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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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

 

 

첫 마디를 어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재미있었고,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예상했던 것들을 살짝살짝 비껴가는 전개로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았고,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화려한 스케일에 매력적인 주인공,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중간 중간 위트 있는 대사로 무거운 분위기를 상쇄시키는 센스, 그리고 나치시대와 현대를 오가는 치밀한 구성까지! 정말 흠을 잡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일까.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온 많은 발명품들 중에 최악을 꼽으라면 단연 핵무기를 꼽고 싶다. 냉전시대가 남긴 유물 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발전이 있는데 그 중에서 과연 인간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최악의 일은 인간을 몰모트로 한 생화학 무기의 발명일 것이다.

 

전 세계가 자국의 이익 혹은 자기 민족의 순수성을 내세워 침략을 일삼다가 어느 순간 좌와 우로 나뉘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자 심판 받아야 할 자들은 좌우 진영 논리의 필요에 의해 전 세계로 흩어져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넘어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의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친일의 앞잡이들이 어는 순간 빨갱이를 잡는 다는 명분으로 때로는 오랜 실무 경험으로 유능하다는 명분으로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큰 부나 권력을 가질 수가 있었던 일들을.

 

나치가 끝장난 후는 어떠했을까? 많은 고위직 나치 당원과 나치 협력자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연합국의 도움을 입고 세계로 흩어졌다한다. 목적은 오직 하나 스탈린의 영토 확장을 막는다는 것이었고. 프랑스, 영국, 미국 정보기관들과 공모해서 탈출을 했다는데 그자들을 여러 직책에 배치한 후 그들을 통해 CIA의 돈으로 독재 권력에 자금을 대고 각자의 자리에서 얻는 노하우를 보고 하게끔 하려는 의도로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역사적 사실 바탕위에 써졌다. 나치의 악랄한 행위는 말할 것도 없는데 이 소설 속에서 그들은 과학을 이용해 인류를 순수한 아리아 인종으로 바꿀 수, 아니 그들의 의도대로 라면 '진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미치광이 과학자 '블레이베르크' 를 탄생시킨다. 그는 유태인을 몰모트로 삼아 그의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한 실험을 하는데 그 실험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물은 어두운 씨를 뿌려 현재에 까지 이어지고 그 거대한 프로젝트, 그 위험한 비밀에 발을 담그게 된 주인공 제레미의 아버지가 죽으면서 그 비밀은 주인공에게로 넘어오게 된다. 주인공은 그 분야 최고의 실력을 가진 증권 중개인이었으나 과거에 받은 상처로 괴로워하는 남자이고 한 순간의 실수를 자책하여 스스로 벌을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이어 받은 비밀을 해결하기 위해, CIA 조직원인 매력적인 여성 파트너 재키와 함께 여러 나라를 누비며 위험천만한 위험 속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재키라는 캐릭터는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떠오르게 하고, 주인공의 캐릭터는 아주 명석하지만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는 그러나 아버지의 자리를 그리워하는 섬세하고 상처받은 남자이며 완벽해 보이지만 모자란 부분이 있는 정이 가는 캐릭터이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미끼를 아주 조금씩 던져주며 독자를 희롱한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서서히 절정을 향해 몰아가는 그는 제대로 된 이야기꾼이다. 차를 몰고 가는 추격씬, 몸으로 싸우는 격투씬, 화끈한 폭발 등이 눈에 그려지듯 묘사되어 있고, 어두운 내용이지만 어둡지 않게 그리는 것도 아주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오락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소설을 쓰긴 아주 어려워 보이지만 이 소설의 작가는 그 어려운 일을 아주 멋지게 해낸 것 같다. 추리와 스릴러, 첩보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며 그냥 재미난 소설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프랑스 소설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단 한 번에 깨준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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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1 - 제국의 탄생 칭기즈칸 1
콘 이굴던 지음, 변경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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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1-제국의 탄생

 

 

칭기즈칸 ‘칭기즈 칸(Chingiz Khan)’이란 ‘우주(宇宙)의 군주[大汗]’란 뜻이라는데 ‘칭기즈(Chingiz)‘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고 한다.

