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그림책엔 유난히 똥에 대한 책이 많다. 하긴, 아이의 입장에서야 형태를 갖춘 최초의 창작물이 똥인거니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다인도 똥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전집에 들어있는 똥 관련 책도 몇권 되지만 단행본으로 보면  

 

 

 

 

 

 

대충 뭐 이정돈데, 책을 읽어주는 것 자체야 별로 어려울 일이 없다. 

헌데 정말 난감한 순간이 오기도 한다. 다인은 밥을 먹으면서 책을 한권씩 볼때가 있는데, 분명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내가 뭐라고 할 수가 없는게, 엄마인 내가, 뭔가를 먹을때 책을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인이 어릴때, 이유식을 잘 먹지 않으면, 좋아하던 그림책을 펼쳐서 보여주며 관심을 끌어 이유식을 한입한입 먹였던 기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밥 먹을때 으레 다인은 책을 가지고 오는데, 나도 식사중에 다인이 가져오는 책이 똥에 관한 책이면 참 난감하다. 특히 허은미의 <똥은 참 대단해> 같은 경우는, 하마 똥을 받아먹는 물고기와 코끼리 똥을 뒤져 그 안에서 풀씨를 꺼내먹는 비비 원숭이 이야기가 나온다. 그냥은 정말 상관 없지만, 밥 먹는 동안엔 정말 난감하다. 우욱. 

살살 다른 책을 가져오면 어떠냐고 물어봐도 책에 관한한 똥고집인 다인은 한번 고른 책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 내가 그다지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니지만, 딱히 강한편이 아니라, 똥관련 책을 읽어주며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땐 그냥, 밥먹는 걸 포기하는 쪽이 낫다. 

그래도 뭐, 여기까진 참을 수 있다.  

정말 다인이 원망스러웠던 건 지난 여름, 점심 밥상으로 푸짐한 쌈밥을 차려놓고 두번인가 싸 먹었는데 느닷없이 똥이 마렵다고 할 때였다. 그땐 정말 울고 싶었다.  

다인은 아토피라고 까진 할 수 없지만, 약간 피부가 연약하고 이것저것에 알러지 반응을 잘 일으키는 피부인데, 유독 물티슈에 약했다. 물티슈를 쓰면 여지없이 발진이 나고 알러지로 벌개졌다. 그래서 응가를 하고나면 그냥 물로 싹싹씻어줬다. 난 무척 대단하고 헌신적이고 착하고 놀랍고 대단하고 훌륭한! 엄마이므로, 그런 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운다. 

하지만, 정말, 그 상황에선 눈물 나더라. 쌈밥을 먹고 있는 중에 똥을 누고 엉덩이를 씻어 달라고 하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날의 맛있는 상추쌈밥은 두번으로 끝이었다. 

아. 육아의 길은 험난한 여정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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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1-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 아시마님. 이 글 읽는데 쌈장과 똥이 막 겹쳐서 눈앞에 보여요. 어째요. 하하하하하하하

아시마 2009-11-13 23:55   좋아요 0 | URL
헉! 쌈장과 똥이라니!
ㅠ.ㅠ
지난 여름 내 입맛이 너무 없어서 고생했거든요. 작은 놈은 젖을 먹이던 중이었고(물론 아직도) 애 둘 키우려면 정말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을 실감하는데 입맛이 떨어져 유일하게 맛있던게 상추쌈이었어요.
배는 고파 죽겠는데 딴건 먹고 싶은게 없고, 그와중에 그 상황이라니 정말 슬펐었어요.
딴건 그렇다치고, 체력에 관한한 악으로 깡으로 애 키우는 중입니다.
울 남편은 밥먹다 말고 애 똥기저귀 갈아주고도 밥 잘만 먹던데 말이죠.
 

1. 요즘 알라딘 들어올때마다 기분이 좋다. 적립금이 맨날맨날 쌓여 있는 거다. 리뷰 한편 썼다고 사람들이 무려 140원씩이나 나한테 준다. 와 놀랍도록 고마워라. 그런데 얼마전엔 뜬금없이 몇천원이 올라가 있었다. Thanks to를 이렇게 많이했나 봤더니 다음 블로거 베스트 특종인가에 선정되었다고 오천원 주더라. 완전 감동먹고 남편한테 자랑했다.  

