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구 할매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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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구 할매

 

 

소설을 읽는 동안 참으로 즐거웠는데 다 읽고 나니 섭섭하다. 책을 읽을 때 읽은 부분이 늘어가면서 앞으로 읽을 부분이 줄어드는 것이 참 싫은 책이 있다. 그런 책을 만나기는 참 힘든데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운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몰래 곶감 같은 걸 숨겨놓고 동생들 몰래 쏙쏙 빼 먹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그런 그림들이 떠올랐다. 옆집 살던 오촌 당숙의 안방에 늘 있는 듯 없는 듯 앉아계시던. 특히 설이나 추석 때 구석에 조용히 앉아 밤도 까고 전도 자르고 하던 할매. 머리에 쪽을 지고 늘 그 자리에 배경처럼 계시던 할매. 당숙의 어머니셨으니 우리 아부지한테 큰 어머니 되실 그 할매는 때론 밖으로 나와 소일거리를 찾아 조용히 움직이시다 또 어느 날은 잡아온 토끼 가죽을 벗기는 무시무시한 일도 하셨던 아리송한 존재였다.

 

시골에 살아보지 않으면 그 늙은 나무처럼 바싹 마른 상 할매의 느낌을 알지 못할 것이다. 머리맡에서 옛날이약을 해주고, 아픈 손자 머리도 짚어주고, 겨울이면 뜨끈한 아랫목에서 화로 숯불에 밤이며 고구마를 구워주시던 그 할매들의 냄새, 그 느리게 가던 시간, 그 따뜻한 갈색 빛 추억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바로 그 할매가 떠올랐다. 대청마루 위에 하얀 소복을 입고 서 계시다던가 때로는 며느리가 맘에 안 들어 호통을 치셨던가, 당숙모가 늘 어려워 하셨던가 하던 그 할매, 그 배경, 그 추억 같은 것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극중 화자 '류은현'은 나와 같은 78년생 여자다. 글을 쓰는 작가이고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는 여자. 이 소설 속 매구할매는 이미 100살은 훌쩍 넘게 살아오셔 아무도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분이다. 가슴팍에 빳빳하게 새 돈을 넣은 오방색 복주머니를 매고 계시다 뱃속에 잉태한 여인을 만나면 '아나 복돈이다' 하며 주시는 할매, 또 누가 이 세상과 인연이 다해 저 세상 갈 것 같으면 먼저 알고 차비를 하는 할매, 동네 아낙이 애를 낳을 때가 되면 산파가 되는 할매, 주위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먼저 알려주는 할매. 그 할매는 도깨비를 모시는 사당을 만들고 기도를 하며 사는, 만신이 아니면서도 만신 같은, 생명을 점지해 주는 삼신이 아니면서도 삼신 같은 할매다.

 

소설은 매구 할매가 할매가 아니라 20대 후반 '녹두' 이던 시절 시집갔다가 서방에 아이까지 다 잃고 친정인 '계성재'로 다시 돌아오는 시점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류은현이 작가로써 매구 할매와 계성재의 여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현재와 그 먼 과거 100여년전 조선이 일제에 강제병합 될 때 즈음 계성재의 안주인이던 수항당까지 거슬러 올라가 안순당, 여례당, 미령당, 홍림당을 거쳐오며 한국사의 거친 질곡 속에 400년 이상 내려오는 계성재의 식솔들이 겪었던 일들이 교차하면서 그려진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매구 할매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류은현의 소설집필, 류은현의 연애와 결혼, 류은현의 형제들의 이야기 그리고 류은현의 출생의 비밀이 교차되어 서술되고 있다. 100여년 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성재 며느리들이자 계성재의 주인인 여인들의 이야기는 류은현이 소설 집필을 위해 매구 할매를 비롯해 여기저기 다니며 듣는 이야기들이 마치 액자식 구성처럼 이어진다.