 

고대 투르크와 몽골에서 바이칼 호를 가리키며 ‘바다’나 ‘넓게 펼쳐지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던 ‘텡기스(tenggis)’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 몽골어로 ‘강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칭(ching)’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몽골 전통 신앙에서 ‘광명의 신’을 뜻하는 ‘하지르 칭기즈 텡그리 (Hajir Chingis Tengri)’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도 있으며, 그가 1206년 몽골 제국의 ‘칸[大汗]’으로 즉위하였을 때 5색의 서조(瑞鳥)가 ‘칭기즈, 칭기즈’ 하고 울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유목민의 생활은 가혹한 것 같다. 특히 우리가 알고 겪은 추위와는 그 격이 다른 추위 그것이 참 무시무시한 듯하다. 막연히 초원이라고 하여 푸는 나무들과 시원한 바람, 높은 하늘과 하루종이 말을 달려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대지를 떠올렸지만 그런 기후는 1년 중 짧은 여름에 불과하며 이 시기를 제외하고는 혹독한 추위 속에 갇힌다고 한다. 1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26도. '눈에 방목된 소의 머리가 얼어서 깨지거나' '쇠꼬리가 얼어붙어서 뚝 잘려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는 가혹한 환경. 그 속에서 유목민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어쩌면 우리가 보기엔 너무도 잔인한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 <칭기즈칸1-제국의 탄생>은 소설의 주인공인 '테무친' 태어나서 아직 칭기즈칸으로 불리기 전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아버지이자 '늑대들'의 칸인 예수게이는 둘째 아들인 테무친을 자기 부인이자 테무친의 어머니인 호엘룬의 부족 '올크누트'족에 데려간다. 그의 아내감을 찾아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아들을 맞기고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족을 만나 그들의 손에 살해되고 만다. 이제 예수게이의 부족 '늑대들'의 칸의 자리는 원칙대로라면 그의 장자에게 상속되어야 했으나 그의 가신인 엘루크가 배신을 하고 예수게이의 가족들을 초원에 버리고 부족을 이끌고 떠나버리고 만다.

 

이제 혹독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들 가족은 굶주림과 추위, 시시각각 그들을 위협하는 초원의 잔인한 약탈자들 사이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때가 왔다. 테무친은 이때까지는 아버지를 잃고 부족에서 버림받은 소년이었다. 그러나 가슴에 타오르는 불을 가진 그는 그런 무시무시한 곳에서 자신만 살려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형을 활로 쏘아 죽이면서 각성을 하게 된다. 그는 사냥을 하여 아직 젖먹이인 여동생을 돌봐야 하는 어머니를 비롯한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위험에 대비를 하는 등 부족의 지도자로써 의무를 행하여 나간다.

 

1여년이 지난 후 충성 맹세를 한 칸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엘루크는 테무친 가족을 찾으려고 가신들을 보내는데 이때 테무친은 그들에게 잡혀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칸으로 인정하는 칼을 만드는 장인 부자를 만나고 이어 올크누트족, 케레이크족, 타타르족, 늑대들인 보르지긴족 까지 정복을 하면서 그는 서서히 초원의 강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정복자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가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칸으로써 성장하는 과정은 어떤 영웅이든 겪어야 하는 성장의 과정을 닮았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지만 결국엔 살아남고, 그 과정에서 지도자로써의 사명감을 각성한다. 때로는 잔인하게 때로는 넓은 포용력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결국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상식이나 문화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문명이든 그들의 생활환경 속에서 만들어 진 고유한 것이므로 우리의 시각으로 어떤 '판단' 을 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테무친의 전쟁의 목적은 같은 민족이 여러 부족으로 갈라져 쓸데없는 전쟁으로 서로를 적대시 하는 것은 옳지 않고 서로의 힘을 낭비하는 것이므로 '하나의 대지에 하나의 나라로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그의 개인적인 권력욕이나 탐욕, 혹은 핏솟에 흐르는 잔인함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더 넓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2권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지고 어떤 과정으로 전 세계를 정복하는 칸이 되어 갈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일반 적인 책 2권두께, 가방에 넣어 다니기도 약간 부담스러운 사이즈의 책이지만 한번 손에 들면 너무 재미있어서 쑥 빨려드는 느낌이다. 콘 이굴던의 솜씨이기도 하겠지만 번역이 훌륭한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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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괴서, 조작의 역사
이시언 지음 / 해례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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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괴서 조작의 역사

 

조선을 생각하면 어떤 것이 떠오를까. 위화도 회군, 반정, 세종대왕, 광해군, 인조반정, 계유정난, 사화, 의적, 희빈 장씨, 뒤주대왕, 독살, 왜란, 호란 등. 가만 생각해 보니 그리 좋은 것들은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은 과연 어느 정도 일까?