야옹씨 : 나, 리뷰 써서 다음 블로거 베스트 특종에 선정됐다!!! 
충무공 : 그게 뭔데?
야옹씨 : 그... 글쎄? 그게 뭘까? 뭐 네이버 메인 같은거 아닐까? 여튼 중요한 건 당선됐다고! 백만년만에 리뷰한편 써서 알라딘에 올려놨더니 떡하니 선정되고. 마누라 대단하지 않아?
충무공 : 상금은 있나?
야옹씨 : 그럼! 무려 오천원!
충무공 : 니 다 무라  

우리가 이 대화에서 알수 있는 것은, 첫째, 야옹씨와 그녀의 남편은 블로그 초보이거나 블로그 개념이 없다. 둘째, 그녀의 남편님하는 돈밖에 모른다.(무려 수전노 상대 출신이시다. 하.하.하.) 

2. 첫리뷰 개시를 한 뒤 며칠 있다 두번째 리뷰를 올렸다. 그리고 다음날 방문했더니 적립금이 또 확 늘어있다. 이번에도 다음 블로거 베스트 특종 당선이란다. 헐헐헐... 쓰는 것마다 당선되는 거 아닐까 해서 오늘 읽은 글 또 리뷰한편 써봤다. 결과는 내일 발표~ 

3. 리뷰 써놓고 보니 알라딘에서 무슨 리뷰 대회를 한단다. 오호. 나 내 홈페이지에 써놨던 리뷰가 엄청나게 쟁여져 있는데(홈페이지는 닫았다.) 이번에 올리고 리뷰 많이 올리는 사람한테 주는 10만원이라도 노려볼까, 진지하게 생각중이다.  

4. 민음사판 세계문학 전집을 30% 할인행사 한다고 해서, 사고 싶던 것들 주섬주섬 담아놓고 얼마 담았나 봤더니 285,000원이다. 나 사까 마까. 사면 충무공이 나랑 그만살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의 유혹은 너무나 강력하고, 아. 고민스러워. 살것인가 말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여기서 "살 것"과 "말 것"은 책 구매에도 해당되고 결혼 생활에도 해당된다. ㅎㅎㅎ 한국어 만쉐이. 

5. 예전 홈페이지 시절에는 이렇게 번호붙여 자잘자잘하게 쓰는 일기를 많이 썼었다. 새삼 써보니 반갑다. 기록도 습관이라, 이젠 슬슬 포스팅질(근데 솔직히 난 아직 포스팅이라는 말도 서먹하고 블로깅도 낯설다.)에 이력이 붙기 시작한다.  

6. 아참. 빼먹고 안써놓을뻔 했다. 난 알라딘에서 하는 이런저런 이벤트에 잘 당첨되는 편인데, 이벤트에 당첨되고 남편에게 막 자랑하면 남편님하는 매번 심드렁 하시다.  니가 알라딘에 갖다준돈이 얼만데, 앞으로도 계속 갖다 달라고 그런거 주는 거다. 라나. 아. 수전노 상대랑 사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난 무능문대이므로 참기로 한다. 에혀. 내 신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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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1-13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아시마님 앞으로 완전 탄력받아서 페이퍼나 리뷰 더 자주 올리실 것 같은데요. 리뷰대회도 도전 해 보세요. 1등은 무려 백만원이라니깐요!!(제세공과금은 본인부담이지만)

6번에 쓰신것처럼 사실 '알라딘에 갖다준돈이 얼만데' 매주 리뷰당첨금이나 다음 블로거 선정으로 책값을 충당하려면 택도 없지만 그래도 기분 좋잖아요. 뭔가 더 쓰고 싶다는 욕구도 스멀스멀 생기고. 그리고 아시마님, 다음 블로거 특종도 1등으로 뽑히면 2만원이에요. 후훗. 완전 공돈 생겨서 짭짤하다는. 헤헷 :)

