오히려 우리를 통제하고 이용하며, 그를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과 손 잡는다면?

 

 

우리는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열린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 소통을 막는 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나라와 믿을 수 있는 기관에서 어느 날 고양이 독감 바이러스가 퍼져 눈에 보이는 모든 고양이들을 죽여야 하고, 그래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면 지정된 거대 기업에서 제공하는 고양이만 키울 수 있다는 법을 발표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할 까?

 

 

아마도 일대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질병과 그 질병 관리 시스템의 정보에 접근 할 수 없으므로 일단 그 발표를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언론에서는 주위의 고양이를 죽이고, 보이는 데로 관계 당국에 신고하라고 재촉할 것이며, 고양이 독감에 감염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모든 인터넷과 신문 등 언론 매체에서 연일 대서특필 될 것이다.  또 한쪽에서는 믿을 수 없다며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를 사수 하려고 할 것이고 또한 그에 합당한 실험이나 이유들을 노출 시키려 할 것이다. 그럼 당연히 그들은 어떤 모함이든 법을 어긴 죄이든 쫓기거나 블랙리스트가 될 것이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을 신고하고, 결국 서로 믿을 수 없는 경계대상이 되고 그 사이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다. 있는 사람들은 비싼 돈을 들여 고양이를 살 것이고, 특권층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되겠지. 그러나 그로 인해 빈부의 간극은 더 또렷이 도드라질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승리는 권력과 돈의 편이 아니던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신종 독감이 유행하였을 때도 기침만 하는 사람들만 보면 자기 동네에서까지 몰아내려고 까지 한 광기어린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곧 죽을 것처럼 겁을 주기도 했다. 이 소설에는 영국 전역에 고양이 독감 바이러스가 HN51이 퍼져 고양이들을 모조리 사살되고 오직 바이아파라라는 거대 다국적 기업만이 고양이를 거액에 분양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가진다. 주인공 제이드는 정원에서 길 잃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필라라 이름 붙이며 키우게 된다. 엄마에게 간신히 허락 받았지만 크리스라는 아이에게 들키고 마는데 그 셋은 비밀을 지키며 지내는 불안한 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나 어쩌다 필라에게 할퀴게 되된 제이드는 병원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를 본 의사는 당국에 신고를 하게 되고, 결국 기동대가 고양이를 찾기 위해 집을 급습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엄마는 심정지로 돌아가시게 되고 제이드와 크리스는 필라를 지키기 위해 멀리 아일랜드로 떠나게 되면서 그들의 여정은 시작된다.

 

 

여기서 아일랜드는 언론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이 점령한 곳이며 날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곳으로 소개하지만 실제로는 고양이 권리 옹호단체가 활동하는,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일으켜 투표를 통해 다국적 기업을 쫓아낼 수 있는 합법적인 정부를 세운 곳이다. 반대로 다국적 기업이 이 정부를 없애기 위해 테러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크리스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제이드는 아직 반신반의 하는 상태로 오로지 필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위험 천만한 여행길에 오른다. 그러나 아이들이 고양이를 데리고 자유를 찾아 떠나기는 참으로 위험천만하다. 돈을 위해 아이들을 신고하는 어른, 이 둘을 쫓는 당국, 이 여정이 길어질수록 이들은 자유고양이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다. 자유고양이 연대는 억압과 통제에 대한 혁명의 상징적인 단체인 것이다.

 

 

결국 어린 제이드는 잡히게 된다. 크리스 또한 사라진다. 잡힌 제이드를 감옥에 보내는 것 대신에 회유를 하는 바이아파라 회장. 과연 그들과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필라는 어떻게 될까?