 

역사 드라마들을 보면 조선에서 그려지는 시대는 이야기 거리가 있고 조금은 자극 적이야 하므로 악녀들이 나오거나, 전쟁이 있거나, 정권에 따라 같은 임금 같은 시기를 그리더라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진다. 해석도 천차만별이고.

 

이 책 '조선 괴서 조작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TV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자주 접하였던 왕이나 역사적 사실들이 등장한다.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세조 한명회, 성종,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 신하들의 선택으로 왕이 된 중종, 백성을 먼저 버린 선조, 광해군,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영조, 정조, 예전 드라마 여인 천하에서 보았던 문정왕후와 정난정, 늘 리바이벌되는 장희빈 등이 살았던 시절에 있었던 사회, 옥사 들이 이 책의 주제이다.

 

이 사실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내용은 다 다르지만 원인은 한결같다. 결국 '권력 다툼' 때문이다. 양반, 사대부들은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신분제를 철저히 유지하려 하며,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대변하며, 그들이 가진 권력을 확장하려하거나 대대손손 유지하려는 것이 단 하나의 이유다. 권력은 자연스럽게 부로 이어지고 그 핏줄을 통해 후대로 이어질 터였다.

 

노론, 소론, 남인, 서인, 북인, 대윤, 소윤 그 파벌의 성격이 어찌되는지 거기에 대체 누가 속해 있는지 세세히 알기도 어려운 당색으로 나뉘어 서로 죽고 모함하고 음모를 꾸미다가도 양반 전체에 이득이 되는 것이 없는 왕권강화나 백성 규휼 등의 이유로 자신이 가진 권리를 조금이라도 내 놓아야 하는 일에는 당파를 초월하여 합심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대부 양반 그들이 생각하는 왕이란 제 1사대부일 뿐이었으며, 때로는 그들 스스로 왕을 갈아치워 꼭두각시 왕을 세우기도 하고, 왕은 그들의 당색을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려 하다 원인 모를 이유로 죽어가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일에 이용된 것이 바로 벽서나 괴서이다. 이는 글쓴이를 알 수도 없고 진위여부를 파악할 수도 없는 허황된 것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선 명분이 중요한데, 이런 조작되거나 별일 아닌 한 장의 벽서, 혹은 한 줄, 한 자의 글자를 빌미로 삼아 수백 명이 죽거나 죄를 받는 피바람을 몰고 오는 것이다. 이는 백성을 위한다는 그럴 듯한 이유로 꾸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방편일 뿐인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굶주리는 백성을 위해 일한 관리가 없다. 그들에게 백성은 자신들의 기반을 유지시키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 그들이 아끼고 섬기는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왕 조차도 그들에게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왕 또한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제1과제였던 듯하다.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하자면 먼저 강력한 대신들을 제압해야 했으나 슬프게도 조선을 통 털어 그런 왕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왕이 대신들을 제압하는 것도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기 보다 때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씁쓸했던건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들의 대표를 뽑고는 있지만, 그들도 어느 당의 대표일 뿐이며, 국민을 위하여 일하여 할 정치가들은 서로 당색을 나누어 싸움만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당파를 초월하여 협동하는 모습을 보여줄 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저자는 과거를 모르면 똑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우리는 멀리 조선까지 돌아볼 것도 없다. 불과 몇십년 전의 역사적 사실도 왜곡하는 현실을 살고 있으며 역사 따위는 관심도 없이 오로지 돈에만 정신이 팔린 사회를 살고 있다. 높은 교육열은 훌륭한 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좀 더 괜찮은 대학 괜찮은 직업을 갖기 위함이다. 좋은 직업은 결국 권력이나 돈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고 말이다.