아시마 2009-11-13 09: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오늘 찾아보니까 특종도 등수가 있더군요. 아... 하지만 전 1등하곤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아. 이건 운명적 좌절이예요.
탄력받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홈에 썼던 리뷰들이 걍 그대로 제 컴에 남아있어요. 안그래도 컴이 요즘 불안불안해서 얘네들을 어쩌나 하던 참인데 알라딘에 완전 도배질 해볼까 하다가, 음음, 알라딘 직원들이 얘 돈독 올랐다고 욕할까봐 참아요. 소심하기로는 1등까진 아니고 한 15등쯤은 될거라. ^^;;;

글구 딴소리지만, 저한테 다락방님 서재는 지뢰밭이예요. 오늘도 다락방님 덕에 몇권의 글을 장바구니에 담았는지 몰라요. 매번 다시는 안가야지 버럭! 이러고 결심한다는. ㅎㅎ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어린 소년이(사실 소녀라도) 화자가 되어 자신의 고난에 찬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글을 읽는 건 참 아프다. 어린소년을 화자로 택하기에 자연스레 오게되는 글 전체의 천진함이 더욱 아프다. 끝내, 나를 울린건, 열살 인줄 알고 있었던 열네살 모모의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도 살수 있나요?"  (p. 269)

라는 질문이었다.  

한때는,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사랑이 꼭 필요하다고.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나의 존재가 의미있어 지는 거라고. 그런데 살면 살수록 그게 아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어야 산다.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에게 세상은 잿빛이다. 첫사랑의 시작과 함께 다가오는 세상의 팡파르를 누구나 기억한다. 바람은 더욱 상쾌해지고, 하늘은 더욱 푸르러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특별해지던 지명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한 귀퉁이, 사회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모모는 늙은 창녀 로자 아줌마의 보살핌으로 살아간다. 그는 끝내 로자 아줌마에게 "양모"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하지만, 그 어느 엄마가 로자에 대한 모모 만큼의 절실한 사랑을 받아볼 수 있을까. 

 가끔 TV에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이들의 비참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죽은 엄마를 한달이고 두달이고 죽은 줄도 모르고 방에 뉘어둔채 살아가던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곤 했다. 도저히 그 아이의 목소리(음성변조가 된 것이라고 해도.)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나를 돌봐주지 못한다해도, 그저 누워만 있는다고 해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고, 내가 무작정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의 죽음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이미 죽어버린 엄마라고 해도 그와의 행복한 공존을 파괴당하고, 이제는 정말 오갈데 없이 '사랑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걸 알아버린 아이의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나. 아이이기에 유창한 언어로 그 기분을 표현할 수도 없이, 그저, 엄마가 죽은 줄 몰랐어요. 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그 아이를. 정말 그 아이를 어떡하니.

세상의 끝에 다다른 두 사람, 늙은 창녀 로자와 창녀와 정신병자의 아들 모모에게는 서로밖에 없었다. 나를 사랑한다 안한다 보다 더욱 중요한, 내가 사랑하고 나의 사랑을 받아줄 존재. 그 절박함에 마음이 에여왔다. 그리고 그들 주변의 가난하고 대책없지만 무작정 따뜻하고 그야말로 대책없이 인정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을 눈물섞인 웃음이 아니고는 볼수가 없다. 

이 소설은, 기묘하리만치 이중적이다. 정말 비참한 현실이고 비정한 현실인데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악인도 등장하지 않고, 현실적인 악인이라도 이 소설 속에서만큼은 선량하고 인정많게 행동한다. 그건 화자가 14살 소년이기 때문에 가지고 올 수 있는 천진함일텐데, 실제로 모모는 그다지 천진난만 하지도 않고, 세상을 믿지도 않으며, 지나치게 조숙하기까지 하다. 세상을 믿지 않는, 이미 세파에 닳고 닳았음에도 어쩔수 없이 천진할 수 밖에 없는, '사랑할 사람'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모의 모습이. 정말이지 참.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의 소설은 이게 세번째인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유럽의 교육>-이 소설도 소년이 화자다) 이 작가의 글을 읽고나면 늘, 슬프다고만은 말할수 없는 뭔가 그냥 마음이 아프다고 밖에 표현할수 없는 기분이 된다. 아. 그래도 역시 슬프다.  

