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자유 자유주의 시리즈 55
밀턴 프리드먼 지음, 민병균 옮김 / 자유기업센터(CFE)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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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22년 '자유기업원' 판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갑자기 "사주팔자"라는 말이 떡하니 나와 놀라서(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원문 21~22쪽


  The amount of each kind of resource each of us owns is partly the result of chance, partly of choice by ourselves or others. Chance determines our genes and through them affects our physical and mental capacities. Chance determines the kind of family and cultural environment into which we are born and as a result our opportunities to develop our physical and mental capacity. Chance determines also other resources we may inherit from our parents or other benefactors. Chance may destroy or enhance the resources we start with. But choice also plays an important role. Our decisions about how to use our resources, whether to work hard or take it easy, to enter one occupation or another, to engage in one venture or another, to save or spend—these may determine whether we dissipate our resources or improve and add to them. Similar decisions by our parents, by other benefactors, by millions of people who may have no direct connection with us will affect our inheritance.


  번역 45쪽


  ☞ 우리들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개별자원의 양은 부분적으로는 운에 따른 것이긴 하나 부분적으로는 우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선택한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운에 맡겨야 할 것이라면 우리 자신의 유전인자와 같이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결정하는 것들이다. 우연에 의해서 우리가 태어날 가정과 문화적인 환경, 그 결과로 말미암은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달리하게 된다.

  사주팔자에 따라서는 부모나 은인으로부터의 상속재산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무일푼으로밖에는 인생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 또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들이 보유한 자원을 사용하는 방식에 관한 결정, 날라리로 지낼 것인가 열심히 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어떤 사업에 손을 댈 것인가, 저축할 것인가 아니면 써 버릴 것인가 등등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자원을 고갈시킬 수도 있고 점점 더 살찌울 수도 있다. 부모, 은인, 기타 우리 자신과는 아무런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의 이와 유사한 선택 또한 우리 자신의 상속을 좌우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다른 대본이 있는 줄 알았다. 이 정도로 다시 쓰셔도 되나???


  그렇게 조심하며 읽다 보니, 미심쩍은 부분이 계속 나온다.

  위의 "사주팔자"(chance), "무일푼(으로 인생을 시작)"(destroy ... the resources we start with), "날라리"(take it easy), "살찌울 수도"(improve and add to them) 등에서 보는 것처럼, 과도하게 멋을 부리셨달지, 너무 나아갔다 싶은 번역이 수두룩하다.


  편집 형태도 이상하게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원저를 떠나 일단 번역본 평점은 유보...



------------------------------(추가)------------------------------


  독창적이기 그지없는 번역 문장을 꿋꿋이 참으면서 원문과 대조하여 읽다가...

  ("The founders of our country"를 "개국공신"으로 옮긴 것은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이 번역본을 읽는 데 노력을 들이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22년판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겨들을 바가 있는 중요한 책인데, 번역이 그 전달을 가로막아 버렸다.



------------------------(2024. 2. 8. 다시 추가)------------------------


  집에 있는 다른 번역본(1980년 명지사)도 특별히 더 낫지 않다...

  국문본은 훑어만 보고, 원서를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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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 -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니컬러스 웝숏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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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6. 잘 갈무리되어 있네요. 대번에 읽었고, 많이 배웠습니다.

정치와도 붙기 쉬운 덕분에 우리는 어쨌든 (포스트)케인시안 시대에 살게 되었지만, 하이에크가 우울의 늪에서 헤매고 있을 때 스태그플레이션이 생기고 노벨경제학상이 주어져 빛(?)을 보는 드라마를 보면 참, 존버는 승리한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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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묵향 > (공유) 무엇이 ‘가짜 미술‘을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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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 같지만...

  인공지능, 머신러닝, 딥러닝을 공부하다 보면 영어로는 없는데 중국어로는 정리된 자료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영어로 주로 찾다 보니 인도 출신 연구자, 학생들이 만든 영어 자료를 훨씬 많이 만나기는 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반중, 혐중 정서가 커졌고, 국내 매체들은 중국 경제가 곧 무너질 것처럼 기우제 지내는 듯한 컨텐츠를 쏟아내고 있지만, 설령 중국의 경제가 심각한 불황을 겪고(지난 주, 중즈그룹 中植企业集团이 베이징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정치 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양안 관계에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현대 중국이 쌓은 과학기술 분야의 분명한 발전마저 송두리째 무너져 없었던 일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규모와 저변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토록 열심히 달려왔는데, 문득 뒤돌아서는가 싶더니 이제 도로 출발점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는 듯하다.