 

역시 송은일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예전에 이 작가의 작품 '반야' 라는 장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술술 읽어가는 재미와 여인들과 만신, 사랑 등의 토속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입에 착착 감기는 사투리가 얼마나 맛깔났는지 모른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설명보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이 그대로 적혀있는 부분이 많은데 눈으로 따라 읽어도 그 운율이나 억양이 얼마나 감칠맛 나는지 모른다. 또한 1권 분량의 짧은 소설이지만 극중 많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모습을 정말 실감나게 표현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0여년의 세월. 요즘 세상에 몇 대 종손, 종부라는 이름은 어떠할까. 400년 넘는 고택은 그 자손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나조차도 제사가 없는 집에 시집와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집의 내 또래의 며느리들에게 계성재는 어떤 의미가 있으려나. 현시점에 나타난 계성재의 안주인 류은현의 엄마 홍림당과 교회다니는 큰 며느리, 자식들 데리고 유학가 있는 작은 며느리의 갈등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렇게 한 세월 홍림당으로 살며 집안의 대소사를 살피며 그 큰살림을 씩씩하게 살아온 은현의 엄마 홍림씨가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에 걸릴 만큼 그렇게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을 그곳이 이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죽어버리면, 그 위로 매구 할매까지 저 세상으로 가버리면 과연 어찌되려나. 그래서 인지 저자는 그들을 엄마 아빠로 하지 않고 홍림씨과 동국씨라고 칭했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살지 못하고 당호로 종손으로써 살아온 그들에 대한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한 평생 계성재의 일원으로 살았지만 그 곳을 누구보다 떠나고 싶어 했을 여인들. 어찌 보면 흔히 생각하듯 남자들만의 세계인 듯한 그곳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인들이 만들어가는 세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시집와 자신의 이름을 당호로 자신과 똑 닮은 며느리들을 만들어 내고, 그 며느리들에게 재산에서부터 정신까지 모든 걸 물려주고, 중요한 시제나 차례를 그녀들의 손으로 준비하며 그녀들의 몸에서 자손들이 번창했다. 모든 문중의 사람들은 그 여인들을 종부로써 우러러보며 경외시한다. 주인공의 집안은 대대로 부자였는데 그 마을의 큰일 들은 모두 그 종부들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나라에 전쟁이나 난리가 났을 때도 잔치가 있을 때도 학교를 짓고, 전기를 들여오는 것까지 그 종부들의 손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태산같이 큰 여인들. 그 이름 없는 여인들이 꾸려왔을 우리들의 역사, 그리고 우리들의 삶이여. 작은 할매, 큰 할매, 상 할매들이 만들어 온 우리네 삶. 할매 하면 떠오르는 그 푸근함. 이 소설에서 나 자신도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여인으로써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할매들같이 넉넉한 품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자손들에게 매구 할매같이 생명의 불씨를 남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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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7대 사건을 보다 - 세상을 뒤바꾼 세계사 7대 코드, 그 비밀의 문을 열다
박찬영.정호일 지음 / 리베르스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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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7대 사건을 보다

 

 

 

역사를 공부하고 살펴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국사와 세계사를 크게 나눌 수 있겠고, 시기별로, 지역별로, 나라별로, 비슷하거나 특정한 사건별로 나누거나 비교해 본다거나 큰 줄기만 보고 갈 수도 있고 각 사건별로 자세히 살펴보는 방법도 있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사 그리고 상고사에 관심이 많아 그에 관련된 책들을 잘 읽는 편이다. 정사도 좋고 야사도 좋고, 혹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상상력이 좀 더 가미된 팩션도 좋아하는 편이다. 역사에는 '만약' 이 없다지만 그래도 만약 이랬다면 하는 가정을 갖고 돌이켜보는 시각도 즐긴다. 문명이 꽃피기 전의 예전 과학시간에 배웠던 생명탄생이나 진화에 관련된 책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럼 이 책 '세계사 7대 사건을 보다'는 어느 쪽에 속한 책일까? 이 책은 세상의 이치 즉 세상이 흘러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 세상을 흘러가게 할 법칙을 선택, 필연, 우연, 흐름, 위치, 인과, 종합 이 7개로 나누고 인류사의 수많은 사건가운데 이 법칙을 대표하는 사건을 하나씩 선정해 자세히 살펴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건 선정은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종교, 문명, 민족, 철학, 의학, 전쟁사로 분류하고 여기에서 7가지의 사건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그냥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눈으로 재해석한 '논술서' 이다.