로맹 가리의 소설은, 여파가 꽤 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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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1-1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앞의 생』도『새벽의 약속』도 좋았지만, 저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정말이지 자지러지게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집을 세개만 꼽아보라면 그 중 하나는 로맹 가리가 될 거에요. 어쩌면 가장 우선 순위를 차지할지도 모르구요. 네, 정말 여파가 세죠.

아시마 2009-11-13 09:24   좋아요 0 | URL
아. 전글에서 다락방님 서재가 저한테는 지뢰밭같다고 썼는데, 쿨럭. 이제는 제 서재에도 지뢰를 심어두시는 군요. 하.하.하.
이해할수 없지만, 전 왜 로맹가리의 소설이 제가 읽은 세권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전 약간 전작주의자에 가까워서 웬만하면 다 수집하는 편이란 말이죠. 새벽의 약속이 뭔가 검색했다가 하늘의 뿌리까지 두권 다 장바구니에 담아버렸어요.
이제 전 돈 마련하러 가야해요. 남편 등은 하도많이 쳐서 더이상은 칠 등도 없다는. ㅠ.ㅠ
 
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 15권 + DVD 세트 국시꼬랭이 동네
강동훈 외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대학 진학을 하느라 서울로 오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집은 작은 정원이 딸린 주택이었다. 물론 부모님은 아직도 거기 살고 계신다. 하숙집을 거쳐, 직장생활을 하던 몇년간의 원룸생활이 이어졌고, 결혼과 동시에 나는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주부로서, 어떤 집의 관리자로서 내가 주택에 살아본 적은 없으니 아파트가 주택보다 얼마나 편한지는 알수없으나 생활의 편의라는 면을 제외하고라면 아파트는 참... 자연이라는 측면에서는 삭막한 공간이다. 자연에서 소외된 삶은 삭막해진다.  

꽃잎 뜯고 솔잎 뜯고 흙 퍼담아 하던 소꿉장난에 대한 기억은, 아파트에 사는 내 딸들에게는 딴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이건 어떻게 설명을 할수가 없다. 내 딸이 아파트 내부 공간에서 보는 꽃이란 고작 양란이나 분재, 그도 아니면 꽃다발 정도니까. 호박꽃의 수꽃과 암꽃이 어떻게 다른지(어릴때 소꿉장난을 할때 열살 미만의 나이에도 암꽃은 따면 안된다고 알고 있었던 나였다.) 풀의 이름이 뭐가 있는지. 풀꽃 도감과 야생화 도감을 사 주어도 아이에게 그건 지식의 차원이지 놀이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러니 점점,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은 잊어가고, 내 아이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과일 모형과 역시 플라스틱으로 근사하게 엄마의 부엌을 본떠 만든 부엌에서 깨끗하게(?) 소꿉장난을 한다. 이건 뭔가... 아니다 싶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라 아파트에서 살아갈 내 아이를 보면, 이 아이가 상실한게 무엇인지, 이 아이 스스로는 알기나 할까, 하는 한숨이 난다. 하긴, 가져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상실감은 생기지도 않겠지. 

그러다 발견한 책이 이 책이었다. 이 책은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도대체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가 뭔가하고 봤더니, 내가 열살 미만에 하고 놀았던 놀이들이다.(하긴 나도 이 책에 나오는 풀각시 만들기나 풀싸움을 해 본일은 없지만.) 외국에서 만들어 낸 창작 그림책을 보듯 이 책을 본다, 내 아이는. 읽히다 보면 마음이 아프다가도, 그래도 이게 한국의 놀이문화라고, 니가 잃어버린 문화라고 알려주고 싶어 책장의 다른 책들보다 자주 꺼내 읽힌다.  