  [중즈그룹 파산신청 관련 기사]

  一木(责任编辑: 陈勇洲), "金融圈震动! 中植集团申请破产清算,法院已受理!", 证券时报 (2024. 1. 7. 07:42) https://www.stcn.com/article/detail/1085061.html

  Sam Gruet, "Zhongzhi Enterprise Group: Chinese shadow bank files for bankruptcy", BBC News https://www.bbc.com/news/business-67890633 


  어제 과제 하나를 마치고 이것저것 최근에 들인 책들을 들춰 보다가 위의 책을 펼쳐 보고 깜짝 놀랐다.


  대박...


  중국 연구자들이 머신러닝에 관한 100여 개 문답을 정리한 책인데... 어찌나 잘 정리해 두었는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단문 서술형 또는 논술형 시험문제에 대한 답안처럼 되어 있다고 하면 되려나?)

  조금 공부를 하신 분들이 읽으면 기억도 살리고 지식을 재배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실 것이다.


  집필진은 주로 칭화대, 베이징대 등에서 컴퓨터과학 등을 공부하신 분들로 hulu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즈니 자회사 https://www.hulu.com/ ) 데이터과학팀의 연구진이다.


  편집책임자인 주거웨(诸葛越, Zhuge Yue) 박사는 칭화대 졸업 후 스탠퍼드에서 컴퓨터 과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 hulu에서는 2021년 5월까지만 일하신 것 같고, 지금은 QuarkStar (2022년 1월부터), NGP Capital (2023년 6월부터)에 적을 두고 계신다. 2023년 5월부터 Bain & Company 외부 자문위원도 맡고 계시는 것 같다.


  흥미롭게도 제일 먼저 내신 책은 『魔鬼老大, 天使老二(악마 첫째, 천사 둘째)』(2017)라는 육아서이다. 未来算法(미래의 알고리듬)』(2021)이라는 책도 내셨고, 급기야 '인공지능 시대의 가정교육법'을 표방한 『成长树家庭教育法(성장수 가정교육법)』까지 내셨다(2023년 11월 출간, "Growing Tree: A Guide for the Future of Parenting"이라는 영어 제목도 붙어있다). 뒤의 두 권은 2024. 1. 8. 현재 알라딘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데이터 과학자와 데이터 엔지니어를 위한 인터뷰 문답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The Quest for Machine Learning은 2018년에 중국어판이 나왔고, 2020년에 한국어 번역이 나왔는데, 2018년 출간 당시 웨 박사께서 medium에 남기신 글이 있다.


  "Newly Published Book: The Quest for Machine Learning" (2018. 10. 10.) https://medium.com/@yuezhuge/newly-published-book-the-quest-for-machine-learning-4c4ebd1020d3


  아직 한국어로밖에 번역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발견하여 옮길 생각을 하셨는지, 김태헌님과 제이펍에 감사드린다. 동료들과 같이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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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4 3감추어 계신 하느님에 대한 대화, 니콜라우스 쿠사누스, 유대칠 옮김, 부크크, 2020



  유대칠 선생님의 해제에 따르면, '비스콜라' 중세 유럽 철학자들로는...


  13세기의 룰루스[Raimundus Lullus, c. 1232~c. 1315, 라몬 룰(Ramon Llull)로 쓰기도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Ramon_Llull https://es.wikipedia.org/wiki/Ramon_Llull https://ca.wikipedia.org/wiki/Ramon_Llull),


  14세기[또는 조금 후세대]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c. 1260~c. 1328, https://en.wikipedia.org/wiki/Meister_Eckhart https://de.wikipedia.org/wiki/Meister_Eckhart),



  15세기 후반의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1463~1494, https://en.wikipedia.org/wiki/Giovanni_Pico_della_Mirandola),


 그리고 니콜라우스 쿠사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 https://en.wikipedia.org/wiki/Nicholas_of_Cusa https://de.wikipedia.org/wiki/Nikolaus_von_Kues)가 있다. 쿠사누스(또는 쿠자누스)의 책은 몇 권 번역되어 있다(지만지도 참 귀하다).


 


  그러나 에크하르트 외에는 모두 생소한 편이다. 찾아 보니 독일의 Kurt Flasch (1930~, https://en.wikipedia.org/wiki/Kurt_Flasch https://de.wikipedia.org/wiki/Kurt_Flasch)가 주되게 참고할 만한 학자 같다.