나는 앞서 밝혔듯이 국사 그 중에도 상고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제4장 '인류사의 흐름에 큰 획을 그은 단군조선' 편을 제일 흥미롭게 읽었고, 제1장 선택의 법칙편인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선택' 편과 제 7장 '종합으로 이루어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편 또한 재미있게 읽었다.


특이한 점은 이 책은 균형을 잡기 위해 정호일, 박찬영 공동저술이다. 한 편에서 세계사 7대 법칙과 사건을 선정해 틀을 잡고 한편에서 틀에 맞게 역사적 사실을 추가 하고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내용을 점검했다고 한다. 역사는 집필자가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어떤 역사적 사건이라도 그 해석에는 아주 큰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도 누구는 혁명이라고 하고 누구는 쿠데타라고 한다. 일제시대는 일제가 나라를 불법적으로 침탈한 것이지만 한 편에서는 그들 때문에 우리가 잘 살게 되고 근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안창호 선생은 테러리스트요, 김구 선생은 나라의 성립에 관여하지 않았으니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은 것도 된다.


그래서 역사의 서술에는 균형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에서도 그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고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 한 것이 긍정적이다. 또한 꼭 꼬집어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뿐만 아니라 현실 생활에서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제 1장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신앙을 인정한 니케아 신조에 대한 이야기인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선택 편과 제3장 우연이 만들어낸 제1차 세계대전 편에서 읽을 수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다신교를 배척하고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중세는 하나의 생각과 하나의 선택만이 진리인 암흑기로 접어들게 된다. 만일 콘스탄티누스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마녀사냥이나 종교 전쟁 같은 끔찍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3장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우연' 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는 이제껏 그 시대는 자본주의의 팽창과 노예제의 붕괴로 ';전쟁이 일어 날 수밖에 없었다' 는 자본주의적 관점이나 지배자의 관점이 반영된 의견을 무작정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필연의 법칙으로 만든 것일 수 도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제4장에서는 단군 조선의 건국의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러 유물과 증거들이 나오고 있는 아직도 단군조선과 단군신화는 역사가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학자들이 있다. 역사는 새로운 증거와 유물이 나타나면 지금 정사라고 여겨지는 것도 수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틀 속에 속하지 않으면 배척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저자들은 여기서 한 발자국 나아가 단군조선이 전 인류사에 끼친 영향과 그 의의를 설명한다. 역사다 아니다를 넘어 진정 우리가 고민해야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위서논란이 분분한 역사서가 아니라 랴오허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고인돌, 훙산문화, 하가점층문화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예로 들며, 국가 성립에 필요한 요건들을 살펴보고 인류 최초로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인식한 홍익인간의 이념에 대해서도 그 의의를 말하고 있다.


필연을 만들어낸 나이팅게일 편에서는 현재 읽고 있는 '죽음을 다시 쓴다'라는 책과 만나는 지점이 있어서 아주 반가웠다. 마지막 7장 아리스토 텔레스편에서는 철학의 역사를 선 굵게 살펴보면서 많은 철학적 이론들을 하나로 종합하여 훌륭한 이론을 정립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알아보는데 '소요' 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며 끝을 맺어 상당히 인상적인 결론이라 생각되었다.


책은 첨부한 사진에서 보듯이 많은 화보와 컬러풀한 사진들이 배치 되어있어 이해하기 쉽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관련된 지도도 나와 있어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문체도 딱딱한 어투가 아니라 '선포했어요, 선택했답니다' 등 마치 옆에서 말하는 듯한 문체를 썼기에 읽기에 쉬웠고, 마치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점도 참으로 좋았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읽는 다면 더 없이 좋을 역사서이고 논술 공부에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에 관심이 있건 없건 이 책은 흥미롭기도 하려니와 재미도 있어 교양을 쌓기 원하는 성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각 챕터가 연결되지 않기에 손 가는 대로 따로 읽어도 좋을 것 같고, 사실만 나열해 놓은 책이 아니니 여러 가지 생각도 해 볼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물론 저자들은 이렇다 저렇다 주장하거나 단정 짓지는 않는다. 단지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정도이니 거부감은 없을 듯하다.