그리고. 책의 소명에 관해 생각한다. 이제는, 아주 시골에 사는 아이들을 제외한다면 이 놀이를 하며 자라는 아이도 없겠지. 그러면 역사책에 기록될 가치가 없는 이런 소소한 놀이문화들은 잊혀지겠지. 그러나 이 책이 존재함으로 해서 그 놀이들은 힘을 얻는다. 지금까지 천년을 유지해왔던 그 문화가 앞으로의 천년을 버티어나갈 힘을. 

이 열다섯권의 책은 글쓴이는 이춘희 한 사람이지만 그림을 그린 이는 다양하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게 한권한권 읽어나갈 수 있다. 난 전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책은 그나마 전집의 냄새가 좀 덜난다. 

이 책을 사고 얼마되지 않아 아이의 소꿉을 챙겨들고 벚꽃지는 공원으로 나가 꽃밥으로 소꿉놀이를 해 보았다. 벚꽃지는 계절이 지나 이제 아이와 함께 갔던 공원의 잔디는 모두 누래졌는데도 아이는 공원을 지날때 그 꽃밥을 지어 소꿉놀이를 했던 이야기를 한다.  

언젠가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놀이를 다 해보는게 나의 소박한 소망이다. 그러려면 시골로 이사를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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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칭이란 인생이 항상 그렇게 심각하고, 형식적이고, 복잡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유물, 어린 시절이 남겨준 유물인 것이다. 애칭은 또한사람이란 함께있는 사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준다.' 

줌파 라히리, <이름 뒤에 숨은 사랑>, 2004, p.41 

다인이 어렸을 때 엄마 아빠 맘마 등의 일상적인 단어를 제외하고는 제일 먼저 한 말은 "야옹"이었다. 

남편은 나를 "야옹이" 라 부른다.  

뭐, 내가 생각할때 나는 전반적으로 고양이과의 인물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전형적인 강아지과의 인물이 되는데(특히 남편에게) 남편이 나를 야옹이라 부르는 건 좀 아이러닉한 일이 아닐수 없지만 어쨌든 남편은 나를 야옹이라 부른다. 

그건, 결혼하기 전부터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나의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남편은(사실 나의 본명은 별로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다. 아무런 고민 없이 생각나는 대로 지었음이 너무나 역력하고, 장차 이 이름을 쓸 아이가 자신의 이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에 대한 배려가 전무한 이름.)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나를 야옹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즈음의 나는 남편에게도 고양이처럼 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솔직히 서른살 여자에게 야옹이라는 애칭은 좀. 

결혼 직후 남편은, 시댁이나 친정 식구들 앞에서는 야옹이라는 호칭을 좀 자제하는 것 같더니,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당당히 외쳐대기 시작했다. "야옹아!" 라고.  

남편의 나에 대한 호칭은 나름 다양하게 변주된다.  

야옹아, 옹아, 옹아야 등등등. 그리고 기분이 좋거나 심심하거나 괜히 한번 이름을 불러볼땐 나름 가락을 붙여서 불렀다. "야옹 야옹아~" 라고. 솔직히 40이 멀잖은 남자가 마누라를 부르는 이름으로는 좀.  

하여간. 남편이 그렇게 가락을 붙여 "야옹 야옹아~" 라고 불러주면 나는 냉큼 "야옹!" 이라고 대꾸해 주곤 했다. 아주 부부가 죽이 잘 맞지. 전화를 받을때도 "여보세요"라는 말대신 "야옹" 이라고 받기도 한다. 뭐, 천생 연분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심심했던 남편이 별로 할 말도 없으면서 "야옹 야옹아~" 라고 부르자 내가 대꾸를 하기도 전에 다인이 냉큼 대꾸했다. "야옹." 이라고. 아이들의 학습력은 놀랍다. 그때가 아마 돌무렵이었을걸. 그 뒤, 아이에게 엄마 아빠의 이름과 주소들을 외게 할때 다인이 말했다. 

 "아빠 이름 뭐야?" 
"서**"
"엄마 이름은?"
"야옹이." 

이 문답으로 여럿 포복절도 했다. 37개월인 지금도 다인은 엄마 이름 뭐야를 물으면 야옹이를 외친다. ㅎㅎㅎ 웃긴다. 