 

조선을 너무 부정적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부분만 다룬 책이다. 조선에서도 훌륭한 사람, 훌륭한 일들이 많았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중점은 괴서나 벽서들이 어떻게 정치 싸움에 이용되었으며 어떻게 음모를 만들고 자신들이 원하는 바대로 정국을 끌고 갈 수 있었는가 하는 것에 있다.

 

역사는 이래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균형감각 있는 시각을 길러야 함에 통감한다. 역사를 잊은 시민에게 좋은 미래는 있을 수가 없다. 잘못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살아가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 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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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가격 -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인생을 만드는 삶의 미니멀리즘
태미 스트로벨 지음, 장세현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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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가격

 

 

나의 꿈은 목조로 된 2층집, 전원주택에 사는 것이다. 넓은 마당이 있으면 좋겠고 양지바른 곳에 텃밭도 있으면 좋겠다.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리 넓지 않은데 돈이 많더라도 도심의 넓은 아파트에 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보는 일반적인 사람이다. 도심지에 직장이 있고 할부로 구입한 차와 집값이 비싼 도심지에 벗어난 곳에 대출로 구입한 아파트에서 최소 1~2시간이 걸려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 말이다. 그러나 그들 부부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둘이 맞벌이를 해서 차와 아파트 대출금을 갚고 남들이 하는 것처럼 제테크 -빚을 관리- 하면서 주말엔 쇼핑몰에 가 힘들게 일한 자신에게 줄 선물을 쇼핑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삶이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말이다.

 

그러던 그들이 어느 날 그렇게 사는 것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지. 쇼핑몰에서 자신을 위한 물건들을 쇼핑하고 자신의 집에 그득그득 쌓여있는 물건들이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건 잠시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부터이다.

 

그러다 저자는 인생의 전환점을 겪는다.'디 윌리엄스' 가 등장한 짧은 유튜브 동영상 1편 때문이다. 그 영상에는 디가 스스로 '스마트사이징' 이라 이름 붙인 개념을 소개하며 작고 아늑하고 바퀴달린 주택을 짓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하는데 그때 저자는 삶을 단순화 한다는 발상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한다.

 

먹는 것이 간단해 지지 않으면 삶이 간단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던 것처럼 저자도 이 영상을 계기로 삶이 180도 달라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금융권에 일하며 남부럽지 않던 삶을 살던 저자는 이때부터 과연 자신의 삶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으며, 소박한 삶에 대한 책과 블로그 들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그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자동차였다. 또한 그 자동차 때문에 많은 빚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매월 그 빚을 갚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많은 고민과 대화 끝에 자동차를 팔고 빚을 청산하고 자전거를 구입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팔거나 나눔하고 집을 줄이고 나중엔 결국 몇 평되지 않은 바퀴달린 아담한 집에서 살게 된다.

 

저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그 작은 집에서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언론사 인터뷰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들과 고민, 읽었던 많은 책들, 비슷한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의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구절에서 참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많았는데 특히 국민 총 생산액인 GDP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기로 이 지수가 높아지면 우리는 점점 잘 살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라크전쟁, 원유 유출, 삼림파괴, 핵탄두 개발 비용, 우리가 쇼핑몰에서 사들이는 그 모든 물건,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생산성, 소비, 서비스, 무역 등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측정' -p62- 하는 것이 GDP이다. 그러나 이 지수가 '우리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결혼 생활의 안정성, 공무원의 청렴도' 등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많은 것들을 측정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우리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성장만을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남들보다' 많이 가지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아직 벌지도 않는 돈으로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물건을 사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은가? 좋은 옷, 구두, 핸드백, 자동차, 집까지 우리는 작건 크건 많은 물건들을 사고 그것들을 '보관' 하기 위해 더 넓은 집을 구하려한다. 내가 집을 넓히려는 이유가 정말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부모님도 늘 잘살기 위해 애쓰셨다. 늘 밖에 나가서 일을 하셨지만, 내가 진정 원한 것은 어쩌면 부모님의 관심,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가진 물건들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일까? 아니 더 나아가 과연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런 의문들을 던지고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자신이 이렇게 소박한 삶을 살게 된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나 또한 거기에 잔잔히 젖어드는 것을 느낀다. 내가 가진 욕심은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불행으로 이끌고 있는 것인지.