오랜만에 즐거운 역사서를 읽어서 참으로 기분이 좋았고, 화보나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어서 참으로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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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 가슴으로 써 내려간 아름다운 통일 이야기
이성원 지음 / 꿈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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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정권이 바뀌고 남과 북의 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어렵게 만든 개성 공단이 폐쇄될 지도 모르는 위기에 서 있다. 북한도 정권이 바뀌면서 체제 존속을 위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우리도 다를 바 없이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이런 시점에 30년차 통일부 공무원이 쓴 남북교류와 통일에 대한 책이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정권과 권력자들은 북한 체제가 넘어지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북쪽도 마찬가진 인 것 같고.

 

이 책은 저자가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서울과 평양 등 수많은 곳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 아시안게임 등에서 통일부 공무원으로 활동하며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서술해 놓은 책이다. 남과 북이 따뜻한 기류를 형성하고 이 대로만 가면 얼마 안가 곧 통일이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지가 언제였던지 조차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 책을 펼치면 그 때의 그 작은 설레임과 코끝이 찡한 이야기들을 다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알고 보니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이산가족들만 남과 북을 오간 것이 아니었다. 문인들도 교류했고, 기술자와 종교인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교류를 했었다. 물론 거의 지원 사업의 일종이었지만 말이다. 조계종 금강산 신계사를 복원할 때는 우리 쪽에서 기와와 복원에 필요한 물자들을 지원했고 '조선그리스도연맹'의 단체의 관리하의 교회 재건축 현장에도, 용천 기차역 폭발 사건 재해 복구 현장에서도 우리는 지원을 통한 교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너무 아팠던 장면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의 모습이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가족, 부모와 형제, 부부사이를 갈라놓은 전쟁과 이념의 벽. 이제는 달라도 너무 달라져버린 우리들의 모습. 교류가 계속되던 당시에는 남남북녀의 결혼이 성사될 뻔한 에피소드 까지 놀랍기 그지없는 일들이 생생하게 적혀있다.

 

이 책은 남과 북이 교류를 가졌던 다양한 역사의 장면들,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 문화, 스포츠 교류, 종교, 생활상, 역사유적 등 생활과 문화 역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이 에피소드와 함께 적혀있다. 왼쪽 오른쪽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저자가 공무원으로써, 남과 북의 가교로써의 한 일들을 담담하고 유쾌하게 서술한다. 어느 쪽을 특별히 옹호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자신이 겪었던 일들, 거기서 느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는 사람 대 사람으로 이미 많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며 어떻게 하면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지 도움을 주고 있다.

 

정치적 색채를 띄거나, 무언가를 가르치려하거나, 어떤 면을 비판하거나, 혹은 너무 감정적으로만 접근 했다면 이 책은 아주 거부감이 느껴지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는 전혀 달리 담담하고, 유쾌하고 굉장히 희망적이다. 여기서 희망적이라는 것은 '곧 통일이 될 거야' 하는 막연한 기대나 민족적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사람이며, 우리와 그들은 단지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인정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저자가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잘 잘못을 떠나 그냥 그들과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대화는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독재가 나쁘고 그들이 세뇌 당했고, 그들은 가난하며, 그들이 그런 세상에서 살아왔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 하여야만 대화는 계속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비단 남북한의 관계개선과 통일에 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누구, 어느 단체, 어느 무리든지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일단 상대방에 대해 '인정' 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남과 북으로만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다. 남과 북, 세대와 세대, 사회계층, 지역, 직업 등 많은 분야에서 수도 없이 갈라져 반목을 하고 있다. 저자는 그 반목과 적대의 지대에 조금은 숨통을 틔워주었던 일을 한 사람이다.

 

글에서 저자의 여유와 넉넉한 인품, 성격, 올바른 생각 등을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었다. 깊은 종교적 믿음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말이다. 책을 읽고 보니 이 시점에 정말 필요한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때 아닌 종북 논란에 조금은 위험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고 슬쩍 스치고 지나갔지만 잠시지만 우리가 전쟁을 잊었고, 미래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 까하는 희망을 가졌을 때를 떠올리며 행복할 수가 있었다.