한편. 다인의 애칭은 '찹쌀떡'이다.  사람들이 종종 묻더라 애를 왜 찹쌀떡이라고 부르느냐고. 뭐 별건 아니고, 아기의 말랑말랑한 엉덩이가 꼭 찹쌀떡 같아서, 어느날인가부터 다인을 찹쌀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애칭도 다양한 변주형태가 있는데, 

찹쌀, 찰떡, 떡이, 챱샤리, 살떡이, 똑이 등등등. 

어느해의 명절엔가 사촌 언니 부부와 함께 가진 술자리에서 사촌 언니 부부가 논쟁을 하고 있더라. 다인의 별명이 찹쌀인지 찰떡인지를 두고. 나는 주로 찹쌀이라 부르고 남편은 주로 찰떡이라 부른다. 이랬건 저랬건 그걸 왜 둘이 싸우냐고. 멀쩡하게 옆에 앉아있는 날 두고. 착한 나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찹쌀떡과 찹쌀과 찰떡의 변주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다인이 만큼 특이한 애칭을 가진 애를 본 적이 없다. 참고로, 그 사촌 언니 부부의 두 딸은 똘이와 짱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둘째의 애칭은 다인이 지어준 셈이다.  

태어나긴 둘다 비슷하게 3kg 언저리에서 나왔는데(다인이 2.94 / 해인이 3.07) 다인은 작고 야윈 아이로 자란 반면(돌때 체중이 8.4였다. 애고고.) 해인은 백일까지 무섭게 체중이 늘었다. 태어난지 한달만에 5kg를 돌파했고, 언니의 돌때 몸무게인 8kg는 백일 언저리에 돌파했다. 어익후. 비만 아기가 될까 얼마나 걱정했게. 

다행히 5개월무렵부터는 그렇게 무섭게 체중이 불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평균체중을 윗도는 통통한 아기로 자랐다. 똑같이 젖먹이고 똑같이 이유식 먹이는데 왜그렇게 다른지 원.  

하여간 어느날 해인의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다인이 옆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토실 토실 엉덩이, 올록 볼록 예쁜배~"로 시작하는 동요를 아시는지? 다인은 그 노래의 가락에 맞추어 이렇게 불렀다. 물론 첫 소절 무한반복이다. 

"토실 토실 밤토실
해인이는 밤토실
토실 토실 밤토실." 

그래서 자연스레 해인의 애칭은 "밤토실"이다. 도대체 토실 앞에 "밤"이 왜 붙었는가는 나도 알수없는 다인만의 사고 매커니즘이고, 아직까지는 설명할 능력이 안되는 것 같으니 알수없고, 나중에 설명할 능력이 될만큼 언어 능력이 자라면 자신이 동생에게 "밤토실"이라는 애칭을 붙여준 걸 잊을테니 영영 알수가 없겠지만 어쨌든 해인은 "밤토실"이 되었다. 

이름의 변주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남편은 밤토실을 주로 걍 토실이라 부르고, 나는 종종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와 놀아줄때 챈트 비슷한 저 구절을 중얼중얼 부른다. 아, 그러고보니 다인의 별명과 관련된 챈트도 있다.  

"찹쌀떡 찹쌀떡 다인이 찹쌀떡 엄마 찹쌀떡 다인이 찹쌀떡~"  

이 가락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건지 나도모르는, 걍 어쩌다보니 입에 붙어버린 가락이다.  

이래서, 다인에게 가족의 이름을 물으면 이렇게 나온다. 

"아빠 이름 뭐야?" 
"서**" 
"엄마 이름은?"
"야옹이"
"네 이름은 뭐야?"
"다인 찹쌀떡"
"동생이름은 뭐야?"
"해인 밤토실." 

이 무슨 동방신기식 작명법이람. 

뭐. 그건 그렇고. 이제 대망의 남편.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름 뒤에 "씨"를 붙여 꼬박꼬박 "**씨"라고 불렀다.  