  역자는 Charles H. Lohr의 생각을 빌려 중세 형이상학을 '종적 형이상학''횡적 형이상학'으로 분류했는데, 앞서 본 학자들 외에 유명론자 오캄(William of Ockam 또는 Occam, c. 1285~1347,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of_Ockham), (신플라톤주의는 일반적으로 '종적 형이상학'으로 이어지지만) 신플라톤주의자로서는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 https://en.wikipedia.org/wiki/Marsilio_Ficino https://de.wikipedia.org/wiki/Marsilio_Ficino)가 '횡적 형이상학'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래 『The Cambridge History of Renaissance Philosophy』는 궁금하다. 그중 Lohr의 "Metaphysics"만이라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abs/cambridge-history-of-renaissance-philosophy/metaphysics/0D9D0FD2EE23DDBD9D428D6972333FC6 『The Political Thought of William of Ockham』도 흥미로워 보인다. 아무튼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대학은 참으로 대단하다. 책 70쪽에 열거된 플로티노스 관련 문헌을 추가로 달았다.



  다음 설명을 보면 '횡적 형이상학'의 개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교황주의'에 대비한 '공의회주의'도 '횡적 형이상학'과 통한다. 특히 1438년부터 열린 피렌체 공의회(제17차 세계공의회)가 그러했다(https://en.wikipedia.org/wiki/Council_of_Florence, 가톨릭사전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4569 등 참조). 당시 '종적 형이상학'은 정통으로 수용된 반면, '횡적 형이상학'은 이단시되었다고 한다(책 7쪽, 각주 8).


신이 정말 무한하다면, 신은 '밖'이 없어야 한다. '밖'에 의하여 신 아닌 것이 존재하는 순간, 신은 '신인 것'과 '신이 아닌 것' 사이 경계에 의하여 유한하게 된다. 즉, 신은 무한하지 않은 존재, 유한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횡적 형이상학에 의하면, 신에게 유출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신의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신 '안'[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즉, 신의 '밖'으로 나오지 않았단 말이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는 것이 된다. 심지어 작은 풀 한 포기도 신 '안'에 있다. 존재하는 것 가운데 어느 하나도 신의 '밖'에 있을 수 없다. 신의 무한함에 적절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신 '안'에 있다고 한다면, 신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존재론적으로 평등하다. - 55, 56쪽 해제


  쿠사누스의 대화편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하에 있는 '이교도(Gentilis)'와 '그리스도인(Christianus)' 사이의 '감추어 계신 하느님'에 관한 짧은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https://www.hs-augsburg.de/~harsch/Chronologia/Lspost15/Cusa/cus_deus.html 등에서도 라틴어 원문을 볼 수 있다.


  '감추어 계신 하느님'에 관한 언급은 다음 성경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아, 구원을 베푸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정녕 당신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사 45, 15)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요한 14, 8-9)


  원문 일부를 인용한다. 번역된 문장 중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Jasper Hopkins의 영문 번역(https://www.jasper-hopkins.info/DeDeoAbscon12-2000.pdf) 등을 참고하여 나름대로 다듬어 보았다.


[4]

이교도: 그러면 사람이 무엇인지, 돌이 무엇인지, 이런저런 낱개의 것들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떻게 내게 알려진 것이요?

(Quomodo ergo mihi notum est, quid homo, quid lapis et ita de singulis, quae scio?)


그리스도인: 사실 당신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그것을 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본질에 대하여 내가 당신에게 묻는다면, 당신은 인간이나 돌의 본질이 표현될 수 없다고 단언할(affirmabis)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인간과 돌, 그리고 그것들의 차이를 아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양한 작용(operationum)과 형상에 기초하여 우연히 발생하며, 당신은 이들을 식별할 때 다른 이름을 부여합니다.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우리의 분별하는 이성의 움직임입니다.

(Nihil horum scis, sed te putas scire. Si enim te interrogavero de quiditate eius, quod te putas scire, affirmabis quod ipsam veritatem hominis aut lapidis exprimere non poteris. Sed quod scis hominem non esse lapidem, hoc non evenit ex scientia, qua scis hominem et lapidem et differentiam, sed evenit ex accidenti, ex diversitate operationum et figurarum, quae, cum discernis, diversa nomina imponis. Motus enim in ratione discretiva nomina imponit.)


[6]

그리스도인: 나는 당신 이방인(이교도)들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신이라고 (잘못) 부르는 그런 신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이신 하느님을 공경합니다.

(Hoc ipsum quod dicis. Colo enim deum, non quem tua gentilitas falso se scire putat et nominat, sed ipsum deum, qui est ipsa veritas ineffabilis.)


[9]

그리스도인: 하느님은 구체적인 어떤 분도 아닙니다. 어떤 것이란 모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구체적인 어떤 분이 아니라 모든 것이십니다.

(Nec aliquid est. Nam aliquid non est omne. Deus autem non est potius aliquid quam omne.)

J. Hopkins 영문 번역: He is not something, either. For something is not everything. And it is not the case that God is something rather than everything.