 

 

앞서 말한 대로 이 소설은 고양이에 대한 소설이지만 고양이 만에 대한 소설은 아니다. 이 고양이가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늘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라도 여기 나오는 시민들처럼 서로를 믿지 못하고 오로지 권력과 당국에 눈과 귀를 멀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야 하는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남녀 어린이와, 아무것도 상관없이 오로지 생명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고양이 필라, 이 셋이 자유와 진실을 찾아 여행하고 투쟁하며 정의로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 작품소개보다 더 많이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아주 훌륭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장기 청소년과 어른들이 함께 읽고 얘기해보면 정말 좋을 것 같은 소설이다.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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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 변산농부 윤구병과의 대화 이슈북 4
윤구병.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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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 페이스 북을 확인하다보면 일상 다반사들 사이에 정치 이야기가 끼어든다. 국정원이 국가 기밀 문서를 '스스로' 공개하고,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셨다는데 옷이 어쩌고 저쩌고, 어떻게 봐도 분명 불법선거가 맞는데 언론에서 터트린 연예인 병사이야기에 뭍히고 있고,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고 있는데 어느 언론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없다. NLL을 포기 한적이 없는데 의도적으로 짜깁기한 말들로, 대통령은 감성적인 말 한 마디로 그 모든 잘못들을 덮어 버릴 수도 있다니.


그래서 궁금해 진다. 이런 어이없는 현실을 윤구병선생은 어떻게 보실지. 이 인터뷰를 할 때가 아닌 지금의 이 현실을 어떻게 보시는지 과연 해법이 있는 것인지. 그 시점에서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른것 같지도 않은데 세상은 어찌 이렇게 쉽고 빠르게 어둠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지.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겠는데 그 해법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책은 손에 들어올 정도로 매우 작고, 얇고 아래위로 살짝 길다. 책꽂이에 꽂으면 위로 삐북 올라온다. 아마도 균형이 안 맞아서 손이 자주 갈 수도 있겠다. 윤구병 선생은 과감히 국립대학 철학 교수직에 사표를 던지고 전북 부안에서 변산공동체를 구현한 농부 철학자라고 한다. 이 책은 그런 그를 인터뷰어 손석춘이 인터뷰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총 8파트의 주제로 나눠 지지만 그 안에는 우리 말에 대한 이야기 부터, 철학, 노동, 정치, 대통령, 민주주의, 농업등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 들이 담겨있다. 이야기의 포문은 우리 말에 대한 것으로 열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쓰는 외래어들이 우리의 상상력을 가로막는다는 말에 참으로 공감이 되었다. 내가 늘 가까이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철학 또한 존재, 무, 담론 등 어려운 말로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오늘 페이스 북을 통해 프랑스의 철학주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뒤틀리고 어두운 현실을 타개할 방법으로 '철학'을 들고 있는 것에 비해, 학교에서 철학, 역사, 예술을 밀어내는 우리내 현실이 겹쳐지면서 우울함이 찾아왔다.


또한 우리 젊은이들은 현재 '알바연대'를 중심으로 생활임금,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자는 운동을 펴고 있는데 선생이 주창하는 6시간 노동은 참으로 생각해 볼 만한다. 어떤 사람들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면 누가 채용을 하려고 하겠나, 젋은이들이 쉽게 돈을 벌면 제대로 된 취업을 하려고 하겠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알바비와 노동시간이 무슨관계가 있는가 하겠지만 이는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돈이 오르거나, 노동시간이 줄어들거나 결국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과 노동을 사용하는 사람간의 알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강도가 세어지거나, 상대적으로 개인의 능력이나 스펙을 더 따지게 될 것이므로 노동자들의 경쟁만 제촉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들도 모두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여가를 즐기는 방법 모르고 그 시간은 생산적인 시간이 아니라 낭비하는 것이라는 일방적인 사고만 강요받아온 것이 아닐까.


우리는 나라를 뺏기고, 전쟁이나고 독재를 겪으면서 오로지 먹고살아야 하고, 남을 짓 밟고 올라가야 하고, 일개미 처럼 일만 해야 하는 것으로 교육받고 사고하길 강요받아 왔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거라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 인건지 고민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댓가는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게, 그런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사회에 걸림돌이 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두려움을 느끼게 하면서.
 