보통은 다들 "오빠"라고 하는 모양인데, 난 당시 모시고 있던 선생님이 연인간의 "오빠"라는 호칭에 혐오에 가까운 반감을 가진 분이셨던데다(근친상간이라는 단어까지 들먹이시며) 우리 부부의 나이 차와 같은 나이차인 언니네 부부가 "##씨"라 부르고 있던 상황이라 아무 고민 없이 "**씨"라 불렀다. 그랬더니 세번째 만났을 때인가, 남편이 자긴 "**씨"라 불리는 걸 너무 싫어한다나. 

그래서 그럼 뭐라 불러주랴? 물었더니 수줍게 "오빠"라 불러달란다. 어익후. 단칼에 자르며 말했다.  

"울 엄마가 널 낳았니?" 라고. 

그리고 "**씨"와 "아저씨"라는 호칭중에 선택하랬더니 눈물을 머금고 "아저씨"를 택하더라. 그래서 한동안 "아저씨"라고 부르다가 결혼 준비 과정에서 웨딩 컨설턴트가 나를 "신부님", 그리고 남편을 "신랑님"이라고 부른 것을 계기로 "신랑님"이라고 호칭을 바꿔줬다.  

그리고 한동안이 지난 뒤, 남편 친구 부부(여긴 동갑)가 "여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걸 보고 자연스레 "여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저씨"도 "신랑님"도 "여보"도 딱히 애칭으로 보긴 힘들고.   

얼마전부터 남편은 나에게 "충무공"이라고 불리고 있다. 무려 충무공. 애칭 치곤 좀 대단하시다.  

남편은 장가를 잘 들었는데(믿어라!) 난 늘 남편을 세뇌시키고 있다. 나만한 마누라가 어디있니.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세번은 구했지. 그랬으니 이생에 나같은 마누라를 만났지. 당신이 잘되는 건 다아아아아아아 내 덕인줄 알라고.  

처음엔 비웃던 남편, 내가 하도 집요하고 줄기차게 주장하니 이젠 뭐, 걍 인정한다.  

그러다가 얼마전, 집을 사고 팔고하는 과정에서 말했다. 

당신은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세번은 구했나보다. 도대체 전생에 뭔 공을 그렇게 쌓았길래 나같은 마누라를 다 얻었니? 당신은 아마 전생에 이순신이었을 거야. 앞으로 당신을 충무공이라고 부르겠어. 서 충무공. 

 해서 남편의 애칭아닌 애칭(? 이 경우엔 호칭 또는 별칭에 가깝겠다.)은 충무공이 되었다. 

결국은 다, 내가 잘났단 말이다. ㅎㅎㅎ  

이 책,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읽다보니, 문득 생각이 나서 주저리 주저리 길게도 써봤다. 

뭐, 따지고 보면 우리 가족의 애칭은 이 책에 나오는 분류대로 하자면 "벵골식 애칭"에 가깝다. 

"친구와 가족처럼 친한 사람들이 집에서 또는 그 밖의 사적이고 편안한 순간에 부르는 이름"
p.41 

이니까. 

이 애칭 외에 나의 또 하나의 이름은 아시마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써온 이름.  

난 이 아시마라는 이름을 중국 고산부족의 설화 <아시마>에서 따왔는데, 이 책의 설명에 따르자면 벵골이름 아시마의 뜻은 '경계를 모르는, 가능성이 무한한 여자' 라는 뜻이란다. 중국 고산 부족의 설화에서 아시마 라는 이름은 향기로운 이름이었는데.  

사람이 이름을 규정하기도 하고, (언제 였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나는데 김영삼 정권때 호적 일제 정정 기간이 있어서 이 시기에 이름을 바꾸는 게 쉬웠다고, 그때 가장 많이 바꾼 이름이 전두환 노태우 라던가.) 이름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데(이게 바로 동양 고전 작명의 원리겠지.) 후자쪽을 따르자면. 나는 경계를 모르는 가능성이 무한한 여자가 되어야 할텐데. 

뭐, 호기심의 경계는 모르겠고(여러가지로 관심이 많다.) 가능성이 무한한지는 모르겠지만, 책에 대한 욕심은 무한하다. 결국 내가 이렇게 된 건 아시마라는 내가 택한 나의 이름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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