 

이런 소박한 삶, '다운사이징' 의 삶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거부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소박한 것이 아니라 금욕적이거나 궁핍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러나 저자는 이 물음에 이런 답을 한다. '소박하게 사는 것은 금욕적이거나 궁핍을 견디는 것이 아니며, 오래 지속될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선물들 즉 자신을 위한 시간, 자유, 공동체가 깊이 스며드는 삶이라고. 초점은 물건이 아닌 삶 자체에 있다고'.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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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다시 쓴다
샘 파르니아 & 조쉬 영 지음, 박수철 옮김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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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다시 쓴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죽음의 정의는? 어떤 상태를 죽음이라고 하는가? 사후세계는? 과학이 발달하기 전, 응급 소생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죽음은 참으로 간단했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멈추고 동공의 팽창과 고정(뇌의 활동정지) 이 세 조건이 바로 죽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응급 소생술이 발전하면서 죽음을 선고하는 시점이 애매해지고 죽음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생긴다.

 

뇌의 기능은 이미 상실했지만 생명 유지 장치에 의해 숨을 쉬고 심장이 뛴다면 과연 사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망이라고 한다면 과연 사망선고의 시점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 걸까? 소생술의 문제는 어떤가? 혼수상태의 환자에게 소생술을 얼마나 실시할지 과연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그 선고는 적당한 기준이 있는지 아니면 오로지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야 하는 것인지. 환자의 뇌가 살아있을 때 살아있다고 보는지 아님 심장이 뛰는 한 살아있다고 봐야 하는지.

 

저자는 과학은 몇 세기 동안 "영혼의 자리" 가 심장에 있다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 대신에 뇌에 있다고 주장한 플라톤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이유로 현대과학은 죽음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응급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 죽음을 '돌이킬 수 있는 죽음' 즉 심장 박동이 멈추고 뇌가 작동을 멈추는 죽음과 뇌와 나머지 장기가 자체적 세포사멸의 과정을 겪다가 결국 맞이하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죽음' 으로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의 죽음의 정의에 따르면 첫 번째 죽음에서 사망이라는 선고가 내려질 수 있지만 실제로 죽은 그 상태에서 많은 이들이 경험한 임사체험(사망체험)의 사례들에서 보듯이 죽음은 과정이 되고, 돌이킬 수 있는 죽음에서 적절한 처치 즉 심장 전기충격, 인공호흡, 저 체온 유지법등의 처치를 받는 다면 생명을 유지하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정상적인 신체 상태로 돌아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죽음의 정의, 사망 선고의 시점 나아가 장기이식의 문제까지 죽음에 관련된 많은 논란의 문제점과 의문점을 제시한다. 여러 장에 걸쳐 나타난 사망체험의 사례들은 돌이킬 수 있는 죽음과 그럴 수 없는 죽음의 경계선에 대해 화두를 던지며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다투는 응급 시에 '최적의 의료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할 당위성을 역설한다.

 

또한 그 사례들은 죽음이후에 있을 사후생의 가능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죽음의 시점에서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뇌의 기능이 분명 정지 했음에도 어떻게 그 기억을 갖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다울 수 있는 조건 즉 영혼, 프시케, 의식 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런 죽음의 문제들은 다양한 문제들을 파생시킬 수 있다. 안락사, 뇌사, 장기기증, 복지, 최적의 의료 시스템 등의 많은 논란의 씨앗을 안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어야 한다. 저자는 과거 단순했던 죽음의 문제가 현대 어떻게 복잡성을 띄게 되었는지 영혼이나 의식, 혹은 사후생의 문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을 독자에게 흥미롭게 제시한다. 철학이나 공상과학 혹은 종교에서 다루던 사후 생, 사망 체험 등의 문제도 과감히 과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왔다.

 

과학은 나날이 발전할 것이고 그에 따라 생명과 죽음 삶의 문제도 늘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정의될 날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죽음과 삶의 문제들을 막연히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관점에서만 보던 시각을 훨씬 더 넓혀주었다. 다양한 현장에서의 경험과 사례들은 다소 어려운 글을 보다 읽기 쉽게 만들어 주며,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저자는 과학자답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사례들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으며 다양한 시점에서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한다.

 

왜 다시 죽음인가? 죽음은 바로 생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은 내 삶을 더욱 잘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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