이 책, 윤구명선생과의 대화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그런 '틀'을 깨 준다는 것이다. 읽는 이에 따라서 선생과 다른 생각을 갖거나, 불편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든다. 그러나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 한가지 틀, 프레임등을 깰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을 주었다는 것에서 이 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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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화
허수정 지음 / 고즈넉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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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화

 

 

이 책의 소개 글 대로 막연히 사랑을 떠올린다면 분명 남녀간의 사랑 그 하나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사랑을 생각한다면 그저 사랑, 사랑이라는 순수한 의미의 사랑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부모자식, 그 옛날 주인과 아랫사람, 부처와 중생, 나라와 백성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사랑 말이다.

 

이 소설은 대장경의 마구리 글자, 즉 대장경 끄트머리에 적힌 글자들이 무엇인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역사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것을 소재로, 문제의 글자들을 이름으로 본 작가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서사, 역사 팩션이다. 예전 대장경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왜 팔만 대장경이 만들어 지게 되었는지, 그 대장경의 대 역사를 만들어간 민초들의 대장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한동안 가슴이 벅차 올랐던 기억이 겹친다.

 

대장경 판은 그냥 나무를 깎아서 만드는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전국의 목수, 서예가, 불교인들이 모여 일으킨 대 역사였다. 일단 목수들이 지리산에서 적당한 나무를 베고, 바닷길로 띄워 운반, 바닷물에 담그기만 3, 자르고 찌고, 다시 말리고, 대패질을 하고, 옻칠을 하고 뒤틀림을 막기 위해 각목을 대고 구리로 네 모서리를 감싸면 겨우 판이 완성이 된다.

 

거기에 전국에서 모인 서예가들은 각기 다른 글자체를 똑같이 맞추기 위해 몇 년을 글자체 쓰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마치 기계로 찍어낸 듯 아름답고도 똑 같은 글자체로 경구들을 적어주면, 조각가들은 그 종이를 판에 대고 글씨를 새기게 되는데, 그 조각 기술 또한 몇 년씩 연습을 한다. 그리고 경판에 글자 조각이 끝나면 거기에 먹물을 묻혀 종이에 찍어내고, 그 종이들을 엮어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거기에 그 사람들을 뒷바라지 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밥과 빨래를 해주고 오로지 그 일에만 매달릴 수 있게 모든 과정을 돕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만든 그 대장경 판에 이름 모를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 글자들은 이름일까, 조각을 한 사람의 이름인지, 그 이가 사모한 사람의 이름인지, 이름이 아이라면 그 무엇인지. 작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알았기에 그 미스터리에 서사를 입힐 생각을 했던 것이리라. 그 경판, 대장경이 탄생하게 된 사랑의 위대한 이름을.

 

만약 지금도 케이블에 재방송 되고 있는 무신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면, 혹은 나처럼 대장경에 관련된 소설이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이 소설을 읽었다면 더 재미있으리라 생각한다. 고려는 정치적으로는 유교를 택했지만 철저하게 불교의 나라였다.

 

이 소설에서 초조대장경은 우리가 아는 팔만대장경이 아니다. 고려 시대 거란족의 침입으로 전남 나주까지 피난 갔던 현종은 신하들과 함께 초조대장경을 만들었는데 이 때문인지 거란은 화친을 하고 물러나게 된다. 이 후 이 대장경은 부처가 고려를 지켜준다는 증표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후 몽골의 침입으로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초조대장경이 불 타버리는 것이다.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이때 최우가 다스리는 무신들의 나라가 된 고려에서 황제는 백성들의 민심을 얻고, 땅에 떨어진 황제의 권위를 찾기 위해 전소해 버린 초조대장경을 육로로 운송하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왕의 법사인 우송이 총 책임을 맡고, 대장경이 불탈 때 목숨을 걸고 일부나마 빼낸 감무의 여식 부용과 학승 진오가 동참한다. 그리고 뒤늦게 출현한 왕의 그림자무사 양무가 호위를 맡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미 불타 없어진 초조대장경을 육로로 운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부용은 관세음 보살의 현신인양 여겨지고 백성들은 이 운반 행렬을 마치 부처의 행렬인양 기꺼이 반긴다. 황제의 의도가 먹히는 것일까?