  책에는 각주가 풍부하게 달려 있어 이해에 도움을 주는데, 각주에 소개된 쿠사누스의 다른 저작이 원문보다 더 와닿기도 한다. 예컨대, 책 26쪽 각주 38에는 Apologia doctae ignorantiae discipuli ad discipulum (학습된 무지에 관한 한 제자의 다른 제자에 대한 변론)의 구절이 소개되어 있다. 역시 Jasper Hopkins의 영문 번역(https://jasper-hopkins.info/Apologia12-2000.pdf) 등을 참고하여 나름대로 다듬어 보았다.


나는 하느님에 관한 사실이 학습된 무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분별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 방식으로 모든 곳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양(量)이 없이 크신 것처럼 모든 곳에 장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현존하십니다. 마찬가지로 그분은 장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모든 곳에, 시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어느 때나, 존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모든 존재에 계십니다. (뒷부분은 아래 원문과 영문 번역 참고)


라틴어 원문: Sicut enim Deus ita est ubique quod nullibi – cum nulli loco desit, qui in nullo loco est –, ut sit in omni loco illocaliter sicut magnus sine quantitate: ita est etiam Deus ipse omnis locus illocaliter et omne tempus intemporaliter et omne ens non-enter. Et ob hoc non est aliquid entium sicut non est aliquis locus vel aliquod tempus, quamvis omnia sit in omnibus, – quasi monas est omnia in omnibus numeris, quia ea sublata nequit numerus esse, qui solum per ipsam esse potest; et quia monas est omnis numerus, non tamen numeraliter, sed complicite, ideo non est aliquis numerus; nam nec binarius nec ternarius.


J. Hopkins 영문 번역: I do not believe that this [fact about God] can be discerned otherwise than by means of learned ignorance. For example, God is present everywhere in such [a] way that He is present nowhere (for he is not absent from any place who is not present at any place); thus, God is present at every place non-spatially, just as He is great without quantity. Similarly, He is every place non-spatially, every time non-temporally, and every existent non-existently. But He is not on this account any existent thing, even as He is not any place or any time. And yet, He is all in all, even as the one is all things in all numbers. For were the one removed, [the] number could not continue to be; for number can exist only through the one. And because the one is every number, (not numerically but by way of enfolding), it is not any number. For example, it is neither the number two nor the number three.


  [14]에서 신(Deus)이라는 말이 본다("I see")는 뜻의 theoreo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면서, 하느님과 다른 모든 것의 관계를, '시각이 모든 색을 파악할 수 있기 위해 시각은 색의 영역에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빗댄 것도 흥미로웠다.


Deus dicitur a theoro, id est video. Nam ipse deus est in nostra regione ut visus in regione coloris. Color enim non aliter attingitur quam visu, et ad hoc, ut omnem colorem libere attingere possit, centrum visus sine colore est. In regione igitur coloris non reperitur visus, quia sine colore est. Unde secundum regionem coloris potius visus est nihil quam aliquid. Nam regio coloris extra suam regionem non attingit esse, sed affirmat omne quod est in sua regione esse. Ibi non reperit visum. Visus igitur sine colore existens innominabilis est in regione coloris, cum nullum nomen coloris sibi respondeat. Visus autem omni colori nomen dedit per discretionem. Unde a visu dependet omnis nominatio in regione coloris, sed eius nomen, a quo omne nomen, potius nihil esse quam aliquid deprehenditur. Eo igitur deus se habet ad omnia sicut visus ad visibilia.


  해제의 다음과 같은 서술이 쿠사누스와 역자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신을 명제(命題)에 담을 수 있다면,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높은 차원의 종교적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더 잘 하느님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을 더 잘 만나야 한다. (...) 쿠사누스는 신은 (...) 사람의 이성과 언어 속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신은 지식으로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신을 정말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


쿠사누스는 신을 모르겠다 했다. 신은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르는 신이다. 무엇으로 정의되지 않는 신이다. 무엇으로도 신을 알지 못한다. 신을 개념 속에서 구속할 수 없다. 내가 나란 존재를 아집에 구속해서는 안 되듯이 말이다. 아집에서 벗어난 유한한 나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무한한 하느님과 하나 되어 있음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며, 하느님과 정말 제대로 더불어 하나 됨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쿠사누는 하느님을 모른다 한다. 몰라야 한다고 한다. 그 모름에서 사람은 또 다른 희망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덧1. 롬바르두스의 『명제집』도 언젠가 번역되면 좋겠다.



덧2. 전에 쓴 유대칠 선생님 저서 관련 글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3274256


덧3. 책 45쪽 각주 60에 나오는 관련 논문

유대칠, "스콜라 지칭론의 복원 작업 -중세와 근대 스콜라 논리학에서 지칭(suppositio)의 발생과 활용 그리고 그 복원-", 중세철학 제16호 (2010)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10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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