 

전쟁위협을 없애고 평화를 원하는 것조차 배척받아야 하는 시대. 그런 우리가 불과 몇 년전에는 통일과 화합을 얘기 했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던 한 공무원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평화를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자신의 경험을 묻어버리지 않고 이렇게 책으로 엮은 저자와 출판사 분들께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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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 남과 북, 그 어느 곳의 영토도 아닌 땅 김주원의 사이버 보안 시리즈 2
김주원 지음 / 글과생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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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남과 북, 그 어느 곳의 영토도 아닌 땅)

 

 

 

김주원 작가의 두 번째 사이버 보안 시리즈. 그 첫 작품 <스테가노그래피>도 무척 재미있게 읽은 터라 이번 작품도 기대가 되었다. 결론을 말하면 역시 한번 펼치면 술술 읽히는 힘을 가진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전 작은 김구선생과 사이버테러를 엮어 만든 이야기였는데, 이번에는 DMZ와 사이버테러를 엮었다. 전작도 DMZ도 언 듯 들으면 이들과 사이버 테러를 어떻게 연결을 시킬까 연상이 되지 않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그 둘을 연결시킨 상상력에 놀라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DMZ안에는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실질적으로 유엔군의 영향력 하에 있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그들을 세금도 내지 않고 군대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휴전 직후부터 60년간 이 마을은 북으로는 휴전선 남으로는 민통선을 경계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 마을에 살던 사람은 살 수 있었지만, 외부사람이 들어 올 수도 없고, 나가서 살면 다시 들어오지 못하며, 마을 사람들 끼리 결혼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여자가 외부사람과 결혼하면 나가서 살아야 하며, 남자는 데릴사위로만 들어올 수가 있다고 한다.

 

휴전직후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남을지 떠날지를 결정해야 했는데 이 마을이 고향인 주인공들 정희연, 최재성, 김순희는 이런 이유로 각기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마을 이장의 둘째 아들인 정희연은 전쟁에 참가했던 에티오피아 장교 므아세 제나위를 따라 에티오피아로 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전쟁으로 부모를 다 잃어버린 최재성은 미국 군인인 양아버지 퍼시빌 준장을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된다. 김순희만이 마을에 남게 되는데, 그녀는 마을 앞 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걸어두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며 다시 만나기를 약속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 소설은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사람들과 그의 자녀들의 이야기이다. 정희연과 김순희의 기막힌 인연, 그의 아들 정재민, 그리고 정재민을 몰래 도와주는 최재성. 아버지 정희연이 죽고 베트남에 가 힘들게 살던 정재민의 사연을 알고 최재성은 그를 후원하는데 그 덕에 정재민은 컴퓨터 관련 대학의 교수까지 된다.

 

시기는 현재로 돌아와 북한의 핵 위협이 거세지는 가운데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방한할 일정이 잡히자 미국과 한국의 보안 안보팀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대비를 한다. 여기서 이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유린과 차지혁 콤비가 등장한다. 사이버 안보 일을 맡고 있는 이 두 사람의 활약으로 오바마가 탄 전용기를 격침시키려고 한 '라이거' 라는 뛰어난 해커를 잡음과 동시에 테러를 막을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의 재미는 마치 헐리웃 영화를 보는 듯 한 스케일과 전개, 천재해커의 활약상을 들 수 있겠다. 마치 '007' 시리즈나 우리나라의 '도둑들' 같은 한편의 첩보영화를 보는 듯 한 재미가 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대치하고 있는 현실,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는 없는 미국, 중국 등과의 관계 등이 현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아쉬웠던 점은 라이거로 활동하는 정재민이 북한의 사주로 테러를 일으키려고 한 개연성이 약했다는 것과 또 너무 쉬운 이유로 그 테러를 그만둬 버린 다는 점, 북한을 모든 악의 축으로 설정해 놓았다는 점 등이었다.