 

그러나 경주 황룡사에서 출발한 이십여 명의 운반대는 금산에 이르러 몽골군의 침략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첩보에 따라 가까운 성으로 피신하게 되는데, 다음날 수만 명의 몽골군이 성을 에워싸고 대장경 반환을 종용하는 어이없는 현실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네 사람의 정체. 거대한 음모 속에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성을 벗어날 수 없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자기만의 비밀들로 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몽골군의 대공세가 임박하자 성의 민심은 점점 광기에 사로잡힌다. 이제 기적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만들어 진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그들의 사랑의 기적이 바로 먼 훗날 팔만대장경이 되었고, 그 이름이 경판 한쪽에 비밀스럽게 적혀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불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부처의 말씀과 깨달음의 말씀,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고, 그 어려운 경전은 몰라도 오로지 살아내고 사랑할 줄만 알았던 가여운 민초들의 이야기다. 그 대장경을 만든 건 정치꾼도, 높고 높은 황제도, 그 잘난 사람들도 아니었다. 오로지 이 땅을 사랑하고 내 사람들을 아끼고, 내 나라 산천을 아끼는 우리 불쌍한 민초들이었던 것이다.

 

그 위대한 사랑의 주인공들이 바로 초조대장경, 팔만대장경을 만든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채 경전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것이다. 불교적인, 종교적으로만 이 소설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이 이 세상의 전부였던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나라를 지키고, 이 유구한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이 바로 자기자신들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부처님의 힘인 줄 로만 알았던 우리 어여쁜 민초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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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았습니다 - 김근태 이야기 역사인물도서관 1
최용탁 지음, 박건웅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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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았습니다 김근태 이야기-

 

 

남영동 1985. 영화를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김근태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진. 그 분이 고문 후유증의 합병증으로 생을 다하신 것도 그 분이 돌아가신 후에야 알았고, 그분이 이렇게 대단한 분이셨다는 것 또한 너무나 죄송하게도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가 개봉한 후에도 그 영화를 보러 가지 못했다.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 질 것 같아서 였다. 상영 내내 끔찍한 고문의 실상이 전해지고, 그 끔찍한 일을 그분이 다 겪은 일이라는 것도 실재로 보게 되면 너무나 괴로울 것 같아서 였다. 말로만 들어오던 군부독재. 다시 그 망령이 되살아난 2013. 온갖 언론과 정치, 경제권에서 충성 경쟁으로 우스운 일들이 벌어지는 현재 만일 그 분이 보고 계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그 분이 그리고 그의 동지들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감히 이런 세월이 오지 않았을까.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해 청소년의 눈 높이에서 김근태 선생님의 삶을 적어놓은 책이다. 지금 학교의 현실을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데, 그 와중에도 친일의 사관으로 근대 역사를 조작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왜곡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이 책은 독재의 실상과 선생님 같은 분들이 목숨으로 지키고 실현시키려 하셨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알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근태, 어려운 가저형편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던 모습, 역사에 눈 뜨고 열사가 되어가는 과정, 박정희의 구데타로 시작된 군부 독재, 그 아래에서 그가 느꼈던 고뇌와 정치적 행적들이 담겨있고, 그와 함께 그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도피생활 속에서도 피어오른 사랑, 고문의 기억과 그 이후의 삶까지 과하지 않은 필체로 담담하게 담겨있어 청소년의 교육교재로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성인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삽화, 선생님의 흑백 사진들, 마지막에는 주요사와 함께 보는 김근태 연보가 실려있어 현대사 정리에 도움이 많이 될 듯하다.

 

 

입시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교재이자, 어떻게 이 나라가 지탱해 올 수 있었는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까지 가슴에 새겨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책이 아닐까 하고 많은 분들께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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