 

작가의 의도대로 사이버 테러의 무시무시함과 그에 대한 경각심은 잘 일으킨 듯 보인다. 현대사회가 참 편리해진 점도 있지만 결국 모든 프로그램과 장치들은 '사람' 이 만들고 움직이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그 편리함을 향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를 만들고 운용하는 '사람' 에 대한 인성교육이나 관리가 중요하다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이용' 하고 '생산' 하고 '돈' 으로만 본다면 이 세상은 아비규환의 지옥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의 미덕은 거기에 있는 듯하다. 일단 읽기에 재미있으며, 소재 또한 매우 흥미롭고 저자가 의도한 것들도 잘 전달해 주고 있다.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이 독자들을 사이버 세상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페이지도 많지 않고, 사이즈도 크지 않아서 가방에 넣어 읽기도 편할 듯하다. 한편의 오락영화를 본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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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이솝우화에서 길을 찾다
강상구 지음 / 원앤원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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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이솝우화에서 길을 찾다

 

 

어렸을 때 많이 읽었던 이솝우화. 이솝이 2600년 전 그리스의 노예이며 작가였다니! 이솝이 누군지도 모르고 '이솝우화' 는 막연히 하나의 대명사로 여기지 않았나 한다. 보통 어린이를 위한 이 우화를 저자는 40대들을 위한 책으로 탈바꿈시켰다. 나는 지금 40대를 향해가고 있지만 내게도 이솝우화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 40대는 어떠한 시기일까. 열심히 일 해왔지만 직장에서는 조금 위태로울 수도 있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을 때여서 조금은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까. 사회에서는 어떨까? 사교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여러 모임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겠지.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이라면 여유가 있어서 새로운 일이나 취미생활에도 관심이 있을 테지만 때론 무상함이나 허무함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은 그나마 여러 역할들로 바쁘게 지내겠지만 결혼과 동시에 육아와 집안일에만 매달린 40대 주부라면 어떨까? 아이들도 크고 남편은 직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겠지만 아이들도 어느덧 커버린 집에서 가끔 외로움이나 소외감, 세상에서 뒤쳐졌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을까?

 

이 책은 그런 40대를 위한 책이다. 딱 그들을 위한 책이다. 이 시기가 되면 한번쯤은 인간관계에 대해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한번 씩 돌아보는 시기가 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친구와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속상하기도 하고, 꿈꾸던 자신의 모습과의 괴리감에 허무해 지기도 할 것이다. 자신보다 못하다 느껴지는 이웃이나 친구들을 보며 으스대기도 하고, 은퇴 후를 걱정하기도 하고, 자녀들의 결혼 등으로 새로운 관계들도 생겨날 것이다. 때로는 자신보다 자식들의 모습을 다른 자식들과 비교하며 속상할 수도 있을 테고, 돈과 명예, 지위, 집의 평수, 승용차의 크기, 명품의 소유유무, 즐기는 스포츠, 인간관계 등 여러 방면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생기는 괴리감이나, 우월의식, 새로운 인간관계의 정립, 이직이나 은퇴, 직장 내 위치변화로 인한 의식의 전환 필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공부를 해야 할 수도 있을 테고, 도전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무모해 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수도 있다.

 

저자는 그런 인생의 전환기 앞에선 40대들을 위해 '이솝우화'를 소재로 여러 교훈을 들려준다.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아주 쉽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조곤조곤 알려 주는 것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유의해야 할 것들, 지나친 욕심에 대해서, 위험이나 유혹 앞에서 유의해야 할 것들, 도전과 실패에 대해서, 비교와 논쟁 등 인생과 생활 전반에 대한 교훈들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때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이솝우화를 억지로 끼워 맞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새롭게 해석 했다기보다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을 너무나 '뻔' 하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좀 엉뚱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읽는 '목적' 과 '연령대' 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40대 이상 자기 자신을 돌 볼 수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우리의 선배들, 은퇴를 앞둔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 읽기에 편하고 좋은 책일 듯하다. 또 평소에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시작으로 선택하기에도 좋은 책이다. 한창 바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20~30대 라면 이 책에 공감하기는 좀 힘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솝우화를 접하면서 추억도 느끼고 주변 인간관계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진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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